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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한'은 '一'이요, '大'이요, 또 '正'이다. 그리하여 첫째로 한글은 바른 글(正音)이니, 모든 것이 법에 맞도록 整理되어야 할 것이요; 다음에 한글은 큰 글이니, 사내나 계집이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어른이나, 어린이나, 貴한 사람이나, 賤한 사람이나, 다 한가지로 이 글을 알아야 하며, 써야 할 것이요; 끝으로, 한글은 하나된 글이니, 온 누리에서 첫째가는 글이요, 또 조선에서는 누구에게든지 한가지로 쓰히어야 할 글이다. 이러하여 整理와 普及과 統一의 세 가지는 實로 한글의 根本義가 되는 것이다. (崔鉉培, 1941) |
崔鉉培 등의 이러한 의미는 본래의 뜻이 아니요, 결과적으로 지니게 된 것이거나, 후세 학자들이 인위적으로 덧붙인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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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최현배의 글에서 언듯 언듯 이상한 말을 보게 됩니다. 주시경의 천부경에 나오는 "일" 하나가 한인데, 하나요, 크다고 바르다, 밝다로 조화옹이다, 그래서 제임스 게일에계 우리민족 고유의 신칭 "하니님"이 성서의 유일신 창조주, 여호와의 이름이라고 봉헌하여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경사스러운 일로, 하나나라의 정신, 핵심, 그 생명인 "하나"를 봉헌하였습니다. 글너데 최현배의 글에는 이상하게 배달겨레, 배달말, 한배님 등, 하나님이 아닌 하느님으로 표현되는 등, 개신교도인데, 왜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하느님"이라고 하고, 한번쌕 천부경의 셋은 하나고 하나는 셋이다는 우리나라 기본 사상의 용어들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상과 문자를 알아서 갈취한 것은 아니고, 기본이 한국 토박인데, 물들어.. 물들어.. 주시경에 물들어, 개신교에 마치 개신교가 한글의 본산으로 서구 코쟁이가 언어희 본산으로 그 곳에서만이 서구 어법과 문법 그리고 새로운 사상이 성서안에 있기에 신성하고 위대한 성서의 사상을 오로지 "한글"만으로 번역하고 보급하는 것이 미개한 조선인을 개화하는 길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즉 사상의 왔다갔다가 아나고 민족 하나의 사상을 아는데, 이를 봉헌한 주시경과 같이, 개신교 성서번역글로 "한글"로 정착, 즉 훈민정음의 정음학이라는 음운학을 최현배는 한글갈[정음학]이라고 글갈로, 음운, 즉 음성음운학의 음소론으로 정음자체를 보지 않고, 글갈로, 문법과 글소리, 글자론으로 봤는데 영 훈민정음학이 아닌 서구음운형태론, 풀어쓰기로 풀어헤쳐하고는 한글갈이라는 용어에 "정음학"이라고 해서 마치, 정음이 음소라는 개념이 없는 개념없는 용어로, 보통명사로 "바른 소리"학 정도로 훈민정음의 "정음, 바른 음소"라는 것을 듣보잡 "글갈, 눈깔, 색깔의 글깔"로 갈/깔이 우리말이다, 누가 우리말 아니라고 했습니까? 제대로 된 우리말은 1문으로 1자로 한자라도 정운으로 그 기본 개념이 있은 다음에 써야 한다, 한자어로 정운으로 훈민정음으로 지금 쓰고 있듯이 한문으로 병기하거나, 혼용하지 않아도 다 이해하고 쓸 수가 있는데 한글전용만이 살 길이다, 한자전페론을 주장하면서, 왜 한문소리, 한글갈을 쓰고는 혼선을 주는가? 한문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 화려하여, 넝머주머니에 잡동사기가 다 들어간 듯한 말잔치가 엄격한 양반집 훈장처럼 내려찍고 있었다. 이러한 올곧은 정신이 아니고, 강압적인 밀어붙임은 전혀 자유로운 한글의 모습이 아니다, 韓의 자유평등 문화인의 기본 사상이 없는 유일, 창조 그리고 독선의 개신한글론은 미래 한국의 앞날에 고질적 자폐증, 개신한글만이 민족주의고,애족,애국주의자들이다, 개신한글, [ㅋ,ㅌ, ㅍ]는 본음[일본음]으로 [ㄱ, ㄷ,ㅂ]로 발음하고 표기해야한다. 카톨릭은 [가톨릭]으로 쪽발음을 쓰는 것이 개신한글이다 고로, 그렇게 해, 하란 말이야. 그게 민족주의자의 길이다. 1962년 최현배의 "기독교와 한글" 그리고 "기독교가 한글에 준 공덕"으로 찬미가/찬송가.. "한글"에 빛을 주었다, 누가? 제임스 게일 등 위대한 서양 영어 선구자들이, 다카하시, 오꾸라 신뻬이 등이 우리나라 글을 일제식 한자로 범벅으로 만들어주신 근대 비빔말글이 나오니, 너무나도 그 공덕이 커서 아리가 가리워졌스므니이다.
