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열매 없는 포도원 (이사야 5:1-7)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려고 얼마나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시는가를 보라. 곧 그는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해 주고, 그 죄로 인한 그들의 비극과 위험을 알려 주시기도 하신다. 그러한 취지를 위해, 하나님은 여기에서처럼 때로는 평이한 말씨로, 때로는 비유로, 때로는 산문으로, 또 때로는 운문으로 말씀하신다. "우리는 너희와 변론하도록 시도했다(1:18). 이제는 우리가 너희의 사정을 하나의 시로 만들어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의 영예를 위해 기록해 두리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포도원의 주인으로 이미 정하신 자, 곧 당신의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 시를 저작하신다. 그 예언자도 역시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 시를 노래한다. 왜냐하면 그도 역시 그리스도를 매우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예언자들도 신랑(예수)의 친구들이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우리의 사랑하는 구주이시다. 교회에 대해서 말해지거나 노래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것이어야 하며(본문과 같이)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주려는 것까지도 역시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것으로 알아야 한다.
이 비유는 노래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것이 더욱 감동 감화를 줄 수 있으며, 더욱 쉽게 배워지고 정확히 기억될 수 있게 했고, 후손들에게 더 잘 전승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것은 모세의 노래(신 32장)에 대한 설명이다. 즉 모세가 당시에 예고한 것이 지금에서야 이루어졌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제롬(Jerome)의 말에 의하면, 지극히 사랑받는 자 곧 그리스도 자신께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을" 때(눅 19:41), 실제로 이 애가를 불렀고, 그가 말씀하신 포도원 비유도 실상 이것을 염두에 두셨다는 것이다(마 21:33 이하). 본문에 나온 비유에서는 잘못이 오직 포도에게만 있었고,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농부들에게만 있었다는 것이 다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 수 있다.
Ⅰ. 하나님께서는 유대교와 유대민족을 위하여 위대한 일(기사)을 행하셨다. 세상 모든 나라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이었지만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경작되지 못한 상태에 그대로 있었을 때에도, 이스라엘만은 하나님의 특정한 민족이었다. 그는 그들을 당신 자신을 위해 따로 세우신 당신의 소유로 인정하셨다. 그들이 심겨진 토양은 매우 훌륭했다. 그것은 "심히 기름진 산," "기름의 아들의 뿔" 이었다(난외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 거기에는 풍부함, 풍요의 뿔이 있었고, 또 산해진미가 있었다. 즉 그들은 거기에서 기름진 것을 먹었고, 달콤한 것을 마셨으며, 희생 제물과 자원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조건이 유리하다는 사실이 언젠가는 헤아림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포도원을 위해 행하신 일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1. 하나님은 아무도 그 포도원을 상해하지 못하도록(27:2, 3) 거기에 울타리를 만드시고, 땅을 파서 특별시 보호했으며, 언제나 당신의 눈으로 살피셨다. 만일 그들 자신이 그 울타리를 허물지 않았더라면, 그 누구도 그들을 침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시 125:2; 121:4).
2. 하나님은 그 포도원에서 돌을 제하셨다. 그리하여 외부에서의 방해뿐 아니라 내부에서 그 포도원의 열매맺음을 방해하지 못하게 했다. 즉 그는 돌같은 마음을 제하기 위해 은혜를 베푸셨다.
3. 그는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다. 그들 가운데 순수한 신앙을 세웠고, 그들에게 매우 훌륭한 율법을 주었으며, 당신과의 교제를 지속하기에 지극히 적합한 규례를 제정해 주셨다.(렘 2:21).
4. 하나님은 그 가운데다 망대를 세웠다. 그것은 폭력을 막으며 그 포도원에 거하는 일군들을 위해서였다. 또는 오히려 포도원에 앉아 포도를 살펴보는 주인을 위한 것(아 7:12) 즉 여름철 별장이었다. 성전이 바로 이 망대이다. 그 주위에 제사장들이 거했고, 거기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만나기로 약속하셨으며, 그들 중에 그의 임재하심과 그들을 기뻐하심에 대한 표적을 주셨다.
5. 하나님은 거기에다 술틀을 만들어 놓았고, 포도원의 열매와 마찬가지인 제물들이 바쳐질 당신의 제단을 세웠다.
Ⅱ.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기대가 좌절된 것을 보자. "그는 좋은 포도맺기를 바랐고," 그들에 대한 그의 기대는 매우 컸다. 하나님은 포도원 나무들에게서 잎사귀만이 아니라(막 11:13 참조) 포도 열매를 기대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아무리 푸르더라도 실속없는 고백은 소용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단지 봉오리와 꽃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목적과 훌륭한 시작은 좋은 것이나,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거기에는 열매 즉 선한 마음과, 선한 생명이 있어야 하며, 포도 열매 즉 성령에 합당한 생각과 감정, 언어와 행동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규례에 합당한" 포도원의 열매이다(갈 5:22, 23). 그 규례란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용납하시는 포도원 손질이며 계절에 따라 맺는 열매이다.
이러한 열매를 하나님은 우리에게서도 기대하신다. 곧 그들이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하는(삿 9:13) 포도나무의 열매 즉 포도를 기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대는 높거나 어렵지 않으며, 오직 정당하고 합당할 뿐이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기대가 어떻게 좌절되었는가를 보라. "들포도를 맺었도다." 즉 그것은 전혀 열매를 맺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열매 없느니만도 못한 나쁜 열매, 곧 소돔의 포도를 맺었다(신 32:32).
1. 들포도는 변질된 성질의 열매요, 접목된 가지에서 난 열매가 아니라 들가지에 의한 열매이다. 그러므로 쓴 뿌리에서 나온 열매이다(히 12:15). 은혜가 역사하지 않는 곳에는, 타락이 역사할 것이다.
