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 이집선생, 첨 듣는 생소한 이름 같은데 둔촌은 서울 둔촌동과 혹시 연관이 있는 건지 추측만 될 뿐 도저히 떠오르는 게 없어 검색해 보니 조선의 대 명문가를 중흥시킨 중시조,
조선의 고위 관직을 거쳤던 쟁쟁한 후손들을 보니 익히 들어본 이름도 나왔다
어쨌든 그 명문가의 묘역이 있다는 미지의 현장을
향해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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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역에서 모인 탐방팀은 마을버스를 타고 묘역 입구 도로에서 내려 길을 들어서니 주위가 그린필드의 별천지로 변했다. 더운 날씨를 피해 선선한 숲길을 걷는 탐방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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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가서 만난 첫 신도비에 쓰여진 이름은 이극돈
오늘의 일일 강사로 위촉되신 변초님께서 해설을 시작하심
이극돈은 오늘 탐방의 주인공인 이집선생의 증손으로 조선 전기 역사에서 그 이름이 크게 남아 있는 인물이다
우의정 이인손의 아들이고 영의정 이극배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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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님 해설을 듣는 회원들의 진지함, 학교 때 못다한 역사공부가 한이 맺혀~~
아니 그냥 걷기삼아 나섰지
이 나이에 뭔 공부 새삼시럽게
머리 힘 빼고 듣고 알고 잊기의 무한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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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돈의 부친 이인손, 형 이극배, 동생 이극균 3부자가 정승을 지냈고 다른 동생들이 모두 판서를 지냈으니 형 이극배 이극감 이극증 동생 이극균과 함께 작위를 받아 5군으로 불렸으며 종형제인 이극규 이극기 이극견과 더불어 8극으로 불리니 광주 이씨는 당대 제일의 가문으로 등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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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돈은 당시 권력세력이던 훈구파의 거물이었기 때문에 조선 4대 사화 중 하나인 무오사화(1498,연산군 4)가 일어난 원인제공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가 친시문과에 급제하고 당상관으로 성종실록 편찬을 총지휘할 때 , 사림파 사관 김일손이 자기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사초에 기록하였고 이를 본 이극돈이 세조의 왕위찬탈을 빗대어 쓴 이 글로 인해 큰 변고가 생길까 심히 걱정되어 여러 대신들과 의논하다가 막판에 친구
유자광에게 이 일을 말했는데 , 유자광은
그 틈에 연산군에게 일러바쳤고 대노한 연산군은 바로 김일손을 잡아다 국문하여 신진세력 사림파들을 줄줄이 엮어내어 처형시키는 사림의 화가 일어났던 것
이극돈이 큰 일로 번질까 걱정이 되어 대신들과 의논을 한 것인지
김일손에게 개인적인 불만이 쌓였다가 사초 건을 빌미로 까뒤집어냈던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화를 당한 사림파 김일손 측으로선 무오사화를 훈구파 이극돈과 유자광이 손잡고 청렴결백한 사림파들을 탄압한 사건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자광이 어떤 인물인가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 일약 조선의 영웅으로 등극한 남이장군을 역모로 모함해 죽게한 전적이 있다
실록편찬 총괄책임자로서의 이극돈의 진심된 우려를 짓뭉개고 사림파 숙청의 기회로 이용한 유자광의 또다른 배신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조선인이 사랑한 젊은 청년 남이, 조선의 천하장사 기인 남이장군이 억울하게 죽자 온 백성은 깊은 슬픔에 잠겼고 이후 그에 관한 무협의 전설은 이 땅 곳곳에 스미어 전해져 온다)
초야에 묻혀 절의를 숭상하며 학문이나 닦던 사람들인 사림파,
훈구파에 의해 옹립된 성종이 막강한 집권세력을 형성한 훈구파 견제 목적으로 등용시킨 세력이 사림파라고 볼 때 결국 무오사화는 조선시대를 관통해 내려왔던 정치적 당파 싸움의 시원이랄 수도 있다
무오사화를 시작으로 조선은 권력을 장악한 기득세력과 대립하는 비판세력의 끝없는 반목과 분열의 연속,
선조 때 들어 훈구파가 사멸되고 사림파가 주도권을 잡자 다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고 동인은 남인 북인 서인은 소론 노론으로 분열이 되었으니
선조들의 왕변덕 세포분열 덕에 후세 사람들은 국사시간에 당파 외우기에 한참 헛갈리고 당파싸움에 조선이 망했다는 소리가 안나오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역사에서도 드물다는 500년 이상을 한 왕조로 버틸 수 있었던 조선의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조선이라는 나라, 도드라진 참혹 참사와 사건들도 많았지만 그게 다는 아니기에
오늘 여기 우리가 있는 연유 조선이라는 뿌리를 새삼 들여다 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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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그 옜날에도 지금처럼 금수저 흙수저의 차이가 컸겠지
명문가에 태어났기에 잘 배우고 급제도 하고 출세가도를 달렸겠지만
벼슬하고 높은 관직에 올랐다고 후세에 다 훌륭하다고 칭송 받지는 않잖아
ㅡ그렇죠 뭔가 그 가문에 내려오는 본받을만한 정신적인 덕목이 중요하죠
ㅡ이집선생 가문은 그게 뭘까?
