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어떻게
발전해야 할까?
2008년 7월 16일 밤, 아고라 필명 ‘2호선콩나물’이 읽고 도움을 받은 글들 모음.
☮순서
1. 광장이여, 무엇을 할 것인가 [한겨레21 717호] 1쪽
2. 촛불집회에 관한 단상 _진중권 4쪽
3. "이명박은 우리 마음 속에서 이미 하야했다" _김종엽 8쪽
4. '헌법1조'에 '권리의 댓글'을 답시다 [기고] 제헌절을 '시민인권선언'의 날로 만들자 _김정아 11쪽
5. 촛불이 만든 이중권력, 어떻게 확장해야 할까? [기고] "한시적 '서민공공성 국민연대' 필요하다" _오건호 13쪽
6. 2008년 촛불봉기: 다중이 그려내는 새로운 유형의 혁명 _조정환 16쪽
촛불은 어떻게
발전해야 할까?
2008년 7월 16일 밤, 아고라 필명 ‘2호선콩나물’이 읽고 도움을 받은 글들 모음.
☮순서
1. 광장이여, 무엇을 할 것인가 [한겨레21 717호] 1쪽
2. 촛불집회에 관한 단상 _진중권 4쪽
3. "이명박은 우리 마음 속에서 이미 하야했다" _김종엽 8쪽
4. '헌법1조'에 '권리의 댓글'을 답시다 [기고] 제헌절을 '시민인권선언'의 날로 만들자 _김정아 11쪽
5. 촛불이 만든 이중권력, 어떻게 확장해야 할까? [기고] "한시적 '서민공공성 국민연대' 필요하다" _오건호 13쪽
6. 2008년 촛불봉기: 다중이 그려내는 새로운 유형의 혁명 _조정환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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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장이여, 무엇을 할 것인가 [한겨레21 717호], 2008년 7월 3일.
분노 지수 올라가며 시민들의 논쟁도 거세져… 생활정치의 다른 영역으로 이어질 방법 찾아야
▣ 글 박수진 기자 ▣ 사진 박승화 기자
“밀고 들어갈 때 버티는 놈은 무조건 체포해.”
6월25일 저녁 7시 서울 효자로 경복궁 지하철역 근처에서 한 경찰이 무전기에 내뱉은 말이다. 인도에 있던 구봉성(33)씨는 두 귀를 의심했다. 차도에 있던 전경들이 인도로 밀고 들어왔다. 시민들은 “인도까지 왜 점거하냐” “우리더러 도로 불법 점거라고 불법성 운운하더니, 너희는 왜 인도를 막는 거냐”고 외치며 몸으로 버텼다. 한 시민이 열받은 김에 담배 연기를 전경을 향해 내뿜었다. 곧바로 “채증해”라는 말이 돌아왔다. 몇몇 여성들이 “그래도 수고한다. 전경들 덥겠다”며 가지고 있던 종이로 전경에게 부채질을 해줬다. 경찰은 이번에도 “채증해”라는 말과 함께 카메라를 들이댔다.
“계엄 흉내내는 거야?” “정부 무개념”
이날 밤 12시가 좀 지난 시각부터는 광화문 사거리 금강제화 앞, 새문안교회 주차장 뒤편 등에서 살수차가 동원돼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살수차는 지난 6월1일 새벽 경찰의 강경진압 논란을 부른 뒤 다시 살수차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다. 바로 전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김경한 법무부 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각료들이 엄정 대처 방침으로 즉각 화답했다. 그로부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살수차가 등장한 것이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둘러싼 곳곳에서 살수차·소화기·짱돌까지 ‘진압 3종 세트’가 거리를 채웠다. “계엄 흉내내는 거야?” 시민들은 지나가면서 ‘엄혹한’ 거리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굴하지 않고 ‘맞장’ 떴다. 한번 물을 뿌리기 시작하면 10여 분은 계속되는 살수차 호스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맞섰다. 수원에서 올라온 박지영(34)씨는 우비를 입고 살수차의 물이 멈출 때까지 여러 사람들과 팔을 겯고 자리를 지켰다. “도망가는 것은 정부가 원하는 거잖아요. 원하는 대로 하고 싶지 않아요. 물쯤이야, 좀 참죠, 뭐.” 살수차에서 뿜어져나오던 물이 멈추자 한숨 돌린 박씨가 머리를 털며 말했다. “진짜 오늘은 올 생각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아기 엄마도 연행했다잖아요. 12살 초등학생도 연행하고, 거기다가 국회의원도 연행하고. 정부가 요샛말로 무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살수차가 텅 빈 물탱크를 채울 동안, 박씨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경찰의 강경 대처에 따라 시민들의 분노 지수도 올라가고 있다. 공사에 다니는 오아무개(31)씨는 6월25일 세 번째 거리로 나왔다. 오씨가 말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청계천이나 버스 전용차선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에 추진해왔던 정책에 대해서 찬성했기 때문에 그를 뽑았다. 그런데 지금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사안에서 이명박 정부는 ‘막가파’ 식으로 귀를 닫고 대응한다. 정부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아 두렵다.” 두 달 가까이 꾸준히 촛불집회에 참석해온 직장인 오성진(27)씨는 “이제 시위 양상이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씨는 “대책이라고 내놓은 추가협상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면서, 추가협상 끝나자마자 불법 폭력시위를 엄정 대처한다니 뒷골이 확 땅겼다”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시민들도 저항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분노의 지수가 올라가면서 시민들의 논쟁은 거세졌다. 25일엔 시민에게 전경이 끌려나오기도 했다. 전경이 방패로 시민을 때리려고 하면, 일거에 여러 명의 시민이 달려들어 전경을 저지하고 끌어내기도 했다. 대열에서 이탈된 전경을 둘러싼 시민은 “전경을 고이 돌려보내자” “연행자와 바꾸자” 논쟁을 벌였다. 경찰 차벽에 대항하는 모래주머니를 쌓을 때도 “쌓자” “말자” 논란이 일고, 비탈진 새문안교회 뒷길에서 전경버스를 끌어낼 때도 “위험하다. 끌어내면 안 된다. 이제 버스 끌어내기는 그만하자”는 주장과 “끌어내서 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촛불집회에 모여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광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민인권선언을 만들어야”
더 격하고 뜨거워진 촛불의 미래는 어떨까.
배성인 한신대 연구교수는 “이런 다양한 논쟁은 촛불집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종다양한 배경과 기반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며 “이 촛불이 누구인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도 26일 제주도에서 열린 2008 제주인권학술회의에서 “촛불집회의 시민들은 새로운 정치 주체의 출현이기보다는 맥락에 따라서 달라지는 다의적 주체성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촛불집회에 모인 대중에 대해 지나치게 정치적 낭만화를 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사람들이 이번 경험을 통해 ‘0교시, 영어몰입교육’ 등에 대한 문제의식, 민영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어느 정도 공유하게 됐다”며 “그간 투기자본이나 특정 기업을 감시하는 소비자 운동이 소비자 운동단체의 대리를 통해 이루어졌다면 이번엔 시민들 스스로가 조·중·동 등 언론기업을 감시하는 자기주체적 소비운동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이번 촛불의 의미를 평가했다. 이러한 자기주체성이 생활정치의 다른 영역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촛불의 열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서울시로 보자면 대표적인 것이 오는 7월30일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다. 서울시교육감은 6조원이 넘는 예산 운용권, 1200개가 넘는 초·중·고 교장 임명권, 교원 인사권, 교육청 직원 인사권 등을 갖고 있다. 이원재 사무처장은 “현재 이명박 정부가 내건 교육 정책의 방향과 같은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많이 후보로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시민들이 교육 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찾아내고 이를 선거에서 구현한다면 촛불의 열정이 생활정치로 이어지는 좋은 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운동단체들은 촛불이 이어지기 위해 헌법적 가치의 재발견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은 모두 헌법적 권리다. 국가로부터 건강을 보장받을 건강권(헌법 36조), 모두가 공평하게 교육받을 교육권(헌법 31조), 인간다운 삶을 운영하기 위해 전기·수도·의료서비스 등 기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권리(헌법 34조) 등이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지금 요구되고 있는 권리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헌법적 권리인데, 이 권리들이 침해되자 모두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이라며 “이 촛불이 무색하지 않으려면, 세계인권선언처럼 거리에 모인 모든 시민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꼭 보장해야 할 것들을 꼼꼼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한 ‘시민인권선언’을 만들고 이에 대해 도덕적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 모든 것이 특정 단체의 주도 아래서 이루어진다면 의미가 없고 온·오프라인 광장에서 방법을 찾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촛불의 동력이 떨어진 것 아니냐”라고 거리에서 질문하면 시민들은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6월25일 새벽 1시. 서점에서 일하는 강아무개(31·여)씨는 시민들과 전경들이 돌을 주고받는 투석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사실 몸은 지친다. 마음도 지쳐간다. 한동안 안 나왔었다. 재협상에 기대를 걸었다. 비도 오고 마음을 쉬는 중이었다. 그런데 협상문도 공개하지 않고 관보 게재를 강행한다니, 좌절스럽다. 사람들이 줄었다고 민심이 줄어든 것은 아닌데, 정부의 행태를 보고 아찔한 마음에 나왔다”고 말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30대 초반의 여성은 “도서관에 오는 엄마들의 이야기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전에 촛불집회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던 주부들도 “한번 나가봐야 하는 것 아닐까” “애들이 가고 싶어하는데 데리고 가볼까” 등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배성인 교수는 “촛불이 두 달째 광화문 차량을 돌아가게 하고 있지만, 불평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며 “실제 촛불을 들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국민이 촛불을 지지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동력이 떨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촛불 동력 떨어졌다고 보기 힘들어
촛불은 두 달째 의연히 불을 밝히고 있다. 국민들은 매일같이 온·오프라인 광장을 통해 마음에 촛불을 켜고 건강권, 교육권 등 기본적인 권리와 함께 자신이 뽑은 대표가 자신의 뜻과 어긋나지 않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감시할 참정권을 요구해왔다. 촛불이 쉽게 꺼질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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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촛불집회에 관한 단상 _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2008년 7월 7일,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에서.
이제까지는 현장 리포터로 상황을 따라가는 데에 주력했기에, 몰려드는 모든 방송, 신문, 잡지 인터뷰들을 다 끊고 견해 표명을 삼가왔습니다. 사실 저는 리포터에 불과하고, 촛불집회는 대중의 반란이자 축제이기 때문에 제가 이리로 가자, 저리로 가자 훈수를 두는 게 주제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개인이 촛불정국에서 필요이상으로 부각되는 데에 대한 우려도 있었구요. 이제는 리포터이자 동시에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참가자의 입장에서 조심스레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 때인 것 같습니다.
1.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관해서 말하자면, 수입이 일단 재개됐기 때문에 재협상을 요구하는 집회와 별도로 일상적 투쟁을 조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곧이 제 돈 내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겠다는 사람들을 말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선택 또한 존중받아야 하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원하지 않는데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일 겁니다. 말하자면 쇠고기를 사먹을 때, 미국산 쇠고기인줄 모르고 사먹거나, 미국산 쇠고기로 속아서 사먹는 일을 막는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정부가 내다버린 소비자의 선택권을 시민들이 스스로 확보하는 과제지요.
송기호 변호사가 주장한 것처럼 국내산 한우의 전수검사의 도입과 같은 의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소비자 운동의 관점에서는, 비록 쇠고기를 적게 먹더라도 질 좋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먹는 쪽으로 발상의 전환을 일으키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값싼 미국산 쇠고기 먹을 사람들은 대부분 돈 없는 서민일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에서 안전하지 않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인격과 인권의 문제입니다. '배부른 소리 한다'는 천박한 생각을 넘어, 식생활의 생태적 전환은 서민의 당당한 권리에 속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생산자 운동의 관점에서는 몰려드는 미국산 쇠고기에 맞서 한국 축산업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정당과 시민단체에 속한 전문가들이 맡아줘야겠지요. 식량이 자원화, 무기화되는 상황에서 선진국들은 식량자급률을 계속 높여나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값싸지만 그다지 안전하지 못한 외국산 농축산물의 공세에 한국의 농업은 몰락해 가고 있습니다. "농촌에도 CEO가 필요하다" 어쩌구 하는 명박스러움을 넘어, 생태적 전환을 한국 농업의 회생을 위한 계기로 만드는 정책의 생산이 필요합니다. 이는 물론 위의 소비자 운동과 연동되어야겠지요. (이 부분은 저보다 잘 아는 분이 상세히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2.
미국산 쇠고기 반대운동을 일상적인 농산물 생산과 소비의 생태주의적 전환운동을 승화시키는 것과 더불어, 촛불집회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촛불집회를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실제로 한겨레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제의식에는 여전히 공감하나, 촛불집회의 계속에는 반대한다고 대답한 수치가 촛불집회를 계속해야 한다는 수치와 엇비슷하게 나옵니다.) 이는 촛불집회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언젠가 집회 참가자들이 여론으로부터 고립되어 버릴 것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종교계의 가세로 촛불집회가 연장이 되긴 했지만, 그 효과는 영속적인 게 아니죠.
게다가 두 달 넘게 촛불집회를 하느라, 시민들이 많이 지치기도 했지요. 이제 촛불집회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양적 관점에서 질적 관점으로 시각을 전환해야 합니다. 평시에는 참가자의 에너지 소모를 막고, 촛불시위로 불편을 입는 운전자나 주변상인들의 민원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소규모로 준법시위를 벌여야 한다고 봅니다. 집회가 끝나면, 그 동안 집회로 타격을 입었던 음식점에서 뒤풀이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청계광장이든, 시청앞이든, 아주 조그만 문화제 형식으로 촛불시위를 이어나감으로써 '촛불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매번 집회를 할 때마다 뭔가 다른 형식을 선보이는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다가 가령 집중집회가 잡혀있는 7월 12일 같은 주말이나, 그 밖에 이 이슈와 관련하여 특별한 계기가 생길 때에는 언제라도 다시 결집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입니다. 청와대로 가기 위해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도 좋지만, 청와대 가는 800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았던 촛불소녀들의 창의력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상상력으로 명박산성을 넘지 않았던가요?
