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초서 독후감(7월, 박희택)

[열행]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_찬란한 고독을 위한 릴케의 문장(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18).

인생은 옳은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속표지, 원래 제9편지에 나오는 구절임)

들어가는 말(카푸스의 서문)

차분하고 진지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소년으로, 언제나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강제적인 기속사 생활을 끈기 있게 견뎌내고 4년 후에는 다른 생도들과 함께 메리시 바이스키르헨에 있는 육군고등실업학교로 진학했지만, 그곳에서는 그의 체질에 충분한 저항력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으므로, 그의 부모가 학교를 자퇴시키고 고향인 프라하에서 학업을 계속하게 했다는 것이다. (12쪽) <소년 릴케에 대한 묘사>

나(카푸스)의 시에 덧붙일 편지를 쓰고 말았다(1903년), 그 편지에서 나는 전에 없이 내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 후 누구에게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몇 주일 지나서 마침내 답장이 왔다. 파란 봉인의 그 편지는 파리 소인이 찍혀 있고, 손에 들자 묵직했다. 그리고 봉투에는 명료하고 아름답고 정확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 1908년까지 계속되던 편지 왕래는 그 후 차츰 소원해져서, 마침내는 끊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내가 생활에 쫓겨, 시인의 따뜻하고 상냥하고 감동적인 심려가 나로 하여금 들어서지 못하게 하던 영역으로 내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모은 열 통의 편지이다. 이것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살고 또한 창작한 세계를 인식하는 데 중요하다. 그리고 또 오늘과 내일의 많은 성장해가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하다.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위대한 사람이 이야기할 때 젊은이들은 입을 다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12-13쪽) <릴케의 필체와 심려, 릴케 편지글의 가치>

* 릴케는 카푸스에게 6년 간에 걸쳐 10통을 보냈음(1903년 6통, 1904년 3통, 1908년 1통). (박희택)

제1편지(프랑스 파리, 1903년 2월 17일, 릴케 만28세)

하나의 예술작품을 대하는 데 비평적인 언사로 대하는 것 만큼 부당한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많든 적든 그럴싸한 오해로 끝나기 마련입니다. 사물은 모두 세상 사람들이 믿게 하려는 만큼 그렇게 쉽게 파악되는 것도, 말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개의 일은 말로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말 따위는 전혀 뛰어든 적이 없는 세계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어느 무엇보다도 말로써 다 할 수 없는 것이 예술작품입니다. 그것은 비밀로 가득 찬 존재로서, 그 생명은 하루하루 소멸해가는 우리의 생명 곁에서 영속하는 것입니다. (15-16쪽) <비평관과 언어관>

* 비평에 대한 비판 첫 번째임. (박희택)

당신은 잡지에 시를 보냅니다. 당신은 그것을 다른 시와 비교합니다. 그리고 어떤 편집자가 당신의 시를 거절하는 일이 생기면, 당신은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제가 충고를 드려도 좋다고 하셨으니까) 저는 당신에게, 그러한 일은 일절 그만두기를 부탁드립니다. 당신은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무엇보다도 당신이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충고를 하거나 도와줄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16-17쪽) <바깥으로 돌린 눈을 거두어 들이기>

단 하나의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펴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글쓰기를 거부당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를 스스로에게 고백해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이 맞는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마음 속을 파헤쳐 들어가서 깊은 대답을 찾으십시오. 만약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만약 당신이 이 진지한 물음에 굳세고도 단순하게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대답할 수가 있다면, 그때에는 당신의 생활을 이 필연성에 따라 구축하십시오. (16-17쪽) <내면으로 들어가 글을 써야만 하는 필연성 찾기>

당신의 생활은 가장 하잘것없는, 가장 사소한 순간에 이르기까지 이 절박감의 표시가 되고 증명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때에는 자연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때에는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잃는 것을 마치 인류 최초의 사람처럼 표현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연애시를 쓰셔서는 안 됩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잘 알려진 평범한 형식은 피하십시오. 이것은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훌륭하고 부분적으로 매우 뛰어난 작품이 옛날부터 많이 있는 곳에서 독자적인 것을 만들어내려면, 위대하고 성숙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7-18쪽) <글을 쓰는 방법(1)과 모방 조심하기>

