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에서의 어떤 날
신연옥
나를 탈탈 털기위해서 청평사를 갔다
늦은 봄날이었다
화장실 계단을 오르는데 놓여있는
휠체어 한대가 시선을 잡아당겼다
누굴까하는데 지팡이를 짚고 나오는
청년이 보였다
중년의 여성이 거기 그냥 있어 누나가갈께
하는 순간 휠체어가 허공에서 돌아가고
청년은 그자리에서 나뒹굴어졌다
뒤따라 나오던 남성이
거봐 형이 집에 그냥 가만히 있으랬잖아!
왜 여기까지 따라와서 망신살이 뻗치게
하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청년은 어쩔줄모르고 쩔쩔맸다
그의 얼굴은 무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때 늙은 할메가 다가와서
이게 다 이 에미죄다
너늘 이렇게 만들어
놓은 내 탓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고 있었다
이건 구경거리가 아니다
나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저녁 예불종소리에 눈을 뜨니
석양빛이 그의 얼굴에 내려앉아
조용히 쓰다듬고 있었다
전동스쿠터와 연인
신연옥
스쿠타가 나간다
이른 새벽 사람뜸한 골목을 나온 스쿠타가
백허그를 한 그녀를 안고 씽씽달렸다
빨간 앵두같은 안전모를 쓴 그녀
그날의 출근길은 아픔의 서막이었다
트럭과 충돌한 벼락같은 사고는
몸뚱어리를 아픔과 아픔으로 묶어버렸다
꽃은 찬성과 반대와 화해의 길 끝에서
겨우피워냈지만
심한 휴유증이 연리지가지를 찢어놓았다
절뚝절뚝 스쿠타가 서울의료원으로 가는 길
그 옛날 벗꽃길에서 누군가 부르기라도 하는지
자동으로 멈췄다
바람에 날리는 벗꽃잎에서 꽃그림을 그려주던
분홍빛입술 그녀가 손짓을 했다
그녀를 찍는다 찰칵! 못내 아쉬워 찰칵!
돌아서서 찰칵! 다시 찰칵!
가슴속에 파묻어 두었던 그녀를 부른다
빨간 앵두빛 안전모를 쓴 그녀가 탄다
오늘은 꽃구름같은 그녀를 등에 업고
새하얀 차선을 따라 서울 의료원으로
스쿠타가 붕붕 달린다
하루
신연옥
난곡동 장미연립에 사는 서영이는
선천성 소아마비로 보행이 불편하다
경도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봉제공장에서 제봉사로 근무한다
남들이 꺼리는 야간작업, 잔업도 마다않고
자청하는 억척같은 여자다
세간의 온갖 참새들이 따따부따 뒷담화를 까도
끄덕도 하지 않았다
지구가 소행성과 충돌했을 때도 살아남은
동식물이 있듯이
소통과 불통, 양극세상에서 오체투지의 삶을
밀고 나간다
세상은 그녀를 넘겨받았고
그녀는 태초에 요람을 발명한 거미같이
흔들려도 찢어지지 않을 그만의 요람을 짠다
세상에서 신과 가장 가깝게 있는 그녀
노을로 가는 거대한 요람에다
어머니를 태우고 오늘도 하루를 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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