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8일 하늘언어교회
본문: 마태복음 14장 15절-21절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제목: 무한능력과 총체적 능력
이것은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물고기 두마리와 빵 5개로 5000명을 먹이셨다는 것이 너무 커다란 사건이어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도시락을 내놓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석을 하면 머리로 납득되기는 쉽고 편해집니다. 그런데 마치 찐빵에서 앙꼬를 빼버린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종교란 과학이나 수학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학과 수학을 넘어서는 초과학적 세계를 다룬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갈망하는 것이 인간의 종교본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초월에 대한 갈망을 묵살하고 합리적인 수준으로 격하시킨다면 그건 종교가 아니고 과학이나 상식이 되어버리겠죠?
물론 과학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아주 소중합니다. 종교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과 종교 모두를 은혜로 받아야 하나님의 풍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한자이십니다. 그래서 어떠한 제한이나 제약도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무한자이십니다. 유에서 유를 만드는 것은 유한자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은 무한자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게 하려면 무에서 유를 있게 하는 무한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무한한 능력을 총동원하셨다는 것을 저자들은 부각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무한하신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에 우리 안에 무한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는 유한 속의 무한이 있습니다. 이것을 총체적인 능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능력을 총체적으로 사용해서 하나님나라를 지향하고 구현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의 우리들은 본인의 신앙생활이나 누군가를 복음화시키기 위해 총체적인 능력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머리로만 알고 말이 앞설 뿐 실천적인 삶을 살기 어렵습니다.
전도할 때도 말로만 예수님 믿으라고 하고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이 말로만 복음을 전도 받았기에 총체적으로 복음을 믿고 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말이라면 이 세상 누구보다 권위가 있었기에 말이 전부라면 굳이 오병이어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구원을 주시기 위해 모든 선하고 좋은 자원들이 다 필요함을 아셨기에 무한한 능력을 동원하셔서 인간의 총체적인 구원을 위해 온몸을 다 바치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무한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가진 자원을 총동원해서 기적을 지향하는 복음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총체성을 적용하면 수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을 입맛대로만 읽지 않고 66권 전체를 균형 있게 읽는 일, 말로만 전도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도와주고 친구로서 교제하며 전인격적으로 전도하는 일, 머리로만 믿지 않고 영과 혼과 육을 총동원해서 믿음의 삶을 실천하는 일 등이 총체적인 신앙의 본보기 입니다.
유한자가 총체적인 능력을 동원한다고 해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현대 교회들이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이유는 말뿐인 신앙으로 고착화되고 기복주의, 반지성주의, 배금주의 등으로 인해 가진 능력마저 맥을 못 추도록 신앙이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체성을 깨뜨려서 조각조각 갈라놓은 것을 뭐라고 합니까? 그걸 바로 우상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손으로 만든 우상은 무한을 파편화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 크게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입맛대로 해석하고 부분만 읽고 가르친다면 성경을 우상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신약은 많이 읽는데 구약을 안 읽거나 모세오경과 역사서는 잘 읽는데 지혜문학은 안 읽는 식으로 선호하는 부분만 고집한다면 하나님의 입을 한쪽만 용납하고 나머지는 막아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무한자를 파편화해서 유한자로 만드는 것이 우상이라면 유한자를 파편화해서 더 심각한 유한자로 만드는 것은 인간을 인위적으로 장애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웃사랑과 원수 사랑은 사랑의 총체성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원수가 히틀러같이 거창한 원수가 아니라 자기 이웃이나 가족을 사랑하지 않고 무관심하면 그것이 원수인 것이죠. 우리가 사랑해야 할 원수는 그냥 이웃이고 가족인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사랑을 하나님이 주신 빛이라고 볼 때 우리는 그것을 반사하거나 투명체가 되어서 이웃에게 비추기만 하면 주변이 한결 밝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암흑이 되어 반사도 못하고 통과도 못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빛과 차단시킨 상태입니다.
즉 이웃이나 원수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빛을 거부해서 자기 자신에게도 사랑의 에너지가 와닿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웃사랑과 원수사랑은 우리 자신을 온전하게 사랑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만큼 이웃과 원수를 사랑할 능력이 주어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본인이 아직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총체성을 삶의 모든 영역에 확장할수록 우리의 삶이 풍요해지고 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덕성에 총체성을 적용한다면 오직 믿음만 말할 것이 아니라 믿음, 소망, 사랑, 감사, 온유, 지혜, 자선, 인내, 자비, 중용, 관용 등 성경에서 반복해서 가르쳐주는 모든 덕을 한 덩어리로 통합해 나가야 합니다.
