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숙의 시세계
몸짓으로 표현된 미학과 상충된 그림 속에 시어들
이효녕(명예문학박사·시인·소설가)
우선 상재되는 윤혜숙 시집「몸짓 그리고」가 꽃의 향기를 이 봄에 가득안고 오는 것을 축하한다.
시인은 외롭고 적적하여 시린 가슴 밑둥치로부터 올라오는 처연(凄然)의 미로(迷路)에서 한 올, 또 한 올 시어(詩語)를 건져 시로 형상화한다. 고달프고 힘들 때면 눈물을 하염없이 쏟을 수밖에 없던 아린 삶, 외로울 수밖에 없는 그 삶의 공간이 문학이라는 항아리 학문으로 접어들도록 하였는지 모른다. 이래서 시인은 하늘이 내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환경이 시를 만든다고 했을까?
윤혜숙의 시는 삶의 영역을 맴돌면서 그 범주 안에 존재해 있으며 언어의 자유와 의미의 질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희망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윤혜숙의 시가 가진 또 하나의 힘이다. 무궁하게 미래를 향한 전진은 언어의 새로운 경지를 향해 유영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 중에 윤혜숙 시인의 시는 우선 안온하지만 읽을수록 분출된 뜨거움 속에 경쾌함이 느껴진다.
시의 주제의 주류인 사랑과 이별, 그로 말미암은 자신에 대한 존재 의식에 따른 대상에 대한 사랑, 그리움, 고독, 추억 등이 시의 저변에 관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시의 에너지는 곧바로 가족 사랑이 아니면 많은 주변의 사람들로 연결 된다. 윤혜숙 시인의 가족사랑은 무엇보다 무한한 힘이다. 이뿐만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고 접근해가는 삶의 방법도 거짓이 없고 진솔하다. 삶을 사는 방식에 무슨 수식이 필요한가? 정직하고 올곧은 그의 심성이 시편에 여러 곳에 넘쳐흐른다. 시의 곳곳에 시인의 무의식에 잠재한 세상 사림들의 우정 어린 사랑이 나타나 인간 중심의 그의 마음이 표출된 것은 자기의 인생을 사랑하는 때문이다.
오지랖이 무척 넓은 윤혜숙 시인은 시인 이전에 시와 그림 그리는 화가로서의 대범함 속에 밤새 별빛에 젖은 그녀의 삶이 한 움큼 묻어나온다. 용감하고 꿋꿋한 시인의 내면에는 혼자만의 쓸쓸한 공간이 있다. 바로 그림이 펼쳐진 우주처럼 아주 넓은 최대의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그림도 그리고, 시상도 떠올리고, 배꼽을 내놓고 율동어린 벨리댄스도 신나게 추고, 사물놀이도 하고, 가슴을 울리는 오카리나 연주도 스스럼없이 한다. 어디 그뿐인가? 화선지 몇 십장을 잇대어 큰 붓으로 글씨를 쓰는 퍼포먼스까지 관중 앞에서는 끼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밖으로 표출된다. 어쩌면 이는 종합예술을 향해 내 던진 윤혜숙 시인만이 가진 끼가 몸짓으로 표현되어 나온 사물에 대한 그의 연민이나 집착은 경건하리만큼 남달리 뜨겁게 표출되어 공명한다.
