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한 산업화에 막혀버린 길 소통의 복원으로 숨길 튼다 | |
[기사일 : 년 월 일] | |
[길따라 울산이 열렸다] 5. 24번국도 성남~우정~태화동 | |
전남 신안서 시작해 울산 성남동 옛 상업은행자리가 종점인 24번 국도. 24번국도를 거슬러 성남~우정~태화동까지 내달리다 보면 도로의 기능을 멈춘지 오래된 구 삼호교에 이른다. 전남신안 출발 24번국도, 성남 옛상업은행 종점 24번 국도의 종점 옛 상업은행. 1914년에 문을 연 울산 최초의 은행. 1999년 합병되기까지 85년간 그 자리에 있었다. 그곳에 24번 국도 종점임을 알리는 진표(眞標)가 있었다. 울산시청에서도 진표가 있다고 알려줬지만 찾을 수가 없다. 행방불명. 울산의 수준 낮은 기록물 보존의식을 나타낸다. 현장에 종점임을 알리는 표식을 설치했으면 한다. 울산의 중심 가로망이 열렸다. 상업은행을 가운데에 두고 서편의 동아약국 앞 사거리-우정삼거리와 동편의 옥교동사무소로 이어지는 동서로 뻗은 길과 동헌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이 중심 도로. 이젠 이 두 길이 겨우 명맥을 잇고 있지만 울산이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일. 과연 몇이나 그것을 알고 있을까. 그 길에 부끄러울 뿐이다. 24번 국도를 거슬러 간다. 옛 상업은행 건물. 헐리고 새 건물을 지었지만 문이 잠겼다. 구도심의 딱한 현실을 상징한다. 이쪽저쪽 건물 가운데 두 곳만 장사를 하고 있다. 발길이 뜸하다. 마음이 무겁다. 근처에 1964년 1월에 설립된 울산상공회의소가 있었다. 83년 12월 남구 신정3동으로 옮겼다. 한동안 증권사가 입주해 있었으나 비었다. 옆 건물은 헐리고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인근 가게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동아약국은 굳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옛날 시끌벅적하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지만 그래도 몹시 반가웠다. 마음을 추스른다. 이곳에 울산 최초의 정류장이 있었다. 차부라 불렀다. 1918년에 울산에도 자동차가 등장했다. 8인승 자동차가 장생포-울산-언양-양산-물금을 오갔다. 이 정류장은 인근 성남동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우정동을 거쳐 이제는 삼산동에 자리잡았다. 시끌벅적 기차역·정류장…이제는 흔적조차 자동차 정류장보다 기차역이 먼저 생겼다. 1921년 10월 25일에 문을 열었다. 현재의 KT성남지점인 옛 울산전신전화국 자리. 일대가 몽땅 기차역 부지였다. 선로는 폭이 좁은 협궤. 울산-경주를 오갔다. 이곳에 15년간 있다가 철길이 광궤로 바뀌고 1934년에 동해남부선이 개통되면서 학성동으로 옮겨갔다. 현재 뉴코아아울렛에서 우정삼거리 인근까지 2㎞에 걸쳐 뻗어있는 아케이드 거리가 기찻길이었다고 토박이 김기석씨가 기억을 더듬어 일러준다. 옛 울산세무서였던 삼성생명 빌딩은 플랫폼, 중부소방서는 대합실이었다고 한다. 전화국 근처 성남동 219-129번지 김씨의 집 앞에는 흔적이 남아 있다. 기차에 물을 공급하던 수탑자리. 철판으로 덮여있지만 지금도 지하에는 물이 고여 있다고 한다. 한때는 동네 식수로도 썼다고 한다. 동아약국 사거리를 지나 50여m 쯤 떨어져 성심병원이 있었다. 한때 환자들로 들끓었으나 구도심의 쇠퇴와 함께 쇠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접근성이 쉬운 곳으로 옮겨갔다. 유료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뒤쪽에 있었던 울산 유일의 울산학원. 