일반적인 주제는 피하고, 당신 자신의 일상생활이 제공하는 주제로 달아나십시오. 당신 자신의 슬픔이나 소망, 스쳐 가는 생각, 무엇인가의 아름다움에 대한 신앙을 그려보십시오. 이 모두를 열렬하고 조용하며, 겸허한 솔직함으로 그리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당신 주위의 사물이나 당신 꿈의 이미지, 당신의 추억 속 대상을 이용하십시오. 만약 당신의 일상이 가난하게 여겨진다면, 그 일상을 비난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비난하십시오. (...) 왜냐하면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가난이라는 것도, 가난하고 하잘것없는 생활의 장소라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18쪽) <글을 쓰는 방법(2)과 작자의 가난 대하기>

먼 과거의 가라앉아버린 감동을 되살리도록 노력하십시오. 당신의 개성은 확고해지고, 당신의 고독은 폭을 더해 차츰 밝아가는 하나의 주거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소음은 멀리 관계도 없이 그저 스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내면으로의 전향에서, 자기 세계로의 침하에서 시가 태어날 때, 당신은 그 시가 좋은 시인지 누구에게 물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잡지에 이들 작품에 대한 흥미를 환기시키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들 작품에서 당신이 타고난 소중한 재산, 당신 생명의 한 조각, 생명의 목소리 같은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작품은 그것이 필연에서 생겨났다면 좋은 것입니다. 이러한 기원의 본래적인 자세 속에야말로 예술작품에 대한 비판이 있지, 그 이외의 비판은 없습니다. (18-19쪽) <글을 쓰는 방법(3)과 비평을 넘어선 고독의 시 창작>

* 비평에 대한 비판 두 번째임. (박희택)

* 릴케는 고독을 단순한 외로움이 아닌 실존(현실존재, 현실을 자각하는 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는 것임. (박희택)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당신의 생명이 솟아나는 깊은 밑바닥을 찾아보십시오. 그 원천에서 당신은, 창조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대답을, 그것이 들려오는 그대로의 의미를 밝히려고는 하지 말고 받아들이십시오. 아마도 당신이 예술가가 될 사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당신은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외부에서 올지도 모르는 보수에 대해서는 절대로 개의치 말며, 그 운명을, 운명의 무게와 위대함을 참고 견디십시오. 왜냐하면 창작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하나의 세계여야 하며, 모든 것을 자기 자신 속에서, 또 자신이 연관된 자연 속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19-20쪽) <예술가의 운명의 무게와 위대함을 참고 견딤>

* '인내'에 대한 첫 번째 권고임. (박희택)

당신은 이렇게 자신의 내면이나 고독 깊이 내려간 후에도 시인이 되는 것을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될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시인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내가 당신에게 부탁하는 저 내면으로의 전향이 헛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떻든 당신의 생명은 그때부터 독자적인 길을 찾아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훌륭하고 풍요롭고 먼 길이기를, 말로는 다 할 수 없을 만큼 저는 바라고 있습니다. (...) 당신이 자신의 발전을 통하여 조용하고도 진지하게 성장을 이루어가시라고 충고드리고 싶습니다. (20쪽) <고독과 내면으로의 전향이 헛된 일이 아님>

제2편지(이탈리아 피사 근교 비아레조, 1903년 4월 5일, 릴케 만28세)

결국에 있어서, 그리고 바로 가장 깊고 가장 중요한 일에 있어서 그야말로 우리는 말할 수 없이 고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충고를 한다거나, 나아가 돕거나 할 수 있으려면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고, 그것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또한 많은 것이 성공해야 하고, 사물의 완전한 질서체계가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23쪽) <가장 깊고 중요한 일은 고독함>

* 파란색 부분과 유사한 36쪽의 표현을 볼 것. (박희택)

