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아토산(아! 토요일은 산에 가자!)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벙개사진방 스크랩 추성리~칠션계곡~중봉~마야계곡~중산리(함께동행한킬리만자로님의후기)
풍경(김창수) 추천 0 조회 154 07.07.20 14:11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이 산행기는 함께 동행한 킬리만자로님께서 작성한  글입니다

 

   

 

                 ▲깊은 골짜기를 이룬 칠선계곡이 보인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지리산 칠선계곡에서 마야계곡까지 종주기



0 언      제:  2007년 7월 18일 (수요일) 

0 걸어간 길: 추성리~칠선계곡 선녀탕~옥녀탕~칠선폭포

                 ~대륙폭포~무명폭포~마폭포~ 중봉~중봉샘

                 ~마야계곡~순두류아지트~중산리

0 같이한 이: 닐, 연, 풍경, 지설, 그리고 킬리

          * 추성리에서~ 비선담 사진은 2007년 6월 16일 촬영한 사진임          

 

 

山에 詩를 두고


 / 이성선 詩人


산에 모자를 두고 돌아왔네

어느 산이 내 모자를 쓰고

구름 얹은 듯 앉아 있을까


산에다 詩를 써두고 돌아왔네

어느 풀포기가 그걸 밑거름으로

바람에 흔들리다가 꽃을 피울까

산 물을 들여다보다가

그속에 또

얼굴마저 빠뜨리고 돌아왔네

달처럼 돌에 부딪히고 일그러져서

어디쯤 흘러갈까


 

# 이향감정(離鄕感情)과 귀향의지(歸鄕意志)의 충돌과 대립


"우리는 집에서 산을 그리워했지만,

그 그리움은 반대로 산을 찾아 집에 대한 더많은 그리움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는 것.

암벽등반가로 유명한 정승권씨의 말이다.

그가 산에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에 가면 무엇이 있는가.

동양학자 조용헌님은 연하(煙霞)가 있다고 한다.

연하는 연기와 노을이다. 그의 입산론을 들어보자.


“한국의 산 아래로는 골짜기가 있기 마련이고,

그 골짜기에는 계곡물이 흐르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느긋하게 피어 오른다.

8부 능선쯤에 올라가서 골짜기마다 피어오르는 안개가 솜사탕처럼 산봉우리들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왜 이 세상에 왔는가”에 대한 물음이 절로 없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녁노을도 있다.

산모퉁이에 서서 들판 저 너머로 붉게 물들어 있는 석양(夕陽)을 바라보면

형언할 수 없는 충만감이 생긴다.


이러한 광경을 과도하게 좋아하다 보면 세속을 떠나서 입산(入山)하게 된다.

입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하벽(煙霞癖)’이 있는 사람들이다.

 

‘연하벽’ 환자(?)들이 좋아하는 전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산이 지리산이다.

1년 사계절 중에서도 칠월 백중(百中)이 지나고 4~5일쯤 되는 시점이

지리산의 운무(雲霧)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시기라고 한다”


산꾼들이나 역마살이 낀 사람들의 본성을 해부하는데 있어 향수(鄕愁)라는 말은

예리한 메스로 사용될 수 있다.


종교학자이자 문학가인 엘리아데(M. Eliade)에 의하면 향수라는 말에는

고향에 돌아가고자 하는 ‘귀향의지’와

미지의 세계나 옛날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서의 ‘이향감정’이 들어있다고 보았다.

즉, 인간의 본성 자체에 귀향과 이향의 이중적 감정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적 없는 비경을 찾아내려는 산꾼들의 ‘이향감정’은 집요하고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곧 탐험정신으로 연결된다.

질풍노도와 같은 탐험 정신 앞에서 처녀지들은 속속 베일을 벗고,

자신의 신비로운 속살을 보여 주었다.


‘이향감정’이 폭발적인 열정과 강력한 에너지를 동반한다면, ‘귀향의지’는

차가운 냉철함과 균형감각으로 발현된다.


산꾼들은 ‘귀향의지’보다는 ‘이향감정’의 수치가 월등히 높은 사람들이다.

‘이향감정’은 그 특유의 폭발성으로 사람들을 강하게 단련시키지만

개인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럭비공처럼 튀는 ‘이향감정’에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귀향의지’다.

따라서 양자는 서로 대립적이면서 서로의 존재 조건이 되고 있다.


어디 은밀하고 빼어난 계곡 없을까?

어디 인적없는 좋은 오지가 없을까?


매년 여름이면 계곡 산행을 즐기는 산꾼들은 특유의 ‘이향감정’을 발동한다.

매혹적인 ‘이향’ 앞에서 ‘귀향의지’를 발동하여 균형감각을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산꾼들이나 역마살낀 사람들이 종종 귀향하는 못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여름이면 발동되는 ‘이향감정’이 오늘은 지리산 칠선계곡과 마야계곡으로 이끈다.

태고의 비경을 간직한 원시림이자 오지산행인 것이다.

 

  

                       

 

 

 

# 옛 가락국의 기운이 서린 지리산마을 추성리...


새벽 1시에 대전을 출발한다. 

덕유산 휴게소를 앞둔 고속도로엔 짙은 운무가 드리워져 있다.

속도를 높였다, 늦추었다를 반복한다.


갑자기 저 앞에 검은 물체가 눈에 띈다.

고라니 새끼였다.

안개속에 방향을 잃고 고속도로에서 서성거리는 거였다.

우리는 옆으로 비켜 지나왔지만, 행여 길에서 로드 킬(road kill)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백미러로 뒤를 보니 다행히 한참 동안은 뒤따르는 차가 없다.


통영고속도로에 이어 88고속도로 지리산 나들목을 빠져나가 지리산의 품속에 빠져든다.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과 산내면을 지나면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이다.

남원군 산내면이 뱀사골·달궁계곡을 끼고 있다면, 함양군 마천면은 한신계곡·

백무동계곡·광대골과 칠선계곡·국골·어름터계곡을 품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지리산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지리산이 만들어주는 물로 농사를 짓거나 깊은 산속에서 약초를 캐고,

지리산을 찾는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여 생활을 영위한다.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는 지리산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지리산 자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임천강을 따라가다가 추성리로 접어든다.

추성리는 칠선계곡·국골·어름터계곡 물줄기가 만나 임천강으로 흘러간다.


3시 무렵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칠선계곡 초입에 도착했다.

추성리는 옛 가락국의 기운이 서린 지리산마을이다.

 

                    

                      ▲ 추성리 마을 전경 ( 2007.6.16맞은편 서암정사에서 촬영)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마을의 유래에 대해선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양군편

‘천왕봉 고성’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산속에 옛 성이 있는데 일명 추성(楸城) 또는 박회성(朴回城)이라 한다.

