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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전령사 버들강아지 눈 떴다
• 일시: 2017년3월26일 일요일 맑음
• 동행: 토산회 회원들
• 동선: 배론성지-팔왕재-박달재휴양림-박달재
아침식사는 外食으로 해장국을 먹기로 되어 있는데 여성 회원들이 이른 아침부터 부엌에서 소곤소곤 하더니 떡국을 끓였고 이 대감(부인 출타) 부엌살림을 몽땅 뒤져서 푸짐하게 반찬도 풍성하게 준비하였기에 배불리 먹으니 이 대장은 배론성지로 차를 몰았다
배론성지는 제천 10경에 꼽히는데 제천10경은-
• 의림지 • 박달재 • 월악산 • 청풍문화재단지 • 금수산 • 용하구곡
• 송계계곡 • 옥순봉 • 탁사정 • 배론성지 등이다
오늘은
배론성지를 둘러보고 주론산을 오른쪽에 끼고 조백석골을 왼쪽에 두고 팔왕재를 넘어서 박달산자연휴양림까지 걷고 다시 박달재로 올라가기로 일정이 조정되었다
배론성지는 한국천주교 사적지로 이곳 순례 길에는-
• 최양업신부 묘소가 있다(백과사전)
최 신부는 김대건 신부 다음으로 신부가 된 분으로 본관은 慶州이며, 어릴 때 이름은 崔鼎九이다. 충청남도 청양에서 천주교 신자인 崔京煥(프란치스코)과 李聖禮(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崔良業(1821~1861)
1836년(헌종2) 프랑스 신부인 모방(Maubant)에 의해 金大建 崔方濟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에서 공부하였고, 1844년(헌종 10) 김대건과 함께 副祭가 되었다. 사제 서품을 먼저 받고 페리올 주교와 함께 김대건 신부가 귀국한 이후 최양업은 여러 차례 귀국을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849년(헌종 15) 상하이에서 마레스카(F. Maresca) 주교의 집전으로 사제 서품을 받고 출국한 지 13년 만인 1849년 말에 귀국하였다.이후 10여 년간 충청도 진천의 배티를 사목 활동의 근거지로 삼고 전국에 걸쳐 있는 100여 개의 공소를 방문하면서 전교 활동에 힘썼다. 1861년(철종 12) 영남 지방의 전교 활동을 마치고 주교에게 사목 활동을 보고하기 위해 상경하던 중 문경에서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말 베르뇌(S. F. Berneux) 주교의 집전으로 제천 배론으로 이장, 안장되었으며, 김대건 신부가 ‘피의 순교자’였던 것과 비교하여 최양업 신부는 ‘땀의 순교자’라고 일컬어졌다(출처: 백과사전)
• 배론신학교
• 황사영 순교자 현양탑
• 황사영 토굴(백서를 쓰던 곳)
• 최양업신부 조각공원
• 납골당
• 가마터-를 둘러보는데
서울 하계동성당에서 750명이 성지순례로 와서 와글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고 팔왕재를 향하여 걷기로 시작하니 10시가 넘었다 나는2017년2월18일 토요일에 자연속으로 카페 회월들과 박달재를 들머리로 성지까지 걸어봤다 그때의 역 코스를 걷는 것으로 오늘은 천주교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 다
성지를 벗어나서 임도따라 걸으려니 목가적인 풍경속으로 젖어드는 것 같고 버들강아지들- 눈 뜨는 것 보이려니 버들강아지를 노래한 시인들이 많은데 어린 시절 즐겨 불렀던 동요가 생각난 다
봄아가씨- 김영일요 한용희곡
버들 강아지 눈 떴다
봄 아가씨 오신다
연지찍고 곤지 찍고
꽃가마 타고 오신다.
봄아가씨는 멋쟁이
머리에다 꽃꽂고
덩실덩실 춤추며나비 등에 업혀온다.
또 白空이란 시인은
찬 서리 털고/하얗게 피어났네/버들강아지
눈 오고/바람불고/찬 서리 내렸어도/버들강아지 시나브로 하얗게 피어났네/하지만/내 마음의 봄은/ 언제 오려나
그렇다 꽃말은 천절 자유 포근한 사랑이라지만 시인의 마음처럼 산천에는 봄이 왔건만 내 마음에도 봄이 와야 할 터지만 왜 내 마음은 어지러운 것인 가-
천주교 이야기 하나
나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천주교에 입교하라고 졸라대는 여인이 있지만입교하고 싶지는 않으나 천주교와는 인연이 있는 것 같아서 배론성지를 두 번씩이나 들렸거니 절두산 성지를 비롯하여 많은 성지를 들려 봤다
동행들 후미에서 한적한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제천시 봉양읍사람들 백운면으로 넘나들던 오솔길이 이제는 임도로 변했고 앞으로 포장이 될듯도 싶은데 포장도로로 만들지 말고 그냥 이대로 두어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팔랑재
파랑재는 팔왕재라고도 하는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알 길이 없으나 다만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 그리고 충주와 단양을 잇는 중요한 오솔길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지금은 임도로 조성되었다 길손들이 많았던 고개였을 터-
북사면 골짜기에 잔빙들이 보였다 미산 윤의섭 시인의 시를 보면...
