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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종주를 이야기할 때면 흔히 설악산 공룡능선, 지리산 종주, 덕유산 육구종주를 자랑삼아 이야기하지요.
이 세 곳 종주를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 해 보면 설악산은 미시령~한계령 종주, 지리산은 화엄사~대원사 종주, 덕유산은 신풍령~육십령 구간을 언급합니다.
그만한 이유가 거리도 거리지만 역종주에 따른 난이도가 일반 종주에 비할바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설악산은 희운각에서 소청을 올라서는 구간의 급경사와 대청~한계령까지 계속되는 돌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생각하지 못할 고통의 연속이지요.
지리산은 어떻구요. 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 내리막이라고 하염없이 너덜너덜 이어지는 너덜겅 바위를 걷다보면 무릎이 누구의 것인지 알수없는 기분이 듭니다.
덕유산 또한 이름만 부드러운 무룡산이지만 동엽령에서 시작되는 4km의 오르막과 마지막에 서봉과 할미봉에서 나타나는 계단은 급경사와 함께 끝날 줄 모르게 이어지는 길이 집에 가고 싶어집니다.
이 모두 체력이 한계에 다달은 시점에 경험하는 인내심을 시험하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오래 기억되는 구간입니다.
저는 이번 구간 공지를 보면서 언제 또 완주할 수 있겠나 싶어 순전히 완주에 목적을 두고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시작은 가장 후미에서 컨디션을 조절해 가며 차가운 새벽공기가 더 차가워지도록 천천히 걸었습니다.
도로가 차단되어 차도로 걷기 시작한 얼마 후 오소리 한마리가 도로 한복판에 엎드려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가도록 움직임이 없자 일행이 건드려보기도 하고, 소리를 내보기도 하지만 꼼짝하지 않습니다.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야 할 시기인데 도로에 쓰러져 있는 모습에 이상하다 생각하고 살펴보니 코에 김이 서려있고 꼬리부분에 털이 빠져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마도 노쇠화가 진행되었거나, 담비 등 상위 동물에게 쫓기다 다친 듯 해 보였습니다.
생로병사 현장을 확인하는 순간! 늦가을 새벽공기만큼이나 하늘엔 북두칠성과 오리온, 전갈별자리까지 초롱초롱한 별빛이 죽음을 앞둔 오소리 모습만큼이나 차갑게 느껴졌지요.
산행길에 접어들고 얼마가 지나자 거친 숨소리가 숲속으로 퍼져나갑니다. 허박사님과 고든친구님 발걸음은 흐트러짐없이 걷고, 건너편 산능선을 올라가는 선두의 랜턴불빛이 수km는 앞서있는 듯 아득해 보이자 괜히 마음이 급해집니다.
앞서가던 늘보님이 거친 숨을 들이쉬며 뒤로 빠지고, 등산로가 아닌 숲속에 커다란 불빛은 누군가 이른새벽에 생리현상을 해결하는가 봅니다. 뒤로 빠지던 고든이 "형! 나 렌턴이 없어요."라며 다급하게 나를 불러 세우더니 앞장서서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연하님과 고든님이 오늘은 왜이리도 힘드냐며 투정을 합니다.
어디에서 탈출하면 되느냐! 석산고님은 어디까지 갈거냐! 택시부르려면 4명을 뭉쳐야 하는 것 아니냐! 등등 오늘따라 질문도 많습니다.
갈미봉을 올라서자 날이 밝아옵니다.
대봉쯤 도착하면 일출을 볼 것 같다며 광진님이 대봉에서 쉬어가자며 채근을 합니다.
대봉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기다려 보지만 동이 트고도 해가 올라올 줄을 모르네요.
고든친구와 지봉을 향해 뛰다시피 걷다 결국 못봉에서 일출을 맞이합니다.
이글거리듯 솟아나는 일출은 한결같습니다.
다만, 볼 때마다 다르다고 느껴지는건 태양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이겠지요.
잠시 전의 오늘과 지금의 오늘이 다르듯 말입니다.