의탄에서 5~6리 떨어졌는데 우마가 갈 수 없는 곳이다.


안에는 창고가 있고 세상에 전해오기를 신라가 백제를 방비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외 함양군 자료에 따르면 ‘추성리는 지리산 천왕봉의 북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가락국 양왕(구형왕)이 이곳에 쫓겨와서 성을 쌓고 추성이라 하였으며,

또 박회성이란 성도 있는 곳으로 두 개의 산성지가 있다’라고 되어 있다.


혹은 ‘추성이라고 하는 길조의 별이 이 마을에서 볼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또 ‘추자나무’라고도 불리는 호두나무가 많아서 추성리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전해진다.


가장 유력한 설은 역시 가락국 군사가 체류하면서 성을 쌓았다는 것인데,

실제로 추성리 주위로는 신라가 가락국을 침범할 때 양왕이 군마를 이끌고 이곳에

들어와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피난처로 이용했다는 성터가 남아 있다.

그 외 추성과 지명이 비슷한 ‘성안’ 마을이 있고, 칠선계곡 옆으로 양왕이 진을 쳤다는 ‘국(國)골’이 있다.


국골 옆의 어름터는 석빙고로 쓰였고, 두지터는 가야국 병사의 식량 창고로 이용되었다.

지금도 이곳에선 불에 탄 쌀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지리산에는 구형왕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왕등재는 구형왕이 올랐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왕산이라는 이름 속의 왕은

구형왕을 가리킨다. 

왕산 아래의 돌무덤 또한 구형왕릉으로 추정하여 전(傳)구형왕릉으로 부른다. 


추성과 인근 의탄 마을로의 접근은 1472년 함양군수로 있던 점필재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잘 나타나 있다.

“골짜기 동쪽은 산등성이지만 그렇게 험준하진 않았다.

서쪽은 지세가 점점 낮아져 20리 길을 걸으면 의탄촌에 이른다.

만약 닭과 개, 소를 끌고 이곳에 들어와 나무를 쳐내고 밭을 개간한 뒤 서속·기장·

삼·콩 등을 심고 살면 저 무릉도원도 이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이다.


나는 막대로 시냇돌을 두들기다가 극기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아, 언제나 그대와 더불어 함께 숨어 이곳에서 놀아 볼거나’ 하고 바위에 낀 이끼를

긁어내게 하고 그 위에 이름을 썼다.”



 

# 지리산 최대의 溪谷美...칠선계곡


칠선계곡은 지리산의 대표적인 계곡이다.

험난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 그리고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을 끼고 있으면서

7개의 폭포수와 33개의 소가 펼쳐지는 대자연의 파노라마이다.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과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손꼽힌다. 

1964년 부산의 대륙산악회에서 첫 개척하면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대륙폭포이고, 마지막 폭포에 도착해서는 경상도 말로

“마, 그냥 폭포라고 하자!” 라고 해서 마폭포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리산자락 가운데 유독 여성을 상징하는 지명이 가장 많으면서도,

들어가면 갈수록 골이 더욱 깊고 날카로운 칠선계곡은 그 험준함으로 인해

숱한 생명을 앗아 가기도해 죽음의 골짜기로도 불릴 정도이다.

1976년 실종된 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님이 유명을 달리한 곳도 이곳을 꼽을 정도이다.

  

그래서 지리산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칠선계곡을 꼭 등반하고 싶어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겨울의 칠선은 고난이도의 등반 기술을 요구한다.

특히 전문 산악인들도 히말라야등 원정등반에 앞서 겨울철 칠선계곡에서 빙폭 훈련

등반을 할 정도이다.


일반인들의 경우 칠선계곡을 등반하려면 여름철에도 계곡 아래서 천왕봉으로 

향하는 루트는 피하고 주로 다른 코스로 천왕봉에 올랐다가 하산 길로 칠선계곡을 택한다.

칠선계곡의 총 연장은 18km이지만 등반코스는 추성동에서부터 천왕봉까지 14km이다. 


추성동에서 시작되는 칠선계곡 등반로는 전체적으로 계곡등반의 위험성때문에

상당 구간이 계곡과 동떨어져 있다.

이는 등산로를 벗어나서는 마음놓고 발길을 둘곳이 없을 정도의 험난한 산세 때문이다.

 

                  

                   ▲추성동에서 등산로 초입 왼쪽에 칠선계곡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용소를 놓치기 쉽다.

                     등산로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등산로 왼쪽 계곡으로 거슬러 가면 5백여m 지점에 위치한 용소는 산신제를 지낼때

산돼지를 집어 넣는 곳으로 전해진다


지리산 최고의 원시림 칠선계곡이 자연휴식년제 적용구간이 된 덕분에

산행 들머리 추성리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어찌어찌 칠선으로 산행에 나선 사람들은 졸지에 범법자가 된다.

그래서인지 마을에는 칠선계곡을 개방하라는 플랭카드가 사방에 나붙어 있다.


열려진 등산로는 고작 몇㎞도 안 되는 선녀탕까지 이다.

보통 일반인들은 산행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짧은 그 길을 오가며,

또 추성리와 두지터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오를 수 없고 보듬을 수 없는 칠선에 대한

그리움을 삭히곤 한다.

 


 

 

추성리에서 중산리까지 도상거리 약 20km.

평균적으로 12시간 소요된다.

지리산 천왕봉(1915.4m)에서 남북으로 흘러내린 마야계곡과 칠선계곡은

두 계곡을 연계하면 그 길이만도 장장20km에 달하는 먼 거리이다.

 

당일산행으론 무리한 코스여서 그동안 일부 산악 전문인들만 찾아드는 곳이었다. . .

멀리서 들려오는 계곡의 물소리가 은은하고, 울창한 숲속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가 청량하다.


비좁은 마을 골목길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면 곧 매표소가 나오는데,

추성리에서 계곡을 따라 2km남짓 오르면 두지동(두지터라고도 함)이 나온다.

 

등산로는 계곡길과  떨어져 별도로 나있다.

두지동은 마을 모양이 식량을 담는 두지 같다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옛날 화전민들이 기거하던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담배건조장과 농막등만 남아

이 마을이 등산객들의 휴게소로 각광받고 있다.

담배 건조장이 분위기 있는 찻집으로 변해있어 눈길을 끈다.


고도 500m 안팎의 두지터는 지리산 북쪽이지만 동향이어서 아침 해가 궁색한 마을은 아니다.

                  

 

현재 두지터에는 모두 다섯 가구 뿐.

그중 허정가(虛精家)가 가장 유명하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산꾼들이 모여든다는 바로 그곳이다.

