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목 목판본 『황석공소서』에 관하여
[연재] 애서운동가 백민의 ‘신 잡동산이’(67)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1. 서론 ; 드러난 이건희 회장의 전적 컬렉션
조선 태종4년(1404년)에 제주에서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가 목판본으로 나왔다는 사실은 2008년 박철상 박사가 그 실물을 처음으로 공개함으로써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 책이 간행된 지 만 620년만인 이번(2024년) 6월 4일부터 제주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 이건희 회장 기증 국립제주박물관 특별전”에서 제주판 『황석공소서』의 또 다른 인본(印本)이 공개 전시되었다.
이 책은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에 기증한 전적(典籍) 4,176건 가운데 1책이지만, 이 고서(古書)는 제주도로서는 가장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황석공소서』 인본이 언제 이건희(1942~2020) 회장의 소장품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국박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에서 약 20%에 달하는 전적의 전체적인 구성으로 볼 때 이 회장이 전적을 수집한 시기는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약 20여 년간으로 보인다. 대체로 그 시기에 유통되었던 것이 상당수 보이고, 일일이 엄선하여 구하지 않으면 들어오기 어려운 고본(古本)도 상당수 있지만, 중복된 책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엄선하여 귀중본만 수집한 컬렉션이라기보다는 한꺼번에 입수한 경우가 많으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대체적으로 어느 선을 통하여 매입하였는지 추정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경상도 안동 지방의 거간(居間)꾼 모 씨가 여러 집안에서 전해져 내려오거나 시중에 나와 있는 고서를 모아들인 후에 이건희 회장의 어느 특정 대리인을 통하여 수차(數次) 뭉텅이 납품한 것 같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국박에 기증한 전적(典籍) 4,176건은 나름대로 이 회장이 비장(秘藏)했던 고서이다. 이것이 그동안 말로만 돌고 학계의 조사가 거의 불가능하였던 이건희의 전적 컬렉션의 실체이다. 국박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의 품목별 목록은 국박 사이트 ‘이건희 기증품’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2. 본론 ; 『황석공소서』 출판 연대에 대하여
『황석공소서』의 국박 소장품 번호는 ‘건희 6214’번이다. 국박에서 만든 목록에 의하면 이 책의 ‘크기는 세로가 26.3cm 가로가 17.5cm’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이며 ‘반곽(半廓)은 19.7×13.4cm’이고, ‘유계(有界)’에 ‘10행20자’이다. ‘백구(白口)’에 ‘상하흑어미(上下黑魚尾)’이다. 간기는 “永樂二年 甲申十一月 日 濟州牧官開板”이다. 국박의 목록에는 ‘유계(有界)’라 되어 있으나, 이는 오타(誤打)이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이 책은 ‘무계(無界)’이다.
『황석공소서』, 1404년, 제주목 목판본. 국립중앙박물관 ‘건희 6214’번. [사진 제공 – 이양재]
나는 2023년에 『‘2023 제주고서전’ 출품 목록집』에 기고한 「조선조 제주에서 판각한 책판 및 출판물 목록」을 2024년 연초에 증보하여 『제주 옛 간행물의 고찰』을 탈고하며, 박철상 소장본 『황석공소서』를 아래와 같이 언급하였다.
“(1).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 1405년, 1책, 목판본, 兵家類, ○박철상 소장(서울). 사주단변(四周單邊), 무계(無界), 10행19자, 간기에 “〇〇十一月日濟州‥‥‥刻手僧性” / “兼勸農兵馬團練判官儒學敎授官 韓彛”, / “兼勸農管學兵馬使濟州道按撫使 李原恒”이라고 한 기록으로 보아 제주목사 이원항(李原恒), 제주판관 한이(韓彛)가 간행한 책이다. 개간 시기는 이원항이 제주에 부임(주1)해 있던 1405년 11월로 추정되는데, 이 책은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병서(兵書)이자, 현재 실물이 전하는 제주에서 간행된 가장 오래된 책이다.”
(주1) 이원항은 1404년 4월에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1406년 9월에 이임한다. 즉 11월의 간기로 보아 이 책은 1404년에 늦어도 1405년에 판각되었을 것이다.
박철상 소장본은 간기 “〇〇十一月日濟州‥‥‥刻手僧性”에서 간지가 손상되어 있으나, 이원항의 제주목사 재임 시기에 맞추어 1405년에 판각한 고본으로 추정한 것이다. 그런데 ‘건희 6214’번은 “永樂二年 甲申十一月 日 濟州牧官開板”이라고 되어 있다. 문제는 이건희 본은 10행20자본인데, 필자는 박철상 본은 10행19자본이라고 언급한 점이다. 그렇다면 이 두 책은 완전히 다른 책(이판본)인 것인데, 박철상 본이 10행19자라는 필자의 주장은 연합뉴스에서 보도한 사진만을 보고, 실물을 못 본 상태에서 계산한 필자의 착오(錯誤)였다. 이번 글에서 이러한 점을 수정하고자 한다.
6월 8일자로 박철상 박사는 필자에게 「조선 최고(最古)의 병서(兵書) 제주도판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의 출현과 의미」(2008년 발표)를 메일로 보내 주었다. 이 논문에서 박철상 본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의 해제는 “권수제 : 『황석공소서』 / 저자 : 황석공(黃石公) 저(著) / 판본 : 목판본 / 형태 : 1책, 사주단변(四周單邊), 반곽(半廓) 19.5×13.5cm, 무계(無界), 10행20자, 상하하향 흑어미(黑魚尾), 주(註) 소자(小字)”로 되어 있다. 책의 “앞부분에는 장상영(張商英,1043-1121)의 서문이 있고, 이어서 본문이 시작된다. 끝에는 판각 기록이 있지만, 탈락이 심하다. 전체적으로 상태가 불량하지만 낙장은 없고 부분적으로 훼손이 심한 곳도 있다. 다른 조선판 『황석공소서』의 경우 주석자인 장상영을 ‘中大夫尙書左丞張商英註’라고 간단하게 처리하고 있지만 제주도판은 다음과 같이 2행에 걸쳐 자세하게 처리하고 있다. / 中大夫守尙書左丞上柱國淸河縣開國男 / 食邑四百戶賜紫金魚袋 張 商英 註.”
