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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전각/회화,작품 스크랩 광예주쌍즙3. 구비(비탁의 구입)
청운 추천 0 조회 71 14.09.02 15: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당연히 뛰어난 사람에게 취학하여 공부하지 않으면 안됨. 그러나 뛰어난 사람은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님. 그래서 내는 뛰어난 선생을 소개하기로 함. 그러나 뛰어난 선생을 소개하는 것도, 석비의 탁본을 많이 구하여 구입하는 것에 미치치 못함.

한대의 揚雄은, '천 자루의 검을 보지 않고서는 검을 잘 사용할 수가 없고, 천 편의 賦를 읽지 않고서는 부를 잘 지을 수가 없다."고 말함. 또 공자와 자하는, '학문을 하려면 먼저 널리 배우는 것이 중요한다."(<<논어>> 옹야, 안연 ,자장 편)고 말함. 이 때문에 견문이 좁고 정연한 형식을 갖추지 않으며, 정신과 취미를 넓게 하지 않고서, 어떻게 서를 잘 쓸 수가 있게 되겠는가?

견문을 넓게 하고, 많은 뛰어난 서를 임서하여,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서체의 변천을 알고, 서체가 2파(남파와 북파)로 나뉘기도 하고 또 하나로 합류한(당대)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이해하여, 그 모든 것을 손의 움직임으로써 표현할 수가 있게 된다면, 환언하면, 마치 밀봉이 꽃의 즙에서 봉밀을 만드는데 느긋이 만들어내듯이 한다면, 수양은 한없이 깊어져 자연히 잘 쓸 수가 있게 될 것.

그러나, <난정집서>나 <구성궁예천명> 따위의 1종류나 2종류의 좋은 탁본을 잘 공부하는 것만으로서는 결코 충분히 체득할 수 없는 것. 왕희지도, <위부인의 필진도의 후에 제함>의 글 속에서, "李斯의 <태산각석>, <낭야대각석>, 曹喜의 <대풍가>, 梁鴻의 서, 채옹의 <희평석경>, 장창의 <화악비> 등을 보고 널리 배웠다."고 함. 황희지가 배운 것은 대단히 광범위한 것. 위부인만으로부터 글을 배운 것이 아님. 종요의 <선시표>만으로부터 서를 배워 1천년래의 서의 모범으로서 숭앙을 받게 된 것은 아님. 만일 서를 배우고자 하는 자가 1,000종류의 비문을 보고 충분히 임서하여 학습한다면, 그래도 잘 쓸 수가 없다는 자는 없을 것.

그렇지만, 1,000종류의 비문의 탁본을 구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고 찾아내기도 용이한 일이 아님. 어떻게 하면 좋은가?

중요한 비문의 탁본을 골라서 사고, 또 뛰어난 작품을 골라서 배운다면, 100종류의 비문의 탁본을 입수하여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서를 잘 쓸 수가 있게 될 것. 그러나 100종류의 비문이라면 대단히 적은 것이니, 이 이상 더 적게 할 수는 없음. 그래서 어떤 비문이 중요한가를 알지 못한다든지 뛰어난 작품을 골라서 배울 수가 없다면, 수 백 종의 비문을 보고 공부한다 하여도, 아직 서에 관하여서 이렇다 저렇다고 의견을 말하리 만큼 되어 있지 않은 것.

서가 능숙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구양순의 서를 배웠다'든가, '안진경의 서를 배웠다'든가 하고 말하거나, 혹은 또 '어느 시대의 비문을 배웠다'든가 '무어라 하는 이름의 비문을 배웠다'든가 하고 말하는 것을 흔히 들음. 이것은 전혀 잘못된 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일평생 동안 서를 공부하여도 잘 쓸 수가 없는 것은, 이와 같은 설이 서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구양순의 서를 공부하는 사람은 오직 구양순의 비문을 1종류만 공부하고, 안진경의 서를 공부하는 사람은 오직 안진경의 비문을 1종류만 공부하여, 일평생 동안 1종류의 비문만을 공부한다는 것은 잘못도 심한 것.

