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하나님의 유머
1.하나님의 유머
기독교 철학자인 엘튼 트루블러드(Elton Trueblood)의 저서 중에는 ‘그리스도의 유머’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하나님은 매우 유머가 풍부한 분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유머 넘치는 분인지 알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께 다가가는 방법은 훨씬 더 부드러워지고 훨씬 더 친밀해질 것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성경 속에 그 예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셨을 때의 상황은 거의 절망적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가 다 되어가고 그의 아내는 이미 경수가 끊어져 생산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사라가 그 뒤 장막문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킥킥거리고 웃었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웃기시네요. 제가 이 나이에 어떻게 아이를 낳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 부부에게 약속한 자녀를 주셨고 웃음이라는 뜻의 이삭을 아들로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웃기셨다는 뜻입니다.
한 여집사님 한 분이 어느 날 저에게 찾아와서는 “목사님, 제가 하나님을 웃겼더니 하나님이 제 기도에 응답하셨어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인지 물어보니까 이러한 내막을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오랜 시간동안 우리 남편을 위해 금식하고 통곡하며 기도도 해 봤지만 소용없었어요. 오히려 남편은 교회에 나올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요지부동이었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예배 때 남편 구두를 교회 가지고 나와서 강대상에 놓고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구두가 먼저 나왔사오니 주인도 이 구두 따라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요. 제가 기도하긴 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우스워서 한참을 웃었지요. 그래서 그날 다른 기도는 하나도 못하고 실컷 웃다가 돌아갔는데 그 다음 주일날 남편이 갑자기 저를 따라 교회 간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더니 요즘 계속 교회에 나오고 있답니다. 제가 하나님 한 번 웃겼더니 제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16: 11
2.용서받을 기회
미국에서 서부를 개척할 당시에 텍사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텍사스에서는 하도 살인사건이 많이 일어나 아예 살인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한다는 법을 제정해 놓았습니다.
어느 날 한 술집에서 젊은이들이 서로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한참 흥겨워진 술자리에서 갑자기 총성이 들렸습니다. 그 중에 한 젊은이가 옆에 앉은 친구를 권총으로 쏴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총을 쏜 사람이 평소에 아주 선량한 사람으로 언제나 이웃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던 젊은이였습니다.
살인을 한 젊은이가 사형에 처할 운명이 되자 그 젊은이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구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지역 주민들의 간곡한 바램이 담긴 탄원서가 주지사에게 전해졌습니다. 탄원서를 읽은 주지사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그 청년을 만나 죄를 용서해 주겠다고 주민들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죄를 짓고 난 뒤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렸습니다. 그는 자기의 삶을 자포자기하여 비뚤어진 생각만 하고 나중에는 행동까지 난폭해졌습니다. 주지사가 사면장을 가지고 그를 면회하려고 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여러 사람의 구명 운동 덕분에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큰 은혜를 그는 저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으로 인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 때문만이 아니라 그를 용서하려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기 때문에 용서받을 기회를 잃고 결국은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브리서 12:17
3.설교는 곧 삶
어느 시골 교회에 한 목사님이 취임하여 오셨습니다. 목사님은 첫 취임 예배 때 아주 감동스럽고 놀라운 설교를 해서 은혜 받은 교인들이 너무도 기뻐했습니다. 교인들 모두가 새로 오신 목사님을 좋아했고 정말 잘 모셔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주일이 지나서 설교를 듣는데 그 목사님께서 취임 예배 때 하신 설교와 똑같은 설교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지난 주일에 설교하신 것을 혹시 잊었거나, 아니면 취임 예배로 정신이 없어서 설교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착각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주간에도 그 목사님은 취임 예배 때 했던 설교를 또다시 하셨습니다. 교인들은 “우리가 목사님을 모셔와도 단단히 잘못 모셔왔다”고 수군거리며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한 용감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찾아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언제 새로운 설교를 시작하실 겁니까?”
이 질문에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정말로 삶 속에 적용할 그 때 저는 새로운 설교를 시작할 것입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서1:22
4.인생의 초점
세계에서 부자로 유명한 록펠러(Rockefeller)는 33세가 되었을 때 최초로 자기 인생에서 100만 불의 순수한 이익을 얻는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43세에는 미국에서 가장 커다란 회사를 소유했고 53세에는 억만 장자가 되어 세계 최대의 부호(富豪)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53세까지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알로피셔(alopecia)라는 탈모증 비슷한 병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몸이 초췌하게 말라 가는 병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의사로부터 결정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이런 상태로 1년을 견딜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 선언을 들은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 당시 사업은 너무나도 잘돼서 하루에 100만 불을 벌었지만, 그는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는 괴로운 인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는 순간 이 많은 재산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새 괴로워하다가 한 순간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 되신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와 함께 새벽을 맞이한 록펠러의 인생은 그 다음부터 달라졌습니다. 피상적으로 교회에 나갔던 모습은 사라지고 성실하게 교회에 출석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난 후 교회 하나를 지었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뉴욕에 있는 유명한 리버사이드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는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료사업을 위해서 자기 모든 재산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러한 결단을 내린 직후 이상하게도 그는 잘 먹기 시작했고 잠도 잘 자게 되었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거의 55세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이 록펠러는 98세까지 살았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5.창조적인 삶
미국 샌프란시스코 남부에 가면 꽃들이 많이 있는 로스 알토힐이라는 꽃마을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는 아주 아름다운 꽃들이 있는데 그 곳에 아름다운 꽃이 피게된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에 이 도시에는 요한이라는 우편 배달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똑같은 자전거를 타고 항상 똑같은 길로 “편지 왔어요, 소포 왔어요”라고 외치며 우편물을 배달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쳇바퀴처럼 순환되는 삶을 15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중년이 되면서 인생과 직업에 대한 회의와 위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단순하고 단조로운 삶에 싫증이 났습니다. 그는 이 우편 배달 일을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로 바꿀 것인지, 바꾼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매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 일을 계속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그 일이 너무나 지겹고 지루한데 어떻게 계속하느냐고 묻자 하나님께서 그 일을 계속하면서 보람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 이 문제로 기도하던 그에게 어느 날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그것 참 좋은 방법이로구나. 자, 이제부터 다르게 살아보는 거야.’
그는 여전히 똑같은 직업을 가지고 똑같은 거리를 똑같은 자전거로 똑같은 말을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우체부 가방 안에 꽃씨를 넣고 다니며 지나가는 집집마다 계속해서 꽃씨를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꽃씨는 죽기도 했지만 어떤 꽃씨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가 지나가는 길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지나가는 거리는 꽃의 거리가 되었고 그가 다닌 마을은 꽃마을이 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 17
6.죄에 대하여 죽은 자
한국 초대 교회에서 아주 유명한 김익두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다음 맨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김익두는 죽었다.”
사람들은 깡패 김익두가 죽었다는 부고장을 받고는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평소에 그 분이 얼마나 잔인하고 못된 일을 많이 저질렀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많은 시장 한복판에 그 죽었다던 김익두가 나타났습니다. 목사가 된 그의 손에는 시커먼 성경책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은 변화된 그를 시험해 보려고 지나가는 김익두 목사님에게 물 한 통을 뒤집어 씌었습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물을 툭툭 털고는 물 끼 얻은 사람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옛날 김익두가 죽었다는 그 사실을 기뻐해라. 살았다면 너는 요절이 났을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로마서 6:11
7. 왕자가 된 거지
어느 날 임금님이 궁궐 밖을 나가서 암행 시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은 이곳 저곳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다리 밑에서 한 거지 소년을 보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이 보기에 그 소년의 모습은 너무나 더럽고 꾀죄죄해서 애처롭기가 그지없었습니다. 임금님은 그 소년을 궁궐로 데려가 모든 신하들 앞에서 왕자로 삼겠노라고 공포합니다. 이제 소년은 더 이상 거지 신분이 아니라 왕자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여기 저기가 찢어져 누더기가 된 자기 옷을 벗어 던지고 화려한 장식과 좋은 옷감으로 만든 왕자의 옷을 걸쳤습니다. 식사도 예전처럼 구걸하지 않고도 너무나 맛있고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자는 자신이 이제 거지가 아니라 왕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환경이 소년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소년은 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시중드는 신하가 당황하며 “왕자님, 어디 가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사실은 저 다리 밑에 가면 제가 세수할 수 있는 곳이 있답니다”라고 왕자가 된 소년은 말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말입니까? 왕자는 아직도 자신의 신분이 거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자다운 생활을 하기에는 이미 거지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왕자가 진정한 왕자로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을 완전히 바꾸고 왕자다운 행동을 익히는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2-24
8. 한 변호사의 간증
젊은 나이에 벌써 성공의 길에 들어선 영국의 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영국 의사당 앞에서 비중 높은 변호를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에 대해 많은 긴장과 부담감을 가진 나머지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하여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출세 가도를 달리던 그의 인생은 점차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신착란 증세로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그는 자신이 더럽고 추한 무가치한 존재라고 자학함으로써 자살까지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변에 그를 불쌍히 여기며 관심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복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쓸모 없다고 여기며 자살하려 했던 그가 죽음의 쇠사슬로부터 풀려 나오는 데는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더럽고 추한 자신의 삶이 새로운 삶으로 변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변한 삶의 모습과 그 사랑의 감격을 시로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저 도적 회개하고서 이 샘에 씻었네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속함을 얻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찬송가 190장이 바로 그의 간증의 노래입니다.
