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 안녕, 모란
전시기간 : 2021-07-07 ~ 2021-10-31
전시장소 : 2층 기획전시실
모란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실과 민간을 막론하고 식물 자체는 물론 무늬로도 오랫동안 사랑받았습니다. 조선 왕실에서도 풍요와 영화로움이 깃들기를 기원하며 궁궐이나 생활용품을 꾸밀 때 용과 봉황, 거북에 견줄 만큼 모란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모란에 담긴 의미는 살아서의 부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조선 왕실에서는 왕실 인물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무늬로 모란을 썼습니다. 왕실 흉례 때 고인의 시신과 혼이 자리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모란도 병풍을 둘러 고인을 지키고, 죽음 후 조상신이 된 국왕과 왕비가 나라에 영원한 안녕과 번영을 가져와줄 것을 기원했습니다.이번 전시에서는 조선 왕실에서 모란이라는 식물과 그 무늬를 어떻게 향유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모란에 담긴 다양한 상징을 소개합니다. 제목 “안녕, 모란”은 서로에게 안부를 물으며 건네는 인사이기도 하고, 조선 왕실의 안녕을 빌었던 모란무늬처럼 우리 모두의 안녕을 비는 주문이기도 합니다. 모란 그 크고 화려한 꽃송이에, 그 화사한 향기 속에 여러분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서로의 안녕을 기원해 봅니다.
* https://youtu.be/9phzx2NQAGc
Ⅰ. 가꾸고 즐기다
Growing and Enjoying Peonies
신라 진평왕眞平王(재위 579~632년) 대에 한반도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모란은 고려시대 궁중과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고려사高麗史』 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국왕이 신하들과 함께 궐 안에 핀 모란을 감상하였다는 기록이 다수 전해진다. 또한 모란에 대한 시가 여러 편 남아 있어 모란을 향유하던 풍조를 엿볼 수 있다. 모란은 관상용 식물로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사랑받았다. 조선 전기부터 궁궐 후원이나 종친宗親들의 이름난 정원에 심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원예 취미의 확산과 더불어 저술된 다양한 원예서에도 빠짐없이 등장했다.모란에 대한 애호는 모란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특히 18세기 화훼화花卉畫의 유행, 식물에 대한 박물학적 관심이 증대하는 가운데 모란이 그려지기 시작해 19세기에 절정을 이뤘다. 한편 민간에서는 모란이 상징하는 부귀화의 염원을 담은 모란도가 크게 성행하여 민화民畫의 대표 주제로 자리 잡았다.
심사정이 그린 모란 · 새 그림[墨牧丹圖], 조선(1767년), 종이에 먹, 136.4*58.2cm, 국립중앙박물관/ 남계우가 그린 모란 · 나비 그림[花蝶圖] 부분도, 조선(19세기 후반), 종이에 먹과 채색, 122*28*8cm, 국립중앙박물관/ 남계우가 그린 모란 · 나비 그림[群蝶圖], 조선(19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125*27.1cm, 선문대학교 박물관
남계우가 그린 모란 · 나비 그림[花蝶圖] 상단에 모란[牧丹]에 관한 글을 적었다.
“天香夜染衣(천향야염의) 밤에는 하늘의 향기가 옷깃을 물들이고
國色朝酣酒(국색조감주) 아침에는 천하제일 미녀가 술에 취한 듯하네
唐中書舍人 李正封牧丹詩也(당중서사인 이정봉목단시야) 당나라 중서사인 이정봉의 모란시이다
自然有富貴繁華氣象(자연유부귀번화기상) 당시에 제일이라 칭했다.
當時稱爲第一(당시칭위제일) 일호예인이 월홍소방에서 쓴다.
