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신채호(1880~1936)의 활동 답④
제시된 사진,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고 주장, '조선상고사와 독사신론' 등의 저술 활동을 통해 신채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채호는 언론인으로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논설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애국 계몽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국권 피탈 후에는 망명하여 연해주에서 권업회의 기관지 권업신문의 주필로 활동하였어요. 이후 상하이로 건너가 동제사에 참여하는 등 독립 운동과 교육 활동, 역사서 집필 등에 힘썼습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였으며, 국민 대표 회의에서 창조파로 활동하였어요. 의열단의 요청으로 민중의 직접 혁명을 강조한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1923). 1928년 중국에서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 감옥에서 복역하다가 순국하였습니다.
그는 사학자로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1908)'을 연재하여 왕조 사관과 사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민족 중심의 자주적 역사관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상고사(화랑 정신인 낭가 사상을 강조,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이라고 기술)>, <조선사연구초(단군~삼국 시대 기술,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기술)> 등의 저술을 통해 고대사 연구에 주력하였습니다.
① 원산학사는 개항장인 원산(덕산)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학교였습니다.
② 조선 중립화론은 갑신정변 직후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유길준과 독일 공사 부들러가
제안하였습니다.
③ 일제가 만든 조선사 편수회라는 단체에 참여한 인물로는 이완용, 이병도, 최남선 등이 있습니다.
④ 신채호는 김원봉의 요청으로 폭력 투쟁을 통한 민중 직접 혁명을 강조한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였습니다.
⑤ 사회경제 사학자인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를 저술하여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인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해 왔음을 강조하며 식민 사관의 정체성론을 모두 비판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한 말~일제 강점기 역사 연구
민족주의 사학 | ① 특징 ◦ 민족 정신 강조 ◦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한국사의 주체적 발전을 강조 ② 학자 ◦ 박은식 - 근대사 연구에 노력 - 역사는 신(神 ; 정신)이요, 나라는 형(形 ; 형체)이라고 강조 - <한국통사>: 단군~국권 피탈, 특히 1864~1911년까지의 일본의 조 선 침략을 집중 서술(국혼을 강조, 아픈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배우자) - <한국독립운동지혈사>: 갑신정변~1920년까지의 일제 침략에 대한 한민족의 독립 운동 서술 - ‘민족 혼’ 강조 ◦ 신채호 - 고대사 연구에 노력 - <민족주의 역사학의 기반 확립 - <조선상고사> :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인식 - <조선사연구초>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높이 평가 - <독사신론> : 삼한정통론에서 벗어나 고대사의 체계를 정립 - '낭가 사상' 강조 ◦ 정인보 - 근대사 연구에 치중 -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관 가장 잘 계승 - <조선사연구> : 실학 연구에 노력 - 5천년 간의 ‘조선의 얼’ 강조 ◦ 문일평 - 근대사 연구에 노력 - <한미 50년사> : 개항 이후 역사 연구 - ‘조선심’ 강조 ◦ 최남선 - <조선역사>, <고사통>, <아시조선> 저술 - 불함 문화권 주장 |
실증주의 사학 | ① 특징 ◦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 강조 ◦ 사실 그대로의 역사 강조 ◦ 문헌 고증을 통한 역사 연구 ② 진단학회 결성 ◦ 일제의 청구 학회를 중심으로 한 왜곡된 한국사 연구에 반발하여 조직 ◦ 1934년 조직하여 1942년 일제에 의해 해체 ③ 학자 : 이병도, 김상기, 신석호, 이윤재, 조윤제, 손진태 등 |
사회 경제 사학 | ① 특징 ◦ 일제의 경제학자들이 우리 역사의 후진성과 정체성을 강조한데 반발 ◦ 유물론적 변증법에 의한 역사 연구 강조 ◦ 세계사적 역사 발전 단계설을 우리 역사에 적용함 ◦ 일제가 주장하는 한국사의 특수성론을 배척하고 보편사의 이론 적용 ② 학자 ◦ 백남운 - 유물 사관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체계화함 -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저술 ◦ 기타 - 김석형, 이청원, 박극채 |
신민족주의 사학 | ① 특징 ◦ 민족 단결과 자주 민족 국가 건설을 강조 ◦ 개방적, 세계적, 평등적(균등적) 민족주의 강조 ② 학자 ◦ 손진태: <조선민족사개론>, <국사대요>, <한국민족문화의 연구> 저술 민족 사관에 대한 비판과 극복 ◦ 안재홍: <조선상고사감> 저술,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 주장 정인보와 함께 조선학 운동 참가 |
의열단에 대한 문제는 29회 중급 42번 문제 풀어보세요.
