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어제는 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리고 밤 늦게까지 집이 조금씩 흔들릴 정도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자정 넘어서는 개짖는 소리가 들려 잠을 설쳤다. 게다가 동틀려면 몇 시간 남았는데 수탉도 목청을 울린다.
오늘은 바라데로로 가는 중에 체게바라의 도시 산타클라라를 잠깐 들른다. 들르지 않고 갈 때보다 30분 정도 시간이 더 걸리지만 쿠바에서 체게바라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여기서는 히치하이킹을 많이 하려 한다. 교통수단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이 내 차를 단속하듯이 세우려고 손짓한다. 경찰인가 해서 긴장했는데 일반인이다. 점잖게 해도 해줄까말까인데.
어미 돼지가 새끼 돼지 2마리를 데리고 간다. 그런데 어미는 흰색인데 새끼는 검은 색과 갈색이다. 왜지.
날씨가 흐리고 비온다. 산길에 접어든다. 산을 넘어가는 길이다. 비도 오고 안개가 심하다. 맵스미에 90킬로 남았는데 1시간 15분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꼬부랑 길을 가느라 기껏 시속 40에 불과하고 오르막 커브에서는 20 정도이니 2시간보다 더 걸릴 것인데 너무 시간계산을 이상하게 한다.
맵스미가 비포장길로 안내한다. 심하게 패인 길. 비가 오고 진흙 땅이라 타이어가 미끄러진다. 자동차 타이어가 미끄러지며 골에 빠지니 차 바닥이 땅에 긁히는 소리가 들린다. 내려가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낭패일세. 내려서 보니 타이어가 진흙에 헛돈다. 돌도 괴어보고 이런 저런 조치를 취해봤으나 움직이지 않는다. 마침 여자 두명이 가길래 차를 좀 밀어달라고 부탁한다. 두사람이 밀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산타클라라가는 길이 아니라고 길을 잘못 들었다한다. 내비게이션이 이리로 안내했다고 했다.
아줌마가 트랙터를 부르러간다. 무척 고맙다. 까만 아가씨는 계속 옆을 지켜준다. 아줌마가 남자 한 명을 데리고 왔다. 이 사람이 트랙터를 부르러 길을 올라간다. 쿠바 사람의 정을 느끼겠다. 아줌마는 헤진 옷을 입고 있다. 두 명이 자리를 지켜주어 큰 힘이 된다. 이 사람들 없으면 어쩔뻔 했나.
맵스미가 나를 크게 실망시켰다. 맵스미를 무조건 믿으면 곤란하겠다. 앞으로는 승용차로 비포장길을 절대 안갈 것이다. 체게바라 하면 앞으로는 쿠바 비포장길이 생각나겠다.
근처에 사는 남자가 나왔다. 다들 아는 사이인가보다. 커피 마시겠냐고 해서 그러겠다니 쿠바커피를 가져다 준다. 양이 적고 매우 달다. 못알아듣는 스페인말을 태어나서 가장 많이 들었다. 아는 문장 몇 개로 얘기하지만 소통이 안된다. 여자 두명은 나를 남자에게 인계하고 갈 길을 간다. 고마움의 표시로 20쿡을 주니 놀라서 안받으려한다. 이렇게밖에 고마움을 표현할 수 없네.