혼란스럽다. 최현배의 말은 배달, 한배검 등 민족종교라는 대종교의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아는 사람이 천부경의 하나는 주시경이, 삼일신고의 일신, 하나님과 그 기본사상을 개신교에 넘긴 것이 최현배가 아닐까 한다.. 그 내용속에 혼선, 배달사상과 개신교사상, 즉 연희전문대학은 기본 개신교인데 이를 자꾸 민중, 토착화사상으로 민족주의, 골수 하나민족의 민족주의 대학이라고 한국사상의 전당처럼 이야기하니, 그런가? 이상하다, 내용은 한국전통 사상이고, 그 실체는 개신교라는 것이 청지술수의 연설문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주시경 선생의 가르침은 외솔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한글만 쓰기의 주장〉이란 글에 나오는 최현배 선생의 말이다. “말은 얼을 나타내고 글은 말을 나타낸다. 그러한 즉 얼·말·글은 셋이면서 하나이다. 배달겨레의 얼이 가는 곳에 말과 글이 가고, 말과 글이 가는 곳에 또한 얼이간다.”
얼말글, 울얼알은 주시경의 가르침? 셋이면서 하나이다..??? 배달겨레, 현재 뉴라이트 똘아이들은 배달이라는 말도 조작된 1920년대에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1910년대의 주시경은 쓰고 최현배도 쓰고 있다, 대종교의 "배달나라", 배달겨레, 배달말글 등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그래서, 혼선이 생긴다, 이건 "민족주의자"의 이야기라고...
"외솔은 평생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자를 폐지하고 한글을 전용하자는 주장도 맥을 같이한다. 이같은 주장은 주시경 선생의 이상이기도 했다. 허웅 회장의 말이다. “외솔 선생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한글전용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그같은 주장을 한 배경에는 한자의 교육으로 인해 국민들의 정력과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문맹(文盲)을 없애야 한다는 근대사회의 과업을 달성하는데 한자는 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계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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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한자전폐론으로 무용론으로 한자병기 등이 아니다, 즉 한자는 우리나라 소리는 아니다, 한문은 우리나라 문으로 그 소리 韓字는 우리나라 훈민정음으로 "정운"이라고 저들이 음운변화, 즉 두음법칙, 구개음화, 활음조로 바꾸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고대음가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아예 폐지하고, 한자, 왜의 한자로 그들 소리로 내라는 것은 민족문화가 아닌, 원숭이 소리내자는 것으로 한자를 왜한자, 중국소리로 우리가 언제 쪽어나, 짱어로 냈다고 저렇게 韓문자로 언문자 그리고, 한문자 두가지 다가 우리문자인 것을 모르고, 즉 훈이라는 가림과 음이라는 한자/정운이 한 짝으로 형음의가 일체 하나인 하나말글소리를 하나로 내고 있었는데 전혀 쓸데없는 개신교와 유다랍비, 즉 유일신론과 유물론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유다인의 사상에 빠져서 개신한글만이 고유어고, 한자, 즉 한문의 정운으로 써온 것은 아예 "적"이라고 해서 순우리말 가림어만 쓰고 없는 말은 조작창조하여 말갈, 글갈, 고나, 느, 늣씨 등 조작한다고 그게 우리말이라고 외솔하면 우리말로 읽어라. 꿍.. 外率, 바깥으로 인솔하라, 외? 왜/ 왜솔, 왜나라로 이끌어라..???