지난 1999년 9월 두지터로 들어온 김성언(39세)씨의 허정가 툇마루에 앉으면

지리산 천왕봉에서부터 흘러내린 초암릉과 두류능선과 벽송사로 내려서는 능선이 보이고,

창암능선의 기운도 등 뒤로 가깝게 내려앉는다.

그중 절반이 넘는 세 가구가 김씨처럼 객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울산이 고향인 김성언씨가 차도 다니지 않는 두지터 산골로 들어온 건 순전히 지리산이 좋아서였다고 한다.

두지터 주민이 되기 전까지 약 1년간은 미친 듯이 지리산을 헤집고 다녔다.

심지어 토굴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2년 전 봄, 본격적으로 두지터에 들어와 제일 먼저 집수리에 들어갔다.

허물어진 집을 손보는 데도 무려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는데, 모든 걸 지게로 지고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칠선이 자연휴식년제로 묶이면서 산행객들의 발길은 한없이 뜸하지만 김씨의 허정가는

산꾼들을 맞고 보내는 일로 주말이 분주하다.

민박을 해 돈을 벌려면 손님들이 훨씬 많아야 할텐데도 그이는 두지터에 살면서 좋은 점을

“사람 접할 기회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 허정가 민박집... 전경


허름하고 낡은 옛집이지만 이곳에서 맞는 밤과 아침은 도시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작고 소박한 건물들이 주변자연환경과 어울려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 허정가 (055-962-8014 / 011-851-1143)

 

                                  

 

 

# 일곱선녀의 전설이 남아있는 칠선계곡


골짜기는 능선을 나누고, 능선을 골짜기를 가른다.

그래서 창암능선은 백무동계곡과 칠선계곡을 가르고, 초암능선은 칠선계곡과 국골을 가른다.

그리고 두류능선은 국골과 허공다리골을 나눈다.

이렇듯 능선과 골짜기는 서로를 의지하며 산이라고 하는 거대한 생명체를 이룬다. 

두지동에서는 창암산 능선을 넘어 백무동으로 갈수도 있다.


두지동을 지나면 울창한 숲과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진다


한동안 계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등산로를 따라 가다보면 암반과 소가 어우러진 곳에

설치된 쇠다리를 만날 수 있다.

여기서 경사진 도로를 따라 힘겹게 오르다보면 잡초와 감나무, 호두나무가 어지럽게 뒤덮인

마을터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곳이 옛 칠선동 마을 터로 한때 독가촌이 산재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울창한 잡목 숲을 따라 조금 더 가면 계곡 물 소리는 아득한 발 아래서

들릴듯 말듯 하며 널따란 바위를 만날 수 있는데 여기가 전망좋은 쉼터인 추성망 바위이다.

 

여기서부터는 계곡등반이라고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의

험한 산 길이 계속돼 추성동에서 4km 지점인 선녀탕까지 계속된다.


쉼 없이 흘러가는 물소리가 새소리, 풀벌레소리와 화음을 맞춘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선녀탕까지는 계곡에서 약간 떨어져서 걷는다.

일곱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을 만난다.

 

 


▲ ↑ 선녀탕 / 두지통에서 2km 거리  


옛날 일곱 선녀가 살았다는 선녀탕은 작은 폭포의 물을 끌어들여 옥빛의 길쭉한 탕을 만들고,

단풍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는 가지를 뻗어 물위를 비춘다.

지금은 크고 작은 돌등으로 많이 메워졌다.

전설속의 선녀가 목욕했을 정도라고는 조금 초라한 모습이다. 


선녀탕의 전설은 선녀에게 연정을 품은 곰과 선녀를 도운 사향 노루가 등장하는

동화같은 얘기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일곱 선녀가 이 곳에서 목욕하는 것을 본 곰이 선녀들이 하늘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옷을 훔쳐 바위 틈에 숨겨 버렸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맬때 사향 노루가 자기 뿔에 걸려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 주어 선녀들이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곰이 바위 틈에 누워있던 노루의 뿔을 나뭇가지로 잘못알고 선녀들의 옷을 숨겼던 것이다.

그 후 선녀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 노루를 칠선계곡으로 이주 시켜 살게

했으며,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아 버렸다고 한다는 전설이다.


선녀탕에서 조금 지나면 1백여평 남짓한 소와 매끈한 암반이 있는데, 칠선계곡에서

가장 빼어난 옥녀탕이다.

 

하늘을 뒤덮은 듯한 울창한 수림과 넓은 소가 연출해 내는 옥녀탕의 전경은

위로 무명 소들과 이어져 깎아지른 듯한 벼랑으로 연결되면서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 옥녀탕 (해발650m)

  

선녀탕보다는 옥녀탕이 눈길을 붙잡는다.

깊고 넓은 탕과 비스듬한 반석을 타고 내려오는 8m 길이의 와폭이 그것이다.

옥녀탕 위에도 억겁의 세월이 바위를 조각하여 만든 탕이 양쪽에서 내려온 물줄기를

끌어들여 확독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둥글고 깔끔한 바위를 감고 돌면서 흐르는 물은 옥빛을 띤다.

                    

               ▲ 비선담을 흘러 내리는 계류


옥녀탕을 지나 계곡 길을 이십여분 오르면 비선담이 또 색다른 모습으로 반긴다.

비선담은 그 아래의 시퍼런 계곡물도 보기에 좋지만 통바위 틈새마다 항아리같은

작은 물웅덩이가 형성되어, 그 위를 흘러 넘쳐 내려오는 물살이 보기에 좋다.


계곡등반의 묘미를 한껏 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천왕봉까지는 5.8km 이상 남은 거리이다.


비선담을 지나면 다시 옛 목기막터가 있었다는 산죽밭을 지나 오른편

계곡으로 건너게 되는데 계곡주변에 조그마한 바위굴이 있다.

과거 목기를 만들던 인부들이 지내던 곳으로 청춘홀이라 불리고 있다. 

지리산을 끼고있는 남원등이 예부터 목기공예로 유명한 것도 바로 이와같은 이유 때문이다.


..........................'청춘홀 위치.............................


비선담 통과후 우측 계곡을 건너야 한다.

칠선폭포 못미처 계곡 우측으로 우뚝 솟아오른 검은 바위.

' 흰색 페인트 글씨 - '청춘홀. 지리산악회.'

일반 등산로와 동떨어져 찾기 어려운 곳이다.

 

                  

                           

 

 

 # 말소리 사라진 곳에 물소리만 요란하다.


비선담을 지나면 출입통제 지역이다.

사방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주변 사위에는 계곡의 물소리만 들린다.

이 물소리는 중산리에 내려올 때 까지 거의 12시간을 환청처럼 귀를 때렸다.


나는 되도록이면 말을 하지 않는다.

