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52] 경북대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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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일의 영남신풍수기행 .52] 경북대 캠퍼스

대구시 북구 산격동에 위치한 경북대학교 캠퍼스는 풍수적으로 무척 흥 미로운 터다. 1950년을 전후한 개교 당시부터 이미 몇 안되는 캠퍼스 건물 들 주위로 온통 올록볼록한 구릉지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상을, 마치 현자 가 엎드려 있는 듯하다 해서 복현(伏賢) 동산이라 이름해 오는 것도 그렇 거니와, 요즘은 또 여학생들 사이에 교수회관 뒤 구릉 위에 우뚝 세워져 있는 물탱크가 남근(男根)을 닮았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그뿐 아니다. 필자가 재학하던 1970년대에는 김모 총장이 구내의 이 곳 저곳에 워낙 열심히 길을 닦았던 결과, 그에게 '길(路)' 총장이라는 별 명까지 붙었으며, 그 다음 서모 총장 때는 또 팔공산 정기 운운하는 어떤 스님의 말을 듣고 북문(北門)을 새로이 만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으 니, 언감생심 풍수를 모르고서야 어찌 지금의 경대 터를 이해한다 할 수 있으랴.

필자는 사반세기 동안 경대 터의 변화상을 죽 지켜봐 온 사람이다. 때문 에 여느 얼풍수들이 서울시나 뉴욕시의 현시적인 번화한 모습을 보고 그것 을 풍수 발복으로 해석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할 리 만무하다. 요컨대 경대 터의 현재 모습만 보고 그것을 단순히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통시적(通時的)인 변화상을 통하여 그 터에 내재된 풍수적인 허와 실을 밝 히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필자는 경대 터의 됨됨이를 논하면서 그 터와 연관된 시답잖은 물형론(物形論 혹은 형국론)이나 반(半)풍수적인 행태들 은 결코 입에 올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로 인해 경대 터의 품격이 영 엉망이 돼버렸다면, 그것도 건물 한동(棟)의 양택 문제가 아닌 캠퍼스 전 체의 양기(陽基)와 관련된 문제라면 그것은 누가 생각하더라도 도저히 그 냥 묵과할 사안이 아닌 것이다.

경대 터는 본래부터 행주형(行舟形)의 빼어난 길지였다. 정문과 후문(서 쪽문)만 있던 시절, 그 터에는 앞뒤로 긴 진입로가 나 있었고, 그 가운데 의 푹 팬 선복(船腹) 좌우 구릉지 위로는 건물들이 균형있게 들어서 있었 다. 게다가 정문의 상징탑은 돛대요, 구내의 숲을 이룬 나무와 가로수들은 배를 젓기 위한 노(櫓)의 역할을 하였으며, 북쪽의 금호강과 서쪽의 신천 은 곧 경대라는 큰 배가 정박해 있는 것을 암시해 준 안성맞춤의 자연지물 이었다. 그런 배(船) 속에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들어앉아 있었을 뿐더러 그중에서도 특히 삼각형 구도로 배치돼 있었던 본관과 도서 관(지금의 박물관), 그리고 학생회관은 풍수의 균형미 바로 그 자체에 다 름아니었다. 대저 행주형이란 지세는 도대체 어떤 땅을 이름인가. 키와 돛 대, 닻 중의 어느 하나라도 구비하고, 또 판국 안에 우물을 함부로 파지 않는다면 인물을 만재하는 번창을 누릴 수 있다고 하는 전래의 풍수형국론 적인 해석은 그렇다치더라도 배의 안정을 얻기 위해서는 어찌됐든 균형을 이루는 적재가 필수적인 바, 그런 철칙을 어긴 현재 경북대 터의 모습은 벌써 그 느낌 자체부터가 다르게 와닿을 수밖에 없다.

우선 경대 터의 중심을 이루는 본관만 해도 그렇다. 1960년 5월에 준공 된 그 석조 건물은 풍수 좌향론이 십분 반영된, 그 입지성이 매우 빼어난 건물이다. 뒤로는 나지막한 동산이 받쳐주고, 앞으로는 사범대에서 우측으 로 뻗어내린 솔숲 지맥을 안대(案對)로 삼아, 건좌손향(乾坐巽向: 북서쪽 에 앉아 남동쪽을 바라봄)으로 터잡은 그 건물은 얼른 봐도 태양(혹은 남 향) 위주의 절대향(絶對向)이 아닌 지세 위주의 상대향(相對向)을 취한 건 물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더구나 지세 위주의 상대향을 취한 그 건 물은 소위 자연친화적인 명택(明宅)에 다름아닌 바, 그것은 도로의 막다른 지점에 앉아 그 앞쪽 좌우로 여러건물을 마치 거느리고 있는 듯한, 형식적 이면서도 권위적인 여느 대학들의 본관 입지성에 전혀 견줄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듯 훌륭하던 본관의 입지성이 지금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 렸다. 후맥 위 높은 곳에 도서관이 덩그렇게 들어서고, 오른쪽 앞으로 공 대 10호관 고층건물이 세워지게 됨에 따라 앞뒤로 숨통을 조임 당하게 된 까닭이다. 굳이 그같은 형이상학적인 표현을 않더라도 경대 터에 대해 아 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캠퍼스내에서 차지하는 본관의 중심성이 예전에 비 해 많이 떨어졌다는 느낌을 반드시 받게 돼있다. 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본 관과 연계시키지 않더라도 그 두 건물 자체부터가 벌써 성격에 맞지 않는 장소에 들어앉아 있다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북서풍 찬바람을 그대로 맞고, 초저녁이면 벌써 북문 앞 유흥가의 휘황찬란한네온사인 불빛들이 한눈 에 들어오는 전망좋은(?) 구릉지 위에 도서관을 세운 것도 잘못이려니와, 도로로 사용하던 곳은 결코 집을 짓지 말라는 옛말을 무시한 채 저 잘난 듯이 홀로 우뚝 솟아 있는 공대 10호관 역시 앞뒤로 도로가 찌르듯 달려들 고 있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함이 엿보인다. 상극(相剋)적인 토지 개발이야 비좁은 캠퍼스 부지 탓으로 돌릴 수 있을지언정 그런 유관적합하지 못한 토지이용은 그야말로 발뺌할 여지조차 없는 마당이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절로 토지관의 무서움이 우러난다.

