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
흑석평(黑石坪).
복우산의 입구를 형성하고 있는 작은 분지였다.
한데, 지금 이곳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반 무림인들은 몇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무림대성회를 보
려고 아우성이었다.
"나는 화산의 아무개 도장하고 죽마고우 되는 사람이오!"
"본인은 개봉 용문방(龍門 )의 방주요! 일파지존인 노부에게 이래도
되는 거요?"
노기등등한 음성에 아우성치는 소리!
아수라장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흑석평의 입구에는 신태비범한 구파일방의 명숙들이 우뚝 서 있었다
소림의 천무선사를 위시하여 무당의 청양진인, 화산의 매령검, 곤륜
의 비천수, 아미의 대비선사 등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한데, 그들의 뒤에는 높은 좌대가 좌우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놀랍게도 취정과 몽혼이 앉아 있었다.
아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쿵―! 쿵―!
몽혼은 연신 주먹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내리치며 눈을 부릅뜨고 있
었고,
꿀꺽― 꿀꺽―!
취정은 항아리만한 술병을 옆에 놓고 작은 술잔으로 연신 퍼마시고
있었다.
괴이한 두 소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무림의 군웅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감히 손가락질을 못하고 있었다.
"저 소년들은 누구야?"
"모르지 뭐! 무슨 기인들이 가끔 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던
데……, 그게 아닐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너무 새파란걸?"
"그래도…… 구파일방의 최고 장로들보다 높이 앉아 있잖아?"
"글쎄……?"
의혹이 가득 담긴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나, 당사자인 취정과 몽혼은 인파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대화하고
있었다.
"정아! 대충 마셔라. 또 먼저처럼 업혀 다니지 말고?"
"후훗……! 너나 대충 두드려라. 그러다간 뒤통수에서 눈이 튀어나
오겠다."
"뭐야? 저게 벌써 취했나? 뒤통수에 눈 달린 사람 봤냐?"
"그런가? 아닌 게 아니라 좀 알딸딸해지는 것 같은데?"
"그만 먹어라! 우리는 판정관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있는 사람
들이란 걸 명심해라."
"그럴까?"
취정은 아쉽다는 듯이 조그만 술잔을 내려놓았다.
한데, 취정과 몽혼이 입곡심사대회의 판정관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이 바로 위대한 시작의 첫걸음이었을 줄이야!
― 흑백무성(黑白武聖)!
훗날 무림인들의 영원한 존경을 받는 두 기인의 걸쭉한 신화가 이렇
게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문득, 몽혼이 뒤통수를 두드리다 말고 의혹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아! 이렇게 출세한 건 좋은데……, 앞으로 백소저를 뭐라고 불러
야 하지?"
"뭐라고 부르긴…… 사저(師姐)라고 하면 되지."
"멍청아! 사형의 부인한테 누가 사저라고 하냐?"
"글쎄…… 그런가? 그럼 형수라고 할까?"
"와! 그거 좋다. 와하핫……! 너는 역시 술을 땡겨야 머리가 잘 돌
아간다니까!"
"후후후……, 그건 확실해. 그럼, 앞으로 형수라고 부르자!"
"좋았어!"
취정과 몽혼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때였다.
"입곡비무를 하고 싶소!"
돌연, 흑석평을 요란스럽게 진동시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몽혼이 급히 입을 열었다.
"야! 이번엔 진짜 그럴 듯한 인물인가 본데?"
"그랬으면 좋겠다!"
취정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사십여 세 정도나 되었을까?
한 장한(壯漢)이 장승처럼 우뚝 서 있었다.
키는 무려 팔 척에 얼굴은 온통 수염투성이었고, 눈은 호안이었다.
천무선사가 급히 입을 열었다.
"시주의 성함을 말씀해 주시오. 아미타불……!"
거구의 장한은 웅후한 음성을 터뜨렸다.
"산동(山東)의 철가권(鐵家拳)의 가주인 벽력신권(霹靂神拳) 권묵(
權默)이오!"
"오……! 그러시오?"
천무선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벽력신권 권묵!
그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철권(鐵拳)으로 명망이 높은 일대 호걸이
었다.
