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황 행초 표암유채(姜世晃行草豹菴遺彩)》보물1680호(경기도박물관 소장)
강세황(姜世晃1713~1791)은 조선후기 영정조 연간의 문인이자 서예가이며
뛰어난 감식안을 가진 서화 평론가로서 시서화 삼절(三絶)로 잘 알려진 예술가다.
당대 최고의 화원이었던 김홍도, 신위 등도 그의 제자들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학문과 장수를 누렸으며, 할아버지 강백년, 아버지 강현)에 이어 자신까지
3대가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감으로써 이른바 '삼세기영지'家로 칭송받았다.
보물로 지정된 표암유채는 글 끝에 경술년(1790년) 겨울에 썼다는 기록으로 보아
1791년 1월23일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1~3개월 전 작품으로 추정된다.
서첩의 구성은 모두 13장 26면에 규격은 54.7×31.5㎝로
일반 서첩류 보다 월등히 크고, 글자의 크기도 커서 큰 글자는 자경이 15cm에 이른다.
서체는 송나라 양시(楊時) 등의 칠언시를 유려한 행초로 쓰고 발문을 적었다.
말미에 우리나라 남쪽에서 생산되는 죽청지(竹淸紙)에 관한 기록은
조선후기 18세기 말의 종이에 관한 소중한 기록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 종이의 이름은 죽청지(竹淸紙)로 우리나라 남쪽 고을에서 나니
비문을 쓰는 자는 반드시 이것을 구해 그 매끈하고 얇은 바탕에 쓰네…”라는
내용에 대해 종이의 재료를 실제로 언급한 매우 드문 사례로,
18세기 말 종이에 관한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오늘날 강세황(姜世晃)의 필적으로 서첩ㆍ간찰ㆍ병풍 등이 다양하게 전하지만,
이 서첩처럼 연대와 내력이 분명한 예는 드물다.
더욱이 이 서첩은 그의 기년작 가운데 가장 말년에 해당하는 절필(折筆)로서
강세황 특유의 완숙한 서풍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