그는 바로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로서 영국 문학사에 있어서 고전 문학가로 손꼽힐 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스가랴서 13장 1절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라는 구절을 읽다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세상의 굴레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자유의 몸이 되어 이렇게 찬양합니다.
날 정케 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없네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자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로새서 3:10
9.동명이인(同名異人)
명장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과 같은 이름을 가진 병사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의 귀에 이 병사에 대한 나쁜 소문이 들렸습니다. 이 병사의 행동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웃긴 꼴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병사가 잘못할 때마다 다른 병사들은 “알렉산더, 자네는 졸장부 같네”라며 나무랐습니다. 그의 행동이 알렉산더라는 이름에 먹칠을 했던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러한 사실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어느 날 이 병사의 막사로 찾아갔습니다. 그때에도 아니나 다를까 이 병사는 술에 취해 바닥에 뻗어 있지 않았겠습니까? 대왕이 오셨다는 소리에 그 병사는 놀란 토끼처럼 벌떡 일어나 경례를 했습니다. 그런 졸개 병사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병사 이름이 알렉산더인가? 나와 이름이 똑같군. 병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 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네 인생을 바꾸어라.”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에베소서4:1
10. 찰스 콜슨의 획기적인 전환
저는 가끔 설교 가운데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의 이야기를 인용하곤 합니다. 그는 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정치적인 권력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머리가 비상할 뿐더러 지독할 정도로 냉철한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그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상원의원 세 사람이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그들은 바로 항상 콜슨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애썼던 헤트필더, 휴스, 퀴에라는 의원들입니다. 찰스 콜슨이 투옥되자, 그들은 그를 위해 날마다 기도 시간을 정하여 함께 기도하였고 그를 찾아가서 위로하며 책을 주었습니다.
찰스 콜슨의 형 집행기간이 7개월 가량 남았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평상시처럼 기도하는 가운데 퀴에의 마음에 그를 위해서 대신 옥살이를 해야겠다는 감동이 생겼습니다. 변호사였던 퀴에는 특수 법조문 안에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형기를 치를 수 있다는 내용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법원에 제안해 보았지만 거절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퀴에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콜슨이 마침내 감옥에서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값없이 베푼 사랑 앞에 교만하기 그지없던 그의 자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남아 있는 형기 동안 그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동료 죄수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어떻게 하면 저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죄수들이 제일 싫어하는 빨래를 자청해서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죄수들은 그런 그의 태도를 믿지 못하고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죄수들은 자신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결같이 봉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하나 둘씩 감동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기도 모임을 시작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눕니다. 콜슨은 그의 자서전에서 “평생 동안 집안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나는 저들을 사랑하면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다”고 고백할 만큼 비참할 수밖에 없는 감옥에서 사랑을 베풀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는 일평생 죄수들을 위해서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나와서 ‘거듭나기’(Born Again)라는 책 한 권을 발행했는데, 그 책은 한 때 미국 사회의 커다란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옥에서 결심한대로 “교도소 선교회”(Prison Fellowship)라는 단체를 조직해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씁니다. 그후에 그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게 됩니다.
어느 외국잡지에 탬플턴상을 수상한 찰스 콜슨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현재 미국의 가장 건강한 사상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저술가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전도자, 그리고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가장 따뜻한 이웃인 그가 새로운 이웃이 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다.”
어느 누구도 그가 그런 존재가 되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세 사람이 나누어 준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8
11.작은 겨자씨의 위력
페르시아의 유명한 장군이자 대왕이었던 다리우스 황제가 구라파를 정복하기 위해 처음 치른 전쟁은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군대와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때 다리우스 황제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병사를 통해 선물을 하나 보냈습니다. 그 선물은 참깨가 잔뜩 들어 있는 부대였습니다. 다리우스 황제는 그의 군대가 이렇게 많으니 너희는 승산 없는 싸움을 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의미에서 그 참깨를 보냈습니다.
깨가 가득 들어 있는 부대를 받은 알렉산더 대왕은 답장으로 작은 봉투에 작은 겨자씨 하나를 넣어서 다리우스 황제에게 보냈습니다. 그 선물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작다고 우리를 무시하지 말라. 우리는 무섭고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거칠다. 우리는 너희들을 충분히 맞이해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결국은 알렉산더가 승리했습니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복음 17: 20
12. 하나님 만날 준비
월터리드 미 육군병원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마지막 임종 순간을 맞이하기 얼마 전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30분의 면회시간을 얻어서 들어간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시간이 다 되어 나갈 때가 되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가 조금 더 있기를 원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아니,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라고 묻자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제게는 확신이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저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그러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주머니 속에서 성경을 꺼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구원은 무슨 업적이 있다거나 선행을 많이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내 지난날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인도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영접기도를 마쳤을 때 아이젠하워가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나는 이제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요한계시록 3: 3
13. 기초의 차이
일본 동경에 있는 제국 호텔은 미국의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사람이 건축하였습니다. 그는 호텔의 공사를 맡은 뒤 그 기초공사를 하는 데만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매달렸습니다. 기초공사를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만큼 돈도 두 배 이상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렇게 많은 시간과 투자를 통해서 기초공사 하는 것에 대해 낭비라고 비난했습니다. 결국 기초공사에 2년, 나머지 공사에 2년이 걸려 결국 4년만에 이 호텔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공사는 돈을 무리하게 많이 들여서 지은 대표적인 케이스로 손꼽혔습니다.
그런데 이 호텔이 지어진지 52년이 지난 후 동경에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 대지진 때 많은 건물과 도로들이 파손되었지만 바로 이 호텔만큼은 그 안에 있는 것이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 채 견고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 후로 라이트라는 이름은 일본 건축계의 신화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 24
14. 외줄 하나에 목숨 건 믿음
줄타기 곡예사인 블론딘은 나이가라 폭포(Naigara Falls)에서 미국과 캐나다 양쪽에 외줄을 걸어 놓고 신기한 줄타기 곡예에 성공해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가 막대기 하나를 들고 그 거센 물살과 폭포가 휘몰아치는 나이가라 위를 가로질러 외줄을 타고 캐나다 쪽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우렁찬 환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도착한 그는 박수를 치던 사람들에게 한마디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막대기를 들고 또 다시 미국 쪽으로 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예 믿습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그는 다시 그 앞에 앉은 꼬마들에게도 “여러분들도 내가 이 막대기를 들고 미국 쪽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역시 꼬마들도 그렇다고 소리쳤습니다.
그 때 그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제가 이 앞에 있는 소년들 중 한 소년을 등에 업고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사람들의 대답 소리가 아까보다는 작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과 꼬마들이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맨 앞줄에서 소리치던 꼬마에게 “얘야, 네 등에 업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크게 믿는다고 소리쳤던 꼬마는 업히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꼬마에게 물으려 할 때, 느닷없이 어떤 꼬마 하나가 “아저씨, 저는 아저씨를 믿어요. 제가 업힐게요”하며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천진난만한 꼬마를 등에 업고 안전벨트로 잘 묶은 다음 다시 막대기를 들고 미국 쪽으로 줄을 타고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꼬마를 업고 줄타기를 성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믿는다고 소리치긴 했어도 막상 자기의 생명을 맡길 만큼 그를 믿어준 사람은 어린 꼬마 하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서 2:19
15 .암흑 가운데서도 노래할 수 있는 이유
1930년대 미국에 큰 공황이 찾아왔을 당시, 법률가 출신이자 무정부주의자(無政府主義者)인 클래런스 대로라는 유명한 무신론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이 경제 공황에 들어가자 자기의 무신론을 선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연을 할 때마다 “여러분, 이 사태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 어려운 상황을 우리에게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만 보아도 분명히 하나님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정부를 비판하면서 무정부주의적인 자기의 신념을 선전했습니다.