또 어떤 사람은, "서를 배우려면 하나의 비문에서 2,30자를 골라내어서 1년 남짓 사이에 천 수백 번 임서하고, 그 다음에 다른 비문을 골라 1년 남짓한 사이에 천 수 백 번을 임서하고, 그 다음에 또 다른 비문으로 옮아가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여, 종요가 포독산에서 3년간 서를 배우고, 지영이 서를 배우려고 40년간 2층으로부터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을 예로 들고 있음. 이 설도 그럴 듯하게 들리기는 하나 잘못되어 있음.

그런데, 학문을 하는 자로서 문자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문자를 잘 쓴다는 것도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님. 학문을 하는 자가 인격을 몸에 갖추고 학문을 구명하는 데 있어서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은 대단히 많음. 그러므로 중요한 시간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자의 연습에만 사용한다는 것이 어찌 될 법한 일? 모든 사람이 종요나 지영 같이 서를 배운다면 어찌 하루 동안에 학문을 연구할 시간이 있겠는가? 이것은 조작된 이야기. 옛날 사람이 지금 사람을 기만하고 있는 것.

내가 제창하는 서를 배우는 방법은, 붓을 가지고 연습함과 아울러 많은 비문을 보고서 공부하는 것을 제일로 함. 그리고서 서파를 분별하여서 그 뛰어난 작품을 선택하여 두고 자기가 써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에 그 비문을 임서하도록 함. 1종류의 비문을 1개월 정도 임서하여 가서 널리 100종류의 비를 임서한다면, 자연히 자기 자신의 서체가 이루어짐. 그렇게까지 노력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능숙하게 된 사람은 더욱 연습하고 학문도 연구한다면 서가로서 일가를 이룰 수 있을 것. 하늘로부터 주어진 재능이 대단히 낮은 자라도 모두 서가로서 일가를 이룰 수는 있으나, 그 서의 성과의 정도는 각각 사람에 따라서 다름.

비문의 탁본을 구입하는 데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지 않으면 안 되지만, 남조(420~589, 송, 제, 양, 진)와 북조(386~577, 북위, 서위, 동위, 북주, 북제)의 비문이 가장 중요. 여기에는 모든 서체가 구비되어 있어서. 당대의 서가도 모두 이들 비문을 근본으로 하여 배워서, 중요하지 않은 비문을 공부하는 일은 없었던 것. 이들 비문에는 과거의 시험답안을 쓸 때에 사용하는 서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체를 구비. 당대의 비문을 급하게 서둘러 구입할 필요는 없음.

당대의 서가가 쓴 뛰어난 작품에는 구양순의 <화도사비>, <구성궁예천명>, <황보군비>, <우공공비>, 우세남의 <공자묘당비>, 저수량의 <성교서>, <맹달법사비>, 안진경의 <가묘비>, <마고선단>, <다보탑>, <원결비>, <곽가묘비>, <장회각비>, <은리직처안씨비>, <팔관재회보덕기>, 이옹의 <운휘장군비>, <영암사비>, <동림사비>, <단주석실기>, 서호의 <불공화상비>, 유공권의 <현비탑>, <풍숙비> 등이 있음.

이들 비문은 원석이 없어져버린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마멸, 번각이므로, 본래의 형을 잃어버리고 만 것. 원대나 명대에 만든 고탁본을 구입하고자 하여도 보기에 딱하리 만큼 되어 있는 데도 대단히 높은 금액을 요구. 그런 것을 사는 것보다는 그 고탁본 1책분의 돈으로 남조와 북조의 비문의 탁본을 모두 사서 모으는 편이 좋을 것.

상술한 당대의 뛰어난 비문을 구입하지 않고 기타 당대의 비문을 이것 저것 구입한다면 본말을 전도한 것. 서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것이 됨. 또 당대의 비문에서는 문자의 성과도 좋고 보존상태도 좋은 <번부군>, <연공송>, <배경민> 등 비는 대단히 적고, 당대의 소비(묘지, 조상기)는 6조시대의 서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이 많음.

당대의 비문은 형에 있어서도 대단히 낮은 것. 서둘러 구입할 필요는 없음.

현재 사용되고 있는 진서나 해서라는 서체는 6조시대 사람이 가장 잘 쓰고 있음. 그것은 아마도 한대의 8분의 여풍을 받아서 고래의 풍취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 것. 묵직하여 중후한 맛이 있고, 서풍도 구애를 받는 곳이 없어, 대단히 뛰어나고, 뒤에 당대 서법을 개화시키고 있음. 6조시대의 해서는 초서와 예서의 풍취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 없음. 晉대 사람들의 서신인 서첩의 실물을 우리들은 볼 수 없으므로, 6조시대의 뛰어난 비문을 모두 볼 수가 있다면 그것을 족함. 그러므로 6조시대 비문의 탁본은 많이 구입하는 편이 좋음.

