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얘기 중에 이런 게 있었죠? 국민학교 때든가 교과서에 나오던 얘기같은 데 어렴풋이 기억에 납니다. 무지개를 잡으려는 사람의 이야기... 그 사람은 童顔의 소년 때 무지개를 잡으러 비장한 각오를 하고 떠납니다. 저 산만 넘으면 잡겠지. 그러나 또 산... 저 산만 넘으면 되겠지. 그러나 또 산..
이런 식으로 가도 가도 끝이 없습니다. 결국 잡지 못하고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되어 돌아오고야 만다는 스토리의 허망한 비극이죠. 무지개! 그것은 아름답습니다. 잡고 싶습니다. 그러나 잡을래야 도저히 잡을 수 없는 환상입니다. 광고 회사에서도 그런 환상을 많이 쫓고 있습니다. 그런 환상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마케팅입니다. 웬만한 광고회사에는 거의 모두 마케팅이란 부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을 마케터라고 부릅니다.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겠죠. 마케터라는 그 이름에서 신비스러운 파워가 느껴집니다.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같습니다. 그러나 광고회사에서 마케팅을 하는 건 바로 무지개를 쫓는 일과 같습니다.
마케팅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장 정통적인 정의는 4P에 입각한 겁니다. 소비자의 필요를 파악해서,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킬 제품(Product)을 계획·개발하고, 그 제품에 대한 가격(Price)·촉진(Promotion)·유통(Place)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냥 쉽게 말하면 물건 잘 팔려 돈 벌게 하는 거죠.
마케팅 4P요소 중의 하나인 "Promotion"중에서도 광고는 지극히 일부분입니다. 결국 광고는 마케팅 전략에 입각해 나오는 부수적 산물인 것이죠. 그렇게 마케팅이 광고의 상위개념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광고회사에서 "마케팅, 마케팅"합니다. 어떻게 보면 진짜 꼭 그렇게 해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회사에서는 자기네 회사가 조사 좀 한다고 마케팅에 강하다는 자랑도 합니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건 순전히 "뻥"입니다. 엄밀히 따져서 광고회사에서 소비자 조사는 해도 마케팅을 할 수 없습니다. 광고회사가 아무리 잘 낫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마케팅의 정통적인 정의에 따른 일을 다할 수 있습니까? 그럴려면 제품전략, 가격전략, 유통전략, 판촉전략을 다 꿰야 하는 데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광고회사가 아무리 잘난 체를 해도 그런 마케팅을 광고주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습니다. 마케팅은 당연히 광고주가 하는 일입니다. 광고회사가 그런 마케팅을 한다고 폼을 잡을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마케팅전략이 어쩌구 저쩌구 복잡·장황하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데 그런 건 "우리가 당신네들 광고를 위해 이렇게 공부를 많이 했으니 예쁘게 봐주세요"라고 갖은 아양을 떠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설혹 그런 "썰"이 먹혀들어가 보일 때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 때 광고주는 보통 이렇게 반응합니다. "짧은 시간에 연구를 꽤 많이 하셨네요. 애쓰셨어요" 그러나 그런 말들은 그냥 하는 소리입니다. 영양가있는 말씀은 절대 아닙니다. 마케팅은 우리보다 그 사람들이 더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밥먹고 그것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럴진대 우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다른 일도 해가면서 한달정도 공부해서 그 사람들을 감명시킬 욕심은 애당초부터 옵빠생각입니다.
그런데도 광고회사에서는 마케팅을 외치고 다닙니다. 그렇게 하는 건 마케팅이란게 무지개처럼 잡을 수 있는 거처럼 만만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런 일을 진짜로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합니다. 마케팅 컨설팅을 하는 회사를 차려 전문적으로 해야 합니다. 외국의 잘 나가는 컨설팅회사처럼 마케팅 전문회사로서의 권위도 많이 내새워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그런 권위에 좀 약합니다. 그래야 돈도 한건에 몇억씩 많이 받고 그 전문성을 인정받습니다.
