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저널에 나온 [거짓말] 제작일기 중 집필기
내가 정말 [거짓말]을 잊을 수 있을까?
사랑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원한 것도. 그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끝나버린 사랑을 했던 기억이 있다..
참 많이 아팠었다..
그의 학교 앞을, 집 앞을 오래 서성였다..
가끔 친구들 말에 의하면
그 역시 나처럼 오래 내 주위를 서성였다 했다..
하지만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드라마 [거짓말]이 종방됐다.
나는 지금 미워서 헤어진게 아니라, 인연이 다해서 헤어진 그 사랑처럼
[거짓말]의 종방을 맞고 아프다..
사랑할 때 자만하고 끝난 뒤에야 자신의 미흡함을 깨닫듯.
스스로 작품에 소홀했던 부분들을 문든 문득 발견하면서,
[거짓말]을 못잊고 옛날 그의 집과 학교 앞을 서성였듯.
통신에 접속하고 드라마에 관한 기사를 읽는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았던 애인을 상기하며
천원짜리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된 드라마를 보고 또 본다.
그러다 순간 꺼버린다. 우린 이제 인연이 다 했다. 그것을 안다
다시 만날수 없으리라.
서른 셋의 나이에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고, 연애도 하지 않은 내게
드라마를 쓰는 일이란 감히 삶의 전부다.
십 개월 동안 [거짓말]을 몸 안에 일부처럼 사랑하면서,
연애하는 기분이었다.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면,
우습게도 성우 준희 은수를, 영희 현철을,
동진 세미 장어를 만난다는 것이 설레었었다.
그리고 글쓰는 내내 투정하지 않았다.
힘들어 하지 않았다.
사랑은 겸허해야 한다고 믿은 때문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도 감사했다.
[거짓말]은 내가 지금껏 쓴 것 중(대부분이 그랬지만)
가장 시청률이 저조한 드라마였다.
그런데 난 왜 이 드라마를 그렇게 사랑했던 걸가?
해답이 찾아지지 못한다.
해답을 찾기 위해 그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거짓말]을 만든 사람들은 이뻤다.
감독은 깊은 눈으로 작품을 이해했고,
이해되지 않을 때는 화내지 않고 고민했다.
그가 고민하여 고수머리를 엄지와 검지로 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는 일을 했던게 아니라 [거짓말]을 사랑하고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성우역의 배종옥씨를 캐스팅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녀는 시놉시스를 읽고,
이 드라마의 말미에 성우처럼 사랑이 있다라고 믿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후일 들은 얘기지만
그녀는 성우를 제 마음에 두기 위해 울고 또 울었다 했다.
은수역을 한 유호정씨에 은수를 설명하던 때를 또 기억한다.
그 큰 눈을 껌벅이며, 정말 은수처럼 천진하게 좋아하던 그녀는
이 작품이 당분간은 마지막이 될거라 했다.
준희 역을 한 이성재씨는 힘들다고만 했다.
응석이 아니었다. 준희의 삶을 그의 사랑방식을 이해하고 있었다.
버거웠을 것이다.
머리가 아닌 마음을 내는 일은 늘 그렇듯 고단한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다른 역활의 연기자들, 그들도 한결같이 [거짓말]을 사랑했다.
그래도 이제 정말 [거짓말]을 잊고 싶다.
첫 사람을 버리고 두 번째 사람에게 갔을 때 첫 사람을 품고 가면 안되듯이
다음 드라마는 [거짓말]을 잊어야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선 세상에 사랑이 한번만 오는 줄 았앗다. 그게 아니었다.
극중 영희의 대사처럼 사랑은 또 왔다.
처음같진 않았지만 나중 것은 나중 것대로 깊이가 있었다.
나는 이제 [거짓말]을 잊고, 다시 또 다른 드라마를 사랑하려 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다음엔 어떤 드라마 쓸래요?
말한다. 나도 몰라요, 하지만, 믿는다.
첫사랑에 목숨건 사람은 두 번째도 목숨을 건다고,
나 자신 다음 드라마도 목숨 걸어 사랑하리라는 것을.
그런데 내가 정말 [거짓말]을 잊을 수 있을까?
- 노 희 경 작가 집필기 -
주요 출연진과 인물 배경
◈주성우(배종옥): (여, 33세)
인테리어 토탈 매니저.