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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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직은 둔촌 이집선생의 아들이고 호는 탄천이다
세 아들 중 장손의 이름이 장손
서울 둔촌동은 이집선생의 호에서 딴 명칭이고
탄천은 숯골에서 숯 태운 검은 물이 흐르는 곳 근처에 이지직이 살았다고 그를 탄천이라고 불렀던 데서 탄천 이지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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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라고 어찌 늘 명예롭고 편안한 길만 있겠는가
무오사화 6년 뒤 일어난 갑자사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이집선생의 후손들도 휘말려 들어갔다
무오사화 때 처벌받은 자가 약 51명 처형된 자가 6명인데
갑자사화 때 처벌받은 자가 239명이고 이 중 처형된 자가 122명이니 피바람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사육신보다 더 처참했다 하고 8촌까지 말살당한 집안이 수두룩했던 유래가 없는 연산군 복수의 시간 속에서, 훈구파 사림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연산군 앞에서 목숨부지를 위해 벌벌 떨었으니,,
모친인 폐비 윤씨 사건의 자세한 정황을 알게 된 그날
연산군은 엄청난 쇼크 탓인지 수라를 들지 않았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몇년간 연산군은 별 기색 없이 지내는 듯 하다가
결국 폭군으로 돌변 갑자사화의 서막을 열었다
폐비윤씨에게 사약을 가지고 간 사람이 형방승지 이세좌였는데 이세좌는 이지직의 증손, 이극감의 아들로 이극돈과 이극균의 조카이다
연산군은 이세좌에게 자결할 것을 명하였고 이세좌는 명을 받아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그가 평상시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연산군은 죽는 태도가 건방지다며 분노했고
이세좌의 아들들도 모두 처형했다
이세좌가 광주 이씨라는 이유로 이극균을 비롯 광주 이씨 상당수도 함께 쓸리고 말았다
이극균이 죽으면서
"신은 젊었을 때부터 변방에서 일했으며 나라의 크고 작은 일에도 전심전력을 다하여 섬겨왔습니다
그러기에 신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죽을 죄는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는 유언을 남겨 이를 본 연산군이 이극균의 8촌 이내와 그를 찾아뵈었던 무사들을 모조리 변방으로 내쳐버렸다
밉보인 이들은 별별 이유로 목이 달아나고 사사당하고 이미 죽은 대신들의 재산몰수에 남은 가족들 대부분 사사당하는 피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궁중에서는 국문 받는 이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이세좌 등 이미 사사된 이들도 다시 파헤쳐 능지하거나 아예 뼛가루로 갈아버렸다
연산이 명한 '갑자 6간신'에 이세좌 이극균이 포함되었으니 그들 6간신의 집은 철거된 뒤 그 자리에 물을 채워 연못으로 만들었다
이극돈은 갑자사화가 일어나기 전 해에 사망해서 화를 피할 수 있었으나 중종반정 이후 오히려 사화의 주범이라며 시호를 박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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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직 묘와 주변에 있는 그외 몇몇 후손들의 묘를 보고 근처 대원공원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발길은 봐야 할
남은 묘역을 찾아 나섰다
앞에 세워진 비석문이 없다면 누구 묘인지 알 턱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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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 산길을 따라 찾아간 이예손의 묘역은 울타리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관리인도 전화를 받지 않아
멀리서 바라만 보고 내려와 대로변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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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을 건너니 드디어 이집선생 모역이 지척이다 성남시에서 조성한 작은 쌈지공원, 이집선생과 회화나무라고 쓰인 표지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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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선생 묘역 앞쪽에 있는 큰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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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노루다 하고 소리쳐 달려가 보니 노루 한마리가 멀리 위쪽 묘역 앞을 가로질러 숲속으로 내달리고 있다
진짜 노루가 사는 곳이네
노루가 그 시각에 달음질쳐 자기 존재를 알려준다
남한산성과 검단산을 돌아 뻗은 얕으막한 능선의 줄기,
산림이 무성한 이곳에 터잡은
이집선생의 묘역도 분명 명당터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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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팝나무 하얀꽃무리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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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초 강사님의 한발 앞선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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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선생 (위 집 )행적비. 부인 영주황씨와의 합장묘.