물소리에 집중을 하기 위해서다.

남들 또한 묵묵히 걷기만 할뿐 별 대화가 없다.


나는 나의 마음을 계곡의 물과 나무에게 맡긴다.

세속에 찌든 내 마음에 지리산의 맑은 기운을 담고 계곡 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나무와 침묵의 대화를 나눈다.

여기에는 소유하려는 마음도, 집착하려는 마음도 없다.

그냥 마음을 나눔으로써 우리의 사랑은 깊어간다. 


수도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의식의 집중이다.

문제는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이다.


화두에 집중할 것인가, 염불에 집중할 것인가.

개운조사가 주석한 능엄경에서는 물소리에 집중할 것을 권하고 있다.


물소리에 대한 집중이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법이 바로 청각을 이용한 이근원통(耳根圓通)이다.

관음보살이 수행해서 효과를 본 수행법이 이근원통이다


개운당조사(開雲堂祖師)는 누구인가.


개운조사로도 불리는 스님은 지리산 묘향암(반야봉 아래 묘향대)에서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1790년(정조 10년)에 태어났으니 나이는 217세이다.

그의 죽음을 본 사람이 없어 불가에서는 신선이 됐다는 설이 제기된 것이다.

지금도 그가 살아 있는 흔적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나 뉴스거리가 되곤한다.

개운조사는 불도(佛道)와 선도(仙道)에 모두 조예가 깊은 대도인으로서,

1730년 경술에, 일설에는 1790년에 출생하였다고 한다.

3세와 5세 때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외가인 양씨가에 의탁하여 살다가 7세에 외숙부를 잃고,

9세에 외숙모를 잃은 후 상주가 되어 모두 3년상을 치르자 인근 사람들이

그를 양씨집의 효동이란 의미로 양효동(楊孝童)이라 칭송하였다고 한다.

이후 13세 때 출가하여 희양산의 환적암(幻寂庵)과 백련암(白蓮庵), 청화산 맞은 편의

 도장산 심원사(尋源寺.또는 深源寺)에 오랫동안 머물며 수행하여 크게 성도한 후

평소에 수많은 신비의 이적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51세 때 유가심인정본수능엄경(琉伽心印正本首楞嚴經)의 주해원고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심원사 경전서가 천장 위에 깊이 간직해 둔 뒤 더 깊이 수행하기 위해 아주 인적이 드문

지리산 반야봉의 묘향대로 들어가 그 종적을 감추었다.

그의 몰년에 대해서는 20세기 말엽까지도 생존해 있었다고도 하고,

1988년 187세로 입적하였다고도 하는 등 대도인으로서의 전설적인 일화만 전하고

생몰연대가 모두 분명하지 않다.

그의 속성은 김씨였으나, 어려서 외숙부와 외숙모의 3년상을 치루기도 하고, 출가하여 수행한 후

선도에 정통하여 선인과 같은 많은 이적을 보이기도 하여 양봉래로 속칭되기도 하였다

 


 

# 반석, 폭포, 소가 이어지는 원시성 넘치는 신비경에 취하고..


점점 동이 튼다.

나무 사이로 바라보이는 산줄기가 신비롭다.

큰 산의 산줄기가 있기에 숲의 매력은 배가된다.

우리는 지금 녹색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이 지리산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푸른 하늘과 청량한 바람, 울창한 숲이 맑은 기운을 전해준다.

맑은 기운을 품은 공기를 마시니 최고의 맛이 아닐 수 없다.


칠선계곡은 길고도 길다.

진정한 칠선계곡의 비경이 시작된다.

그것도 지나가는 사람조차 만나기가 쉽지 않은 조용한 계곡 길이다.


수십 그루의 적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의 풍경은 차라리 엄숙하다.

역시 큰 산은 나무의 스케일도 크다.

이런 곳에 마음을 맡기면 자연스럽게 가슴이 넓어진다.

우리들의 인기척에 새들이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갯짓을 한다.


활엽수 일색의 원시림이 하늘높이 솟아 사뭇 숭엄한 느낌을 준다.

숲을 이룬 나무들은 무질서한 것 같으면서도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아름드리나무는 큰 나무대로, 작은 나무는 작은 대로 공생하며 울울창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나고 자라고 죽어가는 생태순환과정이 숲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세상을 일정하게 유지해가는 생태적인 질서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사물의 흐름이다.

이러한 자연의 질서가 깨뜨리고 인위적으로 질서를 만들려다보니

세상은 점점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인위적인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산의 질서 속에는 어설픈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 속에 마음의 평화가 깃든다.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 ‘간격’ 안도현 詩人

 


 

크고 작은 폭포와 소가 계속 이어진다.

희고 매끄러운 화강암과 티 없이 맑은 물은 주변의 울창한 숲과 함께

계곡미의 극치를 이룬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웅장한 멋이 풍기는 계곡의 모습이

과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계곡답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불리는

칠선계곡의 규모와 아름다움에 나의 몸과 마음은 푹 빠져버린다.


천불동계곡이 주변의 암봉과 기암절벽이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면,

칠선계곡은 울창한 숲과 둥글둥글한 바위와 반석·폭포·소가 원시성 넘치는 비경을 갖고 있다. 


깔끔한 화강암은 물살이 굽이치면서 깎이고 깎여 유연한 곡선을 이루며

작은 폭포를 만들고, 폭포에서 떨어진 물줄기는 바위를 파내어 검푸른 소가 된다.


거대한 바위를 만나면 돌아서 가고, 경사를 이룬 반석을 지날 때면 와폭이 된다.

과연 남한을 대표하는 산,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내려오는 골짜기답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말 그대로 억지스럽지 않다.

이런 자연 속에 동화될 때 인간에게도 행복이 찾아온다. 


수많은 와폭과 작은 무명폭포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제법 큰 와폭은 집채만 한 바위가 물을 쏟아내면서 폭포가 된다.

옥빛 소에 비친 폭포수가 가슴을 적신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더니 계속되는 폭포와 소가 자꾸만 발목을 붙잡는다.


이런 풍경은 칠선폭포에서 절정을 이룬다.

반석을 타고 내려온 계류는 10m 높이에서 살짝 굽이치며 우렁찬 소리를

내며 폭포를 만들어낸다.


칠선계곡의 대표적인 폭포인 칠선폭포는 사자가 포효하는 듯하고, 검푸른 소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폭포 앞에 서 있으니 그 기운이 숭엄하다.

칠선폭포 위에서는 커다란 바위가 부처님마냥 앉아 묵언정진 중이다.

칠선폭포는 부질없는 욕망에 휩싸여 사는 나그네에게 물같이 바람같이 살라 한다. 