2. 들포도는 신앙을 가장한 위선적인 관습이다. 그것은 포도같이 보이나 시거나 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는커녕(1:11 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진노케 한다. 가장된 은혜가 바로 들포도이다.
Ⅲ. 총괄적으로 보아서 하나님이 옳다고 할 수 없으며 그들이 정죄를 받아야 마땅한지 아닌지를 그들 스스로에게 묻는다(3, 4절). 이제 그 고발 내용이 분명하게 진술되어 있다.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비난을 받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는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공의는 매우 분명하게 하나님의 편이었으므로, 그는 그들 자신의 양심에다가 이 논쟁의 결판을 맡길 수가 있었다. "사리를 분별할 줄 알며 정의에 대한 상식을 갖고 있는 자라면, 예루살렘이나 유다의 어느 사람이든지 이 문제에 대해 공명정대한 의견을 말하라."
여기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도전이 있는데,
1.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부족하게 해 주셨던 점이 있으면 말해 보라는 도전이었다. "내가 내 포도원을 ㅟ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하나님은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는 외형적인 방편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포도원 지기에게는 으례 기대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포도원 지기더러 포도의 품질 자체를 바꿔 놓으리라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 무엇을 더해야 하겠느냐" ?(본문을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의무를 가르쳐 주고 지시해 주기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 즉 그들로 하여금 의무를 행하도록 촉구하고, 그것을 마음에 두도록 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설득시킬 수 있는 자극제는 그 어느 것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소망에서나 두려움에서라도 의무를 다해야 하도록 온갖 논증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의무 즉 월삭이나 안식일과 엄숙한 절기를 지키는 일을 위해 그들이 바랄 수 있는 온갖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예언자들 중에 있는 비범한 것 이외에도, 살아있는 신탁 곧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라는 상비군 사역자들과 성경이 있었다. 어느 나라에도 그처럼 의로운 율례와 규례는 없다.
2.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을 거슬러 행한 것에 대해 좋은 이유를 제시해 보라는 도전이었다. "왜 무슨 이유로 내가 포도를 바라는 때에, 들포도를 내어야 했는가?"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사를 맛본 자들이 사악해짐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조리하고 까닭 모를 일이며, 그에 대한 전적 책임은 그 죄인들 자신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네 홀로 해를 당하리라(잠 9:12). 그리고 저 위대한 심판의 날에 네 자신을 위한 한 마디도 변명치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길이 공평하시고 죄인들의 길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결국엔 입증하실 것이다.
Ⅳ. 그들의 파멸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나쁜 행실로 인해 그들에게 언도된 의로운 서노를 볼 수 있다(5, 6절). "죄를 변명하거나 심판을 정지시킬 만한 것이 없으니,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나는 더 이상 그 일로 괴롭힘을 받고 시달림을 받지 않겠다. 그 포도원이 아무 것에도 유익하지 않으니,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더 이상 포도원이기를 그치고, 황무지로 바뀔 것이다. 즉 유대교는 교회의 특권을 빼앗길 것이다. 그들의 특허장은 빼앗길 것이고, 그들은 로암미 - 나의 백성이 안 될 것이다."
1. "그들은 더 이상 독특한 백성으로 구별되지 않고 평범한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그 울타리를 걷으리라. 그러면 그것은 곧 먹힘을 당할 것이며 다른 땅처럼 노출될 것이다." 그들이 열방들과 섞였으므로, 열방 중에 흩어짐을 당함은 정당했다.
2.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질 것이다. 하나님은 그 담이 썩게 내버려 두실 뿐만 아니라, 그 담을 훼파하시고, 그 울타리를 제거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해를 끼칠 기회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고, 이제는 그들을 밟아 짓이기려 하는 원수에게 쉽게 먹이가 될 것이다."
3. "그들은 더 이상 포도원의 면모 곧 교회와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평정되고 황폐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밭같이 갊을 당했을" 때(미 3:12), 실행되었다.
4. "더 이상 장관이나 사역자들이, 포도원지기나 포도원을 손질하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수고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가지를 치거나 땅을 파지 않을 것이며, 모든 것이 황무케 될 것이다. 그리고 가시덤불과 엉겅퀴 곧 죄와 저주의 소산물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나지 않을 것이다" (창 3:18). 잘못과 타락, 패륜과 부도덕이 제지나 통제를 받지 않게 될 때, 그들을 고발하는 자도 생기지 않으며, 그들에게 책망이나 규제가 가해지지도 않게 된다. 그리고 그런 때는 포도원에 가지가 쳐지거나 손질되거나 구축되지 않는다. 그때에, 포도원은 총명이 없는 사람의 포도원처럼 곧 가시덤불로 덮일 것이다.
5. "그 재앙을 완성키기기 위해 하늘의 이슬이 내리지 않을 것이다. 구름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비를 그 포도원에 내리지 않도록 하며, 그 포도원이 사막이 되게 하실 수도 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은혜를 헛되이 받은 자들에게는 그 은혜를 다시 주시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은 정당한 심판 방법의 하나이다. 결과적으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려는 자들은 아무 열매도 못맺게 될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저주는(막 11:14 와 같이) 열매 맺지 못하는 죄에 대한 벌이다. 이 형벌은 갈대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킴으로써 부분적으로 이루어졌고, 유대인들의 최종적인 거절에서 완전히 이루어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하나님께 대항하고 하나님과 항쟁하는 자들에게서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시며, 그의 복음이 본인들에게는 큰 존귀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복음을 비방해오던 자들에게서 복음이 떠나 버림으로써도 종종 그 형벌은 실현된다.
