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상(思惟像)’의 주인공은 고타마 싯타르타 태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석기모니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 태자 시절의 본명(속가 이름)이다. 이 존상을 ‘태자사유상’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가 아직 붓다가 되기 이전 보살 상태이기 때문에 경전에서 ‘석가보살’로 부른다. ‘사유상’은 태자의 어떤 모습에 근거한 것일까? 태자가 사유를 한다는데 무엇을 ‘사유’하는 것일까? 또 ‘사유’란 무엇일까? 석가모니 붓다의 생애 전체를 대(大) 서사시의 형태로 최초 저술한 마명(馬鳴, AD 1~2세기경)의 '붓다차리타'에서 ‘사유하는 태자’ 모습의 근거가 되는 대목을 제시하고 설명한다.
화살 맞은 사자
'붓다차리타'의 ‘제5출성품(出城品, 태자가 성을 나가다)’을 보면 아버지 정반왕은 자꾸 출가하려는 태자의 마음을 잡아 두려고 갖은 애를 다 쓰는 장면이 펼쳐진다. 훌륭한 오욕(탐닉)
거리를 아들에게 제공했으나 여색과 음식 · 향연과 오락은 혐오감만 불러일으켰다.
당시 태자의 상태는 “다만 나고 죽는 괴로움(생사고, 生死苦)를 생각하기를 마치 화살 맞은 사자 같았네”라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이미 태자가 무엇을 사유하는지 주제가 명시되고 있다. ‘생사고(나고 죽는 고통)’이다.
모든 존재(또는 생명)는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감옥에 갇혔다. 이것을 무한 반복하는 윤회의 고통 속에 있다. ‘생로병사의 윤회’를 ‘생사고’라고 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생사고에 갇혀있나? 여기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태자의 온 정신은 이 화두에만 쏠려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유흥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주제에 완전히 몰입돼 그 답을 찾기 위해 절절히 고민하는 모습을 ‘화살 맞은 사자’에 비유한다.
‘사유’의 의미
태자가 고민한 주제인 ‘나고 죽는 괴로움’이란, ‘존재의 양태’이자 ‘존재의 원인’을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존재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가?”라는 ‘나’ 자체에 대한 궁극의 솔루션을 향한 도전이다. ‘나의 욕망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라는 일반 중생의 사사로운 고민이 아니라 그런 욕망을 하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주체 또는 근원을 향한 도전이다. 다시 말해 고통의 원인 또는 존재의 원인을 공략하는 대담한 ‘사유’이다.
여기서 ‘사유’에 대한 정의를 하고 넘어가자. 불교에서 말하는 ‘사유(思惟) 또는 정사유(正思惟)’는 사물의 이치를 고찰하는 것을 말한다. 생각이나 유추를 관념적으로 지어내는게 아니라 ‘원인을 통찰하는 것’을 말한다. 결과로 현상의 원인을 현미경으로 보는 것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현미경에 해당하는 것이 ‘통찰지’이다. 통찰지의 계발은 더욱 미세한 원인을 꿰뚫어 보는 힘이 된다. 통찰지를 ‘반야지혜’라고 한다.
‘정사유’는 ‘연기(緣起)’를 보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 붓다께서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된 수행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한 단계를 성취할 때마다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끊임없이 정사유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한 계단을 오르면 그 계단은 다시 다음 계단을 위한 디딤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덩어리로 인식되는 개체(또는 관념)을 계속적으로 분해해 나가는 무기가 정사유인 것이다. ‘이것의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마음을 내고 그 원인을 실제로 통찰해 보는 것이다. 선종의 화두 중 하나인 ‘이 뭣꼬’ 역시 회광반조(回光返照, 빛을 돌이켜 비추어 보라)를 통해 ‘원인’을 직관적으로 통찰해 보는, 그래서 ‘결과’를 타파해 공(空)의 자리를 보는 같은 맥락의 수행이라 하겠다.
무엇을 ‘사유’하는가?
이러한 ‘사유(또는 정사유)’를 통해 태자가 통찰한 내용은 무엇일까? ‘사유상’이 무엇을 사유하는 지, 그 내용을 보도록 하자. ‘출성품’의 태자가 성 밖으로 행차를 나가는 대목이다. 태자의 눈에 들어온 세상 풍경을 요약하면 “농부가 흙을 뒤칠 때 온갖 벌레가 살려고 버둥치네/ 밭 가는 농부도 일에 시달려 몸은 여위고 땀을 흘리며 온몸은 흙먼지를 뒤집어썼네/ 밭 가는 소도 지쳐 혀를 빼물고 헐떡거리네”이다.
세상의 뭇 존재는 고통이라는 형태로 그 양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를 보고 지극히 가엾은 마음이 들어 말에서 내린 태자. 그리고 염부나무 그늘 밑에 단정히 앉아 고통의 원인을 ‘사유’한다.