폭포가 쏟아지는 바로 뒤로는 음각으로 새긴 것과 같은 그림이 있다.

하나는 거북이 형상을 띄고 있고 하나는 삿갓을 쓴 사람형상이다.

인위적인지 자연적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또한 신묘할 뿐이다.


  ▲칠선폭포의 전경↑ (해발870m) 

    화려하되 깊이를 잃지 않고, 우아하되 소박함을 잃지 않았다.



# 길조차 희미한 골짜기에서 느끼는 고요, 또는 적막 


산길은 가끔 계곡과 잠시 거리를 두기도 하지만 대체로 계곡을 끼고 이어진다.

이름만 없다뿐이지 아름다운 폭포는 계속된다.


맑디맑은 계류는 깔끔한 반석 위를 흐르면서 명경지수(明鏡止水)가 되고,

둥글납작한 바위들을 돌고 돌아가면서 유연한 곡선을 이룬다.

중봉 안부로 통하는 물줄기와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골짜기가 갈리는 합수골에서

우리는 왼쪽 중봉 길을 택한다.


마폭포는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계곡길에 있다.

수량은 적지만 25m 높이를 이룬 마폭포는 천왕봉에 버금가는 중봉에 선을 대고 있다. 

중봉 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마폭포를 이루고, 천왕봉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삼층폭포를

만든 후에 서로 만나 8m 길이의 폭포가 된다.

합수골에서 다시 20여분을 진행하면 대륙폭포와 초암능선으로 오르는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 직등로는 하봉, 계곡으로 직진하면 중봉이다.


칠선계곡에서 곧장 중봉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이곳 대륙폭포 갈림길을 선택해야 한다. 

         

           ↑ 대륙 폭포


1964년 부산의 대륙산악회에서 칠선계곡 등로를 첫 개척하면서 이름을 붙힌 바로 그폭포이다.

검은 돌 사이의  흰 계류가 엄숙한 분위기이다.

 

                 

 

 

                 

 

대륙폭포 보다 오히려 대륙폭포 상단의 수많은 무명폭포 중에서도

혼을 빼앗는 폭포들도 많다.


그 중에서도 이단폭포는 대표적이다. 

수십 미터의 반석이 경사를 이루어 와폭이 되고, 폭포수는 바위를 조탁하여 탕을 만든다.

하나의 물줄기는 두 줄기의 와폭이 되었다가 10m 높이의 직폭을 이룬 후 폭포의 모양을 완결한다.

말이 2단폭포지 보기에 따라서는 3단과 4단폭포을 이루고 있다.

억겁의 세월과 자연의 여러 요소들이 공동으로 창출해낸 예술품이다. 

    

              

  

대륙폭포를 지나자 마자 갑자기 위협적인 폭포가 길을 막아 버린다.

계곡위로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지설님이 곧바로 계곡옆의 길을 찾아낸다

 

                  

 

  

             

 

 

                  

 

                  

 

칠선계곡의 마지막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 폭포다.

칠선계곡은 이곳저곳 골짜기에서 수많은 물줄기를 끌어들여 아름답고, 웅장한 계곡이 되었다.


낮은 데로 향하는 물줄기는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이 폭포는 30~40m 높이로 바위를 감싸듯이 굽이굽이 돌고 돌면서 부드러운 폭포를 이룬다.


계곡의 물이 하나의 폭포를 만들고 나면 바위가 패여 만들어진 탕에 잠시 머물렀다가

또 하나의 폭포를 만들곤 한다.


수직의 바위를 돌고 돌아가는 물은 거침이 없다. 

무명폭포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를 잊는다.

나를 잊어버리니 내가 무명폭포가 된다.


경사는 더 급해지고, 오르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경사가 점점 급해지면서 주위의 경관은 신비롭고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한다.

                  

 

폭우 때 상류로부터 내려온 토사와 뿌리째 뽑힌 나무 등걸이 어지러이 흩어진 지역을 통과한다.


절벽 틈새로 아슬아슬하게 길은 이어지는데, 여러번 위험지역이 많다.

대륙폭포 갈림길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곳곳에 안내판도 있고, 굵은 로프가

걸려 있는게 남아 있다고 하던데 이곳엔 아무것도 없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주변의 나무와 온갖 야생화 또한 고산식물대로 바뀐다.

그 대표적인 나무가 구상나무다.


구상나무는 고산지대에서 곧게 솟아 다른 나무들을 거느린다.

구상나무는 살아 있는 나무뿐만 아니라 고사목들까지도 그 모습이 신선하고 고고하다.

많지는 않지만 붉은 줄기의 주목도 가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이런 나무들로 하여금 고산(高山)은 낮은 산에서는 볼 수 없는 품격을 보여준다. 

곳곳에 야생화를 바라보고 있으니 내 마음까지 아기자기해진다.

바위에 붙은 양치식물은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식물이다.

 

 

  ▲고사목에 의지해 사는 푸른 이끼


고사목에 의지해 사는 푸른 이끼가 죽음과 삶이 별개가 아니라고 한다.

나무는 죽어서 이끼들의 서식처가 됨으로써 이끼로 환생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고사목에는 버섯이 옹기종기 붙어 있어 그 모습이 사뭇 예술적이다.

그렇지 않은 고사목은 푹 썩어서 다른 나무의 거름이 된다.

원시적인 풍경에서 나는 더 이상 현대를 사는 인간이 아니라 현대문명과는 동떨어진 원시인이 된다.


중봉에 가까워지면서은 고산식물이 고고하게 서 있고, 고사목이 흰빛을 드러낸다.

제석봉 주변의 고사목과 같은 풍광이 자주 눈에 띈다.

                

              ▲ 칠선계곡 상류의 고사목.


제석봉 고사목이 火死木이라면, 이곳의 고사목은 진정한 고사목이다.

추상화 같은 고사목은 살아있을 때 모습의 연장이다.

삶이 아름다워야 사후(死後)도 아름답다는 사실을 고사목이 알려준다.

골짜기는 중봉 바로 100m아래까지 이어져있다.


넘어진 고사목을 기어서 넘어가고 바위를 붙잡고 넘어가기를 수차례.

아무리 지체가 높은 권력가도, 아무리 돈 많은 재벌도, 아무리 힘이 센 장사도

두 다리와 두 팔에 의존하여 낮은 자세로 올라야 한다.

이러한 산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은 인간에게 참 스승이 된다. 


대륙폭포 이후 계속된 급경사 오르막이 더욱 힘들게 한다.

가파르기는 해도 바위를 손으로 잡을 수 있고, 발 딛을 만한 곳이 있기에 오를 만하다.


집채만한 바위를 넘기도 하고, 몇미터가 이르는 통바위를 오르기도 한다.