3.
어차피 반성하지 않는 정권, 앞으로 4년 내내 길 밖으로 쏟아져 나올 일이 계속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이야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의제의 확산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의제의 확산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제가 촛불집회 처음부터 강조했고, 또 얼마 전에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지적했듯이, 촛불집회의 바탕에는 '쇠고기 문제보다 더 깊은 분노'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분노는,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대기업에서 자동차 몇 대 더 파느냐', 아니면 '국민의 생명권을 더 중시하느냐'의 선택지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전자를 선택한 정권의 천박한 시장주의 이념에 대한 반감입니다.
이는 쇠고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을 인격이 아닌 생산의 투입요소로 보아 소모적인 경쟁(그것도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70년대 방식)으로 몰아넣는 미친 교육, 시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한 의료의 공공성을 간단히 '산업'의 논리로 무력화시키는 위험한 발상, 시민의 생존권의 영역에 속하는 물과 에너지를 공공재가 아닌 상품으로 팔아먹겠다는 천박한 사고.... 촛불집회는 이 모든 명박스러움에 대한 반발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촛불집회를 통해 확인된 시민의 힘을, 이명박 정권이라는 시장주의 탈레반들과의 싸움에서 사회적 공공성을 수호하기 위한 저항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이명박 정권의 태도로 볼 때, 이 싸움 어차피 다양한 이슈를 놓고 4년 내내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온라인의 네티즌들, 오프라인의 시민단체들, 그리고 야당의 위치에 있는 여러 정당들의 헙력으로, 장기적인 저항의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 무슨 국민본부 같은 단체를 결성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오프라인의 구심점 없이 이제까지 촛불집회가 그렇게 진행되어 온 처럼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움직이되, 이제까지와는 다른 뭔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미하는 형태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는 또 다른 대안이 있을 수도 있겠구요.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가 될지는 네티즌들의 대중지성에 맡겨 보려 합니다.
4.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를 저지하는 것이겠지요. 이미 아고라의 일부 네티즌들은 시청에서 KBS, MBC, YTN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의제와 확장은, 누가 지시하거나 명령할 것도 없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조중동을 타격하기 위한 '숙제'를 열심히 하는 것, 경향, 한겨레, 시사IN,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다음과 같은 포털 사이트를 돕는 활동도 이 사회의 언론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상적 활동이겠지요. 이번에 조중동이 엄청나게 타격을 입기는 한 모양입니다. 다음의 기사를 끊을 정도로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십시요. ㅋㅋㅋ....
다른 하나는 7월 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입니다. 총선, 대선이 4, 5년 남은 이상, 시민들이 정권을 합법적으로 심판할 유일한 기회입니다. 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이명박 정권의 미친 교육을 심판한다면, 두 달 동안의 촛불집회가 절반의 승리에 그치고 만 데서 비롯된 시민들의 좌절감을 상당 부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4, 5년 동안의 장기전을 위한 자신감을 심어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싸움이지요. 아직 공식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진보신당과 칼라TV의 분위기도 법이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이 싸움을 최대한 도우려 하는 쪽입니다.
다른 한편, 민주노총, 특히 화물연대나 금속노조의 파업을 통해 촛불과 노동운동 사이의 연대가 확인되었습니다. 물론 노조의 파업에 대한 지지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번 촛불집회가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서로 처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이랜드, 기륭전자, KTX 여승무원 노조와 같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촛불 속에 묻혀 버린 것입니다. 이번 촛불집회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같이 참여했다는 점, 잊지 맙시다. 그리고 이들의 처지가 곧 나의 처지요, 우리가 낳은 아이들의 처지입니다. 촛불집회를 통해 얻어진 연대의 정신이 앞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겟습니다.
5.
이 모두가 실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대의제는 간접 민주주의라, 국민의 의사가 왜곡되는 제도적 한계를 안고 있지요.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 80%가 반대하는 정책을 강행하는 극단성을 보이는 것은 대의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운용하는 가운데 거기에 내재된 위험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현상이라 봅니다. 국민의 80%라면, 심지어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찍었던 사람들마저 배신당했다는 얘기죠. 그것은 대한민국 정당들 중에 제대로 된 놈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창조한국당이든, 아니면 진보신당이든, 자기의 정치적 정체성에 맞는 정당에 가입하셔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셨으면 합니다. 정치에 대한 혐오증이 이명박이라는 혐오스러운 대통령을 낳았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이 문제,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 아닙니다. (이른바 명빠들 중에는 지역감정의 노예가 되어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전라디언'이라 부르는 저질들이 많더군요. 이 모두가 한국의 정당정치가 얼마나 왜곡됐는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고 우리의 아이들에게까지 이런 후진적 정치를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왜? 이 후진적 정치가 우리 삶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이미 체험해 보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대안은 거리에서 찾아질 수 없습니다. 해결책은 어차피 정책이라는 형태로 수립되고, 법률이라는 형태로 고정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정당 자체를 바로잡고, 나아가 보수 일색의 정당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아마 몇 십 년 후에 우리의 아이들마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겁니다.
6.
형식적이긴 하지만 대통령이 두 번 사과를 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랴부랴 추가협상을 하여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들여온다고 합니다. 촛불에 놀라 정부에서는 수도와 전기, 의료의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대운하도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물론 벌써부터 딴 소리가 흘러나오지만, 정부에서 공언을 해놓고 나중에 다시 추진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그때는 아마 '이명박 퇴진'이라는 구호가 상징적 구호를 넘어 현실적 요구가 될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이명박씨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운동이 벌어질 것이고, 또 그를 정말로 끌어내릴 겁니다. 절반의 승리라고 할까요?
하지만 촛불이 거둔 성과는 정작 다른 데에 있습니다. 이제까지 정치에 관심 없던 시민들이 드디어 정치가 자신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정당이나 단체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창의성으로 정치의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직접 경찰에 맞서다가 위협당하고, 연행 당하고, 폭행당하고, 구속당하면서 시민이 주권을 잃으면 국가권력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는지 생생히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가 자신들의 정치적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절실히 깨닫고, 자신을 정치적 주체로 세워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촛불이 거둔 승리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들은 '냄비'를 얘기합니다. 그런데 어떤 냄비가 두 달을 끓습니까? 나중에는 자기들도 지겨워할 정도로 그만 좀 끓으라고 애원을 하지 않습디까? 촛불집회를 통해 시민들은 쉽게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는 냄비가 아니라, 한번 끓으면 두 달 동안 지글거리는 뚝배기임을 입증해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진짜 뚝배기가 되려면,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 일상의 실천 속에서도 열기와 온기를 보존할 때, 그때 시민들은 진정한 뚝배기가 될 것입니다.
스크롤 압박을 주는 긴 글, 읽어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진보신당과 칼라티비는 촛불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 끝까지 동참하고, 수 십 만개의 촛불이 빛나는 영광스러운 순간만이 아니라, 수백 개의 촛불이 권력과 보수언론의 파상공세를 받는 어려울 때에도 촛불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3. "이명박은 우리 마음 속에서 이미 하야했다" _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08년 7월 9일, [창비주간논평]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에서.
6월 10일에 이어 7월 5일에도 다시 한번 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촛불로 넘실거렸다. 하지만 두 집회 사이에는 의미 있는 차이가 존재한다. 6월 10일에 사람들은 청와대를 향해 서 있었다. 하지만 7월 5일 사람들은 냉담하게 청와대를 등지고 앉아 집회를 진행했다. 사람들은 더이상 불법주차된 전경차를 견인하려 하지조차 않았다. 그리고 촛불이 이미 승리했음을 선포했다.
그렇다. 촛불은 이미 승리했다. 촛불이 켜지던 첫날에 교복 입은 여중생들이 "미친 소, 너나 먹어"라고 단호하게 외치던 그때 이미 승리했고, 72시간 릴레이 투쟁을 벌여나갔을 때 이미 승리했으며, 6월 10일 거대한 촛불의 강을 이루고 스티로폼 계단을 쌓아 밤샘토론 끝에 명박산성에 올라 깃발을 흔들었을 때 이미 승리했고, 국민토성을 쌓아 명박산성을 비웃고 형형색색의 비옷을 입고 아리랑을 부르며 아침을 맞는 기차놀이를 할 때 승리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평화롭게 행진하고 토론하고 노래 부르고 놀았을 때 우리는 이미 승리한 것이다.
촛불항쟁을 관통하는 쇠고기, 대운하, 건강보험, 교육, 수돗물, 공영방송 같은 이슈들은 하나같이 생명을 중심축으로 선회한다. 촛불은 이 생명의 정치를 공생의 정치로 고양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동고동락하는 기쁨을 얻었다. 그러니 이미 승리한 것이다.
촛불은 이미 승리했다
아직 구체적 성과도 얻지 못했는데 벌써 승리를 말하는 것이 공허하다고, 그것은 한낱 상징적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촛불은 이명박 정부의 행보를 다 막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당황하게 하고 대운하나 민영화 같은 잘못된 중요정책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이미 구체적 성과를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징적 승리 자체가 현실적 승리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촛불이 보여준 상상력과 자기표현의 엄청난 분출, 끈기있고 진지한 토론과 성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실시간으로 통합하고 활용하는 능력, 실천적 자기통제력, 유희와 항쟁을 결합하는 여유는 5공시절 허문도식 언론통제 그리고 강경대와 김귀정을 때려죽인 공안정국에 대한 낡은 추억 주변을 맴돌고 있는 정부를 한참 능가했다.
이런 지적·도덕적 승리가 명백했기에, 당혹한 대통령은 립써비스일망정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는 "뼈저린 반성" 며칠 뒤 시민의 뼈를 분지르고, 7월 5일의 촛농이 굳지도 않은 6일부터 시청광장을 폐쇄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상징적 패배를 가속화하는 일이었고, 그럼으로써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마음의 상징적 좌표 안에서는 하야했다.
하지만 이런 상징적 하야 뒤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상징적 토대를 잃었기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드러날망정 여전히 막강한 제도적 권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끊임없이 휘두를 것이다. 촛불은 이런 상징과 실재의 괴리를 견뎌야 한다.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역설의 시간에 드리운 어둠을 쫓아내기 위해 계속 타올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의 물리적·제도적 폭력에 더해 촛불이 얻어낸 도덕적이고 상징적인 승리마저 침식할 여지를 줄 수 있다. 그것을 막고 한걸음 더 전진하기 위해서 지난 두달 동안 이루어졌던 촛불의 발전경향을 의식화하고 더 진화시켜야 할 때이다.
촛불은 더욱 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촛불은 이제 지구전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민적 의제를 중심에 둔 현상황에 전쟁의 메타포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유감스럽다. 하지만 그런 메타포를 떠올리게 한 것은 촛불이 아니다. 그것은 "내전" 운운하는 질 나쁜 한 소설가에 의해 그리고 산성을 쌓고 농성체제를 구축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에 의해 유도된 것이다.
지난 두달 동안 집회 참가자가 많으면 웅크리고 적으면 진격하고 맞불집회와 HID를 동원하여 소요를 일으키려 하고, 촛불이 잦아드는 기미만 보여도 몽둥이를 꺼내든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은 이미 촛불에 대항하는 지구전을 계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촛불은 이제 "그렇게까지 외쳐도 이렇게까지 벽창호일 수 있는가" 하는 울화에서 벗어나 지구전에 임하는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전방위적 탄압과 고립화 시도로 인해 촛불이 일보 혹은 이보 뒤로 밀리는 때가 올지라도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평상심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촛불의 사회운동화와 제도화를 이룩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런 방향은 지난 두달 동안의 촛불항쟁 속에서 이미 조금씩 모습을 갖추어왔던 것이다. 촛불은 조중동 같은 수구언론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사회운동을 조직했으며, 그들의 거친 반응에서 보듯이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런 활동을 더 조직적으로 "질기게" 이어나가야 하며, 이제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을 비롯하여 급식감시운동으로 확산해가야 한다.
더불어 촛불이 의제화한 교육, 의료, 공공써비스, 언론문제 등에서 사회적 퇴행을 저지하는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예컨대 7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우리는 0교시 수업을 없애는 성과를 얻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처음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여학생들에게 보답할 수 있다. 그렇게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이 불러모은 의제들 하나하나에 충실해진다면, 더디더라도 마침내 쇠고기 재협상에 이르게 될 것이며, 시민들에게 폭력을 지시한 자, 행사한 자 그리고 그것을 도운 자들을 깨끗이 심판하는 날을 맞을 수 있다.
이런 사회운동화와 더불어 그것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도 제도화가 필요하다. 촛불은 집회를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로마저 씻어낼 수는 없다. 또한 근본적으로 탈중심화된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촛불은 사람들로부터 창의력과 참여를 끊임없이 불러냈지만, 다른 한편 타자의 참여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은근한 불안을 자아낸다. 지금까지의 촛불항쟁 동안 전환점에서마다 촛불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촉발됐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불안과 피로를 없는 척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갈 길이 짧지 않으니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면 되고,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가면 된다. 이를 위해서 집회를 주말로 정례화하고 한달에 한번 집중집회를 하는 식으로 그리고 주중에는 토론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집회방식의 변화와 관리를 위해서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보다 좀더 높은 수위의 연대 기구, 이를테면 "촛불회의" 같은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제도화 속에서 나는 토론의 조직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촛불은 토론 속에서 발전해왔지만 그것이 더 심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촛불은 쇠고기 사태에서 출발하여 곧장 다른 의제들을 흡수해 5대 의제로 발전했다. 공생을 향한 이런 촛불의 학습과 진화는 그 귀결점으로 이명박정부와 조중동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한국사회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밝힘으로써 대안을 조직화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5대 의제라는 자기한정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지난 두달 동안 촛불은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노동문제를 정면으로 감당하지 않았고, 항쟁의 한가운데 있었던 6·15를 스쳐 지나갔으며, 쇠고기 문제의 뿌리인 한미FTA 문제 또한 다루려 하지 않았다. 그런 우회에 쟁점을 집약하고 우리를 최대화하려는 신중함이 서려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신중한 한정을 떨쳐야 한다. 집회에서 우리는 폭력을 완벽하게 자제해야 하지만 사유와 성찰은 거칠 것 없이 개방해야 하며, 그것을 토론에 회부해야 한다. 토론이 깊이를 더할수록 대안은 모습을 갖추어나갈 것이다.
