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선의 종점 여수 밤바다
자전거생활 2021.04.25
대중가요의 골목길(32) - 전남 여수 라이딩
동백꽃이 기차가 된다
여수반도에 들어선 기차가 마래산 터널을 빠져나오면 여수역이다. 아니 ‘여수역’은 옛 자리와 함께 이름마저 ‘여수엑스포역’에 내주고 사라졌다. 그래도 시인의 가슴에는 동백꽃 피는 계절에 기차가 오동도 바다 위로 달린다. 여수는 이름값을 하는 셈이다.
한려수도의 종점이자 시발지인 여수는 ‘고운(麗) 물(水)’ 위 황홀한 밤바다로 유혹한다. “저 남쪽의 밤바다로 가자”라는 말은 “여수로 가자”는 말이 된다. 성웅 이순신의 이름이 더욱 생생한 바다와 항구, 떠나는 연락선에 숱한 애환과 노래를 만든 여수의 애달픔이 이 도시를 저마다의 가슴 속에 더 품고 살게 하는지도 모른다.
면 봄 하늘 아래 네 활개를 활짝 펼 거라고들 했다. 해남을 거쳐 오는 길이라 자전거는 아예 이번 여정에서 빼버렸다. 지난해 이맘때 코로나19는 지독한 공포였다. 문경에서 대구로 들어가던 길이 계엄령 속 밀거래처럼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려웠던 데 비하면 선생이다.
해남서 여수까지 토박이들도 어림잡아 ‘시간 반’이면 족할 거라 했지만, 강진·장흥은 물론 오불조볼 매달린 면 단위까지 들려오다 보니 세 시간 반이나 걸렸다.
남행열차의 또 한 갈래 전라선의 종점, 박진광의 <여수역>
여수역을 여수 여행의 기점으로 삼은 것은 순전히 시 한 편, 노래 한 곡 때문이다. 여수역은 이름도 ‘여수엑스포역’이 되어 있었다. 간이역의 낭만을 전라선의 종착역 여수에서 찾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역과 역 앞의 풍경은 재개발이 끝난 입주단지처럼 너무 단정했다.
내 여행의 낭만이 은회색 화장을 한 금속성에 너무 눈이 부셔 빛을 잃었다. 북구(北歐)의 기품 넘치는 기차역까지야 바라지 않지만 이름마저 ‘엑스포(EXPO)’를 붙인 여수역은 이미 10년이 다 되어가는 한때 잔치에 발목을 잡혀버린 듯 심드렁하기조차 하다.
호남선 이리역에서 갈라져 나와 산골짜기 굽이굽이 누비다 섬진강을 만나며 남행하던 옛 ‘풍년호’ 열차나 ‘증산호’ 특급, 그 시절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은 좀 해 뭘 버리지 못하는 성정 탓이기도 하다.
2015년 발표된 대중가요 <여수역>은 박진광의 황야의 마차 같은 저음과 세미 트롯의 박진감으로 처음 만났다. <안동역에서>에서 발화된 역이름 바람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혀 다른 결이다. 짧은 노랫말은 전라선 종점의 팻말을 부수고 바다로 미끄러져 들었다.
‘기차가 동백꽃 속으로 들어가자’ 하니, ‘다시 봄날에는 동백꽃이 기차가 되어버리자’ 하니, 오동도 바다 위를 기차가 건널 수밖에. 이 노래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시적 상상과 비약을 가요 대중이 이해하기에는 무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쩌면 즉물적 현실의 프레임 안에 너무 오래 갇혀 살아온 관성 때문이겠다.
봄날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가 동백꽃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다시 봄날에 기차를 타고 여수역에 내리면
동백꽃이 기차가 되어버린다
가을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는 오동도 바다 위를 계속 달린다
다시 봄날에 기차를 타고 여수역에 내리면
동백꽃이 기차가 되어 버린다
<여수역> 정호승 시, 이현섭 작곡, 박진광 노래, 2015, 빅토리 엔터테인먼트
역시 시가 모태였다. 쉬운 시어를 통해서 사람을, 세상을, 인생을 관조하는 정호승 시인의 시심이 만든 원작을 읽어보니 은유의 틀이 확 다가온다.
