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모든 것은 불생불멸(不生不滅)
師示衆云 法本不生 令卽無滅 更不要道纔語是生 不語是滅 諸人且作麽生 是不生不滅底道理 問 早是不生不滅麽 師云 者漢 只認得箇死語
조주선사가 시중하여 설했다.
“법(法)이란 본래 나는 것도 아니고(不生), 지금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不滅). ‘말을 꺼냈다 하면 나는 것이요, 말을 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것이다'고 말할 필요도 없으니, 여러분은 무엇을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도리라고 하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이것이 벌써 불생불멸(不生不滅)이 아닙니까?”
“이 놈은 그저 죽은 말만 알아듣는구나.”
우리나라 불교인이 가장 많이 암송하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心經)에 '是諸法空相(시제법공상) 不生不滅(불생불멸) 不垢不淨(불구부정) 不增不減(부증불감)' 즉, '이 모든 법의 텅 빈 모습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는 가르침이 있다.
'일체 법(法)은 공(空)이라, 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는 이 법어(法語)와 신심명의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가려 선택하지만 말라'는 법어(法語)는 깨달음의 폭포를 내리쏟는 두 개의 큰 물줄기로서, 각각 붓다의 말씀이라고 하는 교(敎), 붓다의 마음이라고 하는 선(禪)을 대표하는, 천고에 빛나는 말씀이라고 할 것이다.
'오직 가려 선택(揀擇)하지만 말라'는 이 말에 내 머릿속에서 전기가 찌릿 지나갔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모든 법은 불생불멸이다' 라는, 곧 무생법인(無生法印)을 분명히 깨치면 더 이상 마음 공부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뜻이 그토록 심오하고 쉽사리 체득하기도 어렵다. 이것을 많은 학자들이 논(論), 소(疏) 등에서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으로 다양하게 해설해 놓았지만, 선(禪)적인 이치는 우리나라 경봉선사의 한마디 법문으로 족하지 않을까 한다.
바로 모든 법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一切唯心造)라, "모든 법(法)은 이 마음(心)이니, 마음에는 형체(形相)가 없거늘 어찌 나고 없어지며, 더러움과 깨끗함과 늘고 줄어드는 것이 있으리오."
그렇지만 좀 더 교리적으로 풀어보면, '일체 법(諸法)'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 즉, 우리의 몸(물질)과 느낌, 생각, 의지, 의식 등의 마음(心) 작용을 포함하여, 모든 유, 무형의 사물, 현상, 관념 등을 총망라하여 말하는 것이다.
하늘, 땅, 물, 흙, 모래, 나무, 입, 코, 귀, 얼굴, 꽃, 새, 사자, 개, 사람, 귀신, 컵, 책상, 연필, 먼지, 아지랑이, 병(病), 바이러스, 전기, 에너지, 가속도, 중력, 슬픔(悲), 기쁨(喜), 괴로움(苦), 즐거움(樂), 행복, 불행, 선, 악, 지구, 우주 등등 한없는, 이 모든 것이 나지도 않고(不生), 없어지지도 않는다(不滅)는 말이다.
깨달은 자(覺者, 붓다)는 말씀하길,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수상행식(受想行識) 역부여시(亦復如是)'라, 풀이해 보면, '색(色), 곧 물질은 바로 텅 빈 것(空)이고, 텅 빈 것(空)은 바로 색(色), 물질이다, 느낌, 생각, 의지, 의식도 역시 이와 같다.' 라고 천명했다. 우리의 몸(色), 느낌(受), 생각(想), 의지(行), 의식(識)은 곧 모두 텅 빈 것(空)이고, 텅 빈 것(空)은 곧 몸, 느낌, 생각, 의지, 인식이라는 뜻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텅 비었다 이 말이다. 이를 보다 널리 확장하면, 세상의 모든 사물, 생명체, 현상, 관념, 즉 모든 법(法)이 공(空), 곧 마음임을 가르친 것이다.
마음이나 현상, 관념 등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 허공과 같이 텅 비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몸과 유리, 보석, 철, 구리, 흙, 물, 개, 호랑이 같은 온갖 사물, 생명체도 텅 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유리는 만지면 분명히 딱딱하고, 흙은 부드러운 게 손에 잡히는데 이게 텅 빈 것이라니 미친 소리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으로 보면 당연히 이와 같은 의문이 들겠지만, 불교(道)는 사물과 현상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본질을 파헤치고 그것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현상)의 근원을 꿰뚫어보면 그 속에는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더란 말이다. 밖으로 드러난 것만 관찰하고 분석한다면 세상에서 별 주목거리도 되지 않는다.
이 공(空)에 대하여 과학적 이론으로 밝힌 것이 바로 인과법, 연기설이다. 석가는 '모든 법(法)은 인연이 화합하여 생기기 때문에 자신의 성품(自性)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필경(畢境)에 공(空)이다” 라고 말했다. 모든 존재(물질, 생명, 현상)는 원인(因)과 조건(緣)이 화합하여 나타났고, 그 존재는 다만 가설적인 이름일 뿐이란 뜻이다.
