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서 사실 차를 처음 재배하고, 자신들의 일상생활 속에 중요한 필수품으로서 차를 포함시킨 사람들은 소수민족들입니다.차와 관련한 이들의 생활 풍습이나 민속 중 차 벌레의 배설물을 모아 햇볕에 말리거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건조한 후 물에 섞어 마시곤 하였던 차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충시차(蟲屎茶)라고 하는 것으로, 육보차로 유명한 광서성이나 귀주성 등에서 묘족(苗族)과 요족(瑤族) 등이 이러한 차를 만들어 음용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화향나무(化香樹 : 일명 백차나무)에서 자라는 화향아(化香蛾)라는 곤충이 그 나무의 잎을 먹고 배설한 배설물을 솥에서 덖어 차로 만들었는데, 후에는 보이차에서도 찻잎을 갉아먹고 배설한 것을 모아 차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벌레의 배설물(蟲屎)이라는 이름 대신에 아주 조그만 과립으로 이루어져 있어 여의주라는 뜻을 가진 용주차(龍珠茶)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화향나무와 안길 백차나무
그런데 이 화향나무라는 것이 어떤 나무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화향나무를 검색하면 거의 충시차와 관련된 것뿐이고, 화향나무 자체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백차나무라고도 하는 데에서 힌트를 얻자면, 1982년 절강성(浙江省) 안길현(安吉縣)의 해발 800m 산속에서 발견된 야생 백차나무와 같은 종(種)의 나무가 아닌가 하고 추측합니다. 그 당시 수령 100년이 넘은 이 나무가 안길 백차의 어머니가 되는 백차조(白茶祖)입니다. 물론 안길 백차는 백차가 아니라 안길의 이 백차나무에서 생산되는 녹차를 말합니다.
1982년에 발견된 안길 백차나무
원래 안길의 백차는 약 1,800년 전 한나라 영제(靈帝) 때 ‘편하고 좋은 고장’이라는 뜻으로 ‘안길(安吉)’라는 지명을 하사받았을 때부터 기록에 나오는 차입니다. 《다경(茶經)》을 편찬한 육우도 이 안길 백차를 마셔보고 감탄하며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다. 이 차를 만나 더 이상 여한이 없다"라고 크게 외치고 하늘에 올라 신선이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육우가 가져온 차를 마신 옥황상제는 백차나무를 모두 하늘로 가져오게 했는데, 실제로 이후 수백 년 동안 안길 백차가 사라져 버리 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마 백차나무가 사라지니까 이러한 전설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육우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대비하여 인간 세상을 위해 백차나무 씨 한 톨을 몰래 산속에 숨겨놓았다고 합니다. 이 백차나무는 수백 년 동안 사라졌다가 역사에 다시 등장한 것은 송나라 인종(仁宗·재위 1022~1063) 때의 일입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상서로운 기운을 가진 백색의 어린잎차가 백성 앞에 나타났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야생의 백차나무로서 험준한 계곡 사이에서 겨우 한 두 그루만 자생하는 매우 희귀한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충시차와 관련하여, 백차나무라고도 하는 화향나무에서 자라는 곤충이 만들어 낸 그 독특한 차를 처음 만들었던 것도 바로 이 시기, 즉 송나라 때인 지금으로부터 약 1천 년 전에 백차나무가 안길 지역에 다시 나타난 시기와 일치합니다. 물론 처음 충시차가 만들어졌던 화향나무가 이 백차나무와 같은 종이라는 명백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화향나무를 백차나무라고도 하고, 그 백차나무가 다시 기록에 나타난 시기와 충시차가 처음 만들어졌던 시기가 일치하는 점 등을 미루어 이러한 추정이 전혀 무리가 가는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백차나무는 다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여러 번의 등장과 소멸을 반복하는 이 독특한 나무는 송나라 시기에 이렇게 잠시 나타난 후 다시 사라졌다가 무려 800년의 침묵을 깨고 1930년에 야생 차나무 수십 그루와 함께 세상에 다시 나왔고, 1982년에 안길에서 수령 약 100년의 백차나무가 발견됨으로써 세상의 이목을 다시 끌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 추측건대, 이 백차나무는 육우 시대 이후 꾸준히 존재하여 왔지만, 그 희소성으로 인해 사람들의 눈에 잘 나타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충시차의 유래