한대의 8분은 해서의 원류. 8분으로 쓰여진 문장에 의하여 옛 시대의 일을 연구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학문의 범위에 속하는 일. 그래서 필법을 연구하는 경우, 원류에 관해서 구명하고, 그 중의 중요한 비문을 골라서 구입하여야 할 것. 6조시대의 예서는 현재까지 잔존하고 였는 것이 많지 않고, 당대의 예서는 더욱 정도가 낮아져 있음. 일견하여 그 변천을 알면 충분. 구입하지 않아도 좋음.

한대 8분의 좋은 것을 골라서 구입하였으면, 당대의 예서는 구입하여 수장할 필요는 없음. 위(220~265), 진(265~420)으로부터 수대(581~618)까지의 예서의 비문은 많지 않음. <금석취편>, <금석보편>, <금석색>, <금석취>로써 보면, 각 지방에 현존하는 비에 어떤 것이 있는가를 알 수 있음.

도광, 함풍, 동치, 광서 년간에 새로운 비문이 빈번히 발굴됨 수집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수록하였다고 할 수 없음. 비문을 수집하여 연구하는 사람이 자기의 견문이 좁기 때문에 수록할 수 없었거나 수집할 재력이 없기 때문에 비의 이름을 알고 있으면서도 구입할 수 없었다든지, 또는 비문의 이름을 알고 있어도 비는 대단히 많은 것이므로 찾아도 완전히 수집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여서 체념하여 버리거나 하였기 때문.

6조시대의 비문 중 대단히 수가 많고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은 조상기가 제1. 그 문장 내용은 거의 같음. 옛 시대의 일을 구명하는 데 유용한 것은 거의 없음. 발견되었다고 모두 거론할 필요가 없음. 조상기 중에는 좋은 것도 있으나, 연구자는 아직도 어느 것이 좋은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비문이 완전히 수록되는 것을 기다려 그 뒤에 선택하게 될 것. 역시 조상기 역시 서둘러 구입하지 않아도 좋음.

당대의 비를 버리고 진대의 散隸(예서의 일체. 진의 衛恒이 창시. 비백으로 쓰는 예서)를 버리고, 6조시대의 조상기를 버려면, 6조시대의 것으로서 현존하는 비명은 100여종에 지나지 않음. 진대와 한대의 8분의 좋은 것을 수 10종을 보탠다 하여도 합하여 200종류에 지나지 않음. 반드시 전부 이것들을 구입하여서 그 원류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해하여 마음에 깊이 이해할 수가 있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임서하여 잘 쓰여지게 되면 그만 두도록 함.

이렇게 하여 몇 종류고 많이 임서하면 변화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어, 둥근 맛을 띤 서법(圓筆)도 네모진 서법(방필)도 잘 쓸 수 있게 되어, 평소의 연습이 자연히 그 사람의 서풍을 형성. 서의 풍취도 반드시 통속적인 것이 되지 않음. 그러나 이것은 서를 배우는 자가  자기자신이 체득하지 않으면 안 됨.

진대의 소전과 한대의 8분의 비명에 관해서는 <설분>, <본한>에서 논술할 것임. 여기서는 남조와 북조의 비문 중에서 반드시 구입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열거함. 그 비의 대부분은 최근에 출토된 것. 금석 관계의 서적에 아직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 조상기의 좋은 것도 그 속에 기재.

이하 비문 배열. 연대순. 연대가 분명하지 않은 것은 각 시대의 최후에 배열. 비문을 만든 연대가 쓰여져 있을 때에는 주기. 서를 쓴 사람 이름 명기. 비의 문장을 지은 사람의 이름은 쓰지 않음. 중요한 것은 문장이 아니고 서이기 때문. 석비가 현존하는 것은 그 지명을 씀. 비문의 탁본 중 유명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이름만을 씀.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관직도 아울러 씀. 구입하는 데 편리하도록 함.