붓끝을 타고 내려오는
하늘의 살아있는 흔적
아담 찾으려고
지그시 감은 눈
사랑스러움이다
그 완벽한 몸짓 하나
너의 절망에 대롱대롱
내가 매달려 돌아간다
「몸짓 그리고」 전문
시인은 어디에도 쉽게 영혼의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사람이다. 시인의 영혼은 때로는 너무 뜨거워서 몸짓으로 모든 것을 밖으로 품어낼 수가 있다. 시는 상승과 하강의 어떤 정점을 노래하지만 그 정점을 노래하고 꿈꾸는 시인 자신의 자리는 대부분 정점에서 더 높이 오를 수 있는 자리일 것이다. 정점에 도달할 수 없는 미진함이나 정점을 추구하는 과정의 목마름이 시의 에너지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완성의 지점인 정점은 너무 뜨거워서 무언가를 잉태한다. 언어의 축약과 이미지, 상징, 비유, 풍자, 반어 등의 기법을 동원해야 하지만 윤시인은 여기서 정작 편안하게 욕심내지 않고, 원색적일만큼 진하게 때로는 소소하게 늘 억지스럽지 않고, 우리 삶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 퍼포먼스를 하던 큰 붓 끝에 흔적을 듬뿍 담아내다 보면, 곱게 보이려고 단장하지 않은 생것의 티가 절로 나서 그대로 표징된다. 그래서 들판에서 꿋꿋하게 자란 민들레의 씨방처럼 허공을 향해 시원하게 터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세상 모든 것들을 현상계의 실체로서 적나라하게 대면하지 못한 자신의 과거의 작품에 대한 아쉬움을, 가장 절실한 몸의 감촉을 앞세워 설명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그녀가 추구하는 시도는 시 작품에서도 조심스러우면서도 능청스럽다.
언제나 말 없는 입술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진실한 눈빛이 보여
나도 모르는 사이
사랑별이 되었습니다
속상하도록 무정한 눈빛
그 의미를 몰라
하얀 밤을 미워하며
나도 모르게 지는 달이 되었습니다
몇 날 며칠 기다려도
기약 없는 기다림이기에
지우려 애를 썼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무지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별도 달도
무지개도 묻어버리려고
마음 감추는 거짓말만 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당신 향해 더욱 반짝이는
봄의 햇살이 되어갑니다
어느새 내 마음이 허공에 걸려
봄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전문
나도 모르는 사이 일어나는 일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모르는 사이에 어떤 일이 생긴 것인가? 마음이나 사물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동안 즉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한 실제의 공간인 마음은 시이기 전에 한 생의 인간을 살면서 절대적인 희망이 송두리째 담긴 절대한 그 무엇이기도 하다. 시가 우리 시인에게 이러한 절대함으로 다가서는 일은 참으로 소중한 모습이며 우리의 심중을 깊이 울려 주는 일이다. 이 시는 진술을 주로 한 진술시라고 할 수 있으나 현대시라고 해서 감각적 묘사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시적화자의 독백은 참으로 진솔한 시인의 심중의 모습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인간들의 발가벗은 구원의 바람이기도 하다. 소재나 주제에 따라 정의적(正義的)이고 추상적인 것이라면 관념적 성격을 수반하므로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묘사보다는 진술적 표현이 마음을 나타내는 데는 효과적이다.
누군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사랑을 적을래요
미움의 밭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사랑의 동아줄을 내려 줄 거에요
사랑의 무지개를 타고
남은 세상 살아 보자고
또다시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사랑을 고를래요
미움의 강에서
사랑이 흐르는 넓은 바다로
노래 부르며 노 저어 볼래요
사랑의 뗏목 타고
남은 날 함께하자고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 심는다
「별 하나」전문
