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제법 따뜻해졌다. 고택 툇마루에 앉아 봄볕을 즐기는 일도 운치가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3월을 앞두고 가볼 만한 '집성촌 종가집' 여행지 4곳을 추천했다. 이번 주 봄나들이는 이곳으로 간다.
■ 충남 아산 외암마을
하룻밤 묵으며 옛마을의 봄정취를 경험해볼 것을 추천한다. 외암마을에서는 떡메치기, 두부만들기, 탁본뜨기, 솟대만들기, 연만들기 등의 체험학습(041-541-0848)이 가능하다. 또 농가에서 민박도 가능하며 숙박료는 약 5만~17만원이다. 현충사, 온양ㆍ도고온천 등과 연계해 일정을 잡으면 실속있는 여행이 된다. 아산시 문화관광과(041)540-2565
영남 사림학파의 중심인물인 점필재 김종직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50여 가구가 있다.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골'이라는 지명답게 봄이면 매화, 목련, 벚꽃이 마을에 만발한다.
정겨운 돌담길 따라 마을을 산책하다 보면 고즈넉함과 기품이 서려있는 점필재 종택을 만나게 된다. 안채, 사랑채, 고방채, 점필재 선생의 신주가 있는 사당까지 갖추고 있어 영남지방의 전통한옥 구조와 아름다움을 엿보게 된다.
서당인 도연재에서는 전통예절문화를 배울 수 있고 마을 뒤쪽 대숲에서는 고고한 선비정신도 느낄 수 있다. 딸기수확, 한과만들기, 전통놀이 등의 체험이 가능하며 마을 뒷산인 화개산은 트레킹장소로 적당하다.
200여기의 고분이 몰려있는 지산동고분군과 대가야왕릉전시관, 대가야박물관, 우륵박물관 등이 고령에 있다. 개실마을(054)956-4022
■ 전남 해남 녹우당
녹우당은 조선중기 대문호인 고산 윤선도의 고택이자 해남 윤씨의 종가집이다. 원래 녹우당은 고택의 사랑채 이름이지만 현재 고택 전체를 상징하는 의미로 불리게 됐다. 고택 뒤쪽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숲이 있는데 바람이 불 때 잎들이 내는 소리가 초록색처럼 맑은 빗소리 같다고 해 녹우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녹우당은 고산이 수원에 머물 때 당시 효종 임금이 스승이었던 고산에게 하사한 것이다. 그가 낙향할 때 이를 옮겨 다시 세웠다.
고택은 한때 99칸에 달했지만 현재 55칸만 남아 있다. 이곳 별당에서 조선후기 대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태어났고 증손인 대화가 공재 윤두서가 학문과 예술을 연마하며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을 만났다고 하니 녹우당은 호남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종택 입구의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를 비롯해 돌담 등이 볼거리다. 이슬이 마르지 않는 아침에 비자나무숲을 산책해도 좋다. 우항리 공룡화석유적지, 천년고찰 대흥사와 미황사 등을 함께 둘러보면 유익하다. 해남군 문화관광과(061)530-5229
■ 경남 밀양 교동
교동이란 지명은 원래 조선시대 향교를 중심으로 민가가 밀집해 생겨난 마을을 일컫는다. 전국에 교동이라는 지명은 많지만 밀양의 교동은 밀성 손씨 집성촌으로 고택이 여러 채 남아있어 운치가 있다.
99칸의 종가집이 볼만하다.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 등이 남아 있다. 큰 사랑채의 후원터와 안채의 장독대 등에서는 당시 손씨 가문의 풍류와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다. 마루 전체에 창호문을 둘러 만든 겹방 구조, 개화기의 가구 등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판소리 '춘향전'에 등장하는 밀양방문주를 맛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방문주는 '약방문에 따라 특별 재료와 방법으로 빚은 술'이다. 밀양손씨 가문에서 전승된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국내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영남루, 영남학파의 대가 김종직이 후학을 양성하던 예림서원, 국난이 닥치면 땀을 흘린다는 표충비,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 등이 밀양에 있다. 밀양시 문화관광과(055)359-5642
담양 삼지내마을
대나무 고장 담양에 있는 곳으로 16세기에 마을이 형성됐다. 동쪽 월봉산, 남쪽 국수봉, 마을 앞의 개천이 날개를 뻗은 봉황의 형상을 이룬다고 해서 삼지내(三支川)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두 세기 전의 소박한 마을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2007년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남도의 전형적인 대농 가옥 모습을 보여주는 고재환가옥, 구한말 민족운동의 근거지 고정주 고택 등 오래된 옛집들이 돌담길을 따라 자리잡고 있다. 창평 고씨 종손댁을 비롯한 예닐곱채의 고택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다.
●호남고속도로 창평IC에서 나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광주종합터미널과 광주역에서 시내버스가 운행한다. 소쇄원, 죽녹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등이 지척이다. 홈페이지( www.slowcp.com) (061)383-3807.
