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을 대비하라(9)- 종말과 섬김(계 1:7)
1992년 10월 28일 휴거 소동이 있었을 때였다. 부산에서 한 형제가 내게 편지를 했다. "휴거 날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내 영혼 챙기기도 바쁩니다. 이젠 한가하게 다른 사람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나는 그 편지를 읽고 어이가 없었다. 이 형제는 휴거를 대비한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준비가 무엇인지 거꾸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부터 휴거되고 봐야죠! 내 발등의 불부터 꺼야죠!" 여러분, 이것은 이기주의다. 자기 밖에 모른다. 세상과 다른 것이 뭐가 있냐?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오신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이기주의를 심판하신다. 근데 예수님 맞을 준비한다고 하면서 자기 밖에 모르는 인생을 산다면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모른다고 할 것이다. 이기주의가 충만한 세상과 다르게, 다른 사람을 돌아보면서 희생하며 섬기며 살 때 예수님이 인정하실 것이다.
이 땅에 처음 오실 때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로서 비천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셨다. 예수님이 오신 것을 아는 사람도 몇 사람 없었다. 그러나 다시 오실 때는 온 세상의 심판주로서 구름을 타고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이다. 다시 오실 때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이 누군지 다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은 세상의 모든 민족이 통곡하는 날이 될 것이다. 특별히 예수님을 핍박한 자들에게 그 날은 그야말로 통곡의 날이 될 것이다. 죄 짓고 살면서 신앙생활 제대로 못한 사람들에게도 그 날은 통곡의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고 거룩하게 산 사람들은 기쁨으로 예수님을 맞을 것이다. 여러분,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을 준비 됐냐?
1.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교회에 감나무가 있다. 감이 맛이 들어 익기 전에는 퍼런 색깔을 하고 있다. 퍼런 색깔은 "아직 안 익었으니까 저를 따먹지 마세요!"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 익어서 빨갛게 된 다음에는 "저, 다 익었어요. 나를 따서 드세요!" 하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이 무르익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요, 예수님의 재림을 잘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이는 곧 자기를 주기 위해 준비된 신앙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내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를 사용하십시오 하면서 섬기는 사람으로 자기를 드리는 것을 기뻐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뭘 좀 시키려 하고, 봉사 좀 하라고 하면 징징거리고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래도 곤란한 사람이다. 교회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즐겁게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이 다 되기 바란다.
예수님이 오시면 여러분은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지 다 예수님 앞에 말해야 한다. 그 때 예수님이 우리를 심판하시는 기준은 무엇인지 아냐?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잘 섬겼냐가 우리의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마 20:28에서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말씀하셨다. 자신이 오신 목적은 섬기고 주러 오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바로 천국으로 우리를 데려가지 않고 하나님이 이 땅에 우리를 남겨두신 목적은 섬기고 주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다.
예수님은 가장 위대한 분이셨지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다. 어린 아이를 돌보셨다. 아침 식사를 손수 만들어 주셨다. 환자들을 돌봐주셨다. 예수님은 섬기러 오셨기에 모든 일을 통해 모든 사람을 섬기셨다. 이런 작은 일들은 예수님의 겸손하고 넓은 마음을 보여준다. 바울도 배가 파선했을 때 자기도 지쳐 있었지만 주위 사람들이 추위에 떠는 모습을 보자 손수 나뭇가지를 모아서 모닥불을 피워주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것도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우리 병을 고쳐주신 것도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도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섬기고 베푸는 삶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고, 구원하셨으며, 병을 고쳐주고, 복을 주셨다.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섬기며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시면 예수님은 평생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살았는지 물으실 것이다. "저는 너무 바빴어요." "공부하느라, 직장 일 하느라, 애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변명을 해도 소용없다. 심판의 기준이 섬김이라고 성경을 통해 얼마나 많이 반복하셨나?
그러므로 여러분이 섬기는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면 창조의 목적대로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섬기는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면 구원의 목적대로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지금 섬기는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 아니라 욕심에 이끌려 사는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인생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닭은 잘 싸운다. 모여 있으면 반드시 자기들 가운데 서열이 분명해 질 때까지 치열하게 싸운다. 누가 큰 자인, 누가 작은 자인지 알 때까지 닭장에 평화는 없다. 우리도 큰 자가 되기 위해, 지도자가 되기 위해 닭처럼 싸울 때가 많다. 학교나 직장에서, 아니 교회까지도 '장'(長) 자리를 놓고 다툴 때가 얼마나 많냐? 사람들에게 큰 자로 인정을 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말 큰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정의를 새롭게 하셨다.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누구나 대빵이 되기를 원하지, 꼬붕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누구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지, 시다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누구나 주인이 되기를 원하지 머슴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리스도인들도 섬기는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지 그저 종으로 남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서는 종이 되어야 한다.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섬기는 것보다 받는 것에 더 관심을 갖는다. 세상 사람처럼 살기 때문이다. 교회를 찾아도 "내 필요를 채워주고 복 받을 수 있는 교회를 찾고 있어!"라고 말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섬기고 베풀 수 있는 교회를 찾고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여태까지 본 일이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섬길 것을 기대하지, 그 반대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이 성장할수록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 되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려 한다면 섬기는 사람으로 바뀌어 가야 한다. 여러분은 "내가 누구를 섬겨야 할까? 내가 누구의 종이 되어야 할까?" 물어본 적이 있냐? 하나님은 우리가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부르셨다.
