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산이 어디메뇨? ✪
남경을 출발한 기차는 밤을 뚫고 10월13일 새벽 5시10분에 황산역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역 앞에는 여러 대의 버스가 있었지만 노선버스나 관광버스는 보이지 않고 사람을 싣는 대로 출발하는 그런 버스들만 있었다. 모두 황산행이지만 사람이 가득 차야 움직인다니 차를 잘 골라 타야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미니버스여서 금방 보조석까지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을 했다. 곧바로 가는 줄 알았더니 시내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결국 운전석 옆의 엔진이 있는 곳에 몇 사람을 더 태우고서야 황산을 향해 출발했다. 이럴 때는 깃발 들고 손님 맞아 관광버스로 이동하는 패키지투어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후~, 돈 만 챙기는 지독한 짱꼴라 같으니라고.' . 그냥 황산을 향해 조용히 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왠 아주머니가 마이크를 잡더니 쏼라쏼라 몹시도 시끄럽다. 이쪽저쪽에서 말하는 사람마저도 무언가 싸우는 사람처럼 고음이다.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걸까?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그 소음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우리 가족이외의 모든 중국 사람들은 그녀의 설명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황산 관광에 대한 가이드를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얼마를 말소리 소음에 시달리다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그녀가 차 삯을 걷는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가이드 겸 차장이었다. . 황산역에서도 조금씩 내리던 비는 황산 온천지구에 도착한 7시30분에는 조금 더 질척거리게 내린다. 우리 일행을 제외한 다른 중국인들은 어느 식당으로 인도되어 갔고 우리는 200m 정도를 걸어서 황산관광구 셔틀버스터미널로 갔다. 관광구 내에서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버스에 사람이 꽉 차야 움직인다는 이상한 규칙이 있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버스는 금방 출발했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한국인들이 다수 보였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성식이의 운동화에 문제가 발생한 것을 발견했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운동화의 뒤축이 무너지고 고무가 바스라지고 있었다. 터미널에 매점이 있어 들어 가보니 맞는 신발이 없었다. 임시방편, 천으로 된 지팡이 집으로 신발 뒤축을 묶어 움직여 보기로 했다.
* 황산관광구내를 운행하는 셔틀버스.
황산(黃山) . 중국 안휘성(安徽省) 남부에 위치한 名山으로 황산(黃山), 장자제(張家界), 구이린(桂林), 주자이거우(九寨溝)와 함께 중국의 4대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일찍이 이태백 등 시인묵객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명나라 때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였던 서하객(徐霞客)은 30여년에 걸쳐서 중국의 산하를 두루 여행한 후에 마지막으로 황산을 둘러보고는 '五岳歸來不看山, 黃山歸來不看五'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즉, 오악(五岳)으로 일컬어지는 泰山(태산), 華山(화산), 衡山(형산), 恒山(항산), 嵩山(숭산)을 보고 온 사람에게 평범한 산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黃山(황산)을 보고 온 사람은 그 五岳(오악)도 눈에 차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황산은 천하 명산의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지닌 '중국제일기산(中國第一奇山)'으로 불리운다. 지난 199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며, 기송(奇松), 괴석(怪石), 운해(雲海), 온천(溫泉)의 4대 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 황산을 둘러싸고 있는 4방향을 구름바다로 칭하여 남쪽의 전해(前海), 동해(東海), 서해(西海), 북해(北海)로 부르고 있으며 한 복판에는 천해(天海)가 있다. 우리는 등산으로 황산을 둘러보고 싶었지만(3시간 반 소요)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봐야하기 때문에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황산에는 3곳에서 케이블-카가 운행하고 있었는데 전해의 자광각(慈光閣), 동해의 운곡사(云谷寺), 북해의 태평(太平)에서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우리는 운곡사의 케이불카를 타기로 했다. .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달려가 운곡사에 이르면 매표소가 있다. 여기에서 황산입장료(40,000원 정도, 60세 이상은 50% 할인)와 케이블요금(13,000원 정도)을 지불해야한다. 운곡사에서 백아령(白鵝嶺)까지는 케이블카로 15분 정도 걸린다. 마침 안개비로 시야가 트이지 않아 경치는 볼 수 없고 가끔씩 살짝 구름사이로 보이는 아래쪽이 까마득해 오금을 저리게 한다. 8인승의 카에는 우리 이외에 두 쌍의 젊은 중국인 연인들이 타고 있었는데 손을 꼭 잡고 공포를 달래는 모습이 귀엽다. . 1670m나 되는 백아령에서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감탄을 자아내게 할 만하지만 안개비가 시야를 가려 그저 돌계단만 보고 걸어야 했다. 호텔 북해빈관(北海賓館)까지는 1km정도. 가는 도중에 볼 수 있는 것은 길옆의 소나무정도다. 공작송(孔雀松), 흑호송(黑虎松)...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기송, 괴석 등은 볼 수가 없다. '안개비야 너무한다. 황산이 어디메뇨?'
* 케이블카 종점 백아령에 도착했으나 짙은 안개로 시야 제로에 가깝다.
* 이 나무가 공작송 같은데 확인을 하지 못했다.