하루는 흑인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그가 무신론 강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잃어버렸습니다. 꿈과 재산을 잃었고 노래까지 잃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소리치니까 갑자기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한 할머니가 손을 번쩍 들면서 “저는 노래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그는 “아니 어떻게 우리가 이 지경이 됐는데 노래할 수 있단 말입니까?”했더니, 그 할머니는 큰소리로 “예수님 때문에 노래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한 사람이 자신만만하게 외치자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맞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때문입니다”라고 동조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금새 한 무신론자가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던 강연장의 분위기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인정하는 군중들로 인해 바뀌었고, 그는 이런 군중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어렵고 힘든 역경 가운데서도 우리들 마음에 노래를 빼앗기지 않고 기쁨과 평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편 40:3
16 환경을 극복한 믿음
1858년 뉴욕의 어느 가정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고 시력도 극도로 나빴습니다. 게다가 천식까지 앓아서 앞에 있는 촛불을 끌 힘도 없는 호흡 곤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생명을 연장하여 드디어 열 한 살이 되던 날 아버지는 이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아들아, 네가 가진 장애는 장애가 아니란다. 네가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고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너와 함께 한다면, 오히려 너의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진실로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단다.”
그 후 그는 23세가 되던 해에 뉴욕 주를 대표하는 의회의 의원이 되었고, 28세에는 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뉴욕 주지사가 되고, 부통령을 거쳐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미국의 신화를 재건하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06년에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였던 이 사람은 바로 데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 5: 4
17 .당당한 그리스도인
6.25 사변 당시 충남에서 강경 침례교회를 담임하셨던 이종덕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조용하던 강경 지방에 어느 날 공산당이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모두들 공산주의자가 되어버린 듯이 행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던 사람들까지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목사님은 후배인 김장배 목사님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부탁하며 두껍고 큰 종이를 가져왔습니다.
“목사님, 이 두꺼운 종이는 무엇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내 명함을 만들려고 하네.”
“명함이요? 생전에 명함 한 장 안 지니시다가 갑자기 명함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종덕 목사님은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후배 목사님에게 큰 종이를 명함 크기로 자르도록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명함종이에 ‘강경 침례교회 목사 이종덕’이라고 쓰도록 했습니다. 후배 김장배 목사님은 시키는 대로 쓰면서 다시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이 명함을 어디에 쓰시려고 하십니까?”
“이 명함을 가지고 다니면서 경찰이고 공산당원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나눠주려고 하네.”
“아이고 목사님, 다른 사람들은 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숨기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큰일이라도 당하시면 어떡하려 구요.”
“아니 이 사람이! 자네도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운가? 내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라는 사실을 숨겨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
그 목사님은 그 명함을 뿌리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공산당의 총탄에 맞아서 순교하였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16
18. 우찌무라 간조의 명언
우찌무라는 일본의 유명한 종교가입니다. 하루는 그에게 어떤 대학생이 찾아와 심각하게 질문을 합니다.
“우찌무라 선생님, 저는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셨다는 이야기, 부활하셨다는 이야기 등은 정말로 제 이성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황당한 이야기나 이해할 수 없는 기적 등은 빼놓고 다른 내용으로만 성경공부를 하면 안될까요?”
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학생, 성경에서 사람의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적들을 다 제하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성경에 꼭 두 가지만 남는다네. 그것은 바로 성경의 앞과 뒤 표지뿐이지.”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로마서 4:20
19. 영생의 약속
여러 해 전 제가 수원에서 살 때의 일입니다. 저를 너무나 사랑해 주셨던 나이 많으신 권사님이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아무래도 오래 사시지 못할 것 같아 구원을 받으셨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물론 이분은 평생동안 교회에 출석하신 권사님이셨지만 제 마음에 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권사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권사님,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하나님 앞에 서실 확신이 있으십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권사님은 “확신이라뇨? 목사님, 전 자신 없어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권사님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암송해 보라고 했습니다. 권사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 구절도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암송했습니다.
저는 권사님께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가운데에는 권사님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믿으시는지요?”
“네, 당연히 믿죠.”
“자, 그러면 이렇게 바꿔서 천천히 읽어보세요.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주셨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권사님, 이 말씀이 누구의 약속이지요?”
“예수님의 약속이지요.”
“그렇다면 이 약속이 진실인 것을 믿으시나요?”
“믿지요”
“그러면 이 약속처럼 권사님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신뢰하신다면 멸망치 않고 어떻게 될까요?”
여기까지 대화하다가 갑자기 권사님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영생을… 멸망치 않네요! 그렇다면 저는 천국 가는 거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 16
20. 천국시민의 자격
존 웨슬레(John Wesley) 선생님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존 웨슬레가 주님과 교통하며 기도하다가 깊이 잠이 들어 천국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천국에 들어서기 전에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나와 함께 영광스런 복음 운동인 메소디스트(Methodist)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얼마나 천국에 들어와 있습니까?” 그 천사는 잠깐 기다리라고 한 후 명부를 한참 뒤져보더니 “미안하지만 감리교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웨슬레는 다시 물었습니다. “나의 신앙은 잘못된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영광스런 칼빈의 5대 교리를 강조하던 장로교인들이 다 천국에 온 모양이지요? 그들은 몇 명이나 왔습니까?” 천사는 한참을 뒤져보더니 “미안하지만 장로교인은 한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종교개혁은 대단한 실수였나 보군요. 그러면 천주교인들이 다 온 모양인데 그들은 얼마나 들어와 있습니까?” 이번에도 천사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웨슬레는 천사의 대답에 큰소리로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왔단 말이오?” 천사는 방긋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천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개인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인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만이 와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것이므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진정한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21. 영생의 선물
오래 전에 미국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미국의 모든 시민의 가슴을 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신앙의 도전을 주었던 한 어린 소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어린 소년의 이름은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였습니다. 라이언은 13살 때 혈우병을 앓아서 수술을 받았는데 수혈을 잘못해서 그만 에이즈(AIDS)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 어른들의 부주의로 소년의 인생은 이제 죽음의 길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변함없이 너무나 밝게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하였고, 그를 염려하는 부모님을 위로하면서 기쁘게 지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신문 기자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소년의 이야기는 신문에 매일 게재되었고 텔레비전 등의 매체에서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라는 거부 부동산 업자, 마이클 잭슨 등 유명 인사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가 선물도 주고 위로하며 관심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죽음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후 라이언은 5년 동안 살다가 결국 18살에 죽었습니다.
소년이 죽기 전에 그의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 내용이 한 크리스천 잡지에 실렸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이제는 네게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구나. 이 아빠가 더 이상 어떤 선물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아빠, 전 지금까지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아무도 아빠 같은 선물을 준 사람은 없었어요. 아빠는 저에게 죽어서도 천국에 갈 수 있는 티켓을 선물로 주셨잖아요. 바로 예수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아빠 때문에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선물로 얻었는걸요. 이 보다 더 위대한 선물은 없을 거예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22. 구원받은 사람은 몇 명인가?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가고 싶어합니다. 오래 전에 어떤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안내자는 방문객에게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무덤에 묻혀 있는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해 주었고, 현재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 지도 알려주었습니다. 안내자는 모든 설명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방문객들에게 더 궁금한 것이 있는 지를 물었습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서 온 한 여신도가 안내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해서 여러 가지 내용을 자세히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이 뜻밖의 질문에 답을 준비하지 못한 안내자는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 10
23 자녀의 특권
미국에 월버 체프만이라는 유명한 전도자이자 목사님이셨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의 교회에 어떤 교인이 13세 때 가출한 아들을 찾으러 매일 돌아 다녔답니다. 이곳 저곳을 찾아 헤매던 중 드디어 18년만에 우연히 필라델피아 역전에서 그 아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역전에서 막 나오려는데 어떤 남루한 옷차림의 청년이 초점 없는 눈으로 방황하며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마약환자처럼 보이는 이 청년이 그에게로 다가와서 “25전만 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그는 구걸하는 청년이 자기 아들인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야, 너 톰 아니냐. 나는 니 애비다.”