그리움을 겪은 사람은 그리움에 젖을 줄 알고, 외로움을 겪은 사람은 외로움을 알며, 사람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사람은 사람을 그리워한다고 했다. 옛 말에 인간의 행복이나 불행은 드나드는 출입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직 사람의 마음가짐에 있어 미움은 사람이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시인은 사랑의 무지개를 타고 남은 세상 살아 보자고 사랑을 선택했다. 그렇기에 가슴에 사랑하는 별을 심은 것은 자신에 대한 엄연한 기대치이다. 우리 인간에게 시는 비탄(悲嘆)일 수도 있고, 희망의 미래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윤혜숙 시인은 어두움에서 밝은 세계를 조망하는 열린 가슴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시인의 몫이자 정신관이다. 여기서 시인은 사랑이라는 시적(詩的) 소재의 대상을 소유화 하지 않고 눈가를 맴돌며 입술의 흔적을 지우고 기대를 위한 기쁨으로 간직하는 고귀한 사랑정신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당신의 소식 들으려
수많은 날을 보내지 못하고
기어코 귀를 열었습니다
가을 하늘 아래 구름 띄우고
근심과 오만 덩어리인 채로
제 이름 다정하게 불러주는 이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아는지요
젊은 날의 우렁찬 목소리
뼈가 드러나도록 푸르게 살아내려는
울리지 않는 전화기 손에 들고
아무도 날아와 앉지 않는 음성
그립다는 말을 가슴에 묻어두고
오늘도 그대 모습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임 계시는 먼 하늘만 바라보며
큰소리로 이름만 몇 번이고 불러 보지만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사랑할 거야
빈 전화기에 혼자 중얼거리며 독백합니다
당신 좋아하는 김치찌개 끓여두고
오늘도 바람에 냄새만 풍겨 놓고
죽어서도 보여주고 싶은 표정이 남은
그리운 당신 소식 들을 수 있을지
내일도 바람 소리에 귀를 열어두고
마음의 거처를 마련할 때까지
나 태어나 다시 그대 곁으로 가려 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전문
슬픔과 불행으로 이어지는 가련한 삶을 누군들 살고 싶어 할까? 그러나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아픔과 고통의 끈으로 이어지는 버거운 삶의 연속이다. 대체적으로 아픔과 고통은 착하고 어진 사람한테 자주 생기는 것을 주변에서 자주 본다.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이다. 우리는 혼자 태어나 잠시 누구랑 어우러져 살다가 결국 홀로인 채로 이승을 하직하고 떠나는 나그네인 셈이다. 그저 잠시 부대끼고 웃고 울다가 가는 것이다. 윤혜숙의 이 시에서 마지막 연에서 ‘오늘도 그대 모습 차곡차곡 쌓았습니다.’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 손에 들고/아무도 날아와 앉지 않는 음성/그립다는 말을 가슴에 묻어두고/ 이 부분에서 절묘하게 시적(詩的) 메타포(metaphor)로 승화하고 있다. 시인은 이미 홀로이며, 홀로가 아니라는 묘한 기대치를 나타내는 이분법(二分法)의 등가논리(等價論理)로 시를 분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새가 노래하는 소리
귀엽게 재잘거리는 소리
둥근 돌의 표정보고
뾰족 바위의 자태에 오르고 올라보니
소중한 것들은 언제나 저렇듯
하나의 평지로 내린다고
어느 날 말할 때가 올 것이다
삼막사 어귀 좁쌀 막걸리 반 사발
된장 바른 오이 한쪽
고사목 하나 적송 하나 여백 주며
긋고 그어 반기는 바람 벗 삼으니
나를 중심으로 하여 어지럽히며
세계를 돌고 도는 취화선이다
솔방울도 꼬르륵 비둘기도 후두두
아기 개미 구경꾼 삼고
흥취 따라 그려보니
새하얀 화선지 위
노래하는 산이 있네
흥에 취한 내가 있네
