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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Rothko American Painter Abstract Expressionism 1903.9.25. ~ 1970.2.25.
Black on maroon 1959 oil on canvas
‘비극적 서사의 예술적 승화’ 바로 그의 삶이자 예술이 아닐까 한다.
‘ 비극이라는 감정은 그림을 그릴 때 늘 나와 함께 했다’
그는 그의 고백과 함께 그가 느끼는 비극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 앞에 서면 할 말을 잃게 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색면, 관람자를 흥분시키며 감동으로 몰아가는, 모든 감성을 압도하듯 깊고 무거운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자기방식대로, 고집스럽고 집요하게, 괴팍하고 비상식적으로 풀어나간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의 자존심 Mark Rothko. 고뇌 속에서 치열하게 온 열정을 쏟아 부었던 그의 작품들.
그의 작품 앞에서면 어둡고 단순한 색의 요동치는 생명력과 거스를 수 없는 숭고함에 경건해 지는 이 마음, 어쩔 수 없다.
Blue, Orange, Red 1961
1950년경 Mark Rothko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여 ‘단순한 표현 속의 복잡한 심정’이라는 그의 이상을 실현하여 ‘색면 예술’이 시작 되었다.
Earth and Green
Mark Rothko의 작품은 1957년 "무제"에서 볼 수 있듯이 1950년대 후반부터 상당히 어두워졌다. 1958년 무렵에는 화려한 색상 대신 붉은색, 갈색, 고동색, 검은색 등 어두운 색을 선택하여 사용하였고, 특히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몰두했던 벽화작업에서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Untitled 1958 Kawamura Memorial Museum of Art Japan
Mark Rothko는 추상 이미지가 인간사의 근원적 속성을 직접 반영할 수 있고, 회화가 비극, 환희, 숭고함과 같은 영원한 주제들과도 때로는 맥을 같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Black on Maroon 1959
그는 그림의 제목을 붙이는데 있어 숫자나 색깔로 작품을 표시했는데, 그 이유는 단어의 의미가 관객의 마음과 상상을 마비시키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No. 19 1958 oil on canvas MOMA(Museum of Modern Art) NY USA
붓 자국이 거의 없는 그의 작품은 어떤 주제를 표현하는 것도 거부하고 있다.
No. 14
한 비평가가 그의 작품을 혹평한데 대해
“나는 내 작품에 관하여 변호할 의도가 없다. 내 작품은 스스로를 방어한다.”
Mark Rothko는 그의 작풉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았기에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작품이 스스로 이야기 하니까..
Black on Maroon 1958
Mark Rothko는 잭슨 폴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되어 왔으며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화가로 자리매김 하였다.
Blue Green and Brown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No.16 (Red, Brown and Black) 1958 oil on canvas
Mark Rothko는 그의 그림 앞에 서는 모든 감상자에게 자신을 몰입시켜 몰아의 경지에 들어서고 신비적 공허와 숭고를 체험하게 한다.
Untitled 1958
Ravenda and Mullberry 1959 oil on canvas
Mark Rothko의 Seagram 사건
1958년 Rothko는 뉴욕의 Park Avenue에 있는 주류회사에서 새롭게 지은 Seagram Biulding에 장식할 벽화를 35000달라에 주문 받았다. 지금의 250만 달러가 훨씬 넘는 상당한 거액이었다. 그 당시 최고의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최고급의 빌딩에 걸맞게 최고의 화가였던 그에게 의뢰한 것이다.
자신의 그림을 많은 사람에게 경험을 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Rothko는 모든 열정을 쏟아 부으며 열심히 작업을 하여 30점을 완성했지만 호화판 레스토랑 ‘Four Season'에 오는 많은 손님들의 허영심이 자기 그림을 가치 없게 만들 거라는 염려 때문에 결국 계약을 파기했다.
250만 달러의 큰돈도 그의 예술 속에서는 전혀 유혹이 될 수 없었다. Rothko는 자기 작품의 순결성을 지키고, 영합을 마다함으로써 화가의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작품의 가치는 더욱 치솟게 되었고 Rothko 작품은 작품이 구매자를 결정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래서 더욱 유명해진 ‘Seagram Mural(씨그램 벽화) Series’이다. 유명한 몇 점을 소개 한다.
Seagram Mural Black on Maroon 1958
Seagram Mural Series 1959 oil and mixedmedia
Seagram Mural 1959 National Gallery of Art
Seagram Mural Section 3 Black on Maroon
Seagram Mural Section 4 1959
Seagram Mural Section 3 Black on Maroon 1959
Seagram Mural for End Wall Untitled 1959
Seagram Mural Section 1 Untitled
Seagram Mural Section 4 Red on Maroon 1959
Seagram Murral No.6 Black on Maroon 1958
Seagram Mural Section 4 Red on Maroon 1959
Black on Dark Sienna on Purple 1960
No.3 (Bright Blue, Brown, Dark Blue on Wine) 1962
No.8 Gray, Orange on Maroon 1960 Oil on Canvas
Untitled 1962 Leeum Gallery of Art Seoul Korea
이작품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즈음의 Rothko는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의 건강상 문제 등으로 인한 심한 우울증으로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였다.