그러나 이 청년은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초점 없는 눈동자로 “아저씨, 25전만 주세요”라고 계속 구걸했습니다. 이 아버지는 아들을 덥석 껴안으며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제 25전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바로 네 아버지야. 너는 나의 아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 집과 내 돈 그리도 나의 농장이 다 네 것이야. 내 생명조차도 네 것이란다. 나의 가진 모든 것이 네 것이야. 가자 집으로 가자. 그리고 나와 함께 같이 살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로마서 8:32
24어느 한 사람의 쓸모 있는 인생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중학교 입학할 때 집안형편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인데도 가정 교사로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자기 자신이 꽤 똑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성공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나마 힘겹게 지탱해나갔던 가세가 완전히 기울어지게 되어 그가 집안 식구들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의 첫 실패와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임은 그에게 너무나 힘겹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는 종종 죽기로 결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 전체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그를 영어 성경공부 모임에 나오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는 혹시 영어공부가 인생의 마지막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서 그는 인생의 주인을 발견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복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암흑과 같은 그의 삶에서 하나님의 구원은 한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그 후 그는 4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간증이 끝났을 때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찾아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형제의 간증은 이상하게 놀라운 감동이 있어. 만약 형제가 주님께 삶을 드린다면 주님은 형제를 놀랍게 쓰실 것 같은데 왜 전도자로 헌신하지 않소?” 이와 같은 말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계속 듣게 되자, 그는 마음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용솟음쳤습니다. 쓸모 없게만 느꼈던 나의 인생이 주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날 일은 그의 인생을 180도로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그의 삶에서 어둠은 사라지고 빛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그의 삶을 바꾸었고, 찬송은 그의 간증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찾은 후 그가 즐겨 부르던 찬송의 가사가 있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내 인생의 미래를 만날 수 있네.
그분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모든 공포는 사라졌네.
그분이 내 인생의 미래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분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이 찬송의 간증 때문에 그는 오늘도 이렇게 복음을 전합니다. 저 이동원의 삶을 바꾸었던 살아계신 주님은 오늘 당신의 삶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내게 주셨던 기쁨의 삶을 당신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믿음을 지키신 부활의 주님이 동일하게 당신을 지키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쓸모 있는 인생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죽음에서 다시 사셨고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 살아 계신 주님이 당신에게 기쁨의 삶, 소망의 삶을 약속하십니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12
25. 진주와 같은 삶
오래된 서구 풍습에는 엄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건네는 관습이 있습니다. ‘얼어붙은 눈물’이라고 불리는 이 진주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딸이 시집가서 흘려야 할 눈물에 대한 교훈이고, 또 하나는 눈물을 흘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눈물은 가치 있는 것임을 교훈 해주려는 엄마의 의도라고 합니다.
이 의미는 진주가 생성되는 과정을 보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진주는 본래 아비큘레대라고 불려지는 굴속에서부터 만들어집니다. 굴속에 모래알들이 굴러 들어오게 되면 즉각적으로 나카라는 물질이 생성되는데 이것이 모래알을 둘러싸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나카가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진주는 더욱 커져 값진 진주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작은 진주라도 수개월이 걸리고 어떤 진주들은 수년씩 걸려서 만들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굴속에 들어오는 모든 모래알이 진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굴 자체의 선택 의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모래알을 그대로 놓아 둘 수도 있지만 굴이 모래알을 일단 받아들이면 나중에는 결국 그 모래알 때문에 병들고 죽어버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상당히 고통스럽지만 나카를 생산해서 모래알을 둘러싸기 시작하면 이것이 고귀한 진주를 만들게 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크고 작은 모래알들이 계속 굴러 들어옵니다. 그 때 우리들이 이 고난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을 보배로운 진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인생에서 하나의 값진 진주를 생산하기를 기대하십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잠언 17: 3
26.요나가 다닌 신학대학
데어도로 에프라는 목사님이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나를 삼킨 이 물고기는 얼마나 위대하냐. 이 물고기의 뱃속은 요나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신학대학이었다.” 맞습니다. 요나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고난의 의미를 깨달았고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었으며 변화되었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기도를 배웠고 하나님과 교제를 시작했으며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사했습니다.
이 신앙의 감격을 알지 못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또 하나의 물고기를 예비하실 수 있습니다. 환난과 파도와 커다란 물고기로부터 삼킴을 당하기 전에 주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은 정말 복된 사람일 것입니다. 그가 마땅히 배워야 할 모든 교훈을 다 배웠을 때 주님께서는 물고기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를 토하라!”
요나는 물고기 배에서 나왔습니다. 그 순간은 얼마나 감격적이고 위대한 순간이었을까요? 이날은 요나가 물고기 신학대학을 졸업하는 날이었을 뿐 아니라 새사람이 되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27.하나님 앞에서
몇 년 전 제가 평양에 다녀올 때에는 북한과의 왕래가 드물었기 때문에 주위의 많은 분들이 염려하셨습니다. 평양에 도착하기 전에 함께 갔던 목사님들 사이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평양의 모든 호텔에는 빈틈없이 도청 장치가 되어 있기 때문에 호텔에서는 특별히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니 도청 장치 정도가 아니라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고 있으니까 행동까지도 각별히 조심해야 할겁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얘기했었는데 일단 호텔 방에 들어가 보니까 모든 것이 다 저를 감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등골이 오싹해 지면서 정말 말과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신경이 쓰였습니다. 제 평생에 방안에서 그렇게 경건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공산당이 지켜보고 있는데 목사 체면에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닐 수 없어서 옷을 다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들었답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작은 행동까지 달라지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관찰하시며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실하게 생활하는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는지 세밀히 보시며 듣고 계십니다.
존 칼빈의 삶의 좌우명은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그는 일평생을 하나님 앞에 산다고 생각했기에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주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우리도 칼빈처럼 하나님 앞에서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성실하게 감당하며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상 생활 가운데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18
28.무사들을 위한 문구
고대 그리스의 연무장에는 무사들의 경기 모습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 밑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주목하라! 모방하라! 반복하라!”
이 문구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한 번 적용해 봅시다.
‘주목하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주목해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도록 하신 그 사랑에 주목해야 합니다.
‘모방하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반복하라.’ 예수님을 본받는 삶의 노력을 거듭거듭 반복하십시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린도후서 3:18
29.로마의 독특한 성인식
로마에서는 아들로 태어나면 한국에서 아들이 대접받는 것과 정반대인 듯 합니다. 로마는 아들에 대한 독특한 관습을 치릅니다.
먼저 아들을 양자 삼고 성인식(成人式)을 치르기 전까지는 친아들이라도 아들처럼 대우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가장 영리한 노예를 아들의 가정교사로 두어 자기 아들을 종처럼 혹독한 훈련을 받게 합니다. 가정 교사는 시간이 흘러 아들이 성인이 되면 주인에게 이렇게 보고합니다.
“주인님, 이제서야 아드님께서 인간다운 인간이 되었습니다. 지적, 도덕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폭넓은 지식과 올바른 정신 그리고 건강한 육체를 갖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그때서야 성인식을 치르고 아들을 진짜 아들로 받아들입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갈라디아서 4:1-3
30.역사적 반성
한 배에 열 명의 사람들이 탔는데 그들은 각각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항해를 하던 중에 큰 일이 발생했습니다. 배 밑바닥에 구멍이 났는지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열 명중에 세 사람만 없으면 그런 대로 무게를 지탱해 육지까지 갈 수가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나라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진하여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서로 눈치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몇 분이 지났을까요?
갑자기 영국 사람이 일어나서 “대영제국의 명예와 신사도를 발휘하여 내가 먼저 뛰어내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미국 사람이 “저도 카우보이 정신을 지켜 여러분들을 위해 희생하겠습니다”라며 뛰어내렸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사람만 남았는데, 그때 한국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랍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하더니 발을 들어 옆에 앉아 있는 일본 사람을 걷어차 물 속으로 빠뜨렸답니다. 참으로 재미있지만 의미 있는 우스갯소리입니다.