* 흑호송
황산에는 여러 곳에 산중 호텔이 들어서 있다. 그 중에서 호텔 북해빈관은 중국 고위관리들이 황산에 오면 묵고 가는 황산의 대표호텔이라 한다. 우리가 투숙한 곳은 본관이 아니고 산 쪽으로 100m 떨어진 곳의 통나무 연립 단층 별관이다. 문을 열면 바로 침실이 있고 욕실과 화장실, 그리고 벽에 LCD TV(LG)와 방한복 2벌이 걸려 있는 그 것 뿐인 썰렁한 호텔 별실이다. 음습한 날씨 탓인지 한기가 들었다. 방에 난방 해 달라고 프런트에 전화 했더니 그런 시설이 되어있지 않다는 대답이다. 그러고도 방 하나에 115,000원이라니 어이가 없다. 욕실에 더운 물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으로 알아야 했다. . 짐 풀고 나니 11시다. 아침식사를 거르고 산에 올랐으니 배가 고플 때가 훨씬 지났다. 아점으로 라면을 먹는다. 라면에 무슨 반찬이 필요하겠는가마는 서울에서 가져간 볶은 김치, 김, 멸치, 고추장을 곁들이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어제 기차에서 제대로 못 잔 잠을 벌충하기로 하고 한 숨씩 자기로 했다.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나 생각하니 뿌연 안개비 때문에 방에 갇혀 있는 신세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 이럴 때 술꾼들이라도 같이 있었으면 기분이 이리도 가라앉지는 않았을 텐데...' . 사실은 오후에 서해대협곡을 돌아오고 다음날 걸어서 자광각 쪽으로 내려 갈 계획이었는데 서해대협곡 계획이 하루 미루어진 것이다. 방에만 갇혀 있을 수 없어 바둑이와 둘이서 별관 뒷산을 돌아보기로 하고 나섰다. 시신봉(始信峰)은 케이블카에서 내려 호텔로 오는 도중에 있었던 봉우리이다. 황산이 절경이라는 것을 이곳에 와서 보고서야 비로소 믿을 수 있었다는 곳인데 뭐가 보여야 믿거나 말거나 할 것이다. 그 이외에 숙소 뒤에 위치한 서광정(曙光亭), 청량대(淸凉臺), 사자봉(獅子峰)등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안개가 조금 걷히는 듯했다.
* 청량대
* 안개속의 호텔 북해빈관
3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아직 자고 있는 성식이와 지은이를 잠에서 깨우고, 같이 인근의 배운정까지 가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서해호텔로 가는 길에 단결송(團結松)이라는 소나무가 있다. 가지가 56개가 있는데 중국의 소수민족의 수와 같은 수라 한다. 매년 가지가 새로 뻗어 나오면 가차 없이 쳐낸다고 하는데 이는 더 이상의 소수민족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당국의 시위일 거라는 뒷공론이 있다.
.* 단결송
* 단결송 앞에서 바라본 운무에 덮힌 기암과 봉우리
배운정은 서해호텔을 조금 지난 곳에 있다. 배운정(排雲亭)에서는 시야가 확 트여 황산의 기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다. 구름과 안개가 서해의 골짜기들을 휘감아 솟아오르다 이곳에 이르면 저절로 걷혀져, 물리칠 배(排) 에 구름 운(雲)을 써서 배운정이라 불리게 되었다한다. 사람들로 혼잡한 배운정호텔을 지나 100m정도 더 가니 천애의 절벽위에 배운정이 있었다. . 배운정은 운해와 서해협곡의 기막힌 절경을 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더니 와 보니 정말로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면서 저 멀리 협곡에 운해를 만들고 깎아지른 절벽과 괴암과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광경은 '천하제1경'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백두산 천지에서는 처음엔 안개로 안타까움만 주다가 1시간 후 청명해진 날씨로 천지를 보는 감동을 배가시켰었는데 황산에서도 비슷한 절차를 밟고 있다. 안개 속을 헤매다가 멀리 운무와 기암절벽이 한 폭의 수묵담채화 같은 배운정에서의 절경을 만나니 그 감동이 두 배가 된 듯하다.
* 다음날 우리는 오른쪽 산을 타고 돌아 운무에 덮힌 골짜기로 내려갔다가 왼쪽 산 뒤편으로 허공다리를 걸어 북해로 돌아왔다.
* 배운정에서 바라보는서해대협곡의 운무와 절경에 감탄사 연발.
행운의 열쇠가 주렁주렁 달린 이 전망대는 천애의 허공에 떠 있다. 나 떨고 있니?
* 배운정에서 본 절경
돌아오는 길에 호텔 식당에서 중국요리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배운정에 가기 전 호텔 매점에서 성식이 발에 맞는 운동화를 구입 할 수 있어 다행이었는데 처음에 발뒤쿰치를 들고 다니느라 놀란 근육이 말썽인가보다. 성식이와 지은이는 자기 방에 가서 쉬기로 하고, 바둑이는 잠자리에 들고, 나 혼자 벽돌(?) 하나를 처치한 뒤 방한복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유리창 쪽의 침대에서 잠든 지 얼마 안 돼 추위가 엄습해와 잠에서 깨어났다. 몸이 얼음장 같이 식어 있어 병이 나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 그 옛날 어느 겨울 젊은 시절에 백담사 앞 계곡에서 여러 가족들과 야영을 했던 일이 있다. 5명이 하나의 텐트(4인용)에서 자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일찍 안방을 차지해 버렸다. 술 한잔 하다가 결국 텐트 주인은 문간에 걸쳐 자야했다. 바닥의 스치로폴이 등의 반쪽에 걸쳐있는 줄도 모르고 잠시 잠이 들었다. 결국은 캐시미론 슬리핑백 속에서 추위를 못 이겨 잠을 설치다가 옆에서 자던 바둑이의 좁은 오리털 슬리핑백 속으로 파고들어가 바둑이을 껴안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 이날도 밀려오는 추위를 감당할 수 없어 바둑이의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아~이 어인 일 인고! 마치 온돌방처럼 훈훈한 바둑이의 체온!' 바둑이가 없었으면 고야는 황산의 산 속에서 얼어 죽었을 것이다. . 2009. 11.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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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야 선생님의 멋진 글과 황산의 장관은 신선의 세계로 인도하네 --- 음악 선별은 분위기를 황홀한 세계로 세계로--------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