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행 코 스 ]
일락사 주차장 ~ 일락사 안부 ~ 석문봉(△654m) ~ 하산로 삼거리 ~ 릿지 ~ 남연군묘 갈림길 안부 ~ 시설물 ~우측 담장 통과 ~ 가야산(△677.6m) ~ 가야산 시설물 앞 ~ 안부/좌측 소로 ~ 630m봉 ~ 능선 분기봉 ~전망대 바위 ~ 한서대 갈림~△410.9m봉 ~ 공터 ~ 한치고개 ~ 뒷산(△447.6m) ~ 경주이씨묘 ~뱀그물 ~ 나본들 고개 ~ 바위지대 ~ 십자 안부 ~ 덕숭산(492ㅡ) ~ 수덕사 삼거리 ~ 무덤2기 ~ 수덕고개
[산 행 상 세 안 내]
1. 주차장에서 시멘트 포장길 따라 30여분 오르면 일락사 안부다.(정맥 시작점)
2.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서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서 가다 전망좋은 쉼터가 나온다.
3. 잘 정리된 등산로 따라 고도를 높이다 삼거리 안부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며 이정표를
만나면 역시 왼쪽으로 오른다.
4. 이정표와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 독도주의 ~ 왼쪽으로 좋은길은 옥양봉 가는 길이다.
5. 갈림길에서 잠시후 바윗길을 지나면 태극기가 있는 석문봉(△654m)이다
6. 석문봉에서 내려서는 바윗길엔 위험로 금속 안내판이 있고 바위벽을 타고내려서면
벤치가 놓여 있다.
7. 왼쪽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고 정맥길은 층층이 쌓인 바위를 통과하고 오른다.
8. 삼거리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오르고 570m 암봉을 올라 전망대 바위에 서고 왼쪽으로
우회하며 만나는 암벽 구간에는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9. 내려서면 또다시 벤치가 설치되어 있고 아기자기하게 길이 이어진다.
10. 남연군 묘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있고 벤치가 있다.
11. 아산 소방서 8호 산악사고 위치표지나 삼거리 갈림길 통과 바위길로 오른다.
12. 바위 지대를 오르면 송신소 철조망이 가로막고 가야산 정상은 시설물이 있어 왼쪽으로
우회 한다.
13. 철조망 밑으로 잡목사이의 희미한 족적을 따라가면 송신소 정문이 나오고포장도로 따라
조금가다 밧줄을 잡고 가파른 사면을 오른다.
14. 허리길을 지나 오른 봉우리가 630m봉인 패러 글라이딩 이륙장이다
왼쪽으로 험한 바위지대를 내려선다.
15. 산불지역에 키 작은 상수리 나무들을 심어 놓았다.
16. 약 400m봉을 오르고 바위지대 능선을 내려선다.
17. 삼각점이 있는 410.9m봉에서 넓은 잔디밭에 묘 1기를 통과하고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뚝 떨어진다.
18. 채석장으로 망가진 봉우리를 우회하면 천주교 순교자들이 14처를 재연한 한치고개로
내려선다.
19. 뒷산(△447.6m)에 올랐다 조금 내려가면 전망대 바위가 있고 남쪽으로 보이는 봉이
449.1m봉이고 덕숭산과 나본들 고개가 훤히 보인다.
20. 되 내려와 삼거리 갈림길에서 소나무 숲 사이로 가파르게 내려서면 길은 완만해지고 대나무
숲이 보기 좋은 마을에서 밭 사이로 내려가면 나본들 고개다.
21. 콘크리트 포장된 마을길로 가다 산판길인듯 한 곳을 따르다 버리고 묘지들을 지나 잡목숲을
오르면 일반 등산로와 만나면서 길이 좋아진다.
22. 넓직한 등산로를 버리고 왼쪽 능선으로 붙으면 길이 희미하고 잡목이 많다.
23. 넓은 전망대 바위에 올라서면 가야산에서 뒷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뚜렷하고 봉우리를
오르면 일반 등산로와 다시 만나는데 등산객들이 많다.
24. 덕숭산(△495.2m)에 오르면 조망이 좋은데 산불초소를 뒤로 남동쪽으로 넓은 등산로 따라
내려서면 거대한 물고기 모양을한 검은 바위가 있다.
25. 수덕사 왼쪽으로 수덕 고개로 나란히 뻗어 내려가고 있는 두줄기 능선 중 왼쪽능선으로 간다.
26. 바위길을 내려서면 한차례 뚝 떨어지다 다시 완만해지고 트래버스 구간을 지나고 만나는
공터에 묘 2기가 있다.
27. 갈라진 넓은 바위에 내려서고 다시 넓은 마당바위에 내려서 내려가면 상가와 민박집이 있는
육괴정(수덕고개)이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7그루나 되는데 육괴정이란 여섯(육) 느티나무(괴)
정자(정) 그래서 육괴정 이라 한단다.
[ 산 행 기 ]
(1) 일락산 우측 십자로안부/고개
고개마루 이정표가 있는 곳[일락사 1.7km, 일락산 0.8km, 석문봉 0.9km, 용현계곡 3.2km]에서 우측 나무계단을 지나 능선으로 진행한다. 휴식 및 식사를 할 수 있는 쉼터가 나온다. 콘크리트 테이블 2개와 콘크리트 구축물이 있고 등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나중에 멋진 그늘을 만들 것 같다. 이어 오솔길이 시작되더니 양호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우측으로 일락사 주차장과 큰 기와집인 해우소가 보인다. 좌측으로 옥양산의 연릉이 따라오고 있다. 완만한 소나무숲에 이어 신갈나무숲의 오르막이다. 이어 능선에 오르니 가팔라지고 잡목이 많다. 한참 후 3갈래길에서 왼쪽으로 오른다. 빛바랜 마포산악회와 3개의 표지기가 있다. 다시 오르막을 진행하다가 멋있는 소나무가 2그루 있는 공터에 닿는다. 잠시 평탄한 길이 이어지더니 또 오르막이다. 우측에 해미읍성이 보인다.