한국이 일제통치 하에 있으면서 받았던 말할 수 없는 민족의 서러움 때문인지 아직도 한일 관계를 보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먼저 어떻게 해서 나라를 잃게 되었는지 깊은 역사적 반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신명기 5:6
31.감당할 시험
어느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쇼핑센터에 갔습니다. 아들이 시장바구니를 들고 아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 아빠는 사고 싶은 물건들을 골라 아들의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한 두개는 거뜬했는데 여러 개를 집어넣으니까 점점 장바구니가 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무거워하면서도 낑낑거리며 장바구니를 들고 아빠를 따라다닙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한 여인이 속으로 ‘속 좁은 남자지, 자기 아들에게 저렇게 무거운 짐을 들게 하다니’라고 생각하면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그거 무겁지 않니?” 그러자 꼬마가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에요. 우리 아빠는 제가 얼마만큼 들 수 있는지, 제가 얼마큼 감당할 수 있는지 알아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아십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환난 가운데 빠져서 좌절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찾아오셔서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인생의 절망과 한계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일어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 13
32.선택의 긴박성
마틴 루터가 말한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날 사단과 그의 부하들이 땅으로 내려가기 직전에 전략을 짜기 위해 모였습니다. 사단이 모여 있는 모든 부하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무슨 계략으로 인간들을 사로잡겠는가?”
한 악령이 대답하길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는 의심을 넣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답에 사단은 “우리가 그 전략을 오랫동안 써 봤는데 이제는 잘 통하지 않더군. 사람들의 마음에는 종교를 부인하면서도 신은 부인할 수 없는 종교적인 본능이 있기 때문에 그들 마음 깊은 곳에 아직도 하나님을 찾는 열정이 있어. 그렇기 때문에 그 방법으로는 사람들을 무너뜨릴 수 없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악령은 “나는 인간들의 마음속에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집어넣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안심하고 있을 때 지옥으로 끌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전략도 통하지 않을 걸? 인간들이 살고 있는 그 세상 자체가 무서운 지옥 같기 때문에 지옥을 항상 두려워 할걸세”라며 사단이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악령 하나가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기독교인들만을 집중해서 공격하겠습니다. 그들에게 끊임없는 고난을 주어서 예수를 믿으면 재앙이 온다는 의식을 집어넣고 필요할 때에는 죽는 고통까지 주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단은 “그 방법은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야. 예전 우리가 완전히 실패한 전략이기에 절대 사용해서는 안되네. 우리가 지난 역사를 통해 선교사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핍박도 많이 하고 죽이기까지 했네. 그러나 오히려 박해받는 성도들을 보며 주님을 위해 당하는 죽음을 영광스럽게 여기더군.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죽기를 결심하고 있다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구석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악령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급히 서두를 것 없다, 천천히 믿으면 된다는 마음을 불어넣겠습니다. 이 전략이 어떻습니까?”
그러자 갑자기 지옥에서는 “바로 그거다!”하며 시끌시끌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바로 그거야! 우리가 사용한 전략 중에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인간들을 포박한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 24: 15
33.흔들리지 않는 신앙
번역 선교사인 타우센트(Townsend)는 남미를 전도하는 중에 돈 빌레모라는 한 원주민 젊은이를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명령대로 복음 전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 전도자가 된 돈 빌레모는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타우센트 선교사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전 이제 사표를 내겠습니다. 여기 전도자 사표를 가지고 왔으니 받아주십시오.” 타우센트는 너무나도 기가 막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사표를 내려고 하지요?”
“저는 전도가 이렇게 어렵고 힘든지 몰랐어요. 전도하기가 너무너무 힘들어요. 이제 사람들이 욕하는 소리와 고함소리 그리고 그들의 비난을 견딜 수가 없어요. 제가 왜 그런 비웃음을 받아가면서 전도해야 하지요? 사실 제가 아쉬운 게 뭐 있어요?”
이 젊은 전도자인 돈 빌레모의 불평을 듣고 있던 타우센트가 말했습니다.
“돈 빌레모, 당신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얼마 지난 후에 나에게 찾아와서 한 말을 기억합니까? 그 때 당신은 ‘주님께서 저를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르십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사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당신을 부르셨으니 그 사표를 받을 수 있는 분도 주님뿐입니다. 당신이 지금 나에게 말한 그대로 주님께 아뢰고 주님 앞에 직접 사표를 내십시오.”
청년은 주저하면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주님께 사표 낸다고 말씀드리면 아무래도 안 받으실 것 같은데요.”
그러자 선교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호통을 쳤습니다.
“주님께서 사표를 받으시지 않으신다면, 그 분은 아직도 당신을 사용하셔서 복음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뜻이 아닙니까?”
젊은이는 선교사의 말을 듣고 마음의 감동을 받아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선교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는 곧장 일어나서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복음 전도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영적 침체에 빠지는 순간이 있고 어떤 때는 신앙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슬기롭게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한복음 15:4
34.그리스도인을 죽이는 마음의 부패
옛날 로마의 황제는 그리스도인이 자꾸 늘어나는 것에 대하여 큰 위협을 느껴 신하들을 불러 놓고 그리스도인들을 없앨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황제가 먼저 로마의 법률을 강화시켜 그리스도인들을 무조건 죽이는 법을 만들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신하가 황제의 의견에 반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믿는 자들을 죽여 순교자로 만들면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순교자들을 추앙하기 때문에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하는 황제의 방법보다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죽이지는 말고 잔인하게 고문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하가 “저 예수쟁이들은 심한 고문을 받기만 하면 예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한다고 좋아합니다. 또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늘의 상급이 더 많아진다고 기뻐하며 오히려 고문의 흔적을 자랑하고 다닙니다. 그 방법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없앨 수 없습니다”라며 반대했습니다.
이때 구석에 있던 한 신하가 조용하게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편안하게 즐기고 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간단합니다. 그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죄를 지을 것이고 그러면 기독교는 있어도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없애는 가장 무서운 요인은 외부의 박해가 아니라 내부의 부패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주님이 기대하는 거룩함을 지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린도후서 11:3
35. 올바른 선택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주일 저녁에 두 명의 젊은이가 타락하기를 작정하고 도박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도박장 바로 옆에는 한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도박장으로 들어가던 두 청년 중 한 명은 우연히 교회 입구에 적혀있던 그 주일의 설교 제목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글귀를 보자 그 청년의 마음에 갑자기 죄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른 친구에게 “야, 우리 오늘 도박장에 가지 말고 교회에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한번 결심을 했으면 가야지. 교회라니 무슨 소리야?”라며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은 처음 결심한 대로 도박장으로 갔고, 다른 사람은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 청년은 설교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 때 회심한 청년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유명한 클리브랜드(Cleveland) 대통령입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그 순간, 30년 전 도박장을 선택했던 젊은이는 감옥에서 자신의 친구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친구의 취임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한 순간의 선택이 자신들의 삶을 얼마나 다르게 만들었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상품 광고에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우리 인생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영원이 좌우됩니다. 클리브랜드 대통령이 도박장과 교회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어려운 갈등에 놓였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갈등에 끊임없이 놓이게 됩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대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잠언 14:16
36.감만 보이네
제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신자였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좀더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서 주변 분들의 권유로 금식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에게 40일 금식은 부담될 것 같아 20일을 작정하고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독정리 마을에 방 하나를 얻어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작심 삼일이라고 사흘이 되니까 서서히 배에서부터 요동을 치며 유혹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 때 창문 틈 사이로 보이는 감나무에 몇 개의 감이 매달려 있더군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감!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감만 가득하네.’
