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맨 처음 가축화한 곳은?
무애(한국선도학회장)
오랜 세월 식탁을 풍성하게 한 돼지는 인류의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이 돼지를 처음으로 가축화함으로써 인류의 식생활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돼지의 가축화가 처음 이루어진 곳은 과연 어디였을까?
돼지의 기원에 대한 기존 학설에 따르면, 현재의 집돼지는 야생 멧돼지(야저, 野豬) 특히 유럽야저(S. scrofa)와 인도야저(S. vittatus)의 직계이거나 또는 그 잡종의 후손이라고 한다. 현재도 유럽, 북아시아에 서식하는 유럽야저는 크고 거친 자모(刺毛; 뾰족한 털)에 크고 좁은 머리, 강한 이빨을 가졌는데, 유럽 재래종들은 그 후손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좀 작고 우아한 인도야저는 등에 관모가 없고 안면에 흰줄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양 각지에 있는 재래종 돼지들의 선조로 보고 있다.
돼지의 초기 축화 흔적으로는 중앙아시아 투르키스탄지방의 아우나(Auna)유적이 있다. 따라서 1만 년 전에 이미 이 지역에서 돼지가 축화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중동의 카림 샤하르-자르모 문화기 유적(BC 6,700년경)에서 발견된 돼지 뼈도 돼지가 가축화되었다는 최초 흔적의 하나이다. 따라서 학계에선 대략 8천년~1만2천 년 전 경 서아시아 일대에서 사상 최초로 돼지가 가축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흥미 있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2007년 9월호에는 영국과 스웨덴 과학자들이 공동 연구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에 따르면, 유럽 최초의 집돼지는 유럽야저의 후손이 아니라, 석기시대에 중동에서 새로 건너온 것이라고 한다. 또 고대 중동의 돼지 흔적이 유럽 전역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유럽은 전적으로 중동 사람들의 식민지였음'을 의미한다는 놀라운 내용이다. (BBC뉴스 인터넷판/ 연합뉴스 2007.9.4)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신석기시대에 유럽 일대가 중동인들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당시 중동에서 전 유럽을 정복해 식민지로 삼을 만큼 높은 문화수준을 가진 민족이라면, 당연히 수메르인들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기는 중동지역에서 최초로 돼지 가축화가 나타난 시기보다 좀 늦은 BC.5000~ BC.4000 년 경으로 보인다.
자, 그렇다면 이는 6~7천년 전에 수메르들이 이미 전 유럽을 정복해 식민지화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앞에서 수차 논한 것처럼 수메르인들의 정체는 바로 동이의 후예들이다. 다시 말해서 이는 한겨레가 7천년 전에 이미 전 유럽을 정복해 식민지화했었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이는 거석문화(고인돌, 스톤헨지, 카르낙 열석 등), 빗살무늬토기 등 수많은 유럽 고대유물, 유적들의 수수께끼를 푸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제 돼지 가축화의 기원을 추론해 보자. 1만 년 전 돼지의 가축화 흔적이 있는 아우나(Auna) 유적지는 중앙아시아 투르키스탄 지방이다. 이 일대는 일찍이 동이의 후예인 흉노족(훈족)의 무대였으며, 그 훨씬 전부터 동이족이 거주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그 중요한 증거는 두형이다. 한국인의 두형은 단두형(短頭型)에 속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세계적으로 단두형 지역이 딱 세 곳이 있는데, 투르키스탄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 일대와 스위스 알프스지방 그리고 우리나라이다. (http://blog.daum.net/ceta21/13078650 참조).
두형으로 볼 때, 투르키스탄 사람이 한겨레와 가장 가깝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투르크인은 동북아에서 기원한 돌궐족의 후손이다. 따라서 이들은 한겨레의 방계 혈족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우나의 유목문화 유적은 한겨레문화의 범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최초의 돼지 축화 흔적(9천 년 전의 돼지 뼈)이 나온 자르모유적 역시 수메르인들의 초기 유적지이다. 그리고 수메르인들은 바로 중동으로 이주한 동이인들이다(앞의 글, <피라미드의 원조, 한겨레> 참조).
따라서 수메르인과 투르크인 선조들이 9천년~1만년 전에 돼지를 최초로 가축화했고, 이들이 몽골리안의 후예가 맞다면 우리는 이러한 추론을 해볼 수 있다. 즉, 개의 축화보다 다소 늦은 시기(약 1만4천년 전 경)에 돼지의 축화가 동북아에서 이미 완료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축화된 개가 인간의 충복(忠僕)이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더 큰 자신감으로 새로운 동물의 축화에 나섰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 한겨레 선조들은 토기, 세석기, 개와 함께 돼지 축화기술과 종돈(種豚)을 가지고 중앙아시아, 중동 지역 등으로 떠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개는 인간을 따라 장거리 이동이 용이하지만 돼지는 그렇지 않다. 차라리 새로운 정착지 부근에서 잡은 멧돼지를 순화하는 편이 고향에서부터 데려가는 것보다 훨씬 용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중근동이나 유럽 등지에서 발견되는 집돼지들은 한겨레가 이주 후에, 그 지역에서 야생 멧돼지를 새로 순화(馴化)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가 한반도 일대는 물론 인류 최초로 돼지를 축화한 것이 사실이라는 몇 가지 증거를 알아보자.