대개의 광고회사가 하듯 소비자 조사나 하고 광고기획서의 한 챕터를 정리하는 것 가지고 "우리도 마케팅 합네" 하는 건 그 사람들에게 귀여운 애교로 밖에 안보입니다. 우리는 마케팅회사가 아닙니다. 광고회사죠. 광고회사는 광고나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게 전문이죠. 우리가 마케팅을 밥먹듯이 하는 광고주보다 훨씬 잘하는 일이 바로 광고입니다.
그게 바로 광고회사의 존재이유입니다. 광고전략이 옳다거나, 광고제작을 잘한다거나, 광고매체를 잘 잡는 다거나 모두 광고와 관련된 일입니다. 마케팅 때문에 광고회사를 선택하는 건 절대 아니죠.
가끔 광고주가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광고회사에 시킬 때 마케팅 전략이 중요하니 그것도 잘 준비하라고 당부할 때가 있습니다. 그걸 광고회사는 잘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 말려들면 안됩니다. 그건 함정입니다.
그 함정은 광고주가 만든 함정이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 의욕을 부려서 빠져들어가는 함정! 그러니까 그건 우리가 만든 덫인 셈이죠. 마케팅 전략이 훌륭하다고 광고회사를 고를 광고주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 점수 비중이 크다고 처음에 광고주가 그랬더라도 일은 그렇게 않되도록 분명히 짜여져 있습니다. 결국은 광고가지고 판가름 납니다.
그러면 광고회사 마케팅부서의 마케터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하냐요? 이 질문은 문제의 핵심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광고회사에서 마케팅을 하는 부서는 없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지개를 쫓다가 호호백발이 되면 불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다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하느냐? 이는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 마케터들에게 천기누설죄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마케팅이 아닌 광고와 관련된 일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럴려면 마케터라는 이름좋은 허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진짜로 마케팅을 해야 한다면 광고주의 프로덕트 매니저인 PM부서로 가거나 마케팅 컨설팅 전문회사로 가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마케팅전략을 연구하는 그런 부서가 아니라 모두 광고주 서비스를 하는 실감현장으로 전면배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름부터 바꿔야 합니다.
마케터가 아니라 광고전략가! 영어로는 "Ad. Strategist"! 전에 가지던 이름만치는 않지만 이 이름도 폼은 여전합니다. 광고전략가로서 할 일은 좀 더 실속있는 일입니다.
이 이름으로는 전에 마케팅부서에서 마케팅전략을 세우는 수준높은 "Marketer"냐?, 조사 나부랭이나 하는 수준낮은 "Researcher"냐?의 위상문제로 갈등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C급들이나 하는 고민입니다. 또 근본적으로 할 수도 없는, 실력적으로 하지도 못할 골치아픈 마케팅 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광고 일만 하면 됩니다.
우리 광고를 볼 사람들이 제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거기서 광고전략을 도출하고, 이에 따른 전략과 크리에이티브를 테스트하는 일들... 이런 일들은 현재 AE가 하는 일들과 겹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구조는 AE는 비즈니스적인 광고주 핸들링을 하고, 前身 마케터, 그러니까 현재의 광고전략가는 광고기획을 하는 체제입니다. 즉 핸들러와 플래너로 이원화된 "어카운트 서비스 시스템"입니다.
요약해서 얘기하면 지금 마케팅 부서와 AE 부서를 합쳐 어카운트 서비스 부서를 만들고 전자는 광고기획을 하는 "Planner", 후자는 광고주 영업을 하는 "Handler"가 되는 거죠. 일본의 광고회사가 이와 비슷하게 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이렇게 가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을 겁니다. 이렇게 한다고 할 때 지금의 AE는 환영할 겁니다.
그러나 지금의 마케터는 반대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건 지금처럼 광고의 상위개념을 다루는 이름좋은 마케터가 아니라 AE 시다바리 일을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큰 현실적인 문제! 무지개처럼 마케팅이 저 바로 산만 넘으면 있을 것같은 불쌍하고도 무서운 착각을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