하나님께 있어서는 당신의 포도원을 황폐케 하는 것이 조금도 손해가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광야를 비옥한 들로 만드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처럼 포도원을 철거하시는 것은, 마치 그가 에덴 동산에게 행하신 일과 같은 것이다. 즉 사람이 죄로 인해 에덴 동산 속의 제 자리를 빼앗겼을 때, 그 에덴 동산은 곧 평범한 땅과 같아졌던 것이다.
Ⅴ. 이 비유에 대한 해석 또는 그 해석의 열쇠를 보자(7절).
1. 포도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의 족속(집)", 곧 단일한 교회와 국가를 형성한 그 민족 집단을 말한다] 그리고 포도나무 곧 즐거운 나무와, 하나님의 기쁨이신 나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 나무에게 좋은 일을 해주시는 것을 이제껏 기뻐해 오셨다. 그것은 "유다 사람" 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은혜롭게 대하셨다. 그리고는 그들에게서 합당한 보답을 기대하셨다.
2. 하나님이 기대하였던 포도와 그들이 낸 들포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그들에게 공평과 의로움을 바라셨다." 즉 그 백성들이 매사에 정직하며 치리자들은 엄격하게 사법을 시행하기를 바라셨다. 이것은 이처럼 훌륭한 규례와 법도를 받은 백성들 중에서는 당연히 기대될 수 있는 것이었다(신 4:8). 그러나 실제는 매우 달랐다. 공평대신 도리어 잔인한 포학이 있었고, 의로움 대신 도리어 학대당하는 자의 부르짖음이 있었다. 모든 일은 아우성과 소란으로 이루어졌고, 정의와 진실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았다. 악의 정의의 자리를 찬탈할 때, 그것은 백성들에게도 큰 슬픔이 된다(전 3:16).
하나님이 바라시는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사랑 그리고 세상에 대한 경멸의 포도 대신에 도리어 교만과 격노와 불만과 악의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경멸이라는 들포도가 났을 때 - 기도와 찬미의 포도 대신 하나님을 크게 거스리는 저주와 맹세라는 들포도가 났을 때, 그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도 매우 슬픈 일이다. 어떤 옛 학자들은 이 말씀을 그리스도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적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에서 의로움을 기대했으나(즉, 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신봉해야 했다)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5:2 없음.
5:3 없음.
5:4 없음.
5:5 없음.
5:6 없음.
5:7 없음.
5:8
속된 마음을 책망함 (이사야 5:8-17)
세상과 육체는 우리가 압도당하기 쉬운 두 개의 큰 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거기에 자신을 내어 주지 않는다면 위험하지는 않다. 세상에 대한 열심과 육체의 탐닉은 이사야 예언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기에서 재앙을 통고하게 만든 두 가지의 죄악이다. 이러한 것은 그당시 유다 사람들 가운데 만연되어 있던 죄, 곧 그들이 맺은 들포도의 일부였다(4절).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죄 때문에 그들에게 멸망을 내리시겠다고 경고하셨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경계하고 그 결과를 무서워해야 할 죄이다.
Ⅰ. 세상의 재물에 마음을 두고, 그 속에다 자기의 행복을 부여하며, 또한 사기와 불법 수단으로 그것을 불어나게 하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다(8절). 그들은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기를 빈틈이 없을 때까지" 하며, 자기들 곁에서는 어느 누구도 살 수 없도록 만드는 자들이다. 만일 그들이 할 수만 있다면, 지상의 한 가운데다가 홀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소유권과 출세를 독점하고, 모든 이득과 일을 도맡으려 했을 것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또 다른 집이나 밭을 사는 것은 죄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1. 그들의 과오는 이런 것이었다.
(1) 자기를 부유하게 만들려는 그들의 욕망이 과도했던 것이요, 가산을 모으는 일 이외에는 이 세상에서 마음 쓸 일이 없다는 듯, 찾을 것이 없다는 듯, 할 일이 없다는 듯, 오직 거기에만 전심 전력을 다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미 충분히 가졌다는 것을 결코 모른다. 그래서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한다. 그들은 "거머리의 딸들" 처럼 "주십시오, 주십시오" 라고만 한다(잠 30:15).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거나 그것으로 선행을 하지 못하고, 오직 끊임없이 재산을 더욱 늘릴 궁리를 하고 연구한다. 그들은 여러 가지 집, 곧 겨울 별장과 여름 별장을 가져야 한다. 나봇의 포도원이 아합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의 집이나 들이 자기들에게 편리하게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다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2)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 주지 못하는 것, 아니 남들을 해롭게 하는 그 점이다. 그들은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살지 못하게 하려한다. 그들의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이 채워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그 이웃들의 권리를 침해하든 말든, 그들이 지배할 수 있고 착취 할 수 있는 자들은 어떤 고역을 겪든, 또는 보화를 쌓기 위해 어떤 야비하고 악한 수단을 쓰든,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모든 공간을 채울 정도로 크게 팽창하려 하나, 알렉산더 대왕처럼 여전히 만족하지는 않는다. 알렉산더는 세계를 정복하고 나서, 더 이상 정복할 세계가 없어서 울었다. Deficiente terra, non impletur avaritia - 즉 온 세상이 독점되었을 때에도, 탐욕은 더욱 큰 갈증을 느낄 것이다.