봄날에 서울에서/ 여수행 기차를 타면
여수역에 도착했는데도 기차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바다로 향해 달린다/ 객실마다 승객들이 환하게 동백꽃으로 피어나
여수항을 지나 오동도를 지나/ 수평선 위로 신나게 달린다.
시집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열림원, 2002에서 <봄 기차> 정호승 시(원문)
신곡을 발표하며 했던 박진광의 말을 빌린다. “이 시대를 혼탁한 세대라고들 하고, 무엇을 잃고 사는지도 모른 채 상실의 허기만 되뇌고 있는데 정호승 시인의 시에는 좁아지고 구부정한 우리네 등허리를 잠시나마 펴게 하는 위안이 느껴진다.” 했으니, 가객다운 소감이다.
아마도 박진광이라는 이름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어느 날 가요무대에서 전통가요의 문법과는 다른 목소리와 방식으로 노래를 부르는 한 중년가수를 보았다. 이럴 때 ‘특유한’ 이란 형용사가 적합한, 저음의 숨결 거친 목청에 훅 빨려들었다. 실례되는 표현이겠지만 이 사나이가 궁금해졌다. 내 궁금증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 넘어가야겠다.
부산공고 3학년이던 그가 1976년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 월말 장원까지 올랐고, ‘셸부르’ 오디션에서 정훈희의 <안개>와 권태수의 <노을의 사랑>을 부르며 프로의 길에 나섰으니 실력이야 입증된 셈이다. 까다로운 전설의 DJ 이종환이 아끼면서 해군홍보단으로 입대한 군 생활 중에도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내주었다니 예삿일이 아니다.
오아시스와 지구 전속을 거치던 그도 1994년 이종환의 미국행으로 미사리 카페촌의 가수가 되어 오늘날까지 유효한 ‘셸부르 출신 라이브 가수’라는 이름을 얻는다. 아, 그러고 보니 본 듯하다. 공돈이 뒷골목에 날리던 시절 윤시내, 송창식의 이름과 함께 나붙어 있던 가수 ‘박용강’ 그가 바로 2004년 <파도>(윤명선 곡)라는 노래로 1집을 내고 이름을 바꾼 ‘박진광’이다.
그의 노래는 이종환이 “툭하면 부르라고 해 넌더리 날만큼 불렀다”는 <정 주고 내가 우네>나 모래시계의 OST <백학>(이오시프 코브존 원창) 우리말 버전이 그를 가요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트로트이면서도 트로트가 아닌 듯한 세미트로트로 <여수역>이 그를 불러냈다. 원작 시를 허물면서까지 대중의 노래로 허락해준 정호승 시인의 배려도 고맙다. 그래서 대중가요와 순수시가 더 가까워졌다. ‘바다 위로 미끄러져 가는 봄 기차’와 ‘기차가 되어버린 동백꽃’의 은유를 우리 가요 대중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가요의 품위 향상이 아닐 수 없다.
시를 정작 노래로 만들기에는 규격의 틀을 너무 벗어나 있어 어렵다. 원문을 그대로 살리면 나직한 곡조에 머물며 음유하는 시로 웅얼거리듯 들릴 수밖에 없는 함정도 있다. 송창식을 아낀 미당 서정주 선생이 “이 시가 적합할 거야. 노래 만들기에는···”이라고 한 시가 <푸르른 날>이다. 딱 맞춰 노래가 되는 시의 정형을 찾기가 수월치 않다는 방증이다.
