서울 재수복 등 재북진의 치열한 공방 속
중공군 분쇄의 대혈전! 해병대 홍천지구 전투
- 강원도 홍천 북쪽의 가리산(1051m)지역 점령, 북한강 수문 장악 및 도하 점령,
육군 6사단 패퇴에 따라 북한강 남쪽으로 철수, 홍천강, 소양강 일대 적 섬멸 -
烏山-原州선에서 중공군의 "人海戰術"을 저지한 UN군은 2월 하순에 분연히 반격을 개시하여 3월 14일 首都'서울'을 재수복하고 중부전선에서는 洪川일대를 점령하고 계속 북진 중에 있었다.
한편 UN군은 38도선을 돌파, 북진을 단행하느냐 또는 현전선을 유지하는 정도로 끝일것인가 하는 문제가 각국 간에 논의되고 있었는 데 결국 이것은 전술상의 문제여서 '맥아더' UN군 총사령관에게 일임하게 되었다. 이때 '맥아더' 장군은 "38도선은 전략적으로 적의 재침공을 방어할 자연적인 방어선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38도선을 확보할 수 있는 병력이면 중공군을 능히 鴨綠江과 豆滿江밖으로 몰아낼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뒤이어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 사령관에게 "피를 흘리지 않는 평화를 위하여 전투를 중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단호히 웅진할 것이다." 라고 선언하고 현지회담을 할 용의가 있음을 방송하였으나 적은 종내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치열한 대공사격으로 대응해 왔다.
이로써 UN군이 38도선을 돌파해야 한다는 사실이 국토방어를 위하여 불가피한 행동임이 명백해 짐에 따라 UN군은 일제히 북진을 감행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해병 제1연대는 38도선에 가장 기까운 중동부의 산악전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중동부전선에서 京仁街道까지 진출한 해병 제1연대는 3월 16일 미 제9사단에 배속되어 3월 17일 18:00시 車項里를 출발하여 芳林里에서 숙영하고 18일 17:00시 '홍천'에 도착하였으며 19일에는 각대대 전원이 九城浦里에 집결하였다.
한편 중동부전선에서 '홍천'을 철수한 적은 '춘천'북방 樺川江에 이르는 분지에서 아군과 결전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이리하여 '구성포리'에 집결한 해병 제1연대가 담당한 전투지역에는 해발 1051m 되는 준험한 加里山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번 해병 제1연대에 부여된 임무는 이 '가리산'을 공격, 점령하므로써 우군이 북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가리산(加里山)'
'가리산'은 '홍천-춘천'을 저변으로 하고 麟蹄를 정점으로 연하는 직삼각형의 사선이 되는 '홍천-인제'의 중간지점인 '홍천'북쪽 18k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산악이어서 북진하는 UN군은 이 지점을 장악하게 되면 일사천리로 38도선 이북 '인제'와 요지인 春川을 부감할 수 있는 관계상 이 고지가 갖는 전략적 가치는 실로 중대하였다. 따라서 적도 예의 이 고지의 방어를 견고히 하고 있었다.
더욱이 적은 대부분이 38도선을 넘어 이북으로 도주하였으나 自隱里에 있던 인민군 제6사단 본부는 이때까지도 도망치 못한 상태여서 '가리산'이 아군에 의해 점령당하게 되면 적은 우측으로부터 심대한 위협을 받게 되므로 이 요지의 확보를 위하여 그들의 최강부대의 병력 1,500명으로써 '가리산'을 방어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병력을 957고지일대에 집결, 배치시켰다. 이와같은 '홍천'지구일대의 적정은 해병 제1연대의 '가리산'공격을 감행케 하였다.
'구성포리'에 집결한 해병 제1연대는 "'加里山攻擊作戰"을 감행키 위하여 3월 19일 야간 '물새터'에 연대지휘소를 설치하고 제2대대를 우일선, 제3대대를 좌일선을 담당하게 하고 제1대대는 예비대로 후방을 경계케 하였다. 제2대대는 야간행군으로 '신말'을 경유하여 3월 20일 454고지와 484고지에 도착하였고 제3대대는 3월 20일 이동하여 목표지점 #12, #14까지 이동하였다. 이날 각 대대는 4km 전진하여 '가리산'의 험준한 산봉을 6km 전방에 조망할 수 있는 지점까지 전진하였다.
제7중대는 12:00시 적의 맹열한 사격을 받으면서 975고지우단 산봉의 전방 200yds 지점까지 전진하였으나 지형이 워낙 급사면이고 또한 노출된 지형이어서 해병들이 발을 붙일 수 없을뿐만 아니라 또한 적은 공격부대의 행동을 관측할 수 있어서 자신과 여유있는 사격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7중대의 공격은 돈좌되어 고지중복까지 철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제6중대의 627고지 공격도 성공하지 못하고 14:00시 철수하였다. 이와같이 제2대대의 공격이 실패하자 대대장은 유리한 지형에 포진하고 있는 적을 주간에 공격하는 것보다 아군의 행동을 음폐할 수 있고 또 적도 경계에 방심할 야간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것이 현책이라 생각하고 야간공격을 결심하였다. 이때에 감행하게 된 야간공격은 해병대로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큰 규모의 야간공격이었다.
최종목표인 '가리산'의 공격은 연대 예비대로 柏二洞일대에서 수색과 정찰에 임하고 있던 제1대대가 담당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제1대대는 후방경계임무를 제2대대에 인계하고 3월 24일 09:00시 '판메리기'에 집결하여 제1 및 제2중대를 공격부대로 09:30시 공격을 개시하였다.
한편 '가리산'으로부터 도주한 적 약 100명은 인근의 914m고지 및 883m고지일대에 집결하여 공격부대의 전진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제1대대 제2중대가 화기중대의 지원을 받아 14:30시에 914m고지를 점령하고 계속하여 15:00시에 883m고지까지 완전히 점령하였다.
우리, 제2중대는 '가리산'을 13:00시에 점령 완료했다. 이때 나는 공격소대장(3소대)이었다. 목표를 점령하고 목이 터져라고 萬歲를 불렀다. 이 "만세"는 우리가 목표를 점령하고 처음 부른 "만세"이기 때문에 더욱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니 그것도 한번이 아니고 여러번 불렀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만세"를 부르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우리의 피해는 극히 경미하였다.