지금은 대학교수가 된 어떤 선생님의 얘기를 하고 싶다. 이 선생님은 아이들을 수업 시간에 열심히 가르치지를 않았다. 종종 자습을 시키고 자기 공부를 하곤 했다.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고, 그 아이들을 잘 돌봐주지 않았다. 결국엔 그 선생님은 박사를 한 후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대학 교수가 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이기적인 삶을 살았다. 자기 것만 챙기며 살았다. 주님 다시 오시면 이런 사람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도 시간이 아까운 사람이다. 우리도 돈 쓰는 것이 아까운 사람이다. 우리도 바보가 아니다. 공부를 더 해서 박사를 하고, 좋은 지위를 얻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안다. 몸값을 올리기 위해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자기 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고자 하는 사람이다.
한 형제가 자기는 절대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어떻게 죽은 시체를 만지냐는 것이다. 다른 것은 다 해도 시체만은 못 만진다는 것이다. 이 형제는 목사가 되어 장례를 치르느라 시신을 만지며 염을 하는 것이 끔찍했던 가보다. 그러나 목사가 아니어도 사람을 섬기기 위해 필요하다면 남들 꺼리는 시신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아닐까? 잘 살펴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찾아보라. 그리고 그 일을 당신이 하라. 그렇게 해서 누군가를 섬길 수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관찰해 보라. 모임 후에 쓰레기를 줍는다든가, 청소를 한다든가, 의자를 정리하는 일은 특별한 달란트나 은사를 요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귀찮게 생각하여 하기 싫어할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위대함을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얼마나 섬기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섬겼느냐에 따라 결정하신다.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것과 완전히 반대다. 행하는 것도 어렵고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섬김은 그리스도인에게 선택사항이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해바다와 갈릴리 호수의 얘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갈릴리 호수는 요단강 물을 받기도 하지만 그 물을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생명력이 충만하고 많은 물고기들이 산다. 그러나 사해는 요단강 물을 받기만 하고 바깥으로 흘려 보내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하는 죽은 호수가 되었다. 여러분도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다면 생명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섬기고 주는 삶을 살지 못하면 성경공부를 아무리 해도 결코 영적 성장을 하지 못한다. 지금 셀장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어떤 봉사도 하지 않고 있다면 어떤 핑계를 대면서 아무 봉사도 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섬김과 봉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공부, 직장, 영화, 축구, 돈, 시간 등 그 어떤 것도 그 자체로는 영원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 모든 것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우리의 삶은 영원한 중요성을 갖는다. 정말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섬기며 사는 것이다.
2. 섬기는 삶을 위한 2가지 조건
1) 능력
그럼 섬기며 산다고 할 때 어떻게 우리가 다른 섬길 것인가? 우리가 현재 가진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 있든지 우리가 현재 가진 것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원하신다. 충분치 못하다 하더라고 지금 섬기며 지금 봉사하라.
롬12:5-8을 영어성경 CEV로 보면 자기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언의 능력이 있으면 예언을 해야 한다. 섬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섬겨야 한다.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가르쳐야 한다.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주어야 한다. 지도자가 될 능력이 있다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어떤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 각 사람은 영적인 은사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역량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다. 다양한 영적 은사, 관심사, 역량, 성격, 경험의 차이는 결국 다양한 능력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어떤 사람은 노가다를 잘 한다. 뚝딱거리고 뭘 만드는 일은 다 잘 한다. 어떤 사람은 음식을 잘 만든다. 어떤 사람은 비디오 카메라를 잘 다룬다. 어떤 사람은 사진을 잘 찍는다. 어떤 사람은 물건을 아주 싸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사람을 아주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찬양이나 노래를 잘 하는 사람도 있다. 율동이나 워십을 아주 잘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있다. 많은 최신 정보와 자료를 모을 줄 아는 사람도 있다. 컴퓨터나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도 있다. 운동을 잘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자신이 잘 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기에게 다른 사람과 다른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을 섬기기 위해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책망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그 분야에 특별한 재능이 없는데도 공동체에서 꼭 봉사를 하겠다고 할 때가 있다. 음치요 찬양의 은사가 없는데 성가대 봉사를 하면서 지휘자에게 계속 헌금송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느 날 또 다시 지휘자에게 헌금송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지휘자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헌금송을 하면 헌금이 줄어!" 그 말에 충격을 받는 이 분은 자기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 날 이후로 성가대를 포기하고 자기가 잘하는 가르치는 일에 집중했는데 지금은 이분이 국내에서 유명한 내적 치유 강사가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시키지 않으신다.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통해 어떤 일을 하기 원하시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지표다. 단지 먹어먹고 살아가는 데만 사용하라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봉사를 위해 주신 것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라.
