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기
박경선
여행을 떠나기 전 -2023년 12월 14일 목요일
“다녀올게요.”
아들은 오늘도 새벽같이 회사로 출근했다.
“여보, 우리가 먹을 것이 없어서 저렇게 아들을 새벽같이 돈 벌어 오라고, 등 떠밀어 내보내면 가슴이 찢어지겠지요?”
그렇잖으니 날마다 건강하게 출근하는 아들이 그저 든든하고 고맙지.
그런 아들이 아껴둔 연차 휴가 일수를 모아 일 년의 끝, 12월에 우리 부부가 함께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샐러리맨 아들에게는 감옥 같은 직장에 갇혀 있다가 간이역에 내려 바람 쐬는 정도의 시간이 되겠지.
늙어가는 우리에게 여행은 늘 설렌다. 첫 설렘은 떠나기 전 기대로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 공부하며 설레고, 떠나서는 현지인과 사물들을 만나 부딪혀 느껴보며 설레고, 돌아와서는 설레며 새롭게 느꼈던 것들을 버무려 동화를 구성하고 수필을 완성해 가며 설렐 것이다.
미리부터 내 마음의 대문을 활짝 열고 추억이 살 공간의 평수를 늘릴 계획을 세워본다.
첫째, 우리 아들이 어릴 때는 자주 여행 데리고 다니지 못해 늘 미안했다. 늦게나마 그 틈새 추억을 이어줄 수 있을지. 서로 늙어가는 시간 속에, 우리가 행복하게 여행했던 이번의 추억을 부여잡고 힘들 때마다 화들짝 화들짝 힘을 얻으면 좋겠다.
둘째, 뭘 보든 새로운 것을 보는 듯한 아이들처럼 놀라고 싶다. 호기심과 존중으로 다른 문화에 다가가 말을 걸면 감정이입도 잘 될 테고, 그들 이야기가 내게 스며드는 순간 나는 순간의 의미를 부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야, 베트남 바다는 출렁임이 참 좋고 신나네.”
몇 년 전 여행 때 투본강에서 배 탔을 때 느낌이 새롭다. 바구니 배, 뱃사공이 큰 전축을 크게 틀어놓고 ‘내 나이가 어때서.’ 한국 유행가를 부르며 신바람 나게 춤추던 그 흔들림이 지금도 새록새록 즐겁게 살아난다. 그곳에 가면 인도 갠지스강에서 띄웠던 소원 등초를 닮은 소원 등도 띄울 테지. 세 발 인력거. 오행산 케이블카. 전통 마사지, 차밍다낭 쇼도 볼 테고.
셋째, 개처럼 단순해지고 싶다. 잘 때는 오줌 누러 자주 일어나지도 않고 죽은 듯이 자고, 뭐든 먹을 때는 ‘세상에나 이렇게 맛있는 것도 있었네!’ 즐기며 맛보고 싶다. 군만두 짜르, 샤부샤부 러요 보, 쇠고기 칼국수 파보, 쌀국수 분과 피. 빵 번. 볶고 튀긴 찌엔. 내가 싫어하는 매운 까이 맛까지 즐겨보고 싶다. 특히 한국에서는 비싸서 못 먹던 랍스터가 그 나라에서는 헐하다니 꼭 먹어 보고 싶다.
그래서, 작가로서의 에너지를 충족시켜 오고 싶다. 여행에서 충만한 에너지를 받으면 새 작품에 대한 구상이 뇌관이 터지듯 터져 나올지. 그런 영감과 창의적 생각이 대박 날 판타지 동화로 이어질지. 항상 그런 준비 중인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20231214.7매
2. 신들메
여행은 늘 가슴 설레는 낭만으로 떠난다. 백마 타고 사막의 초원을 달려보고 싶었던 몽골! 어디서나 ‘인살라’ 신의 가호를 빌어주는 선한 스승을 만날 것만 같았던 인도! 그런데 막상 여행 가방을 챙길 때면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견문을 넓히고 얻어올 볼거리부터 먹거리, 즐길거리는 문제도 아니다. 내게 있어, 먼 길을 걸을 때 신발이 벗겨지지 않도록 동여맬 신들메는 편하게 이용할 화장실 문화를 살펴보는 일이다.
화장실을 자주 가는 생체 리듬의 수다를 우선으로 들어주어야 한다. 가는 곳마다 화장실이 자주 있을까부터 걱정이고, 화장지가 없을 때를 대비해 화장지도 챙겨 넣는다.