먼저, 돼지를 한겨레가 먼저 사육했다는 사실은 한자(漢字)에서도 확인된다. 진태하 교수(명지대)는 한문(漢文)이 고대 한겨레의 역사와 생활, 문화, 철학이 녹아있는 우리의 생활문자라고 말하면서 ‘집가(家)'라는 글자를 예로 들고 있다.
집은 본래 사람이 사는 곳이므로, 원래대로라면 집 면(宀)자 안에 '사람인(人)'자가 들어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글자에는 사람(人) 대신 '돼지(豕; 돼지시)'가 들어 있다. 따라서 집가(家)라는 글자는 '집안에 돼지를 가축으로 키웠던 민족'이 만든 글자라는 것이다.
상고시대에 화하족(한족)은 결코 집안에서 돼지를 키우지 않았으며, 오직 한겨레만이 돼지를 집안에 키웠다고 한다. 동이족은 뱀 등 파충류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집 아래 땅을 파고 돼지를 키웠다는 것이다(뱀의 천적은 돼지임). 이 민족이 만든 대표적인 글자가 바로 집 ‘가(家)’이다. (진태하, <동방문자뿌리> 참조)
둘째, 인류 최초로 개를 축화한 것은 동이족이다. 우리 민족은 토기와 쌀농사, 세석기, 마제석기, 거석문명 등을 처음 발명하고 '신석기 혁명'을 이끈 주역이었다. 그 동이족이 축화 노하우를 바탕으로 육고기 식재의 확보를 위해, 일찍부터 멧돼지의 가축화를 시도했을 것은 자명하다. 이런 전통은 지금도 남아있다. 최근까지도 우리 농촌에서는 종종 야생 멧돼지를 잡아서 양 송곳니를 잘라내고는 돼지우리에 넣어 키웠다고 한다. (http://blog.daum.net/seoltg-good/17948979 참조)
셋째, 최초로 돼지 축화(畜化)의 흔적이 나타난 지역들(투르키스탄, 메소포나미아 지역)은 모두 동이의 후예들이 만든 문화유적들이 있는 곳이다. 이로 볼 때 당대 최고의 문명 수준을 가진 한겨레의 본가(本家)에서 중요한 단백질원으로 보이는 멧돼지의 축화를 일찍부터 시도하지 않았을 리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겨레 본가에서 먼저 돼지의 축화가 이루어진 후, 그 기술과 종돈(種豚) 혹은 축화비법을 가지고 한겨레의 후예들이 여러 지역으로 이동해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넷째, 돼지는 일찍이 오축(五畜)의 하나로 우리 민족과 매우 가까웠다는 점에서 그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멧돼지사냥을 워낙 잘 하고 또한 돼지를 많이 기르고 즐겨 먹었기 때문에, '돌이족'이라 불리기도 했다(돼지의 원말은 ‘돌’). (http://blog.daum.net/seoltg-good/17948979 참고).
다섯째, 한겨레가 근 1만년 전부터 돼지를 사육해 온 사실은 여러 유적들에서도 확인이 된다. 석기시대 유물인 조개더미와 토기 등에서 돼지의 뼈와 이빨이 다수 출토된 바 있다. 함북 웅기, 부산 동삼동 패총 그리고 고조선 영역인 요령성의 사해(査海)유적 (BC. 5600년 경) 등에서 돼지뼈가 발견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흥륭와(興隆窪; 내몽고자치구 적봉) 유적에서 발굴된 8,000년 전 무덤에서도 돼지의 순장(殉葬) 흔적이 나오고 있다. 또 제사용 구덩이에서도 돼지뼈가 다수 발견됐다. 이로 보아 돼지는 당시에도 제수용으로 크게 각광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학계에선 특히 만주의 사해-흥륭와 유적을 동이문명의 발상지로 보고 있다. (이기환, <흥륭와 신석기유적-동이의 발상>, 경향신문 2007.11.9)
한겨레가 돼지를 최초로 가축화한 증거는 바로 우리 토종돼지(재래돼지)이며, 이 토종돼지는 세계 집돼지들의 원조로 추정된다. 전통의약으로 유명한 인산 김일훈 선생은 오래된 우리 토종돼지의 경우, 점차 야생돼지(멧돼지)화 한다면서 이렇게 증언했다.
“내가 우리 토종돼지 6년 묵은 거 봤거든. 앞이빨이 귀 있는 데까지 쑥 올라가요. ..앞이빨이 우리 한 뼘은 넘어요. 옛날 우리 토종은 산돼지 그대로요.” (김일훈, <신의원초>)
이처럼 우리의 토종돼지는 오래 묵으면 멧돼지로 다시 돌아갈 만큼, 야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아마도 최초로 순화된 야생 돼지로서, 그 습성이 계속 유전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인류문명은 한겨레에서 시작외었다> (무애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