2) 겸손
잘 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꼭 은사 테스트나 무슨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 할 수 있다면 다양한 사역과 봉사에 열심히 참여하라. 봉사를 하다보면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어느 누구도 해보지 않고는 무엇을 잘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말이 "잘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하지도 말라!"는 말은 아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처음부터 어떤 일을 잘 해낼 수는 없다. 오히려 실수와 부족함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면 "그 정도면 잘 한 거야!" 하고 겸손하게 서로 격려하는 것이 좋다. 뛰어난 몇몇 사람에 의해 운영되는 교회보다는 많은 보통 사람이 참여하는 교회가 더 아름답다.
섬기는 삶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섬기는 삶을 위해 바로 이런 겸손이 가장 요구된다. 이런 겸손한 섬김을 위해서 우리는 자신을 잊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남이 잘 될 때 마음이 상하고, 남이 안 될 때 자유함이 넘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다. 이런 사람은 겸손하지 않기 때문에 섬기는 삶을 살기 어려울 것이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항상 자기한테 유익한 것이 먼저이기에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뒷전이 되기 쉽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자기 기분과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비록 자기가 좀더 불편하게 되더라도 기회만 있으면 기쁘게 섬긴다. 여러분이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 유익을 먼저 찾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여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모든 섬김에는 바로 이 겸손이 가장 중요하다. 만일 섬긴다고 섬겼어도 겸손한 섬김이 아니라면 그건 역효과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것이다. 우리가 겸손하면 다른 사람을 섬기되 가식이나 떠벌임 없이 조용히 섬길 수 있다. 반대로 겸손하지 않은 사람도 봉사를 하다 보면 겸손을 배우게 되기도 한다. 교만하던 사람도 떠벌이지 않게 된다.
영화 I am Sam에 보면 샘을 돕는 변호사는 한번도 재판에 져본 일이 없는 여자다. 이 여자 변호사가 처음에는 어려운 사람을 무료로 변호해주는 선량한 변호사로 보이기 위해 샘을 돕기 시작한다. 그러나 부족한 샘을 도우면서 정말 누가 부족한 사람인지 새롭게 생각해 보게 된다. 갈수록 누가 누구를 돕는 것인지 햇갈릴 정도로 샘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우리는 봉사를 통해 겸손을 배운다. 또 겸손해야 봉사를 할 수 있다. 섬길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과 주님의 기준이 정말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에 갔다 온 분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영광을 많이 받은 세계 최대 교회 목회자를 예수님이 모른다고 했다는 말 들어봤냐? 그러나 이름 없이 음지에서 섬긴 종들은 하나님이 천국에서 공개적으로 상주실 것이다. 세상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 정신지체아를 돌보는 사람들, 지체를 쓸 수 없는 노인들에게 목욕을 시켜주는 사람들, 보이지 않게 봉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은 기억하실 것이다. 여러분 열심히 섬겼는데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지!" 하고 말한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고 계속 하나님을 섬겨라. 가장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아시고 반드시 상주실 것이다.
윌리암 캐리는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을 위해 꼭 위대한 일만 하려고 하지는 말라. 별로 위대하지 않은 일을 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기를 바라시는 당신의 일을 맡기실 것이다. 특별한 일을 시도하기 전에 평범한 일을 가지고 섬기도록 노력하라. 민감한 마음으로 바로바로 움직이지 않아서 우리는 섬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쳤다. 섬길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잡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 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잠 3:28에 "네가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라고 말씀하고 있다. 상황이 나아질 때 하겠다고 미루지 말라. 전 11:1 영어성경 NLT로 보면 "완벽한 상황을 기다리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추석 때 부모님이나 가족들, 친척들을 잘 섬겨라. 가족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라. 얘기를 잘 들어줘라.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은 부모님께 돈을 두둑히 드려라. "이번 추석에 너 왜 이러냐?" 는 소리를 들어봐라. 부모님께서 봉사료를 주고 싶을 만큼 감동을 드려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여러분, 모두가 섬기는 자로 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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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원문보기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