동네 남자들이 우르르 나오고 한참 있다가 트랙터가 멀리서 구세주처럼 등장한다. 그런데 길이 워낙 심한 비포장이라 삐뚤거리며 내려온다. 이거 안되는 거 아닌가 라는 불안감이 살짝 든다. 차뒤에 쇠고리에 쇠줄을 건다. 내가 운전석에 타고 뉴트랄로 놓고 딸려간다. 가다가 가장 급한 구간에서 트랙터가 멈추더니 바퀴가 겉돌며 전진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내 대신 운전대를 잡았다. 트랙터가 내려왔다가 가속하여 오르기를 몇 번 해도 마찬가지다. 아이구야. 이리저리 시도를 해도 안된다. 이걸로 안되는 것 아닐까 걱정이 든다. 남자 6명이 달려들어 차를 밀어보지만 진흙에 바퀴가 미끄러지기만 하고 타이어에서 연기가 나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더 큰 트랙터가 필요한 게 아닐까. 앞 범퍼는 땅에 끌려가면서 플라스틱 그릴 같은 것은 떨어져 나갔고 범퍼가 마치 포크레인으로 흙을 퍼담듯 흙을 푸고 있다. 이거 나중에 벌금을 심하게 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돌도 고여보고 땅도 파보며 시도해도 안된다. 다시 트랙터에 줄을 연결하여 당기고 차도 리어로 최대한 가속 페달을 밟으니 경사진 마의 고비를 간신히 넘어간다. 감격. 그다음은 그다지 경사가 급하지 않아 트렉터가 차를 차길까지 무사히 끌고간다. 드디어 성공. 생각보다 너무 고생들 했다. 모두들 자기 일처럼 여겨서 너무 고맙다. 이 날은 잊지 못할 거다. 처박힌지 2시간 걸렸다.
고생한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고마움을 전한다. 6ㅡ7명이 달려 들어 1시간 정도를 고생한 것이다. 비용을 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지갑에서 기름값과 쓸 돈을 남겨두고 전부 꺼내니 70ㅡ80쿡밖에 안된다. 이것밖에 없다는 말을 영어로 했지만 전달되었나 모르겠다.
한 명을 태워 산타클라라까지 데려다주라고 부탁한다. 물론입죠. 은인들인데 더한 것이라도 못할까.
젊은 친구는 계속 속도를 늦추라고 한다. 커브길에서도 그러고 땅이 고르지 못할 때도 그런다. 여기 사람들과 나의 운전이 다르긴 한가보다. 앞차를 추월하는데도 멈추라고 하기도 한다. 자꾸 그러니 짜증이 슬슬 난다. 얻어타면서 요구하는 게 많냐. 내리라고 하고 싶지만 은인들의 친구이니 내가 견뎌내야지.
주유소에서 옥탄가 83짜리를 넣었더니 차가 달리는 상태가 별로다.
차가 엉망이 되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은 바닥이 진흙이 잔뜩 붙어있고 운전대도 그렇다. 범퍼는 상태가 저러니 내일 반납할 일이 걱정이다.
산타클라라에 도착. 이 친구는 내리고 나는 체게바라 동상이 있는 곳으로 더간다. 동상과 벽에 조각된 것이 있다. 사람들이 제법 많다. 여기 오느라고 그 고생을 했네.
12시가 넘어서 식당을 검색하여 찾아갔다. 잘 모르니 아는 음식을 시킨다. 새우 참치 피자. 양이 많다. 2인분 정도는 되어보인다. 맛은 좀 느끼한 편이고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반만 먹고 남겼다. 8.6쿡.
가다가 좌회전하여 바라데로로 가려는데 누군가 차를 세운다. 이 길로 가면 비라데로가 나오지 않고 산타클라라로 간단다. 엥 그럴리가. 지도로 보면 바라데로 행인데. 지도의 디테일이 틀릴 수 있어도 전체적인 것이 틀릴 수 있나. 다른 곳으로 갔다가야 한다고 자기가 안내해주겠다면서 자기를 태우란다. 태우고 어디로 가라고 말해서 지도를 보니 돌아가는 거다. 얘가 공짜로 거기까지 가고싶은 것이로군. 오케이 그 정도까지는 베풀어주마.
가면서 본인은 정직한 사람이며 나를 도와주는 거란다. 어디서 왔냐길래 코레아라니 반갑다면서 호들갑을 떤다. 말끝마다 언더스탠을 넣는다.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한다고 매번 언더스탠이냐. 그러더니 바라데로를 잘 안내할테니 자기에게 굿프레젠트를 줘야한단다. 그거였냐. 기분이 팍 상하면서 네 도움은 필요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원래 위치로 자기를 데려다 달란다. 다시 거꾸로 돌아간다. 형편 없는 자식. 원위치에 도착해서 내리면서 그쪽 길에 다리가 고장났다고 30킬로 가다 돌아올거란다. 그런 얘기를 아까 했어야지 믿음이 가지. 지도가 잘못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나 했냐. 이 녀석은 자기에게 1쿡을 달라고 사정한다. 에라이.. 줘버리려고 동전을 주머니에서 한움큼 꺼내니 돈을 보고 2쿡을 달란다. 하나 주고 내리라고 했다. 이 녀석을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판단이 잘 안선다. 믿어서 손해보는 건 조금 돌아가는 것이지만 만약 이 녀석 말이 사실이면 크게 시간 손해를 보는 것이니 믿고 돌아가기로 했다. 사실 확인은 나중에 해보자.