殘氷-미산 윤의섭
잿빛 안개속을
파랑새가 날아간다.
호수속의 잔빙殘氷이 숨죽인 체 떠있고 먼저 나온 개구리 쪽돌 위에서
햇빛을 기다린다. 동면冬眠과 절망이 너무나 긴 숲에서 초록의 꽃눈을
감추고 있는 나뭇가지들 숨죽이며 기다리는 꽃눈에 미음微音의 소리로
속삭여 준다. 내가 기다리는 꽃빛은 어디쯤 있을가? 얼마나 더 기다려
야 연두색 아지랑이 초록 숲의 꽃이 피어날가?
천주교 이야기 둘
우리나라 제1의 천주교 성지는 당진 “솔뫼” 성지요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는 배론 성지. 그리고 최대 천주교성지는 서울 서소문성지란 다 또 대표적 성지는 천진암이고 나라안에 성지는 111개나 있어서 111개의 성지 순례를 마친 사람도 있고 도보 여행가 남상범은 83세로 10년간 3만Km를 걸어 다녔는데 아직도 성지 순례를 하고 있단 다- 존경스러운 영감님이다
하지만 종교를 위하여 순교하는 사람들도 허다하여 김 대건 신부는 옥중에“어서 때려 죽이시요”라고 절규 했다지만 도보 순례길도 만만찮은 것만은 아니다
오르막이 시작되고 동행들을 격려하려고 선두로 치고 파랑재에 오랐더니 두 어사람 잡담하고 있고 잔설이 수북한데 주론산 이정목이 있다 신석정 시인의 잔설 시를 보자
殘 雪- 辛夕汀
남풍에 묻어오는
엊그제 입김에도
동백꽃 내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군자란도 뾰조롬히
꽃대를 올려놓고
호랑가시 빨간 열맬
쪼아 먹던 산새,
문득 열어보는
창문소리에 놀래 날고
殘雪 부신 설악을
쪽빛 하늘이 넘어가고 있었다.
(1972.4) -신석정 유고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중에서-
∞ 한국 천주교의 산실, 배론성지
제천, 원주간의 국도변에 위치한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 천주 교회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곳은 한국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화전과 옹기를 구워서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을 키워 나간 교우촌이다. 배론성지는 지리적으로 치악산 동남기슭에 우뚝 솟은 구학산과 백운산의 연봉이 둘러싼 험준한 산악지대로 외부와 차단된 산골이면서도 산길로 10리만 가면 박달재 마루턱에 오르고, 이어 충주, 청주를 거쳐 전라도와 통하고, 제천에서 죽령을 넘으면 경상도와 통하며 원주를 거쳐서 강원도와도 통할 수 있는 교통의 길목으로 배론이란 지명은 이 마을이 재한 산골짝 지형이 배 밑바닥 모양이기 때문에 유래한 것으로 한자 새김으로 주론(舟論) 또는 음대로 배론(徘論)이라고도 한다.
차량 회수 때문에 성지에서 이 대감과 이 대장은 되돌아 승용차를 날머리인 박달재휴양소에 주차시키고 우리들을 마중하기로 하여서 이 대장과 통화를 하니 갈림길 삼거리에 있다면서 큰 소리로 불러 보라고 하여 “나 여기~있다” 라고 목청을 돋우니 반대편 지척에서 이 대장이 응답을 한 다
소나무들이 상처를 입은 모습이 보였다 일제시대 송진을 채취한 모습으로 좀 처럼 소나무는 치유되지 않고 아픈 상처를 영원히 간직하면서 살아 갈 것으로 가슴이 아팠다
천주교 이야기 셋
천주교에서 말하는 삼덕이 있는데 삼덕은 信德 望德 愛德이고 순교자의 노래는
1. 헐벗고 굶주린이 정성껓 돌봐주고
병들고 노약한이 주님처럼 섬겼어요
궂은일 괴로운일 말없이 다했대요
몸에밴 그의선행 티없이 다했대요- 2절과 3절은 생략하고
信德
천주 태워 주신 초성덕행이니 천주 啓示하사 성교회에 맡기신 모든 진리를 천주의 진실하심으로 인하여 확실히 믿는 덕
望德
천주 친히 태워주신 초성덕행이니 천주 예수의 공로를 보사 허락하신 천당 영복을 바라고 그 복을 얻기에 요긴한 모든 은총을 천주의 성실하심과 자비하심으로 인하여 굳이 바라는 덕
愛德
천주 태워주신 초성덕행이니 만선 미호하신 천주를 그 지선하심으로 인하여 만유 위에 사랑하며 또 천주를 위하여 남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는 덕
잠시 헤어졌던 이 대감과 이 대장과 만나서 박달재휴양림으로 걸으면서 소곤소곤 거리는데 이 대감이 멀리 숲 사이로 금봉 아씨와 박달 도령이 투신한 바위를 가리키면서 설명하려니 바위엔 외로운 소나무 한그루와 탑이 보였다 그리고 휴양림 입구에서 승용차를 타고 박달재로 올라서-
∞ 박달재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
높이 504m, 길이 500m. 구학산과 시랑산이 맞닿은 곳에 있으며, 능선이 사방을 에워싼 첩첩산중에 위치한다. 원서천을 사이에 두고 남서쪽에 솟은 천등산과 마주 보고 있으며, 천등산 박달재라고도 한다. 고려시대 1217년(고종 4) 김취려 장군이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곳이다. 육송·잣나무·전나무·향나무 등 상록수림이 울창하며, 주위에는 금남루·팔영루·청풍향교·한벽루·덕주사마애불상 등이 있다. 제천과 서울·충주를 연결하는 도로가 나 있다.