몽골에서는 화장실이 게르 밖에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정보에 여행을 주춤하게 했다. 한 밤중에 문 열고 밖으로 나가는 일도 일행의 숙면에 방해가 되겠지만, 밖에 나와서도 어둠 속에서 만나게 될 모기, 벌, 뱀? 24살 새댁이 신행 가던 밤, 시골집 뒷간 가다가 빨랫줄에 걸렸던 흰 귀신을 만났던 공포가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별수 없이 곁지기를 구슬려 여행에 대동하고 길을 나서려는데 또 난관! 4인 1실 게르에 남녀가 따로 잔다니. 밤에 곁지기를 불러낼 수도 없고. 웃돈을 더 주고서라도 부부가 게르 한 채를 쓰고 싶다고 했는데도 여유분이 없단다. 하는 수 없어 곁지기 대신 함께 밤을 보낼 ‘친구 구함’ 마음으로 명단을 훑어보니 딱 두 사람 이름이 눈에 익었다. 전화를 했다. 유 선생은 ‘요강을 준비해 가요.’하며 선뜻 조언해주고, 김 실장은 ‘정 안되면 제가 화장실 따라갈게요.’ 하며 마음 써줌이 고마워 짐을 챙겼다. 그사이 인도에 페스트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돌더니 여행을 취소한 군단이 늘어났다. ‘야호!’ 우리 부부에게는 기회였다. 우리 부부만 사용할 게르가 생겼으니, 요강을 갖다 놓고 지낸들 흉보일 없는 편안한 밤을 지낼 수 있었다.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야시장을 구경하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마침 모일 시간이 가까워져 모일 장소에 기다리고 있는 가이드님께 다가가 속삭였다.
“이 근처에 급하게 이용할 화장실이 있을까요?”
그랬더니 건너편 큰 식당을 가리켰다.
“저 식당에 한국인이 많이 가요. 손님인 양 자연스럽게 들어가면 끝에 화장실이 있어요.”
“아, 그런 수가 있었네요.”
등 떠밀어 보내주는 가이드의 한 수에 힘입어 가슴을 펴고 남의 식당 화장실로 달려갔다. 볼일을 보고 나오니 그렇게 고맙고 시원할 수가. 가이드님께 거수경례했다. “충성!” 다른 여행지에서도 써먹을 꿀팁을 배웠으니 고마울 수밖에.
여기까지는 배설을 도와주는 기능 대처법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생체 리듬은 또 한 가지 수다를 달고 산다. 새벽 4시만 되면 잠이 깨다 보니 일행에게 방해가 안 되려면 불을 켜지 않아야 한다. 화장실로 숨어든다. 화장실 불을 켜두고 변기 뚜껑에 앉아 책을 읽으니, 서재가 된다. 의자라도 하나 있으면 세면대 앞에 놓고 글을 쓰는 책상으로 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먹고’ ‘자고’가 문제지만 내 경우에는 ‘먹고’ ‘자고’ ‘싸고’ ‘쓰고’가 문제다.
3. 여행지에서 읽을 책 한 권
여행지에 다니더라도 자투리 시간이 나면 친구 같은 책을 꺼낸다. 그 틈새에 읽을 책 한 권을 고르려면, 끝 날까지 여행 가방을 닫지 못하고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알차게 씹어 먹을거리가 있고 부피가 얇고 가벼운 책! 그 한 권을 골라 배낭에 넣어야 여행 준비가 끝이 난다. 이번에 들고 갈 책은 2015년도에 읽었던 김은주 수필가의 <미뢰>로 정했다. 새겨 읽을 문장들이 많아서 공부하는 맘으로 집어넣었다.
4. 여행을 떠나면서(2023.12.16. 토)
이번 여행은 큰아들과의 여행이다. 아들이 일 년간 모아둔 회사에서 얻은 연차를 가족 힐링으로 같이 쓰자며 우리 부부가 효도 관광 상품으로 따라가기로 했다. 저녁 5시 카카오 택시를 불러 타고 대구공항으로 갔다. 대구에서 베트남 다낭까지 갈 비행기를 탈 사람은 하나투어 손님으로서는 달랑 우리 세 명이었다. 다낭 공항에 내려 마중 나온 현지 가이드를 살폈다. A3 종이에 우리 가족 이름을 써서 들고 있는 가이드를 발견하고 반가워서 다가갔다.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했단다. 뒷 비행기로 올 일행 16명은 40분 뒤에 도착이라며 우리를 먼저 호텔로 데려다 주겠단다. 그 배려가 고마웠다. 깨끗한 대형버스도 맘에 들었다. 우리는 포포인츠바이수쉐라톤 호텔로 와서 16층 방에 짐을 풀었다. 밖을 내다보니 바로 코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기필코 내일 아침에는 저 바닷가를 거닐어 보리라.’