모든 예술분야(미술, 공예, 도예 등)와 인테리어를 한데
접목시키는 작업이다.
가령 어느 카페나 집을 만드는데 그곳에 어느 화백이나
공예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어떻게 인테리어를 할 것인가를
판단하고, 그것을 주선하는 작업이다.
명문대 경영학부를 나와 대기업비서실에서 근무하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 에 들어온지는 1년반이 되가고 있다.
는 그녀의 선배인 김하숙이 운영하는 회사로
현재 그곳에서 실무 최고책임자로 있다.
겉보기엔 냉정하고 남성적인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상처와 아픔과 넓은 이해심과
한없이 부드러운 여성적인 면을 감추고 있다.
그녀가 이렇듯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데는
그녀의 과거 때문이다.
유년시절 그녀는 비롯 편모 슬하에서 자랐지만 언제나 당당했다.
남하는 만큼 공부도 했고, 과부티를 내지 않는 엄마가 있었고,
무엇보다 그녀는 거친 세상 단숨에 뛰어넘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처럼 편견없이 순수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물 둘에 남자를 만났다.
자신이 다니던 대학의 강사였다.
일찍 철이 든 탓에 소녀적인 감상에 빠져
학창시절 국어선생님도 좋아한 적이 없는 그녀로선
뒤늦은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부남 이었다.
그녀는 그가 그의 아내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세상에서 성우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누누히
말했었다. 처음 그녀는 유부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비극일 수 있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세상을 누구보다도 상식적으로 살고 싶었다.
때문에 하루에도 열두번 씩 보고 싶은 남자의 전화를
백번도 넘게 말없이 끊었고,
비오는 날 집 아래 창가에서 우산없이 빈 몸으로 서 있는
남자를 모른 척 하려 애쓰며,
오지 않는 잠을 이 앙물고 잠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랑으로 가는 마음이 그래서 돌아오진 않았다.
그녀는 그와의 줄다리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결혼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막상 그녀 입에서 이혼하라는 말이 나오자
남자는 아이를 들먹였다.
아내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남자에게 물었다.
나를 처음 만나 사랑할 때도 당신은 아이가 있었고, 아내가 있었다.
왜 그럼 그때 당신은 당신의 아이와 아내를 생각치 않았나.
그리고 이제와 내가 이렇게 당신 앞에서 허물어 질대로 허물어지고
난 지금에야 그 말을 하는가.
그때 남자가 말했다.
이제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성우는 그때 허물어지는 자신을 간신히 추스리고 돌아서며
그렇게 단호하게 말해준 남자가 차라리 고마웠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랑도 시작이 있으면 끝날 때가 있다는 걸는 배웠다.
그 이후로 그녀는 더이상 사랑을 믿지 않았다.
그러다 스물 일곱에 다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준수했고, 나이차도 3살 차이로 적당했으며,
무엇보다 아내 없고 자식 없는 미혼이었다.
그녀는 그와 결혼하려 했다.
성격도 맞았고, 무엇보다 정착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의 집안에서 반기를 들고 나섰다.
편모슬하의 외동딸을 장손집에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남자는 부모를 설득 하겠다고 그러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녀는 그런다고 기다린다고 하고선 기다리지 않았다.
남자가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과 살 만큼
모나지 않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아픈 사랑을 두번하고,
스쳐 지나가듯 두 남자를 더 만났다.
그리고 서른을 넘기고 세 살을 더 먹었다.
이제 그녀는 사랑에 목맬 만큼 영원할 수 없는 사랑에 빠져
허우적 될 만큼 자신이 순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은 사랑할 수 있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자다.)
사람에 대한 기대도 없다.
그런 그녀가 다시 도망 갈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처음 이 사랑을 대수롭지 않게 보려 한다.
지금까지 모든 사랑이 부질 없고, 가벼웠듯이
이 사랑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다행히도 이 사랑은
그녀의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다.
◈서준희(이성재): (남, 28세)
인테리어 토탈 디자이너.
순수하고 직장인 보다는 예술가로서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사회성이 그닥 많진 않다. 성우의 부하직원이다.
무녀독남으로 양친은 모두 청주에 계신다.
교수인 이해심 많은 부친과 중졸이지만 따뜻하고 이쁜
모친 밑에서 평탄한 유년을 보냈고,
학부중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은수와는 뉴욕에서 우연히 만났다.(당시, 은수는 파리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는데 뉴욕으로 친구를 만나러 갔었다.)