(1) 吳비(222~280) 1. 갈부군비액(강소성 구용에 있음) 2. 구진태수곡랑비(봉황 원년 272)

(2) 晉비(265~420) 1. 남향태수부휴비(진시 6년 270) 2. 보모지(흥령 3년 365, 왕헌지 서) 3. 지양부군비(융안3년, 399) 4. 찬보자비(태향4년, 405) 5. 효녀조아비(원가 원년, 424)(왕희지 서라 함. 해산선관각석)

(3) 남조 송비(420~479) 1. 영주자사찬용안비(대명2년 458 운남성 육량, 비음) 2. 시강군진풍현?능조상(원가25년 448 산동성 왕씨 소장) 3. 고구려고성각석(기축 원년 장수왕. 유송 원가 26년. 평양 오씨 소장)

(4) 남조 제비(479~502) 1. 오군조유위존불기(영명6년 488 절강성 회계) 2. 신불제자소연조상제자(영원2년 500 사천성 운양)

(5) 남조 양비(502~557) 1. 태조문황제신도동궐(반각) 2. 태조문황제신도서궐 3. 남강간왕신도동월(반각) 4. 남강간왕신도서궐 5. 임천정혜왕신도동월(반각) 6. 임천정혜왕신도서궐 7. 오평충후소공신도동궐(반각) 8. 오평충후소공신도서궐 9. 시흥충무왕비(비액, 비음) 10. 산기상시안평왕비 11. 천감오년잔비 12. 번양왕익주군부인제기(천감12년 513 사천성 운양) 13. 석정란제자(천감15년, 강소성 구용) 14. 장경위양주조상불의비석상(대통원년 정미 527 서천성 면주) 15. 허선제명(대통원년, 사천성 면주), 16. ???등조관세음상(?통3년, 사천성 면주) 17. ?도?조상(??3년, 사천성 면주) 18. 유경조상(대동3년 537 산동성 복산의 왕씨 소장) 19. 찬관음(대통 원년석과 같음, 사천성 면주) 20. 석혜영위부모사승급신조석가불상제자(대동원년 535 절강성 석문의 이씨 소장)

(6) 남조 陳비(557~589) 1. 신라진흥대왕순수관경비(무자, 진흥왕 맥종, 진 광대2년, 568, 한국 함흥) 2. 조화조상기(영정3년 559)

