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38일 차. - 2016. 01 26 게시글
팀장: 김성현. 부팀장: 염상호.
팀원: 안지원, 오동.
오늘의 작업: 1층 화장실 마감, 현관 루바 시공, 창문 트림재 페인트 칠, 기둥 페인트 칠, 외벽 코너 트림재 페인트 칠, 현관 시멘트 사이딩 마감. 2층 바닥 황토 칠, 전기 작업, 조명 설치, 콘센트 설치.
내일의 작업: 외벽 코너 트립재 시공, 페인트 칠 마감, 기단부 단열.
날은 조금 풀렸는데 바람이 분다.
골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에 등을 돌리고 신음소리를 뱉으며 버텼다.
춥거나 바람 불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날씨 같다.
아시바에 올라 페인트 칠을 하는 손목이 시리다. 모자 쓰고 옷 껴입고 바짓단으로 발목을 가렸어도 장갑을 낀 손가락과 손목은 가리지 못한다. 그 틈으로 바람이 파고든다. 창을 둘러싼 트림재를 칠했다. 이제 진짜 마감을 향해간다.
건축 일은 설계에서 시작해 시공자들의 마감으로 완성된다.
이 분야에 여자들이 드물다. 특히나 시공과 현장으로 갈 수록 남자들의 세계이다.
무거운 자재들, 몸을 한껏 써야 하는 상황과 공정들, 낯설고 외로운 모텔 생활, 어색한 이들과 섞여서 지내는 시간 같은 조건들이 건축을 남자들의 세계로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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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작업을 하면서 지칠 때가 있다. 해도해도 끝이 안 나는 것 같은 상황이 있다.
예상과 다르고 생각과 다른 상황이 몇 번씩 발생한다. 건축이 남자의 일인지 여자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뚝심, 지구력이 필요한 일인 것은 알겠다. 힘들고 고된 과정이다. 집 한 채 짓는다는 것은.
그 시간을 견디려면 일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고, 직업에 관한 생각도 있어야 하고, 체력도 있어야 한다.
지칠 때 일수록 스스로 견디고 냉정함을 유지하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지구력.
생각의 중심과 감정의 중심을 유지하는 것.
전기 팀이 점심 무렵에 도착했다. 서둘러 작업을 한다.
나는 아침 시간에 화장실 몰딩을 만들었고 점심을 먹은 후에 페인트 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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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들어오지 않은 텅 빈 벽에 전등과 콘센트가 달렸다.
불이 켜지고 플러그 꽂으면 생활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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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속으로는 좋다. 집에 가서 발 뻗고 자고 싶다. 내 생활과 내 공간과 내 시간이 있는 곳. 집.
우리가 빠져야 건축주도 자기 생활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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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은 가능한 한 꼼꼼히 챙기려고 한다. 내일 마루가 들어오고, 모레 싱크대가 들어온다.
바쁘다. 마감이 계속 뒤를 쫓아 온다. 저녁 시간을 미루고 7시 까지 일했다.
이후에 팀장은 혼자 현장으로 돌아가 다시 일을 했다. 마음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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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앤 화이트의 조명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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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관계에서 쓸데없는 간섭과 충고를 싫어한다.
꼰대가 된다든 것은 예의와 존중을 잃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의 많고 적음, 경험의 풍부함, 지식의 높낮이를 떠나 타인이 내게 간섭하는 것이 불쾌하다.
존중은 충고가 아닌 대화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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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일하다 잠깐 들어갔더니 조명이 많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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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하다. 스타벅스가 이땅에 안착한 후 카페 붐이 있었다. 동네 카페가 많아진 후로 인테리어의 유행이 변했다.
그 시절을 변곡점으로 업자들의 디자인이 아닌 개인들의 취향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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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인 필요에 의한 디자인과 취향에 따른 디자인이 있다.
집은 취향이 우선인 것 같다. 기능이란 맨몸에 취향이란 옷을 입는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약간의 철학적 생각이 보태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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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작업이 끝난 후 보양을 했다. 가능한 2층으로 가는 일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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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트림재를 칠하고나니 집이 번듯해 보인다.
넥타이를 맨 목처럼, 마스카라를 칠한 얼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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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팀장이 마지막으로 나왔다.
불 켜진 실내와 외등, 유리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좋아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비어있는 실내를 찍고 싶었는데 팀장이 자꾸 왔다갔다 한다.
기다리다 아무렇게나 셔터를 눌렀다.
여기저기 살펴보는 팀장의 눈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