우리말 쌍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 - 고유어/언문자
일이삼사오육칠팔구십 - 한자어/한문정운 우리말소리/글소리
이 둘은 우리말로 고유어, 고소선어로 그 소리값은 漢字, 니얼산쓰라고 하면 병신 물라 짱골라라고 한다고. 도리어, 주시경, 최현배와 같이 자신의 선조가 지켜온 1문1자의 문자를 정운으로 음운형태론과 글자론으로 소리/글자소리의 그 형태까지 정확하게 언문고의 관계 즉 말소리와 글소리를 정리하고 사용한 것을, 마치 환까 까듯이 저 "일이삼사오육칠팔구십"은 한자어?라서 적이다, 그러니 일 더하기 일은 이다가 아니고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
삼칠일은 이십일이다가 아니고 셋일곱은 스물하루다.. 열의 즈믄곱은 일만, 아니, 한만이다.
무슨 소리인가? 한자어라고 하는 우리 한문의 정운/1자음을 없애면 그 사상이 붕괴된다, 자아, 판단의 주체로, 사상이 실체를 전개해야할 사상에, 말소리는 있고 글소리가 없고 뜻은 있느데 뜻소리가 없으면 그건 음양설이지, 셋이 하나다,즉 일체론이 아니다, 하나둘셋 일체라는 일체의 삼위일체의 개념이 붕괴되고 언문자/한문자 그리고 정음이 일체 하나가 되어야 그게 일체의 하나사상이지, 한자어, 한문의 핵심을 우리녹도문에서 1문1자로 정의한 것을 왠 쪽발이와 서양 코쟁이 영어론으로 적이니, 전폐하라..전폐?? 全廢, 전부 없애라는 것인지.. 온심장? 심폐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1960년 4월 발표한 ‘한국 학도들이 나아갈 길’은 젊은이들에게 거는 외솔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대들의 나아갈 길의 목표는 일신의 영달과 일가의 안락에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되세운 한배나라의 통일된 독립과 민주주의스런 육성에 있으며, 배달겨레의 진정한 자유와 영구한 복락을 꾀함에 있나니, 먼저 제 나라와 겨레를 건진 연후에라야 비로소 세계 인류의 행복과 자유의 증진에 참례할 자격이 있는 것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한배나라는 이제 청년 제군을 부른다. 넉넉한 차림과 굳센 결심으로써 이 부름에 응답하고 나설 그 누구 누구인고? 한배나라의 장래는 온전히 그대들의 것이다.”
마치 일제 황국신민 반자이하라는 것 같다.. 기본이 한배나라, 배달겨레.. 倍達의 배[倍]의 바둑이는 알고서 말하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것도 한배가 큰배로, 유다나라, 한배,한유나라??? 배달겨레는 배건너 달려온 욕단족? 단지파?? 이게 그렇게 전해진 것인가? 목사, 목자의 스승님들이 저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 단군만 나오면 죄악이라고 윽박지르는데 그 위의 배달나라 한배검은 대종, 즉 종교의 교화황 大宗[大倧]으로 종/마루를 가르침[교]하신 종교의 시작,한배의 나라라고 개신교는 종교라는 말을 쓰지 못한다고 하면.. 뭐라고 개거품물고 이야기할까???
최현배의 이력에는 대종교와 관련 즉 고등학생시절, 대종교 종사에게서, 가르침을.. 그리고 改宗者로...음..
"최현배(1894-1970)의 호는 외솔이고 경남 울산출신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한성고등학교와 교토제국대학을 졸업하였고 연희전문교수, 교육부 편수국장을 역임하였다. 최현배는 주시경의 한글강습원에서 한글을 익혔고 나철을 따라 대종교의 행사에 참여하였으며 대종교 경전을 읽었다.
최현배
첫째, 한글을 민중의 사이에 전파하였다. 한글이 원래 민중 교화의 사명을 띠고 난 글이언마는, 그 짓궂은 운명에 희롱되어, 그 맡은 바 구실을 이루지 못한 채, 수백년을 지나온 것은 천추의 유한이 아닐 수 없다. 공자, 맹자의 유교에 젖은 사람들이 우리의 글 한글은 언문이라 하여 멸시 천대하고 있을 적에 기독교는 한글만으로 된 성경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 교리가 전파되는 곳에 반드시 한글이 전파되며, 한글이 전파되는 곳에 그 교리가 또한 전파되는 서로 인과하는 결과가 되었다. 성경의 공부는 가지가지의 방법으로 진행되었으니 개인적으로, 가족적으로, 친구끼리로 이를 은밀한 가운데 전하고 익히기도 하였으며, 주일 학교, 하기 성경 학교, 성경 학원, 신학교 및 교육법에 의거하여 교회에서 차린 각급 학교(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와 같은 공공기관에서 한글로 된 성경과 각종 교재를 가르치었다. 앞에서 든 바와 같이, 신도가 날로 해로 증가되어가고, 성경의 배포도 또한 날로 해로 증가되어 감은 곧 민중의 사이에 한글이 널리 깊이 퍼짐을 뜻하는 것이다. 더구나, 구식 교육, 한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미천의 처지에 있던 서민 대중이, 새로운 교훈인 기독교의 성경을 배움으로 말미암아, 심령의 구원을 받는 기쁨을 누리는 동시에, 유학자, 한학자들이 천시하던 한글을 깨치어, 처음으로 글눈을 뜨고서 지식과 교리에 접하는 신생의 기쁨을 체험하게 되니, 여기에 비로소 “어리석은 백성들이 날로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의 거룩한 뜻이 실현되게 된 것이다.