곧 3갈래길이 나오는데 이정표가 있다. "일락사 2.4km, 대곡리 임도 1.2km, 석문봉 0.3km." 우측으로 가면 대곡리 임도라고 되어 있는데 일락사 /절골 주차장으로 이어질 것이리라. 이 3갈래길에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여기가 1번째 암봉인데 거기에 올라서면 전망이 트이면서 석문봉이 가까이 올려다 보인다. 이제 큰 나무는 별로 없다. 가야봉 정상에 송신탑 등이 보이고 이어서 또 이정표[옥양봉 1.5km, 가야봉 1.4km]가 있다. 그 옆에 조잡하게 쌓은 돌무더기 우측으로 해서 암릉으로 오르니 석문봉 정상이다.
(2) 석문봉
"가야산 석문봉,653m. 예산산악회"란 검은 정상표지석이 우뚝하게 서 있다. 그 뒷면에는 內浦의 정기가 이곳에서 발원했다고 적고 있다. 본래 2개의 커다란 바위가 문설주처럼 놓여 있어 석문봉이라 했다고 한다. 석문봉이 주산, 옥양봉이 쳥룡세, 가야산과 원효봉이 백호로 뭉쳐 감싼 곳, 예당평야 지나 멀리 보이는 봉수산이 안산이 되고, 청룡맥의 옥녀폭포 물과 백호맥의 가야산 계곡의 물이 와룡담에 노였다가 묘 앞에서 굽이치며 배산임수의 지세를 형성한 자리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자리라더니 자세히 보면 상가리 저수지 조금 밑에 조그만 능선 끝에 망주석이 보이리라. 물론 덕산면 상가리의 집들이 평화롭게 보인다. 석문봉 정상은 암봉이나 별로 위험하지는 않다. 전망바위에 오르니 전망이 일품이다. 북으로 일락산과 정맥 연릉이 길게 보이고, 그 좌측 계곡 건너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군 운산면의 경계인 능선에 옥양봉[621.4m], 남쪽으로 부대시설이 있는 가야봉과 그 뒤로 뒷산이, 서쪽으로 해미읍과 황락저수지와 산수저수지, 동으로 옥계리와 옥계저수지/상가리와 상가리저수지가 보인다.
하산길이 좌우로 나 있는데. 어느 쪽으로 내려가도 만난다. 좌측으로 엉성한 나무계단을 올라가 암봉에 서면 "위험하니 통행금지"라고 쓴 스텐레스 경고판[1996.5.예산군수]이 있으나 별로 위험하지 않다. 전망만 좋을 뿐이다. 정면에 가야봉 통신탑이 보인다. 여기서 암릉으로 진행하니 독특한 모양의 소나무 4그루와 긴 나무벤취가 2개 있는 곳이 나온다. 좌측으로 옥양봉과 상가리저수지와 옥계저수지가 보인다. 바위틈을 지나 직진길 내리막으로 진행하면 안부에 남원군묘 하산로[남원군은 남연군의 오기인 것임], 가야산 0.7km,석문봉 0.4km 란 이정표가 나온다. 직진하여 작은 암릉을 넘어 좌측에 멋드러지게 풍화된 바위를 지나고 그 앞에 생강나무가 있다. 이어 아산소방서 9호 산악사고 위치 말뚝을 지나고 되돌아보니 석문봉의 바위지대가 보기 좋다.
양호한 능선길이다. 진달래, 참나무 등 키가 작은 잡목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오르막이 된다.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진행하니 스릴만점의 암릉으로 진행하다 내려서니 긴 나무의자가 3개가 있다. 표지기가 많이 달린 소나무쪽으로 내려가서 조금 진행하니 이정표[남연군묘 0.7km, 가야봉 0.7km, 석문봉 0.5km]와 나무의자 4개가 있다. 우측에 산수저수지가 보인다. 평소에 궁금했었으며 마침 거리도 가까우니 이 기회에 꼭 보리라고 결심하고 좌측으로 남연군 묘 방향으로 진행, 내려갔다. 울창한 숲속 돌계단을 한참 내려가면 나무벤취 몇개가 보이고 이내 전망이 트이는 넓은 길로 나온다. 농경지가 나오고 시멘트포장길 3거리가 나온다. 우측 아래로 개를 사육하는 농가와 또 1채의 농가가 있다. 3거리에는 이정표가 있다[주차장 0.9km, 헬기장 2km,가야봉 1.9km,석문봉 1.8km].
여기서 좌측으로 진행하여 오르막에 서면 좌측 산 입구에 육관대사 손석우씨의 묘가 있다. 한때 그렇게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람인데 죽어서는 오직 조그만 땅에 말없이 누워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도 무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측 농가에 자주 들렀다는 말을 듣고는 과연 그가 묻혀 있는 땅은 과연 명당일 것인가? 그러한 선입견을 가지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묘를 둥글게 크게 썼는데 묘석이나 비석 등 아무 것도 없다. 오로지 잘 살은 잔디가 있을 뿐이고, 묘 축은 너무 많은 사람이 다녀가서인지 신작로와 같이 빤질빤질 길이 나 있다. 이어 돌담으로 둘러쳐진 폐가를 지나고 상가리 저수지에 당도하니 해가 저문다. 오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그대로 걸어서 상가리 마을을 지나 옥계저수지를 지나 덕산면 소재지에서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을 위해서... 적어도 꽃조개 까지는 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지면서..
