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 괴석의 전시장, 수락산
물개바위, 배낭바위, 철모바위, 하강바위 등 기기묘묘한 바위들 즐비
수도권 산 중에서 기암괴석이 가장 많은 산은 어디일까?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수락산이 단연 으뜸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락산을 비롯,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청계산 등 수도권 근교산행은 그동안 수없이 올랐지만 오를 때마다 탄성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세계 어느 나라 수도에 우리나라처럼 사방이 명산으로 둘러쌓인 곳이 있을까? 스위스 등 유럽 몇 나라는 3천 미터 이상의 고봉들이 수도권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기는 하지만 이곳들은 우리나라처럼 1시간 내외 거리에서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생활등산’ 코스의 산들은 아니다.
수락산은 서울시내 쪽에서 갈 경우 주로 지하철 7호선을 탄다. 수락산 오르는 코스 역시 매우 다양하다. 수락산역에서 내리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마들역, 장암역 등에서도 오를 수 있으며, 4호선 당고개역에서도 코스가 있다.
수락산 등산코스는 대표적으로 총 9개 코스를 들 수 있다. 제1코스는 진달래능선-매월정-깔딱고개-정상, 제2코스는 개울골-매월정-깔딱고개-정상, 제3코스는 수락골-새광장-깔딱고개-정상, 제4코스는 노원골-도솔봉-정상, 제5코스는 상계14단지-귀임봉-도솔봉-정상, 제6코스는 당고개그린공원-도솔봉-정상, 제7코스는 학림사-도솔봉-정상, 제8코스는 동막골-곰바위-도솔봉-정상, 제9코스는 덕릉고개-도솔봉-정상 등이다. 허지만 각 코스마다 샛길이나 가지길이 뻗어 있어 코스의 수를 일일이 헤아리기가 어렵다. 이중 3,4,5,8코스가 비교적 대표적인 코스이다.
필자는 오늘은 이중 제3코스로 정상에 올랐다. 수락산역 1번 출구에서 나와 직진하다 보면 시립수락양로원, 염불사 방향 900m 이정표가 보인다. 만남의 광장 우측은 귀임봉 가는 길. 이곳에서부터 수락산 정상까지는 약 3km 거리이다. 만남의 광장에서 500m 가면 염불사 갈림길. 우측은 염불사 방향, 등산로는 좌측 방향이다.
벽운교 다리를 건너면 벽운산악회 광장, 이곳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배드민턴장을 비롯, 각종 체육시설이 있고 , 산 속 공터치곤 운동장도 제법 넓은 편이다. 백운산악회를 지나면 마지막 매점, 그리고 신선교를 건너 300m쯤 숲길을 오르면 물개바위를 만난다. 우측 산비탈에 우뚝 솟아있는 물개바위는 일부러 만들어 세운 조각품 같다. 모양이 물개 생김새라 붙여진 이름이다.
물개바위에서 20분 쯤 가면 새광장에 이른다. 새광장은 광장 가운데에 나무로 만든 새집이 세워져 있어 붙여진 이름. 새광장은 수락산역으로부터 1.9km, 정상까지는 1.3km로 중간 쯤에 위치해 있으며, 사실상 산책숲길의 끝에 해당한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새광장 우측은 절터샘을 거쳐 도솔봉 쪽으로 오르는 길이며, 좌측은 깔딱고개로 가는 코스이다. 수락산 관리사무소에서는 소위 '초록숲길'이라는 이름으로 제3코스와 제4코스가 연계된 주산책로를 별도로 지정하였다. 초록숲길은 덕성여대생활관-새광장-깔딱고개-정상-하강바위-도솔봉-학림사갈림길-노원골갈림길-노원골관리사무소에 이르는 총 7.1km 구간이며, 이중 덕성여대생활관-새광장 간의 1.7km를 초록숲길의 핵심구간으로 추천하고 있다.
수락산 지역은 단풍이 많이 시들었지만 일부구간의 경우 색이 아직 싱그러운 곳도 있다. 붉은 단풍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새광장을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가파른 돌계단길을 10여분 오르면 깔딱고갯마루. 직진 방향은 장암역으로 내려가는 길, 좌측은 매월정-개울골 방향, 정상은 우측 암릉이다.
고갯마루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우측 바위비탈길을 오른다. 바위길이 가파르다. 수락산은 정상 주변이 거대한 화강암 바위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릉 구간은 대부분 쇠줄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발 아래에는 디딤쇠가 박혀있어 쇠줄을 잡고 오르면 위험하지는 않다.
암릉 첫구간을 오르면 시야가 트이면서 지나온 길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정면으로 개울골을 지나 진달래능선에서 오르는 매월정 봉우리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수락골, 우측으로는 장암역 주변이 내려다 보인다. 단풍이 많이 시든 편이지만 산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 울긋불긋한 색깔이 온산을 덮고 있어 가을산행의 즐거움을 보여준다.
바위비탈에 이어 목제계단길. 지그자그의 계단을 한참 오르면 독수리바위 구간이다.
독수리바위는 테라스 형태의 마당바위로 바위 코너에는 소나무 두그루가 꽃처럼 피어 있다. 마당바위 둘레는 까마득한 절벽. 안전을 위해 로프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마당바위 난간에 서면 정면으로 도봉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장봉, 자운봉은 물론 포대능선도 선명하게 보인다.