지난 시절 뒤떨어진 과목을 보충하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의 과외광풍과는 다른 그런 면학열기로 휩싸였었다. 길을 다시 잡는다. 사거리가 나온다. 서편으론 24번 국도의 우정삼거리 길이 나온다. 남쪽은 학성로와 마주친다. 북쪽은 우정동으로 가는 길. 그 길은 울산초등학교-양사초등학교를 거쳐 오는 장춘로와 마주친다. 길목에 있었던 옛 주택은행은 국민은행으로 바뀌었다. 옆의 성남동사무소는 청소년 문화의 집으로 바뀌었다. 일방통행로인 길을 가운데에 두고 양옆으로 나란히 뻗은 건물은 거의가 옛 모습 그대로이다. 외관만 조금씩 변했을 뿐이다. 간혹 낡은 건물이 철거되고 주차장이 들어섰다. 꽤 넓은 터에 성남공영주차장이 자리잡았다. 구도심을 살리기 위한 방법일 터. 기차역과 차부가 생기자 상권이 자리잡았다. 지금의 성남프라자 일대의 성남 5일장. 인산인해를 이뤘다. 60년대 중반까지 함석지붕의 장옥이 있었다. 화목(火木)시장이 모태. 국민은행이 있는 곳에서부터 우정삼거리까지 뻗쳤다고 한다. 그만큼 큰 시장이었다. 69년에 장옥이 없어지고 건물을 지어 상설시장으로 변했다. 뒤에 성남프라자로 탈바꿈했다. 그래도 뒤편에는 국밥집과 떡가게, 채소가게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우정삼거리 아래 성황당 지금도 대보름 제삿밥 우정삼거리. 이곳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큰 건물이 몇 생겼을 뿐이다. 주유소와 병원과 아파트가 자리잡았다. 병원 곁으로 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우정지하차도가 지난다. 삼거리 못 미쳐 북쪽 골목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우정동 성황당이 있다. 울산의 수호신 계변천신을 모신 제당. 수령 150년의 강정마을 당산목 회화나무도 자라고 있다. 지금도 울산의 번영과 시민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우정동 45번지 김용길씨 등 우정동 강토회 회원들이 정월대보름날에 제사를 지낸다. 삼거리 위쪽 길가에 효자 송도 선생 정려비각이 있었다. 동헌으로 옮겼다. 삼거리에서 100여m 떨어진 지점에서 강변도로와 두 길이 만난다. 이곳에 하늘을 찌를듯한 고층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도시경관을 해친다. 우정동의 길 이름에 붙은 우암길은 이곳 앞 태화강에서 연유했다. 일제가 태화강 제방을 쌓기 전에 소머리 형상의 바위가 있었단다. 우암(牛岩). 이제부터 도로가 넓어진다. 울산 남북을 연결하는 태화교가 있고, 사방으로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뻗은 길이 모두 이곳만 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으니 병증이 깊어질 터. 북쪽에 버스터미널이 있었다. 성남동에서 70년대초에 옮겨왔다. 옥교동과 성남동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우정동이 신흥 주택지와 상업지역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터에 가속도가 붙었다. 본격적인 상업지역으로 바뀐다. 도시화에 따라 68년 설립된 뒤 92년까지 24년간 가동되던 선경직물 공장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섰다. 상승작용을 했다. 그러나 길은 제자리 걸음을 걷게 했다. 동맥경화. 90년대초에 버스터미널이 삼산동으로 옮겨갔다. 긴 수렁에 빠졌다. 막히면 뚫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한 탓이었다. 길이 병들면 도시도 병들게 마련. 