우리 안의 속물됨을 정화하는 촛불
이런 촛불의 진화는 또한 촛불 든 이들의 진화이기도 할 것이다. 토론 속에서 우리는 전문가인 시민, 정치가인 시민이 될 것이며 내적 변화마저 이룩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지난 대선과 총선은 우리 내면의 저열한 열정과 속물성이 뛰쳐나왔던 과정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과와 거짓말로 얼룩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뉴타운에 현혹되어 더 나은 후보들을 줄줄이 낙선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우리 안의 속물됨을 촛불로 정화해야 한다. 나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집회 중에 자신이 든 촛불을 응시할 때마다 마음의 평화를 느꼈을 것이다. 이 평정한 마음으로 정진하면, 세상을 밝히며 안으로도 스며드는 조용하고 따뜻한 이 촛불 같은 사회, '촛불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4. '헌법1조'에 '권리의 댓글'을 답시다 [기고] 제헌절을 '시민인권선언'의 날로 만들자 _김정아 인권활동가 촛불기획팀, 2008년 6월 28일,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에서.
지금 광화문 한 복판에는 권리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뛰고 있습니다. 경찰의 잔인한 폭력에 맞서 시민들이 권리의 광장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바친 지 벌써 수 일째 이릅니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촉발된 이번 시위는 더 이상 재협상의 좁은 틀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는 물과 전기 등 기본재의 사유화에 대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절망에 대한 은유였으며, 잿빛 미래를 안고 좀비처럼 살아가야 하는 청소년들의 절규가 가장 먼저 거리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청소년들의 이 구호는 익살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절규입니다.
2008년 촛불은 87년 민주화항쟁을 뫼비우스띠처럼 이어가고 있습니다. 87년 민주화항쟁이 학살, 독재와 폭압이라는 기존 정치권력에 대한 항거와 새로운 헌법적 질서에 대한 쟁취였다면 2008년 역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한계와 절망과 함께 신자유주의 독재에 대한 항거 그리고 사문화된 헌법1조를 부활시키려는 국민적 노력이 그렇습니다. 87년 투쟁으로 직선제를 이루어냈고 헌법을 바꾸어냈습니다. 헌법 전문에 그 성과가 똑똑히 있지요. 그러나 국민들이 얻은 건 투표권과 함께 헌법이라는 건조한 문서뿐이었습니다. 고갱이는 모두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권력과 그들의 비호를 받고 있는 대기업 자본이 가져갔고 국민들이 열망하는 실질적 권리의 실현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08년의 촛불시위는 잃어버린 권리, 빼앗긴 권리에 대한 치열한 항쟁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민주주의의를 아래로부터 실현하기 위한 광장정치입니다.
프랑스시민혁명의 쓰라린 교훈을 한 번 상기해 봅시다. 1789년 프랑스시민혁명 당시 여성, 농민 등 각계각층은 자신들의 요구를 인권선언 초안으로 작성해 제출했지만 부르주아지들은 권력을 장악한 뒤 이 초안들을 묵살하고 자신들의 이해에 기초한 내용을 선언해 버립니다. 인류의 자랑이자 세계인권선언의 태반으로 평가되고 있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사실 '모든 사람의 인권'이라 불릴 수 없는 배반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이후 수많은 권리선언이 등장해 프랑스 혁명 정신인 '인민권력'을 구성하려는 시도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당시 파리의 가난한 지역에서 온 여성들이 베르사유로 행진했고, 2만 명의 무장한 남성들이 그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 왕궁에 쳐들어가 국왕을 파리로 연행해 민중의 감시를 받게 했던 용감한 여성들은 '부르주아지 남성들의 인권'을 위한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청광장의 천막들이 용역에 의해 철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광장은 직접민주주의의 활기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직접 정치에 뛰어든 시민들은 가장 급진적인 행동과 제안도 아랑곳 하지 않고 광장의 정치를 만들어냈습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없는 제도적인 약점을 지적하고 법을 바꾸어서라도 소환제를 반드시 이루어내야 한다고 합니다. 공기업의 민영화와 교육정책의 파행 등 사회권의 많은 내용들을 인권으로 인식하며, 보편적 권리의 쟁취를 위해 '국민주권'을 목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직접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고 이는 결코 한 번의 '철거'를 통해 무너질 수 없는 단단한 경험을 남겼습니다. 재협상 요구를 묵살하며 폭압 정치로 들어간 정부가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듯이, 직접 행동을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역동성과 생동감을 경험한 시민들은 결코 이전처럼 정치에 권태로워하며, CEO 대통령을 욕망하는, 신자유주의 독재가 '강요한 시민'으로 되돌아 갈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헌법1조로 돌아갑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거리에서 수 만 번을 불렀던 국민주권의 초석을 반석으로 만들어봅시다. 여기에는 인권의 실현과 그것을 위한 무한한 상상력이 잉태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오류를 상기한다면 '국민'에는 모든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주체로서 반드시 호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 청소년,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비정규직 등 경제적 약자, 이주노동자 등 이제까지 '시민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광장에 모여 '헌법1조에 권리의 댓글'을 달아봅시다. 건조한 법조문의 나열이 아니라 광장의 언어로 소통하고 거기서 쏟아지는 내용들을 가지고 함께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이제부터 시작해 봅시다. 권리가 살아 숨쉬는 '헌법1조'를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토론과 합의로 이루어낸다면 이것은 무엇보다도 큰 정치적인 힘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무기 삼아 정치권력과 싸우며, 법과 제도에 이를 관철시켜 나갑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장을 되찾아 와야 합니다. 본래 광장은 인권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로써의 정치 공간입니다. 정부에 사용료를 내고 허가 받고 탈정치적 행사만이 허용되는 곳이 아니라 법과 제도의 틀 내에서 해결되지 않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광장에서 드러내고 요청하는 시민의 공적공간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광장은 권리혁명의 주 무대가 되어 왔습니다. 온라인 광장도 오프라인 광장과 병행되어야 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항쟁은 6월을 넘겨 7월로 향할 것입니다. 정부는 탄압의 수위를 높이고 있고 시민들도 물러설 기세가 없습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만들어낸 인권과 민주주의의 성과를 잘 갈무리하고 벼려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 거름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두 달간의 성과는 '한 여름 밤의 추억'도 아니며 '닭 쫓던 개' 처지가 되어있는 국회에 넘길 일도 정말 아닙니다. 정부가 국민을 무시하고 고시를 강행했습니다. 이제 국민들이 정부를 무시합시다. 현 정부와 국회를 인정하지 않고, 광장에서 헌법1조에 권리의 댓글을 다는 시끌벅적하면서도 살아있는 정치를 만들어 낸다면 이명박 정권과 국회는 사실상 용도폐기된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광장에서 시민들이 재구성한 '헌법1조'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시민인권선언'으로 탄생할 것입니다. 7월 17일 제헌절을 '시민인권선언'의 날로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이 앞장 서 그 판을 만들겠습니다. 각계각층 시민여러분들의 적극적 동참을 호소합니다. 광장에서 신명나는 인권선언의 판을 만들어봅시다.☮
5. 촛불이 만든 이중권력, 어떻게 확장해야 할까? [기고] "한시적 '서민공공성 국민연대' 필요하다" _오건호 대안연대회의 운영위원, 2008년 7월 6일,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에서.
쇠고기로 시작한 촛불이 어느새 대운하, 교육, 의료, 언론, 민영화, 물가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처음 촛불이 특정 세력의 기획에 의해 타오르지 않았듯이, 의제의 확산 역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졌다. 촛불은 이명박 정권의 국정운영에 총체적으로 저항하려는 열망을 보이며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하나씩 불러들이고 있다. 왜 촛불은 쇠고기에 머물려 하지 않는가? 변화하는 촛불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자유주의 세력과 CEO 이명박을 향한 기대의 역설
국민들이 쇠고기를 통해 오랫동안 잠재돼 있던 시민권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가장 거대한 규모다. 당시 시민들은 오랜 권위주의에 의해 억눌려온 자신의 주권을 '직선제' 함성으로 드러냈고, 10년 후 민주화운동 세력이 차례로 집권하자 이들에게 비로소 권력을 온전히 위임했다.
하지만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자유주의 세력은 참으로 허약했다. 정치적 권위주의에 오래 물든 탓에 새로 등장한 시장 권위주의에 둔감했다. 시장권력과 정면 대응해야만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풀릴 수 있음에도 이에 투항하는 것을 오히려 '개혁'으로 생각했다. 결국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시장주의 개혁에 의해 서민 삶의 불안정화는 심화되었고, 국민들은 미래를 기대하던 세력에게서 정반대의 결과를 되돌려 받아야 했다. 기대가 좌절되며 실망은 증폭되고, 기대의 역설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누구든 경제만 살리면 된다!'.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실망은, 시민적 양식은 부족하지만 경제를 살릴 것 같은 CEO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변형되어 나타났다. 하지만 당선 반 년도 안 돼 영어(오륀지), 교육(0교시 우열반) 파동에 이어 재벌 위주 경제정책과 의료와 물의 시장화, 공기업 독단 인사, 언론사 장악, 서민생계대책 미숙, 번복되는 경기 전망 등이 누적되자 국민들은 '747' 공약 사기성에 대한 판단유보를 더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쇠고기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명박을 향한 기대의 역설은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역사적 실망을 합한 것이기에 그 폭발도 컸다. 촛불이 쇠고기로 멈추지 않는 이유이다.
항의하다 '권력'을 체험한 주권자
촛불이 확산되는 데는 이명박 대통령의 2MB적 행동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배후세력이라고도 할 만하다. 그럼에도 촛불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저항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국민은 87년 민주항쟁을 통해 정치권력의 대의구조를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지난 10년 자유주의 정권에, 향후 5년 이명박 정권에 권력을 위임하였다. 하지만 지난 10년의 경험, 미래 5년에 대한 예상체험은 두 정권이 모두 자신의 권력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자부하였으나 주권자의 권력소외는 심화되었다.
항의로 시작했던 촛불에서 국민들은 어느새 '거리 권력'을 체험하고 있다. 물리적이고 제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의사에 반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 권력'이라는 막스 베버의 정의에 따르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권력이 행정부, 의회가 아닌 서울광장에도 존재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두 번이나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게 하고, 정치적 풍운에 들뜬 18대 의원들을 국회에 등원하지 못하게 하며, 미국조차 쇠고기 추가협의에 응하도록 만드는 권력이다. 이렇게 2008년 6, 7월, 한국사회엔 '이중권력'이 형성되었다.
좋은 '정치'와 거리 '운동'은 상충되지 않아
비제도화된 권력은 취약하다.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 따른 것이기에 정세 변화에 따라 금세 시들 수 있고, 권력 균열을 빌미로 제도적 권력의 반동적 개입을 유발할 수도 있다.
어찌해야 할까? 이 정도면 됐으니 제도권 정치로 책임을 넘기자는 이야기가 있다. 대의구조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요청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촛불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적 체험을 담을 '좋은 정치'가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촛불을 수렴할 좋은 제도권 정치는 없다. 이미 '한국식' 보수정치세력이 의석의 2/3를 차지하고, 청와대는 5년간 CEO 이명박이 머무를 예정이다. 이들 정치는 이미 촛불을 든 국민 사이에서 '나쁜 정치'로 인식됐다.
이 상황에서 쇠고기 문제를 비롯해 촛불이 태우려는 사회적 의제들을 제도정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은 거리권력을 통해 이룬 역사적 성과를 '나쁜 정치'에 헌납하는 꼴이다. 좋은 제도권 정치가 민주주의 안정화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위해서라도 현재는 이중권력 상황을 확장하여 국민의 역사적 체험을 전면화하고 이를 좋은 정치의 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촛불은 비용이 아니라 역사적 자산
거리운동의 비용이 너무 크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계산기 모드를 바꿔야 한다. 역사의 발전이 사람들의 정치적 실천에 의해서만 이뤄진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지금 거리에서 이뤄지는 국민들의 체험은 인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경로이자 자산이다. 지금 촛불은 국민에게 공동의 의식, 경험, 비전을 공유하게 하는 민주주의 장을 만들고 있다.
시청 앞 광장에 직접 참여하든 지방에서 인터넷을 통해 성원하든 동시대의 거대한 '역사적 체험'이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고, 이를 통해 미래를 꿈꾸는 역사적 주체들이 형성되고 있다. 이들은 쇠고기의 먹거리 안전을 우려하고 이명박의 사기성에 분노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교육, 생태, 의료, 언론, 공기업, 서민경제 등을 이야깃거리로 제기한다. 오랫동안 성장제일주의, 시장주의 담론이 지배하던 한국사회에서 이를 의심하고 넘어서려는 기지개를 펴는 사람들이다.
한시적 '서민공공성 국민연대' 제안
촛불 이후에 어찌하자고? 이명박 퇴진 요구도 제기된다.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상징구호다. 퇴진론은 거리의 열정을 담고 있지만, 퇴진 이후 대안 부재(자유주의 정당의 무기력, 진보정당의 취약)로 촛불 동력을 이끄는 데 한계를 지닌다. 국민투표론도 촛불의 정치적 매듭을 짓는 효과가 있으나 쇠고기 단일 사안으로 국민투표를 요구하기엔 촛불의 다양한 의제를 품지 못하고, 지금 여러 의제를 포괄하기엔 상황이 성숙돼 있지 못하다.