(석문봉에서 본 가야산)
(아기자기한 릿지구간 1.)
(아기자기한 릿지구간 2.)
(석문봉의 일반등산객들)
(석문봉 표지석)
(석문봉 돌탑)
(3) 상가리의 명소들
2001.5.13. 아침 6시에 기상했다. 조금 늦은 것을 직감하고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배낭을 메고 나섰다. 맑은 아침 공기가 신선해서 좋았다. 그러면 오늘은 어제 내려온 가야산 직전 안부 이정표있는 곳으로 올라가면서 상가리의 유적들을 모두 보기로 했다. 어차피 산행이 차질이 생기면 다음으로 미루면 그만 아니겠는가! 옥계저수지를 지나 장송이 서 있는 지역을 지나면 우측으로 보덕사 안내판이 있다. 시멘트포장도로로 한참 오르니 우거진 숲속에 대한불교 조계종 보덕사가 나온다.
보덕사는 비구니도량이다. 마침 아침 공부중이어서 무척 조용했으나 사나운 개 두 마리가 낯선 여행객을 보고 고래고래 짖는 바람에 비구니 수도승이 개를 저지하기 위하여 나와서 자초지종을 묻는다. 대충 설명하여 주니 자꾸 말꼬리를 물고 늘어져서 여러 종교문제,철학 등등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시간에 쫒기어 이제 끝냈으면 했으련만, 이 비구니는 계속이다. 조금 후에 다른 수도승이 나와서 무슨 말을 하니 그때서야 일을 거들기 위하여 부엌으로 사라진다. 이윽고 또 나타나서 산행때 요기하라면서 빵과 과일을 준다. 물도 좋으니 많이 담아가라고 한다. 물이 정말 좋아서 이미 들어있던 생수를 버리고 이 물로 2통을 가득 채웠다. 그 따사한 마음을 받아들이고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보덕사는 대원군이 지은 절이다. 원래 흥선대원군[1820-1898]이 부친인 남연군 이구[?-1822]의 묘자리에는 가야사란 절이 있었는데, 이곳이 二代天子之地[2대의 왕이 나오는 곳]의 명당이라는 풍수설을 믿고 이 절을 불태우고 금탑을 깨부수고 경기도 연천군 남송정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옮겼다. 나중에 아들인 고종이 즉위하자 부처님께 고마움을 표시하는 뜻으로 [가야사와 금탑을 폐한 것이 마음에 걸려 그랬다는 설도 있다] 한양에서 목수를 보내어 절을 새로 짓고 보덕사라 했다고 한다. 그리 크지는 않다.
보덕사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이 있다. 충남 유형문화재 제 145호이고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소재다. 정면 3칸, 측면 2칸이고 내부에 불단을 만들고 아미타 본존불을 모셔 두었는데 고종 4[1865]년에 제작된 후불탱화가 있다. 전형적인 이익공 집인데 익공 뿌리의 모양이 사찰 보다는 궁궐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으로 깎여 있어 나라에서 기술자를 보내어 건물을 지어 주었다는 유래와 일치한다고 한다. 그 앞에는 모란이 피어 화려함을 맘껏 뽐내고 있다. 절이 매우 조용한 편이다. 주위엔 아름다리 나무가 많으며 모양좋은 소나무와 회화나무등도 보인다. 우측 연못엔 수련이 한가로이 떠 있다.
우물 앞에는 석등이 있는데 문화재자료 제 183호다. 본래 가야사 터에서 옮겨 놓은 것이다. 탑 앞에 서 있던 것인데, 지금은 간석이나 앙련, 복련 등 하부 구조물이 없어지고, 火舍石 몸체만 남아 있다. 8각형의 몸체에 십자로 뚫린 화창을 제외한 나머지 4면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 둔탁한 지붕이 얹혀 있는데 조각이 단순하고 처마가 화사석 8각 측면의 밖으로 나와 있지 않아 지붕의 기능을 잃었다. 화창에는 8개의 작은 구멍이 주변에 나있어 문을 고정했던 자기같다. 절 우측에는 비구니로서 득도한 법희선사 사리탑이 있다. 비구니로서는 참 희귀한 케이스라 한다.
다시 도로로 내려와 상가리 마을회관이 있는 곳에 오면 고려말 공신 문희공 류사암 신도비와 묘소 안내판이 있다. 우측 마을을 지나 오르면 신도비가 나오고 거기서 약 200m 더 가면 묘소가 있다. 고려말 공민왕 때 공신으로 글을 쓴 이가 우리가 잘 아는 목은 이색이다. 한자로 되어 있어 시간관계상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어 퍽이나 유감스럽다. 그래서 해석을 유보하고 상가리 마을회관으로 돌아와서 삼갈래길에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또 3갈래길이 나오는데 좌측이 남연군묘 및 가야봉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은 관음전과 옥양봉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 3거리에 유명 조선국 현록대부 남연군 충정공 신도비가 서 있다. 여기서 가야봉까지 3.5km나 된다. 원위치로 되돌아오는데 땀깨나 흘렀고, 도립공원의 이정표의 거리 표시가 그렇게 엉터리인 데에 화가 치밀었다. 어제 내려올 때 가야산 직전에서 남연군묘까지가 0.7km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약 3,250m나 되니 그 차이가 엄청난 게 아닌가! 도데체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사람들의 행태가 자못 한심할 뿐이다! 남연군 신도비에서 조금 더 오르면 시골 정취가 흠뻑 나는 보리밭에 이어 주차장이 나오고 그 위로 능선 끝자락에 남연군 묘가 위치한다.