Rothko의 작품은 말년으로 갈수록 화면은 점점 어두워져 갔고 암울하고 사색적이며 절제된 작품들을 남겼다.
No.7 1964 327 x 400 cm
No.10 Brown Black Sienna on Dark Wine 1963
No.14 Horizontal White over Darks 1965
Untitled 1962
No.6 1964
"만일 내 그림 앞에서 감정을 터뜨리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순간이 바로 내가 그림을 매개로 그들과 소통한 순간이다."
Rothko의 회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실존의 비극과 이것을 이겨내는 숭고한 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다.
Untitled 1969
Black Form 640 x 640 cm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종교적 경험을 하는 사람들로서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그런 경험을 한다.”
그는 인간의 감성문제, 즉 인간적 고뇌나 비극, 희열, 그리고 운명 등을 그의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했으며, 사람들과 함께 종교적 체험까지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Black Red and Black 1968
붓 대신 스펀지를 사용하기도 한 Mark Rothko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신비스런 느낌을 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유화 9000여 점, 좋이 작품만 2500여점이라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겼다.
United 1968 Private Collection
Untitled 1969 Private Collection
Rothko가 생애 마지막에 그린 그림들은 고동색 혹은 검은색과 회색의 색면으로 거의 이루어져 있다. 내면에서 요동치는 우울, 고립...고독이 표현이 아니었을까!
Untitled 1969 Private Collection
Untitled 1969 Tate Modern Art London UK
Untitled 1969 Tate Modern Art London UK
Untitled 1969
No.8 229 x 300 cm oil Acrylic and Mixed Media
말년의 Rothko는 가족에 대한 애착, 불안과 신경쇠약, 우울...심적 고통으로 명예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경쟁 심리의 질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자살이라는 절박한 수단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만 그 후 그는 더 유명해져 로스코의 작품에 대해 "초월적 힘을 가진 색채"라고 평하기 시작했다.
No.14 1960 290.83 x 268.29 cm
굉장히 큰 그림을 주로 그렸던 그의 그림은 압도하는 깊고 경건한 감동에 그 어떤 종교벽화를 못지않은 숭고미가 느껴지게 한다. 그가 말년에 심적 고통과 함께 파고들었던 예술세계가 함축된 때문이 아닐까.
Untitled (Brown and Gray) 1969
Rothko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자신의 회화를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직시하고 실존과 마주하며 현세의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절대적인 영원에 도달하는 체험을 제공하고자 했던 그의 예술세계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숭고의 예술’이라고 한다.
Untitled 385 x 500 cm
무엇보다 로스코의 진수는 역시 후반기에 보여주는 색면추상이다.
“회화를 음악과 시가 지닌 통렬함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싶다”고 되뇌었듯 말년으로 갈수록 일체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아름답고 영혼을 울리는 화폭을 빚어냈다.
그의 추상화는 간결한 수평구도 속에 여러 겹 칠한 색면이 시적이며 종교적이다. 절대와 순수를 상징하는 그의 그림은 인간의 한계와 영원성의 문제에 전념한 작가답다.
No.8 Black form paintings 1964 150 x 150 cm
많은 사람들이 Rothko 예배당에 앉아 그의 작품을 한없이 들여다보다가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Mark Rothko Chapel
Rothko는 ‘명상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의 작업실에서 본 Seagram Building을 위한 벽화에 매료되었던 두 사람, 즉 휴스턴의 미술품 수집가와 세인트 토마스 가톨릭 대학교 미술대학장이 1965년 초 Rothko에게 대학교의 예배당을 위한 작품으로 커다란 벽화연작을 주문하면서 25만 달러를 내놓았다.
Rothko는 신도들이 벽화로 둘러싸이게 되도록 성당 모양과 비슷한 팔각형의 토대로 하고 성당 전면에 자신의 그림을 배치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구조고 성당 중앙의 천장으로부터 은은하게 빛이 떨어지도록 했다.
어두운 색조의 세 점의 3면화와 다섯 점의 개별 작품으로 이루어진 14점의 대형 그림이 걸린 예배당.
그 결과 그 예배당 안에는 종교적 상징물 대신 그의 그림이 걸려 있는 독특한 예배당이 세워진 것이다.
Rothko Chapel
휴스턴 성당은 Rothko가 자살한지 약 1년 후에 공개 되었다. 휴스턴 성당 작품의 절반은 단색처리하고 나머지 절반은 윤곽선이 선명한 검은색 사각형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전에 작업했던 형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
로스코는 생의 마지막 2년 동안 이 어두운 색채실험을 계속했는데 예배당벽화의 음울한 분위기는 로스코 말년의 심각한 우울증과 외로움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미술사가 바바라 로즈는 Rothko 성당을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과 니스 생폴 드 방스의 마티스 성당에 견주며 “이들 성당에서는 그림들이 내부로부터 신비스럽게 빛을 발하고 있는 듯 보인다.” 라고 했다.