계곡물은 점점 수량이 적어 바위 속에서 조용히 속삭이다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경사가 급하다보니 몇 미터에 이르는 폭포들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이러한 골짜기와 주변의 풍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산 높으니 골이 깊다는 말이 수도 없이 실감난다.

 

 

                

 

                

 

 

                 

 

                 

 

                     

     

                 

 

 

              

 

 

골짜기를 오르다가 힘들면 바위에 잠시 앉아 주변 풍경을 감상한다.

그럴 때마다 서늘한 계곡의 바람이 온몸에서 흐르는 땀을 식혀준다.


계곡은 마치 너덜처럼 큰 돌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이 계곡 저 계곡 넘나들며 산행하다보니 협곡이 나타나고,

길이 끊겨 다시 사면으로 기어 올라가고....험하디 험한 칠선계곡 상류이다.


계곡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중봉의 아래턱으로 올라선다. 

200m 정도의 산사태 구간이다. 계속 낙석이 발생한다.

게다가 장마철 물을 머금은 위험한 길이다.


일부 구간은 너무나 경사가 급해서 온몸으로 올라야 한다.

거의 리지 등반 수준이 몇고비 이어진다.


골짜기는 급경사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네발로 기다시피 한다.

받쳐주고 잡아주고 밀어주고 혼자서는 쉽게 길 찾기도 어려운 구간이다. 


100여m를 조심조심해서 오르다가 밑을 내려다 본다.

아래로는 울창한 숲이 녹색바다를 이루고 있다.


건너편에는 초암능선이 보인다.

능선을 이루고 있는 바위들이 녹색바다에 뜬 배와 같다.

20m쯤 되는 높이로 솟아오른 바위봉우리가 주변의 바위들을 호령한다.

촛대처럼 솟았다고 하여 초암능선 촛대봉(1,462m)이다. 

1500m가 넘는 높이에도 불구하고 바위 없는 곳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솟아있다. 

초암능선의 정점에 하봉이 앉아있다.

매우 전망 좋은 곳이다.


산사태로 온통 낙석지대인 급경사 오름길이 정말 힘들다.

바위에 긁히고, 덩쿨가시에 찔리면서 조심조심 오르니 산비탈 너머로는

하봉에서 중봉으로 가는 주능선이 보인다.


중봉 바로아래 등로 200m 지점이다.

‘지리 0-26’ 치밭목 3.0km 이정표가 서있다.

계곡이 시작되고 끝이 나는 곳에 하봉에서 올라오는 정규 등로가 있다.

곧바로 중봉으로 오른다.

시계를 보니 11시 36분. 추성리를 출발한지 꼬박 8시간이 걸렸다.

                

 

 

                  

 

               

 

 

 

# 지리산은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울리지 않은 산이다.


중봉에 오르니 천왕봉이 지척에 보인다.

중봉 정상에서 보는 천왕봉의 모습은 더욱 또렷하다.


역시 천왕봉은 천왕봉이다.

지리산의 장엄은 천왕봉의 높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넓이와 깊이에서 나온다.

 3도 5군이 머리를 맞댄 곳이다.  

백두대간을 비롯해 사방에서 달려오는 산줄기들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주능선이 동서방향으로 길게 이어지고, 수많은 지능선이 남북으로 가지를 친다.

능선과 능선 사이에는 깊고도 깊은 골짜기가 수없이 형성되어 있다.

골짜기와 능선은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서 거대한 생명체를 이룬다. 

지리산 연봉이 이루어낸 계곡의 깊이를 우리는 가늠치도 못한다


지리산을 말하는 것도, 안목에 따라 달랐다.  

평생을 벼슬길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안동의 퇴계 이황에 견줄 만큼 독자적인

학풍을 이루었던 남명 조식.

'지리산만큼이나 무거워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없던' 고고한 선비 남명 조식은

지리산 자락에서 18년 동안을 학문과 제자 양성에만 힘을 기울인 올곧은 선비였다.


남명의 육신이 묻혀있는 묘와 제자들을 가르쳤던 덕천서원, 서재로 쓰였던 산천재,

서원 앞 덕천강가에 있는 정자 세심정, 그리고 여기저기 서 있는 비석들이

남명의 선비정신을 오늘날까지 전해준다.


남명 선생은 [덕산계정 기둥에 새긴 글(題德山溪亭柱)]에서 이렇게 읊었다.


천석이나 되는 저 큰 종을 좀 보소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울리지 않는다오

허나 그것이 지리산만 하겠소

(지리산은) 하늘이 울어도 울리지 않는다오

請看千石鐘   非大毆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여름 지리산에서 다시한번 그의 혼을 만난다.


산은 지리산이다.  

지리산을 좋아하는 분은 채색 장식화보다도 수묵 담채화를 좋아할 것이다.

그런 분이라면 예쁜 분원사기보다도 금사리가마의 둥근 달항아리를 더 좋아할 것이다.

그런 분이라면 바그너나 모짜르트보다도 바흐를 좋아할 것이다.

그런 분이라면 똘스또이의 소설을 책상에 앉아 줄을 치며 읽을 것이다.   

하나의 안목은 다른 안목에도 통한다.

산은 지리산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유홍준지음/ 창작과비평사>

 

  ▲ 중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전경

 

 

 

 

지리산 고봉인 천왕봉(1,915.4m)과 가장 가까운 봉우리는 중봉(1,875m)이다.

중봉은 숱한 지리산의 준봉들 가운데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이기도 하다.

중봉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지니고 있다.

영봉(靈峯) 천왕봉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웅장한 느낌으로 올려다볼 수 있고,

능선 위에는 기화요초가 만발한다.


중봉에서 보는 천왕봉은 부드럽고 장엄하다. 

평일이라 그런지 몇몇 산객들만 보인다.


남쪽의 낮은 봉우리들을 향해 열린 조망은 운해라도 몰려올라치면 형용하기 힘든 장관을 연출한다.

마야계곡이 내려 보이고, 써리봉에서 뻗어나간 황금능선이 고도를 낮추며 출렁인다.

제석봉 너머로 촛대봉이 고개를 내민다.

사방에서 수많은 산줄기들이 달려온다.


제석봉·연하봉·촛대봉·이어지는 주능선이 아름다운 곡선미와 함께 첩첩하게 겹쳐지는

중첩미를 보여준다.

하봉·써리봉을 비롯한 동부능선의 산줄기도 유연한 흐름을 형성한다.

이런 주능선을 받치고 있는 능선과 골짜기들이 거대한 생명체를 이루고 꿈틀거린다.


도로도 직선, 건물도 직선 투성이인 현대사회에서 유려한 곡선과 중첩되는

산줄기들이 여유를 가져다준다.