아이러니에 지배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비창조적인 순간에는. 창조적인 순간에는 오히려 삶을 파악하는 수단의 하나로 그것을 이용해 보십시오. 순수하게 쓴다면 아이러니 또한 순수합니다. (...) 아이러니와의 친밀도가 깊어지는 것이 두려워진다면, 그때에는 아이러니가 그 앞에 서면 보잘것없고 듬직하지 못한 것이 되어버릴 그런 위대하고 진지한 대상으로 눈을 돌리십시오. 사물의 깊이를 추구하십시오. 아이러니는 결코 거기까지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위대함의 가장자리까지 갔을 때, 이 파악의 방법이 당신 본질의 필연성에서 나오는지를 시험해 보십시오. (23-24쪽) <아이러니에 대한 릴케의 관점>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책 중에서 제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은 극히 소수입니다. 그리고 제가 어디에 있든 언제나 제 짐 속에 있는 것은 두 권뿐입니다. 그것은 여기에서도 바로 제 곁에 있는데, 한 권은 성서이고, 다른 한 권은 덴마크의 위대한 시인 옌스 페테르 야콥센의 책입니다. (...) 야콥센의 [여섯 단편]이라는 얇은 책자와, 그의 장편소설 [닐스 뤼네]를 구해서 첫 번째 책 처음에 나오는 <모겐스>라는 단편부터 읽기 시작하십시오. 한 세계의 행복이, 부(富)가, 이해하기 어려운 위대함이 당신을 감쌀 것입니다. 잠시 동안 이들 책 속에서 생활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에서 배울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배우십시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이들 책을 사랑해 주십시오. 그 사랑은 몇 천 배가 되어 당신에게 되돌아올 것입니다. 설령 당신의 일생이 어떻게 되든 그 사랑은 당신의 갖가지 경험이나 환멸, 기쁨 등의 모든 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실이 되어 당신 생성의 직물 사이를 꿰뚫어갈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24-25쪽) <성서와 야콥센의 작품을 사랑함>

* 야콥센(1847~1885, 38세로 죽음) : 프로이트, 릴케, 로런스 등에 영향을 줌. 국내에는 [베르가모의 페스트 외](열린책들 세계문학 249, 야콥센 중단편 전집, 2020) 한 권만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음. (박희택)

창작의 본질에 대해서, 그 깊이나 영원성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알게 된 것은 누구의 덕인가, 그 이름을 들라고 한다면 제가 말할 수 있는 이름은 오직 둘뿐입니다. 위대한, 위대한 시인 야콥센과, 현존하는 모든 예술가 가운데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입니다. (25쪽) <야콥센과 로댕을 찬사함>

제3편지(이탈리아 피사 근교 비아레조, 1903년 4월 23일, 릴케 만28세)

이번에는 [닐스 뤼네]를 펼쳐 보십시오. 훌륭하고 깊이가 있는 책입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을수록, 인생의 가장 미미한 향기부터 인생의 가장 무거운 과일의 풍요한 깊은 맛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함유되어 있는 듯 여겨집니다. 거기에 이해되고 파악되고 경험되지 않았던 것, 추억의 미미하게 떨리는 여운 가운데 인식되지 않았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26-27쪽) <야콥센의 [닐스 뤼네]를 찬사함>

* [닐스 뤼네]는 무신론자의 성서로 불림. (박희택)

어떠한 체험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으며, 아무리 사소한 일도 운명처럼 전개되어 나갑니다. 그리고 운명 자체는 불가사의한 넓은 직물 같아서, 그 속에서는 한 올 한 올의 실이 한없이 상냥한 손에 의해 짜이고, 다른 실 옆에 나란히 놓이며, 다른 수백의 실에 의해 지탱되어 있습니다. 처음으로 이 책을 읽는다는 커다란 행복을 당신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새로운 꿈 속을 지나가듯 당신은 이 책이 주는 무수한 놀라움 속을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독자는 나중에라도 몇 번이고 경탄하며 이들 책 속을 지나갈 것입니다. 이들 책은 그 놀라운 힘과, 처음으로 읽을 때 독자에게 준 동화 같은 느낌을 조금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27쪽) <야콥센의 [닐스 뤼네]에 보이는 운명의 의미와 책을 찬사함>

그 후에 당신은 마리 그루베의 운명과 동경을 그린 훌륭한 책을 읽어야 합니다. 또 야콥센의 편지와 일기와 단편적인 글, 마지막으로 (그저 그런 번역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무한한 울림을 전하며 살아 있는 그의 시를 읽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회가 있는 대로 야콥센의 아름다운 전집을 구입하시기를 권합니다. 여기에는 위에서 말한 작품이 모두 실려 있습니다. 총 세 권으로, 번역도 좋습니다. 라이프치히의 오이겐 디드리히스 출판사에서 출간했는데, 가격도 제 기억으로는 아마도 한 권에 5마르크나 6마르크에 불과할 것입니다.) <[마리 그루베 부인]과 야콥센의 전집을 읽기를 권함>