박진광의 노래는 은빛이 섞이기 시작한 수염만큼이나 두툼한 몸피에서 우러나는 동굴의 반향음을 깔고 있어 중독성이 예사롭지 않다. 골수팬들이 많다는 이야길 뒤늦게 알아차리고 나 혼자 수선떠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가 몰아낸 무대의 절멸 속에서도 벽제의 갈빗집에서, 인천의 대형식당에서 노래 불러야 하는 그에게 기타와 동거한 짱짱한 40년 역사는 그나마 그만의 무기인지도 모른다.
동백꽃이 기차가 되는 섬 오동도, 장윤정의 <오동도 블루스>
동양시멘트 저장고를 개조해서 만든 20층 높이의 ‘스카이타워’가 관제탑처럼 “바다로 뛰어들지 말라”는 듯이 서 있다. 여수 신항의 바다는 깔끔하다. 몇 팀의 시티 투어객들이 모두 ‘브리지 투어’ 코스로 떠나간 뒤, 가장 전통적인 종일 관광 코스 1호차에는 승객이 달랑 혼자다. 기사와 문화해설사에게 미안해 죽을 지경이다. 그나마 경로우대로 50% 할인까지 받는 호사라니.
그래도 정시에 여수역을 떠난 버스는 내쳐 오동도까지 느리게 들어간다. 나만을 위한 투어다. 오동도 방파제를 오가는 동백 열차도 코로나 통금에 걸려 알 수 없는 기간 동안 낮잠이다.
오동도는 지금은 동백섬이지만 그 옛날엔 오동나무가 빽빽한 숲이었다. 그 많던 오동나무는 몇 그루만 남겨놓고 다 어디로 갔을까. 고려 말 전설 같은 이야기로 거슬러 오른다. 봉황은 원래 오동나무에만 깃드는데 봉황이 자주 오동나무에 오더니 여러 마리 봉황이 더 자주 오더란다. 봉황은 권좌를 뜻하는 하늘 아래 제1인 주상전하를 뜻하지 않는가.
“전라도에서 새 임금이 나올 조짐이다”라는 풍문이 불길했다 싶은 한 스님이 싹 다 베어 엎어버렸단다. 그 자리를 동백이 차지했다. 겨우내 지천으로 피어난 동백이 이제 전(廛)을 거둘 채비를 마치고 있다. 한 주일 후에는 동백이 제 몸을 날려 생을 마감할 시즌이다. 그나마 끝물에 동백꽃 고운 입술을 간신히 몇 잎 붙잡을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동백은 어느 날 갑자기 몸을 날려 떨어지는 듯싶지만, 자세히 보면 나무에 매달려 침이 마르고 윤기를 잃어가며 여러 날 시름시름 앓는다.
동백이 터널을 이루고, 해장 죽(竹)이 지천으로 솟아난 오동도, 왜구와 싸워야 하는 조선 수군에게 화살대의 몸통 재료인 가볍고 어린 대나무는 천혜의 군수물자인 셈이다. 오동도 등대도 출입 금지, 그냥 먼발치에서 볼 뿐이다.
여수의 노래에 오동도는 빠질 수 없는 점(點)이다. 원로 여배우 태현실에게 점 하나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이듯 말이다. 최근 톡톡 튀는 트로트 중흥시대를 연 장윤정이 부른 <오동도 블루스>가 있다. 박정윤 작사·작곡의 같은 이름의 노래가 이미 있지만, 어느 가수가 부르는가에 따라 대중 무대에 등장하는 빈도는 천양지차다. 장윤정이 <어머나> 같은, 당시의 눈으로 보면 가벼워 보이기조차 하는 이 노래를 만나 거머쥠으로써 신세대 트로트의 또 다른 길을 열었다는 점은 명멸하는 숱한 여가수의 세계에서 재능과 행운이 겹친 결정판이다.
