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기쁨은 가치 있는 삶이다
김 정 오
수필가, 문학평론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가장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 그것은 진정한「기쁨」을 느끼는 삶이다. 그 기준을 동양에서는 유교 사상에서 찾았고, 서양에서는 기독교 사상에서 찾았다. 동양에서는 맹자의 진심상편 중(盡心上編中)에서 기쁨의 기준을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 번 째 기쁨은 부모형제 무고함이며, 두 번 째 기쁨은 하늘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 세 번 째 기쁨은 천하에 영제를 얻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창조주의 자녀라는 기독교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모두가 창조주의 자식이라는 사상이다. 「성덕 바우만」의 예를 본다.「성덕」은 1974년 한국에서 미혼모 아들로 태어났다. 4살 때 미국인「스티브 브라이언」부부에게 입양되어 갔다. 거기서 친자식으로 인정받아 성장하여,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스티브 브라이언 부부와 그 가족들은 성덕을 살려 달라고 눈물로 간곡히 호소했다. 그 소식이 TV를 타고 온 누리(全世界)에 알려졌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골수 검사를 받았다. 그때, 전역을 앞둔 대한민국 육군 병장 서한국의 골수가 성덕의 것과 같았다. 서한국의 골수를 이식 받은 성덕은 살아났다.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모습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고, 모두가 함께「가치 있는 기쁨」을 나누었다.
성경의 시편과 에레미아서와 신약에서도 기쁜 소식을 알리는 4복음서가 맨 앞에 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매를 맞아 죽음에 이르렀다. 한 제사장이 그를 보고 그냥 지나갔다. 레위인도 그랬다. 사마리아 사람이 보고 상처를 싸매고, 주막으로 데려갔다.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 주고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아주겠다고 했다”.(눅10:30~10:37)
이 가운데 누가 진정한 이웃이며,「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가! 가치 있는 삶은 기쁨이 함께한다. 「기쁨」은 욕심을 멀리한 열매요,「슬픔」은 재산을 탐내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네 마음을 다하여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다.”(마22:39)그것은 곧 이웃과 함께「기쁨」을 나누라는 말씀이다.
러시아의 작가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가 귀족들의 위선적인 삶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그리고 ‘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했다. 그때, 한 사람이 말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최고로 가치 있는 삶이다.’ 그 말을 듣고, 철학, 역사, 신학, 성경 등을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복음서의 말씀을 삶에서 적용할 수 있는 행동강령으로 정리하여 책으로 펴냈다.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살아가고 있다. 이웃을 구체적으로 돌보는 것이 사랑이다. 그것을 실현해야 제대로 사람구실을 한다는 내용으로 된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이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둘째는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셋째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사랑은 인류의 이상을 가장 구체적인 행위로 표현하는 것이다. ‘지금 하는 말과 행동이 다음(미래) 세상의 씨앗이 된다.’ 지금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세계 최고의 갑부들인 「록펠러, 「빌 게이츠」, 「래리 엘리슨」, 「워런버핏」, 에너지 재벌 「T. 분 피켄스」, CNN 창업자 「테드 터너」, M.D. 앤더슨 재단, 영화 감독 「조지 루카스」,「배리 딜러」 등 수많은 재벌들이 천문학적인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어「가치 있는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영국의 찰스 황태자는 귀족들과 함께 영지와 성, 영국 최고의 역사유적으로 꼽히는 데본셔 공작 가문의 차스월쓰 성과 지니고 있던 귀한 예술품 등을 모두 사회에 돌려주어「가치 있는 기쁨」을 나누고 있다.
남아메리카 우루과이 대통령「호세 무히까」는 대통령 궁을 노숙자 쉼터로 내주었다. 그리고 33년째 살고 있는 전통가옥에서 집무를 보았다. 경호원은 2명뿐. 자동차도 28년째 타고 다니는 폭스바겐 비틀이다. 월급 1,300 만원 가운데 90%를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 기금으로 내놓았다. 집권이후 매년 5.5%대의 경제 성장률을 올려 국민소득은 15,000불 이상으로 올렸다. 그렇게 임기를 마친 그는 국민 70여%의 지지를 받으면서 2015년 2월 임기를 마치고 보통사람으로 돌아왔다.