(7) 북위 위비(386~550) 1. 읍주진종주인조상왕은당화상제명(도무제 천석3년 406) 2. 공복룡조상(대위국 원년, 대무제 연화원년 132) 3. 정주중산조경조상(황흥2년 468) 4. 중악숭고라영묘비(태안2년 456 구겸지 서, 양문 전액, 음기) 5. 탕창공휘복사비(태화12년 488 섬서성 징역, 비음) 6. 효문황제조은비간묘문(하남성 급현) 7. 손추생조상(태화7년 482, 다음의 (용문 20품)을 종합하여 수록) 8. 시평공조상(태화12년 488, 주의장 서, (용문 20품) 9. 북해왕원상조상(태화18년 494 <용문20품>) 10. 북해왕태비우손보조상(<용문 20폼>) 11. 장락왕부인위지조상(태화19년 496, <용문20품>) 12. 일불조상(태화 26년, 496, <용문20품>) 13. 해백달조상(태화년간 작, <용문20품>, 14. 양대안조상(<용문20품) 15. 위영장조상(<용문20품>) 16. 정장유조상(경명2년 501 <용문20품>) 17. 혜감조상(경명3년 <용문20품>)  18. 하란한조상(경명3년 <용문20품>) 19. 고수조상(경명3년 <용문20품>) 20. 법생조상(경명4년 <용문20품) 21. 태비후조상(경명4년 <용문20품>) 22. 안정왕원섭조상(정시4년 507 <용문20품>) 23. 평건호조상(정시4년 <용문20품>) 24. 도장조상(<용문20품>) 25. 제군왕호조상(희평2년 517 <용문20품>) 26. 자향조상(신구3년 520 <용문20품) 27. 우전왕조상 28. 태산양지개복석문명(영평2년 509 태원의 전첨<관명>인 왕원 서) 29. 좌수령가삼덕개복석문제기 30. 사마원흥묘지(영평4년 511) 31. 정문공비(영평4년, 정도소 서, 상하 2비) 부기> 운봉산석각42종(열거 생략) 32. 선화사조상(영평4년) 33. 양휘비(백인남양선비, 연창원년 512) 34. 사매경화처맹경훈묘지명(연창3년 하남성 명현) 35. 조준묘지명(희평원년 516 직예주남피의 장씨 소장, 희평2년의 잘못) 36. 태주가사군비(신귀2년 519) 37. 조아환조상(신귀3년) 38. 사마병묘지명(정광2년 521) 39. 장맹룡청송비(정광3년 비액, 비음) 40. 번가희비(정광2년) 41. 정도충묘지(정광3년) 42. 마명사근법사비(정광4년, 비액) 43. 고정비(정광4년, 양문 전액) 44. 경주자사육희도묘지명(정광4년, 전서, 하남성 맹현) 45. 국언운묘지(정광4년, 덮개) 46. 이초묘지명(정광5년) 47. 오고려묘지(효청2년 526) 48. 60인조상(효창3년) 49. 유옥묘지명(효창3년) 50. 장현묘지(보태원년 531) 51. 원광조사진교언석인제기 52. 황보린묘지(연창4년 515.4.18) 53. 잔비3군사마치외병조장과?제명(비측에 '읍자조궤'등 잔자) 54. 잔비두릉구읍제명(비측) 55. 난헌백고회옥제명 56. 한현조조상(영희2년 533, 한법성등조상 영희3년의 잘못) 57. 원장진흥온천송(양문 전액) 58. 혜보조상 59. 장법수조상(천평2년 535) 60. 숭양사윤통비석명(천평2년 예서, 전액) 61. 사마승묘지(천평2년) 62. 법현조상(천평3년) 63. 법견법영2비구승비(천평4년, 산동성 태안) 64. 이헌묘지(원상원년 538, 직예주 보정) 65. 고담묘지명(원상2년) 66. 선정사이전경사군명(흥화2년 540) 67. 혜전조상(건의원년 528) 68. 이중선수공묘비(흥화3년 541, 왕장유 서, 전액) 69. 장사비(흥화3년, 영수부 안촌) 70. 왕성비(흥화3년) 71. 왕언묘지명(무정원년 543 전`개) 72. 주영융당풍등조천궁비(무정3년, 하남성) 73. 읍왕경조상비문(무정6년) 74. 의교석상지비(무정7년, 비측, 비음) 75. 기주자사관승송덕비(무정8년) 76. 원의호증손마야광두지환기(무정8년) 77. 왕승비

(8) 북위 북제비(550~577) 1. 읍자조사석상비(천보3년 552) 2. 최위묘지(천보4년) 3. 서문표묘송(예서) 4. 병주주부왕련처조씨묘지(천보6년, 비액) 5. 조부왕수정국사비(천보8년, 비액) 6. 주씨조상(천보8년, 대자, 소자비) 7. 부자묘비(건명원년 560, 예서, 전액) 8. 비구승업의조상잔기(건명원년 560, 예서 , 전액) 9. 준수라비(황건원년 560, 비액) 10. 석주송(태령2년 562 팔면 예서) 11. 운문법근선사탑비(태령3년) 12. 천주산명(천통원년 565, 정술조찬서) 13. 강원략조상(천통원년) 14. 방주타묘지(천통원년, 산동성 유현 곽씨 소장) 15. 위원예조상(천통원년) 16. 읍의60인비송(천통5년 예서) 17. 백인조상기(천통5년, 비 길이 1장여 매우 완호, 필획은 가늘고 힘차면 느긋하여 아름다운 것으로 당대의 저수량 서의 원류) 18. 조숭선조상(천통6년) 19. 정주자사추진지비(예서, 비측) 20. 영불암마애(무평원년 570) 21. 농동왕감효송(무평원년, 양공지 예서) 22. 주대림묘지명(무평원년, 비액), 23. 도략500인조상(필획은 가늘고 힘차며, 비도 손상되지 않았음, 북제비의 상품) 24. 진창왕당업사경비(무평3년, 예서) 25. 임회왕상비(무평4년, 예서), 26. 공조이종묘지(무평5년, 비측) 27. 영탑비(무평5년) 28. 등자사잔비(무평5년) 29. 니원조조상 30. 보덕상비(무평6년, 석선 서) 31. 마천상조상(무평6년) 32. 진류태수묘잔석(출토된 탁본을 1장 만들고 다시 땅에 묻음) 33. 예주자사양자언묘지(무평 년간) 34. 장사문조상(승광원년 577) 35. 공손문철조상 36. 화엄경보살명낙품(천여자, 필획이 정연하여 아름답다) 37. 고산석경