천무선사는 정중한 음성을 흘렸다.
"시주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이다. 하나 이곳에 모이신 분들께 공평
한 기회를 드리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시험을 치르셔야 하오."
"우핫핫……! 그거야 당연한 일이 아니오? 어떤 시험이오?"
권묵은 당당한 가슴을 쭉 폈다.
"……!"
"……!"
수많은 군웅들은 모두 눈을 빛냈다.
입곡시험!
이제껏 구파일방의 원로들이 낸 시험에 통과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
이었다.
천무선사는 개방의 장로인 소면걸개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장로께서 문제를 내실 차례외다."
"허허헛……, 그러지요."
오척 단구에 뚱뚱한 개방의 소면걸개가 활짝 웃으며 썩 앞으로 나섰
다.
그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흑석평 옆으로 걸어갔다.
"……?"
모든 군웅들의 시선이 소면걸개에게 향했다.
소면걸개는 곧 품 속에서 가는 갈대를 꺼냈다.
그는 그것을 땅에 세웠다.
"자……, 잘 보시오. 이 위에 올라가서 저 바위를 드는 것이오!"
소면걸개는 갈대 앞의 거대한 바위를 가리켰다.
거암(巨岩)!
그것은 웬만한 집채보다 더 큰 거암이었다.
권묵이 거암을 힐끗 바라보더니 거침없이 성큼 다가섰다.
그러자 소면걸개는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바위를 들더라도 갈대가 파손되면 안 되오!"
흠칫!
자신 있게 다가가던 권묵이 가볍게 몸을 떨었다.
소면걸개가 내건 조건은 상당히 힘든 난제였다. 내공은 물론이고 신
법까지도 완벽하게 조화를 갖춰야만 이뤄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
다.
한데, 권묵이 망설이는 빛을 띠자 소면걸개가 대신 나섰다.
"노부가 우선 시범을 보이겠소이다."
휫!
소면걸개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갈대 위로 가볍게 올라섰다.
하나 갈대는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소면걸개가 이번에는 허리를 굽혀 거암의 양쪽에 손을 붙였다.
스스슷―!
그가 힘을 쓰자 거암은 미미한 괴음을 터뜨리며 조금씩 허공으로 솟
구쳐 올라왔다.
"와아!"
"역시 개방의 장로답다!"
군중들 속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쿠웅!
소면걸개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거암을 내려놓았다.
"허허헛……! 부끄러운 솜씨로 추태를 부렸소이다!"
명문정파의 장로다운 늠연한 태도였다.
"좋소! 해 보겠소……!"
그러자 권묵이 앞으로 나서며 갈대 위로 올라섰다.
휘청―.
갈대는 낭창거리면서 반쯤 휘어졌다.
"우……!"
군중들이 일제히 안타까운 탄성을 터뜨렸다.
권묵은 잠시 중심을 잡는 듯하더니 거암에 손을 대고 들어 올렸다.
휙!
거암은 마치 공깃돌처럼 가볍게 떠올랐다.
그때였다.
뚝!
갈대의 중간 부분이 그대로 부러지는 것이 아닌가?
소면걸개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고개를 저었다.
"안 되셨소이다……, 귀하는……."
그때였다.
좌대 위에서 취정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합격!"
"와아……!"
"멋있다! 정말 멋있는 판정관이다!"
군중들의 환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소면걸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취정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서 은은한 노기가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개방의 장로라는 자신의 신분이 수많은 군중 앞에서
취정에 의해 싹 무시된 것이 아닌가?
그때였다.
"걸개시주! 참으시오. 저 두 소년은 천존의 사제들이외다!"
막 발작하려는 그의 귓속으로 천무선사의 급한 전음이 파고들었다.
'천존의 사제? 아니, 그렇다면 진작 가르쳐 줄 것이지……!'
소면걸개는 언제 노기를 띠었었는지 싶게 표정을 바꾸었다.
"벽력신권은 곡 안으로 드시오!"
"고맙소!"
권묵은 소면걸개와 취정을 향해 포권을 해 보였다.
취정은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신법은 개방장로보다 못하나 신력은 오히려 낫소! 만약 힘으로만
하는 문제를 개방장로 대신 벽력신권이 냈다면 개방장로가 패했을
것이오!"