그는 "작게 가진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항상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눌수록 기쁨은 커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가치 있는 기쁨」을 모른다고 했다.「데일 카네기」도 “나누어 주는 사람이 풍요로운 사람이며,「가치 있는 기쁨」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에릭프롬」도「가치 있는 기쁨」이란 “이웃을 돕는 사람의 것이라고 했다.「스피노자」도 ”선한 삶이란 베푸는 삶”이라고 했다. 또「칼라일」은 ”이름을 알리지 않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땅속으로 숨어 흐르면서 땅을 비옥하게 하는 물길과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재산을 나누어 준 분들이 많다. 영조 때「박문수」는 흉년이 들면 굶주린 백성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전라남도 구례에는 중요 민속자료 제8호인 운조루(雲鳥樓)가 있다. 조선시대 선비의 품격을 드러내는 이 건물은 99칸(현존 73칸)으로<하늘에서 금가락지가 떨어진 곳>이라는 뜻을 가진 <금환락지(金環落地)>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집은 조선 영조 52년(1776년)에 낙안 군수 「류이주」(1726-1797)가 지은 집으로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다. 운조루는 <새처럼 구름 속에 사는 집>, 또는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도연명의 칠언율시 귀거래사에서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이 날다가 둥우리로 돌아오네(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라는 시에서 따온 것이다.
이 집 사랑채 밖에는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뒤주가 있다. 거기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누구나 쌀독을 열고 가져갈 수 있다)라고 씌어있다. 흉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이 누구나 쌀을 퍼갈 수 있다는 뜻이다.
또 백사「이항복」(1556~1618)의 11세손이며, 조선말 제1의 갑부였던 「이회영」 가문 6형제는 1911년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전 재산(당시 40만 냥, 지금 1천억 원에 가까운)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바쳤다. 만주에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온가족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목숨까지 바쳤다.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온 분은 다섯째 「이시영」(초대 부통령)과 몇 명의 가족뿐이었다.
또 300년간 부를 누렸던 경주「최부자」도 흉년이 들면 창고를 열고 누구나 와서 곡식을 가져 가도록했다. 그 마지막 후손 「최준」도 나라가 망하자 많은 재산을 「백산 안희재」를 통해 상해 임시정부 독립기금으로 바쳤다. 광복이 되자 나머지 전 재산을「영남대학교 」재단에 모두 헌납했다.
또 제주도가 낳은 「김만덕」(1739~1812)이 있다. 양가집 딸이었으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기녀의 집에서 살다가 관기가 되었다. 훗날 장사를 하여 많은 부를 축적했다. 정조 19년 을묘(1795)년에 제주도에 큰 흉년이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갔다. 왕이 구제하기를 명했으나 바닷길 800리를 바람이 막았다. 이 때, 「만덕」이 천금을 희사하여 쌀을 사들였다.
「만덕」은 십분의 일을 친족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관가에 보내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백성들이 만덕의 은혜를 크게 칭송하였다. 제주 목사는 그 일을 조정에 아뢰었다. 왕이 기특하게 여기고 “「만덕」에게 소원을 물어 들어주라고” 분부했다.『정조실록』(정조 20년(1796년) 11월 25일)
「채제공」(1720~1799)은 그의 문집 「번암집」에서 만덕의 행적을 후세에 알렸다. 정약용도 그녀를 만났다. 박제가는 “넓은 천지 바다밖에는 못나가니 /넓다한들 뉘라서 시집장가 끝내랴 /제주라 섬나라 이웃은 일본 /사또는 천년세월에 귤만 바쳐왔네 /귤밭 깊은 숲속에 태어난 여자의 몸 /의기는 드높아 주린 백성 없었네” 라는 시를 썼다.
또 당대의 명사「이가환」도 “우레처럼 왔다가 고니처럼 날아가니/ 높은 풍모 오래 머물러 세상 깨끗하게 하오/ 인생 이처럼 이름 우뚝 세우니/ 예전 아름다운 고사를 어찌 부러워하리”. -금대 시문 초, 송 만덕 귀탐라- 라는 시로 만덕을 칭송했다.
역사학자들은 말했다. “ 「김만덕」이 아니었다면 제주도민 가운데 3/1 만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김만덕」은「가치 있는 기쁨」을 함께 나눈 것이다.
또 독립 운동가이며, 유한양행을 창업했던 「유일한」(1895∼1971) 박사 이야기이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세브란스 의전 「에비슨」학장으로부터 연희전문학교 교수와 부인 호미리」 여사는 소아과 과장으로 초빙 받았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현실은 대학 교수보다 국민의 건강이 먼저라는 사명감을 일게 했다. 제약회사 ‘유한양행’을 세우게 된 이유이다.
