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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일요일, 남양주에 있는 운길산을 올랐습니다.
" 구름이 가다가 산에 걸려서 멈춘다. "는 그 산이 바로 운길산(雲吉山)입니다.
아침 9시 30분,
5호선 방이역 승차, 왕십리역에서 1호선 국철로 갈아타고 한 정거장 가니 청량리역,
역 밖으로 나와 2번 승강장에서 2228번 시내버스로 갈아 탔습니다.(** 7호선 상봉역 출구에서도 탈 수 있습니다.)
2228번 버스는,
1시간 30분 동안 가장 먼 거리를 운행한다는 명성(?)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코스를 달리며 승객들의 사랑을 받는 버스입니다.
청량리를 출발해서 구리시를 벗어나면 오른쪽 창가로 양수리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영화처럼 펼쳐지면서,
동막골, 돌루깨망, 해질모루앞, 왕자궁마을, 돌다리, 딸기원 등등,
조선(朝鮮) 냄새 물씬 풍기는 이름을 가진 66곳의 정류장을 거쳐 종점인 양수리에 다다르기 때문입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깊섶의 코스모스, 낙엽을 떨구며 늘어 서있는 플라타나스 단풍나무 미류나무들,
햇빛에 반사되어 하얀 물살을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물,
그리고 산 전체가 단풍으로 물들어 푸른 가을 하늘을 배경 삼아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첩첩으로 나타나는 산들,
버스 창 가에 앉아 바라보는 전원(田園) 풍경은 그 자체가 동양의 산수화요, 서양의 유화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35/29_cafe_2007_04_03_16_46_46120611aa618)
* "물(水)과 종(鐘)이 있는 절(寺)" - 수종사(水鐘寺) - 일주문 앞에 선 나, 그리고 뒤로 보이는 종각
11시 40분, 양수대교 채 못 가 있는 진중리 삼거리에서 내렸습니다.
목포가 고향이고, 이문동에 살면서 외대를 다닌다는 여대생과 동행(同行)하게 되었습니다.
강의시간에 교수님께서 수종사에서 내려다보는 양수리의 경치가 '기막히다'고 해서 찾아 나선 길이라 했습니다.
운길산 가는 길은 표지판 하나 없어 세 번이나 길을 물어가며 4,50분 걸려서야 2Km 거리의 등산로 입구에 닿았습니다.
20여년 전쯤, 설악산 가는 길에 운길산을 오르려고 들린 적이 있습니다.
등산로를 잘못 짚은데다 비까지 내려 한 삼십여분 오르다 포기하고 도로 내려갔었는데 ,
아마 경사가 심한데다 짐이 많고 무거워 그런 핑계를 대지 않았나 싶습니다.
운길산 입구에서 수종사(水鐘寺) 일주문까지 도로포장이 되어 있어,
등산복 차람의 사람들이 탄 차가 계속 지나다니고 있습니다.
차를 타고 오르는 사람은 편할지 모르지만,
걷는 사람에게는 길도 비켜주고 안전도 위협 받고 매연까지 맡아야 하니 기분이 언짢습니다.
등산객만큼은 산 아래에 주차하고 산길은 걸어야하는 예절을 스스로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
30여분 올라 일주문에 도착 ,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동행했던 여대생은 뒤에 쳐져 보이지 않고,
분명히 어제 충전해 두었던 건전지는 제 구실을 못해 "다음에 다시 오라는 부처님의 계시구나." 억지춘향 해석을 하며,
산문으로 들어섰습니다.(하산할 때 휴대폰으로 몇 장 찍었지만.)
곧 석가여래 입상이 나타났습니다.
불심(佛心) 깊은 신도들이 밝힌 촛불들이 바람에 나웃거리고 있었습니다.
마음으로 합장배례를 올리고 몇 분 더 오르막길을 걸어 계단을 오르자,
좁은 경내에 오른쪽으로 다실, 왼쪽 앞으로 대웅전이 보였습니다.
먼저 큰 잎이 특징인 바나나나무가 양 옆에 서 있는 대웅전의 부처님께 눈인사를 올렸습니다.
다음에는 이 절 이름과 관계 깊은 종을 둘러본 후, 두 그루의 은행나무와 인사를 나눴습니다.
은행이 다닥다닥 열린 500년 된 은행나무는 지름이 9미터 , 용문산 은행나무의 동생같아 반가왔습니다.
작은 나무도 300년으로 추정된다는데 모두 경사가 진 곳에 서 있어서 더욱 대견했습니다.
다실에 들어가 마침 혼자 차를 마시고 있던 중년 남자와 동석했습니다.
40세가 조금 넘었을까, 안경을 꼈고, 이마가 약간 벗겨졌고 목소리도 가늘고 고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통유리창 너머로 금강산쪽에서 내려오는 북한강과,
강원도 영월 쪽에서 내려오는 남한강의 두 갈래 물이 비로소 만난다고 해서 이름 지은 양수리(兩水里) ,
우리말로 '두물머리'가 저 아래 한 폭의 동양화로 아름답게 내려다 보였습니다.
