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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 설교
제목: 하나님이 다시 세우시고 심으신다!
본문: 예레미야 31:27~28
https://youtu.be/vgyRFWtmU_s?feature=shared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목적
2023년 12월 31일 주일 낮예배의 설교 본문은 예레미야 30장이며, 그날 밤 송구영신예배의 설교 본문은 예레미야 31장이다. 앞의 본문은 유다가 회복될 것에 대한 예언이고, 뒷장은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에 대한 약속이다. 이 두 말씀을 읽으면서 한 해를 돌아보고 새 해를 준비할 것이다. 그것이 금년의 마지막 주일을 준비하는 나의 방식이다.
예언자의 메시지는 결국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환경과 상황 가운데서 희망도 자존심도 도덕도 어떤 꿈도 모조리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무기력한 사람들을 일깨우려는 것 아닐까? 그 메시지는 가장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고,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일깨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현실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있은 후에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진다. 그들은 이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그들에게 새로운 약속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에게 주님이 약속하신다. 다시 회복하여 주실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다시 일어나 기쁨으로 주님을 경배하고 소고치며 춤추며 기뻐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님을 기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께 복종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넜고 그들의 원수는 모두 홍해의 거친 물에 수장되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승리였다. 그 옛적의 승리를 다시 일깨워 주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격려하는 것이 이 예언의 특징이다. 우리도 그렇게 일어서야 한다.
설교 개요
1. 너는 내 백성, 나는 네 하나님
2. 선포하고 기도하라
3. 회개하고 돌이키라
4. 과거는 지나갔으며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렸다
5. 새 언약 백성이 열어가는 새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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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는 내 백성, 나는 네 하나님
이제 2023년도가 물러가고 2024년도가 우리 앞에 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을 근간으로 날짜와 시간을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2023년을 계묘년이라 하고, 2024년을 갑진년이라고 부릅니다. 각각 토끼띠와 용띠의 해를 가리킵니다. 특히 새해를 가리켜 청룡의 해라고 부르면서 우리 민족은 희망을 가져봅니다.
오늘 낮부터 저는 우리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설교했습니다. 그 이유는 녹록하지 않은 국내외의 경제사정과 교계의 사정을 고려할 때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의 추위처럼 새해를 맞이하여 움츠러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잘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새해 덕담을 나눕니다. 그런데 덕담의 유효시간은 몇초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근본적이고 더 견고한 소망의 이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구약성경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옛날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말씀하신 예언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금년도 송구영신의 날에 선택한 설교본문은 예레미야 30장과 31장입니다. 오늘 낮에 30장을 보았으니 이제 31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예레미야 30장과 31장은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기록하라고 주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 주요한 내용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그들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 말씀을 듣고 읽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딱한 처지를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도저히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옛 이스라엘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우리 교회가 그 동안 배운 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경륜 드라마에서 제3막의 주인공입니다. 하나님의 경륜 드라마의 제1막에서 주인공은 아담과 하와 부부입니다. 제2막에서는 노아의 가족입니다. 제3막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제4막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제5막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쳐 나갈 새 아담이며 새 이스라엘입니다. 그런 점에서 옛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모든 대리인들에게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옛 이스라엘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를 돌아보고 다시금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징계를 받는 자기 백성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고통 중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자신들이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예레미야 31장은 바로 그 말씀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예레미야 31:1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는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실 때 하신 바로 그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이 세상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일을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공동의 경작을 통해서 그 열매를 함께 나누실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대리인을 통한 위임통치입니다. 그리고 그 위임통치의 파트너를 하나님은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고 때로는 자기의 종이라 칭하시고 나중에는 ‘내 아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출하시는 일은 언제나 출애굽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출애굽의 역사는 하나님이 앞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모든 사역에서 모델이 됩니다. 우리는 다음의 구절에서 옛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야기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나무들을 심되 심는 자가 그 열매를 따기 시작하리라
6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있을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예레미야 32:2~6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광야에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들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십니다. 징계를 받는 중에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본심이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처럼 소고들고 춤추며 노래할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사마리아의 산에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고 열매를 딸 것입니다. 그리고 에브라임 산에서 전령이 소리칠 것입니다. 이제 일어나 하나님께 경배하러 갑시다.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절기를 지킵시다!