총체성을 전인격에 적용한다면 입과 육체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영과 혼과 육을 통합한 신앙을 추구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편재성 즉 무소부재하심을 신앙에 적용하면 교회에서만 거룩하고 경건할 것이 아니라 모든 장소에서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고 실현해 가야 합니다.
대형교회에만 다닐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작은 교회에도 다니고 우리 교회같은 가정 교회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성원을 보내주셔야 합니다.
총체성을 건강에 적용한다면 식사, 운동, 수면, 심리, 관계 등 모든 것을 통합한 건강법을 실천해야 합니다.
총체성을 식생활에 적용한다면 영양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손실된 정크푸드를 멀리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있는 그대로의 자연식을 섭취해야 몸이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동안 파편화되고 일그러지고 찌그러졌던 신앙과 삶 전반을 총체화하고 통합화하고 무한을 향해 회복해 간다면 문자 그대로의 기적은 아닐지라도 기적에 가까운 회복과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런 기쁨이나 행복을 못 느끼는 채로 시계추처럼 교회와 집을 오가던 신앙이 살아 있는 참신앙으로 회복되어 기쁨과 행복이 살아나고 사랑의 에너지가 차디찬 가슴을 녹이면서 삶의 주변을 훈훈하게 덥혀주는 것을 시나브로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차별하던 사람들을 더 이상 무관심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소중한 이웃으로 사랑스럽게 보는 눈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교회소식
1. 지난 12월 25일 성탄절에 새람교회에서 드린 연합 예배를 성황리에 잘 마쳤습니다.
김인종목사님께서 예배 순서와 메시지 제가 보내드린 대표기도문까지 완벽하게 파일로 만들어 주셔서 통역자 없이 읽으면서 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배려해 주셨습니다.
윷놀이는 예배 후에 4팀으로 나눠서 두팀씩 대결을 했는데 저희 팀이 4등을 했습니다.
4등도 선물을 준비해 주셨는데 다른 팀들이 선물을 많이 양보해주셔서 결국 1등한 기분으로 선물을 싸들고 개선장군처럼 돌아왔습니다.
자칫 외롭게 혼자 지내기 쉬운 성탄절에 저희공동체 식구들을 초대해주셔서 은혜롭고 흥겨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신 김목사님과 새람교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 경품은 매주 두분씩 추첨하고 있습니다. 추첨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 일괄해서 통보해드리겠습니다.
3. 오늘 예배 후에 송년 윷놀이를 합니다.
일반적으로 윷가락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용 윷놀이 젓가락을 뽑아서 하는 윷놀이입니다. 그 외에는 일반 윷놀이와 같습니다.
두 팀으로 나눠서 겨루고 순위에 따라 준비된 경품을 나누어 드립니다.
4. 손벗과 손벗교회
손으로 통성명을 하고 소통과 교제를 나누는 사람을 손벗(손친)이라 합니다.
새람교회와 같이 저희 공동체와 손을 잡고 교류하는 교회를 손벗(손친)교회라고 합니다.
새해에는 손벗과 손벗교회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손벗은 악수하기, 손에다 이름 쓰기, 하늘언어공동체에서 다양한 체험하기 등을 하시면 됩니다.
손벗교회가 되고자하는 교회는 다음의 3가지를 통해 교류해주시면 됩니다.
1) 저를 평신도로서 초대해주십시오.
새람교회처럼 주보를 문서파일로 만드셔서 카톡으로 보내시거나 usb에 담아주시면 예배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2) 목회자로서 한번 초청해주십시오.
1)을 통해 동 교회와 저의 목회 방향이 과히 다르지 않다면 저에게 설교할 기회를 한번 주시기 바랍니다.
3) 친구로서 교제
세번째로는 저희 공동체에 오셔서 예배에 참석해주시고 다양한 촉각문화를 체험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세 가지를 다 하시면 가장 좋지만 한가지만 해주셔도 손벗교회로서 충분합니다.
손벗교회는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거나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는 교회를 대상으로 할 예정입니다.
이런 이벤트가 필요한 이유는 일반적인 교회들이 아직 감각장애인들을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있는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감각장애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예수님을 보다 깊이 영접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계획은 사람이 생각하지만 인도하시는 분은 무한자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유한한 자기의 계획보다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계획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