사실 이때까지의 전투는 소탕전 형식의 전투였기 때문에 총성은 간간히 들려왔으나 피격되어 쓸어지는 해병은 극히 드믈었다. 그러나 이번의 공격전투에서 해병들이 피격되어 쓸어지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게 되니 나도 모르게 어떤 적개심 같은 것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두려움은 없어지고 오로지 적을 격멸해야 되겠다는, 원수를 갚아야 되겠다는, 적개심으로 생각이 변하게 되니 적탄이 나에게 맞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없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전투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 적개심(敵愾心)
만일 그런 '적개심'이 없다면, 생기지 않는다면 전투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며 전투한들 백전백패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오합지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적개심'이란 평소에 얼마나 강한 훈련을 많이 했느냐에 달려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때문에 평소의 훈련과정에서 강한 훈련을 많이 한 만큼 그 훈련의 성과는 전투 시 이와 같은 '적개심'을 이르키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본능으로, 무의식 간의 동작으로, 변하여 전투 시 그 훈련된 본능이 작용하여 용감한 전투를 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훈련 때 땀을 많이 흘리면 전투 시 피를 덜 흘린다]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횡대대형으로 전진하면서 엄체호에서 총구만 내놓고 우리에게 사격하면서 저항하는 적병들을 엄체호 위에서 그 속을 향하여 총격을 가해서 사살했다. 그들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포로는 한명도 생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공격개시 5시간 만인 정오 경에 '가리산'을 완전히 점령하고 "만세"를 목이 터져라고 크게 불렀다. 그것도 여러번 불렀다. 그것은 나로서는, 소대장으로서 처음 목표를 점령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전투는 주로 소탕작전이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감격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전투에서 나는 패잔병이 사용하고 있던 따발총을 노획했다. 그 패잔병은 이미 호 속에서 우리에게 저항하다 사살돼 있었다. 이때 나는 우리가 공격 중 사살한 적을 처음 봤는데 같은 동족인데 어떡하다 이 민족이 이렇게 되었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서 전쟁의 비극을 눈으로 현장에서 확인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산 밑에 멀리 보이는 골짜기에 초가로 된 집 한채가 보였다. 이런 강원도 산골짜기에, 그것도 인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 곳에, 전쟁 중에 아직도 여기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나는 즉시 대원 몇명을 인솔하고 그 농가에 은밀히, 소리 안나게 접근하여 사격준비를 하고 문을 박차고 들어 섰는데 집안 구석에 모녀 3명이 쪼그리고 앉아 떨고 있었다. 딸 2명은 20세 정도로 보였다.
그들에게 우리는 국군이라고 말하고 우선 그들을 안심시키고 그들이 여기에 있게 된 연을 물었더니 여자들끼리 돼서 피난은 못가고 그대로 이곳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동안 인민군들에게 밥을 지어주면서 살아 왔다고 했다.
그 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민군들이 여기서 밥먹고 있었는데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자 전부 허둥지둥 도망갔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즉시 주변일대를 샅샅이 뒤졌으나 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는 즉시 진지로 돌아왔으나 그 모녀들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전투 중이어서 그들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후회스러운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으며 그들이야 말로 전쟁의 비극의 흔적이 아닌가 생각된다.
(2) 수색정찰
"가리산 전투" 후 우리는 능선따라 호를 파고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여러 날 동안 휴식상태에 있었는데 어느날 중대장으로부터 "내일 아침 진지전방 약 2km되는 지점까지의 일대를 수색정찰하라"는 명령이 3소대에 떨어졌다.
우리, 3소대는 아침 일찍부터 처음 나가는 수색정찰의 준비를 완료하고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탄약도 각자 1기수에 더하여 여유있게 휴대하고 실탄을 장진하고 소대장인 나는 50.000분의 1 전술지도를 휴대하고 08:00시에 목표지역을 향하여 중대진지를 출발하였다.
전술대형은 1분대를 선두로 산개시키고 2 및 3분대는 지원대형으로 뒤따르게 하고 나는 맨앞에서 SCR-300통신병(원거리 통신)과 전령을 대동하고 첨병 2명을 앞세우고 목표지역을 향해 천천히 사주경계를 하면서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진지를 출발하는 순간부터 적지역으로 들어서기 때문에 적이 어느 순간에, 어디로부터 우리에게 사격을 가할지 알 수 없으므로 전 해병은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런 긴장 속에서 1시간 정도 진출했는데 전방에 한국군 복장을 한 군인들과 장거리통신용 안테나가 보였다.
나는 우리의 전방에는 우군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보고 즉시 선두분대를 옆으로 산개시키고 사격준비를 명령하고 함께 그들에게 접근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육군 복장을 한 7명이었다.
우리가 본 그들은 땅바닥에 앉아서 무엇인가 다투고 있었는데 우리를 본 순간 몹시 당황한 기색으로 조용해 졌으나 그들은 애써 태연한척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겁도 없이 10m정도 거리까지 다가갔다. 내뒤에는 선두분대가 넓게 옆으로 산개해 있었고 그 뒤에 전소대원들이 나의 명령에 일제사격을 할 태세로 엎드려서 그들에게 M-1 소총과 AR자동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당신들은 어디 소속이고 지금 어디로 가는거요?"하고 나는 그들을 향해 물었다. 순간 조용해 졌다. 이윽고 그들 중 선임자로 보이는 육군복장이 자기들은 군단소속인데 장거리 정찰을 목적으로 지금 이동 중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이때 나는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지도와 무전기를 확인했어야 했는데 경험부족으로 그렇게 안하고 SCR-300 무전기로 중대에 보고했다. 후에 생각해 보니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때 그들의 지도와 무전기를 확인만 했어도 나는 아직까지 갖고 있는 그들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있는데, 하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스러운 생각을 하게 됨은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나의 미숙했던 행위를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은 틀림없이 패잔병이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나는 아직도 나의 뇌리 속에서 지워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대로부터의 지시를 기다렸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다. 그 동안 우리의 긴장은 극도에 달할 수 밖에 없었다. 일촉즉발의 순간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그들의 표정은 무쳑 안절부절하는 그런 표정들이었다.