이러한 산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깊이와 아름다움이 가슴에 사무친다.

 

  ▲중봉 조망바위에서 지리산의 풍광에 취한 지설님의 모습이 또 하나의 봉우리를 만든다. 

  

중봉의 이같은 아름다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중산리에서 지리산을 오르는 경우 거의 모든 방문객들이 천왕봉으로 곧장 올라서기 때문이다.

중봉 봉우리 아래는 온갖 야생화가 자생하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다준다.

모두가 아름다운 마음을 가득안고 마아계곡(일명 중봉골 또는 용소골)으로 향한다.

 

중봉 정상에서 천왕봉은 여기서 30분 거리.

천왕봉까지 갔다가 다시 중봉방향으로 내려와서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다.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의 모습에 한껏 취한 뒤, 곧바로  마야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잡는다.

 

  ▲ 중봉에서 바라본 마야계곡 전경

 

마야계곡을 중산리 주차장에서 올라갈 경우엔,

가장 쉬운 방법은 순두류 길이 끝나는 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 법계사 오름길 삼거리에서

계곡타고 내려와 합수지점에서 시작한다.


아니면 순두류 포장길 끝머리의 화장실에서 계곡길로 내려가, 그냥 계곡타고 계속 계류를

거슬러 올라가도 된다.

그러나 중산리계곡 맛도 볼려면 아무래도 중산리주차장 근처에서 시작하는 것이

완벽한 마야계곡 종주코스라 하겠다.  

이럴 경우 초반부엔 산길이 없으므로 노련한 등반기술이 있어야 하고, 눈이나 비가 올 경우엔

절대 삼가야 한다.


마야계곡은 지리산의 정식등산로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중봉 오르는 길에는 누구도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던 탓에 중봉의 원시미原始美)가

고이 간직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비록 인적은 끊겼어도 걸을만한 계곡길이 정상까지 이어지며, 군데군데 산행리본도 눈에 띈다.

 

  ▲ 중봉샘 샘터 전경

천왕봉과 중봉 사이 안부에서 남쪽 골짜기로 방향을 튼다.

약 5분 정도 내려가니 텐트 하나 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있고, 그 옆에 맛좋은 중봉샘이 있다.

이곳 중봉샘에서 마야계곡이 시작된다

초행이라면 찾기 힘들 위치이다.


# 천왕봉과 중봉 사이 중봉샘은 마야계곡의 始原


등산로에서 샘까지는 약 5분 거리의 내리막이다.

바위의 물이 고여 있다.

인적이 드문 만큼 아주 시원하고 맛있다.

지리산 샘터중 임걸령 샘터를 제일로 꼽지만 중봉샘에 비교할 정도가 아니었다.


중봉샘에서 마시는 물 한 잔이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버릴 정도로 시원하다.

나는 그 어떤 음료수보다도 물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물맛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오늘 중봉샘에서 보는 물맛 역시 그러하다. 

어지러운 꿈을 헹구어 새벽 맑은 정신을 깨우는

맑고 차가운 샘이 있어야 합니다.

가까운 곳에 두고 자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잠재우는 수많은 최면의 문화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 신영복 시화집‘처음처럼’ 샘터 찬물 中에서-

 

 

 

# 마야계곡....원시숲에 묻혀 시들해진 계곡 풍광



마야계곡은 석가여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머물렀던 곳이라는 전설의 장소이다.

사람의 통행이 많지 않아 상류의 길은 희미하다.


청소년 수련원까지를 중산리계곡으로 부르고, 청소년 수련원에서 발원샘인

중봉샘까지는 중봉골,용소골,혹은 마니골로 불려져 오다가 최근에 마야계곡으로 정리가 되었다


계곡을 따라 줄곧 내려선다.

매우 가파른 경사도다.


칠선계곡 상단부와 마찬가지로 만약 오름길이라면 네발로 기고 엎드려서

바위 붙잡고 올라서야 하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내리막도 힘들건만, 오르막은 몇 배나 힘든 구간이다.


정상의 턱밑 해발고도가 매우 높은 곳까지 크고 작은 소(沼)와 폭포가

자리잡고 있어 지리산의 깊고 깊은 속내에 신비감이 느껴진다.

계곡을 따라 진입하는데 미끄럽기 그지없다.

간간이 표지 리본이 보이지만 계곡길을 따라 내려간다.

돌 징검다리로 계곡을 수도 없이 가로로 세로로 건넜다. 그래도 칠선계곡보다는 덜하다.

계곡 돌길은 물이 많고 이끼가 많아 위험하기 그지없다.

5 m 정도의 무명폭포가 나타난다.

길이 끊겨버린다.

이끼가 끼어있어 폭포 하단으로 쉽게 내려가기가 어렵다

 

 

                  

 

 

                  

                     ▲마야계곡 상류부분의 이끼폭.

 

 

 폭포라기 보다는 작은 계류주변이 온통 고색창연한 이끼로 덮여있다.

태고의 신비처럼 보인다.

초반부의 산비탈이 보통 경사가 아니다.

길은 차차 천왕봉 쪽으로 비스듬히 돌아가면서 고도를 낮춘다.

울창한 숲은 마치 바다 속을 헤엄쳐가는 것 같다.

가끔 써리봉 능선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울창한 숲과 간간이 넘어져 있는 고사목들로 원시성 넘치는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길은 주로 계곡 오른 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산길은 계곡 길로 내려섰다가 다시 멀어졌다가를 반복하고,

희미해지는 듯 하면 다시 또렷해지기를 되풀이 한다.


길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나무가 가로막으면 돌아서가고, 바위를 만나면 조심스레 내려가기도 한다.


오전에 올랐던 칠선계곡은 계곡을 타고 오르면 되지만 지금 걷고 있는

마야계곡은 길을 잃지 않고 내려가야 고생을 줄일 수 있다. 

계곡 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숨죽여 흐르는 물소리만이 들려올 뿐 골짜기는 한없이 고요하다.

군데 군데 반달곰의 배설물도 보인다.

키 높이 보다 웃자란 칙칙한 산죽이 자꾸만 갈 길을 막기도 한다.

모든 것이 인생살이 같다. 


가끔 짙은 운무속에 써리봉의 모습이 보일 때면 잠시 걸음을 멈추곤 한다.

내려갈수록 계곡은 규모도 커지고, 모양도 평범해진다.


점차 길은 뚜렷하지만 여전히 경사도는 상당하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과 함께 걷는 길이 시원하다.

사람의 통행이 많지 않은 곳이라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넘쳐흐른다.


마야계곡은 칠선계곡이나 뱀사골, 한신계곡처럼 절경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정감이 가는 계곡이다.

큰 폭포나 담과 같은 것은 없지만 작은 폭포와 조그마한 소들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하얀 구슬을 만들어낸다. 