남연군 묘는 조금 신경써서 잘 관리한 흔적이 보인다. 남연군 묘는 기념물 제80호로 흥선대원군의 父 남연군 이구의 묘이다. 대원군 이하응은 풍수지리설을 믿고 정만인이라는 地師에게 명당을 찾도록 부탁하자 그는 이 자리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라고 지목하였다. 이곳에는 원래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고 무덤 자리에는 탑이 서 있었는데 1846 대원군은 불을 불태우고 탑을 부순 후 경기 연천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였다는 것이다. 참 집요한 열정이다. 오직 안동김씨에게 당하여서 그러했을까! 이장후 7년 후에 차남 명복을 낳았는데 이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그후 통상을 요구하다가 실패한 Oppert가 1868 미국인 Jenkins를 자본주로, 프랑스인 Feron을 통역관으로 삼아 약 100人의 중국 청년을 러시아 병사로 위장하고 통상개방을 구실로 무덤을 훼손하였으나 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고 한다[대원군이 이장하면서 석회를 많이 뿌려 흙이 돌처럼 단단해서였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대원군은 양이배척을 강화하고 더욱 천주교를 탄압하게 되었고, 이 사건은 국내외에서 커다란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묘 앞에 있는 비석에는 "유명 조선국 현록대부 남연군 겸 5위 도총부 도총관 시호 營僖公[영희공] 완산이씨 이 구지묘, 군부인 여흥민씨 附左"라 적혀 있는데 이것이 대원군의 친필이라고 한다. 묘가 큰 편이다. 앞에는 양석상 2개와 석등,망주석이 있고 절의 주춧돌로 쓰였음직한 암반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우측 망주석에는 도롱이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좌측 것에는 도롱이가 올라가는 것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는 혼령이 제사를 얻어먹기 위하여 우측 망주석으로 와서 얻어먹은 다음 좌측 망주석으로 해서 하늘로 오른다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남연군 묘는 문외한인 내가 봐도 명당인 것같다. 그 자리가 주위 지형상으로 마치 여인의 국부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또 우측 계곡엔 돌아선 미륵이 서 있는데, 대원군이 가야사를 불사르고 금탑을 깨부순 데 대해 괘씸하다며 항의조로 돌아서버렸다는 설과 풍수지리설상으로 기운을 조화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어느 것이든간에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돌아선 미륵으로 길을 따라갔다. 바로 상가리 미륵불로서 문화재 자료 제182호이다. 일반적으로 미륵불로 불리나 학명으론 관세음보살이다. 전체적으로 돌기둥형태의 입상이었는데, 머리에는 초화문장식의 보관을 쓰고, 중앙에는 化佛이 조각되고 양옆의 머리띠 매듭은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얼굴은 길쭉하나 양볼이 두툼한 편이고 눈은 지그시 감았고, 오똑한 코끝은 훼손되어 있었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선각되었고, 좌측 어깨에서 우측으로 자연스레 흘러내렸다. 양팔은 몸에 붙인 채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 엄지와 중지를 잡고 손바닥은 밖으로 보인다. 왼손은 손바닥을 배에 붙이고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특히 충청지방에 널리 분포된 것이다. 다시 남연군묘로 돌아와 어제 내려왔던 길로 오르면 상가리저수지에 이어 돌담있는 폐가 지나 육관대사묘에 이어 마지막 농가 2채를 지나 가파르게 오른다.
이윽고 어제 내려왔던 3갈래길로 올라오게 된다. 여기서 조금 오르막으로 진행하면 아산소방서 8호 산악사고 위치 말뚝이 나오고 이어 3갈래길 이정표[석문봉 1km,하산로 1.2km]에서 우로 가다가 3거리에서 좌측으로 가파르게 오른다. 이내 송신탑이 있는 철조망 아래에 닿고 길이 매우 험하다. 철조망이 삭막하고 정상 직전에서 정상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좌측으로 상가리 마을과 상가리저수지가, 우측으로 한서대학교와 산수저수지가 보인다. 여기서 좌측 아래 산허리길로 진행, 너덜지대 지나 능선이 나오면 4갈래길에서 우측 산정상쪽으로 희미한 길흔적을 따라 올라가면 붉은색 송전탑이 있는 철조망이 보이고 이를 지나 계속 산허리로 가다가 오른다.
이어 아스팔트 포장도로와 철조망이 나온다. 부대 정문앞이다. 사나운 군견 2마리가 지키고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애써 못본 체하고 지나가니 조금 짖더니 잠잠해진다. 바로 우측 철조망을 따라 가파르게 능선으로 올라야 한다. 잡목과 철조망이 뒤엉켜 있어 나도 급기야 비싼 등산복 왼쪽 바지자락이 북하고 찢어지는 화를 입게 되었다. 산허리를 한참 돌아가니 송신탑/철조망 끝지점으로 올라서게 된다. 아뿔싸! 여기서 보니 아까 정상 직전에서 좌측으로 진행하여 고생하지 말고 우측으로 바로 진행해도 될 뻔한 게 아닌가! 등산복까지 찢기어 가면서 고생만 한 걸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좌측으로 덕숭산이 보인다. 여기를 가야봉이라고 보아야지..