잠시 후에 SCR-300 무선통신기에서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없는 제주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그 당시 우리는 적의 무선통신 내용의 도청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주도 출신 통신병을 활용했었다. 그것은 제주도 사투리는 제주도 출신 이외는 전혀 알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무선통신 수단으로서는 어느 암호사용보다 안전하였기 때문이다. 그 사투리의 내용은 그들을 그대로 보내주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뒤를 힐긋힐긋 돌아보면서 멀어져가는 그들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중대지역으로 복귀했으나 그들이 인민군 패잔병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나는 지금도,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후 우리는 현진지에 계속 배치되어 얼마 동안 휴식상태에서 그 동안 못했던 빨래도 하고 이발도 하면서, 장발을 깎아버리고, 종전의 군인다운, 해병다운 모습으로 돌아갔는데 전부 미남자로 보였다.
이때는 강원도의 산악지대의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던 혹한도 물러가기 시작한 때였다. 그렇게 평안한 매일 매일을 지내고 있던 중 우리는 다시 강원도의 산악지대를 따라 북진하면서 인민군을 계속 추격하여 38도선 이북으로 진입했다. 그 동안 우리는 별다른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진출할 수 있었다.
해병 제1연대가 미 해병 제1사단에 배속되어 New Cairo선까지 공격, 전진한 것은 3월 26일이었다. 당시 적은 대부분이 38도선 이북 金剛山일대로 도주하여 소위 그들의 춘계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소수병력은 유리한 지형을 이용하여 가급적 아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려고 발악하고 있었다.
New Cairo선까지 진출한 해병 제1연대는 제1대대를 우일선으로서 914고지를 중심으로하여 전방 Ready선일대까지 수색을 담당하고 제3대대는 좌일선으로서 781m고지를 중심으로 부근일대의 수색을 담당하고, 제2대대는 예비대로서 975고지와 627고지를 연하는 후방경계에 임하게 하였다.
이같이 배치를 완료한 해병 제1연대의 임무는 '가리산' 산악일대에 잠복한 적을 모조리 소탕하여 차기작전을 유리하게 하는 한편 장병들의 휴식과 부대의 재정비를 하는 데 있었다. 각대대는 임무에 따라 담당지역 일대에 대한 수색전을 전개하였다.
3월 31일 임무수행 중에 있던 제3대대 제9중대는 柳橋里부근에서 적 약 30명과 조우하여 4시간 교전끝에 10명을 사살하고 격퇴하였다.
4월 2일 수색전을 계속하고 있던 해병 제1연대는 미 해병 제1사단의 공격, 전진에 호응하여 New Cairo선에서 Ready선까지 진출할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전진을 계속하였다. 이날 제1대대는 洪川고개까지 진출하였고 제3대대도 勿老里(물로리)를 향하여 전진하엿다.
한편 해병 제1연대의 우익을 담당한 미 해병 제1연대는 Ready선까지 진출을 완료하고 좌익을 담당한 미 해병 제7연대는 목적지인 內坪里에 도착하였다. 4월 3일 제1대대는 전일 공격에 계속하여 Ready선까지 진출을 완료하였고 제3대대도 목적지 '물로리'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Ready선까지 진출한 해병 제1연대 제1대대는 미 육군 제7사단 제32연대에, 해병 제1연대 제3대대는 미 육군 제2사단 제22연대에 각각 그 임무를 인계한 후 春川방면으로 이동하였다.
해병 제1연대의 인접부대인 미 해병 제1사단 정면의 적은 중공군 제4야전군 제39군이었다. 이 부대는 제115사단, 제116사단, 및 제117사단으로 편성되어 있었으며 제116사단은 예비대이고 해병 제1연대 정면에는 제115사단이 '화천'시를 등지고 '북한강'변을 따라 '북한강저수지'일대에 베치되어 있었다.
그 동안 후퇴를 거듭하던 적은 '북한강'을 도하하면서부터 '북한강'의 천연적인 방어선과 수문을 이용하여 아군의 도하작전을 지연시키면서 부대를 재정비하여 일대반격을 시도할 태세였다.이때의 '화천'저수지 수문과 '북한강'변일대는 확실히 적이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방어선이었다. 즉 저수지 수문을 개방하여 西流하는 '북한강'의 물을 5m 더 깊게 하므로서 아군의 도하작전에 큰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저수지의 수문을 개방하게 되면 수위가 높아져 부근일대는 침수를 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비인도적인 적이 이런 사태를 고려할 리가 만무할 것이니 만일 우리, 해병부대가 도하작전을 시작하면 수문을 개방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이러한 적의 예상되는 행동으로 인하여 주민들이 입을 피해를 고려한 해병부대는 우선 '북한강'을 도하하기에 앞서 먼저 적진에 돌입하여 이 수문을 장악하는 것이 선결문제였다.
이렇게 중요한 '화천'지구의 "北漢江渡河作戰"을 담당한 부대는 우리, 해병 제1연대였다. 이리하여 Ready선에서 미 육군 제7사단과 임무를 교대한 해병 제1연대는 4월 8일 鶴谷里에 집결하였다. 따라서 해병 제1연대는 4월 8일까지 작전에 대비하고 이의 실시를 위한 만전의 태세를 갖추기에 몹시 분주하였다.
4월 9일 해병 제1연대는 미 육군 제7기갑연대와 임무를 교대하기 위하여 도보행군으로서 Kansas선으로 이동하엿다. 제1대대는 4월 9일 '화천시' 남방 4km지점인 CT 99.0-12.5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제2대대는 4월 11일 저수지의 서남방 '매峰' 북쪽 CT 92.5-15.0에 지휘소를 설치하여 부근일대의 경계에 임하였다. 그 당시 중공군의 포탄은 간단없이 아군진지에 낙하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Kansas선에서 미 육군 제7기갑연대와 임무를 교대한 해병 제1연대는 미 해병 제5연대와 연계을 유지하여 제1대대는 좌일선을, 제2대대는 우일선을 담당하고 '북한강' 연변까지의 정찰과 수색전을 실시하였다. 이때의 해병부대의 임무는 주력부대에 앞서 도하할 기습부대의 도하지점 선정과 아울러 도하작전에 필요한 전투자료를 확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1대대 정찰대의 정찰보고에 의하여 다음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龍岩里와 位羅里일대를 정찰하여 '북한강'의 수심, 강폭, 및 유속 등을 측량한 결과 '북한강'도하에는 선박을 이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또한 제2대대 정면에 있는 '화천'저수지 일대에는 적의 연대병력이 방어와 경비를 담당하고 있기에 제2대대는 상당한 적의 저항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같이 다각도로 입수한 모든 정보를 종합 평가한 제1대대는 4월 10일 '위라리'와 '화천읍'부근을 가장 적합한 도하지점으로 선정하였다. 제2대대는 저수지 수문 남쪽일대의 수색을 끝마쳤다. 이곳의 적은 예상대로 강력한 진지편성으로서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즉 중공군은 아군의 저수지 확보를 위한 전면적인 도하작전에 대비하여 사단병력으로서 '북한강'변일대에 개인호 및 연락호를 파고 각종화기를 집중 배치하고 있었다.