거리권력의 역사적 체험이 더 확장되어야 한다. 촛불 주체의 다양성·비정형성을 감안할 때 촛불운동을 조직화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촛불의 안정적 확장을 위해선 일정한 조직화가 불가피하다. 이 조직은 기존 사회운동세력이 벌이던 방식을 넘어 새로운 실험이 될 것이다. 계속되는 집회의 피로도를 조정하고 새로운 의제를 담아내면서 서민의 주권과 생활권을 한국 역사에서 세워내는 작업이다.
논의 활성화를 위해 예를 들면, 쇠고기, 대운하, 교육, 의료, 공기업, 서민물가, 비정규직 등 의제별로 이명박 정권을 감독·평가하고 그에 대항하는 한시적 네트워크 국민전선으로 '서민공공성 국민연대' 정도면 어떨까? 국민연대는 이명박 정권 국정과제 의제별로 담당기구(예: 대운하 국민포럼, 공공의료 국민포럼 등)를 구성하고, 토론회에서 촛불집회까지 다양한 활동을 벌일 것이다. 만약 시한을 정권 1년으로 정하면 내년 2월에 이명박 정권의 미래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결정할 수 있다.
촛불이 지금까지 타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례 없는 참여자의 자발성과 창의성, 유연성이 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새로운 조직화가 촛불의 동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진보세력의 자성과 노력도 중요하다. 보수주의, 자유주의세력이 모두 불신임당한 정치 공간을 제대로 떠안지 못한 것에 대한 뼈아픈 자성과 함께 현실성과 비전을 갖춘 '믿음직한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실질적인 노력이 요청된다.☮
(이 글은 지난 7월 4일 교수노조·민교협·학단협이 개최한 '촛불과 한국사회' 2차 토론회 토론문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6. 2008년 촛불봉기: 다중이 그려내는 새로운 유형의 혁명 _조정환 자율평론, 2008년 5월 26일.
1. 머리글
2008년 5월 2일에 시작되어 오늘(5월 26일)까지 56일 동안 지속되고 있는 촛불봉기는 연쇄적으로 확산되면서 제기된 그들의 요구들 중 그 어느 것도 아직 결정적으로 쟁취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무력해 보이는 촛불봉기는 폭발의 순간에서부터 그 소용돌이치는 일련의 전개과정 속에서 기존의 낡은 고정관념들과 관습들, 그리고 관계들 모두를 송두리째 찢어버렸고 새로운 삶의 도래를 요청하고 또 증언하는 불가사의한 ‘괴물’로서 지금도 광장과 거리와 가정과 온라인 연결망 곳곳에 충격과 쇄신의 힘을 불어넣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잊고 거리에서 열정적인 시위와 토론에 열중하며 일상에서 눌변으로 굳게 닫혔던 입들이 다변으로 활짝 열려 감동과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언설을 쏟아내고 마음 깊은 곳에 잠복해 있던 해학력과 상상력을 터뜨리며 거대한 무리의 행위예술을 공연한다. 시위가 종합예술이 되고 밤에 이루어지는 거대한 소비활동이 새로운 삶을 빚어내는 용광로가 되며 앞섰던 자가 뒤서고 뒤에 섰던 자가 앞서며 가르치던 사람이 배우는 사람이 되고 지금까지 내내 배우기만 했던 사람이 가르치며 이른바 ‘지도자’들이 훼방꾼으로 기능하고 이른바 ‘열패자’들이 투사가 되며 지식인이 무지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대중이 지성의 불을 내뿜으며 늘 지도부를 자임했던 정당이 다중의 행동을 생중계하는 매개자로 되는 이 총체적 역전과 융합(퓨전)의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촛불봉기의 이 매혹 때문에 촛불이 타오를 때는 그 열기에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촛불이 잠잠해지면 안타까움과 불안 때문에 잠들지 못한다. 비가 오면 혹시나 촛불이 꺼질까 우비를 챙기고 집을 나서며 누군가 다칠까봐 지켜보는 눈이라도 되어 주어야겠다며 집을 나서고 시위대가 배고플까봐 김밥과 우유를 싸들고 집을 나서고 아예 저항의 노숙을 하자며 텐트를 챙겨들고 집을 나선다.
‘우리는 아직 아무 것도 쟁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지난 56일은 이 짧은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봉기대는 소라광장에서 시작하여 시청광장으로 이동했고 신세계, 퇴계로, 동대문으로 이동했으며 남대문, 명동, 종로, 대학로를 휩쓸었고 청와대로 가기 위해 청운동, 안국동을 점거했다. 이어 봉기대는 KBS, 한나라당사, 코엑스에서 촛불을 지폈으며 마침내 전국 곳곳에 뒤늦었으나 더 강렬한 촛불들이 켜지고 국경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생명의 촛불이 밝혀지고 있다. 벌떼들이 이곳저곳을 이동하듯이 지구상의 여기저기를 밝히며 촛불의 봉기(蜂起)는 지속되고 있다. 봉기란 글자 그대로 ‘벌떼들(蜂)의 일어남(起)’이 아닌가?
2. 촛불봉기의 발생조건
5월 2일의 촛불봉기는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 수입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시작되었다.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쇠고기가 유통되지 않아야 하고 소비되지 않아야 한다는 시민들의 당연한 요구가 어째서 수용될 수 없었는가? 얼핏보면 사소해 보이는 이 쟁점이 왜 범국민적 봉기를 야기시키기에 이르렀는가? 수 십 일에 걸쳐 연 수백만의 사람들이 촛불시위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왜 현재까지 생명의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국민들의 요구는 수용되지 않고 한미간의 쇠고기 협상은 고시의 강행을 앞두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의 권력은 우리 삶의 모든 측면들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면서 삶을 지배한다. 촛불봉기를 통해 연이어 의제화된 수도, 의료, 건강보험 등등의 신자유주의적 민영화는 쇠고기와 더불어 직접적으로 생명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대운하 건설, 교육 및 공기업들의 민영화 등도 생태나 사회적 삶의 생산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임금, 노동시간, 노동조건 등 노동자들의 오래된 쟁점 외에 정리해고, 노동의 불안정화 등의 쟁점이 추가된 이후 이제 생명의 안전이라는 근본적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권력은 이처럼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관계 조정이라는 매개 역할을 넘어서 직접적으로 생명과 사회적 삶을 지배함으로써 유지되는 삶권력으로 변형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삶권력은 90%의 인구를 사회적 부에서 배제시키고 오직 10%의 인구만이 부를 독점하는 극단적으로 불균등한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이것은 유효수요를 극단적으로 감소시킴으로써 자본의 경제위기를 일상화한다. 공급과잉으로 인한 과잉생산 위기, 부채상환의 곤란으로 인한 부채위기는 곳곳에서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며 이것들은 부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끔찍한 생활상의 고통으로, 요컨대 삶의 위기로 나타난다. 이러한 위기는 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사회의 경계 지대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고통을 줄뿐만 아니라 정규직의 노동자들에게는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현존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대중들 속에 분노의 기름을 거대한 규모로 축적하면서 발화의 시점만을 기다리는 휴화산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대의제의 계급적 한계가 여실하게 드러났다. 2003년 대중들의 지지에 기초하여 집권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은 자신을 지지한 대중에게 신자유주의 폭탄을 돌려주었으며 2008년 집권한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이 못다한 신자유주의화를 마지막까지 밀어붙여 완성하려 했다. 돈을 벌고자 하는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부자들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 전체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이들을 생존 이하의 수준으로 밀어넣는 법과 제도개편을 시도했다. 대운하, 상수도 및 의료의 민영화, 그리고 이른바 ‘미친교육’ 등은 그러한 시도의 일부이며 열린우리당이 마무리하지 못한 FTA 국회비준도 그것에 속한다.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은 이러한 시도들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었으며 실제로는 동조하고 있었다. 사회 전체의 신자유주의화에 의해 경제적 손실, 정치적 권리상실, 문화적 열악화를 겪으면서 생존의 경계선으로 밀려났거나 점차 밀려나는 사람들은 대의되지 못함에 대한 불만과 무력함에 시달렸다. 소외된 사람들을 대의하기 위해 탄생한 민주노동당이나 이에서 분당한 진보신당 역시도 이들의 불만과 무력함을 해결할 어떠한 근본적 비전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선거에 대한 광범위한 거부가 나타났다. 촛불집회에서 호소되는 ‘꽉 막힌 소통’에 대한 비판이 대의제의 절대적 위기에 대한 다중의 감각을 표현한다. 입법, 행정, 사법의 정치권력 전체가 다중들의 요구와 불만을 대의하여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내외 산업적 금융적 기업들의 자본권력과 야합하여 다중들의 능력뿐만 아니라 생명자체까지 자신들의 먹잇감으로 삼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체제! 이 체제를 유지시키는 또 하나의 권력이 미디어 권력인 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찌라시’ 신문들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관심사를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교묘하게 의제화하여 그것을 다중들 전체의 관심사로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서의 역할을 뻔뻔하게 수행하고 있다. 미디어 권력은 매일매일 권력과 자본에 이로운 여론을 생산하여 그것을 주기적으로 정치권력화하며 촛불봉기와 같은 저항적 흐름은 폭도들로 매도한다. 이를 매개로 자본의 물리적 정신적 권력들 사이의 신성동맹 체제가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실질적 대의의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중들은 로또적 요행을 기다리며 실의의 나날을 보내거나, 알콜에 의지하거나, 노숙을 하거나, 억화심정과 과로노동으로 약국과 병원을 오가다가 죽거나, 아니면 자살을 하는 수밖에 없는 비참을 강요당해 왔다. 촛불봉기는 이 비참을 거부하겠다는 다중의 결의의 표현이며 이 거짓된 대의제를 통해서는 자신들의 삶의 고통과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자각의 표현이고 직접행동으로 자신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보겠다는 선택 그 자체이다.
이 봉기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원천들은 깊고도 넓다. 이것은 결코 쇠고기 수입의 위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대운하, 민영화, 교육 등의 정치적 사회적 쟁점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이것은 채식동물에게 동물사료를 먹여 그 동물을 미치도록 만드는 현대의 반생명적 문명, 오염된 음식을 팔아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고서는 굴러가지 않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 생태계와 그 주민들을 해치는 정책들을 그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도 강행하는 부르주아 권력체제 모두가 현재의 봉기가 다투고자 하는 잠재적 문제들이며 이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한국의 그리고 전 세계의 다중들 모두가 이 문제의 이해당사자이자 이 봉기의 잠재적 동력으로 배치되어 있다.
3. 전개과정
가. 촛불봉기의 전사
촛불이 권력과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적 시위의 상징적 무기로 등장한 것은 2002년 11월 30일 광화문에서 열렸던 <효순-미선이 추모 촛불시위>에서였다. 이 날 아이디 ‘앙마’의 제안을 펌질을 통해 확산시킨 이른바 ‘네티즌’들은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1만여 촛불을 밝힘으로써 탈근대적 시민으로서의 그 모습을 오프라인 공간에까지 드러냈다. 일주일 뒤인 12월 7일엔 5만개의 촛불이 켜졌고, 다시 일주일 뒤인 14일엔 10만 여명의 사람들이 광화문을 ‘촛불 바다’로 만들었다. 이해 이들 네티즌들은 월드컵 응원전의 신화를 만들어냈고, 보수언론의 왜곡편파 보도를 견제했으며, 또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대신 노무현을 당선시킴으로써 정치적 보수를 저지했다. 이 흐름은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과 파병반대운동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기존의 근대적 민중운동 및 시민운동과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촛불은 이어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점화되어 이어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국회 과반의석을 넘도록 만들고 노 대통령을 두 달간의 직무정지에서 구출하여 청와대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들었다.
나. 촛불봉기의 발전단계
1) 5월 2일~5월 23일: 촛불의 점화와 촛불집회
2008년 5월 2일 안티이명박카페 주도로 이명박탄핵을 위한 촛불집회가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열렸다. 그 중 70%가 중고생이었다. 중고생으로 표현되는 청소년들은 영어몰입교육과 공교육자율화 조치로 심한 영어학습 부담을 갖게 되었고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의 부활로 잠을 못자면서 강제로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강제교육에 이렇듯 경쟁적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광우병 협상이 타결되어 급식의 위험마저 느낀 청소년들은 현존하는 사회의 불합리와 권력의 맹목에 항의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당시 고등학생 안단테가 주도한 이명박 탄핵을 위한 서명은 5월 2일 당시 이미 60만을 육박하고 있었다.
이어진 촛불집회에는 참교육 운동을 해온 전교조가 동참하여 미친소-미친교육 반대를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외쳤다. 대운하 건설반대, 상수도 민영화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 건강보험 민영화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반대 등 이명박 정부의 일련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대가 광장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이다. 다양한 쟁점이 합류했지만 초기의 요구는 이명박 정부의 퇴진 혹은 탄핵으로 집약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국가권력의 재구성을 통해 다양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관점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와 부르주아 권력 일반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국가권력, 국가정치의 문제로 환원하는 효과를 갖고 있었다. 시민들, 네티즌들, 국민들, 민중들로 불리는 다양한 사회적 존재들의 촛불봉기는, 한편에서는 권력을 일자의 지배로 환원하는 위계적 중앙집권적 국가권력 대신에 다양한 존재들인 그들 스스로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권력(실제로는 권력이 아닌 권력으로서의 준권력)으로서 삶의 모든 현장에서 그 권력을 직접 행사함으로써, 그리고 그 행사되는 권력들의 연결망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그 생명력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반면 그 지향에서는 이렇게 국가권력의 표상에 묶인 상태에서 출발했다.
