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의 시인들|박장희
공짜로 팝니다 외
―파블로 피카소 <꿈> 1973
피카소 프리즘을 연모해 거시기 보라에 데어 생긴 화상, 저 거시기 보라 속에 불같이 뜨거운 유리 가시가 들어있었다니, 그 상처 색종이 꽃가루처럼 공중으로 날린다 미처 다 날리지 못한 감정 고층 빌딩 유리 벽에 매달려 얼어붙는다 빛살에 관통당하자 무지갯빛 전신을 휘감다 비에 젖은 휴지처럼 흐물흐물 흘러내린다 바람 불자 흐트러지며 찢어진다 어차피 언젠가 잊혀질 거시기 보라, 여윈 해초처럼 팔 늘어뜨리고 치렁거리는 치마처럼 펄럭이며 울부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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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틀 위에 100번 이상 구운 거시기 보라
잉어빵같이 전신을 데운 거시기 보라
트리플 악셀처럼
빙그르르 돕니다
빨강 노랑 알알이 목걸이
젖꼭지에 얹힌 이야기
무릎이 다 까지도록 암호같이 다진 시간
늑골 사이사이 부챗살로 피어나
목덜미를 타고 턱선을 올라
입술을 물고 이마 위로 떠오른 거시기 보라,
송두리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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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뉴런
홀로 노숙하던 민무늬 그림자
오지 않는 난로를 기다린다
바닷가 낡은 의자에 앉아
무늬 밖에서 꿈꾸던 난로를 찾는다
처음 밀고 당긴 왕래, 거대한 루비가 깨어진 듯, 물결무늬 주름 잡힌다 물결 주름 열릴 듯 말 듯 닫힌 조리개 열기의 호흡 찾아 천 리를 뒤척인다
다시 밀고 당기자 크기와 깊이가 다른 열기의 물결 주름 출렁이며 이완된 시간의 불을 지핀다 그림자 거울이 되어 다녀간 열기 들여다보며 결을 가다듬는다 삐걱거리는 의자로 밀고 당기면 근육 뒤틀리지만 소리 없이 안착한 물결 같은 열기 서로 허리 껴안으며 주름잡는다
또다시 밀고 당기자 바람이 사막에 그림을 그려놓은 듯, 웅숭깊은 도량을 베푼 듯,
그윽한 왕래 횟수로 물결 같은 열기 주름 완전한 모양을 결정한다 왕래하면 할수록 중력과 가속도에 따라 다르게 가다듬은 물결 같은 열기 먼 길 서로 구부린 천사의 눈빛,
박장희
2017년 《시와시학》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울산문학상, 함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폭포에는 신화가 있네』, 『황금주전자』, 『그림자 당신』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