한편 강변요소에는 소대 및 중대병력을 배치하였고 '화천'읍내에는 대대병력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특히 수문일대에는 연대병력이 집결하여 있었다. 이렇게 배치된 적은 아군의 맹열한 공중폭격과 포격에도 불구하고 철퇴할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북한강'도하작전을 위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하여 연일 정찰전을 감행한 해병 제1연대는 4월 16일을 기하여 도하를 위한 전초전을 개시하였다. 제2대대는 '한강'변 남쪽일대의 유일한 적의 거점인 무명고지와 400m고지의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때 이미 수문일대에는 아군의 공중폭격과 야포의 포격이 집중되었으며 격전끝에 제2대대는 무명고지를 확보하고 계속 400m고지를 공격하였으나 적은 수문을 확보하기 위한 요지인 400m고지를 사수하려고 완강히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있을 우군부대의 전면적인 '북한강'도하를 위해서는 여하한 격전에 따르는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전략적 요지인 400m고지는 반드시 점령하여야만 했다. 이를 위한 제2대대 전장병의 투지는 자못 충천돼 있었다.
공격을 개시하자 예상대로 난전이었으나 적진에 거듭 돌격을 감행하여 마침내 400m고지를 점령하였으며 목표를 점령한 제2대대 장병들의 기세는 극히 왕성하였다. 제2대대는 계속하여 도하할 수 있었으나 아군의 전선부대가 '북한강'변일대에 진출하여 도하준비가 될 때까지 현전선을 확보하고 야포의 지원사격과 공중폭격을 집중한 후 발전소와 인도교를 장악하고 大利里부근에 본부를 설치하였다.
제1대대와 제3대대도 4월 22일에 이르러 도하를 완료하였다. 제1대대는 戰場洞 일대에서 수색에 임하였고 제3대대도 '전장동'의 북방 3km 지점인 438고지를 향하여 적을 계속 추격하였다.
(2) 중공군의 3차공세와 '북한강'철수작전
原州-烏山선에서 패주, 북상한 적은 소위 鐵의 三角地帶라고 하는 鐵原, 金化, 및 平康 일대에서 인원과 장비를 재정비 한 후 4월 22일 13:00시를 기하여 春期大攻勢를 감행하여 왔다. 이 적은 장기 간 일선에서 전투경험이 풍부한 부대였을뿐만 아니라 16개 군단 180,000명의 대병력을 투입하여 왔다. 이 공격은 중공군이 2개 월 동안 거듭된 후퇴작전에 종지부를 찍고 제3차로 승패를 결정하려는 일대혈전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공군의 人海戰術이 UN군의 "화력전술"을 패퇴시킨다면 금후의 전술은 많은 수정을 요하게 되는 것으로서 이는 "인해전술"대 "화력전술" 간의 결전을 의미하는 것이 되므로 전세계의 의목은 한국전선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피아의 극도로 긴장된 분의기 속에서 결국 UN군은 발악적인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하였다.
최초 적의 기습공격은 성공하여 서부에서는 首都 '서울'을 점차로 위협하였고 중부에서는 '철원', '금화', 및 '화천'지구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력으로 압박해 왔다. 또한 '화천'서방 芝浦里방면에서는 중공군이 공격을 개시한지 1시간 13분만에 UN군진지를 돌파하게 되어 미 해병 제1사단의 좌익에 위치한 한국 육군 제6사단의 방어선은 붕괴되고 말았다.그러나 해병부대의 전투지역에서는 해병부대의 용감하고 철저한 방어전으로 침입치 못하였다. 때때로 소주정에 분승하여 자살적인 저돌행동으로 공격 해오는 적을 전부 격침시켰다. 해병 제1연대는 이와 같이 적의 공격을 분쇄하였으나 미 해병 제1사단의 좌익에 배치되어 있던 한국 육군 제6사단의 철수와 가중되는 적의 압력으로 부득기 '북한강'을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4월 22일 '북한강'을 도하, 북상하였던 해병 제1연대는 제2대대가 계속하여 601고지, 590고지, 및 下好音洞을 점령하고 豊山里 동남 1km지점인 509고지를 공격하기 시작하였으며 제1대대는 戰場洞에서 372, 601고지, 및 500고지를 점령하고 '전장동' 3km 북방지점의 438고지를 향하여 공격, 전진 중에 있었고 제3대대는 '전장동' 일대를 수색하고 있었다. 이같이 해병 제1연대의 전면적인 공격, 전진활동에 대한 적의 저항은 중공군의 전선 전반에 걸친 제3차 공격의 여파로 급속히 확장되어 치열해지기 시작하였다.
중공군의 공세는 4월 22일 22:00시에 제3중대 분초진지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는 데 10분 후에는 제1대대 정면에 '피리'와 '퉁소'를 불면서 공격하여 제2대대 정면과 제1대대의 우측을 위협하였으나 일몰을 기회로 해병부대는 500m고지와 後德 및 509m고지를 연하는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다.4월 23일 04:00시를 기하여 해병 제1연대는 반격을 개시하여 적을 미 해병 제5연대와의 전투지경선 밖으로 격퇴하였다. 이같이 수차에 걸친 격전을 거듭하면서 침입하는 적을 격퇴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제1대대는 23일 15:00시 현진지를 철수하여 제3대대의 엄호하에 24일 08:00시 도하지점에 도착하였고 15:00시 龍華山을 경유하여 陽東里 북방 2km지점에 도착하였다.