성당 봉헌식에는 각계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에서 추기경이 교황대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창조적인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려 할 때마다 진정한 예술작품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감춰져 있으며, 고집과 용기에 의해서만 화가는 위대해 진다”
세인트 토마스 가톨릭 대학교 미술대학장의 봉헌사이다.
Mark Rothko는 고집과 용기로 영원한 예술의 안식처를 얻은 것이다.
작고하신 한국의 김환기 화백이 뉴욕시절, Rothko의 작품을 보고 무척 감동하여 그 역시 점열 화픙의 적막한 우주공간의 성좌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Rothko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그 슬픔을 일기에 남겼다.
‘침잠한 시기를 지나고 지나서 안으로부터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을 맞이하였다면 더 고귀한 경지가 열렸을 터인데...’
Mark Rothko(1903~1970)
라트비아 태생의 미국화가. 예일대에서 철학, 심리학, 경제학, 물리학 등 여러 분야를 공부했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학자금이 지원되지 않아 가난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하고 뉴욕으로 이주하여 독학으로 그림 작업을 하면서 색면 추상의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 낸다.
큐레이터 캐서린 커의 글을 인용하면, Mark Rothko는 가족에 대한 애착, 불안과 신경쇠약, 우울... 명예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질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최고의 찬사를 받던 앤디 워홀이나 잭슨 폴록 같은 동시대의 경쟁자들 사이에서 정서적으로 힘들었던 그는 생의 50년간의 힘겨웠던 가난함도 끝난 말년에 최고의 명성과 부도 얻은 그였지만 67세의 원숙한 시기에 결국 자신의 손목을 그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생을 마감했다.
그 슬픔의 깊이는 이리도 어두웠을까. 그의 검정은 깊고...깊고...또 깊다. 캔버스의 화면을 모두 검정으로 서걱서걱 채워 넣었을 때의 그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심적 고통 때문에 더 치열하게 매달려서 그렸을 듯한 후기 작품들과 함께 그 많은 양의 작품과 대 걸작을 남긴 한 화가의 삶. 죽음과 무를 향했기에 그의 삶과 죽음은 처절하고 슬프고 어둡게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가 종교적인 인물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그림 역시 종교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럼에도 Rothko의 작품은 깊고 무언가 가득 찬 충만감 같은 것, 쉽게 범접하지 못할 경건하고 영원한 침묵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숭고하고...그래서 예배당과 어울리는 것 같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필히 가서 그 교회 한 가운데 앉아 그의 영원한 침묵의 깊은 영혼에 빠져 들고 싶다.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의 이 가득한 마음도 함께....!
Boracay 에서
2013. 6.24. 편집 songbird
그래도 무언가 내가 해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솟구친다. 하지만 지난 날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올리며 고동치던 설레임과는 다른, 진지하고 경건한 마음이다.
엄숙하고 경건함으로 나를 압도 시키는 그 깊이와 무게. 할 말을 잃고 기도하듯 진정한 마음으로 그의 영혼에게 깊은 존경과 함께 더 가까이 닥아 간 희열과 설레임을 가득 전하고 싶다. 그는 영원히 내안에서 빛을 발하며 살아 숨 쉴 것이다.
참 행복하다. 한 위대한 영혼과의 대화 같았던 많은 시간들.
혼자 진지하고, 혼자 뜨거웠고...마구 설레었다.
그럴 수 있었음에 더욱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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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녕하세요 송버드님 ^^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때 행복하고 눈이 반짝 반짝 빛나고 그러잖아요.
아마도 이포스팅을 올리시면서 송버드님의 눈은 빛나다못해 레이저광선이 나오진 않았을까요 ㅋㅋ
덕분에 전혀 모르던 rothko 의 작품이 눈에 들어오고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nina 님.
오셨나요?^^
반가워 맨발로 뛰어나가 맞는 기분이네요~.^^
주시는 고운 글에
제가 더 감동을 받습니다.
따뜻이 전해오는 고운 마음을 느끼면서...
나누는 기쁨에 감사를 드리면서요~.^^
그랬어요.
같은 작가를 두 번씩이나 포스팅한다는 게 무리기는 하죠.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먼저 웃고요,ㅎㅎ...
알면서도 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고
정성 드려 했건만
처음엔 무언가 빠진 듯, 부족한 듯, 잘 못된 거 같아
마음에 안 차서 다 지우고는 다시 수정, 보완한 저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오랜 시간을 붙잡고 씨름하며
이래 고치고 저래 또 살피고...‘이만하면...’ 하는 생각이 들 때까지...