그녀는 가벼운 터치의 노래에서 시작하여 <초혼> <바람길> 같은 인생의 깊이를 가늠해야 부를 수 있는 노래로 옮아갔다. 이 노래는 여수 엑스포의 음악감독을 한 작사·작곡가의 작품이다. 정통 트로트의 문법에다 가사 또한 ‘항구의 사랑과 이별’이란 정형적 조합을 대입시켰다. ‘미스트롯 2’에서 아기범 김태연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오동도는 정말 ‘사랑의 거리’가 있는 듯이 느껴진다. 오동도에 등장하는 사랑의 거리는 걸어가는 연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방파제 길이다.
오동도 뱃길 따라오실 때는 여린 정 품에 안고 오질 마세요
물빛 순정은 항구의 정이라서 네온 불 한잔 술에 가슴이 타네
꽃이 피는 오동도 거리 사랑의 거리, 정이 들면은 못 떠나는 오동도 블루스
오동도 물길 따라 떠나실 때는 심은 정 홀로 안고 울지 마세요
뱃고동 소리는 항구의 슬픔이요 네온 불 풋사랑은 너무 무정해
돌아보는 오동도 거리 추억의 거리 정을 두고 떠나가는 오동도 블루스
(후렴 반복)
<오동도 블루스> 김호식 작사·작곡, 장윤정 노래, 2008, 장윤정 노래4집
돌산섬의 끝 망망대해를 안고 있는 향일암, 여수 토박이 박미란의 <여수항아>
여수 구시가지를 돌아 돌산대교를 건너간다. 툭 튀어나왔다고 해서 돌산이라 했고, 돌이 많아 돌산이라 했다는 말이 있지만, 돌산은 국민 입맛의 밥도둑 ‘돌산 갓김치’만 의미 있는 게 아니다. 돌산도는 우리나라 아홉 번째의 큰 섬이다. 돌산이 있어 여수는 쇠불알을 닮은 고흥반도와 키재기를 할 만큼 남으로 뻗어난다.
돌산도 굴전을 지나 남쪽 끝 임포에 떨어질 듯 벼랑에 붙어 있는 향일암까지 60리를 더 가야 하니 이만저만한 복덩이가 아니다.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사람들이 입에 향일암을 달고 사는 것은 그저 불자여서만이 아니라 그만큼 영검한 그 무엇이 있어서일 게다.
향일암으로 올라가는 400여m는 인내를 시험하는 계단이다. 더구나 이래저래 관절이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보살님들에게 향일암 부처님께 오르는 길은 멀고도 멀다. 그래도 사람들은 기원을 위해 오른다. 계단을 오르다 눈을 들어보면 겨울나무 나신(裸身) 사이로 푸른 바다가 청옥빛으로 꼼꼼하게 채색되어 있다. 바다의 종점에 바위를 몰아 부은 듯 엉겨 사는 바위 사이 좁은 공간에 부처님의 자리가 들어서 있다.
부처님도 지그시 눈을 감은 둥 만 둥 다도해 바다를 내다본다. 사람들은 ‘기도발’이 잘 받는다고 믿는다. 사람들의 기도는 황금빛 잎새에 적혀져 향일암 바람에 찬연히 펄럭인다. 기원하는 복이 찾아왔는지, 신묘한 기운이 응감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알 길 없으나 그 엎드려 비는 시간만은 너무나 간절했으리라.
여수 토박이 가수 박미란이 2018년 <여수항아>라는 신곡을 내놓았다. 박미란은 낯선 이름이지만 품고 있던 꿈을 중년에 실현한 늦깎이 가수가 아니다. 아들딸 다 키워놓고 무대 위에 다시 선 관록 있는 중고 신인이다. 원양어선 기관장이었던 아버지 무릎에서 3살 때 <새타령>을 불렀고, MBC 대학가요제 동상 수상자이니 소양과 기초는 이미 갖춘 가수다.