눈을 감아도 감만 보이기 시작하는데 몇 번이고 입에 침이 고이더라구요. 그래서 감을 떼어 던져 버릴까 생각해보았지만 예수님도 40일 금식하실 때 마귀의 시험을 당하셨다고 하는데… 나도 한번 유혹을 이겨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1주일을 넘기고 하루하루를 보태며 넘기는데 12일 아침, 결국 나의 인내는 바닥이 나고 감을 따먹음으로써 금식기도는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한일서 2:16
37.최선의 삶
지미 카터가 쓴 ‘살아있는 신앙’이라는 책에는 그의 신앙생활에 대해 적혀 있는데 그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들, 특히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보다 높은 삶의 표준과 기대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복음서를 통해 예수께서 보여 주신 삶의 원칙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원칙은 일반적인 종교 규범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개인의 행동과 일생을 기준 하는 유일한 규범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기준들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자진해서 때로는 억지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 탁월한 삶, 그것은 율법을 순종하는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최고의 가치관, 그 가치관의 실현을 위해서 드려지는 최선의 삶, 우리는 그 이하일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카터가 이러한 삶의 좌우명을 갖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그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을 받기 전에 유명한 해군 제독인 릭오버 제독과 면담을 갖게 됩니다. 이 해군 제독은 젊은 해군장교인 카터에게 전술과 전략에서부터 군인의 자세, 태도에 이르기까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카터는 땀을 흘리면서 대답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제독이 화제를 돌려서 해군사관학교 시절에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공부했는가를 물었습니다. 또한 웃으면서 성적은 어떠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카터는 성적에는 자신이 있어 점수와 등수를 대답했더니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 성적이 자네가 최선을 다한 결과인가?” 카터는 식은땀을 흘리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최선을 다했다고야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요.” 이때 제독은 무섭게 쏘아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카터는 더 이상 답변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카터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은 이 해군 제독이 던진 것과 비슷한 질문을 나에게 던지실 지 모른다. 이때 만약 주님께서 이렇게 물으신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그날 그는 인생의 좌우명을 얻었습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린도전서 3: 13-15
38.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
삶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고자 했던 민족 청년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943년 7월 14일 일본에서 일본 유학생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1945년 2월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감옥에서 인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인생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은 그의 생애를 추적하면서 그가 어떻게 2년 동안의 감옥생활을 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가 있었던 일본의 규수 후쿠오카 형무소에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그가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한 가지 일에 몰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윤동주는 고향집에 편지해서 차입한 신약성서를 옥중에서 읽고 있다. 그는 날마다 이 책에 빠져있다.”
이 글은 형무소에서 그의 삶의 동태를 항상 감시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적어놓은 기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인생의 최후를 마무리하고 있었던 그에게 시는 그의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산 그는 진정 최선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 10
39.하나님의 시선
16세기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천재 미술가 미켈란젤로를 불러 유명한 시스틴 성당의 천지창조 벽화를 그려 달라고 의뢰했습니다. 당시 이런 제의는 정말 미술 역사상 있을 수 없는 최대의 특권이자 위대한 특권이기에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미켈란젤로는 이 엄청난 특권 앞에 흥분하지 않고 오히려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거꾸로 누워 4년 동안 천장만 바라보며 벽화를 그리는 일에만 자신의 열정과 땀을 모두 쏟아 부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전 인생을 바친 벽화가 완성되었는데, 그는 여전히 천장에 붙어서 계속 작은 선을 그려 넣고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와 가까이 지내던 어느 추기경이 성당에 들어와 둘러보더니 “그림이 다 완성되었는데 뭘 그리는가? 내가 볼 때는 다 끝났는데?”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볼 때는 끝났을지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아직 안 끝났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리도전서 4:1-2
40.전진하는 인생
1961년 9월 30일은 이화여대 총장이셨던 김활란 박사님께서 이임하시는 날이었습니다. 이임식장의 분위기는 그의 이임을 아쉬워하는 흐느낌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 매우 침통했습니다. 마침내 김활란 박사님께서 단상에 오르셨는데, 오르자마자 갑자기 민요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가면 아주 가며 아주 간들 잊을소냐.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씨구 좋다.” 이임식장은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는 담담하게 이임사를 낭독하다가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시인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가운데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앞날이 있네. 맨 처음의 일은 오직 그것을 위하여 있나니.’ 이 시는 저의 경우와 같습니다. 저 역시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참으로 아쉽지만 이것으로 인생을 끝맺는 것이 아니라 다만 더욱 나은 미래를 향해 전진하기 위해서 떠나갑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립보서 3:13
41내가 할 수 있는 일
한 소년이 깊은 산골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비가 억수같이 퍼 붇는 바람에 집 앞에 있는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아 버렸습니다. 소년은 혼자서 그 나무를 치워보려고 기를 썼지만 소년의 힘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이 나무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데 아버지가 나와서 물었습니다.
“얘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해 보았니?”
“예, 아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해보았는데도 이 나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아요.”
“아니다, 네가 아직도 하지 않은 일이 한가지 있단다. 그게 무엇인지 알겠니?”
“잘 모르겠는데요?”
“너는 이 아빠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
당신은 정말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습니까?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역대하 20: 15
42.진정한 승리
이 사건은 아프리카 우간다 어떤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당시 우간다는 독재자인 이디 아민이라는 악명 높은 사람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이 교회의 목사인 케파 샘팡기 목사님는 종종 정부의 불의를 책망하는 예언적인 설교를 하곤 했습니다. 이 사건이 난 아침에도 7천명이나 되는 교인들이 부활절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설교를 마친 후 목사님이 교회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거기에는 5명의 비밀경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우리는 국가의 명으로 반국가 사범을 처단하기 위해 왔소”라고 하면서 목사님에게 총을 겨누었습니다.
이때 케파 목사님은 아주 담담하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오늘은 부활절 아침입니다. 나는 부활을 믿는 사람으로 죽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지만 나에게 2분의 시간을 주신다면 잠시 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생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2분의 시간을 허락 받은 목사님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간다의 통치자 이디 아민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의 명령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받들어야 하는 불행한 이 5명의 형제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간다 국민에게 자유를 주시옵소서. 내 사랑하는 조국이 사랑의 땅과 의의 땅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나의 죽음으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이 땅에 되풀이되지 않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쳤을 때, 목사님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기도를 듣던 경찰들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경찰의 통솔자인 한 사람이 무릎을 꿇으면서 “목사님, 죄송합니다. 우리가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목사님은 피신하여 교회에 계시지 않는 것으로 보고하겠습니다. 빨리 이 자리를 떠나 주십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부활의 믿음은 죽은 후의 육체적인 부활의 소망을 약속할 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승리의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43.아니마밈의 노래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꼭 아니마밈의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 제목인 아니마밈은 히브리어로 “나는 믿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본래 혹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작사, 작곡된 노래였습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해서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그런데 그들은 자기의 동료들이 비참하게 가스실로 불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절을 이렇게 슬프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그 메시아는 너무 늦게 오신다.”
그러나 그 수용소 안에 있던 젊은 외과 의사 출신의 한 유대인은 이 노래 부르기를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이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용소에 갇혀 죽을 수밖에 없고 언제 가스실로 데려갈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도 자신의 추한 모습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죽음을 받아들인 듯 체념하고 깊이 잠들어버린 한밤중에도 그는 홀로 일어나 어느 날 우연히 줍게 된 유리 파편 조각 하나를 날카롭게 갈아서 피가 날 정도로 면도를 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또다시 죽음의 사자처럼 나치 군병들이 그들의 방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나치 군병들은 수염하나 없는 창백한 청년의 모습을 보고는 차마 그를 죽음의 가스실로 데려 가지 못하고 매번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갔답니다. 왜냐하면 깨끗한 청년의 모습에서 삶의 강렬한 의지가 보여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끝나고 그는 적은 수의 생존자들 중에 하나가 되어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수용소의 문을 빠져 나오면서 아니마밈의 노래를 이렇게 고쳐 불렀습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해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사람들은 너무 서둘러 믿음을 포기한다.“
그 후 그의 일기가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그 일기 속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있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 가장 나태한 방법이다. 죽음은 이렇게 서두를 것이 못된다. 죽음 앞에서 살아 보려는 부활의 의지, 이것이 새로운 창조이다.”
전쟁이 끝나 그는 스웨덴으로 가서 병원을 개업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친척들을 불러 놓고 이 가정만은 전혀 다른 아니마밈의 영가를 불렀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우리의 삶이 막혀 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리고 회의하면서 하나님은 내 삶을 간섭하지 않으시거나 너무 더디 오신다고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우리는 유대인 청년처럼 이렇게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닙니다. 그가 늦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서두르고 있을 따름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44.핍박받는 자의 복
주님은 핍박의 가시밭길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을 단련시켜서 주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 앞에 엎드릴 때 주께서 우리를 영원한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열 두 제자의 마지막 최후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몸의 가죽을 벗기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순교했습니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도하며 순교했습니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서 창에 찔려 순교를 당했습니다.
안드레는 에데사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맛디아는 예루살렘에서 돌팔매질을 맞고 쓰러진 뒤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누가는 헬라에서 감람나무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칼에 목이 떨어지면서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다 죽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백 살까지 온갖 시련을 겪다가 죽어간 살아있는 순교자였습니다.