그제서야 올렸던 저입니다.
별 소릴 다...잘 이해 해 주실 것 같아서...^^
그리고 나서야 혼자 기뻐서 편하게 잠이 들었지요.
두 번을 다루었다는 생각보다는
잘 했다는 뿌듯함과...더 가까워진 로스코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의 ‘Seagram 벽화’ 연작하고
후기의 그 어둡고 깊고 검은색 투성이의 마지막 작품들만 올리고 싶었지요.
그의 눈부시게 살아있던 영혼의 ‘Seagram 벽화’와
말년의 그의 절실했던,,,,몸부림 같았던 간절한 기도 같은 검은 그림만....
그의 암울한 삶의 표현이었으니까요.
저의 생각이지만...작업하면서 같이했던 시간이
저를 그렇게 느끼게 합니다.
울고도 싶고...제가 여려가지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검은 색으로 칠할 때의 그의 심정이...혼자 별 생각을 다했지요.^^
좋아한다는 마음은
모두를 같이 느끼며 이해로 품어 주는 거, 맞죠?^^
결국 시각적으로 지루함으로 보일 것 같아
다른 후기 작품도 같이 올렸습니다.^^
‘Seagram 벽화’는 볼수록 좋은 걸요.
단순한 붉은 색과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이루는 검은 빛의 띤 다른 모양의 사각들.
모두가 비슷하다고 그냥 스치듯 쉽게 보기 쉽죠.
하지만 하나하나를 볼 때
그 오묘하게 빛나는 깊은 울림이 저를 감동시킵니다.
연작의 특성상 비슷할 수밖에 없지만
비슷해서 더 좋은 조화 속에
하나같이 다른...‘단순’이라는 말이
너무도 멋지고 훌륭하게 다가오는 그의 그림이지요.
말이 없으면서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
보면 가슴 설레고 환희로운 기쁨입니다.^^
제가 그렇게 좋아해요,^^
nina 님께서 익숙해지신다니
얼마나 제가 기쁜지요.^^
기쁜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마음을
다 털어 보이며 제가 이렇게 즐거워합니다, nina 님^^
이렇게 쓰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저의 즐겁고 행복한 마음 모두 드립니다.^^
로고 들어간 사진 다시 보셔요.^^
얼마나 그의 그림이 감동으로 크게 닥아 오는지를...
그림들이 얼마나 큰 울림으로 앞도하는지...^^
이렇게 맨발로 뛰어나와 반겨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
나이가 들어서 음악과 미술을 이야기할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는것이
그리 흔한일이 아닌데 그런 큰수확(?)을 이곳 아트힐에서 얻은것 같네요
다시한번 그림들을 보면서, 아직 감상까지는 아니지만...
무엇이 송버드님으로 하여금 열광하게 하는지 조금은 알수 있을듯합니다.
절제된 표현, 내재되어있는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 simple is more...(???)
저역시 주위 사람들에게 음악을 얘기하거나 직접가봤던 오페라 뮤지칼 음악회를 이야기할때는
제눈이 반짝거리는것을 느낍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것을 이야기하니까요..
문제는 그런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것이지요 ^^
참.. 요그림.. 제가 아는분의 카톡 프로필인데
혹시 rothko의 작품이 아닌가 해서 올려봅니다.
nina 님^^
오셨나요? 또 반갑지요, 언제나...^^
저 역시 같이 나눌 수 있는
좋은 분을 만난 건 같아 이 아트힐에 감사합니다.
Simple is more!
명언이네요.^^
서로가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잘 이해하고 받아드리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바람직한 나눔이 아닌가 합니다.
얼마든지 말씀하셔요,
그 빤짝거리는 눈빛을 보고 싶으니...^^
저의 눈까지 빤짝이며 마주보면서
같이 뛰는 가슴으로 모두 들어드리는 그런 사람이지요, 또 저는...^^
살아가면서
점점 건조해 지는 세상에서
좋은 인연을 만난다는 게 그리 쉬운 일 은 아니지요.
그래서 더 감사한 nina 님이십니다.^^
제가 부족해서
아이같이 철없는 실수도 잘 하지만...^^
잘 이해해 주실 줄 믿어요~, 기쁜 마음으로...^^
카톡 프로필에 로스코 그림을 이용한 분도 계시네요.
왜 제가 기쁜지...^^
보면 느껴지잖아요,^^ 누구의 그림인가를...?
제가 이 작품을 컴에 갖고 있지 않아 타이틀까지는 모르겠지만...반갑습니다.
모든 게 기쁘고 행복하고...
적은 무엇하나라도 감사함으로 닥아 오는 로스코네요.
최선을 다해 정성을 쏟은
저 만의 뿌듯함 같은 것 때문에도 더 상승하는...^^
저희 둘이 만나면 이야기가 끝이 없네요.^^
또 뵈어요.
나날 행복하셔요.^^
저도 따라...^^
송버드님의 로스코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게시물이네요.
