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정태성 목사
<로마서 12장 1절>: 영적예배(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예배는 ‘영적예배’라는 표현보다 ‘합당한 섬김’이 더 타당한 해석입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합당한 섬김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섬김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사도바울은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합당한 섬김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을 합당하게 섬겨야 하며 그 섬김은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합당하게 섬기는 것이라 했으니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이같이 말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율법의 행위를 철저히 삭제시켜 버린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결코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명기의 구약적인 사고 같으면 율법의 계명을 철저히 지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합당한 섬김으로 볼 수 있지만 예수께서 죽으신 이후에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 것입니다. 율법 지킴에서 우리 몸을 드리는 것으로 그 양상이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새로운 형태의 섬김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섬김은 이것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으로 하지 않고 여전히 율법으로 섬기면 그 몸은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섬김이 무엇입니까?
<롬 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을 합당하게 섬기기 위해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을 알기 위해 우리가 우선적으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산 제물로 드려야 할 ‘우리 몸’에 대한 것입니다. 즉, 산 제물로 드려야 할 우리 몸은 과연 어떠한 몸을 말하는 것입니까?
산 제물로 드려야 할 우리 몸은 어떠한 몸을 말하는가?
몸! 몸의 기원, 지금 우리의 몸은 본래 우리의 몸이 아닌 누구 한 사람의 몸입니까? 한 사람, ‘아담’의 몸입니다. 그러면 아담의 몸의 상태는 어떠한 몸을 말하는 것입니까?
<롬 5: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 아담의 몸이란 죄가 들어온 몸이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망한 몸을 말하며 이 몸이 곧 우리의 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몸을 ‘죄의 몸’이라고 하고, 또한 ‘옛 사람’이라고도 하며 ‘사망의 몸’이라고 합니다.
<롬 6: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7: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렇듯 우리 몸의 본질은 아담의 몸이고, 그 아담의 몸은 죄가 들어온 몸이고, 그 몸을 옛 사람이라 하며 그 옛 사람을 죄의 몸, 사망의 몸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몸이 우리의 몸이며 이러한 우리 몸을 ‘죄의 종’이라고 합니다.
<롬 6: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2)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우리의 몸은 우리의 몸이라기보다 죄의 종이 된 몸입니다. 그러면 죄의 종은 그 주인이 죄이기 때문에 죄를 섬기는 자입니다. 죄를 섬기는 자가 죄를 섬기는 방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의 법’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롬 7: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우리 몸은 죄의 종으로 죄의 법을 섬기는 몸입니다. 이러한 몸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사도바울의 견해입니다.
죄의 종으로 죄의 법을 섬기는 몸
<롬 8: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3: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 몸은 옛 사람, 죄의 몸, 사망의 몸으로, 죄의 종으로, 죄의 법을 섬기며 육신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 몸 안에 무엇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 몸 안에 작용하고 있는 그것은 ‘율법의 행위’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속에 즉, 죄가 들어온 사망의 몸속에 작용하고 있는 것이 ‘율법의 행위’입니다. 이것을 <롬 10: 3>에서 ‘자기 의’라고 말합니다.
우리 몸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 율법의 행위 = 자기 의
<롬 10: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자기 ‘의’를 가진 사람의 몸이 곧 우리의 몸입니다. 이러한 우리 몸은 <롬 3: 9>에 말한 바와 같이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죄 아래 있음은 곧 율법 아래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 몸은 이처럼 죄 아래, 율법 아래에서 자기 ‘의’를 가진 몸입니다! 이것이 우리 몸의 본질입니다.(롬6:17)
우리 몸의 본질? 율법 아래에서 자기 '의'를 가진 몸
그러므로 이와 같은 몸은 구원받지 못한 몸입니다.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수도 없고 드리면 안 되는 부정한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거들떠보시지 않는 부정한 몸입니다. 이 몸을 비유로 말씀해 준 것이 <사 1: 10-14>의 말씀입니다.
<사 10: 1-14>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3절>에 ‘헛된 제물’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헛된 제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제물입니다. 우리 옛 사람의 몸, 곧 자기 ‘의’를 가진 몸입니다. 이것이 우리 몸에 대한 최종적 규정입니다. 따라서 이 몸은 구원받지 못한 죄의 몸 그 자체입니다. 구원은 바로 이 상태로부터 건져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죄의 몸으로부터 벗어남, 해방됨이 곧 구원이고, 구원받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몸? 헛된 제물
이러한 우리 몸은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몸이 아닌 헛된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헛된’이라는 말은 항상 ‘거짓’, 참이 아닌 가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 될 수 없는 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 몸이 아닌 우리 몸과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운 차원의 몸이 있어야 합니다. 그 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서만이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 외에 다른 몸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롬 3: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새로운 몸의 출현!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
그렇다면 예수의 몸은 어떠한 몸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몸, 즉 죄의 종이 된 몸과는 전혀 다른 몸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고 말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몸은 죄가 잉태한 몸이지만 예수의 몸은 성령으로 잉태된 몸입니다. 그러니 같은 몸이라도 차원이 다른 몸입니다.
<롬 7: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히 4: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리스도의 몸은 죄가 없으신 몸입니다. 죄가 없으신 몸이란 그 몸엔 아담의 속성이 없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이 몸만 율법이 작용하지 않는 몸입니다. 바로 이 몸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처럼 죄가 없으신 예수에게 하나님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 되게 하셨고, 바로 그 몸에 죄를 정하십니다.
<롬 8: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죄 있는 아담의 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곧 죄가 있는 몸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죄는 없는데 죄 있는 모양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죄는 없으나 죄 있는 육신의 몸입니다. 이것을 <빌 2: 7>에서 다른 말로 ‘종의 형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의 몸은 이와 같은 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왜 이와 같은 몸을 가지신 것입니까?
왜 종의 형체를 가진 죄의 몸을 입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갈 1: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그 이유는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함입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께서 죄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죄의 몸을 입고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즉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하신 일이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우리의 죄의 몸을 위해서 종의 형체를 가지신 예수의 몸을 주신 곳이 ‘십자가’입니다.
<빌 2: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의 몸이 죄의 몸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 곧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의 몸은 이처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몸입니다.
예수의 몸은 십자가에 죽으신 몸
십자가에 죽으신 그 몸으로 인해서 우리의 몸이 죄의 몸에서 새로운 몸으로 거듭났는데 그 새로운 몸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몸은 죄의 몸, 아담의 몸으로써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없는 몸인데 예수의 몸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해서 우리의 몸이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드릴 수 있는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질 수 있었던 그 근본적인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롬 3: 24-26>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것은 그의 몸의 죽으심으로 인해서 발생된 결과물 때문입니다. 그 결과물이란 바로 ‘의롭다 하심’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질 수 있는 그 근본적인 본질? 의롭다 하심
<롬 5: 18-19>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6: 6-7>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 의롭다 하심을 받은 몸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진 몸, 이 몸이 바로 우리의 몸이고, 이 몸이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몸!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몸! 그 몸이 거룩한 산 제물 그 자체입니다. 이 몸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합당하게 섬기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배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몸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산 제물로 드려진 예수의 몸의 내용을 가진 그 사람 자체가 곧 예배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드린다고 하는 모든 예배는 예배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능멸하는 행위가 됩니다. 그러니 부디 하나님을 합당하게 섬기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