5. 여행 첫날(2023년 12월 17. 일. 비 투두둑 흩뿌리며 지나갔음)
아침 7시에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갔다. 베트남 쌀국수랑 카레랑 여러 음식이 눈에 띄였다. 빵 종류도 많았다. 과일은 용과, 수박, 망고 스틴 정도가 보였다. 망고, 바나나 등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저것 몇 개 집어와 집적집적 먹어보았다. 그리고 바닷가로 나갔다. 바람이 세게 불어 해변에 서 있는 야자수들을 흔들고, 파도도 높이 춤추게 했다.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 부러웠던 풍경들 속에 우리가 와서 거닐고 있다니. 축복 받은 시간 속이었다.
10시 반에 김영욱 가이드를 다시 만났다. 어제 망고 실컷 먹어보고 싶다고 무심코 한마디 했더니 오늘 도시락에 망고를 가득 넣어 손님 숫자대로 가져왔다. 센스가 돋보였다. 갈 때 감사 편지에도 담아야 할 가이드의 향기였다.
베트남 날씨는 우기라서 90%가 비 올 날씨지만 종일 동안 서너 번 투두둑 떨어지다 그쳤다.
바구니 배를 탔다. 사공들이 관광객의 흥을 돋워주려고 큰 전축 한 대만 실은 배에 순서대로 자기 배를 몰고 가서 밧줄로 묶었다. 전축 실은 배의 사공은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며 관광객의 흥을 돋운다. ‘내 나이가 어때서’ 2012년에 유행했던 노래다. 그때 장미회 회원들과 왔을 때도 부르던 노래다. 발음은 대충이지만 흥을 돋워주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관광객들은 흥에 겨워 전축 실은 배의 돈통에 1달러짜리 팁을 던져 넣는다.
오행산을 올라가서 동굴 입구에 서보니 ‘아참 여기도 왔다 갔었지~’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입구 불상 앞에 지폐를 놓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 3세대 아이들을 돕기 위해 마련되었단다. 정말 그렇게 쓰였으면 좋겠다. 마음을 모아 놓고, 동굴 속으로 들어섰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지옥이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천국행 계단이란다. 천국행은 계단 오르기가 더 급경사이고 좁은 데다 아무래도 비 온 날씨라 계단에 물기가 번져있어 조심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천국행을 포기할 수 없어 꾸역꾸역 올라갔다. 대리석 동굴 끝 꼭대기 벽에 부처님 부조가 여러 점 새겨져 있었다. 머물러 서서 부처님이 들려줄 이야기를 들어야했는데 마음 문이 닫혀져 있어서 일까? 아무 것도 듣지 못하고 그저 사진만 몇 컷 찍고 내려왔다. 이게 아닌데…‘
인력거를 탔다. 언뜻 보면 휠체어 같다. 휠체어는 뒤에 서서 밀지만. 인력거는 앞의 의자에 사람을 태우고 뒤에서 주인이 자전거를 타고 태워주는 형식이다. 15분 동안 상가가 늘어선 거리를 휘젓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준다. 오른쪽,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휘황찬란하게 진열된 물품들을 구경하며 지났다. 1 달러 팁을 건넸는데, 이 팁이 저들에게 얼마나 보탬이 될지? 어느 인력거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종일 혼자 집에서 놀던 아이는 인력거를 몰고 집 앞을 지나가는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종일 대문 앞에서 기다린다. 그런데 하루 몇 번 대문 앞을 지나는 아빠는 아이가 “아빠!”하며 뛰어나갈 때마다 ”비켜. 이 새끼야!“ 욕을 하며 지나갔다는 이야기!
도자기 체험 장소로 갔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무형문화재라는데 지금은 그 일을 며느리가 물려받아 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녀딸은 엄마가 돌리는 물레가 잘 돌아가도록 서서 다리를 저으며 물레를 돌리고 있었다.
“너도 여기 태어났으면 저 아이처럼 도자기 만들고 있어야 했는데.”