포스팅 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
집수리 중이라 컴퓨터가 선이 다 뽑힌채로 비닐 뒤집어 쓰고 있기를 이주일 남짓.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작동하려면 열흘이 더 걸릴 듯해요. 스마트폰 3G로 인터넷 대충 훑어 볼 정도고요.
사진이 컴에 저장되어 있어서 올리신 게시물의
보조 참고물들을 지금은 못올리겠네요.
시그램빌딩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필립 죤슨이 했는데 로스코채플의 설계를
처음에 필립 죤슨이 시도했는데 로스코와 의견이
맞지 않아 죤슨이 그만두었답니다.
죤슨은 창문을 크게 만들어 빛이 들어오길
원했다지요? ^^
휴스톤에 관심있는 건축가의 건축물들과 미술관들이
다니기 좋게 몰려 있기 때문에 두번을 갔었지요.
처음 로스코채플 들어갔을 때 엄청 당황했어요.
너무 컴컴하고 좁고 적막이 흘러 숨이 콱 막히는 거 같아서요. 무채색 앞에 긴 의자 몇개.
워싱턴 내셔널갤러리에서 보았던 그 신비스런
색과 선과 면이 아니라 그야말로 적막강산에다가
나쁜 시력에 무채색의 농담조차 구별이 안되니
점점...빨려들어 가기는 커녕 단절의 느낌으로
속이 울렁거릴 지경에 이르러 조금 있다가 밖으로
나와 심호흡을 여러번 했지요.
그런데 두번째 갔을 때는 어둡지도 좁지도 않고
편안하게 느껴져 한참을 앉았다 왔네요.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음. ㅎ
저도 송버드님 닮아가네요. 답글 쓰는 거..ㅎㅎ
가슴속에 품고 계신 좋은 것들이 많아
같이 나누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그래서 이야기가 길어지는 거...공감합니다.^^
휴스턴에 가볼만한 미술관 갤러리 박물관들이 너무 많아서 저도 좋았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서리...^^*
성토마스대학 교회도 참 이쁜데 다음에 올리시는
게시물과 연결이 되면 사진 올려볼게요.
저도 좋아하는 마크 로스코 그림
많이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
푸딩 님~~~!^^
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반가워서 꼬옥 끌어안아 드리고 싶은데...!^^
정말 반가워요~~.^^
집수리 생각을 안 한건 아니지요.
바쁘셔서 보지도 못하실 것 같아
쪽지라도 보내드리고 싶었지요, 솔직히는...^^
근데 지금 쓰려니 너무 늦었고
마음만 기뻐서 바쁘게 앞서서 가니
차분히 써지지가 않습니다.
내일 제가 다시 쓸게요.
나누는 기쁨이 이렇게 크네요, 푸딩 님.&&
사랑하는 푸딩 님!^^
기쁜 마음부터 가득 받으셔요~.^^
저의 행복한 마음도...
내일, 아니 오늘 날이 환해지면
다시 인사 들릴게요.^^
가득한 웃음 보냅니다.^^
고운 꿈 많이 꾸셔요.^^
추신: 로스코채플 앞의 작은 pool에 바넷 뉴먼의
브로큰 오벨리스크(마틴 루터킹 목사를 기념)
조각이 있는데 바넷 뉴먼도 숭고를 추구한 화가.
색면추상주의로서 색과 면과 선으로...
이 연못은 필립 죤슨이 설계했다는데 죤슨과 달리
뉴먼은 로스코와 교감이 있지 않았나 싶네요. ^^
푸딩 님.^^
반갑고... 저를 흥분시키는 새로운 이야기에 마냥 즐겁네요.
언제나처럼...^^
먼저 감사한 마음부터 전해야지요.
집수리하신다고 그 바쁜 중에도
그 조그만 스마트 폰으로 격려를 해주시니..^^
그 로스코 채플의 설계자는 그대로 필립 존슨으로 되어있는 글도 있긴 한데
로스코와 휴스턴 출신 건축가 Howard Barnstone 등의 협업으로 건축된 채플이라고도 있네요.
그 채플에는 창문 없는 것은 확실하니 아마도 푸딩 님의 말씀이 오를 듯도 하고요.
원통형으로 올라가서 위에서 은은한 빛을 내려오게 한...맞지요?
얼마나 제가 이곳을 가보고 싶은지...!
그 교회에 말없이 앉아
로스코를 느껴 보고 싶은 이 간절한 마음, 아시나요?
제가 이 게시물을 작성하면서 더 깊게 닥아 온 것은
후기의 마지막 그림들이었지요.
무채색 일색의...그의 괴로웠던 내면의 표출 같은...
푸딩 님의 첫 번째 채플을 방문했을 때
그 중압감에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의 그림이 주는 파급력을 실감하면서 호기심이 더해 갑니다.