"명판결이다!"
"잘한다, 꼬마 심판들……!"
군중 속에서 환호성이 연이어 폭발했다.
"후후후……! 녀석…… 제법인걸……?"
군중 속에서 한 죽립인이 만족스런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이
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용소유였다.
그때였다.
"본인도 입곡비무를 청하오!"
수많은 군중들의 소요 속에서 뚜렷하고 낭랑하게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상당한 내공이다! 천사십군……, 아니 천령삼전주와 버금가겠는걸?
용소유는 내심 가볍게 놀라며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이십 세 가량의 준미절륜한 흑의청년 두 명이 천무선사 앞에 서 있
었다.
왼쪽은 약간 마른 듯하고 오른쪽은 약간 살이 찐 듯한 두 명의 청년
이었다. 그들은 기도도 범상치 않았지만, 용모 또한 실로 아름다웠
다.
"어서 오시오! 시주들의 성함은 어찌 되시오?"
왼쪽의 흑의청년이 붉은 입술을 열었다.
"우리는 종남파(終南派)의 후예로 쌍둥이 형제요. 본인은 흑매(黑梅
)이고 동생은 흑송(黑松)이라 하오……!"
"아미타불……, 종남의 후예시라니 반갑소이다."
천무선사는 그들을 향해 정중한 예를 표했다.
종남파!
이백여 년 전 우주쌍성을 따라 혼천인마를 상대하다 팔백여 명의 문
도들이 몰살을 당한 뒤 급격히 몰락해 버린 명문정파였다.
현재의 장백파가 차지하고 있는 구대문파의 자리를 내놓은 종남파!
"……."
두 청년의 모습을 지켜보던 용소유의 눈에서 극히 기이한 빛이 떠올
랐다.
'저들은 단둘이 온 것이 아니로군. 그렇다면 시간을 끌 것 없다.'
용소유는 급히 전음으로 몽혼에게 지시했다.
"혼! 종남파의 인물들을 모두 통과시켜라!"
몽혼은 느닷없이 들려온 그의 음성에 가물거리던 뒤통수를 세게 치
며 입을 열었다.
"종남파의 흑씨 형제는 입곡하시오!"
"……!"
천무선사는 의아한 빛을 띠었다.
그때였다.
"고맙소. 장문인 드십시오!"
흑씨 형제는 몽혼에게 예를 표한 뒤 곧 뒤돌아서서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순간이었다.
스스슥―!
군중들 틈에서 하나의 검은 가마가 떠오르며 곡의 입구에 내려섰다.
흑교(黑交).
전체가 옻칠을 한 듯 윤이 나는 흑교는 네 명의 준미한 흑의청년이
메고 있었다.
흑송이 다시 돌아서며 입을 열었다.
"장로들과 판정관께서 과거의 정을 보아 입곡하게 해주심을 감사드
리는 바이오!"
그의 음성은 매우 우렁차서 흑석평 전체를 무섭게 뒤흔들고 있었다.
구파의 장로들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취정이 급히 전음을 펼쳤다.
"혼! 정체를 모르는 가마도 통과시킬 셈이냐?"
"정아! 사형의 지시다!"
"사형께서? 어디 계시냐?"
몽혼은 다시 굉량한 음성을 터뜨렸다.
"종남파의 장문인도 통과하시오!"
"고맙소!"
흑송과 흑매 형제와 흑교는 곧 협곡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였다.
"킬킬킬……! 나도 좀 들어가도 되겠소?"
느닷없이 창노한 괴소가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
취정과 몽혼, 구파의 장로들이 모두 한곳을 바라보았다.
벽력신권 권묵이 들었던 만 근의 거암 앞에 낡은 갈의를 입은 괴노
인이 갈대 위에서 겨우 손가락 하나로 머리 위까지 들고 있지 않은
가?
"우와―?"
군중들은 그 놀라운 신기와 위태로운 모습에 기이한 탄성을 터뜨렸
다.
소면걸개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대… 대정금강부동신(大定金剛不動身)?'