유사 기출문제
26회 중급 40번 문제
40. 박은식(1859~1925)의 활동 답③
제시된 내용에는 '역사, 정신' 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 사학이 나타나 있으며, 무엇보다도 자료의 출처가 "한국통사"라는 것을 통해 박은식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박은식과 신채호는 민족주의 사관을 대표하는 역사학자이자 항일 독립 운동을 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두 분의 저술과 활동을 구분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두셔야 합니다.
박은식은 일찍이 독립 협회, 신민회, 서북 학회 등에 가입해 애국 계몽 운동을 폈습니다. 또한 황성신문 주필,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담당하는 등 언론 활동을 활발하게 하였어요.
1909년 양명학에 토대를 둔 '유교구신론'을 발표하여 유교 개혁을 주장하였고, 장지연 등과 대동교를 창건하였으며, 최남선 등과 조선 광문회를 설립해 고전을 정리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1911년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1915년 신규식 등과 동제사를 결성하였습니다. 이후 대한 민국 임시 정부 건립에 참여하였으며,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탄핵된 후 1925년에 2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그해에 사망하였습니다.
역사와 관련하여서는 "한국통사(단군~국권 피탈 이전까지)",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개항~3·1 운동)"를 저술하여 일제의 불법적인 침략을 규탄하였습니다. 특히, "한국통사" 서문에서 '나라는 형체(形)라서 멸(멸망)할 수 있으나, 역사는 정신(魂)이기 때문에 멸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혼’으로 파악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한국의 독립 정신을 정리하였습니다.
① 독사신론은 1908년에 신채호(1880~1936)가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한 글입니니다.
이는 민족 중심의 역사 서술을 강조하여 민족주의 역사학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였어요.
② 진단 학회는 이병도, 김상기, 손진태 등이 실증적 역사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하였습니다.
이들은 랑케 사학에 영향 받아 문헌 고증 등의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역사를 연구하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③ 박은식은 유학자 중심의 유학을 비판하고, 유교 구신론을 내세워 새로운 시대에 유교를 전승·보급하기 위해서는
교화 활동과 실천적인 유교 정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습니다.
④ 이병도, 최남선, 이완용, 박영효 등이 대표적입니다.
조선사 편수회는 조선 총독부가 한국사를 왜곡, 말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1925) 단체로, 식민 사관에 바탕을
둔 조선사를 편찬하였습니다(1936).
⑤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를 저술하여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면서
민족주의 사학의 정신주의와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 이론을 모두 비판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23회 중급 38번 문제
38. 신채호(1880~1936)의 활동 답①
사학자로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를 집필하였다는 사실에서 신채호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신채호(1880~1936)에 대해 살펴봅시다.
그는 일찍이 독립 협회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황성신문 논설위원, 대한매일신보 주필, 연해주에서 권업회의 기관지 권업신문의 주필로 활동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국민 대표 회의에서 창조파(임시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자는 파)로 활동하였으며, 의열단의 요청으로 민중의 직접 혁명을 강조한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1923).
역사와 관련하여서는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1908)'을 연재하여 왕조 사관과 사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민족 중심의 자주적 역사관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상고사(화랑 정신인 낭가 사상을 강조,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이라고 기술)>, <조선사연구초(단군~삼국 시대 기술,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기술)> 등의 저술을 통해 고대사 연구에 주력하였습니다.
① 신채호는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1908)'을 연재하여 왕조 사관과 사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민족 중심의 자주적
역사관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② 진단 학회를 창립에 참여한 이는 이병도, 손진태, 이윤재, 이희승 등입니다.