아마도 워싱턴 네셔날 겔러리에서 보았던 그의 밝은 색상의 색면 그림처럼
전부가 그럴 거라는 생각은 아니었을까,
그런 그림을 상상하며 채플에 들어가시자
앞이 콱 막히듯 맞닥뜨린 그 어둡고 무게감으로 압도하는 큰 그림을 보니...!
넓지도 않은 공간에
온통 검은 빛의 짙은 보랏빛 일색의
크고 어두운 그림들로만 장식되어 있는 채플이라니...!
그 중압감은 누구도 느낄만한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기대치 않았던 상황에다 그림마저...! 아닌가요?^^
두 번째 가셨을 때는
이미 로스코에 대한 것을 많이 알고 가셨고
그 그림 앞에서 편안하게 로스코의 세계를 이해한 것은 아닌지..!
어쨌든 모든 관람자들이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느낌의 정도가 남다르게 오는 걸 제가 느낍니다.
눈물을 흘리는 관람자들도 있다는 글을 올리며
처음에는 좀 의아했지요.
지금은 그의 힘든 삶 속에서 피워낸 그의 그림에서
제가 같이 아픔을 깊고 경건한 마음으로 느끼며
눈물 흘리는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채플에 다녀온 어떤 분의 글에서 보았는데
그의 그림 중에서 제일 명화로 꼽고 싶다고요.
전해 오는 그 느낌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저도 마지막에 올린 그림은 무채색의 그림이었지요.
그의 마지막 그림의 경향이기도 하거니와
또 무언가 무겁고 우울하지만 신비로운 경건함을 느꼈기 때문이었지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건축물에 속해있는 이 채플.
로스코의 영혼이 영원히 살아있는 곳, 언제나 가 보게 될지...!
‘동지’를 만난 기쁨이 이리도 크네요, 푸딩 님.
제가 채플 사진을 올려드릴게요.
집수리 편하게 하시고 부담 같지 마시라고...^^
아! 브로큰 오벨리스크, 이것이죠?
채플 사진을 찾다가 얻었는데
이것이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념하는 것이었군요.
하나씩 머리에 그려지는 로스코 채플에 환히 웃습니다.^^
몰랐던 여러 가지의 새로운 정보에 기쁨과 설레임으로 감사드려요.
서로가 마음을 열고 참다운 모습으로
나눔이 있어 참 행복합니다, 푸딩 님.^^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중하게 느껴보는
삶의 기쁨이고 보람이고...감사한 삶입니다.^^
또 같은 이야기지만...
이 기쁨과 행복한 마음,
모두 푸딩 님께 드려요,
기쁘게 받아 주시길....^^
저의 가득한 마음이니...^^
어제 저녁 잠시 일손을 놓고 CGV에서
코스모폴리스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5분 늦게 가서 앞부분은 못봤어요. 내용은
대충 뉴욕 월스트리트의 모순되고 어두운 세계와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인간의 정신적
나약함과 피폐함 등..
그런데 놀라운 건 극 전개 중에 로스코채플이 등장하고
내부의 그림들도 나오는데 주인공이 그림은 물론
채플을 통째로 사고싶어해요. 왜일까...
결국 주인공은 죽는데 엔딩 씬에서
로스코 그림들이 암울한 주인공의 정서를 말해주듯
쭉~~ 올라가면서 나옵니다. 신기했어요.
우리가 로스코를 논할때 우연히 그 영화를 보게되어서요. ^^*
그림이 커서 문으로 못들어 가고
팔각형 지붕 위에서 각각 놓일 면에다 그림을 내려서 설치하고 나중에 지붕을 마감했다고 들었어요.
채플 입구에 히스토리가 담긴 책자에 현지인 두사람의 건축가이름이 올라 있는 걸 제가 확인했음.^^*
다만 비슷한 시기의 예술가들이니 서로 많은 교류와 협업이 있었겠지요.
특히 필립 죤슨은 유명한 걸 엄청 즐기는 사람이었으니 여기저기 이름이...ㅎㅎ
바넷 뉴만의 브록큰 오벨리스크 작품은 몇군데
설치되어 있는데 시애틀의 워싱턴주립대 캠퍼스
안에도 영구 설치되어 있고 뉴욕 모마 리모데링하고
얼마 안됐을 때 2층 홀에 설치 됐을 때 봤어요.
바넷 뉴먼도 로스코와 관련된 사람인 거 같아서...
아! 그랬었군요, 푸딩 님.
하나씩 베일이 벗겨지는 신비로운 로스코 채플의 건립과정을
푸딩님 때문에 알아갑니다.
생각하면 그 멀고 아득하기만 한 곳,
미국에서 살다온 저이지만
휴스톤 하면 생각이 미처 닿지 못하는 곳만 같은데
하나씩 알아가는 이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요.^^
이제는 채플 내부의 윤곽과 과정마저 그려지니...