그 순간 물레를 돌리던 엄마와 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가이드는 같이 온 관광객 아이의 행복을 추켜세워 줄 요량으로 한 말이겠지만, 한쪽을 추켜세우기 위해 한쪽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순간, 유퀴즈에서 본 어느 타일공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자기는 정신 차려서 몸 쓰는 타일 공 일을 찾아 보람 느끼며 사는데, 엄마가 아이 손을 잡고 지나가면서 ‘너도 저런 일 안 하려면 정신 차리고 공부 열심히 해야 돼.“ 하더라는 말이 울림으로 되돌아왔다. 우리가 살면서 저런 실수는 하지 않아야 했다. 저 상처 받은 자존심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말이 통한다면 장인 정신을 이어받아 일하는 점이 참 아름답고 고귀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저녁에는 우리 세 명이 한배를 타고 소원 등을 물에 띄웠다. 낮에 바구니 배를 탈 때는 두 사람씩 타느라 우리 부부만 타고 아들은 따로 타서 이산가족이 되는 바람에 기분이 별로였는데, 세 명이 같이 타니 완전체가 되어 기뻤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 아들 장가가게 해주세요.‘하는 기도를 소원 등에 실어 떠나보냈다. 각자의 소원을 실어 보냈는데 아들과 남편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모르겠다. 선주는 낮에는 고기 잡고, 저녁에는 손님 태워 이런 영업을 하는데 고기잡이할 때보다 더 수입이 많단다. 배 전체를 밝혀 줄 둥근 등은 스위치를 바꿔 누를 때마다 등의 색깔이 휘황찬란하게 바뀐다. 도깨비불 같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었다. 우리 관광객은 열심히 사는 이들이 밝혀주는 도깨비불 배에 앉아 투본강을 따라 흘러갔다.
배에서 내리니 거리에도 춤이 이어지고 있었다. 장대를 길게 어깨에 멘 여인은 장대 끝에 과일을 매달고 길게 늘어뜨려 다니면서 과일을 팔고 있었다. 저렇게 메고 다니면 어깨가 얼마나 아플까? 과일은 안 팔리고 어깨만 아플 것 같아 애처로웠다.
“발 마사지 30분에 4만 원!”
한국말로 호객 행위를 하는 여인도 있었다. 저마다 적성에 맞고, 좋아하는 일, 잘 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사는 모습이 삶의 춤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니 호텔 로비에도 아이들과 엄마들이 자잘한 소품들을 늘여놓고 무슨 바자회 같은 행사를 하고 있었다. 제마다 초등 교실의 책상 하나만 한 자리를 차지하고 그 위에 종이로 꾸민 크리스마스트리, 머리핀, 빨간 장갑. 별과 리본. 작은 메모장, 폭신한 헝겊 옷을 입은 작은 동물들까지 올라앉아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풍경으로 보기 좋았다.
6. 2023년 둘째 날 12월 18일. 월요일.
(비 올 확률 90%지만 비는 한동안 주룩주룩 내리더니 지나갔음)
바나힐스에서 테마파크로 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5.8km 산을 올라가는 데 15분이 걸렸다.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 선이라고 했다. 선도 다섯 개였다. 내려다보니까 아찔했고 한참 올라가다 보니 속이 메슥거리면서 현기증이 났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안개가 서려 몽환 속 세상이었지만 황금 다리를 보러 안개 속을 걸어 건너갔다. 사람 손가락을 펼쳐 든 듯한 황금 다리는 손바닥 위에 다리를 올려둔 형상이었다. ‘아 저번에 왔을 때도 이것 봤는데.’ 옛 기억이 하나씩 떠올랐다. 비가 쏟아지자, 지하로 내려갔다. 아이들이 타는 것들, 던져 넣는 것, 인형 맞추기 등 시간 보내기 좋은 것들이 즐비하였다. 우리는, 산타복을 차려입고 사진을 함께 찍어주는 사람들과 사진 한 판 찍고 오가면서 이것저것 구경하였다. 아들은 속이 안 좋다고 어제저녁부터 굶더니 두 때를 굶고 세 때가 다가오니 배가 고픈지 꼬지 포장마차 앞에 발을 멈춘다. 그 꼬치 하나 먹고 힘을 내는 모양이었다.
관광의 필수 코스 마사지 샾으로 갔다. 온몸을 힘껏 만져주지만 혈 자리는 공부하지 않은 손길이었다. 그래도 이들의 노력이 고맙고, 내 몸을 맡겨둔 일이 미안해서 마사지가 끝났을 때 뒤돌아 올라앉아 보라고 권하면서 그녀의 어깻죽지를 잠시 주물러주었다. 그녀가 마음 편찮게 받아들여 아쉬웠지만 팁으로 삼천 원을 주자, 많이 준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감사를 제대로 표한 것 같았다.