뒤이어 1700여개의 시민사회단체들로 이루어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에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가 구성되어 집회에 연단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 구성목적에 명시되어 있듯이 대책회의는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이라는 문제에 촛불집회의 초점을 맞추었다. 광우병 위험은 인간이 동물성 사료를 채식동물에게 먹임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며 이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행하는 맹목적인 자본주의 질서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산 소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동물성 사료를 사용하는 모든 소(한국산 소까지 포함하여)들도 이러한 위험을 안고 있다. 요컨대 많은 단체들의 대책회의로의 결집은 촛불집회의 쟁점을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한정하고 쟁점을 단일쟁점으로 환원했으며 퇴진 주장보다 좀더 문제를 민족주의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지배적인 구호도 ‘고시철회, 협상무효’로 협소해졌다. 17차 촛불집회까지 쟁점의 이러한 협소화가 진행되었다.
2) 5월 24~6월 1일: 거리시위로의 전화
이러한 흐름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 아고라이다. 아고라는 촛불의 최초의 문제제기가 협소화되고 권력문제에서 협상문제로 퇴행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하면서 5월 24일 광화문에서 독자적으로 거리시위를 준비했다. 이것은 촛불집회의 명목적 지도부를 자임하고 나선 대책회의측의 통제를 벗어난 것으로서 이후 자발적인 대중적 거리시위를 이끌어내면서 ‘이명박은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다시 대중화시켰다. 그러나 대책회의와 그 내부의 주요한 동력인 다함께는 ‘고시철회, 협상무효’라는 구호에 집중했고 퇴진 구호를 장식적 요구로 밀어냈다. 이것이 5월 말 촛불봉기 내부에서 점화된 지도 논쟁의 맥락이다. 대책회의와 다함께는 거리시위대의 선두에서 현재의 핵심쟁점을 단일쟁점으로서의 쇠고기 협상에 모으기 위한 구호들을 선창했다. 아고라를 중심으로 이에 반대하면서 다양한 쟁점들을 권력 문제로 모으고자 하는 흐름은 선도차량과 확성기의 사용을 비판하면서 거리행진이 자율적으로 진행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래서 촛불봉기는 대책회의의 공식집회(7시부터 9시), 자발적 거리시위(9시~11시), 그리고 이후 어떤 지도부도 없이 이루어지는 경찰과의 대치투쟁과 강제진압(11시~새벽까지) 등으로 진행되었다.
3) 6월 1일~6월 10일: 촛불상승
쇠고기 협상의 관보고시가 6월 3일로 예정된 가운데 마지막 맞은 토요일인 5월 31일에 10 만 명이 모인 촛불집회는 청운동과 삼청동 방향에서 청와대 진격을 시도했다. 강경진압에 나선 경찰과의 치열한 대치 끝에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고 부상당하면서 아침 8시경까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이 싸움을 통해 지금까지 방법을 둘러싸고 내적으로 긴장관계에 있었던 경향들 사이의 연대감이 싹트고 서로의 약점을 고치고 보완하는 방향에서 상당한 정서적 조정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대감 덕분에 대학생들이 동맹휴업을 하며 참가하고 노동자들까지 참가하여 6월 10일에는 전국에서 집결한 100만의 촛불이 이명박 정권에 일대 타격을 가하게 된다.
4) 6월 11일~6월 19일: 대기, 긴장, 잠복국면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의 추가협상을 한다, 대운하 계획을 포기한다, 민영화를 임기중에는 하지 않는다 등의 기만적 물타기 전술을 구사하면서 집회의 열기가 식기를 기다렸고 실제로 촛불집회 참가인원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반면 13일에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과 16일에 시작된 건설노조파업 등의 노동자 파업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이 시기에 시청광장에서의 집회가 자유발언-거리행진-해산으로 이어지는 일상화된 공식집회의 성격을 가졌던 반면 KBS 앞에서는 아고라와 안티이명박을 중심으로 한 네티즌들이 공영방송사수를 외치면서 전선을 확대시켰다. 6월 17일에는 여의도, 코엑스, 시청 등 세 곳에서 다양한 이슈의 촛불이 켜졌다. 대책회의는 전선이 확대되는 가운데 촛불집회 참가자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향후 촛불집회의 방향을 토론하기 위한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했다. 논점은 재협상요구인가 퇴진운동인가로 모여졌지만 24일과 27일 두 번에 걸친 후속 토론을 예정한 후 6월 20~21일을 48시간 국민행동의 날로 정해 21일에는 다시 5만 이상의 촛불이 시청에 집결했다. 정부가 기만적 조치들 외에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않은 21일에는 시위대들의 투쟁도 격화되었다. 그 결과 6월 10일에는 장시간의 토론을 거쳐서야 컨테이너 바리케이드(이른바 ‘명박산성’) 위에 올라갔던 것과는 달리 즉각적으로 모래로 만든 국민토성을 쌓아 전경차 지붕을 점거했다.
5) 6월 22일~현재: 보수반격과 대치국면
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시위대에 대한 소화기분말 분사나 불법연행은 말할 것도 없고 보수단체를 동원한 촛불시위자 폭행, 포털사이트 다음에 대한 세무조사, 인터넷 실명제 추진과 사이트카 제도 도입을 통한 언론자유 제한, 소비자 운동에 대한 협박 등 강경대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지식인 이문열은 촛불집회에 대항할 의병을 조직할 필요성이 있다며 HID, 한기총, 뉴라이트, 고엽제 피해자 모임 등의 역반란을 선동하고 있고, 최장집 교수 등은 대의민주주의만이 대안이라며 촛불봉기에서 제기된 의제를 국회로 가져가야한다는 퇴행적 주장을 하고 있다.
4. 자본권력의 대응 변화
가. 이데올로기 조작: 5월 2일~27일(배후론, 본보기 연행과 협박)
나. 탄압: 5월 27일~6월 1일(불법연행, 물대포, 소화기)
다. 일시적 후퇴와 방어, 보수단체 동원한 간접 대응: 6월 2일~6월 11일(차벽쌓기와 명박산성, HID 추모집회, 뉴라이트 서경석 목사 거리선동)
라. 기만: 6월 11일~6월 22일(촛불 소멸론, 추가협상, 기만적 사과, 대운하 민영화 포기 제스쳐, 감성에 호소)
마. 반격: 6월 23일 이후(고엽제 피해자, 뉴라이트의 시민폭행, 대책회의 탄압, 6월 24일 이명박이 불법시위 엄격대처 주문, 6월 25~26일 집회와 시위 물대포 재등장, 강경진압)
5. 촛불봉기의 특징과 새로움
가. 자발성과 창의성
2008년 촛불봉기는 촛불집회, 촛불시위, 촛불행진, 촛불항쟁, 촛불문화제, 국민토론 등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발성이다. 5월 2일 첫 집회는 어떤 지도부도 없이 고등학교 2학년 ‘안단테’가 4월 6일에 시작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청원에서 시발했다. 이것은 2002년의 효순-미선 추모 촛불시위가 학원강사 ‘앙마’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과 유사하다. 한 사람의 제안이 들불처럼 퍼져서 수만의 사람들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광장으로 모았다. 곧 이 자발적 촛불집회에 대형단상과 앰프 마이크를 설치한 대책회의가 결합했지만 참가자들은 자발성을 억제하는 대책회의의 행태에 비판적이었다. 마이크 사용을 자제하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5월 24일부터의 가두시위도 대책회의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발적 움직임들에게 넓은 공간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운동을 일사분란한 계획 속에서 지도하는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책회의의 진행방식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거리시위가 시작된 후 이번에는 대책회의에 소속된 다함께가 거리시위대오를 선도하기 위해 대오의 선두에서 행진방향을 제시하고 구호를 선창했다. 이것도 자율적 참가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했다. 다함께는 결국 대량으로 배포해온 손피켓에서도 자신의 조직 이름을 삭제해야 했다.
5월 하순 이후 청와대 진출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전경대와의 치열한 접전 역시 대책회의의 관리범위를 벗어나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여의도, 코엑스로의 촛불의 확산이나 전국 곳곳에서 불붙은 지역 촛불들도 자발적인 것이었다. 피켓제작을 비롯하여 집회나 시위를 풍부하게 만든 많은 재기 넘치는 형상물들도 참가자들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구호들도 즉석에서 무작위 개인들의 임의적 선창에 호응하여 그때그때 창발적으로 만들어지고 연호되어나갔다.
물론 대책회의에서 구상되고 제안되어 참가자들에게 받아들여진 많은 행동들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특히 72시간 릴레이 집회, 국민대토론회, 48시간 집중행동 등을 비롯하여 굵직굵직한 일련의 행사들과 일정들은 대책회의에서 주도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그 일정을 따른다기보다도 자신들의 계획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그 일정을 활용했고 그것이 자신들의 계획과 부합하지 않을 때에는 독자적으로 집회나 시위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런 의미에서 대책회의도 광범위한 봉기의 바다에 떠있는 무수한 배들 중 규모가 큰 한 척으로 기능하는 셈이었다.
광장과 거리의 다중들은 정치의 새로운 표현방식을 창조해 내고 있다. 경찰서를 지날 때는 연행자를 석방하라, 연도의 시민을 향해서는 민주시민 함께해요, 조중동 앞을 지날 때는 전기 아깝다 불꺼라! 당황한 경찰이 도망칠 때는 ‘놀아줘! 가지마!’ 뒤따라오던 전경이 멈춰서면 ‘오빠 같이가!’ 물대포가 쏟아질 때는 ‘온수! 온수!’ 해산을 종용하는 경찰에게는 ‘노래해, 춤춰봐!’ 창조적 시위는 해학과 익살이 넘치는 봉기공간을 구축했다.
나. 자율성과 권위에 대한 거부
자발성은 자율성과 자연스럽게 결합되었다. 자율성은 권위에 대한 거부를 특징으로 했다. 봉기 참가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폭넓게 관용하면서 타인이 자신에게 어떤 생각을 강요하는 것을 거부했다. 촛불봉기의 최대의 집중점이 대통령 이명박의 일방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였다. 이명박 정권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나 대운하 건설, 교육 의료 건보 상수도 등등의 민영화를 추진함에 있어서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권위적 태도를 보였다. 촛불봉기 참가자들은 이러한 태도에 분노하면서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고 그것은 6월 10일 세종로와 안국동에 설치되었던 거대한 컨테이너 장벽이 상징하듯 국민의 소통 요구에 대한 철면피적 거절의 태도를 보였다. 그는 한편에서 촛불봉기의 요구에 반응하는 듯한 기만적 추가협상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물대포 소화기 등의 살상위험이 있는 무기를 시위대에게 사용하는가 하면 평화적 거리행진을 전경의 몸과 방패와 몽둥이로 강제해산시키고 HID 고엽제피해자모임 등의 준군사적 사조직을 동원하여 폭력을 행사하고 조선 중앙 동아 등의 미디어와 한기총 뉴라이트 그리고 학교의 교장 교감 등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을 동원하여 촛불집회에 대한 정신적 폭력을 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LPG 가스통, 각목, 파이프 등이 이용되는가 하면 ‘좌익’ ‘빨갱이’ ‘배후’ 등의 낡아빠진 이데올로기적 무기들이 사용되었다. 권위주의 정부는 이처럼 물리적 정신적 폭력장치를 기회 있을 때마다 사용하면서도 어떤 형태로건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폭력-불법 집단, 즉 ‘폭도’로 몰기 위한 선동을 계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봉기자들은 봉기대오 내부에서 어떤 다른 유형의 권위주의도 발생하지 않게끔 억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권위주의적 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하면서 자신들이 권력과 동질적이거나 대칭적이지 않은 전혀 새로운 존재들임을 세심하게 입증해 나갔다. 폭력사용을 최대한 피하자는 광범위한 비폭력 호소는 스스로의 행동반경 행동방식 행동능력을 제한하는 것으로도 작용했지만 권력의 폭력이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낼 만큼 과격하지 않은 한에서 폭력적 권력과 자신을 질적으로 구분하고 윤리정치적 우위성을 획득함에 있어서 유효한 것으로 작용했다. 바로 이러한 반권위주의는 촛불봉기 내부에서 조직적 권위가 형성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모두가 동등한 권한을 갖는 참가자로서 서로 연결되어 ‘다르게 그리고 함께’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봉기문화를 형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 촛불운동의 주체구성
지금까지의 민중운동은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농민, 빈민, 학생, 지식인 등을 중심으로 운동의 주체들이 꾸려졌다. 시민운동은 계급성에 의거하기보다 어떤 출신이건 국가를 혁신하는 데 관심을 갖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들을 주체로 호명했지만 그것은 주로 소비자, 유권자, 납세자로서의 사회적 존재들에 의거했다. 촛불운동의 주체는 매우 다양하다. 촛불운동 속에서 우리는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주체들의 거대한 합류를 볼 뿐만 아니라 전혀 새로운 주체들의 부상을 본다. 무엇보다도 인터넷과 핸드폰 등 디지털 정보매체에 의해 연결된 넷티즌이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로 나섰는데 이것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있는 세대, 연령, 직업, 계층 등을 불문한 다양한 사람들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교복 입은 10대들, 팔짱 낀 20대 연인들, 하이힐 신고 명품가방을 든 여성 직장인들, 유모차 앞세운 주부들, 아이들 무동 태우고 나온 가장들,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이 촛불집회를 선도하기 시작했으며 민주노총의 노동자들, 전교조의 교사들, 한총련의 학생들, 각급 시민단체의 회원 등 전통적 시위세력들은 나중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예비군, 예술가, 작가, 의사, 해커 등도 각자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갖고 결합했다. 촛불봉기는 글자그대로 잡색부대이며 생각, 욕망, 성향, 기질, 경험의 엄청난 다양성을 갖고 있다. 촛불운동이 단일한 목적과 방향을 갖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불가능한 것은 이 때문이다. 촛불들의 이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성을 넘어서 서로를 이어주는 공통지반을 찾고 이 잡색부대가 매일매일의 촛불의 삶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는 공통되기의 물질적 과정이 오히려 필요하다.