한 예로서, 우리가 매일 마시고 쓰는 물(H2O)은 수소(H)와 산소(O)가 서로 인연이 되어 만나 화합하여 생겨났다. 액체인 물(水)은 단지 기체인 수소와 산소가 만나 결혼(화합)하여 낳은 아기 화합물(果)일 뿐이지, 물이라고 불리는 물 그 자체의 참된 형상(實相)과 성품은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물 스스로는 자신의 독립적인 성품, 즉 자성(自性)이 없다고 하며, 참된 자신의 형상이 없으니 공(空)이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값비싼 금(金)은 화학책에 원자번호 78번인 원소라고 한다. 화합물이 아니고 원자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금은 인연화합으로 생긴 물건이 아니므로, 모든 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생겼다고 하는 연기법이 틀린 것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금의 원자 속에도 원자핵과 중성자, 전자, 쿼크(quark) 등의 소립자(素粒子)들이 서로 인연이 되어 다정히 만나 화합하고 있다. 물론 이 소립자, 극미소립자들은 자체로 진공상태나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망치로 못을 치다가 빗나가 손을 때려 피가 나왔다고 하자. 엄청 아플 것이다. 그 아프다는 느낌,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망치로 맞은 인연 때문에 생긴 것(果)이지, 몸(손)이나 마음 스스로 그 느낌, 생각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몸, 마음도 전생의 업과 인연에 따라 부모의 몸에 의탁하여 생긴 것이지, 고정불변의 독립적인 영원한 실체는 없으며, 만약 독립적인 실체가 있다면 우리는 피터팬처럼 영원히 어린이로 살 수도 있어야 한다. 이것을 '일체 법에 내가 없다(諸法無我)'라고도 한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보겠다. 현대 최고의 물리학자들은 이 우주는 실제로 거의 텅 빈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 우주에 있는 모든 별, 태양, 지구를 포함한 은하와 수십, 수백억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단 등 모든 물질을 합한 밀도는 1평방미터(m³, 1m • 1m • 1m) 안에 수소 원자 0.2개 있는 것에 불과할 정도로 텅 비었으며, 이것은 이 지구상 가장 훌륭한 실험실에서 일반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상의 진공(眞空) 상태보다 더 밀도가 낮은 진공상태라고 한다. 또한 중성자 등 하나의 소립자(素粒子)도 마찬가지로 허공 속에 먼지 보다 작은 입자(粒子)가 2-3개 들어 앉아 있는 상태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 보다 더 작은,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보존(Higgs Boson)이 발견되었다. 아직 그 정체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질량도 없는 거의 적멸(寂滅)의 상태라고 한다.
영국 소설 걸리버여행기에서 주인공인 걸리버는 항해 중에 난파하여 소인국, 대인국, 하늘을 나는 나라 등을 여행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대인국에서는 어느 어린 소녀를 보니 피부에 큰 구멍이 숭숭 뚫리고, 태양의 흑점이나 블랙홀처럼 밑이 안보이는 시커먼 심연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현미경 같이 작은 눈으로 거대한 몸뚱이를 보면 벌집처럼 온통 허공으로 가득찬 육체로 보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비유하기를, 만약 지구만큼 큰 현미경으로 인간의 몸을 관찰하면 육체 분자 분자마다 텅빈 허공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우리 몸의 현상도, 본질도 공(空)이며, 몸을 좀먹는 암세포나 바이러스, 병원균 등도 현상과 본질은 아무 것도 없는 공(空)한 상태이다.
이와 같이 일체 법은 인연에 의하여 화합하여 생겨나지만, 그 본질은 능동적으로 행동할 '나(我)'라고 할 것이 없고, 독립적으로 움직일 참된 형체가 없으니 텅 비었다(空),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면 텅 빈 허공이 있는데, 이 허공을 볼 수 있고 잡을 수가 있는가. 이 텅 빈(空) 것은 아무 모습이 없다. 그래서 모습 없음(無相)이다. 이 텅 빈, 모습이 없는 것이 생겨나고 소멸할 수가 있겠는가. 허공은 원래 그냥 그 자리에 있다. 본래 생겨나지도 않으니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나 허공이 거기에 없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空)은 없으면서도 묘하게 있는 것, 즉 진공묘유(眞空妙有)이다. 이 불생불멸의 의미를 글로 설명하자면 아마도 '한강의 물을 다 마셔야 끝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기회를 기약하면서 수박겉핥기 식으로 짧으나마 이 정도로 설명드렸다. 마음공부를 위하여 더욱 깊은 참구가 필요하다.
조주는 이 불생불멸에 대하여 '말만 꺼내면 나는 것이고, 말하지 않으면 없어진다'고 했는데, 어떤 뜻인가. 우리가 안팎의 경계에 끌려가 인연에 응하여 한 마디 말을 하거나 한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법이 생기는 것이고, 이 생긴 법도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면 저절로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 법(말)은 자체 성품이 없기 때문에 생겨나지 않은 것(無生)이다. 이 무생법인(無生法印)을 완전하게 깨치면 보살 8지(地)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조주가 이 불생불멸의 도리가 무엇인지 누구든지 말해라고 대중들에게 말하자, 한 스님이 '조주스님의 이 법문이야 말로 불생불멸이 아닙니까?' 라는 식으로 질문한다. '이 놈은 그저 죽은 말만 알아듣는구나!'란 조주의 대답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화두를 깨뜨리고 난 뒤에도 이 무생(無生)의 도리를 모르면 이것을 확실히 체득할 때까지 계속 참구해야 한다. 무생(無生)은 무분별이다.
출처: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swc9105&logNo=80194042914&fromRecommendationType=category&targetRecommendationDetailCode=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