충시차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광서성과 귀주성의 특산 차입니다. 특히 계림의 특산 차입니다. 그러나 전문적인 생산을 하던 곳이 이들 지역이라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이러한 벌레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충시차를 만들어 음용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위의 안길 같은 지역이 그러한 곳입니다. 처음 충시차는 묘족(苗族)과 요족(瑤族)이 충차(蟲茶)에 차와 벌꿀을 섞어 마시는 것으로 시작됐다 합니다. 이곳 농민들이 야생 등나무나 찻잎, 화향나무 등의 줄기와 잎을 쌓아놓으면 작고 검은 벌레들이 와서 먹고 싼 배설물과 남은 차 줄기를 체로 칩니다. 그리고 체로 걸러진 가루를 솥에 넣고 볶아서 말린 후, 꿀과 찻잎과 배설물을 각각 1:1:5의 비율로 섞어 다시 볶아서 충시차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충시차가 처음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유래가 있습니다. 1. 귀주성(貴州省) 적수(赤水)시 대동고진 동패산 전설 "옛날 산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기근이 들어 먹을 것이 없자 화향나무를 삶아서 먹었는데, 그나마 생엽이 떨어져 어느 날 쌓아둔 화향나무에 벌레가 생긴 것을 보고 벌레의 배설물까지 끓여서 마시게 되었는데 의외로 향기가 좋아 좋아서 그 후로 충시차를 마시게 되었다." 2. 호남성 성보현의 묘족 전설 "호남성 성보현에 사는 묘족들이 봉건 통치에 불만을 품고 봉기를 일으키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군대를 파견하고 진압하게 되는데 묘족들은 산속에서 숨어 살게 되었다. 극심한 가뭄으로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화향나무의 나뭇잎에 벌레 먹은 잎과 배설물을 끓여 마셨는데 맛이 좋아서 그 후 계속해서 마시게 되었다."
위의 두 가지 유래에서 보듯 충시차는 처음부터 부유층의 사치품으로서가 아니라 먹을 것 없는 가난한 민중들의 식량 대용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그 맛과 약효가 뛰어남이 알려지자 점차 부유층이 즐겨 마시는 사치품으로 변해갔습니다.
보이차와 충시차
위에서 보았듯이 충시차는 화향나무와 관련이 있는 차입니다. 그러나 충시차가 워낙 희소하여 그 제조 방법이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충시차를 광범하게 즐겼던 가난한 소수 민족들은 그것이 비록 화향나무가 아니어도 자신들이 늘 마시던 찻잎에서 생긴 벌레를 이용하여 차를 마시는 방법을 오랫동안 이어왔을 것입니다. 실제로 주로 충시로 만들어지는 것의 재료는 야생 등나무와 찻잎 등으로, 이들을 포개어 놓고 밀폐 혹은 반 밀폐되 공간에 둔 채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속에서 나방과 같은 것이 나타나 그 벌레가 찻잎과 등나무 잎 등을 먹고는 나오는 배설물을 모아 꿀이나 찻잎, 충시 등을 넣어가열 시켜 차로 복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간혹 오래된 보이차에 보면 그 보이차를 먹고 구슬처럼 매달려 있는 벌레를 볼 수 있는데, 이를 다충(茶蟲)이라 하고, 일본에서는나방 벌레의 유충인 아(蛾)라고도 하는데 일생 동안 찻잎만 먹는다고 합니다. 이를 차처럼 마시면 마치 아주 오래된 보이차 맛을 느낄 수 있어서 홍콩이나 광동 같은 곳에서 보이차를 창고에 넣어 둔 채 보관을 하다 그 창고를 정리하는 시점에 이런 것이 발견되면 차를 만들어 마시곤 하였던 것이 근래에 충시차를 보급시킨 원인이 되었습니다. 질 좋은 상품(上品)의 충시차는 적어도 30년 이상 보관된 노 보이차(특히 타차나 병차)에서 발견되며, 보이차 한편에서 아주 조금만 나와 붓으로 쓸어 담는데, 그 양이 무척 적어 매우 희귀한 차로 취급됩니다. 또한 농약 등 약성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자연히 충시차는 유기농 차, 혹은 오래된 차에서만 나온다는 인식이 더해져 더 귀한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일생동안 차를 먹으며 자란 다충벌레의 배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주목하고, 이것을 위장약으로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벌레의 배 안에는 소화를 위한 강력한 효소가 대량으로 분비되고 있고, 이 효소들은 다른 잡균의 번식을 막기 위한 천연 항생 물질을 만들었는데, 옛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충시차가 이러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보이차에서 나온 충시차의 맛은 오래된 노차나 숙차와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에 고급차로 분류되어 현재는 구하기 힘든 차로 되었습니다.