③ 조선어 연구회를 조직한 인물은 최현배, 이희승 등의 국어학자들입니다.
④ "조선사회경제사(1933)"는 백남운이 한국의 고대 경제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연구서입니다.
백남운은 유물 사관에 기초한 사회 경제 사학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면서 일제가 주장한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론을 정면으로 반박하였습니다.
⑤ 조선 불교 유신론은 한용운(1879~1944)이 제창하였습니다.
그는 불교 승려이자 시인, 항일 운동가였로,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불교 대표로 참여하였어요. "조선
불교 유신론"을 저술해 불교를 새롭게 고칠 것을 주장하였고(1910), 일제의 사찰령(1911)에 맞서며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현실 참여를 주장하였습니다. 1920년대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 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 운동을 펴기도 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22회 중급 40번 문제
40. 사회경제 사학자 백남운(1895~1974) 답②
"조선사회경제사(1933)"는 백남운이 한국의 고대 경제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연구서입니다.
백남운은 역사 발전을 유물 사관에 입각하여 연구하는 사회·경제 사학을 발전시켰어요. 이러한 그의 연구는 "조선사회경제사(1933)", "조선봉건사회경제사(1937)"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1933)"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원시 공산 사회 → 노예 사회 → 봉건 사회 → 자본주의 사회'라는 보편적 역사 발전의 단계를 거쳐 왔다고 서술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사를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따라 기술함으로써 식민 사관의 정체성론을 비판·극복하고자 하였으며, 동시에 민족주의 사학의 정신주의도 비판하였습니다.
① 박은식(1859~1925)도 우리의 민족 정신을 ‘혼’으로 파악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한국통사와 한국 독립 운동지혈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불법적인 침략을 규탄하였습니다.
② 백남운(1895~1974)은 유물 사관에 기초한 사회 경제 사학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면서 일제가 주장한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론을 정면으로 반박하였습니다.
③ 신채호(1880~1936)는 고대사 연구에 주력해 조선상고사와 조선사 연구초를 저술하여 우리 고대 문화의 우수성과
독자성을 강조했어요.
④ 이익은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를 체계화할 것을 주장하였어요.
그는 단군→기자→삼한(마한)으로 이어지는 정통론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제자인 안정복에게 계승되었습니다.
⑤ 진단 학회는 이병도, 김상기, 손진태 등이 실증적 역사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하였습니다.
이들은 랑케 사학에 영향 받아 문헌 고증 등의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역사를 연구하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일제의 어용 역사 단체인 청구 학회의 역사 왜곡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되었고 진단학보를 발간하기도 하였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20회 중급 43번 문제
43.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공통점 답⑤
문제에 제시된 ‘한국통사(박은식)’, ‘조선사연구(정인보)’, ‘조선상고사(신채호)’는 모두 민족주의 역사학들이 저술한 역사서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우리 역사 왜곡에 대응하여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한국사의 발전 주체가 우리 민족임을 강조하면서 민족 정신을 고취하고 식민주의 사학의 허구성을 밝히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박은식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면서 ‘한국통사’와 ‘한국 독립 운동 지혈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불법적인 침략을 규탄하였습니다. 신채호는 조선 상고사와 조선사 연구초를 저술하는 등 주로 우리 고대 문화의 우수성과 독자성을 강조하여 식민주의 사관을 비판하였어요. 정인보는 ‘조선의 얼’을 강조하며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관을 계승하였고, 문일평(조선심 강조), 안재홍(신민족주의 역사학), 남궁억 (역사교육 강조)등도 민족의 자주성과 독창성을 조명하여 일제의 식민주의 사관을 비판하였습니다.
한편 1930년대에는 백남운 등에 의해 사회 경제사학이 대두되었어요. 이들은 마르크스의 유물 사관을 바탕으로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면서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 이론을 반박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인 학자들이 만든 청구 학회에 대응하여 한국 학자들이 세운 국학 연구 단체인 진단 학회(이병도, 손진태 등)를 중심으로 한 실증주의 사학도 발달하였습니다.