그는 친구처럼 편한 은수와 3년 연애를 하고,
스물다섯에 결혼해 지금까지 아무런 갈등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은수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많이 이해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가 판화를 전공하고도
화가로 남지 못하고 인테리어 토탈 디자이너로 남은 건
은수 때문이었다.
뉴욕에서 은수와 데이트를 하던 어느날, 은수는 일찍이
약속장소에 나와 있었다. 준희는 건널목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때 은수가 말했다. “빨리와, 빨리!”그는 은수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건널목을 건넜다.
빨간불이었다.
그는 차와 충돌, 이후 오른손에 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판화를 할 수 없을 만큼의 수전증을 앓는다.
하지만 천성이 낙천적이고 아이처럼 천진한 그는
속으로야 어쨌든 겉으로는 괴로워하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만다.
다음에 태어나면 신호등을 잘 지켜서 손을 다치지 말아야지.
그리고 꼭 판화를 해야지.
하여 그는 누가 손을 떠네요 하고 물으면,
그 쪽이 좋은가 봐요, 떨리네요, 라고
가볍게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여자라곤 엄마하고, 이모, 은수 밖에 아는 사람이 없고,
사랑한다고 느낀 여자는 미국배우 오드리 햅번 뿐이었다
(그는 은수에게도 이 여자를 정말 사랑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은수하고는 임마 점마를 할 수 있을 만큼,
방위가기 전 사창가에서 동정을 잃었다고 수줍게 웃으면서
말할 정도로 친구처럼 지낸다.
그런 그가 사랑을 한다.
누가 뭐래도 그가 태어나서 하는 첫사랑이다.
그는 성우와 살고 싶어한다.
은수가 자신이 하는 사랑을 용서했으면 한다.
자신의 아내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말할 만큼
그는 어리석을 정도로 순수하다.
◈정은수(유호정): (여, 27세)
공예가면서, 갤러리 <착한 생각>을 직접운영한다
(그녀는 문화센타(주현철, 이동진이 다니는
신문사에서 운영하는) 공예강좌를 나간다)
성우모 윤영희를 가르치게(?)된다)
2녀 중 막내로, 양친 모두 일찍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언니와 단둘이 자랐다.
사업가였던 부친이 남겨준 재산으로,
일찍이 어른스러웠던 언니 (현재 언니는
파리에서 현지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밑에서 당당하고도 바르게 자랐다.
매사가 긍적적이고, 유머도 많으며 웃음도 많고 무엇보다 밝다.
가령 그녀는 어렵서도, 누가 ‘너 고아구나, 안됐다’하고 말하면,
웃으며 ‘안될 것도 없어, 니 부모님도 언제간 돌아가실 테고,
그러면 너도 언젠간고아가 될테니까’하고
말하는 당돌하고도 막힌데 없었다.
재학시절에도 거침없는 성격에 이해심도 많아,
속 좁은 여자 보다는 남자와 더 잘 통했다.
동진과는 유학전 미팅에서 만났다.
그녀는 처음 동진을 보고 그와 결혼하리라 그리 맘 먹었었다.
동진은 그녀가 본 가장 남자답고 큰 남자였다.
그러나 연애감정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이유도 없이,
동진은 그녀를 외면하고, 유학을 종용했다.
그녀는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구차하게 묻고 싶지 않았다.
동진이 제발 날 떠나줘라 라고 얘기 했을때,
그녀가 기껏 한 말이라곤 ‘진심이니?’ 그 한마디였다.
동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친구하자’ 말했다.
그녀는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로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단순히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자존심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는 동진이 무슨 이유에서건 진심으로 자신을
보내고 싶어한다고 생각했고, 속 깊은 사람이 그리 말할
때는 내 심정이야 어찌되건 보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애써 울지 않고, 다시 그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진과는 친구가 되었다.
과거야 어찌되었긴 그녀는 현재 준희를 가장 사랑한다.
자신때문에 다친 준희에 대한 죄책감이 있지만
죄책감이나 동정 때문은 아니다. 그녀는 준희에게서 여러 사람을 본다.