혼자라 염두도 못내는 곳을
두 번씩이나 다녀오신 푸딩 님이 부럽기만 합니다.^^
언제나 기다리는 마음이죠, 새 포스팅을 할 때마다...
다음에 포스팅할 구상을 생각하며 또 님을 기다릴게요~.^^
도움 많이 주셔요,^^
이 행복한 시간들에 많이 감사드리며...^^
songbird님께 양해구합니다
님이 올려 주시는걸 열심히 보면서
댓글 인색함을 변명할까합니다(^^)
님의 기나긴 서사시같은 댓글 본다고
감히 뛰어들지 못함 을 이해바랍니다
푸딩님도,nina님도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지만
이렇게 구경꾼이 있다는 걸 기억해 주소서^^
파시미나 님!
제가 이런 감사한 말씀을 받을 자격이나 있는지...
얼굴을 붉히며 어쩔 바를 모릅니다.
수줍게 웃으며요~.^^
양해라니요!
이렇게 저에게 감동을 주시며 오셨는데..
이렇게 귀하게 머물러 주시는데...^^
감사할 뿐입니다.
모두가 너무도 소중하고 감사한 손님들이시죠.
아니, 손님이라기보다
가깝게 마음 나누는 더없는 친구이십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대접해 드릴 수 있을까,
정성이 담긴
저의 가득한 마음을 드리게 되지요.
저를 찾아주셨는데...!
마음에 품은 뜻이 같아서 저를 찾아 주셨는데...!
제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파시미나 님.^^
그렇지 않은가요?^^
또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나눌
고우신 파시미나 님을 또 뵙게 돼서요.^^
잘 오셨습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따스한 눈길로 마주하며
같이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음은
세상 살아가는 기쁨이지요.^^ 그렇잖나요?^^
앞으로 기다리고 싶은 분이 또 한 분 더...^^
제가 이렇게 행복하네요.^^
스탠드의 불빛이 오늘따라 더 정겨운 듯...
그래도 제 마음 만큼이야 할까...^^
기쁜 마음 가득 전해 드려요~.^^
저의 웃는 모습 보이시나요?
환하고 따뜻하게 웃습니다.^^
고운 꿈 많이 꾸시길...고우신 님.^^
처음에는 단순한 그림인 듯 보였으나
찬찬히 글을 읽어가면서 그림을 보고 또 보고
저는 미술(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수평과 수직의 구성, 색면 분할의 표현이 그야말로 예술이라고 느껴집니다.
songbird 님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글도 잘 쓰시고 편집도 정말 멋지게 하셨습니다.
songbird님 덕분에 미술공부 정말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요즘 너무 바빠서 댓글이 너무 늦었습니다.
기분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풀꽃뜨락 님.
반가운 마음에
얼굴마저 발그레하게 상기하여
환히 웃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정성스레 모실 수 있을지..생각을 해 봅니다.^^
더구나 제가 집을 비운사이에
오셨다 가셨으니...
죄송한 인사부터 드립니다.
그래도 너무 반갑네요.
고이 남기신 말씀도
소중하게 제 마음에 깊이 담으며...
보고 또 보고 하셨다는
님의 말씀이
더욱 소중하게 닥아 오는...바로 님의 모습이지요.
자연 속에서 자연과 살아가시는
꾸밈없는 진솔한 말씀만 같아...
아량과 이해도 많으시고...
저의 기쁨입니다.
좋으신 분과의 나눔이...^^
자주 뵈면서 태안 바닷가 풍광들이 저를 설레게 했지요.
그래서 저도 바닷가로 배 여행, 섬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신안군에 속해있는 임자도라는 섬.
‘임자’가 깨를 뜻하는 말로
깨알 같은 모래가 많은 ‘ 모래섬’ 임자도이지요.
그토록 하얀 백사장이 넓고 길고 또 긴...
포구 마을인 전장포에서
아침에 고깃배의 입항을 보며
뱃사람들의 힘차게 내뿜는 삶의 열기 같은 것에
가슴 설레이던 기억입니다.
조등하교, 중, 고등학교가 한 개씩 밖에 없고
주민의 70%가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대부분인...
유락시설 하나 없고 빈 해변엔 그 흔한 비치파라솔도 없는...참 한적한...
사르르- 밀려오는 고요한 파도 소리와
넓디넓고 가장 긴 고운 모래사장,
살랑대는 고운 바람결,
탁 트인 넓은 하늘.
푸르른 여름의 짙은 초록...융단 같은 모낸 논들.
자연의 품속에서 지낸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옥섬, 섬타리 섬, 육타리 섬..
새우잡이로 유명한 전장포.
이름도 오묘한 섬의 포구에서
사진을 찍으며 님의 앵글을 염두에 두었지만..
꽃도 찍어보았지만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어떻게 하면 꽃만 그렇게 빛을 뿜어내는 듯 살아있는지..
배경이 은은한 어둠으로 처리가 되는지..!