* 마리 구루베의 운명과 동경을 그린 훌륭한 책은 [마리 구루베 부인]을 가리킴. (옮긴이 주)

심미적이거나 비평적인 것은 되도록 읽지 마십시오. 그러한 것은 생명이 없는 경화된 상태에서 화석화한 무감각한 당파적 견해든가, 아니면 오늘은 이 견해가, 내일은 그 반대 견해가 승리한다는 식의 재치 있는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술작품은 무한히 고독한 것으로서, 비평으로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서 공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논쟁이나 비평이나 해설에 대해서는 언제나 당신 자신과 당신 자신의 감정을 옳다고 하십시오. 만약 당신이 옳지 않다 하더라도 당신의 내적 생명의 자연스러운 성장이 서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신을 전과는 다른 인식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당신 자신의 판단이 조용하고 안정되게 발전하도록 두십시오. (28쪽) <비평에 대한 비판>

* 비평에 대한 비판 세 번째임. (박희택)

그것은 모든 진보와 마찬가지로 내면의 깊은 곳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며, 무엇에 의해서도 강제당하거나 촉진되는 것이 아닙니다. 달이 찰 때까지 잉태하였다가 낳는 것, 이것이 전부입니다. 모든 인상, 모든 감정의 싹을 완전히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어두운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곳에서,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오성이 도달할 수 없는 곳에서 완성하여 깊은 겸손과 인내로 새로운 분만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 이것만이 예술가의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해에서도, 창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9쪽) <잉태하고 분만하는 예술가의 생활>

* '오성'은 '지성'에 준하는 표현임. 칸트는 마음의 네 가지 인식능력을 <감성(직관력) - 상상(도식력) - 오성(지성력) - 이성(추론력)>으로 [순수이성비판](1781)에서 정리한 바 있음. (박희택)

* '인내'에 대한 두 번째 권고임. (박희택)

그곳에서는 시간으로 재는 법이 없습니다. 해[年]라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10년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술가란 계산하거나 세는 것이 아니고, 수목처럼 성숙하는 것입니다. 수목은 그 수액의 흐름을 재촉하지 않고, 봄날의 폭풍우 속에 유유히 서서 혹시 여름이 안 오는가 하고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여름은 꼭 옵니다. 그러나 여름은 마치 눈앞에 영원이 있는 듯 아무 근심도 없이 조용히 드넓은 마음으로 기다리는 인내심 강한 사람들에게만 찾아옵니다. 저는 그것을 날마다 배우고 있습니다. 괴로워하면서도 배우고, 그 괴로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인내야말로 전부입니다. (29쪽) <수목과 같이 인내심 강하여야 하는 예술가>

* 인내에 대한 세 번째 권고임. (박희택)

사실 예술적 체험은 성적 체험과 그 고통이나 쾌감에 있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흡사하므로, 이 두 가지 현상은 본래 같은 하나의 동경과 행복이 형태를 달리하고 나타났을 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정열이라고 하는 대신 성(性), 크고 넓고 순수한 의미로, 어떤 교회의 오류에 의해 의심쩍은 뜻으로 변형되지 아니한 의미로 성이라고 해도 좋다면, 그(시인 리하르트 데멜)의 예술은 아주 위대하고 한없이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마치 산에서 솟아나듯이 솟구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힘은 반드시 늘 성실하고 허세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또한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어려운 시련의 하나입니다. 창작하는 사람이 자기 최선의 장점에서 그 천진난만함이나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한다면, 그는 언제나 그 장점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 예감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힘이 술렁거리며 그의 본질 속을 지나서 성의 세계에까지 이를 때, 그 힘이 필요로 하는 정도로 완전히 순수한 인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30-31쪽) <리하르트 데멜에 대한 비판과 창작하는 사람이 순수함을 잃지 않아야 함에 대한 견해>

* '어떤 교회의 오류에 의해 의심쩍은 뜻으로 변형되지 아니한 의미로 성'은 '본성'을 말함. (박희택)

* '장점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 예감하지 않는 사람'은 '무위'의 사람이라 할 수 있음. (박희택)