(4) 가야봉
해발 677.6m. 정상엔 삼각점이 있을 것이나 부대가 있어 오르지 못하여 안타깝다. 남동쪽으로 삼준산[489.9m]이 보인다. 내포지방[아산, 당진, 면천, 홍주, 덕산, 해미, 결성, 보령, 서산, 태안 등 10개 마을의 총칭임]에서 가장 중심되는 덕산에 우뚝 솟은 호서지방 최고의 명산 가야봉. 가야산과 더불어 덕숭산, 용봉산, 수암산 일대의 자연 경관과 온천, 사찰, 사적지 등을 포함하여 1973.3.6.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신라 때 가야산사를 짓고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시대에도 덕산현감이 봄과 가을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주봉이 가야봉이다. 전체적으로 가야산은 명당자리답게 아늑하며 포근하게 느껴진다. 가야산 주변엔 참 문화유적이 많았다.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시멘트 참호를 지나 좌측의 큰 바위군들을 지나 오르면 스릴있는 암릉이다. 봉우리를 지나 내려서다가 오르면 3갈래길에서 직진한다. 잠시 올라선 봉우리에서 우측 건너로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참나무숲을 내려섰다 오르면 640m봉이다.
(전위봉에서 본 가야산)
(가야산 오름길)
(가야산 시설물과 쪽문)
(중게소표지석)
(5) 640m봉
삼각점은 보이지 않는다. 6색으로 된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으로 나무가 없는 억새풀밭이고 잔돌이 많다. 이륙하기 좋도록 넓은 검은색 등 특수천이 깔려 있다. "가야산 패러글라이딩 이륙장, 해발 670m, 홍성불사조클럽" 표지판이 있으나 해발 표시는 잘못된 것 같다. 북쪽으로는 가야산과 석문봉의 연릉이 보기 좋다. 남쪽으로 410.9m봉과 이를 지나 삐죽한 뒷산이 보인다. 좌측[남]으로 내리막으로 진행, 잡목숲길로 봉우리 하나를 넘고 한동안 평탄한 능선길로 가다가 3거리에서 우측{남서쪽]으로 진행, 신갈나무숲으로 내려간다. 좌측으로 덕숭산, 우측으로 가야산이 보인다. 정면으로 한서대학교와 산수저수지가 보인다. 일대에 산불 흔적이 있다. 분통이 터진다. 화기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소지하지 않으면 산불이란 애시당초 신경쓸 일이 없을텐데... 그까짓 라면 끓여 먹는다고 꼭 화기를 가지고 다니는 몰지각한 등산가가 많아서 이꼴이다. 아직도 흉물스런 타다남은 소나무 등걸이 삐죽이 솟아들 있고, 나무들도 키작은 떡갈나무 등 잡목 뿐이다. 온 사면이 다 그럴진대 적은 산불이 아니었나 보다.
산불지역의 싸리와 어린 떡깔나무의 방해를 뿌리치면서 좌측으로 내려가니 능선이 나오고 능선위로 진행하다가 다시 좌측[남쪽]으로 틀면 내리막이 이어지고 안부에서 오르면 470m봉이다.
(6) 470m봉
우측에 한서대 전경이 보인다. 산수저수지와 해미읍까지 조망된다. 바다도 보인다. 좌측으로 떡깔나무 어린 것들이 많은 곳으로 내려가서 봉우리를 지난 안부에서 평탄할 길로 진행한다. 우측방향이 된다. 다시 봉우리를 넘고 내리막으로 들어서니 주황색 표지기가 눈에 띈다. "그대와 가고 싶은 산. 정맥을 따라가면서. 그리움 보고싶은 맘. 준*희"라고 되어 있다. 걸터앉기 좋은 소나무 가지에서 잠시 땀을 식힌다. 배낭에 송홧가루인지 꽃가루가 잔뜩 묻어 노랗다. 큰 소나무를 지나 내려와서 평탄지역을 지나고 봉우리를 넘고 내려가서 안부가 나오면 좌측으로 오른다. 어린 멧메뚜기떼가 엄청 많다. 먹을 게 없어서인지 떡깔나무잎을 다 갉아먹어 잎이 앙상하다. 이어 봉우리를 2개 지나 내려갔다가 봉우리를 지나 오르막으로 가다가 좌측으로 꺾어 오르면 410.9m봉이다.
(7) 410.9m봉
망가진 삼각점과 쓰러진 나무깃대가 있다. 우스운 것은 5만분의 1지도에는 412m로 표시되어 있다. 우리 국립지리원은 뭐하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지도값이나 자꾸 올리니 국민은 어쩔 수 없이 당할 뿐이다. 좌측에 대치리 마을과 그 너머로 덕숭산 전모, 우측에 한서대학교와 산수저수지가 보인다. 뒤로 가야봉 및 원효봉, 정면에 뒷산이 보인다. 떡깔나무잎을 메뚜기들이 갉아먹어 곰보자국같다. 우측 아래로 대일석재가 운영하는 채석장에서 두두하는 기계음이 귀에 거슬린다. 좌측으로 약간 내려서니 나뭇잎등에 온통 돌가루가 하얗게 앉았다. 이 얼마나 큰 피해인가? 그야말로 통로엔 먼지투성이로 코가 콱콱 막히는 것 같다.