“중년 팬들이 부를 만한 여수의 노래가 없다”는 작곡자의 말을 듣고 작사가 장경수가 지었다. 그 작곡자가 ‘높은음자리’로 활동한 김장수다. 많은 여수의 노래가 여수항에서 만나고 떠난다는 바탕이지만 이 노래는 향일암에서 멀리 금오도, 거문도까지 시야를 넓힌다. 향일암 계단을 힘겹게 올라 바라보는 그 가슴 트이는 조망에다 여수에 사는 행복을 노래하니 여수의 ‘신 애향가’라 할만하다. 실제로 향일암에서는 다도해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는다. ‘해 뜨는 바다’로 시선을 고정해도 그 망망대해 너머에 통영 욕지도가 있을 뿐 일망무제 수평선이다.
물 맑은 여수항에서 떠나는 배 돌아오는 배
뱃고동에 사연을 싣고 오동도 파도 따라 갈매기 날며
향일암 오르는 길 세상사 인생살이
거문도야 금오도야 간밤에 잘 있었느냐
여수항아 여수항아 니가 있어 행복하구나
여수항아 여수항아 니가 있어 행복하구나
(1절 반복)
<여수항아> 장경수 작사, 김장수 작곡, 박미란 노래, 2018. PNM엔터테인먼트
사랑이 머물고 떠나가는 항구, 방운아 <여수 야화>
여수 구항은 비릿하다. 여객터미널은 물론 어선의 정박에 수산시장까지 활력 넘치는 항구의 풍경이 제대로 펼쳐지는 곳이다. 여수의 옛 모습은 10살 때 먼바다 삼산면에서 여수 중앙국민학교로 전학 온 섬 소년 소설가 한창훈의 기억을 빌리는 것이 사진을 박은 듯하다.
냉동공장들이 들어선 종포 바닷가, 대처를 쏘다니다 간신히 집을 찾은 골목길의 동일여관, 2본 동시상영을 하던 관문동 극장, 붉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던 술집 이화·연지, ‘돼지막’이라 불리던 여수중학교, 공화동 여수역 근처 사창가, 가막만에서부터 드리워지기 시작하는 붉은 노을의 덮개, 샛바람, 데리끼(선박용 윈치), 간조, 기관장 따위의 단어를 달고 사는 바닷사람들, 기름때 묻은 목장갑, 뱃전에 덧댄 폐타이어, 그물과 밧줄 더미는 항구의 소도구였다.
술을 파는 클래식 다방, 최백호의 쉰 목소리가 긁어대는 청춘의 바닥, 검정 티셔츠의 단추 한두 개를 푼 어설픈 퇴폐, 맞은편 돌산도 조선소의 밤 불빛, 이쯤 하면 60~70년대의 여수 모습은 모형도처럼 그려진다. 그 비린내 풍기는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서도 살기 어려운 사람들은 고향을 가슴에 안은 채 서울로, 부산, 마산으로 저마다 대처로 떠나갔다. 연대기별로 보면 가장 오래된 노래는 SP판 유성기로 듣는 방운아의 <여수 야화>다.
어머님 품속인 양 내 항상 그리운 곳
물파래 나불나불 내 고향 여수항아
은 조개 소근소근 꿈꾸는 바닷가에
맹서를 묻어놓고 나 홀로 떠나가네
바람 찬 돛대 머리 갈매기 슬피 울 때
내 사랑 싣고 가는 부산행 천신환아
온다는 기약 없이 간다는 인사 없이
흔적만을 남겨두고 무심히 떠나가네
<여수 야화>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방운아 노래, 1957, 미도파 레코드
방운아는 한때 방태원이란 예명으로도 불리던 옛 가수다. 도미, 남일해가 등장하던 시기에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대구의 콩쿠르에 입상한 노래꾼이었다. 남백송과 함께 부산의 백영호 선생의 문하가 되었던 바른 생활 같은 가수가 널리 이름을 알린 것은 <봄날은 간다>의 작사가 손로원 선생이 지은 <마음의 자유 천지>다. 125곡의 자기 노래를 꼼꼼하게 악보까지 정리해서 남긴 그의 단정함은 노래에도 나타난다. 그의 음색은 우선 청랑하다. 바이올린을 연상케 하는 고음의 가느다란 선율은 애수의 바탕 위에 정직한 소리를 낸다.