초대 교회의 유명한 교부인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련의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 10
45.영광의 주인공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영국 군인들이 사랑하는 고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부터 런던 거리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인들을 환영하기 위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영국의 상, 하원 의원들과 귀족들이 새벽부터 길 양쪽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고 영국 여왕이 자리에 앉자 마침내 영국 군인들의 개선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행렬의 처음에는 육군이 앞장서고 뒤를 이어 해군과 공군이 따르며 해병대가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작은 부대가 입구에 들어서자 갑자기 영국 여왕을 비롯해 귀족들과 서민들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그 작은 부대를 향해 한없이 박수를 칩니다. 그 작은 부대는 상이(傷痍) 군인들로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팔과 다리를 잃어버리거나 눈 혹은 몸뚱이 한 부분을 잃어버린 군인들로 이루어진 부대였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개선 행렬의 진정한 스타들이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삶이 끝나고 역사의 주인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에는 앞의 상이 군인들처럼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았던 사람들이 바로 주인공일 것입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4: 13
46.순교의 신앙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침례교회를 맡아 시무하셨던 조셉 톤 목사님은 너무 유명해서 루마니아의 공산정권과 독재자들에게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루마니아 정부는 국제적인 여론 때문에 차마 이 목사님을 죽이지 못하고 추방하였습니다.
그분은 미국으로 오셔서 여러 신학교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분이 가는 곳마다 많은 신학생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 분은 위대한 목회자였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조셉 톤 목사님은 “당신의 신학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게는 단 하나의 신학밖에는 없습니다. 나의 신학은 순교의 신학입니다. 그리고 나는 단 하나의 신앙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순교의 신앙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그분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던 학교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쯤에는 공산권이 서서히 무너지고 동구권이 개방되었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에 미국 복음주의 잡지사의 한 기자가 조셉 톤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동구권이 개방되는 것에 대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이 질문에 그 분은 “저는 두렵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기자가 의아한 얼굴로 “아니, 공산권이 무너지고 당신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왜 두려워하십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나의 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은혜로 여기고 사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고 핍박을 받더라도 그것 때문에 더 예수님을 바라보고 더 열심을 낸답니다. 하지만 제가 두려운 것은 동구권이 개방이 되어 나의 조국에 돌아갔을 때, 내 조국의 교회가 주님을 위한 고난을 은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만 채워질 까봐 두렵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립보서 1: 29
47.하나님께로 나오게 하는 고난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John Bunyan)은 인생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깊은 수렁을 지나 마지막 벼랑 끝에 섰을 때에 자기의 삶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나를 맞으실 때 칼을 들고 나오실 지라도 나는 그분의 발 아래에 내 몸을 던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나의 최후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고난의 극한 상황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절박한 신뢰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을 당하지 않고도 그 분을 신뢰하고 믿는 것을 더 복되고 귀한 신앙으로 평가하십니다. 그러나 평범한 가운데 사는 사람이나 절망의 깊이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폭풍우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폭풍우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자 은총의 손길입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C. S. Lewis)는 “고난이란 하나님의 메가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 야고보서 5:13
48.가이사가 주님이시다
로마제국이 세계를 통치할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심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자신의 주님이 가이사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이유로 때로는 콜로세움 형장에서 야수의 밥이 되기도 하고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반드시 “가이사는 주님이시다”,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은 가이사입니다”라고 인사를 나누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든지 바로 로마 군인에게 잡혀가야만 했습니다. 가이사는 로마황제의 칭호로서 황제 이외에 그 누구도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황제의 말이 곧 법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주인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결코 가이사가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걸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골로새서 1:23
49.현재에 충실
11세기 독일에 살았던 왕 하인리히 3세는 어느 날 왕궁 생활에 대한 깊은 회의와 허무를 느껴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도원을 찾아가 수도원장에게 수도사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수도원장은 그가 수도사가 되려는 동기가 올바르지 않다며 한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폐하, 수도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할 규율이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수도사가 되려면 폐하도 이 규율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어떠한 명령에도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렇소!”
“우리 수도원에서 말하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이 수도원 원장인 저와 이 수도원에서 지도하는 모든 스승들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합니다. 거기에도 순종할 수 있습니까?”
“알겠소. 그렇게 하겠소.”
“그러면 이제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폐하는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셔서 백성 다스리는 일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위한 수도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자리에서부터 인내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간다면 장차 우리에게 어떠한 환경이 찾아오더라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
50.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평생을 동역 하신 조지 베브리 쉐아(George B. Shea)라는 복음 성가 가수의 간증입니다.
1931년 미국의 보험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던 그는 NBC의 라디오 공개방송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들려준 저음의 바리톤은 방송을 통해 전 미국 국민에게 울려 퍼졌고 노래에 매료된 사람들이 그에게 끝없는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갑자기 그는 유명 스타가 되어 여러 방송사에서 끊임없는 계약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앞으로의 그의 인생은 출세와 돈이 보장된 스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에는 왠지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밀려들어와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머리 숙여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기도하던 그 시간에 그의 어머니도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에도 아들의 출세의 길이 눈앞에 보였지만 기쁨은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의 책상 위에 조그마한 쪽지 하나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가 종이를 펼쳐보니 어머니가 자주 애송하던 밀러 부인의 성시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 성시를 조용히 읽다가 감동을 받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멜로디를 종이에 써 내려갔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그는 지금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백발을 휘날리면서 전도와 간증과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1983년 네덜란드의 암스텔담에서 전세계의 전도자들이 모두 모였을 때, 그는 특별 찬양을 했습니다. 찬양이 끝나자 장내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끝없는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 박수가 끝난 후 그가 남긴 한마디는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오랫동안 숙연케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주신 박수 갈채와 그리스도를 바꾸지 않겠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한일서 2: 15
51.오직 그리스도뿐
모라비안의 지도자였던 진젠도르프 백작이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인 지위와 조건들을 모두 다 버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맨발로 뛰쳐나갔을 때 그의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자네의 야망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뿐 오직 그 분뿐”
깊은 밤에 성 어거스틴이 성경을 묵상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꿈 속에서 주의 천사가 나타나 주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는 깊은 꿈 속이었지만 그의 의식과 신앙을 지배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아니요.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밖에는요.”
에쿠아도르 강가에 자기의 젊은 피를 뿌렸던 선교사 엘리옷은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내가 진짜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 어차피 놓아버릴 수밖에 없는 것을 붙들려고 애쓰는 것보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거, 그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버린 것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서 우리를 만족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만물이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만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도다.”
우리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태어나 욕망이라는 인생의 행로를 달려갑니다. 그러나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우리의 손을 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빨리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나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 있습니다. 주께서 내 안에 계시면 또 내가 주 안에 있으면 내 삶이 참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내 중심에 계시니 주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립보서 1:21
52.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진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명작인 최후의 만찬이 어떻게 해서 그려졌을까요? 최후의 만찬은 그의 나이 43세 때에 밀라노의 어떤 백작의 요청에 따라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그림은 예수님이 중앙에 앉아 계시고 제자들이 양옆에 앉아서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는 장면이지요.
그런데 “최후의 만찬” 그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습니다. 본래 처음 그림에는 예수님께서 오른 손에 컵을 들고 계셨다고 합니다. 현재 그림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작품이 완성될 무렵 다빈치는 친구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는데 그 친구가 대뜸 “다빈치, 여기 예수님이 든 컵은 꼭 진짜 같은데”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말일 수 있겠지만 다빈치에게는 예수님보다 더 중요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진짜 같이 보이는 컵을 지워버리고 예수님의 팔이 가만히 탁자 위에 올라가 있는 모양으로 그림을 수정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들 가운데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없는지요. 신앙의 어려움은 삶의 초점이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질 때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한복음 3:30
53.인생의 주인
제가 미국의 디트로이트 시에서 공부할 때, 어떤 목사님께서 그 도시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자동차 공장들이 많이 몰려있는 디트로이트 도시의 어느 겨울날, 시외에 살고 있는 유명한 정비사가 아침에 출근하는 도중 자동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차를 길옆에 세워 놓고 고장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열심히 차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인은 발견할 수 없고 날씨는 점점 추워져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세단(sedan) 하나가 멈춰 서더니 노신사 한 분이 차에서 내려 “도와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비사는 속으로 ‘디트로이트에서 가장 유명한 정비사인 내가 못 고치는 차를 자기가 고치겠다니’라고 생각하며 노신사를 보았습니다. 노신사는 차의 몇 군데를 만지더니 시동을 켜 보라고 했습니다. 그 정비사는 별 기대감 없이 시동을 켜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시동이 쉽게 걸린 것입니다.