一濠*藝人書于月虹小舫(일호예인서우월홍소방) 일호예인이 월홍소방에서 쓴다“
* 남계호의 호
“하늘의 향기(天香: 하늘에서 내려진 향기라는 것인데 대단히 좋은 향기라는 뜻으로, ‘모란’을 두고 중국인이 일컫는 말 가운데 대표적인 찬사)는 밤새워 옷에 물들인 듯 향기롭고
나라의 색(國色: 傾國之色-나라 가운데서 제일가는 미인이란 뜻)은 아침부터 통쾌하게 마신 듯(酣: 즐길 감) 붉네.”
당나라 현종이 모란꽃을 감상하며 즐기다가 "모란을 읊은 시 가운데 누구의 것이 가장 훌륭한가"라고 물으니 경종 이정봉李正封 시인이 쓴 ‘모란시’이다.
이 시를 본 현종은 뜻밖의 생각에 미쳐 곧 귀비에게 거울 앞에서 황금의 술잔을 들고 시의 뜻에 맞는 포즈를 취하게 하고는 만열滿悅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모란의 짙고 아름다운 자태를 '국색천향國色天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Ⅱ. 무늬로 피어나다
Blooming Peonies as Designs
꽃과 괴석을 그린 그림[花卉怪石圖], 조선(19세기 후반), 123*46cm, 서울역사박물관
한 폭에는 모란을, 다른 한 폭에는 찔레꽃과 등나무꽃을 괴석과 함께 그린 장식화이다. 고종高宗(재위 1863-1907년)의 아버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의 거처였던 운현궁雲峴宮 虜樂堂 도배지 속에서 발견되었다. 두 폭이 마주보는 면 중간에 잘려 나간 부분이 있어, 벽장문을 장식했던 그림으로 보인다.
중국 오대五代(10세기) 때 처음 나타난 모란무늬는 대표적인 길상무늬 중의 하나로 동아시아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민간과 왕실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사랑받았다. 모란무늬가 길상무늬로 자리 잡은 데에는 연꽃을 꽃 중의 군자君子로, 모란을 부귀富貴한 자로 비유한 송宋 대 주돈이周敦頤(1017~1073년)가 저술한 「애련설愛蓮說」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모란무늬는 고려시대부터 성행하기 시작해 조선 말, 대한제국까지 꾸준히 쓰였다.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각종 의례·생활용품 등에도 모란무늬를 즐겨 장식하였다. 특히 행복한 삶에 대한 축원으로 가득한 혼례婚禮와 관련된 의복, 부채, 병풍 등 여러 물건에 모란은 주된 장식 무늬로 사용되었다. 19세기 이후 벽사闢邪와 기복祈福의 풍조가 강하게 나타나 다양한 길상무늬가 크게 유행하는 가운데 모란의 길상성 또한 더욱 강조되어, 각종 생활용품과 공예, 건축물 등의 장식에 그 어느 시기보다도 풍성하고 화려한 자태로 피어났다.
백자 청화 무란무늬 항아리[白磁靑畵牧丹文壺], 조선(1851년경),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청화 모란무늬 합[白磁靑畵牧丹文盒], 조선(19세기), 서울역사박물관
백자 청화 모란 · 나비무늬 병[白磁靑畵牧丹蝶文壺], 조선(19세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백자 청화 모란무늬 주전자[白磁靑畵牧丹文注子], 조선(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봉황 · 길상무늬 보자기[鳳凰引文袱], 조선, 마에 채색/
봉황 · 길상무늬 보자기[鳳凰引文袱], 조선, 마에 채색/
꽃 · 나비 · 새무늬 · 보자기[花鳥蝶文袱], 조선, 비단, 영친왕비 유품, 국가민속문화재
Ⅲ. 왕실의 안녕과 나라의 번영을 빌다
Peonies Embodying Wishes for a Peaceful Royal Court and a Prosperous Dynasty
모란은 조선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강조하는 도상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조선 궁궐의 장식 그림으로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만큼이나 많이 그려진 것이 바로 모란도牧丹圖였다. 특히 모란도 병풍은 왕실 조상을 섬기는 의례에 중요하게 사용되어 왕실과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흉례凶禮는 고인이 된 국왕과 왕비를 왕실과 나라를 돌보는 조상신으로 모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흉례의 각 절차마다 고인의 시신이나 혼魂이 자리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모란도 병풍을 설치했다. 역대 국왕의 어진御眞을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진전眞殿의 어탑御榻 뒤에도 으레 모란도 병풍을 두도록 했다. 그 밖에도 왕릉의 석물, 선원전璿源殿 같은 진전 건축, 왕실 사당 건축의 곳곳에 모란무늬를 조각해 장식했으며, 신주를 놓는 의자[교의交倚], 부장품을 운반하는 가마[채여彩轝],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신여神轝] 등에서도 모란 장식을 확인할 수 있다.