백두장군님이 친구와 함께 앞서갑니다. 친구는 자신이 없어서 신청을 안하려 했다는데 역시 힘들다며 자꾸만 뒤로 쳐집니다. 그것마저도 기다려주는 백두장군님 역시 친구가 제일입니다. 그런데 나의 친구는...
해가 떠오르자 허기가 몰려옵니다. 앞서가던 송재길, 이연숙님을 비롯한 일행들과 다른 산악회 대간 무리가 뒤섞에 귀봉에서 식사를 합니다.
추워지는 때라 보온병에 온수로 밥을 말아 먹었습니다. 벌써 그런 날이 되었네요.
이어서 도착한 후미그룹이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는 일어서 백암봉을 향해 먼저 떠났습니다.
백암봉에 다달으자 전재산대장 베낭만 덩그러이 지키고 있을 뿐... 향적봉을 다녀올 요량으로 달려간 모양입니다.
선두로 가던 장석파, 새날, 눌랑, 아쇼카, 알도령님 정도가 갔으려니 했는데, 알고보니 그렇지도 않았더군요.
백암봉에서 사위를 둘러보니 새벽에 불어오던 바람이 모든 장애물을 치워버린 듯 청명한 하늘이 지리산 능선과 천왕봉 그리고 가야산를 눈앞에 그려 놓습니다. 보기에는 완만해 보이는 오늘 가야 할 쭉뻗은 능선이 예뻐보였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무룡산을 바라보자 마음이 급해집니다. 단숨에 동엽령에 도착하니 함께오던 이연숙님을 비롯한 일행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후부터 이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동엽령부터 무룡산까지 나비님, 허허님, 백두장군님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습니다.
남덕유산에서 진행하는 산객들과 마주치며 인사하고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오르고... 육구종주 때는 힘들다 생각하지 못했던 무룡산이 역주행을 하니 끝없는 오르막이 계속됩니다. 4km나 계속된 오르막! 다리에 전기가 흐름 때쯤 도착한 무룡산 정상. 남덕유산과 서봉이 눈앞에 우뚝 펼쳐진 모습이 장관입니다. 아니 아득해져 옵니다.
삿갓재대피소에 도착하니 CPR교육을 합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심장마비를 예방을 위해 시범과 교육을 진행중이었습니다.
산중에서 왠 CPR? 하지만 산행중에 일어나는 심장마비 그리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나타나는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교육한다며 시범을 보입니다. 좀 쌩뚱맞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꼭 필요한 일입니다.
삿갓재까지 20km를 걸었습니다. 준비해간 여벌의 양말로 갈아신자 나비님이 샘을 냄니다. 장거리 산행하는 요령이라고 하자 다음부터는 자기도 준비해야겠다네요. 또 이렇게 산행하는 요령을 하나 터득합니다.
삿갓재대피소부터는 암릉과 가파른 오르막이 남덕유산까지 계속됩니다.
우리 네사람은 누구랄것도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무 생각없이 걸었습니다. 삿갓봉이 위험하다며 접근금지 띠를 둘렀네요. 정말 행복했습니다. 월성재까지 3km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남덕유산까지 또 1.5km라니 정말 끔직한데 가야지요.
남덕유산 삼거리에서 나비님과 백두장군님을 정상으로 내몰고 (허허님과 저는 지난 겨울에도 다녀갔다는 핑계아닌 핑계와 대간 때마다 남덕유산은 갔었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상으로 내 몰았지요.) 저희는 서봉으로 향합니다.
남덕유산과 서봉 사이 1.5km 그리고 그 사이에 얕으막한 오르막 연이어진 서봉 2단으로 구성된 수직계단.
허허님이 앞서서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저는 졸졸 뒤따라 오르기를 한참. 계단이 끝날 쯤 또 계단하나가 남았다고 착각하며 "더는 못가~~~!"라고 외치는데 솔향아님과 오원종님이 계단아래에서 삐죽히 얼굴을 내밉니다.