보여드리고 싶어 열심히 찍었지만..죄송합니다.^^
그래도 호젓이 거닐던 밤바다며
추억이 아름다워서 혼자 행복하게 웃습니다.^^
찾아주셔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 가득 올리며
보람과 행복 충만한 7월이 되시길...^^
그저 감탄할 따름이옵니다.
작품집 한 권 읽듯이 여러번 반복 읽어야겠어요.
님의 노고에 진정 감사드리며 두고 두고 음미 감상하겠나이다~~
푸딩님을 비롯한 다른님들의 내공에도 감탄을!
Jinny 님,
드디어...!^^
많이 기다렸지요.
요사이 통 뵐 수가 없어서 궁금하기도 하고...
안녕하셨나요?^^
어떻게 이 더운 여름을 지내셨는지...
칠월의 첫날,
반가운 마음부터 드려요.
그래도 죄송한 건
이렇게 오셨는데
제가 잠시 집을 비워서 금방 인사를 드리질 못했네요.^^
감사합니다.
그토록 과찬해 주시고...부끄럽지만
기쁜 마음으로 받을게요.
열심히 했습니다.
두 번씩이나 같은 작가의 작품을 올렸다는 부담감 보다는
잘 했다는 혼자만의 뿌듯함으로 감사하지요.
이렇게 찾아 주시며 격려해 주시니
그 마음은 더 없는 저의 기쁨입니다.^^
로스코에 대해서 평전까지 읽으셔서
많이 알고 계신
Jinny 님이시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렸다면 저야 더 이상 바랄게 없지요.^^
보면 볼수록 더 가까워지는 로스코입니다.^^
두 번을 올리면서 새롭게 느끼며 더 이해가 되는 계기가 되었지요.
마지막의 어둡고 괴로웠던 심정의 표출 같았던
깊이 갈아 앉은 어두운 색 일색의 작품들.
아픈 마음으로 보면서도 무언지 모를 빨려드는 깊은 경건함으로 임하게 되었지요.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는 관람자의 심정이 어떠한가를
지금은 이해하며 로스코 채플의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곳이건만...
푸딩 님을 비롯하여 여러분의 도움으로 상상이 현실처럼 느껴지는 걸요.
좋아하는 작가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도 큰 기쁨이고...^^
Jinny 님께서 저에게 많은 용기를 주셨지요.^^ 잊지 않습니다.
서로 마음 나누며 주시는 격려로
아름다운 삶의 울타리를 만들어 가며
오늘도 뵙게 되어 이렇게 행복합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찾아주셔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 가득 올리며
칠월의 첫날,
새달,
새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
언제나 아름답고
기쁨 가득한 나날이시길요~, 고우신 님.^^
작가의 이름 정도 안다고
감히 언급한 제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저의 피상적인 감상태도, 형편없는 기억력 하며.
게다가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작품을 직접 마주할 기회도 거의 없으니...
아무튼 음악 들으러 가입한 카페에서
이렇게 미술에 대해서도 대화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관심 있고
내공 있으신 님들의 펼쳐내심을 계속 기대하며~~
김사합니다^^!
유대인의,,, 생이 담긴것같네요,,,,감히,,,,, 점을찍어봅니다
누리마루 님.
반갑습니다.
이렇게 귀한 글로 남겨주시고...^^
처음 인사드리는 것 같은데
무엇보다 그림에 관심이 많으신 분 같아 기쁜 마음도 크네요~.^^
더구나 대중적이지 못한 화가 로스코,
낯설고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분위기의 그림들인 후기작품에 관심을 주시니
저로서는 가슴 설레이는 기쁨인걸요.^^
제가 참 좋아하는 화가인데다
저의 온 정성을 드려서 올린 게시물이라...
그 마음 이해하시려나요?^^
화가의 길은 험하고 곤하고
자기와의 싸움이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생의 고락을 같이하며 사랑으로 태어나는 작품들.
뜨거운 맥박이 꿈틀대고
부딪치며 헤쳐 가는 자신의 모든 영혼을 불어넣으며
치열한 고통 속에 일구어낸 아름다운 승화,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작품들입니다.
우리가 대면하며 감동하는 그의 ‘분신’ 앞에
숙연하고 아름다운 숭고를 느끼는 것도
그의 영혼과의 대화 같은...
나름의 이해와 순간의 감동이 있어
건조한 삶 속에서 순간이나마
기쁨을 누리는 우리가 아닐는지요, 누리마루 님?^^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이렇게 길어졌네요~.^^
제가 그림을 좋아하다보니
좋아하는 화가들로 시작하여 게시물을 올리고 있습니다.
자주 뵐 수 있으면요!^^
기쁜 마음으로 다음을 기대 할게요, 누리마루 님.^^
감사하고 기쁜 마음,
또 다시 가득 올립니다.^^
가을이 바로 곁에서 산들 바람으로 오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가을처럼
나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