" 너희가 홀로 이 땅에 거하려 하느냐?"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봉사가 이처럼 크게 필요하고 그들과의 공동생활 속에서 오는 위로가 이처럼 많이 필요한 때에, 아직도 너희는 그런 것을 원할 만큼 그렇게 어리석은가? 너희는 땅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게 될 때에 "너희를 위하여 땅이 버림을 당하기를" (욥 18:4) 기대할 정도로 그렇게 어리석을 것이냐? "넓은 세상이 단지 너만을 위해 만들어졌느냐?" [리라(Lyra)]
2. 이 죄에 대한 벌로서 경고되어 있는 것은, 그들이 이처럼 탐욕스럽게 얻은 집이나 들이 아무 소용도 없게 되리라는 것이었다(9, 10절). 하나님은 이와 비슷한 경우에서처럼(22:14) 이 예언자의 귀에 이것을 가만히 말씀해 주셨다. 즉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주셨다" 고 했다(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도 "그의 귀에" 어떤 것을 들려 주셨다. 삼상 9:15). 이사야는 그것이 계속 자기의 귀를 울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올바르게도 그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했다(마 10:27).
(1) 그들이 그처럼 좋아한 집은 사람이 없어 비게 될 것이라 했다. 오랫동안 빈 집이 될 것이다. 따라서 임대되지도 않고 수리되지도 않을 것이다.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라." 그것은 그집에 거할 사람들이 칼이나 기근이나 본역에의해 또는 장사가 안 되고, 빈곤이 그 나라에 무장한 군인처럼 엄습하기 때문에, 문지기였던 자들이 할 수 없이 그곳에 거해야 했거나 스스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크고 훌륭한 집들도 차용자들을 부르고(차용자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좀 낮은 값으로 내놓아질지라도, 거할 자가 없어 비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을 헛되이 창조하시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사람으로 거하도록 지으셨" 기 때문이다(45:18). 그러나 사람들의 계획은 흔히 좌절되며, 그들이 짜놓은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는 집을 지으나, 지혜로운 자가 그 안에 거한다는 말을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 이 사건이 증명하듯이 집을 지으나 아무도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무리 사람이 많은 도시라도 텅비게 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알고 계신다.
(2) 그들이 그처럼 좋아했던 들이 과실을 맺지 못하게 될 것이다(10절). "열흘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약 8칼론)가 나겠고, 한 호멜지기" 곧 한 부셸지기에는 호멜의 십분지 일인 한 에바가 날 것이다. 따라서 그 땅이 불모하거나 날씨가 불순함으로 인해, 그들은 다시는 그 씨의 십분지 일 이상을 얻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마음을 두는 자들은 당연히 실망할 것이다.
Ⅱ. 감각적인 즐거움과 기쁨에 빠진 자들에게는 화가 선포되어 있다(11, 12절). 관능적인 것은 세상적인 일과 압제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사람을 망쳐 놓는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자들에 대한 화를 선포하셨고, 현재 웃으며 부요하고(눅 6:24, 25), 호화로이 연락하는(눅 16:19) 자들에게 화를 선포하셨다. 다음을 살펴보라.
1. 이러한 화를 통고 받은 죄인들은 누구인가?
(1) 그들은 술취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술마시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그것에 마음을 두고, 그것에 만취되어 버린다. 그들은 농부와 상인들이 일터로 나가듯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독주를 마시러 간다. 마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듯이 서둘러 나간다. 그러나 술에 취하는 자들은 그날의 일을 급히 해치우고는, 대개 밤이 깊도록 취한다. 즉 이들은 일을 게을리 하거나 아예 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정욕에다 내어 던지는 것이다. 그들은 온종일 술잔을 기울이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한다." 그들의 욕정(술에 취하여 소란히 지내는 곳에는 부도덕과 방탕이 따른다)에, 곧 그들의 감정에 불을 붙인다. "분쟁과 까닭없는 창상이" 이러한 자에게 있지 않고 누구에게 있겠는가?(잠 23:29-35) 그들은 술을 익숙하게 거래한다. 즉 그들은 이 흑암의 일을 부끄러워하듯 밤이라는 은닉처를 찾지도 않고, "낮의 연락을 기쁘게 여긴다" (벧후 2:13 참조).
(2) 그들은 쾌락에 빠진 자들이다. 그들은 연회를 베푼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흥에 취에 있으므로 다윗처럼(암 6:5), 솔로몬처럼(전 2:8) 음악이 없이, 온갖 종류의 악기 없이는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실 수 없다.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 가 술에 동반되어 오감(五感)이 모두 만족되어야 한다. 그들은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한다" (욥 21:12). 음악을 사용하는 것 그 자체는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칠 때, 우리가 거기에 집착하여 거기에 시간을 낭비하고, 그것이 우리의 영적이고도 거룩한 기쁨을 밀어내며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때, 그때는 그것이 우리에게 죄로 변한다.
(3) 그들은 어떤 심각한 일에는 조금도 마음쓰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한다" 고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악용하고 있고, 그래서 허무에 굴복되어 있는 그 피조물들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을 깨닫지 못하며,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섭리를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그들을 붙잡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진노의 표적 아래 있으나 그들은 거기에 관심치 아니한다. 즉 그들은 이 모든 것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손을 의식치 않는다. 그의 손은 들어 올려졌으나, 그들은 그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즐거움 속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고 싶어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시는 것도 생각하려 하지도 않는다.
2. 그들에게 통고되었고, 이미 부분적으로는 수행된 그 심판은 어떠한 것들인가? 여기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예고되어 있다.
(1) 그들은 쫓겨날 것이라 했다. 그 땅이 술취하는 자들을 토해낼 것이다(13절). 그러므로 "나의 백성(그들은 그들 자신을 그렇게 불렀고 그것을 자랑했다) 이 무지함을 인하여," 마치 그들이 이미 사로잡힌 것과 마찬가지로, 틀림없이 "사로잡힐 것이라" 고 했다. 그들이 과음으로 인해 어리석고 우둔한 자가 되었는데, 어떻게 지식을 지니겠는가? 그들은 자기들이 지자(知者)인 척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다투고 계심을 유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와 화평하려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진실로 무지하다고 말해야 하리라. 그리고 그 이유는 마침내 그들은 아무런 지식도 못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각이 없으며 고집스럽다. 그러므로 지식의 결핍으로 인해 파멸한다.