라. 단일한 목적과 방향, 단일한 조직, 단일한 투쟁방식에 대한 거부
지금까지의 민중운동은 운동의 목적과 방향에서 대개는 단일한 목적, 단일한 방향을 추구해 왔다.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뚜렷한 방향설정과 이를 위한 민중의 국가권력 장악이 그것이다. 그것은 대중의 자발적 투쟁 외에 당의 지도를 통해서 달성할 수 있는 목적으로 간주되었고 당의 지도에 대중의 운동이 복종하는 것이 필요했다. 노동조합들, 농민조직들, 학생조직들 등이 일사분란하게 당의 지도를 따를 수 있는 통일된 조직구조로 배치되는 것이 또한 필요했다.
시민운동은 민중운동에 비해 다양한 조직형식을 허용하고 사회운동단체 사이에 단일한 목적을 갖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운동을 통한 국가개혁이라는 단일목적 아래로 그 활동들은 수렴되었다.
촛불운동은 어떠한가? 촛불운동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에서 시작되었지만 즉각 미친교육 중단과 결합되었고 다시 운하사업과 민영화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여러 부자편중의 산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집단적 거부로 연결되었다. 요구들, 거부들, 불만들의 거대한 합류가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서로의 문제로 빠르게 공유되어 갔다. 그것은 재협상 운동으로 한정되기를 거부하면서 계속 그 목적들을 증폭시켰다. 그렇다면 이명박 퇴진은 촛불봉기의 단일한 목적으로 될 수 있는가? 재협상이라는 목적보다 이명박 퇴진이라는 목적은 일거에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지만 촛불봉기가 이미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체제, 문화, 권력의 현 단계의 발전에 의해 발생되고 있는 만큼 이명박 정부의 퇴진만으로 그 원인 전체를 해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권력에 대한 항의에서 출발한 2008년 촛불봉기는 2002년 이후 이어져온 미군에 의한 무고한 죽음에 대한 항의, 전쟁에 대한 반대와 파병에 대한 반대, 보수적 의회권력의 횡포에 대한 항의 등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들이 보여주듯이, 촛불은 단일쟁점 운동인 듯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우리 시대의 어둠을 고발하고 규탄하고 해결하려는 존엄의 운동이다. 이 운동은 누구나가 동의할 수 있고 사전에 규정되어 있는 어떤 정치적 목적에 의해 규정되기보다 개개의 사안 속에서 목적과 방향을 생산하고 발명해 나가는 성격을 갖는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국민대토론회는 이중성을 갖는다. 한편에서 그것은 촛불봉기에서 제기한 다양한 목적들과 방향들을 합류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고 촛불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는 전황점검의 자리가 될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어떤 단일한 정치적 목적으로 환원되기기 어려운 다양한 목적과 방향을 내적으로 갖고 있는 촛불운동을 단일한 정치적 목적으로 한정지으면서 전통적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의 상 아래로 촛불운동을 포섭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단일한 전략, 단일한 전술이라는 관념은 위험하다. 개인들, 소모임들, 단체들 각각이 각기의 생각과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전술들을 구사할 수 있는 분위기와 문화의 조성이 단일한 전략, 전술의 설정보다 훨씬 더 중요하며 촛불의 잠재력을 살려나가는 길이다. 이 공통관계를 해치지 않는 한에서는 대립적인 전술들과 행위들까지 관용되는 것이 필요하다. 촛불들이 지금까지 제기한 문제들과 쟁점들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재협상으로도, 이명박 퇴진으로도 충분히 풀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촛불들은 지금까지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한계를 넘어 그것들이 풀 수 없는 근원적 생명존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 고유성이 있다. 촛불봉기의 요구들을 잠재적 차원까지 고려할 때 촛불들은 자신을 제헌권력으로, 준-권력으로 자각하고 또 실제로 행사하는 영구적 과정을 통해서만 자신의 내재적 목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 촛불의 권력
촛불의 권력의지--이것은 결코 국가권력에의 의지와 동일한 것이 아닌 반권력 혹은 준권력의 의지이다--는 잠재되어 있고 분산되어 있고 간헐적으로 표현된다. 지금 그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1조에 의지해서 협소하게 그러나 맹아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아직까지 촛불의 권력의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권력의 틀 속에 갇혀 있다. 스스로를 이명박을 퇴진시키거나 탄핵할 수 있는 권력주체로 사고하고 대통령, 국회의원 등의 대표자들을 소환할 수 있는 주체로 정립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촛불의 자기 권력의지의 표현들이다. 신임연계 국민투표나 심지어는 차기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심판하자는 주장들도 촛불의 권력의지를 부분적으로는 담고 있다. 촛불봉기에서 제기되는 권력에 대한 현실적 생각들은 국가권력으로 집약되는 대의주의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촛불의 권력의지는 대의주의의 틀을 넘어서는 많은 잠재력들을 갖고 있다. 수십일 넘게 매일매일 지속되고 있는 촛불봉기 자체가 실제로는 현존하는 국가권력을 제한하면서 스스로 행사되는 준권력이다. 그것은 기존의 국가기구를 해체하자는 맹아적 생각들로 나아가고 있다. 조중동은 오늘날의 부르주아 권력을 떠받치는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이다. 조중동을 폐간시키자는 생각은 국가기구를 해체하자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전경과 같은 억압적 국가기구를 해체하라는 주장도 생산되어 나오고 있다. 그런데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총체적 해체 없이 생명을 지키고 존엄을 되찾고자 하는 촛불의 취지가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오직 잠재되어 있을 뿐 적극적으로 표현되고 있지는 않다.
마. 윤리정치적 우위성, 해학, 그리고 폭력의 최소화
지금의 다중들은 적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드러낸다. 비대칭적 적대, 절대적 우월함 속에서 적대를 표현하고 있다. 자신을 밀어붙이던 전경들에게 쉴 때에는 물과 먹을 것을 나눠준다. 시위의 전체 분위기는 축제적이며 자유스럽다. 비장함보다는 즐거움. 막히면 돌아가는 방황 행진. 이러저리 움직이며 사람들을 결합시키고 또 새롭게 배치한다. 이것은 역량들의 새로운 배치를 생산한다.
촛불봉기의 참가자들은 분명히 자신들을 현존하는 권력들과는 다를 뿐만 아니라 절대적 우위에 있는 새로운 유형의 권력으로 느끼고 또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집회와 시위에서 나타나는 집단적 해학과 익살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행정권력의 이명박, 경찰권력의 어청수, 언론권력의 최시중 등은 쥐들로 조롱되며 낮은 지력과 윤리적 감각을 가진 존재로 통렬하게 풍자된다. 부패와 폭압과 기만에 대한 분노는 해학과 익살로 승화되어 촛불봉기는 웃음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한 바탕의 축제처럼 발전된다. 집회대와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 중에서 많은 것들은 현장에서의 상황을 놀랄만큼 깊이 통찰하는 예리한 풍자와 비판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참가자들은 다른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특이성과 능력에 놀라면서 자신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이것들의 상승작용이 수많은 사람들을 광장과 거리와 온라인 커뮤니티 앞으로 끌어 모은다. 6월 21일 청와대로 가기 위해 ‘비폭력, 비타협, 한 발 더 전진!’을 주장하며 전경차 바리케이드를 넘었던 소금사탕은 즉시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틀 후 석방된 후 그가 아고라에 자신의 석방 소식을 알리면서 남긴 다음의 질문은 촛불봉기자들의 특성을 간결하고도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제가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요.
님들! 어쩜 그렇게 재기발랄하고 유쾌할 수 있나요? ^^ 물대포를 맞고도, 군홧발과 방패에 짓이겨 져도, 닭장차에 실려갈 때도, 폭우 속에서도... 그 낙천성의 기반은 무엇인가요? 폭넓게 발굴되고, 순식간에 공유되는 정보들, 날카로운 분석과 과학적인 전망들... 그 지혜는 어디서 오는 것이죠?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내 돈 내가며, 뜬 눈으로 밤을 새워 가며 애씁니다. 목은 쉴 대로 쉬고, 땀에 흠뻑 젖어 몸은 녹초가 됩니다. 인터넷 정보 검색하랴, 숙제하랴, 직장에서 일하랴, 살림하랴, 애기들 키우랴, 교육하랴, 거리 시위하랴, 전경들이랑 몸싸움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랍니다. 온갖 손해와 불이익을 기꺼이 감수 합니다. 그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 입니까? 어떻게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착해 빠질 수 있나요? 폼 나게 “재협상 즉각 실시! 명박퇴진!” 구호 한 번 외치지 않고, 시위 처음부터 끝까지 봉투를 들고 거리의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줍는 님들, 모두가 떠나고 없는 자리에서 바닥에 떨어진 촛농을 긁어내고 있는 님들, 실신해서 실려 갈 정도로 시위대를 보위해 주는 예비역님들, 밤새워 준비한 듯 한 김밥과 주먹밥들... 하루 이틀 새에 모여지는 수천만 원의 광고비, 병원비, 행사관련 비용들... 그렇게 순수하고 헌신적일 수 있는 그 비결이 뭔가요?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님들은 어디 숨어 있다가 이렇듯 갑자기 나타났습니까?
만약 이 힘들에 어떤 원천이 있다면 서로가 배우면서 차이들을 합류시키고 공통되어 나가는 혁명적 협력의 구성과정일 것이다. 공통되는 힘들, 제헌의 힘들은 이미 제정된 것들의 경직성을 넘어 측정될 수 없고 불가해한 능력으로 그 절대적 우위성을 보여준다. 이 촛불의 제헌권력은 낙천성의 원천이며 새로운 과학의 원천이고 새로운 윤리를 정초하는 바탕이며 새로운 삶을 열어내는 신성한 힘이다.
촛불봉기에서 일반화된 구호인 비폭력은 이 신성하고 절대적으로 우위인 힘의 절대적 폭력을 표현했던 한 방식이었던 것인가? 권력의 폭력진압 앞에서 그것은 서서히 저항적 비폭력으로, 방어폭력으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절대적 폭력의 비폭력 형태나 저항적 비폭력 형태 혹은 방어폭력의 형태는 권력이 항시적으로 사용하는 선제폭력(현존하는 부르주아적 권력체제 그 자체가 구조적으로 실존하는 선제폭력의 형태이다)과 결코 대칭적인 것이 아니다. 대칭적이고 대항적인 폭력의 구사가 현존하는 폭력에 대한 부분적 부정일 뿐이라면 비폭력이나 저항적 비폭력, 그리고 그것의 높은 수준인 방어폭력은 다중의 공통된 힘이 갖는 절대적 폭력에 기초하면서 상황에 따라 표출되는 현상형태이다. 절대적 폭력은, 결코 행사됨이 없는 상태에서 국지적 폭력을 억제하고 극복할 수 있는 절대적 우위의 폭력, 신성하고 자연적인 폭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어떠한 저항이나 방어도 없는 굴복의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폭력들이 결국 이 절대적 폭력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엄중한 선언이 아닐까? 절대적 폭력은 모든 시민상태들을 근본에서 규정하는 자연상태이다. 그것은 행동하고 저항하고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선제폭력으로 표현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비폭력, 저항적 비폭력, 방어폭력 등으로 현현하면서 자신을 생명의 존엄과 삶의 (비록 잠재적일지라도) 절대적 공동체로, 생명들 사이의 혁명적 협력을 가능케 하는 절대적 폭력으로서 선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촛불은 총과 다르다. 그것은 국가정치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삶정치의 무기이자 절대적 폭력에 기초하여 발생한 모든 사람의 보편적 협력, 공통되기이며 인류 공동체의 실재성을 알리는 상징이 아닌가?
바. 새로운 민주주의
촛불봉기는 직접민주주의를 표현한다는 것이 일반화된 해석이다. 확실히 봉기자들은 일체의 대의자들을 불신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정치적 열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터넷과 핸드폰은 직접민주주의에 광대한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붕괴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된다. 하지만 이 절대적 폭력으로서의 제헌권력에게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사이의 구분은 의미를 잃는다. 대의는 직접적인 정치적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로 대체하는 것이 촛불운동의 목표가 아니라 절대적 제헌권력의 실재성을 입증하고 그것을 확장적으로 구축하며 그에 걸맞는 정치적 제헌양식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의민주주의로의 수렴론은 반혁명적이다. 반면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직접민주주의로의 복귀 주장은 낮동안의 노동에 이은 밤시간의 야간집회를 항구화해야 하는 떠안기 어려운 부담을 준다. 직접인가 대의인가가 쟁점이 아니라 다중의 절대적 구성역능과 제헌권력의 압도적 우위를 승인하는 것이 문제이고 이것에 걸맞는 제헌의 기술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이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자기 삶의 운영자로 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가능한가는 지금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직접민주주의의 현장에서 발명되어 나와야 할 절대민주주의적 과제이다.
6. 봉기의 새로운 기술과 예술
촛불 자체가 봉기의 새로운 기술이다. 촛불은 생명의 소망과 기원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것은 파괴와 죽음을 의미하는 총과 대립한다. 촛불은 총과는 달리 어떤 위계도 생산함이 없이 모든 사람들을 수평적으로 연결하는 삶정치적 무기로 기능한다. 촛불은 서로 옮겨 붙으면서 전염하는 점에서 대도시에서 가능한 들불과 같다.