(9) 북조 북주비(557~581) 1. 강독낙수문왕비(원년 정축 557) 2. 하둔식묘지(보정4년 564) 3. 서옥화산묘비(천화2년 567 조문연 서, 전액) 4. 조각비(천화5년) 5. 시진묘지(선정원년 578) 6. 광주자사우문공비명 7. 이준복거기(건덕원년 572)

(10) 수비(581~616) 1. 두응통조대상기잔석(개황2년 582 직예정정촌 숭인사에 있음) 2. 조분비잔석(개황5년, 2석) 3. 중사나30인조교비(개활6년, 비액) 4. 용장사비(개황6년) 5. 옥휘아조상(목자용비의 분위기) 6. 석굴사수불경석상비(개황13년) 7. 조자건비(개황13년) 8. 혜운법사묘지(개황14년) 9. 공빈묘지(개황15년 전`개) 10. 형효례묘지(개황15년) 11. 하약희비(개활15년, 전액, 개활16년의 잘못) 12. 이씨상비송(개황16년, 전액) 13. 장통처아묘지(개황17년) 14. 미인동씨묘지(개활17년) 15. 안희공이사군비(개활17년, 전액) 16, 용산공장질묘지(개활20년) 17. 풍수석교찬문비(개황?년 전액) 18. 청주승복사사리탑하명(인수 원년 601, 맹필 예서, 비액) 19. 공문선령묘비(인수원년, 예서, 전액, 비문 완호) 20. 신주금륜사탑하명(인수2년) 21. 소자묘지명(인수3년) 22. 등주대흥국사사리탑하명(인수2년) 23. 조예묘지(마애, 인??년) 24. 의동왕군묘지(대업 원년 605, 직예주 정주) 25. 유진묘지(대업2년, 예서, 비측과 명) 26. 당고조위태종조상(대업2년) 27. 오엄묘지(대업4년, 전`개) 28. 영찬비(대업5년 전액) 29. 수공자묘비(대업7년, 예서, 전액) 30. 이군서?조비(대업7년) 31. 요변묘지명(대업7년 구양순의 서, 송대인 중각) 32. 원지묘지명(대업11년) 33. 태복어경부인희씨묘지(대업11년) 34. 송영귀묘지(대업12년) 35. 융산군승업도량비 36. 덕양공량공비(전액) 37. 하동수산군승업도량사리탑명(전액) 38. 청주장비잔석 39. 이정상서악문(송대인 위작, 동유는 대업 말년으로 추정. 출토되어 오래된 것) 40. 조문종잔비 41. 강산마애(위`제`주`수 모두 마애가 많으나 제대에 대단히 많음. 포세신이 <<예주쌍즙>>의 <역하필담>, <논서12절구>에서 뛰어난 작품이라 칭찬하고 있는 <반야경>은 마애 중에 있음) 42. 첨산마애 43. 철산마애

이상에서 비명을 열거한 것은 백원한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 서를 배우고자 생각하여도 아직 비명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쓴 것. 박식한 서가나 금석의 수집에 유명한 사람이나, 구양수와 조명성(송대인, 구양수의 <집고록>의 예에 모방하여 <금석록>을 만듦) 이래의 전통을 계승하여 보석과 같이 굉장한 비문을 많이 모으고 있는 사람이나, 각 왕조의 비문을 저록하여 널리 요`금의 시대 것까지 모으고,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멀리 외국의 것까지도 저록하여 자기도 저서를 출판하고 있는 사람에게 읽어달라고 생각 않음

여기에 수록하고 있는 비명은 대단히 적은바, 만일 너무 많이 모아서 어느 것을 고르면 좋을지 모르거나 전부를 임서하여 배우는 것이 어렵게 생각되든지 이것 저것 눈이 팔려서 무엇으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모를 때에는, 다시 그 속에서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이 중요함.

비문의 서열이나 유파마다의 평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엄밀하게 우열이 붙여져 있으나, 반드시 전부를 구입하여서 차분히 감상하여야 할 것. 여러가지 비문을 아직 보지 못한 사람이나 명가의 핍법에 아직 숙달하지 못한 자가 경솔하게 서에 관하여 말하는 의견 따위는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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