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해변의 바위들
동해는 푸른빛 종이
파도가 줄이 되면
줄줄이 채워지는 출렁이는 이야기들
세월만큼 길고
세상만큼 다양해진다
생긴 모양대로 거북이니 매니 코끼리니 전설이 쓰이고
사랑했던 존재들 수달이나 할미가 생겨나고
보고 싶은 소망으로 아들 딸도 탄생한다
소싯적 할아버지의 힘자랑
얼굴도 못 보고 시집왔다는
아직도 앳된 할머니 사랑이야기
귀를 쫑긋하게 하는 오싹 소름 돋는 귀신이야기도 들린다
그 이야기 숨마디마다
그 맛 돋우기 위해 붙이는 기호들
하찮아 보이는 단순히 점 같은 바위들이 더 멀리 떨어지면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반찬의 양념 같이 뿌려져 새콤달콤 맛을 낸다
감, 할미, 거북...
문장마다 감칠맛이 난다
꽃엽서
서로 차가울 땐 하얀 엽서를 보내더니
서로 풀리니 꽃엽서를 보내네요
서로 냉랭할 때는
말하기 싫어
혹시나 감정적이었다가 서로가 상처받을까 봐
그래도 미련은 있다고 언젠가는 보고 싶어질 거라고 기다리라고
하얀 엽서를 종종 보내더니...
속이 따뜻해지니
그리웠다고 진달래도 그려 보내고
새로 만나자고 노란빛 개나리도 보내고
연해 목련 벚 민들레 이것저것 예쁜 야생화들 날마다 보내고 있네요
하늘과 땅 사이의 사랑이야기랍니다
벽지
나 어때?
어 언제 새 옷 사 입었구나!
응 주인이 사 줬어...
내가 나긋나긋하지 않고 민자라고 주인이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봐
요번에 비싸고 좋은 걸 사줬다!
응 그랬어!
방안의 모든 가구들의 눈이 벽으로 쏠린다
근데 너 목욕이나 하고 갈아입었니?
누군가의 뚱딴지 질문에
터지는
웃음소리
방 안 가득 환하다
예쁜 꽃은 오래 필 필요가 없다
화무십일홍 예쁜 꽃은 열흘도 못 간다
한탄하며 때로 권력에 빗대기도 하지만 사실
꽃과 권력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닮은 점은 없다
향긋한 향기가 권력에서 나는가...
예쁜 꽃은 오래 필 필요가 없다
보는 이는 아쉽겠지만
예쁘거나 향기가 곱거나 입맛에 맞는 선물을 준비해 두면
용케도 벌 나비가 먼저 찾아든다
이걸로 끝이다
여기까지가 그들의 꿍꿍이 속이다
그 이후
예쁠 이유도 고울 필요도 향기와 꿀을 낭비할 바보도 아니다
꽃도 권력과 같이 민중이나 인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닮았다
꽃은 예쁠수록 빨리 시들 수 있다
벌이 더 먼저 찾으니까...
옥수수꽃 이야기
옥수수꽃은요
다른 꽃들은 암 수가 다들 붙어 사는데 호박처럼 떨어져 있어요
떨어져 살면 정도 떨어진다지요
그래서 그들은 서로 외도를 많이 한답니다
아예 외도를 위해 그렇게 떨어져 산다는 말이 더 맞아요
애초부터 의도된 각방 쓰기지요
수놈들은 하늘 높이 솟아 화분을 사방으로 흩뿌립니다
누구라도 받으라는 것이지요
누가 받아도 좋다는 심뽀지요
암컷들도 웃겨요 끼가 다분해요
어느 것이든 닿기만 하면 다 받아들입니다
저항이나 거절은 없어요 수절 같은 건 옛이야기지요
허공을 떠돌다 다가오는 분을 받으려고 손마다 접착제도 바른답니다
옥수수 한 통이 한 번의 결합으로 되는 게 아니랍니다
그 낱알만큼 수많은 교잡이 있었답니다
바람둥이들이라고요?
그래서 바람이 중매를 해요
풀의 욕심
농부다
빈 땅은 두고 보지 못한다
들판이 든 산이 든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린다
누가 그 욕심을 탓하랴
그 극성스러움이 없으면 어찌 푸른 지구를 만들 수 있었을까?
바다의 푸른 물빛만으론 부족하지...
풀을 뽑으며 억세다고 죽이고 싶다고 욕을 하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정말 대단하다
그 욕심에 찬사를 보낸다
그래 그 욕심
빈 땅만 있으면 두고 못 보는 그 농부 같은 욕심에
들이 산이 다 푸른 거야
단지 농부와 만나면 서로의 욕심에 다투는 거지
똑같아 싸움질이지
언제나...
해운정
해무에 가린 고만고만한 산줄기 구름이 되고
그 속에 가물가물 숨어 있는 어부들의 집
그 사이 의젓한 양반가 하나
그 곁에 앉은 정자
해운정
먼 길 달려온 귀한 선비 마주하면 해 기울고 달이 뜨지
다기에 오르는 김 저녁연기와 조우하고
물 맑은 경호에 물드는 저녁노을
연꽃에 맺히는 이슬방울
영롱하게 구르는
시조창
팔작지붕의 단아한 정자 정면 3 칸 측면 2칸 500 년 전
심언광 어른께서 강원도 관찰사로 계실 때
대청마루에 같이 앉으신 율곡 송시열
권진응 선생님의 다정한 모습들
스스로 낮추시어 고매하신
그 분들 꼭 빼 닮은
海雲小亭
후세에 그리움으로 응결되어
보물로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