이집(1327~1387) 고려후기의 학자 문인.본관은 광주 호는 둔촌. 이당의 아들. 가난하고 지체가 변변치 못한 가문에서 관직에 올라 명문가의 반열에 오르는 데 기초를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광주이씨에선 시조를 이당으로 이집을 1세로 모시며 이집을 중시조라 일컬는다. 명문가 반열에 오르게 한 이는 계유정란의 혁명에 참여하여 원종공신이 되어 우의정에 오른 증손 이인손이다
이집은 고려 충목왕 때 과거에 급제했으나 신돈을 비판했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껴 아버지를 업고 영천으로 피해 친구 집에 숨어지냈다
신돈이 죽자 개경으로 복귀, 판전교시사에 임명되었으나 곧 관직을 버리고 여주 천년현에서 독서하고 시를 지으며 농경생활을 하였다
조선개국 후에는 동료 방순과 함께 숯골에 은거하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정몽주 이색 이숭인 등 많은 당대 명사들과 교유하며 문인으로서 생을 보냈으며 저서로 '둔촌유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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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선생의 손자 이장손의 묘가 선생의 묘 바로 아래에 있다
장손이라고 이름도 장손이라 했는지, 이지직의 세 아들 중
이장손은 31세에 사망하고 이인손과 이예손이 조선 전기 관료로서 큰 행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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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사당 관리인의 안내로 들어간 내부
이집선생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잠시 다같이 묵념의 참배를 한 후에 관리인의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관리인은 이집선생의 21대 장손이며 바로 옆의 한옥에서 상주하는데 선생의 기념날에는 수백명의 종친 들이 모인다고 하니 조선 명문가의 명맥이 대대로 이어져 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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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의 설명을 듣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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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 사택에서 그 부인이 끓여내 준 커피 쟁반, 쪽마루에 앉은 일행은 예상치 못한 커피를 대접받았다
손님을 맨입으로 보낼 수는 없다며 굳이 데리고 가서 예를 표하는 모습에서 명문가 후손으로서의 소박한 여유로움이 베어났다
이집선생의 깨끗한 성품이 한 가문을 증흥시킨 작은 씨앗으로 작용한 것일까
조선의 특출난 명문가 이집선생과 그 후손의 묘역을 둘러보고 나니 더 깊은 궁금증을 남긴다
사당을 나와 바로 옆의 또다른 후손의 묘를 둘러봄
문인석도 어쩐지 겸손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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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배고프죠?
네 좀 지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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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묘역을 둘러보느라 고생들 하셨어요
제가 성남 일대의 토박이니
싸고 맛있는 데로 모셔야죠
다들 육쌈냉면집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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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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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가자
금강산도 식후경
굿바이 묘역이여
문인석이여~~
변초강사님 하루동안 탐방팀을 이끌어주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
첫댓글 하하 ~공부많이했어요 현장에서는 탄짓하다가 늘 테리가 있으니까하고 믿는구석이있어용~즐거운 하루였어요 또 만나요
어제 용운문옥계석묘비를 본것 만으로도 하루의 일과를 다 했다고 생각하십시요.
탐방이후 역사공부 톡톡히 하고 갑니다.
그날의 하루가 다 들어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히 후기글과사진 봅니다
해설이 곁들인 걷기의 즐거움을 만끽한 하루였습니다
자세히 잘쓴 후기글 읽으니 다시한번 머리에 쏙 입력 되네요 잘 읽고갑니다~~
테러기 친구님,
역탐방서 만나 반가웠구요.
사진도 잘찍어 후기에 올려줘 고맙구여.
후기글 소상하게 올려주어 감동깊게 잘 읽어다오.~
수고에 감사를 표하구 싶구려.^^
이번에 바위솔님의 정리 후기가 없어 이집 가문의 이야기를 나름 길게 소개했는데요
우리들 연배엔 그냥 걷기만 하면 딱 좋은데
곳곳에 담긴 역사의 흔적을 잘 알려고 들면 대체적으로 피곤해지기 쉽상이죠
야외에선 청력도 집중력도 떨어져
해설자의 현장 설명을 듣고 다 알아듣기에 약간의 무리도 따릅니다
너무 모르는 게 많으니 줄줄이 찾아봐야 연결이 될 정도인데,
맘이 동할 때 검색도 해보고 옜이야기 읽듯 즐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휴,,테리기님 ,!1 대단합니다 ,,,깜 ,놀램뿐 ,,ㅎㅎ
수고 많으셨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