아버지 (가끔 그녀가 불 같이 화를 낼 때, 받아 주는 준희를 볼때),
아이(고른 숨소리를 내며 자는 준희를 볼 때),
애인(아직도 그녀는 준희를 볼 때 설렌다)
친구(그녀는 준희가 가장 만만(?) 하다) 등등....
은수는 혼자 이렇게 생각한다. 내 그리운 부모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준희와 바꾸진 않으리라.
준희가 행복할 땐 은수도 행복하다.
은수의 가장 큰 바람은 준희의 아이를 갖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이런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작은 준희
혹은 준희2세.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
그런 그녀가 준희의 외도를 본다.
그녀는 모질게 아프다.
◈이동진(김상중): (남, 28세)
신문사 사건담당기사
(주현철은 그의 상사면서 스승이다)
2남 2녀 중 장남이다. 편의점을 하는 부모와 함께 산다.
형제들은 모두 출가했다.
능력있고, 서글서글하고 남성적인 단호함도 있다.
그러나 은수 앞에만 가만 그는 참 많이 아프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은수를 사랑하고 아낀다.
그런 그가 은수를 가슴속에서 내치고,
친구로 만든데는 아픈 이유가 있다.
그는 성불구(발기부전증)에 무정자증이었다.
처음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전립선염으로 병원을 갔는데, 그때 알았다.
은수와 혼담이 오가던 중이었다. 그는 은수를 포기했다.
그리고 나중에 은수가 지나치듯
‘그때 너 나 왜 찼니?’라고 물었을 때 그는 말했다.
‘나 장남이잖니, 울어머님이 너 말랐다고
애 못낳게 생겼다고 싫다드라
(당시 그는 은수의 불임을 알지 못했다,
물론 은수도 동진의 불임을 알지 못한다)’,
그렇게 거짓말을 했다.
그는 은수를 유학보내고, 그리고 은수가 준희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을 아프게 보았다.
그러나 그런 일련의 것들이 은수를 사랑하는 맘을
저해 시키지는 않았다.
그리고 은수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누구에게도 들키게 하지 않는다. 은수에게 조차도.
그는 은수에게 미련도 없다.
그냥 친구로 남아 그녀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는 감사하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건대, 그는 은수에게 이제 여자로서,
이성으로서의 미련은 없다, 은수의 사랑을 받는 준희가
행복한 남자라고는 생각하지만 질투하지 않는다.
경계를 넘어선 우정은 영원할 수 없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는 은수와 영원하고 싶다.
처음 세미를 만나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아니 차라리 피곤했다. 철없고 거칠고 도대체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그는 세미에게서 자신을 본다. 자신처럼 병들고
(그는 남자의 가장 큰 의무를 배태의 의무로 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자상한 남편과 아버지가 꿈이었다,
그런 꿈을 실현시킬 수 없는 자신을 그는 병자라고 여긴다),
자신처럼 뒤틀리고 떠도는 그녀를 보며
그는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세미(추상미): (여, 23세)
사람들은 그녀를 거리부랑아라 부르거나,
길거리 오렌지족이라고 부른다.
지나가는 남자들과 놀아주고 하루 세끼 밥 먹는게 일이다.
그러나 몸을 팔진 않는다.
거칠고,사납지만 세상이 만들어준 겉모습일 뿐,
속내는 여리기 그지없다. 돈을 못벌면 경찰
서에서 자고, 돈을 벌면 여인숙에서 자고
대부분은 돈을 벌기위해 압구정동이나 강남 부근에서 서성인다.
모친(사실 세미는 그녀의 엄마를 찾아 강남역을 서성이는 것이다)은
동두천 창녀였고, 부친은 태국계 미국인이었다.
돈을 벌면 엄마를 버린 부친이 있는 미국으로 가, 죽는게 꿈이다.
그녀는 세상 모두를 증오한다.
중등학교 중퇴지만 동두천바닥에서 얻어들은 영어를 곧잘 한다.
그러나 읽지는 못한다.
세미란 이름은 수세미 공장을 하는 양모가 붙여준 이름이다.
본명은 김여자다. 만사를 귀찮아 했던 친모가 여자니까
그냥 여자라고 부르지 뭐, 하며 붙여준 이름이다.
처음 그녀는 동진을 경찰서에서 보고 참 재수 없는 놈
(동진은 사건수집차 파출소에 온 것이다)이라 여겼다.
먹물과는 말하기도 싫었다.