나른한 가사 속에서도 이즘에 선뜻 와 닿지 않는 단어는 ‘부산행 페리호’라고 억지로 붙인 원곡 속 ‘부산행 천신환’이다. 알다시피 환(丸)은 배 이름에 붙이는 일본식 명칭이다. 천신환(天神丸)은 주로 마산 남성동 뱃머리 사람들이 기억하는 우렁찬 뱃고동으로 남아 있다. 1912년에 천신환 제1호가 건조되고 이후 2호, 3호가 건조되어 활약하다 1982년 마지막 배가 폐선될 때까지 다도해의 사람들이 부산, 마산, 삼천포, 여수를 오가는 뱃길에서 소임을 다했다.
여수 또한 1960~70년대 아가씨, 처녀 돌림의 노래에 빠질 수 없다. 원곡은 1967년 은방울 자매 노래이고, 리메이크는 1985년 주현미 버전이 주다.
멋쟁이 서울 총각 제아무리 좋다 해도
여수라 내 고향에 삼돌이가 나는 좋더라
해풍은 차가워도 동백꽃은 피지요
동백 열매 기름 짜서 낭자머리 곱게 빗고
나 여기 오래 살리라 여수는 내 고향
멋쟁이 양옥집이 제아무리 좋다 해도
여수라 내 고향에 기와집이 나는 더 좋아
소금 바람 차거워도 동백꽃은 피지요
동백 열매 기름 짜서 낭자머리 곱게 빗고
나 여기 오래 살리라 여수는 내 고향
<여수 처녀> 고향 작사, 남국인 작곡, 은방울 자매, 1967, 지구레코드
산업화시대의 탈 고향 바람 속에서도 꿋꿋하게 고향을 지키겠다는 여수 처녀의 다짐은 얼핏 애향심이 묻어나는 듯해도 기실은 그 바람이 얼마나 거셌는지 애처롭기까지 하다. 삼돌이, 동백 열매 기름, 낭자머리, 양옥과 기와집이란 단어의 토속성이 흑백영화의 한 장면으로 그려진다.
1966년에 발표된 백설희의 <여수항 아가씨>(반야월 작사, 고봉산 작곡)는 또 다른 아가씨 처녀 돌림 버전이다. “갈 때 울고 올 때 우는 이별 슬픈 여수항”으로 시작하니 전형적인 항구의 이별과 아가씨의 눈물이 범벅된 통속적 가요 문법에 따랐다. 방주연의 <잘 있거라 엔젤호>마저 사라진 한려수도의 물길은 그저 유람선만 제 고장 앞바다를 맴돌 뿐 ‘연락선’은 노래 속에만 남아 있다.
청춘의 환희, 남도 항구의 야경,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사람들이 여수의 낭만을 꿈꾸는 것은 햇구멍이 막혀 사위(四圍)가 어둠의 커튼을 친 밤바다의 풍정 때문이다. 낮의 잔광이 사위어가며 회청색의 진한 밤하늘 아래 항구의 등불이 층층이 켜진다. 어항과 부두의 불빛, 색깔을 덧입힌 항구의 불빛은 야화(夜花)의 고혹적인 눈빛이다. 청춘들이 ‘여수 밤바다’를 기어이 가보아야 한다고 노래 부르는 것은 남도의 항구 그 밤 풍경이 유독 아름다워서다. 돌산대교를 건너 돌산공원에서 바라보는 여수의 밤바다는 두 팔 벌려 안을 수 있는 여인처럼 아름다워서다.