바라데로 입구에서 경찰에 걸렸다. 과속이란다. 스페인어를 숫자만 대충 알아듣는 정도이니 자세한 내용을 모르겠지만 17ㅡ18킬로 오버라는 것 같다. 외국인이고 한국에서 왔고 좀 보내달라고 사정하니 가란다. 다행이다.
가다가 또 경찰이 잡지는 않아도 슬로우다운 하라는 손짓을 한다. 내가 좀 달렸나보다. 도로에 비해 제한속도를 너무 낮게 정한 것 같다.
바라데로는 좁다란 땅이 바다를 향해 길죽하게 나온 특이한 형상이다. 숙소로 예약한 툭스판 호텔 도착. 4성급이다. 올인클루시브 팔찌를 해준다. 이걸로 식음료는 공짜로 먹을 수 있다. 71유로에 숙박하니 칸쿤에 비하면 가성비 갑. 칸쿤은 13만원 내고 방만 쓴거다. 시설이 좋긴 했다.
객실에 있는 수건을 들고 차로 가서 차에 묻은 진흙을 닦았다. 수건에 진흙이 묻어 걸레가 되니 미안하다. 팁을 좀 남겨야겠다. 범퍼에 끼워지는 플라스틱 그릴 같은 것이 잘 안끼워진다. 이것이 내일 문제가 될까.
바에서 맥주 한잔 받았다. 공짜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팁을 준다. 팁통이 있다. 비치로 가서 바다에 들어갔는데 가드가 부르더니 레드플랙 때는 수영금지란다. 스톰이 심하다고. 가는 날이 장날일세.
공짜라고 칵테일을 여러 잔 마시니 얼굴이 벌게지고 취기가 온다. 올인클루시브이지만 주량 때문에 몇 잔 못마시겠네. 술이 약하면 본전도 못찾겠다. 이 호텔이 저렴한 편이어서인지 투숙객이 무척 많다. 음료 하나를 받으려해도 줄을 선다.
바람이 세게 불어 밖은 춥다. 수영장 옆에 있다가 호텔 안으로 들어간다.
인터넷카드로 인터넷이 연결되었는데 화면이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이 오버되어서인가?
6시반에 크리스탈 식당이 문열고 부페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 문열자마자 들어갔는데 음식이 다양하지 않다. 그릴 줄은 길다. 일단 배를 채웠고 식당이 9시반에 문을 닫으니 그 전에 한번 더 와야겠다.
이 호텔 내에서 어제 산 에텍사 인터넷카드로 접속이 된다. 비교적 사진도 잘 올라간다.
본전 뽑는다고 또 부페식사를 했다. 음료도 몇 잔 더 마셨다.
진흙으로 차가 엉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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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이 미끄러워 차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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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준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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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는 심한 비탈. 차가 삐뚤거리며 내려온 자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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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준 동네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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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스미가 왼쪽 비포장길로 안내. 거기는 죽음. 폴로 비에호 방향 포장길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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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 트랙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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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인. 결코 쉽지 않았다. 1시간 여 시간이 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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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도와줌.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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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진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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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게바라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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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산타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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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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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참치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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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클루시브 팔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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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칵테일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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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 들어가지 못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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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데로는 좁은 땅이 길게 바다로 향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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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 주문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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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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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페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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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체게바라 뵙느라 고생많았네.
사람사는데에 착한사람 나쁜넘 고루 섞여있기는 어디가나 똑같은듯하다^^
댓가가 너무 혹독했어. 쿠바 사람들 중에 등쳐먹으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아름답다고 기억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