동문쪽과 북문쪽 담장 가까이 세워진 건물들은 또한 어떠한가. 그 건물 들은 방음림(防音林)이 충분히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가지 도로와 너 무 붙어 있다. 아마도 토지이용의 효율성을 제고한답시고 구내의 가장자리 에는 충분한 녹지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마구잡이로 건물을 앉힌 탓이리라. 덕분에(?) 그런 건물 속에서는 그 어디에서든 사람 들이 담장 바로 너머 도로로부터 발생하는 일종의 풍수비수(悲愁: 시끄러 운 소리)를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설상가상 자동차의 접 근도를 고려한 때문인지는 몰라도 교내의 건물이란 건물에는 거의 모두 사 방으로 차도를 내놓았다. 도로로 둘러싸인 집은 흉가나 다름없다고 하는 전래의 가상론(家相論)을 여기서 더 이상 언급않겠지만, 적어도 대학교 교 정이 연구와 학업을 연마하는 곳이라는 점만 감안됐다해도 여느 여염집에 서조차 보기 힘든 그런 어처구니 없는 몰골은 미연에 방지될 수 있지 않았 을까 생각된다.

경대 터의 풍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역시 1979년에 새로 낸 북문에 얽 힌 비화(秘話)다. 애초에 그 문을 내게 된 계기와 사람들의 믿음이 모두 풍수와 관련돼 있을 뿐더러 그 문을 냄으로써 현재 되돌려 받고 있는 일종 의 동티(혹은 풍수 부메랑)까지도 모두 풍수와 연관돼 있는 까닭이다. 앞 에서 이미 간단히 언급했듯이, 경대 북문은 순전히 풍수 때문에 생긴 문이 다. 그 당시는 교내를 출입하는 차량도 극소수였을 뿐만 아니라 북문 앞이 거의 개발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어느 날 느닷없이 문이 생겨났 는데, 사연인즉 그곳에 문을 내게 되면 경북대가 팔공산의 정기를 받아 훨 씬 더 번창하리라는 어떤 고명한(?) 스님의 말씀을 당시의 서모 총장이 그 대로 실행에 옮겼던 게다. 그리고 실로 공교롭게도 그 문을 낸 후 두 서너 해 동안 경대에서 유달리 많은 고시 합격자(2관왕도 있음)가 배출됐는데, 그로 인해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북문 풍수의 영험함을 입에 올리게 되 었던 게다. 하기야 그 당시만 해도 고시에 합격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특별 한 예우와 관심을 끌었던 때인지라 사람들이 그런 경사를 "인걸은 지령(地 靈)"이라는 풍수 금언과 결부시킨 것도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도 여전히 학내의 고시준비생들 사이에 "고시에 합격하려면 북문 쪽을 향해 공부방을 잡아야 된다"는 사고가 팽배해 있는 것은 아무래 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마음을 그것에 집착시키는 것도 우스꽝스럽거니 와 풍수 자체로 볼 때도 참된 인걸풍수론이 왜곡되는 면이 있어 양자에게 모두 해(害)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더구나 북문 앞은 이미 유흥가로 변한지 오래다. 쉴새없이 차량과 사람 들로 붐빈다. 가히 학교를 출입하는 학생들의 넋을 빼놓는 지경이다. 필자 는 평소에 "인성(人性)은 지령"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학교측은 허결처(虛缺處)나 다름없는 북문 쪽에 학생들을 위한 그 어떤 풍수 비보물(裨補物)이나 압승물(壓勝物)을 마땅히 설치해야 할 듯하 다. 그것은 북문 밖 유흥가의 휘황찬란한 화기(火氣)를 제압할 수 있는 분 수대라도 좋고, 아니면 해태상이라도 괜찮다. 캠퍼스 안팎을 드나들 때 누 구라도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계기만 만들어 주면 될 일이다. 모름지기 터라는 것은 정신을 담는 그릇일진대 대학 캠퍼스라면 적어도 물신주의나 기능주의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도록 해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경대 터는 상징적이면서도 관념적인 풍수보다는 오히려 분수대나 나무숲, 꽃밭 등을 조성하는 것과 같은 실천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풍수를 더 필요로 한다. 경북대의 교육 이념은 진리.긍지.봉사이다. 그것은 IQ(지능지수).EQ(감 성지수).MQ(도덕지수)로 이어져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세태적 모토와 결 코 무관하지 않다. 보다 질 높은 캠퍼스 환경을 조성하는 길이야말로 곧 그 3박자를 두루 갖춘 보다 전인적인 경대인을 배출하는 지름길이 아니겠 는가.

풍수학자.지리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