충시차의 특징
1. 보이차 충시차는 보이 생차의 색보다 조금 진한 색을 띠고 있으며 배설물의 냄새는 없고 거꾸로 차향이 좀 더 강합니다. 맛은 산미와 함께 꿀맛 즉 밀(蜜) 향이 좀 더 강해서 보이차보다 좀 더 단 느낌이 있습니다. 차 벌레의 유충이 차옆을 먹는 소화 과정에서 효소에 의해서 아미노산이 증가했기 때문에 생차보다는 숙차의 맛에 가깝습니다.
진한 색을 띠고 있는 충시차
2. 이시진(李時珍)이라는 사람이 1578년에 저술한 중국 명나라의 대표적인 한의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충시차에 대해서 "차도 되고 약도 되며 차와 비슷하나 차가 아니기도 하다(亦茶亦藥 似茶非茶)"면서, “열의 해소를 돕고, 독을 풀어내며, 비위를 튼튼하게 하고 소화를 도우며, 또한 설사에 좋으며(지사 止瀉), 잇몸의 출혈과 병에 좋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차를 마시면 눈이 맑아지고 장이 튼튼해지며, 피로가 풀려 그 옛날 쓸만한 약이 없던 시절에 약 대용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3. 충시차는 위를 건강하게 하고(건위 健胃) 장을 편하게 하는(정장 整腸) 효과가 있어 예로부터 위장약 등으로 이용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충시차에 다른 잡균의 번식을 막는 효소와 천연 항생 물질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4. 충시차에는 단백질, 지방, 당류, 인, 철, 아연 등과 함께 인체에 필요한 필수아미노산 8종을 모두 함유한 18종의 아미노산이 전체의 1/3 이나 됩니다. 충시를 한데 모아서 잘게 가루로 만들어 전다법으로 우린 충시차는 오래된 보이차의 달고 부드러운 맛에 깊고 진한 한약의 탕색으로 시큼한 맛 그리고 과일향이 납니다. 5. 겸리의 충시차는 70년대의 오래된 보이차에서 추출한 충시차입니다. 차를 우린 충시차의 맛은 골동 보이차의 맛 그대로이며, 아주 담백한 맛으로 진하게 마셔보았는데도 거북한 맛이 나지 않습니다.
충시차를 우릴 때는 다관에 직접 넣지 않고 우림망에 싸서 넣어 우리거나 거름망으로 이용함거름망으로 우릴 때에는 핸드드립으로 커피 내리듯이 원을 그리면서 우려줌
이렇게 우린 충시차의 맛은 골동 보이차의 맛 그대로입니다.
충시차 혹은 용주차
두 가지 말은 같은 말입니다. 용주는 용의 구슬, 즉 여의주라는 뜻이고요, 충시는 말 그대로 벌레 똥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대상을 일컫는 말인데 느낌 차이가 많이 납니다. 한때 대만의 상인들은 충시는 오래된 골동차에만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벌레가 생겨 충시가 만들어진 차는 더 비싸게 판매했고 충시만 모아서 다시 비싼 가격으로 팔았습니다.
전에 마셔볼 기회는 있었습니다만, 절대 안 마셨습니다. 충시에 얼마큼 좋은 성분이 있는지는 몰라도 제 감수성으로는 먹기 어려워서 말이지요. 제 비위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식용 벌레는 먹어도 벌레 똥은 안 먹습니다.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돼지 똥을 먹을 필요는 없잖아요.
아무튼, 대만의 상인들의 주장은 별로 근거가 없습니다. 보이차에 생기는 벌레의 정체는 작은 나방의 애벌레입니다. 고온, 다습, 통풍이 안 되는 환경에서 발생하는데 빨리 생기면 1~2년 사이에도 발견됩니다. 벌레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하얀색 점액이 붙습니다. 이 점액이 마르면 마치 거미줄과 비슷한 모양의 타래 형태의 선이 생깁니다. 그 벌레는 보이차에 붙어살면서 차를 실컷 갉아먹고 검은색, 갈색의 작은 입방체의 똥을 쌉니다. 그 똥을 모아서 파는 것이 충시차입니다. 무슨 불로장생의 명약처럼 과장해서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효과가 있으면 팔지 않고 자신이 마셨겠지요. 벌레 똥을 여의주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