(2) 그들은 가난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낭비하고 지나치게 남용했던 바로 그것들이 부족하게 될 것이라 했다. 심지어 "그들중의 귀한 자도 주릴 것이다." 즉 그들도 기근의 노예가 되고, 그것 때문에 죽임을 당할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다." 높은 자들이나 서민들이 모두 음식이 없어 아사할 지경이 된다. 이것이 흉년의 결과이다(10절). 왜냐하면 "왕도 밭의 소산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전 5:9). 그리고 포도의 수확이 흉작일 때는, 수확하는 자들이 울게 될 것이다. "단 포도주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졌기" 때문이며(욜 1:5), 그들이 그것을 남용했던 것만큼 이제는 궁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남용했던 것을 궁하게 만드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3) 무리가 기근과 칼에 의해 끊어질 것이라 했다(14절).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낼 것이다." 공동 매장지인 도벳이 너무 비좁을 것이다. 즉 거기에 묻혀야 할 사람이 너무 많으므로, 부득이 넓혀야 할 것이다. 음부는 그 입을 한없이 벌리며 "족하다, 하지 않는다" (잠 30:15, 16). 그곳은 저주받은 자들의 장소로 해석될 수도 있다. 곧 사치와 호색이 그 흑암과 공포의 지역을 채운다. 거기에서 저희의 배를 신으로 삼던 자들이 고통을 당한다(눅 19:25; 빌 3:19).
(4) 그들은 굴복되고 낮아질 것이며, 그들의 모든 존귀는 티끌 속에 묻힌 것이라 했다. 이것은 죽음과 무덤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실행될 것이다. "귀한 자가" 땅으로 뿐만 아니라 땅 속으로 "낮아질 것이다." 명예가 "저를 따라가지" 못하고(시 49:17), 죽음 저편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며, 그들과 함께 죽어 묻힐 것이다. 이처럼 시들어 버릴 초라한 영광이여! 그들이 수효 많음을 자랑했는가? 그들의 많은 무리가 구렁으로 내려갈 것이다(겔 31:18; 32:32). 그들이 자기들의 풍채를 자랑했는가? 그들의 화려한 행렬은 끝날 것이다. 그들을 우쭐하게 만들고 그들의 뒤를 따랐던 환성도 끝날 것이다. 그들이 환락을 자랑했는가? 사망은 그것을 애곡으로 바꿀 것이다. 기뻐하고 흥청거리면서 결코 진지할 줄을 모르던 자들이 울음과 탄식이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이처럼 처한 자와 귀한 자가 음부와 굴욕을 느끼게 하는 심판에서 함께 만나리라. 아무리 사람이 높을지라도 죽음은 그를 낮아지게 할 것이며, 아무리 천할지라도 죽음은 그를 더 낮아지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다(15절). 얼마 안있어 곧 낮아질 자들은 천히 여김을 받게 된다.
3. 이 심판의 결실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실 것이다(16절). 만군의 여호와이신 거룩한 하나님께서 그 심판과 이 섭리의 의로우심으로 인하여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다 함을 받으실 것이다.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을 낮추심으로써 거기서 하나님의 정의가 인정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님은
[1] 항거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받으시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가장 강한 자를 꺾으시고, 가장 교만한 자를 낮추시며, 가장 다루기 힘든 자를 길들일 수 있는 만군의 여호와로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능ㄹ역은 오직 심판 가운데에서만 높임을 받는다. 비록 그가 강한 팔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은혜와 공의가 항상 주의 보좌의 기초인"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시 89:13, 14).
[2] 흠없이 결백한 하나님으로서 영광을 받으시고 있다. 거룩하신, 무한히 거룩하신 자는 교만한 자를 의롭게 심판하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실 것이다(즉 거룩하신 자로 인정되고 선언될 것이다). 교만한 자가 낮아질 때는, 위대하신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리고 또 그는 우리에 의해 영화롭게 되셔야 마땅하다.
(2) 선한 사람들은 구제되고 구조될 것이다(17절). "그때에는 어린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같이 먹을 것이라" 고 했다. 어린 양(예수)을 따르던 자들, 곧 이 땅의 온유한 자들, 그래서 교만한 압제자들에 의해 학대받아 두려움에 빠져있던 자들이 평안하게 푸른 초장에서 먹을 것이며, 거기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두렵게 하지 못할 것이다(겔 34:14 참조). 교회의 원수들이 멸망될 때, 교회는 비로소 휴식을 얻는다. "그들은 기쁘게 먹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고" 그 풍성한 평화를 기뻐할 것임이라. "그들은 그들의 차례나 능력대로 먹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이렇게 해석한다). 또한 그들이 생명의 떡인 말씀을 들을 수 있다.
(3) 그 나라는 황폐케 되고 이웃 나라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의 소산," 곧 편히 살던 그 부자들의 소유물은 그들과 혈연 관계가 없는 유리한 자들에게 먹힐 것이라 한다. 포로로 잡아 갈 때, 그 땅의 빈천한 자들을 그대로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다(왕하 25:12). 이들이 살찐 자의 초장에서 먹는 양들이었고, 그 초장은 유리하는 자들이 공동으로 먹게 되었다. 그 살찐 자들, 즉 유대교가 황폐케 되었을 때, 그들의 특권은 오랫동안 유리하는 자들이었던 이방인들에게 양도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양떼들은 그들에게 환영받았다.
5:9 없음.
5:10 없음.
5:11 없음.
5:12 없음.
5:13 없음.
5:14 없음.
5:15 없음.
5:16 없음.
5:17 없음.