「흥이 넘치는 시간」 전문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형(形)과 체(體)를 가지고 있다. 하찮은 개미도 형체를 가지고 있는 그것들이 저마다 살아서 숨 쉬는 과정을 살펴보면 참으로 신비하고 아름답다. 그들에게 살아 있기란 불안과 고통의 연속일 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가 보기 좋고 아름다운 것들인지. 윤혜숙 시인이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그림을 그리면서 생명의 기운이 번성할 때 받는 생동감은 아주 진취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친밀하게 다가오는 것은 풍경이 주는 것을 그대로 그리니 자신이 이번에 보여준 그녀의 시적 오브제는 곤충적적일 만큼 원색적이고 자연적이며 리듬이 넘친다. 우리 몸에서 촉각처럼 솔직하고 즉물적으로 열려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지금 윤 시인은 언어의 조합으로 정곡을 향해 살을 날리며 일종의 마스터베이션 행위로 자기 시작(詩作)의 공을 겸허히 말하려고 한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누군가가 물어 온다면
정말 미치도록 삶을
그려 보고 싶다고 말할 겁니다
제발 어떠한 방해꾼들도 없이
하늘이 허락하는
바람을 피우고 싶습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화선지를 덮고 자고
화선지로 얼굴 닦고
붓으로 그리고 또 그리고
누군가 보면 미친 여자라고
손가락질해도 좋을 정도로
열렬히 바람피우고 싶습니다
미치도록 사랑하는 이 다시 받아 준다면
누군가 내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람피우고 싶다고 외쳐 말할 겁니다
「바람피우고 싶습니다」 전문
윤혜숙의 시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시적 모티브로 담고 있으면서도 아주 생소하게 말한다. 이상하게도 다른 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면 진부해지고, 그녀가 말하면 말 내용조차 새롭고 낯선 느낌을 준다. 어쩌면 축 늘어진 일상조차 그녀다운 침착함과 오기 같은 것에 휩싸여 마음에서 갈구하는 이미지가 강물처럼 넘치는 그녀가 지닌 예술의 끼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은 바로 예술의 혼을 불태우는 뜨거운 사색의 통로를 통해 그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며, 그의 시적 추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이 지상에서 사랑이란 가치 보다 더 소중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선 자연의 순리나 신의 섭리도 그렇고, 모든 존재적 가치가 바로 이 사랑의 정신이 근원이 될 것이다. 그것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간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미치도록 사랑하는 이 다시 받아 준다면 바람피우고 싶다’고 외칠 만큼 예술이라는 총체적인 것에 모든 목숨을 거는 모습 그대로 삶을 열정적으로 살려는 본능 때문이다.
이제 다시 사랑의 끈을 잡고
그 사랑을 작품에 쏟아볼까
사랑의 달콤함으로 영글어지는 글과 그림
기쁨과 활기로 엮은 끈에 매달린
슬픈 사랑의 그림자 다 지워버리고
탄생의 사랑 꽃향기와 더불어
오늘은 날 다시 돌아보면서
나 혼자만 유배된 지하에서
햇볕 넓은 지상으로 오른다
「끈」 일부
유배된 지하에서 산다고 생각하는 윤혜숙 시인은 모든 사물을 끈으로 묶으며 생각한다. 그가 살아온 생도 그렇고, 그가 앞으로 찾아 갈 미래의 영혼의 세계까지도 모두 끈에 매듭을 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물을 그냥 막연하게만 보지 않는다. 안되면 다시 풀어 완성될 때까지 심혈을 쏟아내려는 마음 안에 시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시의 생동성을 바르게 붙들고 있는 확실한 시인이다. 결국 시인이 사회나 한 개인의 존재적 가치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독자들에게 환기시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윤 시인은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사유의 세계를 마음껏 유영(遊泳)하면서 생명의 매듭을 풀어낸다. 이것이 바로 그의 시의 메타포의 끈이기에 그것이 철학적 사유든 물리적 사유든, 모두가 그대로 용해되고 연금(鍊金)되어 아름다운 한 편의 서정시로 풀려 나온다. 