영주 선비촌
조선 유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민속 마을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12채의 고택을 경북 영주시 순흥면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고 정자, 성황당, 원두막, 저잣거리 등을 새로 만들었다. "사방 10리 어디를 가도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하는 순흥 고을의 옛모습을 21세기 들어 되살린 셈. 가까이 있는 소수서원과 연계해 선비의 일상을 경험해보는 오감체험형 행사를 진행한다. 일곱채의 고택에서 한옥 숙박체험을 할 수 있다. 한지공예, 천연염색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나와 931번 지방도 타고 단산 방향으로 소수서원 지나면 바로 닿는다. 입촌에서부터 귀가까지 스케줄이 비교적 빡빡한 '문화마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홈페이지( www.sunbichon.net) (054)638-6444.
강릉 선교장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 처음 터를 잡은 뒤 300여년 동안 증축을 거듭해온 대표적 고택이다. 양반 가옥 가운데 최대의 규모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강릉사람들은 지금도 선교장이 있는 동네를 배다리라고 부르는데, 경포호가 지금보다 넓었을 때 배를 타고 건너 다녔기 때문이다. 선교장(船橋裝)이라는 이름의 유래다. 수백년 된 벽송 숲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경내 어디를 거닐어도 고즈넉하고 단아한 분위기에 파묻힌다. 중사랑채, 연지당 등 본체의 여러 당우와 전통문화체험관 등 부속 건물에서 숙박할 수 있다.
●강릉 시내에서 경포대로 가는 길목에 있다. 전통음식, 민속놀이, 예절 체험 등과 함께 설악산, 오대산, 동해바다 등 주변 관광지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홈페이지( www.knsgj.net) (033)646-3270.
영암 구림마을
월출산과 은적산 사이에 위치한 구림마을에는 100개 가까운 민박집이 있다. 그 가운데 월인당은 구들의 뜨끈한 온기를 찾아오는 사람들로 겨울이면 빈 방을 찾기 힘들다. 구례 사성암을 지은 대목과 강진 다산초당을 복원한 도편수의 공력을 합쳐 6년 전 지었다. 아랫목은 두껍고 윗목은 얇은 옛 법식대로 구들을 놓고 황토를 바른 뒤 한지 장판을 깐 진짜배기 온돌방이다. 이밖에 340년 역사를 지닌 안용을 비롯해 국암사, 안현궁 등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옛집들이 있다. 두륜산과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 등 관광지가 가깝다.
●목포에서 2번 국도를 타고 강진 방향으로 20㎞ 정도 가다 영암으로 이어지는 819번 지방도로 갈아타면 된다. 구림마을 안에 황토로 영암도기를 빚어볼 수 있는 도기박물관이 있다. (061)286-5343.
윤스테이’ 한옥 어디? 머물기만 해도 힐링, 古宅 스테이
코로나19 사태에도 한옥스테이가 인기다. [사진 제공 · 아원고택]
비대면 여행 가능한 한옥고택
‘윤스테이’ 촬영지인 쌍산재의 겨울 풍경. [쌍산재 홈페이지 캡처]
비대면 여행이 가능한 아원고택.
‘윤스테이’ 촬영지인 쌍산재는 전남 구례군 상사마을에 위치한 300년 고택(古宅)으로, 전통 가옥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특히 뒤뜰 서당채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대나무와 동백나무 숲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윤스테이’가 방송되면서 쌍산재로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현재는 코로나19 사태로 잠시 휴업 중이다.
전국에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한옥스테이가 있지만 쌍산재 같은 고택이 특히 인기다. 여러 채의 한옥 사이사이에 넓은 마당과 정원을 품고 있어 머무는 것 자체만으로도 여행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별채는 독채로 사용 가능해 비대면 여행도 할 수 있다.
사계절 내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소강고택.
현재 한옥스테이로 운영되고 있는 한옥고택은 쌍산재 외에도 전북 완주 아원고택, 경북 안동 치암고택, 경북 봉화 소강고택 등이 있다. 아원고택은 경남 진주의 250년 된 한옥 2채와 전북 정읍의 한옥 1채를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종남산 아래로 옮겨와 이축한 한옥스테이다. 한옥과 현대 건축물이 조화를 이뤄 색다른 멋을 낸다.
전하루 아원고택 매니저는 “코로나19 사태에도 여행객이 꾸준히 찾고 있다. 호텔과 달리 독채로 운영되고 문만 열면 자연을 만끽할 수 있어 안전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며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었지만 아원고택의 경우 매출에 큰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옥은 얼핏 보면 모두 비슷한 것 같지만 지역에 따라 건축 방식이 다르고 대청, 문살, 처마, 서까래, 주춧돌도 닮은 듯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한옥의 숨은 모습을 찾는 것도 한옥스테이의 묘미다. 한옥고택에서 하룻밤은 자연과 오롯이 교감하며 한옥의 숨은 속살을 훔쳐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