계속되는 박철상 박사의 글에 의하면 “제주도판 『황석공소서』에는 판각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탈락이 심하여 확인이 쉽지 않다. 특히 간행년도 부분이 탈락되어 정확한 판각시기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판독이 가능한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표1]
------------(年)十一月 日濟州---------------
------------刻手僧性■■仁■■■--------------
---------■■■■■力校尉龍驤■衛司-------------
-----水軍千■■■■■■校尉虎■■衛司-------------
-----兼勸農兵馬團練判官儒學敎授官韓 彛
-----兼勸農管學兵馬使濟州道按撫使李 原恒
■ : 판독불가
-- : 탈락부분
박철상 본 간기(왼쪽)와 건희 6214번 간기.(오른쪽) [사진 제공 – 이양재]
이를 보면 박철상 본과 이건희 본은 동일한 10행20자 본으로 동일 판본이다. 그런데 이건희 본은 여러 곳에서 목니(木離)가 보인다. 반면에 박철상 본은 이건희 본보다 목니가 적고, 글자의 자획이 더 예리한 것을 보면, 박철상 본은 이건희 본보다 한 세대는 먼저 간행된 책이다. 또한 이건희 본은 본문이 전부 있는 양호한 선본(善本)이지만, 이건희 본에는 박철상 본에 있는 마지막 면, 즉 [표1] 부분이 없다. 즉 이건희 본과 박철상 본은 간기를 상호 보완하고 있다.
3. 결론 ; ‘제주도 지방문화재’ 지정 조례를 수정하자
『황석공소서』, 1404년, 제주목 목판본. 박철상 본. [사진 제공 – 이양재]
이 책이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할 때 박철상 박사는 이 책의 간행 시기를 1405년 11월로 추정하였다. 당시에는 판관 한이(韓彛)의 정확한 이임(離任) 일자를 알지 못했고 1404년 11월은 이원항이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간행하기는 적당치 않은 것으로 보았고, 1406년 11월은 이원항이 떠난 뒤였기 때문에 1405년을 가장 적당한 간행 시기로 추정한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 공개한 이후 논문을 쓸 때(2008년)는 판관 한이의 이임 시기를 확정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간행 시기를 1404년 11월로 확정하였다. 이 확정은 국박에 기증된 이건희 본에서 영락2년 갑신(1404년)으로 입증된 것이다.
박철상 박사의 전술한 논문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필자는 최근까지 1405년 본으로 계속 오인(誤認)하여야 왔다. 이번 전시를 관람하며 재검토한 본 결과 제주목 판본의 『황석공소서』는 1404년 11월에 만들어진 판목으로 찍은 목판본임이 확실하다. 이에 필자의 오인을 공개적으로 수정한다. 서지학에서 1년의 차이라는 것은 큰 차이이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건희 본은 사주(四周)의 선(線)과 자체(字體)의 여러 곳에서 목니(木離)가 상당히 보인다. 반면에 박철상 본은 이건희 본보다 목니가 적고, 글자의 자획이 더 예리한 것을 보면, 박철상 본은 이건희 본보다 한 세대는 먼저 간행된 책이다. 또한 이건희 본은 본문이 전부 있는 양호한 선본이지만, 이건희 본에는 박철상 본에 있는 마지막 면, 즉 (표1) 부분이 없다. 그런 면에서 이건희 본과 박철상 본은 간기를 상호 보완하고 있다. 즉 박철상 본 역시 유형문화유산(문화재)으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300년 이상 된 제주 판본은 도 지정문화유산으로 지정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특히 조례를 만들어서라도 제주도민 이외의 소장가가 소유하고 있는 특별한 여러 고전적도 소장가의 동의를 얻어 제주도 지정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제주목 판본으로서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1404년)라든가 『논어(論語)』(1411년),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1418년, 1706년), 『당시절구(唐詩絶句)』(1528년), 『목민심감(牧民心鑑)』(1555년) 등등 임란 전에 제주목에서 간행한 여러 책과 300여 년이 넘는 『오자직해(吳子直解)』(1640년), 『장감박의(將鑑博議)』(1625년 이후~1653년 이전), 『탐라지(耽羅志)』(1653년) 등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책들은 제주도로서는 매우 중요한 고전적이나, 국가나 다른 시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러한 제주도로서는 중요한 고전적을 제주도 특유의 문화유산으로 보존 및 추적 관리하기 위해서는 제주도의 특성에 맞는 조례를 만들어서라도 제주도 지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 세대 후에는 현재 확인되는 300여 년 이상이 된 제주판 전적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마침 금년 12월이면 현재의 제주도 문화유산위원들의 임기가 끝난다. 이제는 조례를 고쳐서 라도 문화유산위원들의 숫자를 지금의 10명에서 4배 이상, 즉 40명으로 대폭 확대하여야 하며, 실사구시의 안목이 있는 여러 분야의 분들을 도 문화유산위원으로 대거 위촉하기를 기대한다. (2024.06.08.)
「2023 제주고서전」, 2023년 9월 4일~14일, KBS제주방송총국 1층 전시장. [사진 제공 – 이양재]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