온라인 게시물들도 권위를 창출하기보다 생산되고 전염된다. 그것들은 논리적이기보다 감성적이다. 100 여 년 전 레닌은 전국적 정치신문의 발행이 혁명의 선전가와 선동가요 조직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그것의 실현인 이스크라는 실제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오늘날 촛불봉기의 전국적 전 세계적 신문이 있다면 그것은 아고라이다. 아고라는 그러나 선전과 선동의 매체가 아니라 정보의 취합과 토론, 그리고 결정의 생산 공간으로 기능한다. 투쟁의 대의와 목적과 방향과 기술 모두가 이 인터넷 토론을 통해 결정되어 나온다. 그것은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들로 펌질되어 전파된다. 아고라는 우리 시대의 다중지성, 집단지성의 코뮌으로 기능한다. 물론 아고라에서의 결정은 결코 최종적이지 않으며 권위를 갖지도 않는다. 오프라인 집회나 시위 공간에서 새로운 견해에 직면할 때, 새로운 문제에 봉착할 때 즉석에서 다시 토론되어지며 새로운 결정을 생산한다. 오프라인에서의 새로운 결정들은 다시 아고라에 전송되고 토의에 붙여지며 새로운 피드백을 생산한다. 봉기의 기술이, 선전과 선동을 통한 조직화의 기술에서, 토론을 통한 결정과 그 결정들을 네트워킹하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생중계 방송은 아고라와는 다른 방식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결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운동이 온라인으로 직접 생중계됨으로써 봉기는 공간을 건너뛰어 생중계를 보는 시청자들의 사건으로 실시간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봉기의 힘을 수배나 증폭시켰다. 생중계 방송의 시청자는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다. 그들은 채팅창을 통해 집회나 시위를 지지하는 여론을 생산하고 그것을 평가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디지털 봉기자로 사건에 참가하는 주체들이었다. 이들은 모니터 앞의 단순한 유저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생중계는 사건의 현장을 알려주면서 시청자가 언제 어디로 이동하여 오프라인 운동에 합류할 수 있는지를 안내했다. 그리하여 운동이 활동과 휴식의 분업을 통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08년 아마도 한국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봉기의 생중계는 아마도 세계 최초로 혁명이 생중계된 사례일 것이다. 2003년 CNN에 의한 전쟁의 생중계는 전쟁을 스펙타클한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면서 이라크 민중의 신체의 찢김과 피와 죽음을 삭제시켰다. 인공위성에서 실시간으로 촬영해서 생중계된 전쟁은 최신무기의 시연장이며 군사과학의 경이로운 발전에 대한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제국주의의 기관이었다. 단 한 방울의 피도 화면을 물들이지 않으면서 1개월 가량 계속된 전쟁 생중계는 일상의 한 가운데 그것의 무료를 달래는 스펙타클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아프리카 방송, 라디오 21, 민중의 소리, 615TV, 오마이TV 등을 통해 생중계된 혁명은 이와 정반대의 효과를 생산했다. 방패로 머리를 찍고 군화로 여학생을 밟는 폭력적 동작 하나하나가 생중계되면서 폭력경찰과 권력의 폭력에 대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다중들을 지속적으로 결집시키고 대류시키는 삶정치적 디지털무기로 기능했다.
개개인이 들고 나온 카메라나 핸드폰카메라 역시 현장을 생중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것들은 생중계 TV의 대형 카메라와 협동하여 억압권력의 행동을 제한했고 최소폭력적인 봉기의 실재와 그 대의를 널리 확산시켰다. 카메라와 캠코더의 힘은 수천만의 눈을 혁명의 현장에 이끌고 와서 그 감시자가 되도록 함으로써 지금까지 56간에 걸친 항쟁의 지속에도 불구하고 사망자를 낳지 않은 유례없는 무혈 혁명운동을 창출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감시의 시선이 계엄군에 의해 차단된 상태에서 고립적으로 포위된 광주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이 행사되었고 엄청난 생명이 희생되었던 것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전에 시위대들을 일사분란한 대오로 편성하고 소속에 따라 대오를 결집하는 기능을 수행했던 깃발들의 기능은 퇴화한 반면 개개인들이 만들어온 개성적인 피켓들이 봉기집단 내부에 흥미와 연대감을 가져오는 것으로 기능했다. 대중화된 포스터잇을 이용한 자유메모 게시판도 눈에 띄게 많이 확산되었다. 여기에 농악대, 관악단, 록밴드, 자유드럼대(?) 등이 뒤섞여 봉기에 예술적 흥취를 더했다.
봉기의 방법들로 가장 일상적이었던 것은 집회이다. 집회는 초기의 자율집회로부터, 대책회의가 꾸민 연단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아갔지만 그 연사는 이전과는 달리 일관되게 중고등학생, 대학생, 주부, 할아버지 등 일반시민들이 주축이었다. 자유발언들은 다양한 의제들이 참가자들에게 공유되는 시간으로 기능했다. 5월 24일부터 시작된 거리시위는 합법의 틀 내에서 전개되는 집회의 한계를 뛰어 넘으면서 도로를 점거하여 행진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커다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으로 작용했다. 거리행진은 연도에서 관망하던 많은 사람들을 시위에 합류시켰다. 거리행진은 결국은 어떤 순간에 경찰 및 전경과의 대치로 이끌었는데 여기에서 벌어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싸움은 생중계와 현장 사진을 통해 유통되면서 촛불봉기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기능했다. 특히 5월 31일에서 6월 1일의 거리시위와 대치에서 발생한 경찰폭력은 이명박 정부를 고립시켰고, 6월 10일~11일까지 명박산성 앞에서 전개된 스치로폼 투쟁과 그를 둘러싼 논쟁, 그리고 6월 21~22일 국민토성을 통한 바리케이드 넘기 등은 법질서 그 자체가 사람들의 삶을 제약하고 있는 거대한 폭력체제임을 고발했다. 6월 5일에서 8일까지 이어진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와 6월 21~22일까지 이어진 48시간 국민행동은 참가자들의 정서적 연대감을 고취시켜 내는 데 기여했다. 또 6월 19일과 6월 24일에 있었던 국민대토론회는 정부의 배후 주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가를 공개리에 반박하면서 봉기의 발전을 위해 더 큰 지혜와 지성과 지식이 필요함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촛불집회는 6월 5일을 전후하여 대학생들의 동맹휴업을 이끌어 냈고 6월 13일에는 화물연대의 파업과 결합되었다. 그리고 6월 16일에는 다시 건설노조의 파업과 결합되었고 이것은 학생이나 노동자와 같은 전통적 사회계급이 촛불봉기와 결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촛불봉기를 계기로 민주노총의 총파업 계획도 힘을 받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소비자운동의 주무기인 불매운동이다. 조중동에 대한 네티즌들, 주부들의 불매운동은 이들 신문에 대한 광고게재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광고게재를 철회한 기업들에 대한 매매운동도 결합되었다) 이들 신문의 일일 발행면을 실제로 줄이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했다. 소비자 운동적 관점은 권력에 대한 소환(리콜) 요구로까지 연결되었다.
촛불봉기에서는 거대한 연대와 공통화의 힘이 솟구쳐 나왔다. 대책회의를 위한 모금은 물론이고 부상자를 위한 모금운동이 빠르게 가동되었다. 시위대를 위해 물, 김밥, 우의, 빵, 라면, 커피를 제공하려는 자발적 기부운동이 놀랄 만큼 강렬하게 작동했다. 아예 라면과 떡복이를 팔던 노점상 다인아빠(김경민)는 촛불집회 시간에는 아예 철시를 하고 시위대에게 라면과 커피를 무료로 제공했다. 봉기대오는 마치 그것이 이미 현존하던 공동체였던 것처럼 그 헤아릴 수 없는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의 깊은 협동능력을 보여주었다.
7. 촛불권력의 현재적 장애와 한계
촛불권력은 부단히 자신을 열어가는 생성중인 권력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자신을 잠재력으로 닫을 제헌권력이다. 그러므로 이 권력의 시작과 끝은 가시적이지 않으며 명확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촛불권력은 무에서 생성되는 권력이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의 태내에서 생성되고 있다. 거기에는 실험과 창조의 광대한 시공간이 열려있지만 어떠한 보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촛불권력은 역사의 흔적들을 강하게 간직하고 있으며 그 생성의 강도가 약할 때에는 과거가 그것을 덮쳐 그 새로움을 전적으로 회수할 수 있다. 과거의 역사는 그것에 장애로 다가오고 현재의 생산은 그것에 가능성과 더불어 한계를 부여한다. 여기서 그것이 직면해 있는 몇 가지 장애와 한계를 살펴보자.
우리는 촛불권력의 자발성과 자율성에 대해 앞서 언급했다. 자발성은 자율성의 의지를 갖추고 그것을 물질적 제도로서 구축할 때에, 그리하여 그것으로 낡은 것을 해체하고 또 대체할 때에 확실한 전진을 이룰 수 있다. 촛불권력은 어떠한가? 분명히 촛불은 상당히 확실한 권력적 실재성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실재적 권력으로 느끼고 그것을 행사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대리주의/대의주의적 정서와 의식이 촛불봉기 속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촛불봉기는 많은 경우에 자신을 국가권력을 순화시킬 압력운동으로 생각하며 차기선거에서 투표를 통해 실효를 거둘 예비행동으로 생각한다. 현 정권을 퇴진시키고자 하는 사람들도 그 빈 공간에 자신을 더 잘 대의할 새로운 권력자를 앉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직접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보충물일 뿐 그 자체로 자립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촛불봉기의 ‘영웅’ 진중권에 의해서도 공공연히 발언되고 있다. 촛불은 투쟁의 기관, 봉기의 기관일 수는 있어도 권력의 기관일 수 없다는 오랜 대의주의의 유산이 촛불을 짓누르고 있다. 그래서 제도권, 의회 속으로 촛불의 의제를 가져가야 한다는 최장집의 주장은 심각한 도전 없이 유통되며 심지어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까지 그의 입장을 주목해야 할 입장으로 대서특필한다. 그러나 대리주의/대의주의는 강렬한 자발성과 자율성을 갖는 촛불의 생리와 융합될 수 없다. 대의주의 경향은 촛불의 침식과 소거를 가져올 위험성으로 봉기 내부에 상존하고 있다.
촛불이 자신을 어떤 형태로 권력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잠복되어 있을 뿐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왜 그런가? 우선 외부적인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촛불은 순수한 것이며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미지는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권력들을 통해 수 없이 반복된다.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 될 때에는 배후의 조작이 있는 것이라는 선동이 그것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촛불의 정치적 진화를 ‘변질’로 악평한다. 이것은 촛불을 든 사람들 속에 잔존하고 있는 낡은 정서들을 자극하여 어린이나 청소년이나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삼는 가부장적 감정을 발동시킨다. 이것은 다른 유형의 대리주의이다. 그리하여 봉기에 나선 촛불들 내부에 위계와 구별을 도입하고 촛불들 일부를 대상화하면서 각자 특이한 촛불들의 자기가치화와 자기조직화의 가능성을 침식한다.
이러한 대상화는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이미 인터넷에는 무수한 코뮌들이 존재한다. 아고라는 촛불봉기를 통해 그 실재하는 코뮌들의 합류점, 네트워크의 네크워크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러한 실재하는 맹아적 코뮌들의 권력적 잠재력이 저평가되며 이 코뮌적 잠재력의 연결을 통해 촛불자신의 권력화(실제로는 준권력화이다)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힘을 얻지 못한다. 이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대상화이다. 여기에 자신을 비정치적 존재로 혹은 정치적으로 무력한 존재로 여기는 낡은 사고패턴이 작동한다. 촛불의 지역적 국제적 확산을 통한 촛불의 정부화의 가능성은 이러한 자기대상화를 통해 억제된다. 그래서 촛불은, 어떻게 권력으로 자신을 구성할 수 있고 그 권력은 근대의 국가의 권력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라는 당면한 문제는 은폐된다. 이리하여 이것은 현재의 쟁점을 부단히 국가권력 문제로, 아니 현존하는 정부를 다른 정부로 대체하는 문제로 환원하는 한계로 작용한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국민소환제 요구는 대표자에 대한 소환과 해임을 통해 권력이 대표자에게 귀속되지 않고 선출자에게 귀속되는 권력에 대한 상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있을 수 있는 촛불정부가 갖추어야 할 제도들에 대한 예상들의 일부이다.
촛불봉기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 생명의 안전을 비롯하여 사회적 삶의 안전과 행복과 존엄을 회복하는 문제들은 현재의 세계자본주의 질서에서 일국적 방식으로는 결코 풀릴 수 없는 문제이다. 그만큼 문제의 폭은 깊고 넓다. 미국산 쇠고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동물성 사료를 먹이고 있는 모든 소들은 생명을 위협한다. 오늘날 먹거리 중에서 과연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것이 단 하나라도 존재하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우리의 생명은 위험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촛불의 문제의식은 그 근본에서 인류적이며 보편적인 것이다. 촛불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문제만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에 대한 반복되는 호소, 태극기의 사용, 국민주권에 대한 잦은 호소, 애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선동구호 등은 투쟁력을 결집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다시 그 투쟁의 전 지구적 확산을 가로막는 한계로 작용한다. 촛불봉기가 국내에 살고 있는 비시민들, 비국민들의 자유로운 참여를 가능케 하려면 그리고 투쟁의 전 지구적 확산 속에서 인류인적 연대를 생산할 수 있으려면 봉기의 잠재적 주체들 사이에 경계를 도입하는 구호들, 상징들의 사용을 자제하면서, 그리고 전 세계인의 삶정치적 연대를 호소하는 구호나 상징들을 더 많이 사용하면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원적인 주체들 사이에 주권, 국가와 같은 전통적 통일수단을 빌리지 않는 새로운 공통화의 수단들, 무기들, 장치들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할 것이다.