서봉 다왔는데 뭘 못간다고 하느냐는 솔향아님 퉁박에 다온거냐며 안심어린 눈길을 서봉정상으로 돌렸습니다.
서봉에서 전재산대장에게 6명이 있다고 통화하는데 5명이 삿갓재에서 탈출했다고 전해 옵니다.
누구 누가 탈출을 했을까? 서로 가늠해보며 이야기 해 보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란걸 금방 깨닫습니다.
삿갓재까지 20km 그리고 황점마을까지 4km 도합 24km만으로도 만만찮은 종주거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일행을 배려하고 후미대장의 진행을 돕기 위한 고육지책임을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서봉 내리막길이 수직 암벽입니다.
나비님이 날지 못하는 것이 원통한듯 거의 기다시피 내려갑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석산고님은 내리막은 바르죠?" 제가 그랬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나비님만 빼고 다 그래요!" 저희는 또 한바탕 마음을 풀어 놓습니다.
서봉에서 육십령까지 약7.5km 건너편 육십령 위에 비닐하우스가 보입니다. 거리에 비해 위험하고 거친 하산길이 힘겹습니다.
오히려 더 다리에 힘을 들여야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는 하산길입니다.
할미봉이 가까워지자 파란색 버스가 육십령 휴게식당에 주차되어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다 온 것 같은데 뒤에서 이어지는 소리 소리 소리들!
아쇼카님과 알도령님이 나타났습니다.
할미봉쯤에서 만날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더 빨리 쫓아왔네요. 역시 대단한 분들입니다. 아직도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찌하고 두 분만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쇼카님 曰 : 우리 포함한 네 사람만 향적봉에 다녀왔다네요.
장석파, 새날, 눌랑님이 약한 모습을..... 으음~~~ 그럼 못써 용!
할미봉 입구에 올라섰습니다.
암단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던군요. 깨끗하게 수리정비된 계단.
북진할 때 나무계단이 썩어서 파손되어 있던 모습은 단정하게 정비되어 있었지만, 올라가야하는 저희로서는 힘들기만 할 뿐입니다.
할미봉 정상석은 빨갛색으로 할미봉이라고 아이고 죽는 줄 알았네요. 할머니~~
알도령은 할미봉 바위가 멋지다고 그곳을 다녀오겠다고 또 옆길로 새네요.
이제 산행하면서도 위험한 바위위에 올라선다거나 사진찍으려고 옆으로 샌다거나 하는 일을 자중하며 다니는데 정말 조심스런 산행이 되어야겠습니다.
육십령에 도착하고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나니 긴장이 풀리고 다리에 쥐가납니다.
먼저 도착한 선두 이정동님, 권오승님, 새날, 장석파, 눌랑님과 탈출조의 모습이 행복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뒤이어 도착한 후미도 예상하지 못한 분들이 완주를 했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힘들어 하신 김대감님, 메아리2님은 향적봉까지 다녀오신 것인지 유닌히 힘들어 하시고, 힘들어서 완주를 못할 것 같다던 연하님과 백두장군 친구분이 완주하시고, 넬라님과 허박사님 그리고 후미를 이끌어 오신 푸른산님이 씩씩해 보입니다.
24km를 포기하지 않고 황점까지 도착한 늘보님, 고든님, 고든친구님, 송재길님과 보호자 이연숙님 모두 오늘은 이렇게 행복한 하루였네요.
여러분 오늘도 이렇게 한 점을 찍고 백두대간을 이엇네요.
여러분과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다음달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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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생한 산행기~~
참 잼있어요..접근금지에 행복해하시고~ㅎ
가고싶었던 코스인데....
힘든구간 모두들 수고많으셨습니다~^^
그러게 따라 오시지 그랬어요.
저도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길입니다.
앞으론 망설이지 말고 함께해요.
산행기 읽는 동안 다시 한번 산행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힘든 만큼 추억이 되어 돌아오리라 생각됨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대간정맥 산행에 참여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