원형극장의 계단에서 눈 아래 내려다보이는 그 불빛의 향연은 별달리 폭죽 같은 인공의 불빛을 첨가하지 않아도 연인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불을 댕긴다. 연등천 언저리에 늘어선 포장마차촌에서 걸치는 잎새주 한잔에도 펄펄 뛰는 선어의 탱탱한 살점을 바로 집어 먹을 수 있다. 혼자 전라선 열차를 타고 더 갈 데 없는 남쪽 항구의 종착역까지 와 닿는다는 로맨틱한 나들이 또한 여수(麗水)에서 여수(旅愁)를 느끼게 하는 데 제격이다.
장범준이 작사·작곡한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가 여수를 밤 풍경이 유난히 매혹적인 미항(美港)으로 널리 각인시키는데 이바지한 공로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잖아도 불타는 청춘의 가슴에 밤바다에 일렁이는 형형색색의 불빛은 그대로 청사초롱이다.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 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아 아 아 아 아 어 어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이 바람에 걸린 알 수 없는 향기가 있어
네게 전해주고파 전활 걸어 뭐 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아 아 아 아 아 어 어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너와 함께 오
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 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아 바다 아아아아 하아아아 하아어 하 어어 하 하아아아 하아 어어어
뭐 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장범준 작사·작곡, 버스커버스커 노래, 2012, 지니뮤직
틀림없이 여수 밤바다에 있는 그는 혼자 훌쩍 전라선 열차를 타고 종착역에 내렸을 것이다. 연인과 가볍게 다툰 뒤였을 수도 있겠고, 몇이 어울려 떠나온 여행길에 잠시 빠져나와 견딜 수 없는 야경의 감동을 전화로 소곤소곤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수 밤바다를 수없이 반복하는 점층법 위에 흥취는 더하고, 끝 소절의 ‘아 아 아’에서 시작해 진성과 가성의 ‘아, 어, 하아, 어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조화는 버스커버스커다운 음악적 분출이다.
그 밤에 취해 몽롱한 기운은 환한 벚꽃 터널에 흩날리는 낙화에까지 퍼진다. 해마다 이맘때면 라디오 음악을 도배하는 버스커버스커의 계절 노래 <벚꽃엔딩>은 <여수 밤바다>와 태생적으로 한 지붕 아래다. <봄바람> <첫사랑> <골목길> <전활 거네> <꽃송이가>는 또 어떤가. 장범준의 앨범 수록곡의 면면이 아예 청춘을 마법에 가둘 심산으로 감싸 안는 솜사탕이다.
성웅 이순신이 살아 있는 여수, 조선 수군 본영의 자부심
여수는 지도를 놓고 보아도 한반도 남해안의 중간지점이다. 당연히 삼도수군통제영이 들어설 위치다. 성웅 이순신의 자취야 어딘들 없는가. 저 함경도 끝 러시아와 맞닿은 녹둔도에서 육군으로 출발하여 정읍현감의 행정관료를 잠시 하기도 했지만 역시 왜적을 무찌른 이순신은 해전의 신이다. 전라좌수영의 본거 여수는 이순신 장군을 빼놓고는 역사의 책장을 넘기기가 어렵다.
우선 여수항을 내려다보고 있는 종고산(鐘鼓山)은 바로 왜적을 물리쳐 승전고 쇠북을 울려서 붙인 이름이다. 흔적도 없어진 읍성 안의 민가 2,000여 채는 농사를 짓다가도 기꺼이 거북선의 격군으로 노를 젓던 이름 없는 백성, 여수 선조들의 거처였다. 이순신광장에는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충무공의 동상과 바로 바다로 나아가도 될 듯싶은 거북선이 서 있다.
여수시청이 들어서 있는 여수만 깊숙이, 장도가 천연방파제 역할을 하는 옴폭한 곳에 선소(船所)가 있다. 돌로 쌓은 타원형 독(dock)이 단단하게 세월을 견뎌왔다. 천혜의 지형이라 거북선도 여기서 만들었고, 관청의 배를 적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곳에 숨겨둘 수 있는 요새였다.