• 오백나한전
• 목굴암
• 박달재 목각공원
• 김취려장군 대첩비- 들려
박달재 맛집 장승들을 묘한 느낌으로 감상하니 이 대감이 Y담하기를 박달재 너른 공간을 지키는 장승은 “魯上書” 라고 하니 알듯도 하고 재미있는 표현이다
∞ 박달재의 전설- 백과사전
이 일대에 박달나무가 많이 자생하므로 박달재라고도 하고, 이 근처에서 죽었다는 박달이라는 청년의 이름을 따서 박달재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박달재에 관련하여 박달도령과 금봉이 처녀의 애틋한 사연이 구전으로 전해온다. 옛날 경상도 청년 박달도령이 서울로 과거보러 가는 길에 이 고개를 넘어 아랫마을 금봉이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눴는데, 박달은 과거급제하면 돌아와서 금봉이와 백년가약을 맺겠다고 언약하고 상경하고, 금봉이는 도토리묵을 장만하여 낭군이 될 박달도령 허리춤에 매달아주고 먼길에 요기하도록 배려했다. 낙방한 박달이 슬픔에 잠긴 채 돌아오다가 평동 금봉이 집을 찾았는데 금봉이가 박달을 기다리다 지쳐 3일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하면서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 때 마침 박달은 고갯마루 방향을 바라보니 꿈에 그리던 금봉이가 춤을 추면서 고개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고, 있는 힘을 다해 박달은 고개 쪽으로 달려가 금봉이를 잡으려고 했으나 손이 미치지 못하였다. 박달은 간신히 고개 위에서 금봉이를 끌어안았으나 금봉이는 이내 사라지고 박달은 허공으로 몸을 날려 천길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박달은 금봉이의 환상을 보고 낭떠러지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그 후로는 이 고개를 박달재라고 한다.
1948년에 박달도령과 금봉이 처녀의 애틋한 사연을 담은 “울고넘는 박달재(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가 발표되어 오랫동안 애창되고 있다. 제천시 국도변의 박달재휴게소 입구에는 노래 가사를 적어 넣은 박달재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신 임아
둘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자드락 길을 걸으려 제천에 왔다가 봄비에 밀려 단양8경을 속살까지 더듬고 배론성지에서 팔왕재를 넘어 박달산휴양림까지 트레킹하고 박달재를 살펴본 뒤 충주시 산척면에 있는 도담식당을 찾아가서 늦은 점심으로 두부구이와 전골로 포식을 하고 차량이 정체 될 것을 예상하고 아신역으로 가서 16시18분 문산행 열차로 돌아오면서 천주교 아리랑을 떠 올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 다
1, 주님을 버리고 가는 영혼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2. 천진암 강학회 진리 탐구 반만년 어둠속에 동이트네
3.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천주교 이백년 박해도 많았네
4. 심한박해 모진고통 이겨내고 참된신앙 물려주신 순교자여
미리가는 길-신덕고개에는 입석의 사각형의 방향표석과 김진용 마리아의 작사 “아리랑” 가사가 있다
토산회 회원들과 자드락 길을 트레킹 하려던 일정이 봄비로 단양팔경과 배론성지에서 박달재휴양림까지 임도 따라 걷고 박달재에 흔적을 남기는 상황은 잊혀질 수 없은 추억담이 될 것이다 -끝-
아픔
전국 산하에
다리품을 팔면
아픔이
가슴속에 응어리진 다
일제가
쫓겨간지
반세기가 넘어가건만
아직도
잔재는 곳곳에 흔적이 되어
소나무조차
투병을 하고
개발의 미명으로
국토는
흔들려
옛 모습 사라진 다
박달재도
예전에 넘으려면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님아”
흥얼거렸는데
터널이 뚫렸고
길손의
텅 빈 여운이 돈다
옛 것- 살려
보존함도 좋으려니 아~ 2017년3월26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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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또 보고 즐기고 갑니다.
멋지게 여행후기 남기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먼저와 다르게 거꾸로 하셨군여.
멋지게 즐겁게 지내시는 모습 좋아여!
천주교 이야기 글을 읽으며
주님의 고난과 순교자들의 삶을 깊이 묵상하게 되네요
아름다운 봄시들
아리랑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가사
참 좋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글 감사히 잘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