8. 촛불봉기의 쟁점과 새로운 과학
가. 봉기의 주체성: 다중
촛불봉기 참가자들이 서로를 호명하는 주된 이름은 국민이다. 시민이라는 이름도 널리 쓰인다. 민중이라는 용어는 드물게만 사용된다. 노동자, 학생, 주부 등의 직업명이 사용되기도 하고 어린이, 청소년 등의 세대명이 사용되기도 한다. 서민이라는 계층명이 사용되기도 한다. 여성 남성 등의 성별 이름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들 중에서 온라인에서 활동하고 서로 연결되는 사람들은 네티즌이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네티즌은 국민인가? 네티즌이 전 지구적 온라인 연결망인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는 한에서 네티즌은 국민의 경계를 넘어선다. 설령 한국어 사이트만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이름은 국민이라는 용어로 환원될 수 없는 잉여를 갖는다. 여성 남성 어린이 청소년 등도 국민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다양한 세대들, 계층들, 직업들을 포함하고 있는 이들, 촛불봉기의 주체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인가? 한편에서는 그렇다. 이들은 대한민국 헌법 1조의 실효화(實效化)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명박 정부가 미친소 수입을 결정한 것을 미국에게 주권을 양도한 것으로 규탄한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검역주권을 비롯한 주권의 회복을 주장하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진성 국민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이들은 국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국민으로서 국가로부터 보장받아야 할 여러 권리들(생명권, 건강권 등)을 정면에서 거부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 국민이 아니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쫓겨난 망명자들이며 스스로 제헌의 주체로 나서지 않고는 생명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국가 없는 국민이다. 국가 없는 국민은 더 이상 국민이 아니며 새로운 유형의 권력의 창출함으로써만 해방될 수 있는 다수의 사람들인 다중이다. 이들은 대중인가? 거리와 광장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이들은 분명 대중이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분명 대중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위를 거부하며, 지도를 거부하며, 배후를 거부하고 각자가 스스로의 지도자이고 모두가 서로의 지도자라는 점에서 대중이 아니다. 이들은 그 어떤 자임하는 전위들보다 먼저 누웠다는 점에서 대중이지만 새로운 시간을 맞아 그 어떤 자임하는 전위들보다 먼저 일어서서 촛불을 든다는 점에서 전위이다. 이들은 대중이기도 하고 전위이기도 한 저 풀같은 투사들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대중들이지만 일반적인 대중과는 달리 무차별적인 양적 집합이 아니다. 이들은 피켓에 고유한 자신의 목소리를 담고자하며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의 개성과 특이성을 담고자 한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람들의 공동체인 다중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계급인가? 분명 이들은 미국과 한국의 권력자들과 부자들을 조롱하고 그들로부터 자신을 구분지으며 그들에 대한 적대와 분노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계급이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경제적으로 규정된 객관적 통일성을 갖는 계급은 아니다. 무수히 많은 계급들이 하나의 공통의 의제 앞에서 정치적으로 결집된 무리라는 점에서 이들은 다중이다. 국가에 저항하는 국민, 이것은 더 이상 국민이 아니며 자연상태의 존재인 다중이다. 지금의 봉기에서 다중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명확하게 등장하고 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아주머니들, 야자에서 도망나온 중고등학생들, 예비군복을 입은 민간인들, 민주노총의 조합원들, 대학생들, 회사원들, 실업자들, 농민들.... 등등. 주권에 대항해 저항하는 시민들, 국민들, 노동자들, 이들은 공통되기의 과정 속에 있는 특이성들로서의 다중이다.
나. 권력과 다중의 비대칭성
전통적 항쟁에서 민중은 권력과 대칭적인 전략과 전술을 구사했다. 하지만 다중은 권력과 전적으로 비대칭적이다. 권력은 명령하기를 원하지만 다중은 소통을 원한다. 권력은 일사분란한 군사적 구조를 갖지만 다중은 잡색이며 춤추는 듯한 미학적 구조를 갖는다. 권력은 진지를 방어하고 이윤 체제의 사수라는 뚜렷한 목표를 갖지만 다중은 뚜렷한 장소 없이 이러저리 흐르며 필요한 경우 우회한다. 권력은 경직된 얼굴로 다중과 대치하지만 다중은 그 대치를 즐긴다. 권력은 유한하고 측정가능한 시간 속에서 움직이지만(즉 권력에게는 출퇴근 시간이 있지만) 다중은 무한하고 불가측한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다중의 봉기는 시작도 끝도 없다).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다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다중의 봉기이기 때문이다.
다. 봉기의 소수자화
전통적 항쟁들은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두에는 남성, 학생, 노동자들이 서 있었다. 그러나 촛불봉기에서 그 역할은 뒤바뀐다. 봉기 대오 전체에서 여성 참가자가 현저히 늘어나 남성을 압도했으며 경찰과의 대치선에서조차 여성들이 상당한 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경차에 오르거나 빼는 과정에서도 여성의 참가는 남성에 못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남성들의 입에서 ‘여성들은 위험하니 뒤로 빠져달라’는 호소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그러한 호소는 일축되었다. 유모차 부대나 패션, 요리, 인테리어 동호회의 집단참가에서는 거의 전적으로 여성으로 구성된 부대가 출현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소외층 중의 소외층인 청소년은 촛불봉기의 초동 주체이면서 봉기에 일관된 역동감을 부여한 주체였다. 청소년들은 세종로 도로바닥에 자신들을 보호받을 대상으로 간주하는 시선으로 보지 말아달라는 대자보를 전시하기도 했다. 전경 차량을 빼는 남성적으로 보이는 활동 한 가운데에서 전력으로 밧줄을 당기는 어린이를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자유발언에서는 청소년들 외에 노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서대문으로 향하는 거리에서 한 여고생은 쪼끼를 입고 앉아 있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자들이 촛불집회에 열심히 참가해야 한다’고 선동하기도 했다. 역할의 역전이 나타났다. 집회, 시위, 행진, 대치에 이르는 봉기의 전 과정이 소수자화하면서 봉기는 사회의 기존 역관계 및 역할관계를 전복하고 뒤바꾸는 혁명적 역할을 수행했다.
라. 정당 및 정치조직들의 역할 변화
정당들의 위상과 역할도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정당은 대중의 위에서 대중을이끈다는 목표를 갖고 움직여 왔다. 그러나 이번 봉기의 진행과정에서 한나라당은 대중에 대한 지도는커녕 이명박과 더불어 소환되고 해체되어야 할 정당으로 낙익찍혔다. 통합민주당은 뒤늦게 장외투쟁한다면서 합류하여 봉기의 성과를 가로채려 했으나 실패한 후 다시 가장 빨리 등원의 기회를 노리면서 촛불전선에서 이탈하고 있다. 박사모 역시 늦게 봉기 대오에 합류하여 촛불의 힘을 찬탈하여 복당의 성과를 끌어내고는 이제 촛불을 끌 때라며 재빠르게 촛불에 대립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의원은 쇠고기 정국의 중심에서 대중의 호감을 얻었다. 하지만 당 차원에서 진행한 단식투쟁은 촛불봉기의 진화과정에 묻히고 뒤처져 실효 없는 투쟁으로 끝나고 말았다. 민주노동당의 다함께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중을 지도할 목적으로 행진대오를 이끌다가 참가자들의 불신을 샀다. 진보신당의 변신은 흥미롭다. 진보신당은 칼라티비를 통해 봉기의 중심으로 뛰어들어 생중계를 하는 것에 당력을 집중했다. 참가자들의 참가동기에 대한 인터뷰, 대치 상황에서 일어나는 경찰의 폭행을 생중계로 고발하기 등 신속하고 발빠른 대응으로 봉기의 여러 면모를 신속하고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봉기자들로부터 사랑을 얻었다. 지도에서 중계(매개)로의 진보정당의 이러한 역할 재설정은 변화하는 상황에서 정당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사고해 나감에 있어 하나의 실험적이고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이외에 대안권력으로서의 평의회를 건설하자거나 촛불봉기 외부에서 좌파연합을 통한 지도부를 건설하자는 주장들이 있었지만 촛불 그 자체에 대한 내재적 독해와 평가의 부족으로 인하여 촛불봉기의 내재적이고 자율적인 지도력을 구축하려는 봉기 대오와는 접속하지 못한 채 그 자체로는 중요한 의미를 담는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공허한 외침으로 되고 말았다. 이것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촛불의 힘이 무수하게 특이적인 힘들의 접속과 소통, 신뢰와 사랑의 축적을 통해 형성되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지도력 역시 그 내부로부터 때로는 누적적인 방식으로 때로는 돌발적인 방식으로 형성되어 나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봉기의 과정 속에서 참가한 다중들과 단단하게 마디로 결합되지 않는 한에서는 아무리 좋은 생각들도 실효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대책회의의 경우는 어떤가? 대책회의 역시 초기에는 촛불의 특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촛불과의 정확한 접속의 방식을 알지 못했다. 아고라를 비롯한 많은 부분에서 대책회의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루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대책회의는 촛불봉기의 발전과정을 늘 뒤쫓아 가야 했다. 집회에 설치한 연단과 마이크부터가 집회의 자발성을 억제한다고 비판되었다. 대량제작되어 뿌려진 손피켓도 같은 이유로 비판되었다. 거리행진에 선도차를 배치하여 시위대를 이끌려는 노력은 시위대를 통제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6월 이후 투쟁이 격화된 상황에서도 자유발언-거리행진-해산으로 이어지는 상투화된 집회방식을 관성적으로 유지함으로써 봉기참가자들의 역동성을 억제하고 심지어 투쟁을 침식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대치의 상황을 회피한 것, 강력한 대치와 돌파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확성기로 인위적으로 축제적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적절하고 역량의 자연스런 재배치를 저해한 것, 6월 21일 경찰과의 대치선에서 일부의 시위대를 빼내어 시청으로 돌아간 것 등 대책회의가 받은 비판의 종류는 많다. 하지만 대책회의는 이 비판들을 받아들여 나름대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느리지만 계속했다. 특히 6월 13일과 23일에는 여의도 KBS 앞으로 시위대와 함께 이동하여 보수단체들의 폭력에서 촛불들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보였고 6월 21일에는 다음날 아침까지 시위대와 함께 대치투쟁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대토론회와 여론수렴모임을 통해 봉기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노력도 보였다. 이렇게 함께 투쟁하고 아래로부터의 의견을 받아들이려는 느리고도 부분적인 노력만으로도 대책회의를 촛불봉기의 내생적 지도력으로 받아들이려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9. 촛불봉기는 무엇을 바꾸고 있는가?
가.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대중화시키고 있다.
나. 수구적인 이데올로기적 권력기구 조중동의 권력을 침식하고 있다.
다. 국가권력과 지배계급 내부의 분열을 조성하고 있다.
라. 사회 각계각층을 반이명박 전선으로 결집시키고 있다.
마. 새로운 항쟁의 주체들, 봉기의 새로운 기술들을 매일 매일 창조하고 있다.
10. 맺음말: 미래 운동의 새로운 로두스
촛불봉기는 한국에서 발생하여 전 세계에 유통되고 있고 또 주목을 받고 있는 항쟁의 새로운 형식이다. 촛불봉기는 가장 개인적인 의지들이 모여 가장 정치적인 것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사전에 조직된 어떤 힘들의 진출이 아니라 아주 미세한 개인적 결의들의 상황적 접속이다. 여기에는 사전에 결정된 어떤 계획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예정되어 있는 어떤 방향이나 미래도 없다. 공동체의 수준에서 느끼는 굴욕감과 수치심, 권력의 뻔뻔스러움과 기만과 폭력에 대한 분노, 잘못된 권력을 생산한 데 책임이 있는 자로서의 자책, 소수자들과 약자들이 앞장서서 진리를 생산하고 그것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데 대한 양심의 가책, 함께 투쟁하는 자들 사이의 끈끈한 사랑 등의 정동이 봉기를 지금까지 56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끌고 나오고 있는 원동력이며 수많은 다중들이 항쟁의 체험 속에서 창출하는 집단지성이 이 정서적 공동체를 지성적이고 윤리정치적인 주체성으로 가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주체성은 아주 오래된 불빛인 촛불을 든 절대적 폭력의 (그래서 상대적 최소폭력을 지향하는) 부대이고 어떤 지도부도 없이 매순간 자기결정을 내리는 다수로 구성된 잡색부대이지만 컴퓨터와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서로 접속되고 소통되는 최첨단의 정보부대이다.
이러한 공동체적 주체성이 지금 갑자기 출현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주체성은 탈근대적 생산활동 속에서 이러한 출현을 가능케 할 오랜 예행연습을 거쳤음도 분명하다. 이들의 소통능력은 투쟁의 현장에서 처음 실험해 보는 낯설고 초보적인 것이 아니다. 이들은 공장, 학교, 사무실, 가정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생산적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정보적 소통을 연습해 왔고 오늘 그것을 투쟁의 능력으로 전환시키고 있을 뿐이다. 탈근대의 생산은, 근대의 생산에서와는 달리, 구상과 실행의 분리 위에서 위계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스스로가 상황파악, 분석, 계획, 그리고 결정의 주체가 되도록 요구받는다. 요컨대 탈근대적 생산의 과정은 개인들에게 수동적 대중이 아니라 수동적이면서 동시에 능동적인 전인이 되도록 요구받는다. 항쟁의 현장에서 무수한 사람들은 타인의 말을 들으며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지성적 집단을 꾸려내고 구호를 함께 외치면서 투쟁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대치, 몸싸움, 퇴각, 도주, 재결집 등의 매 순간마다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고 목표를 정하고 물러날 때를 결정하고 다시 모일 때를 기획하는 총체적 인간으로 움직인다. 이런 의미에서 촛불봉기는 탈근대적 생산의 탈근대적 항쟁으로의 역전이다. 이 탈근대적 항쟁이 폭력과 파괴를 최소화하려는 윤리정치적 감각에 의해 이끌리고 있는 것은 우리들이 오늘날 생산 속에서 생명과 소통의 공동체를 만들고 있고 혁명은 폭력적 권력과 강탈적 자본에의 예속상태에 놓여 있는 이 생명과 소통의 공동체를 자립적으로 분리시켜내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자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촛불은 바로 자본관계에 예속되어 있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이 잠재적 공동체를 비추어 보여주는 삶정치적 무기가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앞서 분석한 바 촛불봉기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특질들은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적인 것들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아직 많은 약점들을 갖고 있지만 새로운 삶, 새로운 운동, 새로운 혁명이 자라나와야 할 필연적 터전이다. 정동과 지성의 결합체인 다중지성과 그것의 운동은 운동의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탈근대적 운동의 토대이고 조건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모든 진지한 운동들이 발딛고 있는 로두스다. 여기에서 뛰는 길 이외에 어떤 길도 지금은 주어져 있지 않다.☮
첫댓글 어큭.....한글프로그램이 없는뎀....어디서 구하나 ㅠ_ㅠ
일단 다 붙여넣기했습니다~; 한글 뷰어는 한컴 홈피에서 다운받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