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규칙과 심판의 공정성이라는 문제가 중요하게 받아 들여진 것은 사실상 스포츠의 본질이라고 부를 정도로 심히 오래된 일은 아니다. 고대 올림피아에서도 승부조작은 만연해 있었고, 중세시대에도 심판이 있었지만 귀족의 지위에 따른 편파적 판정은 오히려 미덕이라 여겨질 만큼 공정성에 대한 민감함이 크지 않았다. 심판의 공정성이 극대화된 것은 스포츠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근대에 이르러서이다. 승부를 정정당당하게 겨루자는 순수한 요구도 있었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스포츠와 도박이 만나면서 이른바 베팅에 대한 공정성 확보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승부가 정해진 게임에 돈과 시간을 지불하고 싶지 않은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규칙이 엄격 해졌고, 심판의 공정성은 차츰 강화되었다. 물론 이번 스캔들과 같이 현대사회에서도 심판 매수가 여전하지만 과거와 확연히 다른 것은 스포츠, 그 자체의 가치를 지키려는 자발적 공동체의 역할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해당 협회나 연맹은 소속 회원들을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자처하면서 정정당당한 승부를 통해 관중을 끌어 모으고, 스포츠 그 자체의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 한다.
이런 노력의 목적은 다름 아닌 회원들 공동의 이익이다. 이런 연합 체들에 대해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주창한 철학자 존 롤스(J. Rawls) 는 각 개인들은 혼자 사는 것 보다 협동을 통해 사는 것이 보다 나은 생활을 하기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만 협동을 통해 얻게 되는 이익에 대한 분배에는 무관심하지 않고, 보다 큰 몫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충돌한다고 주장하였다. 롤스의 입장에서 보면 승부조작을 시도하여 공동의 이익을 위험하게 만드는 일은 이를 보호하기 위해 처벌해야 할 당위성을 가지는 것이며, 분배의 문제에 있어서도 공동에게 해를 끼친 구성원을 배제하고, 나머지 구성원들이 이익을 보호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테면 해당 팀을 처벌하여 나머지 구성원을 보호한다든지, 벌금을 받아 공동을 위해 사용한다든지, 그리고 강등을 시켜 경쟁자를 제 거하는 일 등과 같이 말이다. 반면 이 대목에서 승부조작을 시도한 해당 팀이 최대한 손해를 적게 보기 위해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도 어찌 보면 지분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팬들의 입장에서 분명한 것은 이번 승부조작은 팬들을 기만하고, 승부의 공정성을 간과했으며,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스포츠 자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사실의 반복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나라 스포츠계가 그래왔던 것과 같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야만 하는 연맹이나 협회가 본분을 망각하고, 과거와 다름없이 온정적인 태도로만 일관한다면 프로스포츠가 자신들의 전유물이라는 착각의 결과에 다름 아닌 것이다. 온정은 가진 자들의 불공정함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위치보다 못한 이들에게 주는 내리사랑이다. 공동체는 구성원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하며, 온정을 베풀 곳과 베풀지 말아야 할 곳을 구분해야 한다. 이에 덧붙여 정말 그럴리야 없겠지만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거 뭐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을 쓰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조용해 질겁니다.”라는 영화의 대사와 같이 도덕이 무너진 사회의 한 단면은 영화에 머무른 것이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