우측으로 벌목된 나무들이 쌓여 있는 오르막으로 오르면 너른 잔디밭이 있는 무덤1기가 나온다. 앞에는 뒷산이 보이고 좌측엔 수암산, 우측엔 아래쪽에 채석장이 있다. 잘 관리되어 쉬어가기 좋지만 채석장에서 나는 소음과 먼지 때문에 오로지 빨리 통과하고픈 마음 뿐이었다. 묘를 지나 얼른 능선길로 가다가 내리막이 나오고 3갈래길서 좌측으로 가면 우측 암릉이 몽땅 잘려나간 흉칙한 모습이 나타난다. 탄식만 하고 능선 좌측 끝으로 난 잡목숲길로 내려간다. 온통 돌가루가 나무와 통로에 하얗게 덮여 있어 움직일 때마다 먼지가 엄청 난다. 그러나 채석을 계속할 경우 정맥길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니 속이 뒤집어진다. 한심한 사람들이라니! 자기 것도 지키고 보전할 줄 모르는 국민성이 그저 싫어질 뿐이다. 파헤치고 훼손은 잘 하나 복구는 눈가림식을나 하고 또는 전혀 하지 않는 철저한 이기주의적 동물들이 있으니 말이다. 이를 감독할 관리들도 그저 한심할 뿐이다. 이어 십자로 안부에 내려서니 한치고개다.
(8) 한치고개
초록색의 간이화장실이 나오고 넓은 공터가 나온다. "순교자 압송길"과 십자가의 길이란 안내문이 있다. "순교자 압송로"란 방향표지목이 있다. 숙연해진다. 내가 맨처음에 갔던 해미읍성, 서문밖 순교성지, 여숫골 생매장순교지와 여기 한티고개를 묶으면 해미 천주교 순교성지로 볼 수 있어 답사코스로는 아주 제격일 것 같다. 누군가가 시도하리라 본다. 안내문의 내용은 "이곳 한티고개는 1790-1880 내포지방에서 주님을 배교하기보다는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 3천여 무명순교자들이 매질 및 압박 속에서도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넘던 고개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분들의 순교정신을 기억하고 한티고개의 성지화를 기원하면서 이 십자가의 길을 만들고 세웠습니다. 1999.10.24.천주교 대전교구 서산석림, 교회장년회 일동" 이라고 되어 있다. 또 흰색 돌제탁과 긴 돌의자, 볼품없는 나무십자가와 우물터같은 깊은 웅덩이(물은 없다)가 있다. 우측으로 넓은 길이 나오고 거기에는 "해미성지"란 팻말과 십자가의 길을 조성하여 1처부터 14처까지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좌측에는 찔레나무가 뒤덮여 있고 분지에 집터같은 공터가 있는데 소나무도 2그루가 서 있다. 뒤돌아보니 410.9m봉이 암봉이라서 거의 다 훼손된 게 아주 잘 보인다.
여기서 우측 웅덩이 우측옆으로 해서 가파르게 오른다. 천안산꾼들의 표지기가 보인다. 떡깔나무가 많다. 능선마루에 올라 3갈래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부산 건건산악회 표지기가 보인다. 희미한 길 흔적을 따라 올라가 앞봉우리에 올라서면 그제야 뒷산이 보인다. 이어 평탄한 소나무숲 능선을 지나 봉우리 하나 넘어 잔솔지대를 지나 약간 가파른 오르막을 진행한다. 덩쿨식물 군락지로 조금 힘이 든다. 계속 오르다가 3거리서 우측의 양호한 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진행한다. 좌측 아래 한치골이 평화로와 보인다. 이내 전망이 트이면서 뒷산으로 오른다. 천안산꾼들 표지기가 있다. 남쪽 건너로 보이는 암봉이 449.1m봉이다.
(한치고개 내리막에서 보이는 채석장)
(한치고개)
(9) 뒷산
해발 447.6m. 그런데 하필 그 많은 이름 중에서 뒷산이냐? 우습다. 바위에 오르니 동쪽으로 수덕산으로 나아갈 지능선이 가늠된다. 저 아래 나본들 마을의 빨간 지붕집과 고개마루를 겨낭하고 나아가야 한다. 여기는 독도주의지역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좌측 소나무숲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홍성산꾼들/건건산악회 표지기가 있다. 소나무 낙엽이 많이 쌓였으나 몹시 미끄럽다. 넘어지기 쉽다. 약간 우측으로 휘어 내려가다가 장송이 늘어선 숲길로 나온다. 다시 우측 내리막으로 장송숲을 내려가다가 잘 손질된 묘 3기와 비석이 나온다. 경주이씨들이고 나와 항렬도 같다. 여기에 같은 성이 산다니 반갑다. 묘 우측으로 소나무숲을 내려서니 예쁜 돌 담장에 파란색 지붕을 가진 집이 2 채 나온다.
집 뒤의 좌측 잣나무숲으로 내려가니 소나무숲이 끝나고 TV안테나가 있다. 좌측에 비석있는 묘를 지나니 황토밭이다. 우측에 대나무 군락지, 좌측에 묘 1기와 낙엽송 몇 그루가 보인다. 이어 은행나무 1그루와 자르다가 만 밤나무를 보면서 밭둑으로 진행한다. 좌측엔 참나무 숲이다. 대숲을 지나고 빨간 함석 지붕집 좌측 묵밭을 지나 조경공사중인 지역을 지나 내려서니 해미 - 덕산을 잇는 45번 국도가 지나는 나본들고개이다. 도로 좌측에 고려한식부페식당(337-3036)과 서해안파크모텔과 남은들마을의 민가가 보이나 폐가가 많은 듯하다. 대나무 숲이 많다.