이러한 그의 뛰어난 서정시의 시적 표현은 그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것과,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끈으로 이어지는 언어의 연금(鍊金)과 조탁(彫啄)에서 비롯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윤혜숙 시인은 그림을 그리는 남 다른 아름다운 마음으로의 접근은 각박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촉촉이 적셔주는 한편의 자연동화이다. 그런가하면 숭고한 삶 속에서 소박하고 아름답게 빚어내는 시이다. 그런가하면 때로는 영혼을 관통하는 몽환적 이미지로 승화하는 근원을 이룬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런 살가운 가족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은 애련함 그것이다. 주변 사물들을 하나도 쉽사리 버리지 아니하고 따스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따스한 가슴에서 표징 된 그의 아름다운 삶들이 너끈하게 배인 것이 인간미학(人間美學) 감동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ㅇ난 엄마랑 같고 넌 아빠랑 같아 / 손발 가락도 닮았다 / 오리궁둥이 걸음도 닮았다 / 내 얼굴을 보아라 똑같다 똑같아 // 힘들고 외롭지만 / 홀로서야 하는 인생길을/여기까지 왔구나// 네 켤레 신발을 다시 신고 / 손에 손잡고 웃으며 나서는 / 부모의 미소를 잊지 말아라 / 오랫동안 함께 할 / 내일을 위해 / 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뛰어보자 (「삶의 자국」중에서)
ㅇ엄마 아빠 힘내세요 /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음성은 / 이국땅에서 그리움 젖은 / 사랑으로 함께 왔어요 // 늘 이맘때면 카네이션 사랑이 / 우리 가족을 지켜주네요 / 핏줄사랑 한 송이 카네이션에 담아 / 서로에게 마음 전해주네요 (「늘 이맘때면」중에서)
ㅇ사랑해 행복해 그리고 고마워 / 아들 없는 사람 서러워 눈 흘길지라도 / 활짝 웃는 아들 때문에 행복눈물 뽑은 날 / 작은 바구니지만 또 한 송이 카네이션 사랑 / 벌어진 내 자궁 속에서 빠져나온 그것 / 모든 외부를 몸속에 품은 내가 / 이 세상 밖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자궁 속에서」끝 부분)
일찍이 아픔의 경험에서 얻은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하여 만들어내는 창조적 상상(創造的想像)으로 말미암아 예술적 이매지네이션의 승화로 문장을 아름답게 소묘하고 있다. 예술은 어떠한 사실적 작품이라 하여도 현실 그대로의 재현이 어렵기 때문에 이매지네이션의 상호작용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인의 정서는 그만큼 섬세하고 그 품이 넓고 다양하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들리는 날 / 내 속에는 너밖에 없어 / 늘 그랬듯이 그렇게도 많은 나를 / 모두 다 뱉어내듯 / 말없이 받쳐 주던 우산 속으로 /그렇게 세상을 건너서 임께 가려 합니다 (「하얀 백합꽃 한 아름 안고」중에서)’
‘아름다움만 표현하는 / 화가가 되겠다고 / 떠가는 구름에 맹세했건만 /살다 보니 세상의 얄팍함만 / 마음 위에 덧칠했어요 (「자화상」중에서)’로 귀결(歸結)시키고 있다는 점을 아마도 독자들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윤혜숙 시인이 펼친 이 시집『몸짓 그리고』에서는 대체로 우리의 보편적인 일상에서 획득한 사물과 정서의 융합(融合)으로 자아를 확인하는 여과(濾過)장치를 읽을 수 있다. 시각적 이미지와 무형물의 사물화에 기여하는 분출한 시간의 흔적이다. 이토록 인간의 심리구조는 전체로서의 미술활동과 문학이 서로 조화된다는 견해가 있듯이 나와 남의 정신이 일치됨을 보장한다. 시인이 제재를 지각하는 자연 세계와의 관계를 인식할 때 수반되는 기쁨이 진정한 시의 기쁨이며, 이 기쁨은 시인의 사랑과 무관치 않다는 이론이 설득력을 가진다. 아마도 윤혜숙의 이번 시집은 인간과 삶의 관계 속에서 빚어진 인간 사회의 감각, 감수성 그 이면에 숨은 인간의 광활한 여러 영역들을 터치한 시편들이 되겠다.
이제 윤혜숙 시인도 단순한 삶의 시간을 따라가다 억지로 일구어 독백이 될 우려에서 벗어난 더 좋은 시를 가지고 다음 시집을 기대하며 그동안 이 시집이 나오기까지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면서 두 번째 시집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대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