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
사무엘 상권 4장~7장까지!
(사무엘 상권 4, 17~22)
"하느님의 궤도 빼앗겼습니다.”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구나.”
묵상-
저런, 기어이 사달이 났다.
거룩한 성전에서 주님을
섬겨온 사제 엘리 아들들이
우상숭배에 방탕한 생활을
한 죄로, 주님께서는
'좋다 너희들 나없이 한번
살아봐라. 백날 말해봤자
나만 열불나겠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당하고 계약궤마저
뺏기게 만드신다.
엘리의 며느리가
죽은 남편 피느하스와
시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하느님의 궤를 빼앗겨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고 탄식한다.
계약궤를 뺏기다니.
세상에나 어떤 궤인데!
모세가 하느님께 나아가서
받은 특 A급 계약 조항을
새긴 판인데, 전쟁통에도
적진의 성을 돌며 행렬했던,
요르단 강을 건널 때도
함께 건넜던 그야말로
하느님 자신인데, 그걸
잃다니 그건 곧 하느님을
잃었다는 뜻이잖아.
그런데 나는 여기서
우스개소리가 떠오른다.
우리가 핸드폰을 잃으면
세상 모든것을 잃은듯이
난리가 난다는 그 말,
나도 그런적이 있었지만!
그런데 하느님을
잃었을땐, 과연 핸드폰을
찾듯이 난리가 날꺼냔 말이다.
하느님없이 하느님을
섬기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는 거,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거 자주 체험한다.
나에겐 매일 주님을
만나뵙는 묵상기도나
성체조배 시간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주단지처럼 여기는
계약궤와 같은 의미다.
미사봉헌하는 것 다음으로 말이다.
우선 그 시간동안 주님을
깔축없이 만나 대화나누며
친밀한 우정을 쌓아가기
위해서는 분주하거나
복잡한 세상사와 인간사,
그리고 집안의 일상사에서
이탈하려는 마음가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건 확실히 보장한다.
가지치가 되지않은
상태에서는 주님의
계약궤를 마음에 모셔도
기도에 집중하거나
주님이 지금 내앞에
계시다는 현존의 체험을
하기가 어렵다.
하루 해야할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주님의 계약궤를
항상 먼저 생각하면서
첫자리로 올려놔야 한다는거다.
그런데 그게 쉬울까.
천만의말씀 만만의 콩떡.
나 역시 주님을 만나
섬겨드리고 알콩달콩
우정을 쌓으며 주님 말씀
잘 전해듣고 실천하는
과정이 행복하지만,
오늘 등장한 성경속
백성들못지 않게
하느님 아닌 우상에
마음을 뺏길때가 있다.
즉 과도한 일중독,
돈, 사람 걱정, 명예중독,
봉사중독, 해결자 중독 등
그것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분명 하느님 일을
하는것 같은데,
하느님은 안계신것 같은,
내 안의 계약궤 존재가 흐릿해지고
사라진 듯한 상태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느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자부해왔는데 정작
그 하느님은 지금
적진의 신전에 가 계시니
무슨 주말부부도 아닌것이
드문드문 만나는 그런 사이였냐고!!!
"니들 나없이 살아보는거
어떰? 살만 하드나.
내영광이 떠나버리는 거,
순식간이여. 그니까 내
계약궤, 잃어버리지도
뺏기지도 말고 잘 지켜야
할껴. 너희는 나없이
암것도 못한다는 말,
요한복음에 나와있고
작은 성녀 소화데레사에게
다 알려줬잖여.'
'하느님의 도우심없이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소화데레사)
아멘.
주님, 당신께서 하신 일,
이토록 놀랍고도 오묘한데,
오늘부턴 성체조배랄지 묵상기도랄지
더 깔축없이 집중해서 바칠라요.
주님의 계약궤가 저와 제 집안을 떠나
당신의 영광이 떠나지 않도록
도와주실거쥬?
그럼 날마다 일상에서
체험하는 당신 업적들을
사무엘처럼 돌에 새겨,
아니 메모장에 써서 모아볼라요.
제목은,
'주님의 계약궤로부터
흘러나오는 일상의 감사함.'
캬, 근사한 제목,
자화자찬이 한 바닥이다.
하느님 없이 하느님을
섬기는 어리석음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지 배웠다.
마음의 돌에 새길 일이다.
(사무엘 상권 7,12)
사무엘은 돌을 하나
가져다가 미츠파와
센 사이에 세우고,
“주님께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며,
그 돌의 이름을 에벤 에제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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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