제4편지(독일 브레멘 근교 보르프스베데, 1903년 7월 16일, 릴케 만28세)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라도 극히 미미한 것, 말로는 거의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해명해야 할 때에는 말을 제대로 찾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언제까지나 해답을 얻지 못한 채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제 눈을 쉬게 하고 힘을 되찾게 하는 것과 흡사한 사람을 당신이 의지하고 있다면 언젠가 그 해답을 얻으리라 믿습니다. (...) 그리고 아주 소박하게 하나의 섬기는 자로서 가난해 보이는 것의 신뢰를 얻으려 노력한다면, 그때에는 아마도 놀라서 뒷걸음치는 오성이 아니라, 당신의 가장 내면적인 의식이나 각성이나 지식 속에서 모든 것이 한층 용이해지고, 통일적인 것이 되고, 어떤 의미에서 유화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34-35쪽) <내면적인 의식이나 각성이나 지식 속에서 표현의 답을 찾게 됨>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당신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당신 마음 속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인내를 가져 주십시오. 그리고 물음 그 자체를 닫혀 있는 방처럼, 아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해 주십시오. 지금 당장 해답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아마도 당신이 해답에 맞추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당신에게 그 해답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산다는 것은 긴요한 일입니다. 지금은 물음을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당신은 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먼 미래의 어느 날, 해답 속으로 들어가서 해답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자신 속에 조형하고 형성하는 가능성을, 특히 행복하고 순수한 삶의 본래적인 자세로서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향하여 자신이 뻗어가게 하십시오. 그러나 오는 것은 깊은 신뢰감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만약 그것이 당신의 의지에서, 당신 내부의 어떤 필요에서 온다면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아무것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35-36쪽) <인내와 물음, 가능성과 의지>

* '인내'에 대한 네 번째 권고임. (박희택)

* 헨리 나우웬의 [영성 수업] 제1장에 인용된 문장들임(두란노 번역출간본 29쪽). (박희택)

* '내부'는 '마음'을 지칭한 것임. (박희택)

성(性)은 어려운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과해진 것은 어렵습니다. 진지한 것은 거의 모두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진지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인식하고 자신에게서, 자신의 소질이나 성질에서, 자신의 경험이나 어린 시절 그리고 힘에서, 성에 대한 완전히 독자적인 (인습이나 관습의 영향을 받지 아니한) 관계를 거둘 수 있다면, 당신은 이제 자기 자신을 잃지 않을까, 자신의 최고 소유물에 어울리지 않게 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 우리가 맛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나쁜 것은 대부분 사람이 이 경험을 오용하고 남용하는 데 있으며, 그것을 인생의 정점을 향한 집중으로 삼지 않고 인생에 지쳤을 때의 오락으로, 자극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36쪽) <성(性)에 대한 릴케의 관점>

* 파란색 부분과 유사한 23쪽의 표현을 볼 것. (박희택)

사실 인류는 먹는 것조차 무엇인가 다르게 변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즉 한쪽에서는 결핍이, 다른 한쪽에서는 과잉이 이 욕구의 투명성을 흐리게 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갱신하는 깊고 단순한 모든 필요가 마찬가지로 흐려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개개의 인간은 자신을 위하여 그것을 정(淨)하게 닦고, 맑은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다른 것에 너무 의지하고 있는 독립성 없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고독한 사람에게는 가능합니다). 동물이나 식물에 있어서는 모든 아름다움이 사랑과 동경과의 조용한 영속적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상기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식물 보는 듯이 동물을 보았으면 합니다. 동물이 육체적 쾌락이나 육체적인 고통에서가 아니라, 쾌락이나 고통보다 훨씬 크고 의지나 저항보다 훨씬 강력한 필연성에 따라서 끈기 있고 순순히 결합하여 번식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았으면 합니다. (36-37쪽) <욕구의 투명성과 고독한 사람>