‘도대체 저 노신사가 누구인가? 나도 고칠 수 없었던 차를 손쉽게 고칠 수 있다니...’ 궁금해하는 그에게 노신사는 명함 한 장 주고 떠나버렸습니다. 그 명함에는 놀랍게도 ‘헨리포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그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주 하나님, 그가 우리 인생의 홀로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디모데후서 2: 21
54.교회의 참된 주인
한국 교회 목사님들이 자주 하는 농담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한 분이 천국에 도착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이 목사님을 보자마자 너무 열렬히 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변의 평신도들이 예수님께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세상에서도 목사님들이 제일 대접을 많이 받았는데 천국에서까지도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며 환영하십니까? 너무하십니다.”
이런 항의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너희들이 참으로 오해하였구나. 목사를 차별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하도 오지 않다가 아주 오랜만에 왔길래 너무 반가워서 내가 이렇게 환영하는 것이란다”라고 하셨답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목사를 너무 바라보거나 높여서도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향하여 나의 교회라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참된 주인은 주님 자신이십니다.
56.파인애플의 진짜 주인
정글지역에서 선교하시는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정글에서 사역하면서 인간적인 소원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 소원은 다른 것이 아니라 파인애플을 실컷 먹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주민 형제들과 함께 파인애플 나무를 심었는데 시간이 흘러 파인애플을 먹을 때가 되어 가보니 열매가 하나도 없더랍니다. 왜냐하면 파인애플이 익자마자 바로 원주민 형제들이 따 가지고 갔기 때문이지요. 선교사님은 너무나 황당해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들이여, 어찌하여 내가 필요해서 나무를 심었는데 말도 없이 열매를 모두 따 갈 수 있소?”
“선교사님, 당연히 우리가 심었으니깐 그 파인애플은 우리들의 소유입니다. 왜냐하면 정글의 법칙은 심은 사람이 주인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선교사님은 “그렇다면 다시 나무를 심되, 심는 대가를 주겠소. 그러니 열매를 반반씩 나누어 가지기로 합시다”라고 말하며 확약을 했습니다.
그 후 추수 때가 되어 가보니 또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화가 난 선교사님은 원주민들에게 그들을 위해서 운영하고 있는 간이병원의 문을 닫겠노라고 위협하기도 하고, 파인애플 주변에 개로 경비를 서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은 애간장이 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파인애플이 누구의 것이냐? 네 거냐? 내 거지.”
선교사님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욕심을 부리다가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를 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또 다시 원주민 형제들이 열매를 모두 따갔지만 선교사님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입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원주민 형제들이 선교사님을 찾아와서 묻습니다.
“선교사님, 올해는 왜 우리에게 화를 내지 않으십니까?”
“여태 난 그 나무가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 화가 났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진짜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더러 파인애플을 훔쳐 가는 원주민들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훔쳐간 사람들의 아이가 병이 난다든지 하면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것을 훔쳐서 아이가 아픈 것 같아.”
이렇게 하다보니 점점 그 정글에서는 도둑이 없어졌고, 선교사님도 자기가 심은 파인애플을 나누어 먹을뿐더러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5
57.겉보기와 다르다
남아프리카의 한 인쇄업체에서 미국 시카고의 유명 회사로부터 인쇄기 한 대를 비싼 값에 지불하고 수입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인쇄기에 문제가 생겼는지 작동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인쇄기 판매업체에 문의해서 나름대로 손을 대보았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미국 시카고 회사에서 현지로 전문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얼마 후에 한 명의 전문가가 남아프리카 공항에 도착했는데 그를 본 현지인들은 모두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파견되어 나온 전문가가 20대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너무나 젊은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지인들 생각에는 어떻게 저런 애송이가 우리도 해결 못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의아해 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에 다시 이런 내용의 팩스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지금 시간이 없소. 그러니 노련한 전문가를 다시 파견해 주시오.”
이런 내용의 팩스에 대하여 시카고 회사에서는 단 세 줄로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당신들이 겉모습으로만 어리게 판단한 그 젊은이가 바로 그 기계를 설계한 장본인입니다. 그 사람만이 그 기계를 고칠 수 있습니다. 아무 말 말고 그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따르십시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 1:18
58.짧은 인생
한 설교자는 자신의 어떤 글에서 미국 사람들이 평균 75년 정도를 산다고 기준할 때 그 75년을 어떻게 사용하며 사는지 설명했습니다. 그의 글을 보면 사람들은 20년은 잠자는 데, 20년은 일하는데, 7년은 노는데, 6년은 먹는데, 5년은 텔레비전 보는데, 5년은 내가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고민하며 옷을 사는 쇼핑에 시간을 보내고, 3년은 누군가를 만나고 기다리는 일에 소모하고, 2년 반은 화장실에서, 2년 반은 잡념과 잡생각을 위해서 그리고 일생 중 2년은 커피를 마시는 일에, 그리고 1년은 전화 받는 일 등에 75년의 시간을 사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우리의 인생을 아침 6시부터 저녁 12시까지 나눠 생각해 보았습니다. 15살이라면 그 학생은 아침 9시 38분을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20세라면 10시 51분, 25세라면 12시 4분, 30세라면 1시 17분, 45세라면 4시 56분, 50세라면 6시 8분, 55세라면 7시 55분, 60세가 되면 저녁 8시 34분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65세라면 9시 47분, 70세라면 11시, 70세를 넘으셨다면 당신은 12시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의 삶을 결산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이 짧은 인생에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골로새서 4: 5
59하나님이 맡기신 시간
수년 전에 우르바나(URBANA) 세계 선교 대회에서 런던의 세계적인 신학자이고 목회자인 존 스타트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설교 중반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박수 갈채를 보냈는데, 그 때마다 존 스타트 목사님은 시계를 보셨습니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요란한 박수와 함께 자리에 일어나자, 목사님은 앉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제게 할당된 설교 시간은 2분밖에 남지 않았으니 제발 제 시간을 빼앗지 말아 주십시오.”
그 분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앞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복음의 거룩한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한 순간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디모데전서 1: 12
60.시간을 잘 사용하는 지혜
교회 역사에서 짧은 생애 동안 엄청나고 극적인 성취를 이룬 모델을 든다면 존 웨슬레(John Wesley)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웨슬레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만약 10시간 후에 오셔서 우리 생애의 종말이 된다면 그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때 웨슬레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평소처럼 내가 계획한 대로 살 것입니다.”
이 짧은 대답을 통해 그의 삶이 얼마나 철저하게 기도와 계획 속에 이루어졌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웨슬레는 그의 생애 50년 기간에 42,000번의 설교를 하였고, 200권 이상의 책을 썼으며, 약 40만Km의 전도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50년 동안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먼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하는 동안 그의 하루하루를 철저하고 빈틈없이 계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시작한 감리교 운동과 감리교도들을 가리켜 영어로 ‘메소디스트’(methodist)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본래 방법, 규율, 질서를 뜻하는 ‘메소드’(method)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초기의 감리교도들이 얼마나 철저한 계획과 질서 속에서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5, 16
61.시간의 청지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은행에서 걸려온 이상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신 앞으로 어떤 사람이 1,440만원을 입금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입금을 하면서 당신에게 꼭 전화를 걸어 이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오늘 안에 반드시 이 돈을 써야 하는데 조건은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유익하게 쓰라고 하더군요.” 이 사람은 어리둥절했지만 기분이 좋아 1,440만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 궁리하다가 그 돈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에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당신 앞으로 1,440만원이 또 입금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입금된 돈은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돈은 주인이 도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말하기를 오늘 그 돈을 찾아서 쓰시면 그 돈은 당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조금 미심쩍어 하면서도 은행에 가서 그 돈을 찾아다가 기분 좋게 다 써버렸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 아침에 또 당신 앞으로 1,440만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또 쓰십시오.” 그래서 이 사람은 또 썼습니다. 이런 일이 매일 같이 반복되었는데 그 돈을 쓰면서 기분은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어느 날 갑자기 돈이 입금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루 24시간을 주셨습니다. 이 시간은 분으로 계산하면 1,440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돈 1,440만원은 주지 않으셨지만, 우리에게 1,440분의 시간은 공평하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24시간을 공평하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할 것은 이것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끝나는 날,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시간을 어떻게 관리했는가에 대해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청지기입니다.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에스겔 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