유일한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때,「펄벅」(1892~1973)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그녀는 1938년 장편소설 대지로「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최고 여류 소설가이다. 그녀는 한국에 와서 혼혈아들과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국제적 입양기관「웰컴 하우스」를 세웠다.
또 피부색이 다른 7명의 어린이를 자신의 양자로 입양한 후 700만 달러를 기부하여 '「펄벅재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경기도 부천시(현 부천시 소사구 심곡동 옛 유한양행 자리)에「희망원」을 세웠다.
그 1년 뒤 전 재산을 헌납하고「펄벅재단」한국지부를 만들었다. 그리고「박진주(朴眞珠)」라는 한국식 이름을 쓰면서 10년간이나 조용히 한국의 어머니들에게 직업훈련을 시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1963년 한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장편소설「살아있는 갈대」를 출간했다. 그 책 서문에 "한국은 고귀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썼다. 또 1968년에는 한국의 혼혈아동을 다룬 소설 「새해」를 출간했다.「유일한」박사가 아니었다면「펄벅」이 우리나라에 와서「가치 있는 기쁨」을 나누어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유일한」박사는「유한양행」을 모범 기업으로 키우고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세웠다. 그리고 전문 경영인에게 운영권을 맡기고 물러났다. 그리고 “눈으로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귀로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머리로 남의 기쁨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 훌륭한 사람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1971년 3월 세상을 떠났다.
후손들은「유일한」박사의 유언에 따라 1조원이 넘는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고 단 한사람도 유한양행과 관계를 맺지 않았다.「유한 대학교」앞 서울에서 부천을 거쳐 인천으로 가는 국도 이름이「유한로」이다.「가치 있는 기쁨」을 도로 이름과 함께 남긴 것이다.
또 「백금옥」 여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더 이상 배우지 못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파출부와 과일행상 등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땅을 샀다. 땅값이 오르자 전 재산(서울 양천구 1만평이 넘는 땅)을 나라에 바치고「금옥여자 중고등학교」를 세웠다. 그녀는 일찍이 내 삶에서 이렇게「가치 있는 기쁨」을 맛 본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선한목자병원 이창우 원장이 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는 책에서 말했다. “그는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슈바이처 전기를 읽고 ...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수련을 통해, 선교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내(김정신)를 만나고, 미국에 유학하여 인공관절 전문의사가 되었다. 2001년에 선한목자병원 문을 열고, 선교병원을 위해서 의대 교수직을 거절했다. 아내와 함께 전 세계의 가난하고 아픈 영혼들을 찾아갔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 2004년에 ‘굳세퍼드(Good Shepherd)제단’을 설립, 13개(라오스, 파키스탄, 네팔, 미얀마, 필리핀, 아이티...) 나라의 14개 지역에서 무료진료소와 현지 의료인 교육, 의료선교사를 파송했다. 국내에서도 저소득층 노인을 위해 진료봉사와 선교사들의 무료수술을 돕고 있다.
2015년 1월 의정부시 10층짜리 아파트에서 큰 불이 났다. 간판 일을 하는「이승선」(51)이 밧줄을 메고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가 10여명의 생명을 살려냈다. 그의 살신성인 정신에 감동 받은 독지가가 3천 만 원의 성금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돈을 받지 않았다. 여기에 0을 하나 더한 3억 원을 주어도 받지 않겠다. "한 시민으로서 같은 시민을 도왔다는 이유로 돈을 받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2018년 10월 홍천 다세대 주택 4층에서 큰불이 났다. 그때, 119 구급대원 「김인수」,「박동원」외 4명의 소방관들이 머리에 썼던 철모가 1천도가 넘는 불길에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운 불속으로 들어가 3살짜리 아이를 구해냈다. 그들은 크게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그들은 그날까지 총 3만 4천회를 출동하여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이런 의인들이「가치 있는 기쁨」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이웃이다.
김정오(金政吾)
수필가, 문학평론가, 숭실대학교 교육학 박사, 경기대, 중국연변대학교 겸임교수, 러시아 국립극동연방대학교 교환교수역임, 한겨레역사문학 연구회장, 지구문학 편집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역), 현 자문위원, 국제 펜클럽한국본부 이사(역), 한국일보수필공모심사위원장(역),안중근의사 기념관 홍보대사, 왕인박사 사료조사 위원장, 수필집: 빈 가슴을 적시는 단비처럼,- 그 깊은 한의 강물이여,- 양처기질 악처기질,- 한이여 천년의 한이여,-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푸른솔 이야기-다석 유영모의 사상- (외 논저 및 평론 다수) 소청문학상, 크리스천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 대상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