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예수님을 바라보며 삽시다
본 문 : 히 13:8
사람은 좋든 싫든, 원하든 원치않든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제나 오늘이나 그리고 영원히 변치 않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동일하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동일하십니까?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은 신이 아닙니다. 변치 않아야 신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을 보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고 하셨습니다. 변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만들고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공산주의이론, 진화론 등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다 세월 따라 변천을 거듭했고 변했습니다.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는 변치 않습니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 믿어야 구원받는 다는 진리도 변치 않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을 보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했습니다. 1장 17절을 보면 "나는 처음과 나중이니"라고 했습니다. 주경가 마펫(Moffatt)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변치 않는 영원자이기 때문에 예수를 저버리고 다른 신앙의 대상을 구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태초에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세계와 인간을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장차 이 세상을 심판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만 믿고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을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정권도, 영광도, 역사도, 성공도, 부귀도, 영화도, 아름다움도 다 변합니다.
세상은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변덕부리지도, 얼굴을 바꾸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바라보고 예수님 믿으면 나도 변함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좋은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오늘 히브리서 13장 1절을 보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라고 했고, 2절에서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했고, 16절에서는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은 멈춰서는 안됩니다.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계속해야 합니다.
* 좋은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7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원뜻이 무엇인지 중요합니다. 개역 성경으로는 잘 알 수 없습니다.
“7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를 살펴보고, 그 믿음을 본받으십시오.”(히13:7/새번역)
“7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일러 준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를 살펴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히13:7/공동번역)
한번 반짝하는 모습이 아닌 끝까지 마지막까지 그분의 신앙의 삶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까지 달려갈 길을 다 하였잖아요.
우리 주변엔 본받을게 있는 사람이 있고 본받을 것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모습, 바른 모습,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부산에 가면 성결병원이라는 큰 병원이 있습니다. 그 병원의 원장은 대연성결교회 장로님 이십니다. 그분은 병원수입의 ½을 교회건축을 위해 적립하고 있는가 하면 매일 예배를 드리고 진료를 시작합니다. 원장부인은 병원과 교회를 위해 기도하느라 늘 목이 쉬어있습니다.
그 장로님은 교역자들을 잘 모십니다.
담임목사보다 열 살 위나 위인데도 지나치다 싶어 "장로님 이러지 마십시요. 저보다 연세가 10년이나 연상이신데 이러지마십시요."라고 만류하면 "목사님 아닙니다. 장로가 모범을 보여야죠. 제가 모범을 안보여 주면 교인들이 뭘 배우겠습니까?"라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17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유익이 없다"는 말은 신앙생활이나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좋은 일을 본받아야 내가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좋은 사람을 본받아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본을 보여줍시다.
좋은 본을 본뜹시다.
좋은 본을 물려줍시다.
* 기도를 힘써야 합니다.
18절을 보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고, 19절을 보면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기도를 힘썼습니다. 이른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 중직자들과 중직자가 되려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예배와 기도에 빠지면 안됩니다. 주일 저녁, 수요일 저녁, 금요일 저녁 교회는 나오지 않고 식당이나 찻집에서 사람을 만나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선교회 관계로 저를 찾아온 교회 장로님과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얘기가 끝난 후 "예배 함께 드리고 가시지요"라고 했더니 "죄송합니다. 저희 목사님이 찾으실 텐데 빨리 가서 본 교회에서 예배드려야 합니다"라며 서둘러 돌아갔습니다. 이런 태도가 바른 태도입니다. 얘기를 하다가도, 차를 마시다가도, 사람을 만나다가도 예배를 생각하고 교회로 돌아오는 사람이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교사가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밖으로 봉사를 나가는 것도 예배가 우선입니다. 예배와 기도를 결코 소홀히 하지 맙시다.
* 화해를 힘써야 합니다.
3절을 보면 "갇힌 자를 생각하라"고 했고, 7절에서는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라고 했고, 22절을 보면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고 했고, 23절에서는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고 했습니다.
24절에서는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상의 구절을 한데 묶으면 사이좋게, 친절하게, 용납하고, 지내라는 것입니다. 실수도 ~
상처받은 마음과 감정을 털어 버립시다. 원한이나 아픔이나 슬픔도 보내버립시다. 너 때문에 상처받고 나 때문에 속상했던 일들도 씻어 버립시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삽시다. 그리하여 새 마음, 새 생각, 새 신앙으로 출발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