① 일제가 만든 조선사 편수회에 참여한 조선인으로는 이완용, 최남선, 이병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② 삼한 정통론으로 우리 역사를 체계화한 인물은 이익이고 이는 안정복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중농주의 실학자인 이익은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를 체계화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단군-기자-삼한(마한)으로 이어지는 삼한 정통론을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제자인 안정복은 이를 계승해 단군-기자
-삼한(마한)-삼국(신라)-통일 신라-고려로 이어진다는 삼한 정통론을 폈습니다.
③ 백남운의 사회 경제 사학에 대한 설명입니다.
④ 진단 학회를 설립에 참여한 이는 이병도, 손진태, 이윤재, 이희승 등입니다.
⑤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혼(박은식)', '낭가 사상(신채호)', '얼(정인보)' 등 민족 정신을 특히 강조하였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8회 중급 40번 문제
40.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1880~1936) 답③
사학자로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를 집필하였다는 사실에서 신채호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신채호(1880~1936)에 대해 살펴봅시다.
그는 일찍이 독립 협회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황성신문 논설위원, 대한매일신보 주필, 연해주에서 권업회의 기관지 권업신문의 주필로 활동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국민 대표 회의에서 창조파(임시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자는 파)로 활동하였으며, 의열단의 요청으로 민중의 직접 혁명을 강조한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1923).
역사와 관련하여서는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1908)'을 연재하여 왕조 사관과 사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민족 중심의 자주적 역사관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상고사(화랑 정신인 낭가 사상을 강조,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이라고 기술)>, <조선사연구초(단군~삼국 시대 기술,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기술)> 등의 저술을 통해 고대사 연구에 주력하였습니다.
① 박은식(1859~1925)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2대 대통령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한국통사'와 '한국 독립 운동지혈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불법적인 침략을 규탄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민족 정신을 ‘혼’으로 파악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② 백남운(1895~1974)은 유물 사관에 기초한 사회 경제 사학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면서 일제가 주장한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론을 정면으로 반박하였습니다.
④ 이승훈(1864~1930)은 민족 운동가이자 교육자로 신민회에 참여하여 교육 활동에 힘써 오산 학교 설립하였습니다.
이후 민족 대표 33인 중 기독교 대표로 참여하였고 민립 대학 설립 운동에도 참여하였습니다.
⑤ 정인보(1893~?)는 문일평, 안재홍 등과 조선학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조선의 ‘얼’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7회 중급 50번 문제
50. 박은식 답②
일제의 식민 사관에 맞서 박은식, 신채호 등은 민족주의 사학을 정립하였다. 이들은 자주적으로 민족사를 연구하여 민족정신을 세우면 언젠가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에 민족사의 연구 자체를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했고, 독립운동에도 적극 가담하였습니다.
임시 정부에서 활동한 박은식은 민족정신으로서 조선 국혼을 강조했으며,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침략과 민족의 독립운동을 정리하였습니다. 신채호는 일찍이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을 연재하여 왕조 사관과 사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민족 중심의 자주적 역사관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어요. 그 후 신채호는 해외에서 독립 운동에 몸바쳐 활동하면서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등의 저술을 통해 고대사 연구에 주력하였습니다. 그는 고대사에 살아 숨 쉬는 자주적·주체적인 민족 고유의 사상인 ‘낭가 사상’의 존재에 주목하고, 이러한 정신을 되살려 민족 독립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어요. 민족주의 사학자로는 이밖에도 ‘조선얼’을 강조한 정인보, ‘조선심(心)’을 강조한 문일평, 그리고 신민족주의 역사학을 제창한 안재홍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에 맞서 ‘문화가 살면 민족은 죽지 않는다.’는 신념 아래 조선학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어요. 민족주의 사학이 민족정신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백남운은 마르크스의 유물 사관의 영향을 받아 사회 경제 사학을 내세웠습니다. 그는 “조선사회경제사”를 저술하여 우리 역사도 서양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고대 노예제 사회 → 중세 봉건사회 →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단계를 거치며 발전했다고 기술하였어요. 이는 한국사에는 봉건 사회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는 근대 사회로의 발전을 할 수 없다는 식민 사관의 정체성론을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역사가의 주관적인 판단없이 역사적 사실을 원래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한다.’는 랑케 사학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이병도). 이른바 실증 사학의 학풍을 지닌 이들은 철저한 문헌 고증을 통해 우리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하였어요. 그리고 진단 학회(이병도, 손진태 등)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사 연구 성과를 “진단 학보”를 통해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효율적인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부법
카페에서 추천하는 부담 없는 [한권으로 끝내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교재로 중요내용을 공부하고
마지막으로 카페에 올려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문제해설을 꼼꼼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29회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국사사랑방/한국사능력검정시험합격률/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출문제/한국사기출문제해설/
한국사능력검정시험난이도/한국사능력검정시험합격률/한권으로끝내는한국사능력검정시험
첫댓글 제가 가지고있는 해설집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적혀있네요. 헷갈렸던 내용들을 확실하게 알고갑니다!