우리가 왜적에 대해 품는 적개심의 뿌리는 깊지만, 오늘날의 선병질적 반일 감정의 부추김과는 달랐다. 국민학교 시절, 교정에는 조악하게 시멘트로 만든 이순신 장군 동상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서 있었다. 골목길에서 석필로 금을 그어 사방치기를 하고,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강산 침노하는 왜적 무리를 거북선 앞세우고~”를 합창하고 폴짝폴짝 뛰며 키가 컸다.
어쩌면 병약한 한반도의 숙명에 대한 거부의 표시였고, 무궁하게 지켜 나가야 할 내 땅이라는 역사의식이 싹트는 기제가 되었다. 코로나19 같은 역질만 아니라면 지구촌의 국경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하는 시기에 과거사에 발목 잡혀 그나마 선린우호의 미지근한 기운마저 날려버린 현실은 어디서 단추를 다시 끼워야 할지 난감한 지경이다.
이 강산 침노하는 왜적 무리를/ 거북선 앞세우고 무찌르시어
이 겨레 구원하신 이순신 장군/ 우리도 씩씩하게 자라납니다
원수를 갚사오면 여한이 없소/ 이 몸을 바치리다 하늘에 빌고
남해의 꽃이 되신 이순신 장군/ 우리도 씩씩하게 자라납니다.
<이순신 장군의 노래> 강소천 작사, 나운영 작곡
바다와 섬을 잇는 낭만의 브리지 투어, 가막만과 여자만의 아늑한 품
상행선 무궁화호 막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많았다. 동행해준 아우는 바다로 이어진 5개의 다리로 가자고 했다. 해안과 섬을 잇는 이 절경의 드라이브 코스는 소문으로 듣기도 했지만 여수시티 투어객들이 ‘브리지 코스’의 2호 차로 몰려갈 때 이미 감이 잡혔다.
최근에 개통되기도 했지만, 낭도를 비롯한 4개의 섬을 연결하는 화양대교, 둔병대교, 낭도대교, 적금대교, 팔영 대교의 5개 다리를 주행하는 77번 국도는 환상의 바닷길이다. 서울의 먹자골목에서 그 이름이 발견되는 ‘여자만’과 ‘가막만’이 바로 여기다. 어쩐지 물씬 풍기는 갯내와 바지락 캐는 아낙의 튼실한 허벅지, 땟국에 절은 홑적삼 소매를 걷어붙인 돌쇠의 이미지가 느껴지는 건 나만일까.
화양대교 초입에서 바다를 건너가는 길은 고흥으로 발길을 잡을 때를 위해 아껴둔다. 바다를 조망하며 커피 한잔을 마실 자리로 향한다. 검은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만성리 해수욕장이다. 속담에 “석부장에서 뺨 맞고 민드리미 재에서 눈 흘긴다”는 말이 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라는 속담의 여수 버전이다. 민드리미 재가 만성리 고개다.
광양만으로 가는 바닷길, 광양항으로 가는 화물선이 순서를 기다리며 점점이 떠 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눈길을 조금 들면 남해도가 강 건너처럼 가깝다. 아직도 점선으로 계획만 되어 있는 해저터널을 완공하는 날, 여수는 더욱 한려수도의 중심 도시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어느덧 만성리 어촌에 그림자를 길게 남기던 석양도 잔광마저 거둔다. 여수의 봄밤이 하룻밤 더 붙잡는 듯하다.
참고자료
1. 당신의 도시 당신의 풍경, ‘우아한 물의 고장, 여수’ 한창훈, 문학동네, 2008
2. 네이버 블로그 ‘마산항 뱃머리의 여객선들’, darby4284, 2019. 6. 3
3. 네이버 블로그 ‘박진광의 신곡 <여수역> 인기 시동’, 케이아이
4. 디지털 여수문화 대전
5. 한국가요편람(신민요부터 1990년 말까지), 문화방송·한국음악저작권협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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