저녁에 차밍다낭 쇼를 보러 갔다. 90분 정도 공연이었는데 공중에 몸을 매달아 공중 발레를 하던 남녀 한 쌍의 공연이 제일 마음에 남았다. 혹여나 잘못 해서 줄이 끊어지거나 아래로 떨어지면 심하게 다칠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서 편하게 보기가 어려웠다. 예술을 예술로 보지 못하고 자꾸 생활고 쪽 입장에서 보게 되다니…‘
2023년 12월 19일. 화요일. 셋째 날
(비 올 확률 90%지만 비는 투두둑하다 지나갔음)
어제는 쇼핑 관광으로 커피 파는 상점에, 오늘은 노니 파는 상점과 견과류 파는 마트에 따라갔다. 노니는 치매 예방에 좋다며 귓불에 줄이 있는 사람은 필히 먹어야 한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마음이 좀 동하기는 했지만, 찬찬히 되돌아보았다. 이때껏 여행 경험에 비추어보면 사 온 것 제대로 먹은 게 없고 아직 커피 가루는 집에 굴러다닌다. 독일에서 사 온 인덕션도 알고 보니 국내 것 보다 몇 배로 더 비싸게 사서 쓰지도 않고 보관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동참하지 않다 보니 가이드 눈치가 보였다. 가이드는 가이드 대로 물건을 잘 사는 팀에게 혜택을 주고 싶어 마사지 받으러 갈 때도 ‘다리 아픈 팀은 따로 팁을 모아 낼 테니, 팁을 미리 주지 말라’는 둥, 표 나지 않게 말을 돌려 하지만 그 말뜻을 눈치 없이 들은, 물건 잘 사는 팀의 할배가 우리 남편과 아들한테도 그렇게 전하는 바람에 들통이 났다. 가이드로서는 그렇게 혜택을 주고 싶었겠지만 우리는 다소 서운해졌다. 그래서 매 여행 때마다 가이드 자랑을 홈페이지마다 들어가 올렸는데 이번에는 감사편지만 전하고 생략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다낭에서 핑크색 대성당에 들렀다. 안에는 못 들어가고 밖에서 사진만 몇 컷 찍었다. 성모 발현지가 있다는데 동굴 속이 아니었다. 성모상 앞에 갖은 화분들과 크리스마스를 맞는 치장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어 그냥 사진 한 컷만 찍었다. 영적으로 조용하게 알현하기에는 맞지 않는 분위기였다. 성당을 나서는데 한 여인이 우리 셋이 아까 찍은 가족사진을 언제 자기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었는지 사진 한 장을 빼서 사진 앞에 천 원짜리 한 장을 붙여 보여준다. 천 원에 사가라는 뜻이 금방 읽혔다. 하하 웃으며 사진을 받았다.
그다음 손짜 반도 해수관음상이 서 있는 다낭 영응사에 들렀다. 베트남어로 린응사(린응은 간절히 기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뜻)절이라 하는데 2010년에 완공, 뒤쪽에는 산이고 앞쪽에는 바다라 해수관음상이 67m 키로 바다를 내려다보며 등대 역할도 한다니 그저 미덥고 든든하겠다. 내부는 17층. 21개의 불상과 계단이 있는데 1층만 구경이 가능하다. 법당 양옆에는 18 나한 불상이 놓여 있고 앞에는 분재들이 즐비하고 ‘침향나무’가 있다. 물에 넣으면 가라앉기 때문에 침(沈)이라고 했고, 향기가 짙어 모든 기를 모아 위로 하늘에 이르게 한단다.
침향이란 열대 나무 아퀼라리아(Aquilaria)에서 나오는 나무 기름 덩어리를 말한다. 그냥 보면 나무 조각 같지만 나무에 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상처 부위에 모인 수지가 수천 년에 걸쳐 응결된 귀한 덩어리라 한다. 오래된 보리수나무들도 만났다. 뿌리가 위로 올라붙어서 나무인지 뿌리인지 구분이 안 되기는 했지만, 긴 세월 풍파 맞고 잘도 살고 있는 나무들이 우리 인간들을 보면, 인간이 파리 보듯 한 마음일까? 저녁을 먹고 마사지를 받고 야시장을 구경하고 나서 가이드는 공항에 10시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가이드로서도 피곤한 하루였겠다. 1시 조금 넘어 대구행 비행기를 탔다.
2023년 12월 20일 수요일 -아침 8시에 대구공항에 내렸다. 대구에는 새벽에 눈이 내려 새하얀 지붕들도 보였는데 길에는 눈이 휩쓸고 지나간 쪽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얇게 싸여있어 조심스러웠다. 택시를 타고 집 앞까지 왔다. 밥솥에 밥을 안치고, 갈 때 끓여두고 간 쇠고깃국을 덥혀 10시에 아침을 먹었다. 여행도 좋지만, 우리 집도 좋다. (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