우측 3거리아래 수덕사 가는 깅에 있는 전각에는 남은들상여가 있다.중요민속자료 제 31호.구한말 흥선대원군이 부친인 남연군 묘를 2대천자지지의 명당이라는 현 남연군묘 자리에 이장하기 위하여 경기도 연천의 남송정에서 가야사 자리로 운구하는 5백여리길에 각 지방을 거칠 때마다 그 지역민들을 동원했는데 마지막 운구인들인 남은들 마을의 사람들에게 그 상여를 하사하엿다고 한다. 그 상여가 지금은 전각안에 보존하고 있는데 유리창문을 통해서 대충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철종 때에 제작되었는데 전체의 모습과 구조가 궁중상여로서 실용적이고 기교적이고 기술적이라고 한다. 장방형이고 몇가지 색깔의 미장이 보인다. 중앙에 있던 동자상과 용은 볼수 없고 전체적인 장방형 모습만 보인다. 상여는 3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상여는 상단인 보개와 중간부인 여동, 하단부인 장강대로 구분된다고 한다. 색다른 상여를 본 보람이 있다. 참으로 오랜 만인 것 같다. 고려부페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다 보니 찬 식혜를 여러 그릇 먹었더니 속이 영 불편하다. 주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마침 봉고차로 온 부산 명승산악회의 정맥종주팀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구리빛의 피부에 든든한 모습을 보니 좋다. 종주중인 한북과 금북을 마치면 한남을 종주한다고 한다. 그러면 모두 종주하게 된다고 한다. 술을 권하였지만 속이 불편해서 사양하고 대신 건투를 빈다는 말로써 헤어졌다.
(10) 나본들고개
나본들 고개마루에서 국도를 건너 버스정류장 팻말 우측으로 등산로 폐쇄 표지판(예산군수)이 있는 길을 올라 폐가 2채 있는 사철나무 울타리 지나 까만 비닐하우스(버섯재배용인 듯함) 좌측으로 진행한다. 옛 산판길이 나오면 이를 따라 조금 가다가 전주이씨 묘 군락지(총 6개) 쪽으로 오른다. 물론 산판길로 계속 진행하여 완만한 소나무숲으로 오르다가 산허리로 능선 우측으로 돌아서 좌측으로 올라도 된다. 그러나 정식으로 하기 위하여 묘 군락지쪽으로 진행했다. 제일 위의 묘에는 눈측백나무가 잘 식재되어 잘 단장되어 있다. 조금 오르니 우측에도 묘 1기가 나타난다. 이어 잘 가꾸어진 소나무숲으로 오르다가 숲이 끝나는 지점에 묘 2기가 나타난다. 각각 제단도 갖추었고 잘 정리된 것인데 , 조선 태조 4째 회안대군 20대손 이흥로와 21대손 이효순의 묘이었다. 지독히도 왕족임을 죽어서도 과시하고 싶어서일까? 굳이 그렇게 비석을 세워 길게 설명해야 할까? 좀 우습지 아니한가!
우측으로 휘면서 올라 희미한 소나무숲길로 오르면 양호한 길이 나온다. 계속 오르다가 평탄지역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강산에씨의 표지기가 있다. 이어 밋밋한 능선으로 진행하다가 조금 오르면 길 좋은 능선길이다. 3거리에서 좌측으로 소나무 군락지 잡목숲길 3거리에서 우측길이 사면우회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길이 좋다.계속 오르다가 Y자 길에서 좌측으로 나아간다. 건건산악회 표지기가 보인다. 지저분하고 희미한 길로 잡목많은 소나무숲을 올라 우측에 작은 쌍묘를 지나 가파르고 험한 소나무숲길을 오르니 전망이 트인다. 전망바위에 오르니 전망이 좋다. 뒤에 가야산과 한치골, 나본들마을이 보인다. 가야산 연릉이 기가 차다. 덕숭산도 보인다.
다시 소나무숲 오르막에 이어 바위있는 능선을 가파르게 오르니 능선마루다. 너른 바위가 있다. 조금 더 가니 좌측에 가야산 아래 보락골과 한티골 마을이 보이고, 남서방향의 조금 가파른 길로 가다가 완만해지면서 잔가지에 걸리적거려 짜증이 났다. 봉우리에 오르니 짐승 똥이 보인다. 주변은 소나무와 신갈나무숲이다. 양호한 능선길로 가다가 3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평탄한 길이다. 완만히 오르다가 공터있는 3거리에서 좌측으로 완만히 오른다. 우측 바위 지나 소나무숲 넓은 길로 오른다. 모래언덕에 이어 자갈길이 나온다. 이때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도 좌측길로 계속 오른다. 능선에 올라 완만하게 우측으로 이동하면 덕숭산 정상이다.우측으로 수덕사와 작은 연못과 수많은 관광버스들이 보인다.