그의 두 눈에는 수백 년 동안 실전되었던 엄청난 무공을 본 경악감
이 역력히 떠올라 있었다.
그때였다.
"시주의…… 성함은……?"
천무선사가 가까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갈의노인의 유유자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천애유랑자(天涯流浪者)……. 이름을 굳이 밝히라면 무명(無名)이
라고나 할까나……?"
그때였다.
'후후……, 드디어 나타나셨군. 하긴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겠지.'
갈의노인을 바라보던 용소유가 입가에 신비스런 미소를 머금었다.
대체 갈의노인이 누구이기에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빛나는 것일
까?
만월(滿月).
어두운 천공에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떠올랐다.
중추만야,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뜬구름 같은 길손이 되어 돌아오는
계절…….
교교히 은빛 월광을 뿌리는 만월 속에는 그리운 얼굴들이 소리 없이
떠오르고, 한 해의 풍요로움을 이웃들과 나누는 계절이었다.
하나, 복우산 망우곡(忘優谷)만큼은 그렇게 한가하지 못했다.
망우곡!
아흔아홉 개의 협곡 중에서도 가장 깊고 넓은 분지를 형성한 곳이었
다.
맑은 시냇물이 조용히 흐르고, 병풍같이 둘러쳐진 주위의 절벽은 기
이함에 가히 으뜸의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자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 망우곡에는 숱한 인물들이 침묵 속에 지
키고 있었다.
군막(軍幕).
협곡 안에는 세 개의 거대한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오른쪽에는 백란지와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이, 왼쪽에는 용소유와 각
파의 장로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중앙에는 입곡비무를 통과한 수십
명의 일류 고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백란지는 일반고수들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 오늘은 단순한 회합이 아니라 구대문파와 개방의 사활이 걸린 중
요한 회동이에요!
― 여러분을 본의 아니게 초청하게 된 것은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구대문파와 개방 없이 무림이 존속할 수 없으며, 십대문파가
궤멸한 뒤에는 그들의 차례라는 것을 힘주어 역설했다.
군웅들은 기꺼이 이 위험한 행렬에 동참할 것을 원했다.
용소유는 삼각형세로 둘러쳐진 왼쪽의 군막 안에서 백란지의 의연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훗……, 아무리 생각해도 지매의 그 마지막 말은 마음에 드는
걸.'
백란지가 군웅들을 향해 애절하면서도 기맥 있게 터뜨린 그 말.
― 지금은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때입니다!
철혈무림(鐵血武林)의 고수들은 그 말에 깊은 감동을 드러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십대방파와 나란히 대접받는 것에 감격하고
있었다.
백란지는 그들의 안전을 위해 중앙에 군막을 설치했다.
하나 이 순간, 용소유의 시선은 중앙의 군막을 향해 빛나고 있었다.
흑교.
그의 시선은 예리하게 흑교와 흑매를 비롯한 여섯 명의 미청년을 주
시하고 있었다.
'종남파의 인물들은 아니다. 아마도 제삼세력에서 파견된 감시자들
일지도 모른다!'
용소유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었다.
'금마존과 우리의 실세를 예측해 보려는 제삼세력! 혹시 저들이 멸
정천보패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내심 심증을 굳히고 있었다.
천혜금봉 백란지조차 생각지 못했던 사실!
용소유는 또 하나의 단서를 위한 복안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새 암천야공에 두둥실 만월이 떠올라 중천에 걸렸다.
자시였다.
하나, 그 어디에도 금마존이 나타날 기색은 없지 않은가?
일순, 백란지의 전음이 용소유에게 전해 왔다.
"사형……, 안 오는 것이 아닐까요?"
용소유는 담담한 음성을 흘렸다.
"오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오. 그 자가 천하를 노리는 자라면 오히
려 이런 기회를 더 노릴 것이 아니겠소?"
"그래요! 한데 왜……?"
그때였다.
"크하하하핫……! 무림천존은 왔는가?"
망우곡을 진동시키는 엄청난 광소성이 어두운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오오……!"
군옹들의 입에서 거센 경악성이 흘러나왔다.
보라!
번쩍! 번쩍!