한편 제2대대도 철수를 시작하자 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거 침공하여 왔다. 그러나 제2대대는 조금도 당황함이 없이 적의 전진을 지연시키면서 철수하여 24일 12:30시 미 해병대의 水陸兩用舟艇으로 도하를 완료하고 남하하여 19:00시에 '양동리'에 도착하였다.
제1대대와 제2대대가 '북한강'을 도하, 남하한 후 '전장동'에 예비대로 있던 제3대대는 23일 16:00시 加孫里로 전진하여 이 지구에 진지를 구축하였다. 제3대대는 이곳에서 제1대대의 철수작전을 엄호하고 남하하는 중공군을 격격하였다.
이때 제3대대는 대대장 金龍國 소령을 중심으로 전장병이 죽음을 각오하고 응전태세를 갖춘 후 파상으로 공격해 오는 적을 저지하여 제1대대의 '북한강'철수를 성공시킨 다음 24일 09:30시 도하하여 무사히 '용화산'에 도착하였다.
이리하여 '북한강' 일대를 철수한 해병 제1연대는 중공군의 계속 남하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동양리' 북방 4km지점인 '용화산' 일대에 제1대대 및 제3대대를 포진케 하였다. '북한강'을 도하하여 아군진지를 돌파한 중공군은 아군의 철수와 더부러 4월 24일 16:00시 계속 남하하여 26일 10:00시에는 제3대대진지 정면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때의 적의 병력은 아군의 약 2배 정도였고 화력도 훨씬 우세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병력과 화력이 우세한 적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으니 그것은 해병의 감투 정신을 발휘하는 것 뿐이었다.
26일 10:00시부터 적은 이중삼중으로 벌떼처럼 파상공격을 가해왔다. 이때 해병들은 일보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진지를 고수하였다. 이날 13:00시경 적은 막대한 손실을 무릅쓰고 제3대대진지 앞 30yds까지 육박하여 왔다. 해병들은 소지하고 있던 마지막 수류탄을 투척하면서 용전을 계속하였으나 적의 공격은 더욱 치열해 졌으며 해병들은 탄약이 전부 소진됨에 따라 이 이상 진지를 고수하는 것은 실효가 없는 자멸행위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하고 제2대대는 먼저 '월곡리'로 철수하였고 제1대대의 완전철수에 뒤이어 제3대대도 '월곡리'로 철수하엿다.4월 22일 180,000명을 동원하여 개시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전선전반에 걸쳐 개관하면 중공군은 그 초기에 있어 전선돌파에 성공하여 4월 28일에는 주력부대가 首都'서울'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때 이미 중부전선에서 UN군은 '춘천' 및 '가평'지구에서 철수작전을 감행하였다. 한편 首都'서울'에서는 대통령 명령에 의하여 또 다시 시민들은 철수를 시작하였으며 28일 정오까지의 잔류자는 100,000명 정도였고 400,000명의 시민은 남으로 남으로 서러운 피난길을 떠나게 되었다.
4월 29일 공로로 전선에 도착한 UN군 총사령관 '릿지웨이' 장군은 '벤프리트' 대장과 함께 제반 상황을 시찰한 후 "중공군의 공세는 조만 간 UN군의 육, 해, 및 공군의 위력 앞에 무참한 최후를 고할 것이다"라고 언명하였다. 과연 UN군은 3군의 입체작전으로 적에게 막대한 출혈을 강요하였다.
즉 UN군의 총반격작전이 시작된지 5일 간에 걸쳐 적은 63,000명이라는 막대한 사상자를 내었다. 이것을 볼 때 중공군의 소위 제3차공세의 진군나팔 소리는 승리의 행진곡이 아니었고 오히려 장송곡의 전주였다고 할 수 있다.한편 중동부전선의 해병 제1연대는 '북한강' 이북에서 철수하여 '홍천강'에 배수진을 치고 부대를 배치하여 경계태세를 취하였다.
당시 세계여론은 "만주폭격"에 대하여 왈가왈부로 꽃을 피웠으나 UN군측은 진지한 토의끝에 금후 공산군이 국제공산군을 동원하여 폭격을 시도하면 단호하게 만주를 폭격할 것이라고 언명하였고 4월 29일에 '벤프리트' 장군은 "首都 '서울'을 결단코 방어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하였다.
한편 舊波潑지구에서는 24시간을 계속하여 18,000여 발의 야포탄을 적에게 퍼부어 首都'서울'에서 5월 1일 노동절의 경축식을 거행하겠다고 하던 적의 호언장담을 산산히 분쇄하여 버렸다. 더욱이 UN군의 해공으로부터의 맹타로 적은 29일까지 70,000여 명의 막대한 사상자를 내었다. 이때부터 소위 제3차공세는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중동부전선의 해병 제1연대는 '홍천강'을 주저항선으로 하고 중공군의 차기공격에 대비하였다.
해병 제1연대가 '명통리'지구에 집결한 것은 4월29일 야간이었다. 이 지구에 본부를 설치하고 '홍천강'을 주저항선으로 하여 좌일선의 미 해병 제1연대, 우일선의 미 해병 제7연대와 서로 연계를 지으면서 전방일대에 대하여 수색과 정찰을 실시하였다. 적은 여전히 首都'서울'지구에 압력을 가하고 있었으나 사실상 중부에서는 그들의 공세도 완전히 돈좌되고 있었다. 적은 '북한강'을 도하, 남하한 후 '춘천' '화천' 및 '가평'일대에 병력을 집결하여 UN군에 대한 수색을 전개하여 왔다.
이에 대비하여 해병 제1연대는 제1대대를 예비대로 하고 제2대대 및 제3대대를 일선부대로 배치하였다. 29일 제1대대는 '제골리'에 경계배치를 완료하고 제3대대는 '고두메리'에, 제3대대는 886m고지를 중심으로 진지를 구축하고 연일 전방에 대하여 수색과 정찰을 실시하였다. 이때 적은 아직 해병 제1연대진지 정면에 침입치 못하고 있었으며 해병 제1연대는 주로 수색정찰로서 적의 동향을 탐지하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었다.5월 2일 예비대인 제1대대는 제2대대와 임무를 교대하고 三街里에 진출하였고 제2대대는 예비대로서 미 해병 제5연대제3대대에 임무를 인계하고 吾項里에 도착하였으며 제2중대는 389고지, 제6중대는 345고지까지 각각 진출하여 노영하였다.