둘째,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를 하는 목사의 활동에 따라, 신도들은 사상 표현의 말씨를 배우며, 글 읽고 글 쓰는 방법까지 깨치게 되었다. 더구나, 성경은 때를 따라 고쳐 뒤치게 되고, 목사의 강설은 날로 진보되어 갔다. 전도사, 목사들은 말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졌으며, 산간벽촌의 신도들은 그 마을의 유식자로서 말과 글의 지도자가 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배달말, 배달글이 기독교로 말미암아 발전과 함께 발달되어 온 사실을 인정하는 바이다.
셋째, 한글에 대한 존중심을 일으키고 한글을 지키는 마음을 길렀다.
유교의 경전을 공부한 한학자들이 한자 한문에 대한 존숭의 마음을 가짐과 같이, 기독교의 성경을 공부한 대중이 한글에 대한 존중의 생각을 품게 됨은 또한 자연스런 심리라 할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나타나 있는 한글 성경책이 귀중한 것으로 인식됨과 함께, 그 거룩한 내용을 나타낸 한글이 또한 귀중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수백년 동안에 언문이니, 암클이니, 규방 문자니 하여 천대받던 한글이 이제 기독교의 교리를 적게 됨으로 말미암아 일약 사서삼경의 한자와 같은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의 한 자, 한 자가 그 내용과 함께 소중한 것으로 되어, 이를 그대로 지키고 그대로 발전시키었다. 일제 시대에 한글학회(당시는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성립되어 온 세상이 다 이를 따를 적에 미쳐서도, 기독교의 성경의 맞춤법은 우리들 한글 운동자들의 누차의 건의와 교회의 결의가 있은 뒤에도, 이를 만만히 고치지 아니하고 1950년 6․25동란 이전까지 낡은 맞춤법 그대로 지켜 온 것은, 매우 안타까웠던 일이기는 하였지마는 또한 성경에 적힌 한글을 극히 존중하는 심정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우리는 허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뿐 아니라, 일제가 그 말기에 다다라서는 우리말, 우리글을 정책적으로 아주 말살하려 악랄한 수단을 취하였을 적에, 우리의 학교에서 한글과 우리말이 사라지고, 심지어 거리와 집안에서까지 우리말, 우리글이 그 자연스런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적에, 오직 기독교의 교회에서만은 성경이 한글로 적히고, 목사의 설교가 배달말로 유창하게 흐르고, 찬송가의 가락이 배달 사람들의 정서를 그대로 전파하였으니, 우리말, 우리글의 수호의 공을 기독교에 인정하여야 마땅하다 하노라. 학교에서 우리의 말 글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교사나 학생이 주일날 예배당에서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찬송가를 힘차게 부름으로 말미암아 그네들은 종교적 은총뿐 아니라 민족혼의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넷째, 한글의 과학스런 가치를 인정하였다.