산과 강과 나무와 마을이 있으면 그 자체로 절경(絶景)인 게 우리나라의 자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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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본 운길산과,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양수리 풍경
빼어난 풍광(風光)을 닮아서일까,
차의 향기가 입 안을 가득 채우고 온 몸으로 흘러내려 여기까지 오르느라 지친 몸이 금새 개운해 집니다.
큰 그릇에 따라 놓은 차를 다 마셨습니다.
다실(茶室)을 관리하는 여보살님께 찻잔 씻는 법도 배웠습니다.
먼저 차주전자에 물을 부어 다 우린 잎 채로 큰 그릇에 옮겨 담습니다.
그 다음 찻잔을 거꾸로 하여 입술이 닿은 찻 잔의 윗 부분을 큰 그릇에 담가 차 잎을 묻혀 꺼냅니다.
차 잎으로 찻잔을 씻은 후 상 위에 찻잔을 엎어 놓고, 큰 그릇만 보살님 앞에 내놓으면 끝납니다.
수종사는 정약용과 초의선사가 차를 마시며 교유하던 옛 멋을 살려 차 값을 받지 않습니다.
차값을 꼭 내고 싶으면 드나드는 방문 한 쪽에 있는 불전함에 시주 삼아 돈을 넣으면 됩니다.
차 값을 받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하기 위해 물론 나는 불전함에 돈을 넣지 않았습니다. ^^^^
정상까지는 1K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지만 비탈이 심해 군데군데 쇠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힘든 곳이 많습니다.
그러나 숲 속으로 지나는 길이라 나무도 많고 단풍도 곱고 산 냄새도 싱그러워,
가다 쉬고 가다 쉬고 해도 산행(山行)은 상쾌합니다.
여름날의 숲은 초록 한 가지지만,
가을의 숲은 한 그루 한 그루 단풍 든 나무가 꽃바구니 같아,
수백 수천의 꽃바구니를 한 데 모아 놓은 듯 색깔도 다양하고 뚜렷합니다.
한 곳에서는 단풍나무가 사방 알맞은 거리로 서 있어 붉게 물든 단풍잎이 마치 수 만 마리의 붉은 고추잠자리가 앉아 있다가,
바람이 불면 한꺼번에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양새를 보여 "꿈 속을 가듯" 환상적이었습니다.
반대로 7,8미터 큰 키의 단풍나무가 뿌리째 뽑혀 산길 옆에 쓰러져 있어 보는 사람들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35/13_cafe_2007_04_03_16_46_461206475b18b)
* "구름이 걸린다는 산" - 정상에 있는 안내판과, 정상을 향해 오르는 산꾼들
오후 2시 20분, 정상(頂上)에 섰습니다. 집을 떠난 지 약 5시간만입니다.
집을 떠나 청계산보다 약간 낮은 610m의 이 산을 오르는데 무려 5시간,
약간 손해인 것 같지만 정상에 서서 사방을 조망할 때의 호연지기는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왼쪽으로 희뿌연 안개에 싸여 흐릿하게 보이는 양수리의 물굽이와 숲,
몇 개의 다리와 그 밑의 마을들, 앞 쪽으로 예봉산과 그 뒤로 검단산, 또 산, 산, 산들.
정상은 한 평 남짓 좁지만 운길산의 유래(由來)가 적힌 안내판도 있고,
옆으로 태양열 집적판도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예봉산을 거쳐 능선을 따라 4시간 30분 걸어 여기까지 왔다는 젊은 부부는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었다."고 힘들어 했지만,
얼굴에는 역시 정상을 다 오른 사람의 넉넉한 여유가 얼굴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나도 3주 전 예봉산에 올랐지만,
나중에 보니까 정상이 아니라 견우봉이었고 -그러나 견우봉에서 보는 양수리 풍경은 수종사만큼 아름다웠습니다.
- 운길산까지 5시간은 가야 된다고 해서 그냥 하산한 터라 그들처럼 훗날의 예봉산~운길산 종주(縱走)를 기약했습니다.
정상 바로 밑, 살짝 파여진 구덩이에 마른 풀이 많이 나 있어 자리를 잡고 누웠습니다.
그 산의 맛을 느끼려면 맛을 느낄 때까지 정상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持論)입니다.
눈을 감으면 햇빛이 희미하게 스며들고,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솨아~ 시원하게 들립니다.
어디선가 새들도 지저귀고 먼 데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말소리도 가깝게 들립니다.
소리에 색깔이 있다면 계절 따라 바뀌겠지,
지금은 단풍처럼 노랗고 빨간 색일 꺼야, 아이들처럼 순진한 생각에 잠기면서 설핏 잠에 빠져 드는데,
안내판을 읽는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 운길산. 610.2 미터. 구름이 가다가 산에 걸려서 멈춘다고 하여 운길산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 순간, 내 이름에도 '구름 운(雲)자"가 들어서인지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습니다.
* - 산에 걸린 것은 구름이 아니라, 내가 구름에 걸려 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