5월 3일 적 약 2개대대가 春川동남방 原昌지구로 남하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 적을 진전에서 포촉, 섬멸하고저 적의 진출예상로인 전방일대를 수색하였으나 접적치 못하였다. 또한 입수된 정보에 의하면 적은 춘계공세에 실패하고 '철원', '평강' 및 '금화'지구에서 새로운 예비대의 증원을 받고 부대를 재정비하였다. 이때 '북한강'이남에는 소수의 병력으로 편성된 수색대만 잠복활동 중이었다.
5월 5일 해병 제1연대 수색대는 전일에 이어 전방을 수색한 결과 神屛山(652고지)'에 중공군이 집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5월 6일에는 大新山일대에 집결 중임을 탐지하였다. 이같이 부근일대의 적정을 입수하는 한편 5월 7일 연대정보대는 '춘천시'내에 돌입하여 중공군 1명을 생포하였다.
이날 야간에 적 약 1개 대대가 江村, 馬谷(말골)부근으로 昭陽江을 도강하였다는 정보에 접하고 5월 8일 각대대는 연대명령에 따라 수색을 실시하였으나 접적치 못하였다.
한편 陽口를 왕래하는 첩자의 보고에 의하면 '양구'에는 적정이 없고 적은 부근일대의 산악지대에 잠복하여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5월 1일 연대본부에서는 정보대를 '소양강'을 도하하여 德斗院里를 정찰하게 한 결과 부근의 387고지에 다수의 적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같이 해병 제1연대가 적극적인 공격작전에 앞서 정확한 적정탐지를 위한 소부대의 수색정찰전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적은 부대의 재정비를 완료하였고 그들의 활동도 점차 활발하여 피아 간에 접전이 시작되었다.
5월 16일 제2대대 제5중대가 313고지에서 적 1개 소대와 조우하여 교전끝에 23명을 사살하였고 5월 18일에는 제1대대 제1중대가 435고지에서 역시 적 1개 소대와 교전하여 2명의 적을 생포하였다.
5월 19일 '신수리'북방을 야간수색하던 제1대대 수색대는 적으로부터 약 20분 간 기관총과 소총사격을 받았으나 즉각 유탄포와 박격포로 응전하여 적을 침묵시켰다. 5월 20일 적은 2개 소대 병력으로 제1대대 전방 420고지에 내습하여 왔으나 곧 격퇴되었으며 제2대대는 '전제곡'과 460고지에 포병사격을 가하였다.
5월 21일 13:00시 적은 야음을 이용하여 제1대대 주저항선에 내습하여 왔으나 이때 제1대대는 내습하여 온 적을 진전 60yds까지 접근시킨 후 약 1시간 동안 소총과 박격포 등 각종화기로서 일제히 사격을 가하여 적에게 믹대한 손실을 주고 격퇴하였다.
이와 같이 소규모의 접전을 유지하던 중 5월 22일 해병 제1연대는 463고지 및 248고지를 공격,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리하여 제2대대는 265고지에서 수색전을 수행하고 있는 제5중대를 증강하기 위하여 05:00시 행동을 개시하여 08:00시에 제6중대와 합류하게 하고 제6중대와 제7중대를 공격부대로 하여 목표를 공격하였으나 접적없이 265고지를 점령하고 대대본부를 이동하였다.
한편 제1대대는 제1중대, 및 제3중재를 공격개시토록 하였다. 제1중대는 10:45시 중간목표를 무난히 점령하고 제3중대는 11:00시 적의 맹열한 저항에 부디쳤으나 적을 격퇴하고 중간목표를 점령, 계속 전진하여 '토치카'를 구축하여 고수하고 있는 목표 248고지의 적을 공격하였다. 제3중대는 악전고투끝에 11:45시 적의 '토치카'를 파괴하고 248고지를 점령하였다.
이로서 해병 재1연대는 248고지, 및 463고지까지 전진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였으며 명에 의하여 New Name선에서 미 육군 제7사단 제31연대와 임무를 교대하고 새로운 작전을 위하여 '홍천'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New Name선(248고지와 460고지부근)에서 임무를 교대한 해병 제1연대는 제1대대가 5월 23일 09:30시에 松亭里에, 제2대대는 17:00시 '홍천'서방 '화동리'에 도착하였고 제3대대도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신수리'를 거처 '송정리'에 도착함에 따라 이곳에 연대는 지휘소를 설치하엿다. 5월24일 18:00시 제1대대 및 제3대대는 행동을 개시하여 22:00시 '기와집마을'에 도착하였으며 연대본부도 뒤따라 이곳까지 이동, 전진하였다.
5월 25일 각대대는 부근 일대의 수색에 임하였으며 제3대대는 916고지로 진출하고 제2대대는 '화동리'를 출발하여 진지 전방 11km 지점인 '소세동'으로 이동하였다. 다음 날 916고지에 배치된 제3대대는 '소양강' 일대까지 수색하였으나 접적치 못하였으며 제2대대는 다시 709고지로 전진하여 부근 일대를 수색하였다. 제1대대는 계속하여 예비대로서 11:00시 '풍천리'에 이동하여 주저항선부대와 긴밀한 협조하에 도로를 연하는 일대를 수색하였고 27일에는 中里 일대에서 중공군 2명을 생포하였다.주저항선부대인 제2대대와 제3대대는 전일에 계속하여 '소양강'변과 부근일대를 수색하면서 적병 3명을 사살하고 22명을 생포하였다.
5월 28일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적은 이미 3일 전에 대거 '소양강'을 도하하여 북상도주하였다는 것이었다. 해병 제1연대는 이 정보를 확인하고 제2대대를 '소양강'을 도하하게 하였으며 제1대대는 672고지로 전진하게 하였다.