독수리바위에서부터 배낭바위를 거쳐 철모바위에 이르는 이곳 암릉구간은 매우 가파르지만 수락산 능선 중에서도 조망이 가장 좋은 능선이다. 좌측으로 수락산 정상 암봉이 까마득하게 보이고, 우측으로는 코키리바위, 종바위, 하강바위 및 도솔봉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독수리바위에서 조금 더 오르면 젖꼭지바위를 만난다. 암벽 위에 돌출된 두개의 바위가 마치 엄마의 젖꼭지처럼 부드러워 보인다. 시야가 더욱 넓어진다. 좌우상하 조망이 환상적이다.
카메라 망원렌즈의 줌을 당겨본다. 수락산 정상 암봉이 우람하기 그지없다. 겹겹히 올려진 바위봉우리들 모습이 일부러 쌓아놓은 듯 정연하다. 그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수락산 능선은 기암봉의 전시장이다. 기기묘묘한 바위형태와 암봉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다음은 배낭바위. 두개의 거대한 바위가 등에 배낭을 지듯 서로 붙어 있다. 달리 보면 숫두꺼비가 암두꺼비의 등에 올라 타 사랑을 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바닥 기반은 작은 바위와 돌 몇개. 살짝 건드리기라도 하면 곧 무너질 것 같이 아슬아슬하다. 언제부터 이런 위태로운 모습으로 서 있었을까? 몇억년? 아니면 몇천만년? 자연의 조화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느낀다.
암릉조망에 취하다 보니 어느새 정상능선이다. 정상능선에서는 제일 먼저 철모바위가 기다린다. 독일병정의 철모같은 바위 하나 거암(巨岩) 위에 앉아 있다. 산행들머리인 수락산역에서 철모바위능선까지는 3km. 이곳에서 수락산 정상 주봉까지는 불과 200m 남았다.
드디어 정상 도착. 638m의 수락산 주봉은 거대한 사각형바위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모습이다. 바위 가운데는 동굴
처럼 뚫려 있고 정상에는 태극기 휘날리고 있다. 종종 올라오는 곳이지만 올 때 마다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정상 우측 암봉 역시 스릴 만점이다. 그리 어려운 곳은 아니지만 경관이 좋아 등산을 어느 정도 해본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올라가보고싶은 유혹에 빠질 만한 바위봉우리다.
정상에는 쉬기좋은 테라스도 있다. 절벽 위 빈터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소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고 있는 등산객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정상에서 내려와 철모바위 옆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하강바위 쪽으로 내려간다. 철모바위 옆에서부터 하산길이 만만치않다. 가파른 바위계곡을 자일을 타고 내려간다. 버섯바위를 지나면 코키리바위. 암봉 정상에 작은 코키리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 같은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이 암봉 역시 누가 일부러 바위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 바위봉우리가 정연하게 솟아 있다. 봉우리 중간에 종모양의 바위도 보인다.
코키리바위 아래 우측 테라스는 하강바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최적의 조망처이다. 달걀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비탈에 걸려 있다. 이 바위 꼭대기에서 암벽등반가들이 자일을 타고 내려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주말에는 하강바위에서 하강연습하는 암벽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하강바위 꼭대기는 뒷쪽 남근바위 옆에서 오를 수 있는데 수직암벽을 기어올라야 하기 때문에 암벽 초보자들은 다소 위험할 수 있다.
하강바위 뒷쪽에는 남근(男根)모양의 바위도 만난다. 어찌보면 주먹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남근형태 같기도 하다. 남근바위 앞 마당바위에 서면 코키리바위와 버섯바위, 그리고 배낭바위, 철모바위, 정상 암봉 등이 차례로 시야에 들어온다.
남근바위 아래는 월출산 통천문처럼 바위문이 열려 있다. 바위문 사이로 소나무 한 그루 분재처럼 서 있다.
치마바위를 지나면 또 특이한 바위를 만난다. 그 이름은 여성바위. 여성의 성기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성스러운 계곡을 타고 내려온다.
기암봉 전시장을 차례로 둘러본 후 하산길을 재촉한다. 도솔봉 못미쳐 안부삼거리에서 우측 새광장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안부삼거리는 수락산 정상에서 800m 아래능선에 위치해 있다. 직진하면 도솔봉 쪽이다. 이곳에서 새광장까지는 900m. 가파른 계곡 숲길을 내려간다.
하산길 중간 큰바위 아래 절터샘도 보이고, 우측 산허리에 거대한 눈썹바위도 보인다. 새광장을 거쳐 수락산역 원점회귀로 오후 5시 50분에 하산 완료. 천천이 즐기면서, 놀면서 오르다보니 무려 7시간 정도 걸렸다. 정상적인 산행이라면 6시간 이내로 충분한 코스이다.
오랫만에 다시 돌아본 수락산 기암봉들. 숲이 점점 시들어가고 낙엽이 발아래 뒹굴고 있다. 산기슭 여기저기에 새순처럼 파란 잎들도 보인다. 가을이 버티는 것 같다. 이들 초록생명도 곧 뒤따라 낙엽이 되겠지.
세월이 자나도 변하지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락산의 기암봉들, 그리고 계절따라 끊임없이 지고 다시 태어나는 생명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연의 오묘함과 신비로움이 더욱 새삼스러워지는 건 왠 일일까. 서울 근교에 이처럼 멋진 산들이 있다는 건 수도권 주민들에게는 크나큰 자랑이요 행운이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