터미널 자리엔 대형할인점이 들어서고 아파트도 지어졌다. 다행인 것은 우정동을 관통해서 길이 뚫린 것. 중국 자매도시 이름을 딴 장춘로. 숨통이 열렸다. 다시 부활을 꿈 꾼다. 태화교 앞 사거리를 지난다. 이전에는 오르막길. 울산 상징 태화루가 복원된다. '태화'란 '울산'에 다름아니다. 태화루 주변에 울산 8경 가운데 4경이 몰려 있었다. 코흘리개 단골소풍터 태화루 복원 기쁜소식 태화루와 장춘오, 오산대밭, 은월봉이 그것들. 태화루를 주제로 한 31수의 노래도 전해져 울산의 시가문학을 풍성하게 한다. 예식장 건물이 헐리고 있다. 50~60년대에는 아름드리 벚꽃과 소나무가 우거져 소풍처였다. 중구의회 박문태 부의장도 소풍을 다녔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곳 벼랑 아래가 그 유명한 용금소. 맞은편 옛 태화동사무소 곁에 200년생 노거수 이팝나무가 자라고 있다. 울산의 사직단이 있었다고 한다. 고을 원이 울산의 번영과 주민의 안녕을 빌던 곳. 울산의 정신적인 지줏터. 제문을 기록한 사직단홀기를 울산향교 이세걸 전교가 보관하고 있다. 1981년 6월에 문을 연 동강병원이 나온다. 77년 구도심 옥교동에서 개원한 고려병원이 전신. 이곳 사거리에서 두 길로 나뉜다. 곧장 가는 길이 국도이고 왼쪽 길은 태화동 불고기단지로 들어가는 길. 이곳에서부터 오산대밭까지 드넓은 들판이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에코폴리스 울산의 상징물. 동강병원 옆 서편이 태화사가 있었다는 반탕골. 이곳에서 보물 제441호인 태화사지 12지상부도가 나왔다. 이전에는 30~40가구가 있었다. 김해김씨와 밀양손씨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뒤섞여 혼란스럽다. 다시 오르막이 나타난다. 오른쪽이 신기마을. 드문드문 인가가 있었다. 야산이 아파트촌으로 바뀌었다. 근처에 울산이 본관인 흥려박씨 시조를 모신 서원이 있다. 학산서원. 시조인 고려개국공신 장무공 박윤웅과 네 분을 모셨다. 맞은편 마을이 장승백이. 인가라야 40여채 밖에 없었다. 대부분 밭과 야산이었다. 이제는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빼곡하다. 울산공단이 활기를 띄자 70년대 이후 주택단지로 변모한 것. 신기사거리를 지나면 남북으로 흐르는 명정천을 만난다. 하마천이라고도 했다. 비좁은 자갈길 2차로 국도가 지나갈 뿐 길 위쪽은 야산과 밭이었고, 아래쪽은 논이었다. 아래 들판은 하마들로 불렸다. 80년대초 공단주민 이주단지가 되면서 주택지로 바뀌었다. 아래쪽 강변길을 따라 불고기단지가 됐다. 동강병원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오면 이곳과 마주친다. 길 북쪽에 82년 학성동에서 옮겨온 학성여중이 자리잡고 있다. 서쪽으로 나가면 울산제일중학교가 나온다. 뒤편에는 중앙고등학교가 자리잡았다. '안타까운' 구삼호교 근대문화유산 지정 보존 서쪽을 향해 계속 나아가면 다운사거리가 나온다. 북부순환도로와 만난다. 부산에서 경주로 가는 7번 국도의 대체우회도로. 곧장 가면 다운동이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24번 국도의 삼호교. 삼호교가 셋이다. 가장 오래된 다리는 가끔 사람이 오갈 뿐 기능을 멈춘지 오래. 옛날에는 7번과 24번 국도를 이어주던 다리.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길이 생명체임을 다시 인식한다. 길이나 사람이나 제대로 보살피고 원기를 불어넣어줘야 목숨이 길어질 터. 길에서도 생명사상을 느낀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잠시 숨을 고른다. 삼호마을이 지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