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신 것은 알다시피
인류의 교화를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의식을 깨서 우주 자연의 법리대로 사는 것을
목적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그때 당시 인도 전역에는 깨달음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문들이 있었지만 정작
주변에 깨달은 사람을 본 적도 없었고 경전도
없었기에 오로지 몸을 혹사하는 힘든 수행을
통해 초인이 되거나, 극한의 경지를 지나가면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것에만 많은
노력을 쏟았지 인류의 교화나 사람의 의식을
깨는 부분에는 시도한 사람도, 그럴만한 역량을
가진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 시대 풍조에 따라
신적인 모습을 싹 감추고 인간적인 면을 보이며
6년 간 극한의 설산 고행을 거치는, 어떻게 보면
한 편의 연극을 하신 것과 같습니다.
사실은 원래 깨달은 분으로 오셨으니 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믿고 따를 테니
하셨던 것 뿐입니다.
(마침, 오늘 올라온 부처님 말씀 글에 설산 고행의
진실에 관한 내용이 올라와 있으니 참고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불교 용어들도 그때 다 나온 것들
입니다. 공사상, 오온, 십이인연법, 중도사상,
팔정도 등 사람들을 가르치고 의식을 깨트리기
위해 새로운 사상을 정립해 가르치셨던 겁니다.
부처님 말씀의 변천사에 대해선 일전에 얘기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천년 주기로 정법 상법 말법으로 부처님의 법이
변해가는데 마지막 말법 시대에(그때로부터
3,000년 뒤) 미륵부처님이 다시 오시는데 그분은
원래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분의 법으로 가르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말법 시대로서, 예언대로 이 동방의 나라에
사람의 몸을 받아 미래에 오실 미륵부처님으로
이미 오셨다 가셨지만 어느 종파든 그 사실을
아는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부처님은 오셔서 불경에 없는
새로운 법으로 저희를 가르쳐주시고 가셨습니다.
저 부처님 말씀 책과 사자성어 책에는 사람의
도리와 해야 할 바가 다 들어가 있으며 유불선을
비롯한 모든 인류의 진리의 말씀이 다 함축되어
들어있으므로 그 안에 들어있는 참 진리
(물고기 10마리)를 찾기 위해서 읽고 읽고 또
읽다 보면 자기의식이 깨지게 되면서 행간 속에
숨어있는 진리까지도 다 찾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부처님도 저희들에게 저 책을 주시면서
말씀하시길 “내가 저 책을 한두 번 읽어서 될 거
같으면 읽으라고도 않는다. 저 책은 평생을 두고
계속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말씀 책 파장의 힘에 의해
의식이 깨지고 마음이 변하면서 내가 바뀌게
되는데 그것이 곧 깨우침인 것입니다.
따라서 의식과 마음이 바뀌는 일이 우선 선행이
되어야 내게 깨우침이 오는 것이고, 깨우침이
와야 내 행동이 내 깨우침대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공자만큼 온갖 복잡다단한 시대적 변화를
겪은 사람도 드문데 그런 와중에 각국의 제후들이
공자의 명성을 익히 알아 서로 모셔 오려고 각축전을
벌이니 그 태세며 처세술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까딱하다간 목숨줄이 왔다 갔다 하는
난세에 익힌 처세법을 하나하나 다 적어 기록한
내용이 사서삼경입니다. 거기엔 공자의 모든 경험과
사상, 철학이 다 녹아있는 것입니다.
그걸 예전 선비들은 허구한 날 읽고 외워 관료의
등용문이었던 과거급제와 자신의 입신양명의
지름길로 삼았던 것입니다.
자꾸 읽어서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키는 것
그게 곧 공부입니다.
사서삼경의 핵심은 ‘착하게 올바르게 살라’ 입니다.
요즘 시대엔 꼭 학문이나 책에서만 아니라
드라마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권선징악, 인과응보,
사필귀정과 같은 여러 깨우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공부라고
여겨야 됩니다. 내 행동 하나하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다 공부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그 전제조건이 뭐냐면
내 깨우침이 먼저 와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무엇을 보든 거기에서 공부할 거리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깨우쳐서 뭔가를 알기 시작하고,
부처님 하느님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모습 좋은 행동에서도, 아닌 말 아닌
행동에서도 모두 나를 가르치는 깨우침을
찾고 얻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