그리고 정신적으로 보이든 육체적으로 보이든 결국은 하나의 것인 자신의 생산력에 대해 인간이 경건한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창조도 육체적 창조에 유래하는 것, 육체적 창조와 동일한 본질이어서, 말하자면 육체적 쾌락의 보다 미묘한, 보다 황홀한, 보다 영원적인 반복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자가 되어 낳고 형성하려는 생각"은 이 세상에서 끊임없는 위대한 실증과 실현이 없는 한 헛된 것입니다. (...) 창조자의 사상에는 수천의 잊힌 사랑의 밤이 되살아나서, 그 사랑을 고귀성과 탁월성으로 가득 채웁니다. (...) 그리고 미래를 불러들입니다. 가령 그들이 잘못하여 무작정 끌어안는다 하더라도, 그래도 미래는 오고 새로운 인간이 일어섭니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한 것처럼 보이는 우연 위에 법칙이 싹트고, 그 법칙에 따라서 저항력 있는 힘찬 정자가 개방적으로 그를 맞이하는 난자를 향해 돌진합니다. 당신은  표면만 보고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깊은 곳에서 모든 것은 법칙이 됩니다. (37-38쪽) <창조와 창조자, 미래와 새로운 인간>

당신은 명칭의 다양성과 사태의 복잡성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마도 모든 것 위에 공통의 동경으로서 위대한 모성이 있을 것입니다. (...) 그리고 남성에게도 모성이, 육체적인 모성과 정신적인 모성이 있는 듯합니다. 그의 생식작용도 일종의 분만이며, 또한 그가 가장 내적인 충실에서 창작할 때 역시 분만입니다. 아마도 양성은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친근한 것이며, 세계의 커다란 혁신은 아마도 남성과 처녀가 모든 그릇된 감정이나 혐오감에서 해방되어, 서로 대립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오누이로서, 이웃으로서 서로를 찾아 인간으로서 결합하여 소박하고 진지하고 끈기 있게 그들에게 주어진 어려운 성을 함께 감당하는 데에서 성립될 것입니다. (38-39쪽) <남성의 모성과 양성의 결합>

아마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능할 모든 것을 고독한 사람은 지금 벌써 준비할 수 있고, 조금 덜 망설이는 그의 손으로 쌓아 올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다운 비탄의 소리를 내며 당신에게 주는 고통을 견디십시오. 왜냐하면 당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멀게 여겨진다고 당신은 말합니다만, 그것은 당신의 주변이 넓어지기 시작한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의 가까운 것이 멀리에 있다면, 당신의 영역은 이미 별들 사이에까지 퍼져서 실로 커다란 것입니다. (39-40쪽) <고독을 사랑하고 고통을 견딜 것>

* '인내'에 대한 다섯 번째 권고임. 릴케가 고독과 더불어 인내를 이렇게 거듭거듭 말하고 있는 것은 인내를 고독의 외연으로 보는 까닭에서임. (박희택)

당신이 누구도 데리고 들어갈 수 없는 당신의 성장을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뒤에 처진 사람들에게 친절하십시오, (...) 그들이 가진 색다른 형식의 생활을 사랑하고, 당신이 신뢰하는 고독을 두려워하는, 늙어가는 사람들에게 관대해지십시오. (...) 부모에게 조언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이해받으리라고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해서 유산처럼 축적되는 사랑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 사랑에는 하나의 힘과 또한 아무리 멀리가기 위해서라도 벗어나서는 안 될 하나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40-41쪽) <자신의 성장을 기뻐하고 처진 사람들에게 친절할 것>

당신이 우선 하나의 직업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것은 당신을 독립시키고, 어떠한 의미에서도 당신을 완전히 당신 자신에게 의지케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가장 깊은 내부 생명이 이 직업의 형식에 의하여 제약을 느끼는지를 끈기 있게 기다려 보십시오. (...) 그러나 당신의 고독은 당신이 아주 소원한 처지의 한가운데 있을 때에도 당신의 지주가 되고 고향이 될 것입니다. 그 고독에서야말로 당신은 당신의 모든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41쪽) <작가의 직업과 실존의 본질로서의 고독>

제5편지(이탈리아 로마, 1903년 10월 29일, 릴케 만28세)

편지를 쓰는 데 있어서 저는 꼭 필요한 도구 이상의 것, 즉 약간의 고요와 고독, 그리고 과히 서먹서먹하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42쪽) <릴케가 필요로 하는 집필조건>

마구 재잘거리는(정말 너무 지껄여댑니다) 강압적인 많은 것에서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영원성과 우리가 은밀히 마음을 줄 수 있는 고독이 담겨 있는 극히 소수의 것을 서서히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44쪽) <영원성과 고독에 대한 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