                 

 

                 

 

 

                 

 


한시간 이상을 내려오다가 계곡길과 벌어진 곳에서 계곡으로 가는 삼거리 산죽 길이  있다.


직감적으로 마야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마야독녀탕이란 생각이 든다.

몇십미터 다시 계곡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쌍폭포가 보인다.

일명 마야독녀탕 주변은 시야가 확 틔여있다.

계류는 위에서 와폭을 이루다가 살짝 굽이치며 또 하나의 폭포 하나를 만든다.

폭포수는 하트 모양의 소에 잠시 머물렀다가 흘러간다.

마야탕(마야독탕) 이라 하는 용소다.

제법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지만 바로 위로 접근하기 힘들어 약간 떨어져 바라만 본다.


계곡을 더 내려가면 깊숙히 자리잡은 7m 높이의 용추폭포가 있다고 했는데 찾아보지 못했다.

이 주변에는 키를 넘는 산죽이 예사가 아니다.

계곡 옆으로 산길은 계속 이어진다. 계곡은 점차 넓어진다.


여기서 약 30여분 내려가면 너덜지대를 통과한다.

지리산에 관한 자료에서 신선너덜로 설명한 장소인듯 했다.

신선너덜을 지나면 순두류 즈음해서 법계사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류한다.


법계사 오르는 갈림길을 지나 넓은 길을 내려 오다가 왼쪽 산죽 숲길로 붙으면,

지리산 빨치산의 흔적이 남아있는  [순두류 아지트]를 만날 수 있다.

 

                    

 

                   

          

                   

                       ▲ 순두류 아지트... 바로 앞의 계곡을 건너야 한다.

 

순두류아지트 80m라는 표지판을 다시 만나는데 줄에 매단 '등산로 아님 표지' 조금 옆으로

계곡쪽 순두류아지트로 향하는 또렷한 샛길이 열려있다.

 

순두류 아지트로 가기 위하여 물을 건넌다.

계곡을 건너 20m 쯤 가니 커다란 바위 속에 좁은 굴이 있다.

빨치산들이 은신했던 바위비트다. 

지리산 빨치산의 지휘본부가 있었던 법계사 주변의 정찰기지였던 이곳은

거대한 바위에 덮인 지형과 풍부한 물을 갖춘 천연의 요새 지형이다.

6.25 전후, 빨치산토벌대에게 가장 큰 애로를 안겨준 장소다.

바위에 아직 탄흔이 남아있는 이 곳에는 유적지 안내 표지판이 잘 정비되어 있어

역사기행에 도움을 준다.

             

 

다시 계곡을 지나 오른쪽 길을 따라 걷는다.

청소년수련원에서 가꾸어놓은 넓은 탐방로가 이어진다.

이 길만 따라가면 청소년수련원을 지나 도로를 따라 중산리매표소로 곧바로 내려갈 수 있다.

아니면 순두류 아지트를 들러 계곡 길을 따라 내려갈 수도 있다.

이미 계곡과 산죽에 질린 일행은 임도를 따라 걷는다.

하산길은 3시간 30분이 소요됐다.


마야계곡을 통해 중봉을 오른다면 지리산 중산리매표소에서 정상까지 걸리는

시간은 5시간 30분 안팎.

매표소를 통과해 1시간 가량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올라가면 법계사쪽과

자연학습원쪽으로 길이 나뉘어지는 갈림길 이정표앞에 선다.

법계사쪽으로 방향을 잡아 출렁다리를 건너 10분 더 가면 순두류아지트 0.7㎞라는 표지판을 만난다.

길을 따라 또 10분을 오르면 순두류아지트 입구이다.


마야계곡의 비경을 꼭 체험해보고 싶지만 산행 자체는 좀 더 여유있게 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천왕봉을 먼저 오른 뒤 중봉을 거쳐 이 계곡으로 하산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만하다.

 

                 

 

 

                      

 

중산리 통제소에 이르렀다.

꼬박 12시간이 걸렸다.

 

등산로 초입에는 전설적인 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 선생의 추모비가 서있다.  

우천 선생은 세석의 움막에 기거하면서 지리산 초창기 등산로도 개설하고

지도도 제작하며 인명구조를 하는등 지리산꾼들한테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우천선생의 고귀한 뜻을 기리며 지리산문을 나선다.

그 건너편에는 원추리가 군락을 짓고 피어있다.

추성리 마을터에도 원추리 군락이 있었다.


우리의 산야에 성숙한 여인 마냥 아름답게 피어있는 백합을 닮은 노란색 꽃  ‘원추리.

그 꽃말은 知性이다.

이 꽃은 하루살이 꽃으로 아침에 피고 저녁에 시들어 다음날 다른 꽃이 핀다고 한다. 

원추리는 그 꽃잎을 말려서 가지고 다니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의남화(宜男花)"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그 향기가 부부의 금실을 좋게 한다고 해서

금침화(衾枕花) 또는 합환화(合歡花)라고도 불린다.

어린 긴 잎은 나물로 해먹으며 또 그 꽃잎을 말려서 차에 띄워 마시면 머리를 맑게 하여

근심을 잊게 한다고  망우초(忘憂草)라고도 불리운다. 

              

 

중산리 다리를 넘으며 티 없이 맑은 물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까지도 맑아진다.

맑은 마음을 가지고 속세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 하루는 지리산의 깊은 물소리만 들었다.

우리 일행 말고는 중산리까지 단 한사람도 만나질 못했다.

하루동안 원시 오지 계곡에서 원시인이 된 셈이다.

지리산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인근 식당에서 맥주 한잔을 한다.

배낭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켠다.

또다른 세상을 만나기위해 하루종일 꺼놓았던 터였다.

핸드폰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계속 날아든다. 이 가운데 꼭 받아야할 시급한 내용은 거의 없다.


그냥 이곳 지리산에서 당분간 지내고 싶다.

세상을 잊고살면 또 어떠랴, 세상이 나를 잊으면 또 어떠랴


류시화 /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중에서-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 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다음검색
댓글
  • 07.07.20 17:46

    첫댓글 지리의 품에서 경천과 애인을 배웁니다.

  • 07.07.20 21:54

    참 좋은 시간이셨겠어요..

  • 07.07.21 09:42

    존데는 혼자만 댕기는구먼,,,,

  • 07.07.21 23:08

    그림만 봐도 행복하네요 아토산에서 난세를 기억이나 할려나??????????????/

  • 07.07.21 23:30

    기억합니다. 요즘도 많이 바쁘신가봐요..

  • 07.08.03 22:48

    20년전에 칠선 계곡으로 올라가다 힘들어서 내려온 생각이 나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