5:18
환난날의 예고 (이사야 5:18-30)
Ⅰ. 백성들에게 심판을 초래할 그 죄가 나와 있다. 이것은 그 당시 살았던 유다인들에 대한 책망이며, 더욱이 그 책망에 대한 세부적인 조항이다. 그러나 그것이 주로 그들에게 대한 말인 것은 사실이거니와, 나아가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개인과 사회를 다같이 망치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게 하는 죄를 조심하라고 경고하기 위한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어떠한 자들이 화를 받게 되는가?
1. 죄를 열심으로 행하며, 맹렬히 죄악을 추구하는 자들이다(18절).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끄는 자" 라고 했다. 가축이 수레를 끌 때 처럼, 죄를 짓는 데에 큰 수고를 기울이는 자들, 그들의 과도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손을 뻗치며 비열한 정욕을 채우기 위해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까지 해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마치 그들이 수레 줄로 죄악을 끄는 것처럼, 자기들의 사악한 계획을 틀림없이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을 실망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짓된 끈이어서, 그들이 힘껏 잡아당길 때 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의 줄을 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시 129:4; 욥 4:8; 잠 12:8). 그들은 오랜 습관과 굳어진 버릇에 의해 계속 죄를 고집하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할 수 없다. 자기들이 연약함으로 인해서 죄를 범하는 자들은 죄에 끌려가는 자들이다. 그러나 섭리자의 방해와 양심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들은 죄악을 자기들에게로 끌어온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 말하는 죄를 죄의 형벌로 해석한다. 즉 그들은 실상 수레 줄로 하나님의 심판을 그들의 머리 위로 끌어 왔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정의에 도전하고, 온갖 힘을 다해 전능자에게 대항하는 자들이다(19절).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룰 것이라 하는도다" 고 했다. 이것은 말세에 "그가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하고 말하면서, 비웃는 자들이 하는 말투와 똑같다. 그러므로 이들처럼 그들도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끈다." 즉 맹렬하고 대담하게 죄를 짓고 자기의 정욕을 좋아 행한다(벧후 3:3, 4).
(1) 그들은 예언자를 조롱하고 비웃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라고 부르는 것은 조롱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큰 존경심으로 하나님을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2) 그들은 그들의 불경건과 불의를 치기 위해 하나님의 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실행되는 것을 보지 않는 한, 그들은 마치 그 저주가 brutum fulmen - 단수난 번쩍임인 것같이 여기며, 말씀의 모든 경고는 바보와 아이들을 놀라게 하기 위한 근거없는 걱정거리인 듯이 여기며,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3)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대로 그들을 치기 위해 나타나신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들 자신이 마치 하나님보다 더 강한 자인 것처럼, 그와 능히 겨룰 능력이 있고, 그를 자극시킬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전 10:2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것은 모두 말에 불과할 뿐이다. 그로 하여금 서둘러 그의 일을 하시게 하라. 우리는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아주 잘 술책을 쓸 것이다" 라는 식이다.
3. 도덕적인 선악의 구별을 혼돈하고, 그것을 뒤엎는 자들이다. 곧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는 자들(20절), 선한 것을 등한시 여기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정죄하고 그것에 대해 논쟁하며, 자기들이 선을 실천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도록 훼방하고, 거기에 모멸적인 어귀를 붙이는 자들 - 악을 행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정당화하고 찬성하며, 그것을 안전하고 선한 것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자들이다. 다음 사실을 유의하자.
(1) 덕과 경건은 선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광명하고 달며, 즐겁고 올바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와 사악함은 악하다. 그것은 무지와 과오의 열매인 흑암으로서 나중에는 쓴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이러한 것을 거짓되게 전하고 그것에 거짓된 구실을 붙이는 자들 - 그리고 한편으로는 신중함을 나쁜 기질이라 부르고, 온건한 특성을 나쁜 소양이라 부르는 자들, 경건함의 도에 관한 온갖 악한 말로 거짓되게 말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건함에 대한 편견을 집어 넣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자들은, 하나님과 신앙과 양심을, 그들 자신의 영혼을,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크게 해친다. 우리는 분명히 상식으로도 광명과 흑암을 쓴 것과 단 것을 구별하는데, 그들은 상식으로 알 수 있는 분명하고 납득할 만한 증거를 무시한 채 이렇게 행하는 것이다.
4. 그들이 이처럼 커다란 실수를 범하고서도 그들 자신의 판단을 과대평가하며 자기들의 총명을 크게 자랑하는 자들이다(21절).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 한다" 고 했다. 그들은 스스로가 하나님 말씀의 책망과 판결을 논박하고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의 판단의 조사와 그 세력 범위를 피하여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한하신 지혜를 능가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섭리 자체를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거부하신다. 특히 자기 자신의 지혜를 자부하고 자기의 총명을 기대는 자를 대항하신다. 그러므로 진실로 지혜로워지기 위해서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결국에 가서 온 세상 앞에 바보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다.
5. 독주를 많이 마시고도 녹아떨어지지 않는 것이 큰 재능인 것처럼 자랑하는 자들(22절), 곧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그들의 힘과 정력을 그들의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데 쓰지 않고, 그들의 정욕을 돕는 데 사용하는 자들이다. 술취하는 자들은 이 본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으라.
(1) 그들은 그들의 육체적인 힘을 쓸데없이 남용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한 목적을 위해 그들에게 주신 것이요, 또 점차로 쇠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그들이 지나치게 술을 먹고서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들을 술취한 죄에서 용서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3) 다른 사람들에게 술을 주어 녹아떨어지게 한 것을 자랑하는 자들은 자기의 수치를 자랑하는 셈이다.
(4) 사람들이 술취하는 것을 아무리 가볍게 여길지라도, 그것은 틀림없이 자신들을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놓이게 할 죄이다.
