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과녁>
“그는 사랑을 받기만 했지 주지를 못했어.”
그는 어쨌거나 사랑과 밀접하다. 그가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든, 사랑을 받기만 한 사람이었든, 그 인생의 가운데에는 사랑이 있고 사랑이 그의 인생을 이끌었다.
어릴 적에 부모를 떠나 부자의 길을 따라 자라나고 타고난 사업수완을 발휘해 자신만의 왕국을 지녔다 말할 수 있을 만한 엄청난 부와 권세를 구축했다. 권세의 최절정에서 그는 새 사랑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많은 것을 잃게는다. 그럼에도 그의 재력은 여전히 막강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새 사랑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아니, 새 사랑에 자기 자신을 투영시켜 그녀로써 자신을 향한 끔찍한 사랑을 쌓아올렸다.
그런 잘못된 사랑이 얼마를 가겠나. 두 번째 부인 수잔은 케인에게 외친다.
“지금까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것 중 당신이 들어준 게 뭐죠? 이 모든 건 당신을 위한 거예요.”
그 외침은 케인의 삶 전체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가 부모님을 떠나 부자로 길러진 그 순간부터 비틀리고 왜곡되어오기만 했던 사랑의 방식을 후려친 날선 도끼였다.
그는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었다. 일찍 부모님과 떨어진 것은 제쳐두고서라도 오직 돈만을, 오직 사업의 팽창만을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고 매 순간 순간 선택하는 삶의 길에 그렇게나 일찍 들어선다면 누구라도 자신이 진정 원해서 미친 듯 좇아오던 것이 자신이 서 있는 곳과 완전히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끝 모를 허망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케인에게 그것은 사랑이었고 영화의 마지막 그가 하인들을 제치고 깊은 비애에 빠져 터벅터벅 제나드를 빠져나오는 장면은 바로 그 허(虛)를 보여준다.
그가 진실한 사랑을 할 줄 몰랐던 이유는 자라온 환경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고,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던 이유는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케인은 그가 하는 모든 일과 만나는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향한 사랑을 완고하게 구축시켜나갔다. 케인의 모든 행위가 나왔고 향하는 단 하나의 이유와 목적은 나 자신이었다.
그는 도대체 어쩌다가, 무엇이 그를 그러한 허탈로 내몬 것인가.
사람이 없었다. 르뢰드, 수잔, 그런 사람들이 있었더라도 너무 늦었다. 그를 사업가에게 맡겨놓고 깊게 신경 쓰지 않은 부모의 잘못이고, 그의 부와 명예가 상승하는 것을 보며 마냥 박수치고 치켜세우는 거짓된 친구들의 잘못이다.
나는 내가 만들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