(나본들고개)
(11) 덕숭산/수덕산
해발 495.2m. 아래에 백제 명찰 수덕사가 있다. 덕숭산은 1973.3.6.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수덕사 외에도 정혜사, 만공탑, 여숭당, 보덕사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좌측 아래로 덕산온천과 충의사가 유명하다. 고려 충렬왕 34(1308)에 건축된 한국 최고의 목조건물인 대웅전(국보 49호)의 맞배지붕 아래 창살무늬의 간결한 구조가 일품이다. 정상엔 전망이 기가 차게 좋다. 까만 통나무 "덕숭산 해발 492m"란 표지목이 서 있고, 아산소방서 산악사고시 13호 위치표지판도 보인다. 우측에 폐허가 된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뒤돌아보니 북쪽으로 군사시설이 있는 가야봉과 그 우측에 우뚝한 원효봉(600m)과 양산의 사이로 석문봉이 보인다. 그 아래에는 대치리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우측 아래로 옥계저수지가 펼쳐지고 덕산온천장 일대가 보인다. 동쪽 건너엔 수암산(260m)이 보이고, 남동쪽엔 용봉산(381m)의 우뚝한 암봉과 그 아래 용봉저수지가 보인다.남쪽 건너로 홍동산과 그 연릉이, 서쪽으론 연암산(440.8m)과 삼준산(489.9m)이 보인다. 또한 좌측으로 덕산면 넓은 평야가 보인다.
정상에서 우측(남동쪽)능선으로 들어 호젓하고 뚜렷한 길로 급경사 내리막을 진행한다. 커다란 바위가 나온다. 우측 멀리 바다도 보인다. 우측으로 푸른 소나무가 지천이다. 내려서다가 3거리에서 우측(좌측은 나뭇가지로 막아놓음) 소나무숲길 내리막으로 가면 우측에 큰 바위를 지나고 바로 있는 좌측 능선길은 지나친 후에 우측으로 진행한다. 모래길로 20여m 정도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소나무가 주위것보다 유난히 큰 것이 있는데 여기서 좌측 희미한 길로 올라서 진행하여야 한다. 여기가 독도주이지점이다. 이어 바로 좌측에 바위가 있다. '朴"이란 분홍색 표지기가 있다. 이어 바위길로 조금 가면 우측에 넓은 반석 모양의 전망바위가 있다. 쉬기도 좋고 조망하기도 좋은 곳이다. 전방으로 수덕고개와 홍성읍이, 좌측으로 용봉저수지와 용봉산이, 우로는 수덕사가 보인다.
암릉길 내리막을 조금 진행하다가 양호한 내리막길이 된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많다. 다른 정통파 산악회들의 표지기들이 많이 보인다. 가팔라지다가 완만해진다. 우로 틀어 내려가니 평탄지역이 나오고 좌측으로 트래버스하는 지역이 있다. 능선으로 나와 우측으로 가니 쌍묘가 나온다. 쌍묘 좌측길로 평평하게 가다가 우측 소나무숲으로 가파르게 내려가다 우측에 오래된 묘가 나오면 그 좌측으로 튼다. 3갈래길에서 좌측으로 완만하게 가다가 가파르게 내려간다. 철쭉이 많은 소나무숲이다. 우측으로 틀어 완만히 내려가다 우측에 바위 지나고 다시 좌측에 바위를 지나웅덩이를 지난다. 완만한 소나무숲 내리막이다. 우측바위 2개를 또 지나면 계속 완만한 소나무숲내리막이다. 바위가 나오면 우회전해 완만한 길로 진행하다가 3거리서 좌측으로 직진한다.
멋있는 소나무들이 있는 큰 바위를 지나 다시 바위 나오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강산에씨의 표지기가 보인다. 이내 좌측길이 되고 도로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곧 전망이 트이고 수덕고개를 지나는 도로도 보인다. 또 바위가 나오면 우측으로 진행하다가 너른 바위를 지난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이내 큰 마당바위가 있다. 조그만 철쭉이 바위위 틈새에서 자라고 있어 생명력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 바위 우측으로 진행하면 엄청 큰 바위가 나오고 우측 건너편에도 큰 바위가 보인다. 화강암으로 풍화가 많이 되어 더덕더덕하고 금도 많이 가고 구멍도 많다. 그 바위 중간쯤에서 좌측 소나무숲으로 진행,내려간다. 암반지대에 이어 장송숲이 나오고 이를 내려서면 능선 끝에 쓰레기 매립 웅덩이가 나오는데 그 바로 직전에 또 강산에씨의 표지기가 있다.
웅덩이를 지나니 꿀벌통이 나오고 이어 밭 우측뚝(딸기 재배중. 밭 좌측의 장송숲은 볼만하게 잘 관리되어 있다)으로 해서 붉은색 지붕의 민가 우측으로 하여 내려서니 수덕고개(육괴정)이다. 지도에는 육괴정이라고 표시되었는데 주민들은 수덕고개라고 부르고 있다. 622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육괴정(수덕고개)"란 이정표가 고갯마루에 있고 지구를 살리자는 돌비석, 버스정류장("예산군 덕산면 수덕고개")이 있다.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어 六槐(홰나무 괘)亭이라고 했다고 한다. 나무의 품격은 면나무이고 수령을 250년,높이 24m, 둘레 3.1m, 고유번호 8-13-8-274, 지정일자 1982.10.15. 소재지는 덕산 둔리 344, 관리자는 한우상, 수량은 7本인데 그런데 그중 1本은 다른 것의 절반정도 굵기이다. 나무 아래에는 앉아 쉬기 좋은 반석과 의자 등이 있고, 옛 우물터도 있으나 폐쇄되어 있다. 주변에 큰 음식점과 여관 청암파크와 민박집, 오락장 등이 들어서 있어 경관을 헤치는 것이 몹시 아쉬웠다.
첫댓글 님의 수고로움 덕분에 금북 7구간을 미리 가봅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고맙 습니다. 자~알 활용 하겠습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향상수고 많으십니다.
잘 보고 갑니다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