6. 재판장으로서 공의를 그르치며 공평의 원리를 역행하는 자들이다(23절). 이것은 앞의 경우에 따라오는 것이다. 그들은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잠 31:5), "포도주로 인하여 실수하며" (28:7), 호화스러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뇌물을 받는다. 그들은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 하고, 그의 죄를 없애고 그를 형벌에서 보호하기 위해 어떤 구실을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무죄한 자를 정죄하며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다." 즉, 그들의 탄원을 기각시키며, 그들에게서 그들의 무죄함을 입증할 증거를 빼앗아 버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송사에서는 때로 권력과 돈이 공평과 정의를 압도한다. 그리고 분명히 그릇된 길에 있었던 자가 적은 뇌물을 주고 소송하여 손해 배상을 받게 된다. 형사 소송에서, 그들의 유죄함이 아무리 분명히 나타났다 할지라도, 보수를 위해 그들은 그를 무죄로 해 주었을 것이다. 만일 어떤자가 무죄했을지라도, 그가 그들에게 충분히 사례하지 않았다면, 아니 만일 그들이 그 사악한 학대자로부터 뇌물을 먹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를 정죄했을 것이다.
Ⅱ. 이 죄가 그들에게 가져올 심판은 무엇인가? 이처럼 악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편히 살기를 기대하지 말라. 왜냐하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복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24-30절).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1. 이 멸망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들의 죄에는 반드시 그런 멸망이 따를 ㄱ서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사야는 이 백성을 견고히 뿌리박고 있어, 번성하고 열매 풍성하기를 기대했던 포도나무로 비유했다(7절). 그러나 그 나무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그 뿌리는 바닥에서부터 말랐으므로 썩게 되었고 그 꽃은 물론 티끌처럼 가볍고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어 날릴 것이다(욥 18:16). 죄는 사람들의 힘을, 곧 그 뿌리를 약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런 자들은 쉽게 뿌리 뽑힌다. 그것은 백성의 아름다운 꽂을 더럽히며 열매에 대한 소망을 없애 버린다. 열매를 맺지 아니한 죄는 열매맺지 못하게 되는 재앙으로 징벌을 당한다. 죄인들은 자기 자신들을 그루터기와 마른풀로, 곧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잘 탈 수 있는 물질로 만든다. 그때에는 물론 그 진노의 불이,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같이," 그들을 삼키고 불사를 것이며 아무도 그것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요, 또 그런 관심을 기울일 수도 없을 것이다. 마른풀은 불 속에 떨어지면, 여지없이 타버리고 만다.
2. 그 멸망은 지극히 공정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그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라" 고 했다. 모세의 율법을 거절하여 던져버렸듯이, 하나님의 종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말씀" 을 그들에게 주어 하나님의 율법을 상기시키고 거기에 복종하도록 요청했으나, 그들이 그것마저 멸시하고 존중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멸시 당하고, 그의 율법이 버림당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전히 버리시리라는 것 이외에 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3. 어디로부터 멸망이 오는가를 보자(25절). 그것은 전능자로부터 오는 멸망이다.
(1) 하나님의 정의가 그 파멸을 명하신다. "여호와의 노가 그의 백성을 향해서 발하였다" 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과 권위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요청이다.
(2) 하나님의 능력이 그 일을 이루신다. "그가 손을 들어 그들을 치셨다" 고 했다. 원수를 치시기 위해 여러 차례 들었던 그 손이, 이제는 그들을 철저히 그리고 힘껏 치기 위해 들려졌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리요?" 그들이 깨닫든지 못깨닫든지, 그들을 치신 자, 곧 그들의 포도나무를 망쳐 버리고 시들게 하신 자는 하나님이시다.
4. 이 멸망의 결과와 지속 기간을 보자.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노를 발하시면, 산들이 진동하며 강하고 존귀한 그들의 큰 자들까지도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또 땅이 밑에서 사람을 진동시켜 그들을 곧 갈아앉게 한다. 이것은 실로 무서운 일이다(지진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으랴?). 또한 사람들의 시체가 개에게 찢기우고 "거리 가운데 있는 분토같이" 내어던짐을 당하는 것보다 더 끔직한 일이 있겠는가? 이러한 말씀은 큰 무리가 죽음을 당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즉,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살해될 뿐만 아니라, 그 성읍의 거민들도 냉혹하게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이요, 더욱이나 생존한 자들은 그들을 묻으려고 손을 쓰거나 마음을 쓰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노가 돌아서지 아니한다" 고 했으니, 죄의 댓가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 불은 그루터기나 마른풀이 연료로 남아 있는 한 계속해서 탈것이다. 하나님의 손이 그 백성을 치려고 펴졌는데도, 그들이 기도를 통해서 그 손을 붙들지 않으며, 회개하여 그 손에 굴복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 손이 여전히 퍼졌다" 고 했다.