제2대대는 '소양강'을 도강하기 위하여 전진 중 적 부대와 조우하여 교전끝에 21명을 사살하였고 9명을 생포하였다. 제2대대는 계속 도보행군으로 전진하여 寺郞村에 도착하여 차량편으로 '춘천'을 경유하여 '소양강'을 도강하여 북안에 위치한 392고지에 대대본부를 설치하고 제7중대는 汝吾川里(여오내리)'에서 육군 제7연대와 연결을 지었다.
한편 제3대대는 勿老里로 진출하여 605고지에 부대를 배치하고 부근일대에 대한 수색을 계속하였다. 제1대대는 大同里로부터 '소양강을 도강한 후 水仁里에서 적 1개 대대와 조우하게 되어 교전끝에 8명의 적을 사살하였다. 제2중대는 대대본부 부근을 경계하면서 10명을 생포하고 2명을 사살하였다.
392고지에 포진한 제2대대는 千里垈까지 진출하여 부근 일대를 수색하였다. 특히 제5중대는 山幕洞부근에서 적 1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였다. 또한 제6중대는 '아항리' 부근에서 적 2명을 사살하고 10명을 사상하였으며 제7중대는 灰洞(회골)'에서 적 10명을 사살하였다.
제3대대는 여전히 605고지 일대를 수색하였으며 연대본부는 內坪里로 이동하였다. 5월 30일 제1대대는 09:00시를 기하여 鷄鳴山(계명산)을 공격하여 12:00시 이를 완전히 점령하였으며 제2대대의 제5중대 및 제6중대도 각각 '계명산'일대의 공격목표를 점령하였다.
한편 제3대대는 '내평리'에 도착하여 본부를 水仁里에 두고 제9중대, 제10중대, 및 제11중대는 각각 목표를 점령하고 경계배치하였다. 제1대대는 '계명산'을 공격, 점령한 후 5월 31일 대거 大同里로부터 도하하여 '주앙리'에 도착하였고 부근일대를 수색하여 적 7명을 생포하였다. 제2대대는 전일에 계속하여 '계명산' 일대를 수색하였으며 제3대대는 중간목표를 점령하고 雄津里로 이동하였다.
6월 1일 제2대대 제5중대는 雲水洞을 수색하고 제6중대 및 제7중대는 저수지 일대를 순찰하였다. 제3대대는 '웅진리'에서 부근일대를 계속 수색하면서 '웅진리'로 진출하였다.
이와 같이 '소양강'을 도하하고 저수지 일대까지 진출하여 수색전을 전개하면서 잔적을 소탕한 해병 제1연대는 6월 2일 명에 의하여 육군 제3연대와 임무를 교대하고 15:00시 竹里에 집결하여 하룻 밤을 숙영하고 6월 3일 10:00시 廣峙里로 이동하였다.
문재인 후보가 종북세력이다라는 말이 다시 불거지고 있습니다.
[논란이 일고 있는 문재인 후보 CF의 한장면]
[문재인 후보의 광고중 한대련이라는 단어가 뚜렷하게 보임]
한대련이 어떤 단체인지는 문재인 후보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참고로 한대련에 관한 기사를 하나 올립니다. 문재인 후보도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텐데요.
제가 보기에 문재인 후보는 이정희 후보와 말뿐인 위장 이혼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문재인 후보 CF에 등장한 한대련의 기습 시위]
[한대련의 전국 대학생회에 참석한 후보들]
기사에서 보이듯이 한대련은 종북 세력으로 규탄 받고 있는 이정희 후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말로는 이정희 후보를 멀리하는 듯 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위장 이혼을 하고 있다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한대련과 문재인 민주통합당과의 관계]
[한대련은 문재인 후보와 통진당의 연결고리]
결국 위 그림에서 보여지듯이 문재인 후보와 종북 세력인 통진당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결국 문재인 후보가 종북 세력이라 멀리 했던 통진당도
결국은 문재인 후보와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충분히 이정도로도 문재인 후보를 종북 세력으로 규정지을 수 있지만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를 보게 되면 더욱 가관입니다.
[문재인의 미래캠프]
[문재인 후보의 미래캠프 산하 남북경제연합위원들]
현재 문재인 후보의 미래캠프의 위원들로는 종북세력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미래캠프 위원중 정동영 위원과 이종석 위원의 발언입니다.
북한 김일성, 김정일 체제를 옹호하고 그들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역설 합니다.
이들에게 북한의 굶주리고 있는 동포들은 아무것도 아닌걸까요?
[문재인 캠프의 정동영 위원의 발언]
[문재인 캠프 이종석 위원의 발언]
과연 문재인 캠프는 북한의 김씨 세습 정권을 칭송하는 이들을 왜 포함하고 있는걸까요?
문재인 후보의 의도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종북세력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발언]
[문재인 후보: 종북세력은 배제돼야 마땅하다]
문재인 후보는 종북 세력은 사회와 정치권에서 당연히 배제돼야 한다고 발언 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뒤에서 당당하게 종북 세력과의 커넥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문재인 후보는 민정 수석시절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총련의 합법화의 필요성을 역설 한 적이 있습니다.
[문재인 민정수석의 한총련 합법화 발언]
국가에서 이적단체로 지정된 한총련을 문재인 후보는 왜 합법화 하려고 했을까요?
문재인 후보의 한총련 합법화 시도는 문재인 후보가 종북세력이라는 증거라고 생각 되어집니다.
솔직히 문재인 후보의 예전 발언들은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
한참 전의 일이니 대충 넘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이번 대선 캠프 구성원에 종북 세력으로 의심스러운 인사들을 앉혀놓았고,
또 문재인 후보의CF에는 보란듯이 한대련을 등장 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문재인 후보는 지금 현재 통진당 이정희 후보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문재인 후보와 한대련의 연관성, 그리고 이정희 후보와 한대련의 연관성을 생각 해 보면
문재인 후보와 이정희 후보는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여집니다.
문재인 후보가 종북 세력이 아니라고 보기에는
문재인 후보가 종북세력과 상당히 많이 얽혀있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먼저 문재인 후보의 TV 광고에
한대련이 등장하는 이유 부터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문재인 후보의 CF뿐만 아니라 문재인 후보 캠프 내 인사들
또 문재인 후보와 이정희 후보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는 과연 종북이 아닐까요?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문재인 후보는 어떤가요?