모란도 병풍 牧丹圖屛 Folding Screen with Peonies
모란이 뿌리에서 뻗어 올라가는 모습을 화면 가득 반복적으로 그린 병풍이다. 모란도 병풍은 혼인이나 잔치와 같은 왕실의 경사 때도 설치했으나 왕실 상장례의 주요 절차마다 쓰였다. 특히 망자의 관 주위, 신주를 모신 교의 주위 등에 둘러쳤는데 4폭과 8폭의 병풍을 주로 사용하였다. 모란도 병풍은 정형화된 형태의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 폭마다 괴석 사이 혹은 흙 언덕 위로 자란 모란 꽃송이들을 가득 표현했다.
* https://youtu.be/eu9qdjFFYTs
* https://youtu.be/8TEzKlYxx9I
괴석모란도병풍(怪石牡丹圖屛風), 조선(19세기~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팔폭병풍 각 폭 세로: 202.4cm, 가로: 52.5cm | 화면 각 폭 세로: 167.3cm, 가로: 45cm
탐스러운 꽃송이들이 달린 모란 줄기가 가득찬 여러 폭의 화면으로 구성된 그림이다. 비슷한 형태의 도안화된 그림이 각 폭에 반복되고 있으며 장식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모란도병풍은 4폭 · 6폭 · 8폭의 형태이며, 병풍 높이가 3m 이상일 정도로 대형인 것도 있다. 모란 줄기만 그린 것과 모란 줄기가 올라오는 지면에 괴석이 놓여 있는 형태로 그린 것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세부적으로 조금씩 다른 화풍이 구사된 것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수직적인 구도와 평면적이고 도식적인 화풍을 보여 준다. 모란꽃은 크고 화려한 모양 덕분에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왔으며 꽃 중의 왕이라는 뜻의 ‘화왕(花王)’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왕실에서는 부귀라는 본래의 상징 의미를 넘어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상징을 담은 모란 그림을 큰 규모의 병풍으로 만들어 중요한 의례에 사용하였다. 모란도병풍은 가례(嘉禮)와 같은 경사스러운 일뿐 아니라 국장(國葬)과 같은 흉례(凶禮) 때와 왕실 사당인 종묘(宗廟)에서 여러 가지 의례를 올릴 때, 그리고 진전(眞殿)에 왕의 어진(御眞)을 봉안할 때에도 사용되었다.
모란도병풍(牡丹圖 屛風) 부분도
화조도병풍[花鳥圖屛風], 19-20세기 초, 4폭 병풍, 국립고궁박물관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정보/ 《원색한국식물도감(이영노.교학사)》,《한국의 자원식물(김태정.서울대학교출판부)》,《Daum, Naver 지식백과》, 글과 생태사진: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무원 정ㅎㅖ련
선생님
김영랑 시인의 시를 생각께하는 우아한 자태의 모란 보러 가야겠네요..
날마다 좋은 소식 주시는 샘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토당 송국진 교장선생님
모란의 화사한 향기속에 이선생님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카친 이종길님
김영랑 시인의 시를 생각께하는 우아한 자태의 모란 보러 가야겠네요..
날마다 좋은 소식 주시는 샘의 안녕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