한 명의 금의인이 어두운 하늘에 찬란한 황금빛을 뿌리며 내려서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허공 아득한 곳에서 계단을 밟듯이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다.
'으응……, 금마존이 능공답허를 펼칠 정도란 말인가?'
용소유의 미간이 소리 없이 좁혀졌다.
능공답허!
과연 당금 무림에 누가 이처럼 전설적인 신법을 전개할 수 있을 것
인가?
'아마 이곳에서 능공답허를 펼칠 수 있는 고수는 서너 명에 불과할
것이다.'
용소유는 무슨 생각에선지 중앙의 군막 속에 있는 흑교와 갈의노인
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마존!
그는 제황이 군림하듯 오만한 자세로 소리 없이 망우곡의 중앙에 내
려섰다.
금색면사 속에서 번뜩이는 눈빛은 실로 가공할 정도였다.
"무림천존 용소유는 왔는가?"
고막을 찢을 듯한 음산한 음성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대가 금마존인가?"
천룡음(天龍音).
용소유는 낭랑하면서도 청아한 음성을 흘리며 앞으로 나섰다.
번쩍!
금마존의 눈에서 무서운 파란 불꽃이 일었다.
"용소유……가 틀림없군!"
금마존은 순간 품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오른쪽의 군막 속으로 던
졌다.
"구파일방의 수뇌들은 이 쓰레기를 가져가라!"
휘이익―!
달빛에 번쩍이는 가지각색의 물건들!
그것들은 놀랍게도 녹옥불장(綠玉佛杖), 오행신검(五行神劍), 벽하
수(碧霞樹), 공심불척(空心佛尺), 청엽죽(靑葉竹) 등의 각파 장문인
들의 신물이었다.
그때였다.
"만지지 마세요……!"
백란지의 나직한 교성과 함께, 신물들은 모두 그녀의 소맷자락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 광경을 본 금마존이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핫……! 본좌가 치사하게 너희들에게 독을 쓸 것 같은가? 확인
하라!"
"흥! 그건 두고 봐야지!"
백란지는 신물들을 살펴보았다.
하나, 그녀는 의외라는 듯 곧 고개를 저으며 십 인의 장문인들에게
신물을 넘겨주었다.
금마존은 가공할 눈빛을 번뜩이며 다시 허리춤에서 열 권의 고서를
꺼내 던졌다.
파라라라라락―!
일견에도 고색이 창연한 양피지로 만든 서책들이 찢어질 듯이 펄럭
이며 군막 속으로 날아들었다.
"……?"
용소유는 금마존의 행동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천하에 군림하려는 자가 설마하니 사소한 속임수를 반복하지는 않
겠지?'
그것은 백란지의 생각이기도 했다.
하나, 그들은 한 가지 진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 군자(君子)의 마음으로 소인(小人)의 행동을 예측하지 말라!
그때였다.
'으음……! 금마존의 음성이나 눈빛은 비록 낯설지만 그 몸매는 어
디선가 많이 본 듯한데……, 대체 어디서 보았더라……?'
용소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 잡힐 듯하면서도 그의 생각은 뿌연 안개 속으로 점점 더 스며
들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으윽!"
"독(毒)…… 독이다!"
오른쪽의 군막 속에서 경악성과 신음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무엇이?'
용소유는 급히 오른편의 군막을 바라다보았다.
과연 십대문파의 장문인들이 목과 가슴을 부여잡고는 금방이라도 쓰
러질 것처럼 비틀거리고 있었다.
"란지! 어찌된 일이오?"
용소유의 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순간, 백란지의 하얀 목이 군막 속을 향해 미미하게 움직이더니 용
소유의 옆에 내려섰다.
"속았어요! 신물에 이상이 없기에……, 한데 비급들을 모두 접거나
붙여 놓고, 그 사이에 무형의 독을 뿌렸어요."
참으로 간교한 음모였다.
너무나 소중한 비급이었기 때문에 장문인들은 그것을 확인하려고 책
장을 열었다.
하나, 비급의 책장들은 살짝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럴 경우에 인간은 누구나 다 같은 본능적인 생각을 무의식중에 행
하게 된다.