밥이나 사주면 고맙고, 안주사면 그만 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사랑을 받아본 적도, 사랑을 한적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동진을 사랑하게 됐다. 처음엔 화가 나고,
주제 모르는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그러나 사랑은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초라한 자기 신세가 죽도록 화난다.
동진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좋은 걸 좋다고 말도 못하는 그녀는, 바보다.
좋으면서 싫다고 하는 아름다운 스물셋 청춘이다.
◈장 어(김태우): (남,25세)
세미의 동두천 친구.
나이차이는 있지만 서로 반말을 하며
세미의 곁을 그림자 같이 따라다니는 인물이다.
세미가 벌어온 것으로 기생하며 살지만 전혀 악의 없다
(그는 악의를 가질만큼 세상물정에 약지 못하다.
세미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말씨가 어눌하고, 다리를 약간 절며, 아이같이 순수하다.
세미를 사랑하지만, 세미에게 직접적으로 사랑한단 말은 못한다.
그는 누구보다도자기의 분수를 안다. 심장병을 앓고 있다.
◈윤영희(윤여정): (여, 52세)
성우모.
고등학교 삼학년인 19살에 부산에서
우연히 만난 마도로스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성우를 낳았다.
한번 만난 남자와 목숨 걸고 사랑할 만큼
그즈음 그녀는 순수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그녀에게 순탄치 않았다.
1년에 길게는 삼백일을 외지로 떠도는 남편,
숫기도 없는 20살에 얻은 자기만큼 예민한 딸 아이,
젊은 날 그녀의 유일한 일거리는 오지도 않는
남편을 마중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성우가 초등학교를 들어 갈 무렵
남편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녀가 건네 받은 건, 다른 여자에게 갈 연서(戀書)와
산만하던 남편은 온데간데 찾아 볼 수 없는 한줌 뼛가루였다.
그때부터 곧은 그녀에게 한가지에 대해서만은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카리스마적이고, 바람을 일삼았던
(남편의 바람은 그가 죽고 나서야 알아챈 것이지만,
살아 있을때도 마도로스인 남편이, 그녀만을 사랑했다고
믿을 만큼 그녀는 어리석지 않았다)
남편을 가장 자상하고 이해심많은 남편으로 꾸미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거짓말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거나,
자존심을 지탱하는 방편일뿐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
지적이고, 남 잘난척하는 건 죽어도 못보고
(하여 그녀는친구들 사이에선 그다지 평판이 좋진 않다.
나이오십이면 누구나 갖은 허세를 그녀는 칼처럼
집어내기 때문이다. 가령 승용차를 자랑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녀는 다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해하자 오죽 가진게 없으면 꼴난 차 한 대에
입술이 부르트게 자랑을 하겠니. 그래 니 차 좋다,
근데 세차나 하구 다녀라 하는 식이다).
세상에서 딸을 가장 사랑하지만 맹목적이거나 의지심은 없다.
딸과는 친구처럼 동료처럼(같은 여자임으로) 지낸다.
딸이 말하지 않아도 그 아이 숨소리만 듣고도
울음이나 아픔을 가늠할 수 있는 엄마다.
◈주현철(주 현): (남, 55세)
신문사 편집부장. 칼럼리스트.
마흔 아홉에 암으로 끔찍히도 사랑하던 아내를 잃었다.
아들 둘이 있지만 현재는 모두 결혼해 분가 시키고 혼자 산다.
윤영희와는 어린시절 만리동에 살 때 한 동네에 살았다.
윤영희의 첫사랑이다.
그가 윤영희를 또렷이 기억하는 부분은
영희가 시집을 가던 그해 겨울이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이 무슨 시집이냐고
부친에게 머릿끄뎅이를 잡히고도
‘시집 갈꺼야, 시집 갈꺼야!’하며 악을 쓰던 그녀를
그는 이쁘게 기억한다.
털털하고 말은 별로 없지만, 단순한 거짓말은
단순하게 넘겨줄 수 있을 만큼 이해심 많고,
사려 깊고 따뜻한 인물로 영희의 남편과는 아주 대조적인 인물이다.
영희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남자형이다.
(영희의 인물소개에서 영희가 남편을 아주 자상한
인물로 거짓말을 한다고 했는데 주현철 그가
바로 영희가 거짓말해서 만들어낸 인물과 비슷하다)
영희에게 친구면서, 남편이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