정말 딱 요점을 잡아서 이해가기 쉽게 해주시니 참 좋네요. 딱 무슨 점에서 신채호가 맞는지 그에 대한 설명과 풀이,, 또 다른 답변에 대한풀이까지. 좀 정리가 안되는 부분이있었는데 쭉 읽어보니까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는 것같아요 ㅎㅎ
항상 문제를 풀면서 정답지가 아닌 보기의 인물들에 관해서는 직접 찾아보거나 얼렁뚱땅 넘어가곤 했었는데, 모든 보기에 대하여 꼼꼼하게 설명을 해주시니 한눈에 보기에 참 좋네요 ^^~
고급 공부로 처음 시작하려는데, 중급 문제를 봐도 쉽게 맞출 수가 없네요.. 역시 공부를 제대로 먼저하고 문제를 풀어야 할것 같네요
다 맞추진 못했지만 그래도 반타작 이상은 하네요.. 초급부터 준비할 생각입니다만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니라 감에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박은식의 유교구신론은 예전에 국사선생님 말씀이 생각나서 피식 웃었습니다. '니가 유학자야..입 다물어' 친구가 얼굴이 빨개졋던 기억이 납니다.
정리가 잘 되어 있으니 보기가 편한데 이 게시판에 전근대 문제도 나와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자세한 풀이 감사합니다!!! 정리가잘되어있네요 고급준비하려하는데 큰도음될것같습니다
신채호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 적당한 길이의 설명으로 명확히 어떤 존재였고 그시대적 상황을 파악하기에 좋았던거 같습니다.
신채호 선생님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부담되는 내용이나 설명 잘 해주셔서 공부하는데 큰 무리가 없어 도움이 많이 됩니다
문제에 대한 해답과 함께 다른 보기들에 대한 설명까지 자세하게 나와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직 전근대를 안보고 기본적인 개념으로 문제 풀엇는데 어렵네요 ㅠㅠㅠ계속해서 열심히 공부해야겟네요
정답에 대한 해설을 따로 위에 두는 건 어떨까요? 정답이 정답인 이유와 다른 선택지들이 오답인 이유를 따로 표시하는 것이 읽는데 더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ㅎㅎ
도표로 정리하여 기출문제를 해설해 주니 한번에 정리가 되고 여러번 보는 효과가 있네요.
문제를 풀면서 헷갈리던 개념을 확실히 잡아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문제를 틀려도 해설을 읽고 그 후에 뒷 문제를 풀었을땐 하나 하나 맞혀 나갔습니다.
18회중급40번 신채호선생이 황성신문 논설기자로 활동 했던것은 몰랐었네요
댓글은
감사합니다....라는 글은 달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문제에 대한 난이도, 자료 등에 대한 느낌이나
개인적인 문제풀이 접근법 등을 달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유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댓글 단 분은 등업 안됩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랍니다~ 역시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네요
신채호 안창호 등등 시대별 사람이 어떤 업적을가지고
상관관계가 어떤지 보여지는 표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훌륭한 설명이네요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오답을 이런식으로 정리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물에 대한 문제는 너무 어려운데 이렇게 설명을상세히 적어 있어서 공부에많은 도움이 되고 정리하는 방법을 한수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