제가 보기에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았을 때
문재인 후보의 종북세력설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보입니다.
사랑의 휴일/박인희
* Holiday/Michel Polnareff 의 번안곡
사랑의 휴일이면 그대와 함께 떠나요
괴로움과 슬픔 잊어버리고
산과 바다로 떠나요
그대와 손을 잡고 푸른 언덕을 넘어서
바람을 따라가요 노래 부르며
아름다움을 찾아요
사랑의 휴일이면 그대와 함께 떠나요
괴로움과 슬픔 잊어버리고산과 바다로 떠나요
그대와 손을 잡고 푸른 언덕을 넘어서
바람을 따라가요 노래 부르며아름다움을 찾아요
사랑의 휴일이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쳐다봐요
이뤄지는 꿈 파란 꿈을 꾸어요
Holiday/Michel Polnareff
Holiday
Holidays, Oh holidays
C'est l'avion qui descend du ciel
Et sous l'ombre de son aile
Une ville passe
Que la terre est basse
Holidays...
휴일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행기 같은 것
거리는 그 날개의 그림자 밑을 헤메고 있지
땅은 얼마나 낮은가
Holidays, Oh holidays
Des eglises et des H.L.M.
Que fait-il le Dieu qu'ils aiment ?,
Qui vit dans l'espace,
Que la terre est basse
Holidays
휴일,
비행기의 그림자가 바다를 사로잡는다
바다는 사막의 징조와 같다
바다는 얼마나 낮은가
Holidays, Oh holidays
De l'avion l'ombre prend la mer
La mer comme une preface
Avant le desert
Que la mer est basse
Holidays
휴일,
당신의 나이로는 모를 거야
그만큼의 하늘과 그만큼의 구름을...
당신은 인생에 싫증을 내고 있지
Holidays, Oh holidays
Tant de ciel et tant de nuages
Tu ne sais pas a ton age
Toi que la vie lasse
Que la mort est basse
Holidays
죽음은 얼마나 가까운가
그것은 하늘에 사는 비행기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당신이여
Holidays, Oh holidays
C'est l'avion qui habite au ciel
Mais n'oublie pas, toi si belle
Les avions se cassent
Et la terre est basse
Holidays !..
휴일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행기 같은 것
거리는 그 날개의 그림자 밑을 헤메고 있지
땅은 얼마나 낮은가
Michel Polnareff
그는 프랑스의 유명한 음악가, 레오 폴라레프의 아들로
태어나 5세부터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았다고 하네요.
'Qui A Tue Grand' 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란
곡이 국내 드라마 겨울연가에 연주곡과..
피아노 삽입곡으로 나왔던 "tears in your eyes"
바로 이 곡을 편곡한 곡이기도 하며
5월 광주 민주 항쟁과 관련하여
"5월의 노래"로 번안되어
우리에게 익숙해진 노래이기도..
66년도에 데뷔한 그는 이곡 외에도'Love Me Please Love Me'란
애절한 사랑의 발라드 히트곡도 있답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의 대표곡은
비지스, 스콜피언스의 곡과 동명이곡인 Holiday 입니다.
Sylvie Vartan-Holidays
* Holiday/Michel Polnareff 의 리바이블 곡
Holiday/Bee Gees
Oh, you're a holiday, such a holiday
오, 당신은 휴일과 같은 사람이예요 즉 휴일처럼 편안한 사람
Oh, You're a holiday, such a holiday
오, 당신은 휴일과 같은 사람이예요 즉 휴일처럼 편안한 사람
It's something I think so worth while
당신은 내가 생각하기에 가치 있는 대단한 사람이지요
If the puppet makes you smile
인형극이 당신을 미소짓게 하거나
If not then you're throwing stones
어떤때는 비난을 한다고 할지라도
throwing stones throwing stones
비난을 한다 해도. 비난을...
Oh, it's a funny game
오, 사랑은 정말 우스운 게임이예요
don't believe that it's all the same
사랑이 항상 그대로일거라고 믿지는 마세요
Can't think what I've just said
방금 한 말도 난 생각이 안나는 경우도 있는데
put the soft pillow on my head
내 머리에 부드러운 베개를 대어보세요
It's millions of eyes can see
많은 사람들이 보고있어요
yet why am I so blind
왜 내가 아직도 사랑에 눈이 멀었는지
When the someone else is me
그 누군가가 내 입장이된다면,
It's unkind it's unkind
그건 불공평한 일이지요. 불공평하죠
Oh, you're a holiday ,
오, 당신은 휴일같은 사람이예요
everyday such a holiday
언제나 휴일같이 편안한 사람
Now it's my turn to say
이젠 내가 말할 차례군요
and I say you're a holiday
그렇다면 난 당신이 휴일같이 편안한 사람이라고 말하겠어요
Holiday/Scorpions
Let me take you far away you'd like a holiday
당신을 멀리 떠나도록 하겠어요 당신은 휴일을 좋아하지요
Let me take you far away you'd like a holiday
당신을 멀리 떠나도록 하겠어요 당신은 휴일을 좋아하지요
It change the cold days par the sun
휴일은 우울한 날을 태양같이 밝게 해 주지요
A good time and far
멀리가서 좋은 시간을 가져봐요
Let me take you far away you'd like a holiday(repeat)
당신을 멀리 떠나도록 하겠어요 당신은 휴일을 좋아하지요(반복)
It change your troubled for some love
휴일은 당신의 근심을 새로운 사랑으로 바꾸지요
wherever you were
당신이 어디에 가든지
Let me take you far away you'd like a holiday
당신을 멀리 떠나도록 하겠어요 당신은 휴일을 좋아하지요
Ooh--------Ooh------ Aah----Ah-------- Ah---
오-------오-------아---- 아---- 아----
Longing for the sun you will come to the island way down me
태양을 그리며 당신은 나의 섬으로 돌아올 거예요
Longing for the sun
태양을 그리며
Be will come on the island many miles away from home
가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섬으로 돌아올거예요
Be will come on the island way down me
당신은 나의 섬으로 돌아올 거예요
Longing for the sun
태양을 그리며
Be will come on the island many miles away
멀리 떨어진 섬으로 돌아올거예요
From home away from home away from home
가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멀리 떨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