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는 서울 도심 한 복판에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성도 좋습니다. 하지만 궁궐과는 달리 선뜻 대문을 들어서기가 쉽지를 않습니다. 게다가 종묘제례다, 종묘제례악이다 하면 더더욱 머리가 띵하여 집니다.
온통 알아들을 수 없는 한자 말투성이로, 악공들이 연주하는 제례악도 지루하게만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례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 불편한 마음을 굳이 가질 건 없다고 봅니다. 조선 왕조가 끝까지 지키고자 하였던 전통을 조금은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개략적인 내용만 알면 족하다 생각합니다.
종묘제례는 종묘에서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입니다. 대한제국 때까지 봉행하였던 제례의식은 일제강점기에 일시 중단되었다가, 1969년부터 종묘제례보존회(전주이씨 대동종약원)가 행사를 주관하며 매년 봄가을 두 차례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고,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세계무형문화유산임을 알아두면 좋겠지요.
경복궁에서 출발하여 종묘까지 이동하는 어가행렬로 시작합니다.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에 봉행하는 춘향대제는 종묘대제라는 이름으로 2006년부터 국제문화행사로 치러지고 있지요.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지내는 추향대제는 춘향대제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종친 중심의 황실 제향으로 봉행됩니다.
현재의 제례는 대한제국의 제도를 따라 황제국의 양식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제향을 봉행하기 위해 임금이 종묘에 이르러 재계하는 절차인 어가행렬과 제례악, 일무를 포함한 제례봉행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종묘제례악과 일무(佾舞)는 세종 때 그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고려조로부터 전승된 음악은 중국의 것으로, 세종은 이를 조상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조상들이 살아 있을 때는 조선 음악을 듣다가 죽어서 제사를 받을 때에는 중국 음악을 듣는 게 사리에 맞지 않다고 보았던 것이지요.
고려로부터 전래된 청산별곡이나 서경별곡 같은 고려 가요 선율을 이용해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였는데,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현 종묘제례악의 모태가 된 보태평(保太平) 11곡과 정대업(定大業) 11곡입니다. 보태평은 조상들의 문덕(文德)을 기리고, 정대업은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내용이라고 하네요. 종묘제례에서는 이 두 모음곡이 연주됩니다.
종묘제례악은 종묘제례 의식에 맞추어 기악(樂), 노래(歌), 춤(舞)을 행하는 종합예술입니다. 악기연주에 맞추어 선왕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며 열과 행으로 벌려 서서 추는 춤인 일무(佾舞)는 가히 유교문화의 향기를 전하는 종묘제례의 하이라이트라 하겠습니다.
제향 의식뿐 아니라 제례악과 일무 등 유형과 무형의 세계유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종묘제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종합적인 의례입니다. 중국의 태묘나 일본의 국가 사당에서는 더 이상의 제례가 행해지지 않고 있다고 하여서인지 외국인들도 꽤 많이 찾고 있습니다. 우리 땅에서 우리의 전통을 재현하는 종묘제례에 한 번은 관심 있게 현장에서 지켜보심이 어떠하실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