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 화엄사-1 written by 한국의 사찰과 문화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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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사에서 구례로 나가는 버스를 오랜 동안 기다리면서 지리산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신 한 분을 만나서 친구 삼아서 화엄사까지 함께 했습니다. 하엄사는 그 동안 지리산 등반을 몇 번 하면서도 그냥 지나치기만 했었지 경내로 들어가 본 적은 없어서 기대가 컸습니다. |
지리산 화엄사 일원(사적 및 명승 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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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주차장 주변 도로 옆에 있는 화엄사 부도밭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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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백두산의 정기가 남으로 흘러 내려오다 다시 솟았다 하여 두류산이라고 불리는 민족의 영산이다. 산기슭에는 실상사, 연곡사, 화엄사를 비롯하여 많은 절과 유적이 있다. 또한 지리산 일원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
화엄사 입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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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입구 전경 |
▲ 화엄사 입구 주변에 있는 남악사(전남 문화재자료 36호) |
화엄사는 지리산 반야봉과 노고단 자락의 남쪽 기슭 계곡에 위치하며 해발 250m 정도의 산간 구릉지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의 아름답고 화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화엄종의 맏형격인 큰 절로서 장엄한 품격을 갖추고 있다. 임진왜란(1592) 당시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1630년에 각성스님이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의 대부분을 다시 세웠다. |
화엄사를 들어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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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불이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신도비 모습의 이름모를 비가 서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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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화엄사에는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화엄사 4사자 3층석탑(국보 제35호) 등의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는데, 지리산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뛰어난 사적 및 명승지로 자리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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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문과 내부 좌우에 서 있는 문수·보현동자상과 인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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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문과 내부 좌우에 서 있는 사천왕상 |
화엄사는 지리산 반야봉과 노고단 자락의 남쪽 기슭 계곡에 위치하며 해발 250m 정도의 산간 구릉지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의 아름답고 화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화엄종의 맏형격인 큰 절로서 장엄한 품격을 갖추고 있다. 임진왜란(1592) 당시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1630년에 각성스님이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의 대부분을 다시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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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문 |
▲ 상왕문 |
▲ 당간지주 |
현재 화엄사에는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화엄사 4사자 3층석탑(국보 제35호) 등의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는데, 지리산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뛰어난 사적 및 명승지로 자리잡고 있다. |
화엄사 보제루(전남 유형문화재 4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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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경내로 들어서는 방향의 보제루 뒷모습 |
화엄사 보제루는 법요식 때 승려나 불교신도들의 집회를 목적으로 지어진 강당건물이다.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로, 맞배지붕집이다. 대웅전 앞 한단 낮은 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웅전 방향의 창문은 7칸 모두 큰 두짝의 빗살문을 달고 그 반대쪽 5칸은 널판지문을 달았으며 좌우 양칸은 문을 생략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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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보제루 전경 |
화엄사 경내로 들어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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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경내 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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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동오층석탑(보물 13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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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방향에서 바라 본 동오층석탑 전경 |
화엄사 대웅전 앞에는 동서로 쌍탑이 서 있다. 그 중에 동쪽에 서 있는 것이 이 탑으로 크기는 서로 비슷하지만 서탑이 조각과 장식이 화려한 반면, 동탑은 아무런 장식없이 단정하다. 탑은 1단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서탑의 기단이 2단인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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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부는 1층 몸돌이 높이에 비해 넓어 안정감이 있다. 또한 각 층 몸돌 너비의 줄어드는 정도에 비해 높이의 줄어드는 정도가 적어서 늘씬해 보인다. 지붕돌은 매우 평평하고 얇은데 몸돌을 따라 너비의 줄어드는 정도가 큰 편이며, 그 중 1층과 2층의 차이가 한층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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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제루 앞에서 바라 본 서오층석탑(좌)과 동오층석탑(우) 원경 |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과 복발이 있고, 다시 사잇기둥을 두어 보주를 올려 놓았다. 이 탑은 일반적인 통일신라시대의 탑이 2단 기단인데 비해 1단 기단으로 되어 있고, 기단부의 돌구성이 다소 느슨해진 경향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만들어진 시기는 서탑과 비슷한 9세기 경으로 짐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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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황전에서 바라 본 동·서 오층석탑 전경 |
화엄사 서오층석탑(보물 13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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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제루 방향에서 바라 본 서오층석탑 전경 |
화엄사 대웅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쌍탑 가운데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동탑이 아무런 조각이 없는 반면 서탑에는 조각과 장식이 가득하다.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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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 기단 각 면에는 안상 속에 12지신상을 방향에 따라 배치하였고, 윗층 기단은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나뉜 두 면에는 8부신중을 조각하였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이며 몸돌에는 각 층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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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오층석탑의 1층 몸돌에 새겨진 사천왕상 모습 |
1층 몸돌 4면에는 사천왕상을 조각 배치하였다. 지붕돌은 각 층마다 밑면에 5단의 받침을 갖추고 처마밑은 수평이 되게 하였다. 머리장식으로는 2층의 단이 있는 받침 위로 보주가 놓여 있다. 석탑의 형태는 높고 가파르면서도 상하의 체감비율이라든지, 지붕돌을 경쾌하게 처리한 수법 등이 잘 조화되어 우아한 기품을 지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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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오층석탑의 아래층 기단에 새겨진 12지신상 모습 |
특히 아래층 기단의 12지신상 조각은 석탑에서 흔하지 않은 예의 하나이다. 위·아래층 기단과 1층 몸돌 세 곳에 나타난 조각상은 그 배치에 보다 신중을 기하였고, 특히 12지신·8부중·4천왕 모두 불교의 수호신적 기능을 지닌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탑 안에 모셔진 사리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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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오층석탑 하단에 새겨진 안상 |
▲ 서오층석탑의 배례석 |
조각상을 각 부분에 새긴 점이나, 지붕의 조형이 보다 유연한 느낌을 주는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석탑 남쪽으로는 안상과 연꽃이 조각된 배례석이 놓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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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제루 좌측에 있는 운고각 |
▲ 보제루 우측 모습 |
▲ 보제루 우측에 있는 범종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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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오층석탑 방향에서 바라 본 동오층석탑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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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제루 방향에서 바라 본 서오층석탑과 각황전 모습 |
화엄사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보물 134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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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소재하고 있는 화엄사 경내 서오층석탑(보물 제133호)의 해체보수작업을 하던 중 탑 내부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의 일괄 유물이다. 백지묵서다라니경, 청동불상범 외에 청동방울과 장식, 철제칼, 금속편, 수정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탑인은 한국 고대인쇄사에 있어서 초기단계를 알게 해주는 국내 유일의 실물자료이다. 청동불상범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유일한 불상주조용 틀로서 불상의 대량생산을 알려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 문화재청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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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2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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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의 사찰과 문화유산 원문보기 글쓴이: 광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