이것이 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평안과 안식 가운데 누리던 생활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날에서야 비로소 기쁨의 찬송을 부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미리 그 찬송을 부를 수는 없을까요?
2. 선포하고 기도하라
저는 새해에 주님을 찬송하고 또 찬송할 것을 다짐합니다. 그 찬송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는 고백이며 앞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일에 대한 선포입니다. 우리가 비록 열악한 환경 가운데 살고 있으며 우리는 아직 부족하여 징계 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다음의 말씀이 그렇게 하라고 일깨워줍니다:
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 외치라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8 보라 나는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라 그들 중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있으며 큰 무리를 이루어 이 곳으로 돌아오리라
9 그들이 울며 돌아오리니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10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11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
12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13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31:7~14
우리가 찬양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바로 그 약속대로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가 하면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인도하시고 복을 주시며 번성하게 하십니다. 그런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찬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찬양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저는 2024년에 우리 교회가 부를 주제가를 찾았습니다. 그것은 ‘만 가지 이유로’(송축해 내 영혼)라는 곡입니다. 영국의 찬양사역자가 작사작곡한 이 노래는 아침에도 저녁에도 언제까지나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습니다. 그 가사를 보시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 영혼아 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성스러운 주님 이름 예배하라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내 영혼아 송축하라
나 주님 이름 경배하리이다…
https://youtu.be/FWUMFtboTTI?feature=shared
우리는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도록 지으심을 받았습니다(사 43:21). 그런데 우리가 부를 찬송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과 앞으로 하실 일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그 자체로 설교이며 예언입니다. 누가 찬송을 곡조 붙인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찬송을 곡조 붙인 예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찬송 그대로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시편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런 지혜를 들려줍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편 37:4
오늘 오전에 소개해 드렸던 원로목사님의 이야기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진짜 아버지심을 기억하고 그분 앞에서 언제나 찬양합시다. 하나님은 지금 포로로 끌려가서 징계를 받고 있는 백성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이사야 31:9
3. 회개하고 돌이키라
그런데 우리가 지금 징계 중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 아들이라면 징계는 다 받는 것이라고 히브리서에 나와 있습니다(히 12:8). 친아들에게 징계가 필요한 이유는 그가 진정한 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부모의 의도입니다. 부모는 때로는 자녀를 홀로 있게 하고 때로는 자녀에게 고통을 견디게 합니다. 그러게 해야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19 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처녀 이스라엘아 너의 이정표를 세우며 너의 푯말을 만들고 큰 길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22 반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 싸리라
예레미야 31:15~22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라마에서 슬피 우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자식을 잃은 어미의 울음입니다. 라헬이 자기 자식을 잃어버리고 나서 우는 울음입니다. 라헬은 야곱의 부인입니다. 그 여인은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습니다. 그 중에 베냐민을 낳을 때 출혈이 심하여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에게 주신 예언에서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었다는 말은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것을 잃고 그 슬픔 때문에 우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정말 큰 슬픔입니다. 이것이 지금 징계를 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묘사입니다.
사실 우리가 고통을 겪었을 때 그 슬픔과 괴로움을 생각하면 이해할만한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명예를 잃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을 잃고 완전히 망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자식을 잃고 슬퍼하며 울던 라헬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징계를 받아 슬픈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제 울음을 그치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울음을 그치라고 말씀하실까요? 이제 그가 깨닫고 돌이킬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 깨닫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나는 멍에를 매는데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처럼 너무 철없는 행동을 했어. 그래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은 거야. 하나님이 나를 훈련하시는 것이었어. 이제 하나님이 나를 이끄시는 대로 나는 갈거야. 주님, 저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리로 나아가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너무 부끄럽고 챙피해서 내 스스로 내 볼기를 치면서 나를 바로잡을 거야!’