오랜 습관 속에서 길들여진 대로 손에 침을 묻혀 책장을 펼치게 되
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한 번만 반복하게 되어도 십대문파의 장문인은 곧장 중독되
고 마는 것이다.
용소유의 입에서 차디찬 냉소가 흘러나왔다.
"금마존……! 당신은 자신의 입으로 한 말을 순식간에 뒤집는 비열
한(卑劣漢)인가?"
금마존이 무슨 소리냐는 듯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핫……! 비열한이라고? 천만에! 본좌는 오직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웅(魔雄)일 뿐이다! 속아 넘어간 너희들이 잘
못이지 누굴 탓하느냐?"
"……!"
"용소유! 이제 보니 너는 아직 어리구나! 본좌는 마도의 지도자다!
내가 쓰는 방법은 마도에서는 정당한 것이다! 크하핫……! 설마 너
는 본좌더러 네가 되라는 얘기는 아니겠지?"
쾅!
용소유는 뒷골을 강타당하는 것 같았다.
'그렇군! 정도에서 비열한 방법은 마도에서 옳은 것이지……!'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란지와 내가 세운 천라지망의 수비책도……, 상상외
로 당할지 모르겠군.'
금마존의 간계(奸計)는 용소유와 백란지의 상상을 완전히 벗어난 비
열하고 간교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너무 충분했다.
용소유는 다음 순간 냉랭한 음성을 터뜨렸다.
"당신의 말이 옳다고 치자! 한데…… 나를 만나려고 한 목적은?"
순간, 금마존의 금색 면사 속에서 가공할 살광이 번갯불처럼 쏟아져
나왔다.
"크흐흣……! 무림천존 용소유! 너는 수라신군을 기억하겠지?"
용소유와 백란지가 가볍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수라신군(修羅神君)!
마도의 하늘이라고 불렸던 인물. 대륙흑존(大陸黑尊)이며, 과거 지
옥대전장(地獄大戰場)을 이끌었던 대마웅!
용소유와 백란지가 어찌 그 이름을 모를 수 있겠는가?
백란지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당신은 수라신군이 아니에요!"
금마존은 북풍 같은 음산한 괴소를 터뜨렸다.
"크흐흣……! 본좌가 언제 수라신군이라더냐? 그는 바로 내 아우다!
"금마존이 수라신군의 형이라니……?"
백란지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용소유가 뜻밖으로 담담한 음성을 흘렸다.
"오 년 전 수라신군은 촉산대황원에서 죽지 않았소? 한데 왜 갑자기
그 이름을 들먹이는가?"
"그렇다. 내 아우는 죽었다. 정도백존 사마위! 그 놈이 본좌의 아우
를 죽였단 말이다!"
'으음……, 당시 사마형님은 수라신군을 보지도 못했다고 하지 않았
는가? 한데……?'
용소유는 내심 심한 의혹을 느꼈다.
그때 백란지가 싸늘한 냉성을 터뜨렸다.
"흥! 그래서 당신은 동생의 복수를 하기 위해 정도백존의 부인을 죽
이고 자식을 납치했나요?"
"크흐흣! 그렇다! 본좌는 지금도 놈을 조금씩 죽여 가고 있다!"
"으음……!"
용소유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사마형님이 벌써 이 자의 손에 들어갔다는 말이 아
닌가?'
그가 두 주먹을 으스러져라 불끈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그렇다면 당신이 피진산장을 습격한 이유는?"
백란지가 다시 냉성을 흘렸다.
금마존이 가공할 눈빛으로 주위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간단하다!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 전 무림은 무조건 본좌의 명에
복종하라!"
"……!"
"……!"
"명심해라! 나를 따르는 자는 살 것이고 거역하는 자는 죽는다!"
― 나를 따르는 자는 살고…… 거역하는 자는 죽으리라!
금마존의 그 음성은 어두운 망우곡을 산산이 뒤흔들며 진동치고 있
었다.
그로 인해 망우곡 안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무서운 긴장감에
휩싸였다.
또한, 마치 끓어오르는 화산의 거대한 용암처럼 팽팽한 살기가 이글
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용소유와 백란지는 이 순간 서로 마주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
다.
그건 분명 회심의 미소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