게일로 비롯하여 여러 선교사들은 한국의 과학스런 훌륭한 글자임을 역설하였다. 그네들의 연구는 한글의 값어치를 널리 세계에 소개할 뿐 아니라, 완고한 한국의 한학자들에게도 이를 긍정하게 하였으며, 일반 민중에게 이 글의 효용을 깨치게 하였다. 사실로, 우리 한글의 중흥조인 한 힌샘 주시경 스승도 기독교에서 차린 새 교육기관 배재 학당에서 공부하다가 우리말, 우리글의 가치를 갑득하고서 그 연구에 손대어, 평생 일관하게 이에 전력하여 한글운동의 앞잡이(先驅者)가 되었으며, 그밖에 이윤재, 김윤경, 정태진, 정인승, 장지영, 최현배 같은 한글 학자 및 운동자들도 다 기독교 학교에서 공부하였거나 또는 기독교 학교에 봉직하면서 이를 연구하고, 이를 사랑하고, 이를 지키고, 이를 선전하였다. 이윤재는 교회의 장로로서 한글 운동에 최대의 열정을 기울였기 때문에 “한글 장로”의 별명이 있었으며, 장로교파 강병주 목사는 항상 한글 운동을 교리 전도와 함께 하였기 때문에, “한글 목사”의 별명을 얻었던 것이다. 또 교회의 모든 교육 기관이 한글 전파에 큰 공이 있음은 앞에 말한 바와 같거니와 특히 각 교파 연합으로 차려진 연희 전문 학교는 일제의 무도한 압제 정치, 동화정책에 항거하여 국어와 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나라안 유일의 교육기관이었다. 요컨대, 한글과 배달말의 과학스런 연구, 애족적인 선전, 애국적인 수호에 기독교의 공덕은 영세로 잊지 못할 것이다.
다섯째, 배달의 말글을 널리 세계에 전파하였다.
선교사들이 우리 나라에서 발행하는 두 세 가지의 잡지에 발표된 그네들의 한국에 관한 연구 논문은 한글을 널리 세계에 소개하였으며, 또 그네들이 엮은 사전과 지은 말본 책들은 배달말을 세계에 소개하는 공덕을 기리었다.
여섯째 “한글말 쓰기”의 기운을 조성하였다.
만주서 뒤친 로스의 성경전서나 일본서 뒤친 이수정의 신약성경이나 다 한가지로 한글만 쓰기로 되었으니 기독교의 성경 사업이 근본부터 “한글만 쓰기” 운동의 앞잡이가 된 셈이다. 그 뒤에 한자를 섞어쓴 이른바 국한문 성경이 나오기도 하였으나, 이는 다만 일부 한자 지식인의 수요에 응하였을 뿐이요, 그것으로써 일반스런 전도사업의 수단을 삼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한자 섞인 성경은 그 배포가 극히 제한되었었을 뿐 아니라, 현재에는 거의 끊어진 상태에 있다. 그리고, 성경 밖의 모든 인쇄물도 대부분 한글만으로 된 것이다. 한글만으로도 넉넉히 모든 진리를 적어 나타내며, 또 받아들이기에 아무런 불편이 없을 뿐 아니라 크게 편리하다는 생각을 품게 되는 것이 신도 일반의 심리로 되어 있다 할 수 있다. 사실로, 우리는 기독교 신자들 가운데에 우리 한글만 쓰기의 동지가 많음을 알고 있다.
기독교의 신자들은 한글의 덕택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을 알게 되었으며, 또 이를 다른 많은 형제 자매에게 전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동시에 부처를 믿을 수 없음과 같이, 한글의 절대의 은덕을 아는 기독교의 신도로서 동시에 한자의 중독자 노릇은 할 수가 없음은 이치의 당연한 것이다. 한글을 사랑하고 숭상하고 이를 발양하는 얼은 기독교인의 당연한 의무인 동시에 또 기쁨이 아니면 안 된다. - 최현배, “기독교와 한글”, 1962 -
최현배(崔鉉培, 1894-1970). 기독교인 한글 학자. 호는 외솔. 경남 울산 출생. 주시경에게 한글 공부. 이화여자전문학교(이화여대),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교수.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3년 옥고. 한글학회 이사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역임. 《우리말본》, 《한글갈》, 《글자의 혁명》, 《나라사랑의 길》 등 저술. ==
기본적인 토는 달 필요가 없다, 그냥 그렇다. 그냥 그렇지 뭐.. 이야그하면 뭐하냐.. 그래 잘 살았다.. 나라사랑의 길로 개신한글, 개신 改宗者, 일본음으로 내고 단모음 6개에 단자음 10로 60음도 만든 개신한글, 풀어쓰기 숙원사업 한글학회, 개신한글학회에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주시경과 최현배의 개신한글을 읽어라? 한글깔고 한말뽄을 보라..큰이다, 하나 韓이 아니고 큰, 漢 무뢰배 한으로 위대한 히블리어/문을 쓰는 유다의 말로 창조하고 개량하여 개신한글로 해야 나라가 바로 유다 에덴의 나라가 된다, 그게 하나님 여호와의 뜻이니, 개신 여호와글로 한글이 살아났다. 여한글, 엘글이 드디어, 최현배에 의해 재생되고 창조되니, 이 어찌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봄햇살이 나를 덮친다.
-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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