5. 이러한 멸망을 그들에게 가져오는 데 사용될 도구들을 보자. 그 파멸은 모든 것을 황폐케 할 외적의 침입에 의해서 온다. 구체적인 적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내리신 이러한 종류의 모든 여러 가지 심판에 대한, 즉 얼마 후에 있었던 산헤립의 침입, 그리고 처음엔 갈대아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마지막엔 로마 사람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하리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나는 본문의 말씀은 앞에 나온 대목에서 언급된 그러한 죄들을 지지하고 좋아하는 나라들도 역시 이렇게 황폐케 되리라는 경고로 간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것은 그들에게 내릴 재앙에 대한 설명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격노케한 백성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시고 나면,
(1) 하나님은 그 일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도구들을 멀리서도 보내실 수 있다. 그는 멀리서부터 군대를 일으키실 수 있으며, 땅끝에서부터 필요한 도구들을 불러 당신의 뜻을 시행할 수 있다(26절). 그를 모르는 자들도 - 비록 자신들은 멀리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는 거의 생각지 못하고 있지만 -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데에 사용되어진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깃발을 세우실 때는, 비록 사람들이 아유를 모를지라도, 스스로 그 깃발 아래 모이고 싶어하도록 그 마음들을 움직일 수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당신의 휘하에 있는 군대를 총집결시키기를 원하시면, 그는 즉시 큰 군대를 이루신다(욜 2:2, 11). 하나님은 그들의 주목을 끌거나 그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나팔을 불거나 북을 칠 필요가 없다. 아니, 그는 단지 쉬잇 소리를 내거나 아니면 오히려 그들에게 휘파람을 부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들은 그것을 들으며, 그 소리는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을 당신 마음대로 부르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2) 하나님은 그들을 엄청난 원정대로써 봉사하도록 만드실 수 있다.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올 것이로다" 고 했다. 다음 사실들을 명심하자.
[1] 하나님의 사업을 행하려는 자는 빈둥거리거나 망서려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때가 되면 또 그렇게 될 수도 없을 것이다.
[2]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는 자들은 때늦은 후에 자기들의 오만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그들은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게 할 것이다" (19절)고 조소를 품고 말하나, 무섭고 또 부끄럽게도 하나님은 실제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얼마 안 있어 심판이 왔다."
(3) 하나님은 놀랄 만큼 빠르고 맹렬하게 그 일들을 수행하실 수 있다. 이것이 본문에 매우 우아하고 고상한 표현으로 묘사되어 있다(27-30절).
[1] 비록 그 도구들의 행진이 매우 길더라도, "그 중에 곤핍한 자도 없을 것이다." 즉 그들은 적군과 교전하기를 매우 열망하기 때문에, 피곤함도 잊고 불평도 하지 않을 것이다.
[2] 비록 그 길이 험하고, 일반적인 전쟁 수법에 의해서는 난처하게 될지라도, 그 중에 "넘어지는" 자가 없을 것이며, 그들의 길에 놓여져 있는 모든 난관을 극복할 것이다.
[3] 비록 그들이 계속 파수해야 할지라도, "조는 자나, 자는 자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애쓴 보람도 없이 그 성읍이 빼앗길 것을 우려하여 매우 철저히 그들의 일에 임한다.
[4] 그들은 휴식이나 오락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의복을 벗지 않고 "그들의 허리띠를 풀지" 아니하며, 항상 허리띠를 조이고, 허리에 칼을 차고 있을 것이다.
[5] 그들은 자기들의 행군을 지연시키거나 정지하게 만드는 어떤 사소한 방해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수 9:13 처럼) 멈추어 서서 고쳐야 하는 "그들의 신들메는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6] 그들의 무기와 전투수단은 모두 갖추어져 있고, 훌륭한 상태에 있을 것이다. 깊이 찌르기 위한 "그들의 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기어졌다." 당겨놓지 않은 활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곧 행동에 옮길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7] 그들의 말과 전투병기는 모두 일을 하기에 알맞게 될 것이다. 그들의 말은 매우 강하게 단련되어 있으므로, "그 말굽이 부싯돌 같을 것이다." 즉 오래 행진해도 결코 납작해지거나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레바퀴는 부러지거나 찌그러지거나 못쓰게 되지 않고, "회오리 바람처럼" 차축 위에서 아주 강하고 빠르게 돌 것이다.
[8] 모든 군인들은 대담하고 용감할 것이다(29절). 전투 전에 "그 부르짖는 것은," 곧 외치는 음성은 "암사자 같은 것이다." 암사자는 부르짖음으로써 자기의 활력을 돋울 것이며,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을 두렵게 한다.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통해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책망에 대해 귀를 막는 자들은 그들을 노리는 그 원수들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며, 그 소리에 대해서는 귀머거리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폭풍우 가운데의 "바다 물결 소리같이 부르짖을 것이다." 그 소리는 사자가 갈갈이 찢으려고 부르짖으며 위협하는 것처럼, 삼키려고 부르짖고 위협할 것이다.
[9] 거기에는 일우의 위로나 구조에 대한 전망도 없을 것이다. 그 원수는 홍수처럼 밀려올 것이며 그것에 대항하여 기를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전리품을 노획할 것이며 아무도 그것을 건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건질 능력이 없을 것이다. 아니, 아무도 감히 그것을 건질 시도를 하지 못한 채, 포기하고 잃어버릴 것이다. 환란을 당한 자들은 자기들이 가려는 길을 주시하라. 모든 것이 암담해 보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노의 표정을 하시는데, 어떻게 피조물이 우리에게 미소할 수 있겠는가?
첫째, 이 세상, 곧 온 세상의 광명과 기쁨의 땅이었던 그 땅을 둘러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모든 것은 두렵고 모든 것은 애통하여 소망이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라.
둘째, 하늘을 바라보라. 사람들이 빛을 기대하는 그곳에는 빛이 어두워질 것이다. 하늘의 빛이 어두워진다면, 그 어두움은 얼마나 클 것인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가리우실 때는, 하늘도 그 얼굴을 가리워 어둡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욥 34:29). 선한 양심을 지킴으로써 우리와 하늘 사이를 항상 깨끗하게 하여, 구름과 흑암이 우리 주위에 있을 때에도 무리가 위로부터 빛을 얻을 수 있도록 함이 지혜로운 일이다.
5:19 없음.
5:20 없음.
5:21 없음.
5:22 없음.
5:23 없음.
5:24 없음.
5:25 없음.
5:26 없음.
5:27 없음.
5:28 없음.
5:29 없음.
5:30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