그런데 하나님도 그렇게 회개하는 이스라엘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하나님도 징계하시면서도 늘 자신의 자식 같은 에브라임을 생각하셨고 에브라임이 고통 중에 신음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창자가 들끓는 것 같이 불쌍히 여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말씀하십니다. 전에 있던 자리로 돌아오라고. 그 떠난 자리에 있던 이정표를 다시 세우고 푯말을 찾아서 제자리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징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적은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약해진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이런 고통 가운데 있게 되었을까? 내가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처럼 내 주인의 뜻을 외면하고 내 고집대로 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실까? 이런 생각을 해야 진정한 회개이며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4. 과거는 지나갔으며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렸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과거나 현재에 갇히지 말고 미래를 향하여 기지개를 켤 수 있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말씀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2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
24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 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에 함께 살리니
25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26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예레미야 31:23~30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상태에서 이 말씀을 듣는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하나님이 하실 일의 결과로 사람들이 그 땅을 더 이상 저주받은 땅이라고 부르지 않고 의로운 처소와 거룩한 산이라 부르고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이라는 칭찬을 듣게 될 것입니다. 농부도 목자도 그 성읍에서 자리를 잡고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삶이 윤택하여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에 여유도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야, 잘 잤다!’는 기분 좋은 말과 함께 깨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복 주시는 세상에서는 인구도 늘어나고 목축하는 짐승들도 많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린다는 말은 수가 늘어난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열성이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깨어서 전에 그 백성을 바로잡기 위하여 징계하셨던 것처럼 이제 다시 그 백성을 세우고 심기 위하여 그 일을 깨어서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들여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어떤 불평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속담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어서 제 이가 시립니다!’ 이 속담은 아마 포로 생활을 오랫동안 하는 백성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자세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범죄하여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거야! 부모가 신 포도를 먹었으니 자식의 이가 시린 것은 당연한 것 아냐?’ 그 말은 자신의 형편을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새로운 시도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에게도 이런 종류의 말이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민족을 35년 동안 억압할 때 그런 말이 생겼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뭐 그렇지.’ ‘개개인의 능력은 좋은데 모이면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린다구!’ ‘우리가 일본이나 선진국을 따라가려면 멀었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이런 말은 다 자포자기의 언어이며 자기비하의 언어들입니다. 실패와 불행을 입에 달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더 이상 신 포도 속담은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청년들이 많아질 때 세계는 대한민국을 보고 놀라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배우는 우리는 얼마나 더 담대하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5. 새 언약 백성이 열어가는 새로운 세상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들은 새 언약 백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에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미래를 주실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미래를 주시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새 언약에 동참할 것입니다.
다음의 말씀은 바로 그 새 언약에 동참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36 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위에 있는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밑에 있는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8 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은 하나넬 망대로부터 모퉁이 문에 이르기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 측량줄이 곧게 가렙 언덕 밑에 이르고 고아로 돌아
40 시체와 재의 모든 골짜기와 기드론 시내에 이르는 모든 고지 곧 동쪽 마문의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거룩한 곳이니라 영원히 다시는 뽑거나 전복하지 못할 것이니라
예레미야 31:31~40
새 언약에 대한 이 말씀은 흔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 언약으로 인용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새 언약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새 언약은 깨질 수 없는 언약입니다. 왜냐하면 그 언약은 돌판에 기록되지 않고 마음 판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언약이 새 언약입니다.
어떤 언약이 마음에 새겨진 언약일까요? 어떤 언약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다 하나님을 알고 따를까요? 그들은 고난을 통해서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그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새겼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맺는 언약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언약을 새 언약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런 특성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혈통이나 학벌이나 외적인 요인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오로지 진실된 믿음을 가진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그 백성을 영원히 붙드시고 끝까지 버리지 않으십니다. 낮에 해가 뜨고 밤에 달과 별이 뜨는 것과 바다에서 파도가 치는 것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이 새 언약에 동참한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런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2024년을 맞이할 때 바로 이런 마음으로 새로운 해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봅시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영원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담대하고 또 담대하게 모든 일에 임해 봅시다.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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