“이러한 중생의 고통을 관찰하고 ‘나고 멸하는 법’을 ‘사유’했다. 슬프다 세간 사람들이여! 어리석고 마음이 병들어 깨닫지 못하네(觀察此衆苦 思惟生滅法 嗚呼諸世間 愚癡莫能覺)/ 여러 사람을 편안하게 위로하며 각기 따라 앉게 하고, 자신은 염부수 그늘 아래에 단정히 앉아 바르게 사유했다(安慰諸人衆 各令隨處坐 自蔭閻浮樹 端坐正思惟)/ 모든 나고 죽음을 통찰하니 일어나고 멸함이 무상히 변하였다. 마음은 안정되어 흔들리지 않고 오욕의 드넓은 구름 사라지네.(觀察諸生死 起滅無常變 心定安不動 五欲廓雲消)”(필자 번역)
‘생멸법’을 통찰하다
‘사유생멸법(思惟生滅法)’이라는 문장에서 ‘생멸법(나고 멸하는 진리)’를 ‘사유’했음을 알 수 있다. 사유란, 원인의 통찰임을 앞서 언급했다. 즉, 나고 멸함을 통찰하니 그것은 고정된 불변의 것이 아니라, 무상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나고 멸함으로 발생하는 고통이 계속 변화하는 실체가 없는 것임을 보았다. 그러니 불타던 오욕의 검은 구름이 걷히었다. 더 이상 욕망에 끄달리지 않는 평정심에 진정 자유로웠다. 여기서 욕망이란, 생존 시의 식욕·색욕·수면욕·재물욕·명예욕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욕망 근저에 있는 생존에 대한 욕망(갈애)을 포함한다.
“여실히 깨닫고 여실히 보이는 속에 처음으로 무루선에 들었다/ 갈애(욕망)를 떠나니 기쁨과 즐거움이 차올라 바로 삼매를 받았다.(有覺亦有觀 入初無漏禪/ 離欲生喜樂 正受三摩提)”
무루선(無漏禪)이란, 인연법으로 이루어진 색계色界가 아니라 어디에도 인연하지 않고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는 진리 본체의 세계를 말한다. 번뇌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출세간의 경지이다. 이 대목을 읽었을 때, 바로 〈반야심경〉의 첫 구절이 가로지른다.
“관자재보살이 심오한 통찰지로 보니,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것을 꿰뚫어 알고 일체 고통을 타파하다.(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渡一切苦厄)”
이렇게 존재의 실체를 관통하여 보니, 그것으로부터 분리가 일어나고 기쁨에 차올랐다. 이때의 기쁨은 ‘법열(法悅)’이라는 것으로 진리를 통찰함으로서 생겨나는 지극한 평온함 또는 지극한 즐거움(극락, 極樂)을 말한다. 이것이 미소 짓는 ‘사유상’의 비밀이다. 생애의 첫 삼매에 들자, 그 평온함에 절로 살며시 미소 짓는 태자. 존재의 고통을 통찰한 이러한 체험 이후, 싯다르타 태자는(부왕의 의지와는 반대로)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명칭에 대한 고찰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란 명칭은 일본 학자들이 지은 이름이다. 이 존상은 기존 일본학자들을 비롯해 일본 학설을 그대로 수용한 국내 학자들에 의해 ‘미륵상’으로도 잘 알려졌다.
이 존상이 유행한 당시(약 5~7세기)의 미륵상은 북위 및 북제 등지에서 발견되듯이 걸터 앉은 자세로 다리를 교차한 교각상 또는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앉은 의좌상을 말한다.
신라의 ‘삼화령미륵삼존’의 경우 본존인 미륵은 의좌상을 취해 반가좌의 사유상과 확연하게 구별된다.
그럼에도 일본학자들이 반가사유상을 미륵이라고 지칭한 근거는 여기에 있다. 아스카시대의 야추지사유상(野中寺思惟像, 天智5年(666)銘)의 대좌에 ‘미륵어상(彌勒御像)’이라 명문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보살 형태의 반가상에 존명이 새겨진 것으로는 한국과 일본 통틀어 유일하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무수한 한·중·일의 사유상 전체를 일본의 야추지사유상 딱 1점에 근거하여 이것을 미륵이라고 해야하는 지 말이다. ‘역사적 실존’으로서의 존상인가 아니면 ‘미래의 구세자’로 존상인가. 이는 당시 성행했던 불신관(佛身觀)과 맞물리는 문제이겠다. 만약 미륵상과 사유상의 접점이 존재한다면 보다 충분한 작품 근거와 사료적 뒷받침을 통해 논증돼야 할 것이다.
이 존상을 미륵으로 보는 견해와 찬성하지 않는 견해도 있어 지금은 ‘미륵’이라는 명칭을 떼어내고 그냥 ‘사유상’이라고 부른다. 영어로 예전에는 ‘Maitreya(미륵)’로 지칭했다가 지금은 ‘Pensive Image(사유하는 상)’라고 칭한다. 강소연 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